<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6~10>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생각이 뛰어노는 한자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6
이어령 지음, 박재현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억울해진다. 한자 속에 재미있는 이야기꺼리가 이렇게 많은데, 왜 학교 한문시간은 그렇게 따분하고 지루했는지.. 뜻과 음을 기본으로 부수며 획수며 필순 외우기를 한문공부의 전부인 줄 알았다. 대학에서 한문학을 잠깐 공부하면서 그때서야 자전 찾는 즐거움, 한문학 작품을 독해하는 재미를 조금 맛보았을 뿐이다. 말라 비틀어져 딱딱해진 오징어다리를 씹어 삼켜야 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던 한문 공부가 억울하다. 지금도 그 시절의 나와 별 다를 것 없이 딱딱한 마른 오징어 다리를 씹는 기분으로 아이들이 한문 공부에 들이고 있을 시간과 노력이 또 억울하다.
이어령 씨에게 미안하다. 나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그 분의 이름을 듣고 자랐다. 유명했고 주위 분들로부터 좋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도 있는데, 반항심이었는지 아니면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그 분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이 내가 읽은 최초의 이어령 씨의 작품인 셈이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의 글인데 신선함이 느껴진다. 그동안 이어령 씨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던 내 엇나간 똥고집이 슬며시 후회스러워진다. (난 도대체 그동안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면서 난 꿈을 꾼다. 학교에서 이 책을 한문 교과서로 쓴다면 어떨까. 이제 막 한자를 배우려는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딱 맞춤이 아닐까. 한자를 통해서 생각을 확장시키고 한자 안에 들어 있는 이 재미난 이야기들을 듣고 한자 하나를 퍼즐 맞추듯 이리저리 뜯어보고 살펴보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배우는 즐거움을 한껏 느낄 수 있을 텐데. 자유로운 교과서,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교과서에 자유를 허하라, 부르짖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궁금했다. 한바탕 재미있게 읽고 난 이 책 속에 한자는 몇 개나 나온 걸까. 한자 이야기지만 설명글 많고 시원시원하고 그림도 들어간 200쪽이 못되는 이 얇은 책 속에 대체 몇 자나 들어 있을까. 맨 뒤쪽 찾아보기에 실리 한자들을 세어보니 얼추 200자가 살짝 넘는다. 처음 한자를 배운다고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수다.

큰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한자 급수 따기 열풍이 불었었다. (지금도 그런가?) 그래야 대학 갈 때 유리하고 어휘력이 늘고 논술에 도움이 되고... 한자급수를 따야할 이유들이 줄줄이 이어지곤 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그런 말들 속에서도 꿋꿋하게 '안 따도 괜찮아!'라는 입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달달달 한자를 외워서 급수를 따는 것보다는 책을 읽어서 얻는 어휘력이 더 알찰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고, 한자 외울 시간에 책을 읽어서 얻는 지식과 정보와 문학적 감성들이 논술에도 더 도움이 될 거라는 계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조금씩 집에서 배우면 되는 거지, 뭐 하러 급수에 매달려야 한담??? 그런데 이 책에 들어있는 방법으로 한자를 배운다면... 그렇다면 옆에서 뭐라고 바람을 넣지 않아도 '한자 공부 하라'고 잔소리를 하게 될 것 같다.

그렇다고 한문공책을 아이 앞에 떡하니 펼쳐놓고 여기에 나온 한자들을 쓰고 외우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이 책에 대한 모욕이다. 이 책은 한자의 세계로 아이를 이끄는 안내서이지, 절대로 학습서가 아닌 까닭이다. 한 장의 좋은 지도와 안내서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이끌지만, 좋은 지도와 안내서를 가지고 있는데도 찬찬히 살펴보고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빨리 가라고 채찍부터 휘두른다면 목적지 자체는 의미를 잃고 걸음 하나하나가 고통스럽기만 할 테니까 말이다.  

이 책이 한자에 대해 말하면서 들려주는 인류역사의 면면들과 잠시 책읽기를 멈추고 생각에 빠지게 하는 글들은 한자 하나를 외워서 아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아이들에게 선물해 줄 것이다. 읽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이 억울하지 않을 좋은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9-11-2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부지런도 하셔라~ 다 읽고 리뷰 미션 완수하시다니!!
나는 아직 한 권도 못 읽었는데요.ㅠㅠ

섬사이 2009-11-24 10:3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하시는 일이 많으시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금세 하실텐데요, 뭐. ^^;;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6~10>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나만의 영웅이 필요해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7
이어령 지음, 홍정아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앞서 가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의 뒤를 따라 걸을 수 있다면 그것도 복이다. 앞서 가는 사람이 덕 있고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오딧세이가 트로이 전쟁에 나가 있는 10여 년의 세월동안 오딧세이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진정한 스승이자 친구가 되어주었다는 멘토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를 비춰줄 거울 같은 사람, 가끔은 내가 꿈꾸듯 바라볼 수 있는 사람,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 그래서 하루하루를 함부로 살지 않게 슬며시 잡아주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복받은 인생이다.

점점 세상은 험악해지고 삶은 각박해지고 사람은 쓸쓸하다. 멘토를 만나기는커녕 마음 나눌 친구나 이웃을 만나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그런데 이 책은 감히 영웅을 말한다. 멸망을 목전에 둔 지구를 구한다거나 망토를 두르고 하늘을 날지는 않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잘 살아낸 인물들이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 시대도 아니고 세계대전이 벌어지지도 않았지만 지금도 난세라면 난세다. 무엇보다 믿고 따를 사람이 없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여오는 걸 보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당혹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삶의 이정표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 걸까? 작가는 '앞마당' 글에서 "지금부터 네가 삶을 조각해 갈 때 '나도 저런 사람처럼 되어야지.'하고 본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줄게."라고 말하고는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지침이 되어줄만한 인물들을 뽑아 이야기를 풀어간다. 덕과 관용으로 사람을 보듬어 큰 인물이 된 황희 정승과 유방, 책 속에서 자기의 세계를 찾았던 간서치 이덕무와 서경덕, 그리고 책으로 얻은 지식이 오만이 되는 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던 나폴레옹, 포기하지 않고 한 우물 파기에 열정을 쏟았던 바이올린 제작의 대가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와 황도를 재현해낸 도공 신정희, 돈을 버는 것보다 올바로 쓰는 일을 중요시했던 앤드류 카네기와 유일한 박사,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써서 노예해방의 역사를 이룬 비처 스토, 장애를 이기고 자기를 바쳐 세상에 빛을 건네준 루이 브라이와 스티븐 호킹 박사, 결과나 경쟁에서의 승리를 염두에 두지 않는 순수한 도전정신으로 빛나는 섀클턴과 라인홀트 메스너, 그리고 고정관념을 부수고 남다른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동서고금을 망라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게 펼쳐져서 어줍은 위인전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을 것 같다. 글의 초점이 인물들의 삶 자체에 있다고 하기보다 그 삶을 통해 생각하고 본받을 점을 강조하는 데 맞춰져 있어서 아이들이 받아들이기가 훨씬 편할 것 같다. 특히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비처 스토에 대한 이야기에서 “한 사람의 실천은 열 명을 눈 뜨게 하고, 백 명의 마음을 흔들고, 천 명의 생각을 바꾸게 한다.”는 글은 나에게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책도 필요하고 열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실천하기’는 더더욱 어려웠던 것 같다. 가슴 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도 그것이 하나의 행동으로 표출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장담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가만히 있으면 현상유지는 가능하다는 얄팍하고 비겁한 계산... 실천을 감행하기까지 앞을 가로막는 것들은 참 많다. 내 자신을 돌아보자면 ‘실천’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더욱 수동적인 것 같다. 누구의 말마따나 야망과 명예심은 사라지고 경쟁만 남은 이 세상에서 자식을 키우려다 보니 미리 챙겨주고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어른들이 많아진 탓일 것이다. 내가 안 해도 누군가 알아서 해준다는 게 버릇이 된 아이들은 스스로 움직일 줄을 모른다. 실천은 행동의 과잉이고 쓸데없는 오지랖이며 실패의 확률을 높이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그런 아이들이 있다면 저자의 ‘앞머리’ 글에 쓰인 대로 그 아이의 마음속에 반듯한 본 하나가 그려지기를 더욱 바라게 된다.

저자가 우리에게 남긴 한 마디가 ‘뒷마당’ 글에 실려 있었다. “사람은 저마다 성격과 능력이 달라. 아무리 부족해 보이는 사람도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히 배울 점이 있게 마련이지. 그러니 네 곁에 있는 친구와 가족들 가운데 너만의 ‘숨은 영웅’을 찾아보렴. 네가 누군가의 작은 영웅이 되는 것도 근사할 거야!”라고. 좋은 세상이 되려면 숨어 있는 작은 영웅이 많아져야 한다. 숨은 작은 영웅이 되려고 노력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이건 우리 모두가 해내야만 하는 과제가 아닐까.

읽다보니 글이 절반 정도까지만 내려오는 페이지가 많다. 요즘 이런 편집이 유행인가? 하긴 아이들이 책을 빼서 휘리리릭 넘기며 훑어볼 때 ‘요 책, 읽기에 만만하겠구나.’하는 인상을 심어주기엔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쪽에 ‘나의 작은 인물 사전’이라는 꼭지가 있다. ‘대한민국을 빛낸 다섯 인물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나비박사 석주명, 김수환 추기경, 비디오 아트 백남준, 노르웨이 라면왕 이철호, 옥수수박사 김순권, 성악가 조수미에 대한 이야기가 짤막하게 실려 있다. 좀 큰 아이가 있다면 아이와 함께 ‘나만의 작은 인물 사전’을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뚝딱 완성하는 사전이 아니라 공책 한 권에다 신문에서든 책에서든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인물을 모아놓는다면 그것도 아이의 삶에 하나의 본이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6~10>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로그인, 정보를 잡아라!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8
이어령 지음, 서영경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도 아이들은 컴퓨터를 켠다. 웹툰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요즘 뜨는 아이돌 그룹의 신곡을 다운받거나....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땅찮아 눈살을 찌푸리게 되기도 한다. 종종 인터넷 자살사이트에서 만나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아이들이나 또는 원조교제를 시작하는 십대 청소년들, 아니면 개인정보유출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이 이슈화될 때면 저 인터넷이 언젠가 우리들의 발목을 잡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인터넷 없는 세상으로 되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만 같다.

똑같은 샘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고 했던가. 인터넷도 그런 것 같다. 현명하게 이용하면 빠르고 효과적으로 정보를 모을 수 있지만 나쁘게 이용하려고 든다면 이것처럼 위험천만한 것도 드물다. 일찍부터 정보의 바다를 효과적으로 올바르게 헤쳐 가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통신과 정보의 발달사를 담았다. 아이들에게 맞춰서 사람이 직접 정보를 전달하던 시대부터 봉화, 종이의 발달, 인쇄술의 발달, 우편제도의 성립, 신문 창간과 그 역할, 전화, 라디오, TV, 그리고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까지 설명한다. 재미있는 옛이야기는 물론이고 백범 선생님이 전화 덕분에 사형 당하지 않은 일화, ‘직지심체요절’이 프랑스 국립박물관에서 발견된 이야기, 아빠가 보낸 유리병 편지가 85년 만에 딸에게 전달된 가슴 찡한 이야기, 닉슨 대통령을 사퇴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 용감한 두 기자의 이야기, 최초의 거대한 컴퓨터 애니악 이야기 등이 책의 재미를 더하고 있어 아이들이라도 책을 읽는 데 지루함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이 통신과 정보 발달의 역사를 아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우리 아이들이 뱀이 아니라 소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통신과 정보를 가치 있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의 맨 앞에 나오는 옛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천리안을 비유로 삼아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제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가 된 거야. 말하자면 우리는 저마다 천리 밖을 내다보는 천리안을 지니게 된 셈이지. 자, 이 천리안으로 무엇을 볼래? 또 천리안을 지닌 다른 사람에게 넌 무엇을 보여 줄래?’
그리고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봉화대’가 되기를 당부한다.

현대는 지식이 권력이 되는 세상이라고 했다. 광대한 정보의 바다 속에서 유용한 정보들을 찾아내고 엮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한 능력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안의 정보량이 엄청나다고 해서 그 안에서만 정보를 찾으려 한다면 그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 되지 않을까. 정보의 깊이의 신뢰성을 따지자면 아직은 인터넷의 정보가 책에 기록된 정보에 비해 부족한 것 같아 보이니까 말이다. 내가 인터넷 정보의 바다에 빠져서 제대로 헤엄쳐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아직은 책이 지식과 정보를 쌓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점에 대해 저자는 ‘종이의 시대가 지닌 힘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고 타이르고 있다.  

그래도 아이들은 점점 책보다는 인터넷과 가까워질 것이다. 종이와 문자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 전자기와 영상의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를 바라보며 불안해하는 것은 단순히 세대차라고 여기고 무시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이 아이들에게 인터넷 이전 시대의 통신과 정보기록의 방법을 살펴보면서 정보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주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울러 통신기기는 발달했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 사이는 단절되어가는 오늘의 풍경에 대해서도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요한 건 첨단 기능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내용의 질이다.  내용의 질적인 면에서도 우리는 정말 발달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종이든 전자기든 그 안을 어떻게 채워가느냐는 사람의 몫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6~10>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튼튼한 지구에서 살고 싶어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9
이어령 지음, 조승연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몸살이 심각하긴 한가보다.  아니, 몸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중병 진단을 받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시한부 선고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했나 보다.  솔직히 좀 끙끙 앓다가 어느 날 툭툭 털고 일어나서는 "나, 다 나았어. 이제 끄떡없어. 이 정도 가지고 내가 쓰러질 리가 없잖아."라고 말하며 씨익 웃어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뭔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절망적이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는 거죠?" 라고 물어봐야 하는 건가..

공교롭게도 요즘 환경문제에 대한 책을 만났다.  <카본 다이어리 2015>가 그랬고, 자주 가는 어린이 도서관 관장님이 저자 싸인까지 해서 선물로 주신 <내가 조금 불편하면 세상은 초록이 돼요>도 그렇고, 이 책도 병든 지구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여기저기서 경고음을 울리고 있는 중이다.  이럴 땐 "이를 어쩌지?  무슨 방법이 없나요? " 하고 무조건 매달려야 하는데..

난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당연히,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으려나 보다.  미래의 어느 날 내 마지막 숨이 막 끝나가려 할 때 아이들의 남은 삶이 걱정돼서 눈도 제대로 못 감고 죽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궁금하긴 했다.  왜 사람 손만 타면 망가지고 병들고 죽어 가는지.  아마 개발이든 과학이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손톱을 바짝 세운 채 맹목적인 경쟁과 이기심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결국 지구가 그렇게 중병에 걸린 건 내 책임도 얼마간 있는 거였다.  이럴 때 드라마에선 "모두 제 탓이에요..." 하고 병원 복도에 털썩 주저앉곤 하더라..

저자는 이 책에서 '순환'을 이야기한다.  물의 순환, 땅과 생명의 순환, 모든 생태계의 순환들을 말이다.  그 모든 것이 건강하게 순환하던 것이 근대 산업화가 시작되는 순간 어긋나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제발 살려주세요.  뭐든지 다 할게요."하고 매달려도 시원찮을 판이다.  이럴 때 의사가 하는 말이 뭔지 다 알거다.  "어렵지만, 최선을 다 해 봅시다." 

우리 상황이 딱 그런가 보다.  최선을 다 하고도 기적이 좀 필요한 상황.  저자가 가르쳐주는 처방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물을 아끼고, 쓰레기를 줄이고,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자제하고, 나무를 심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동식물을 보호하고, 분리수거를 잘 하고, 에너지를 절약하고, 재활용품을 애용하고.... 이미 알고 있던 내용들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왜 그래야 하는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 친절한 설명이 표어와 구호에 지나지 않았던 환경보호의 필요성을 잘 일깨워 준다.    

생명을 살리는 선순환들이 어느 틈엔가 악순환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협박성 짙은 어조로 공포를 조장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야기 하고 있는 악순환들이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예를 들면 자동차 배기가스와 공장의 매연에 들어있는 질소 산화물, 황산화물이 수분과 합쳐져 질산과 황산으로 바뀌면서 산성비가 내리고 그 산성비는 강과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땅 속의 중금속이나 아무렇게나 버린 알루미늄 캔을 녹여서 농작물을 오염시키고, 오염된 농작물을 먹은 사람은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설명이 꽤 구체적이다.   가장 논의가 활발히 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지구온난화다.  편리함을 취한 대가치고 참 가혹하다 싶을 만큼 그 문제가 심각하다. 생태계의 파괴, 기상 이변, 빙하해빙(얼마 전 나사에서는 2012년 여름 쯤이면 북극의 빙하는 다 녹을 것이라고 발표했다고 한다), 해수면 상승, 해변지역 침수...우리가 참 겁도 없이 무서운 세상을 좋아라 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너무 힘겨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으면서 살아갔으면 좋겠고, 세상이 좀 더 평화로워졌으면 좋겠다.  성적이 아이의 고민거리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버스기사가 되고 싶다는 옆집 아이의 꿈을 진심으로 격려하고 도와줄 수 있을만큼 세상 사람들이 다 고만고만하게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이 사라졌으면 좋겠고, 지금보다 초록색 풍경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가끔씩이라도 금방이라도 우수수수 떨어질 듯 별들이 깨알처럼 박힌 밤하늘 아래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이 책에서 "죄송하지만 이제 가망이 없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지요."란 말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희망을 이야기한다.  많이 악화되어서 다시 건강해지기는 어렵지만 지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면 다시 좋아질 수 있을 거라는.  

그러려면 모든 생명과 생명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깊은 연대감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고릴라를 보호하려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다이앤 포시나  천성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막아 생태계를 지켜보려고 단식투쟁을 하셨던 지율스님 만큼은 못되더라도, 한 숟가락 떠서 내 아이 입에 넣어주면서, 물 한 컵 따라 마시면서, 내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바라보면서 늘 누군가를 향해 미안하다, 고맙다, 말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일 게다.  그게 바로 까치밥 정신, 고수레 정신이 아닐까.  그 정신이 살아있다면 4대강 개발 따위, 애초에 나오지도 않았을 이야기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내일까지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이 환경에 대한 책을 읽고 느끼고 이해하고 마음에 새겨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와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뒷마당 글에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동물원의 한 우리 안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 우리 앞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라고 적혀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뉴욕의 어느 동물원 우리 안에는 커다란 거울이 하나 걸려 있고 그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쳐보게 하는데, 그 거울 앞에도 '이 땅의 모든 동물들을 가리지 않고 씨를 말리는 가장 무서운 짐승'이라는 표지판이 있다고.   이제 우리는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짐승' 이 아니라 '가장 겁 많고 온순한 짐승'이 되어야할 것 같다.  

"축하합니다. 완쾌 되셨습니다.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유 2009-11-22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대단해요..^^_

섬사이 2009-11-24 10:35   좋아요 0 | URL
대단하긴요.
남들을 좋은 마음으로 품어주는 배꽃님 마음이 대단하죠. ^^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6~10>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상상놀이터, 자연과 놀자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10
이어령 지음, 허현경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만 보고 자연 안에서 노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인 줄 알았다.  도시에 사는 아이라도 잘 눈여겨 찾아보면 주변에서 작고 소중한 자연의 모습들을 찾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요즘같은 가을엔 낙엽 몇 개만 가지고도 놀 수 있는 방법이 많을테니, 잘 보고 아이랑 한 번 해봐야겠다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헛짚었다.  이 책은 동물들의 살아가는 법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아이들에게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며 묵상하는 차원으로 이끈다고 해야하나..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사슴과 늑대, 개미와 매미, 박쥐, 참치와 개복치, 개와 고양이, 제비, 모기, 그리고 십장생 등이다.  동물들을 통해서 다양한 삶과 가치들을 짚어나간다.  사슴과 늑대 이야기에서는 건강한 경쟁의 필요성을 말하고, 개미와 매미 이야기에서는 노동형 인간과 유희형 인간 각각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박쥐를 통해서는 거꾸로 생각하는 창의성을, 참치와 개복치에서는 부지런한 모험형 인간과 정적인 은둔형 인간의 모습을 살펴보고,  개와 고양이에서는 협동형 집단주의적 성향의 인간과 개인주의적 성향의 인간을, 제비에게서는 살아가는 데 전혀 필요치 않은 제비 꼬리를 통해서 실용과 아름다움의 문제를 생각해보게 한다.  해만 끼치고 살아가는 듯한 모기를 보면서 인간의 잣대로만 이해득실을 가르려고 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돌아보는 동시에 귀찮은 해충에 지나지 않는 모기의 첨단 능력을 보여준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는 십장생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고자 했던 조상들의 마음을 엿본다.   뒷편의 '나의 작은 동식물 사전'에는 거짓말 탐지 능력이 있는 식물과 2천년의 시간동안 잠들어 있다가 싹을 틔운 씨앗, 동물들이 갖고 있는 예지력, 암을 냄새로 찾아내는 개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있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자연'이라는 것이 인간 맘대로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목숨이 있든 없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필요 없는 것은 없어.  모든 것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간단다."라거나 "세상 만물은 어떤 것도 좋고, 나쁘고, 이롭고, 해롭다고 말할 수 없어.  저마다 제자리가 있어서 거기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지."라는 말을 하는 것도 우리 눈에 하찮게 보이는 아주 조그만 어떤 것까지도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태어나 살고 있다는 걸 가르쳐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만이 세상 속 자기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난폭하게 영역확장을 하고 있는 탐욕스러운 동물인 것 같다.  자연 앞에서 잘난 척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데 말이다.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 사할린에 사는 아이누족에게는 '자연'이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자기 자신이 바로 자연이기 때문에 굳이 따로 분류해서 부를 필요가 없다나.  '자연을 보호하자'고 부르짖던 우리는 이미 자연을 보호해야할 대상, 타자로 바라보고 있었던 거다.  보호해야 할 것은 자연이 아니라 우리다.  자연이 병들면 예전에 드라마 다모의 명대사처럼 "아프냐?  나도 아프다."하고 함께 아파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이누족은 지혜롭다.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시리즈의 6권에서 10권까지의 책을 읽어보았는데, 시리즈 제목에 들어 있는 '춤추는'이라는 말에 걸맞게 글들이 모두 경쾌하고 긍정적인 희망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고 아이들이 즐겁게 읽고 느끼면서 생각의 폭을 넓혀가기가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