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6~10>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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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 지구에서 살고 싶어 ㅣ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9
이어령 지음, 조승연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0월
평점 :
몸살이 심각하긴 한가보다. 아니, 몸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중병 진단을 받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시한부 선고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했나 보다. 솔직히 좀 끙끙 앓다가 어느 날 툭툭 털고 일어나서는 "나, 다 나았어. 이제 끄떡없어. 이 정도 가지고 내가 쓰러질 리가 없잖아."라고 말하며 씨익 웃어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뭔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절망적이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는 거죠?" 라고 물어봐야 하는 건가..
공교롭게도 요즘 환경문제에 대한 책을 만났다. <카본 다이어리 2015>가 그랬고, 자주 가는 어린이 도서관 관장님이 저자 싸인까지 해서 선물로 주신 <내가 조금 불편하면 세상은 초록이 돼요>도 그렇고, 이 책도 병든 지구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여기저기서 경고음을 울리고 있는 중이다. 이럴 땐 "이를 어쩌지? 무슨 방법이 없나요? " 하고 무조건 매달려야 하는데..
난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당연히,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으려나 보다. 미래의 어느 날 내 마지막 숨이 막 끝나가려 할 때 아이들의 남은 삶이 걱정돼서 눈도 제대로 못 감고 죽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궁금하긴 했다. 왜 사람 손만 타면 망가지고 병들고 죽어 가는지. 아마 개발이든 과학이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손톱을 바짝 세운 채 맹목적인 경쟁과 이기심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결국 지구가 그렇게 중병에 걸린 건 내 책임도 얼마간 있는 거였다. 이럴 때 드라마에선 "모두 제 탓이에요..." 하고 병원 복도에 털썩 주저앉곤 하더라..
저자는 이 책에서 '순환'을 이야기한다. 물의 순환, 땅과 생명의 순환, 모든 생태계의 순환들을 말이다. 그 모든 것이 건강하게 순환하던 것이 근대 산업화가 시작되는 순간 어긋나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제발 살려주세요. 뭐든지 다 할게요."하고 매달려도 시원찮을 판이다. 이럴 때 의사가 하는 말이 뭔지 다 알거다. "어렵지만, 최선을 다 해 봅시다."
우리 상황이 딱 그런가 보다. 최선을 다 하고도 기적이 좀 필요한 상황. 저자가 가르쳐주는 처방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물을 아끼고, 쓰레기를 줄이고,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자제하고, 나무를 심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동식물을 보호하고, 분리수거를 잘 하고, 에너지를 절약하고, 재활용품을 애용하고.... 이미 알고 있던 내용들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왜 그래야 하는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 친절한 설명이 표어와 구호에 지나지 않았던 환경보호의 필요성을 잘 일깨워 준다.
생명을 살리는 선순환들이 어느 틈엔가 악순환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협박성 짙은 어조로 공포를 조장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야기 하고 있는 악순환들이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예를 들면 자동차 배기가스와 공장의 매연에 들어있는 질소 산화물, 황산화물이 수분과 합쳐져 질산과 황산으로 바뀌면서 산성비가 내리고 그 산성비는 강과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땅 속의 중금속이나 아무렇게나 버린 알루미늄 캔을 녹여서 농작물을 오염시키고, 오염된 농작물을 먹은 사람은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설명이 꽤 구체적이다. 가장 논의가 활발히 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지구온난화다. 편리함을 취한 대가치고 참 가혹하다 싶을 만큼 그 문제가 심각하다. 생태계의 파괴, 기상 이변, 빙하해빙(얼마 전 나사에서는 2012년 여름 쯤이면 북극의 빙하는 다 녹을 것이라고 발표했다고 한다), 해수면 상승, 해변지역 침수...우리가 참 겁도 없이 무서운 세상을 좋아라 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너무 힘겨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으면서 살아갔으면 좋겠고, 세상이 좀 더 평화로워졌으면 좋겠다. 성적이 아이의 고민거리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버스기사가 되고 싶다는 옆집 아이의 꿈을 진심으로 격려하고 도와줄 수 있을만큼 세상 사람들이 다 고만고만하게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이 사라졌으면 좋겠고, 지금보다 초록색 풍경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가끔씩이라도 금방이라도 우수수수 떨어질 듯 별들이 깨알처럼 박힌 밤하늘 아래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이 책에서 "죄송하지만 이제 가망이 없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지요."란 말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희망을 이야기한다. 많이 악화되어서 다시 건강해지기는 어렵지만 지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면 다시 좋아질 수 있을 거라는.
그러려면 모든 생명과 생명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깊은 연대감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고릴라를 보호하려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다이앤 포시나 천성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막아 생태계를 지켜보려고 단식투쟁을 하셨던 지율스님 만큼은 못되더라도, 한 숟가락 떠서 내 아이 입에 넣어주면서, 물 한 컵 따라 마시면서, 내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바라보면서 늘 누군가를 향해 미안하다, 고맙다, 말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일 게다. 그게 바로 까치밥 정신, 고수레 정신이 아닐까. 그 정신이 살아있다면 4대강 개발 따위, 애초에 나오지도 않았을 이야기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내일까지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이 환경에 대한 책을 읽고 느끼고 이해하고 마음에 새겨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와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뒷마당 글에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동물원의 한 우리 안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 우리 앞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라고 적혀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뉴욕의 어느 동물원 우리 안에는 커다란 거울이 하나 걸려 있고 그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쳐보게 하는데, 그 거울 앞에도 '이 땅의 모든 동물들을 가리지 않고 씨를 말리는 가장 무서운 짐승'이라는 표지판이 있다고. 이제 우리는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짐승' 이 아니라 '가장 겁 많고 온순한 짐승'이 되어야할 것 같다.
"축하합니다. 완쾌 되셨습니다.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