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6~10>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생각이 뛰어노는 한자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6
이어령 지음, 박재현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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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고 나면 억울해진다. 한자 속에 재미있는 이야기꺼리가 이렇게 많은데, 왜 학교 한문시간은 그렇게 따분하고 지루했는지.. 뜻과 음을 기본으로 부수며 획수며 필순 외우기를 한문공부의 전부인 줄 알았다. 대학에서 한문학을 잠깐 공부하면서 그때서야 자전 찾는 즐거움, 한문학 작품을 독해하는 재미를 조금 맛보았을 뿐이다. 말라 비틀어져 딱딱해진 오징어다리를 씹어 삼켜야 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던 한문 공부가 억울하다. 지금도 그 시절의 나와 별 다를 것 없이 딱딱한 마른 오징어 다리를 씹는 기분으로 아이들이 한문 공부에 들이고 있을 시간과 노력이 또 억울하다.
이어령 씨에게 미안하다. 나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그 분의 이름을 듣고 자랐다. 유명했고 주위 분들로부터 좋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도 있는데, 반항심이었는지 아니면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그 분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이 내가 읽은 최초의 이어령 씨의 작품인 셈이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의 글인데 신선함이 느껴진다. 그동안 이어령 씨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던 내 엇나간 똥고집이 슬며시 후회스러워진다. (난 도대체 그동안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면서 난 꿈을 꾼다. 학교에서 이 책을 한문 교과서로 쓴다면 어떨까. 이제 막 한자를 배우려는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딱 맞춤이 아닐까. 한자를 통해서 생각을 확장시키고 한자 안에 들어 있는 이 재미난 이야기들을 듣고 한자 하나를 퍼즐 맞추듯 이리저리 뜯어보고 살펴보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배우는 즐거움을 한껏 느낄 수 있을 텐데. 자유로운 교과서,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교과서에 자유를 허하라, 부르짖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궁금했다. 한바탕 재미있게 읽고 난 이 책 속에 한자는 몇 개나 나온 걸까. 한자 이야기지만 설명글 많고 시원시원하고 그림도 들어간 200쪽이 못되는 이 얇은 책 속에 대체 몇 자나 들어 있을까. 맨 뒤쪽 찾아보기에 실리 한자들을 세어보니 얼추 200자가 살짝 넘는다. 처음 한자를 배운다고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수다.

큰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한자 급수 따기 열풍이 불었었다. (지금도 그런가?) 그래야 대학 갈 때 유리하고 어휘력이 늘고 논술에 도움이 되고... 한자급수를 따야할 이유들이 줄줄이 이어지곤 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그런 말들 속에서도 꿋꿋하게 '안 따도 괜찮아!'라는 입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달달달 한자를 외워서 급수를 따는 것보다는 책을 읽어서 얻는 어휘력이 더 알찰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고, 한자 외울 시간에 책을 읽어서 얻는 지식과 정보와 문학적 감성들이 논술에도 더 도움이 될 거라는 계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조금씩 집에서 배우면 되는 거지, 뭐 하러 급수에 매달려야 한담??? 그런데 이 책에 들어있는 방법으로 한자를 배운다면... 그렇다면 옆에서 뭐라고 바람을 넣지 않아도 '한자 공부 하라'고 잔소리를 하게 될 것 같다.

그렇다고 한문공책을 아이 앞에 떡하니 펼쳐놓고 여기에 나온 한자들을 쓰고 외우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이 책에 대한 모욕이다. 이 책은 한자의 세계로 아이를 이끄는 안내서이지, 절대로 학습서가 아닌 까닭이다. 한 장의 좋은 지도와 안내서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이끌지만, 좋은 지도와 안내서를 가지고 있는데도 찬찬히 살펴보고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빨리 가라고 채찍부터 휘두른다면 목적지 자체는 의미를 잃고 걸음 하나하나가 고통스럽기만 할 테니까 말이다.  

이 책이 한자에 대해 말하면서 들려주는 인류역사의 면면들과 잠시 책읽기를 멈추고 생각에 빠지게 하는 글들은 한자 하나를 외워서 아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아이들에게 선물해 줄 것이다. 읽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이 억울하지 않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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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1-2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부지런도 하셔라~ 다 읽고 리뷰 미션 완수하시다니!!
나는 아직 한 권도 못 읽었는데요.ㅠㅠ

섬사이 2009-11-24 10:3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하시는 일이 많으시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금세 하실텐데요,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