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남편이 보름간의 유럽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면 얼큰한 것을 찾을 것 같아서 닭개장을 끓여놓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밥 한공기에 닭개장은 세대접을 먹는다. (그것도 큰 대접으로)

아이들은 아빠가 사온 선물에 열광하고, 남편은 유럽에서의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여 웃음소리 넘치는 시간을 보냈다. 

돌아온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도 시차타령을 한다. 

새벽 3시쯤에 꼭 깨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나..

늙었나보다.  시차적응에도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걸 보니..

남편과 나는 15살에 만났다. 

그 때부터 이성교제를 한 건 아니고,  그냥 성당에 같이 다니는 친구였다.

그런데 이제 25년의 세월이 흘러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을 때가 있다.

겨울에도 차가운 청바지를 입고 다니던 15살 남자 아이가

이제 마흔이 되어 바람이 차가운 겨울날엔 내복바지를 찾는 걸 보면서,

배낭 하나 짊어지고 유럽으로  떠나 40여일 동안 노숙하고 흑빵을 먹어가며  여행하던 20대의 청년이

이제 가이드까지 데리고 다니며 호텔에서 묵고 좋은 음식 먹고 다녔으면서도

돌아와 낑낑대는 모습을 보면서,

카메라 들고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하던 풋풋했던 대학생이

이제 직원들 설날 선물 챙겨야 한다며 뭘 줄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과 함께 했던 25년이라는 시간들에 감사하게 된다. 

나의 열다섯살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남자와

앞으로의 시간들도 같이 나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안도한다.

나 또한 남편의 50, 60, 70, 80대의 나이에도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남편의 얼굴에서

언제까지나 열다섯살 소년의 얼굴을 보게 될 거란 사실이 행복하다.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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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07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서로 오래도록 공유하는 추억거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할 시간들이 적지 않다고 여기며 사는 것이 행복이겠지요. 님과 옆지기님의
풋풋한 분위기가 새록새록 느껴져요. 정말 적지 않은 세월이네요. 25년~
날마다 행복하시길...

섬사이 2007-02-08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더 아름다운 시간들로 채워나가야 할텐데 말이죠. 님도 행복하세요.

치유 2007-02-08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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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이들어 가는 걸 바라보시며 더 많이 미소짓게 되시길..

참 아름답다란 생각을 문득 하며..


섬사이 2007-02-1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앞으로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긴 시간을 함께 했지만 별로 아름답게 살진 못하고 있죠.. ^^
 
개념어 사전
남경태 지음 / 들녘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보면 정확한 개념을 알 수 없는 말들에 당황할 때가 있다. 

누가 그랬더라?  하나의 낱말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행복'에 대해서 열명의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모두 서로 다른 '행복'을 이야기 하게 된다고 말이다.

그래서 열명의 사람이 각각 '행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정의하는 과정을 밟지 않으면 안된다고.

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느낌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말들이 있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긴 하지만 그 정확한 개념이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말이 주는 느낌만으로 그 의미를 감당하기 어려운 말들 말이다.

나의 이 가벼운 지식의 양을 채워줄 수 있는 책이라 반가웠다.  사전이라고 하지만 국어사전식의 간단하고 메마른(?) 정의를 담고 있진 않다.   낱말에 엮인 역사도 담고 있고, 예를 든 설명과 저자의 의견도 곁들여져 있어 빠져들어 읽을만한 깊이가 있다.  곁에 두고 틈틈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제 청소년기에 접어든 큰딸을 염두에 두고 샀지만 (지금 당장 필요로 하지 않을지라도 언젠간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오히려 남편과 내가 즐겨 읽고 있다. 

이 책에 담긴 말들 말고도 알아야할 개념들이 많을 것 같은데, 혹시 2권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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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학교가라고 깨웠더니 방에서 나오며 하는 말이

"아~~ 개학은 왜 있는 거야~?" 하며 투정이다.

"개학이 왜 있냐구? 방학이 있으니까 개학이 있는 거야. 개학있는 게 싫으면 방학이 없으면 돼." 했더니

금새 입을 삐죽거린다.

이 못된 엄마는 아들 개학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구만.. ^^

아침마다 애들이랑 남편이 시간차로 나가는 바람에 정신없고 바쁘기만 했지 집안일은 제대로 되지도 않았었다.

이제 뽀가 개학을 했으니 지니랑 같이 일어나서 같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애들 밥 먹는 동안에 비닐과 페트병, 유리병, 플라스틱 류의 재활용품을 내다 놓고 들어왔다.

그리고 남은 종이 재활용품은 애들더러 나갈 때 들고 나가라고 했다.  (밥값은 해야지~!!^^)

빨아놓은 실내화를 실내화 주머니에 담아넣으며 현관에 서서 또 투덜거린다.

"그냥 1년 내내 방학이었으면 좋겠다."  (어쭈구? 점점~~)

애들은 놀고 싶고 자유롭고 싶어한다.

생각해보니 지난 9월부터 다니기 시작한 학원을 다니느라 방학동안에 제대로 놀아보질 못했던 것 같다.

방학 때면 휴양림에 놀러가기도 하고 친척집에 가서 놀고 오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금방 봄방학을 하겠지..

봄방학이라며 헤헤 거리며 들어올 아들 얼굴이 보고 싶어진다.

개학 첫 날,  아들이랑 엄마 둘이 아직도 방학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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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01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 개학이군요. 우리는 다음주에 해요.
얼마 안 있으면 설이고 또 봄방학이고,, 이래저래 2월은 분주하기도 하고
집중 안 되는 달이기도 하네요^^ 어디 여행이라도 훌쩍 가고 싶지만, 그것도
이래저래 여의치 않고 흑흑... 섬사이님, 봄방학 때 헤헤거려보자구요^^
오늘 하루 잘 지내세요~~~

섬사이 2007-02-08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왜 배혜경님의 댓글을 놓쳤을까요? 제가 좀 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살고 있긴 한가봐요. ^^ 예, 집중하기도 어렵고, 어수선하고 그러네요. 중학생 딸은 내일 종업식을 한다는데, 오히려 초등학생 아들녀석이 봄방학이 더 늦어요. 제 서재를 따뜻하게 데워주시는 배혜경님, 2월 한 달 잘 넘기면 봄이 오고 따뜻한 바람이 불겠지요. 얼마 남지 않은 겨울, 행복하게 보내세요.
 

1월 2일 /  큰애 지니의 5주간의 영어캠프 시작.  광진구 신양중까지의 거리가 만만치 않았지만 다행히 재밌어 하며 잘 다녔다.  저렴한 비용으로 친한 친구들과 함께 다니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1월 7일 /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부부동반 가족모임을 우리집에서 가졌었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함께 모인 자리였다.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앉아 술과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고 우리 친구들은 친구들대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애들이야기 남편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오랜 친구가 있다는 건 나이들수록 큰 의지가 되는 것 같다.  3월즈음에 다시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1월 15일 / 서평단에 뽑혀 "맘대로 아빠 맘대로 아들" 책이 도착했다.  기대했던 것 보다 재미있을 것 같다.  방학 때라 정신은 없지만 열심히 읽어주마고 마음먹고.. 19일에 서평쓰기에 성공~

1월 19일 / 서평단에 뽑힌 "이것이 인간인가"책 도착.  좀 무거운 내용의 책. 그래도 강제로라도 읽을 책이 생긴다는 건 행복이다. 25일이었던가? 서평쓰기에 성공했다.

1월 20일 / 비니의 두돌 생일날.  남편은 유럽출장 중이라 없었지만 생일케이크 하나 사다놓고 촛불 밝히고0 '생일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것도 세번이나..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면 한번 더하기로 했다. 

1월 24일 / 뽀가 놀이터에 나가 놀다가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들어왔다.  어떤 아이 머리에 부딪쳤다나? 부은 눈을 얼음찜질해주고 계란으로 맛사지도 해주었는데도 쉽게 가라앉지가 않았다.  꼭 얻어맞은 권투선수 같다.  얼마전에 미용실에서 컷트한 우리 아들 머리스타일도 맘에 들지 않는데, 눈까지 저러니까 정말 내 아들이지만 못난이 인형이 따로 없다.  이궁...

1월 27일 / 우리 큰딸 지니를 위한 파자마파티.  방학 때면 늘 예전에 살던 동네 친구를 부르던가 사촌을 부르던가 해서 며칠 같이 자면서 노는 행사를 치르던 우리집.  남편의 출장으로 멀리 사는 친구와 사촌을 데려올 수 없어서 친한 학교친구들을 부르기로 했다.  4명의 친구들을 불렀는데, 여자 애들 다섯이 뭉치니까 엄청난 파워가 생겨났다.  우리 집 떠내려가는 줄 알았다.  그래도 떠들썩하게 노는 모습들이 귀엽다.  언젠가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집에서 파자마파티하며 놀던 시간들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본다.  우리딸까지 포함해서 다섯아이의 개성이 다 다르다.  한 녀석은 전교 3등에 빛나는 똑똒한 녀석인데, 수학과 과학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  또 다른 녀석은 영어실력이 거의 원어민 수준이다. 또 한 녀석은 체육과 애교실력이 보통이 아니며, 또 한 녀석은 음악 쪽에 재능이 있어서 악기 다루는 솜씨도 좋은데다가 미용 쪽에도 관심과 재능을 보인다.  그래서 농담으로 우리딸 친구들에게 너희는 뭉치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독수리 오형제같은 친구들이라고 말해주곤 한다.  1월 28일, 1박 2일의 파자마 파티는 무사히 끝났고 난 지쳐 쓰러져 버렸다.

1월 29일 / 시댁 작은 할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남편이 없어 비니를 데리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만 뵙던 분이었지만 늘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던 분이라 영정사진 속의 모습을 뵈니 마음이 짠해왔다.  남편에게는 알리지 않을 생각이다.  유럽출장 업무를 마치고 체코 프라하에서 조금 놀다 오겠다고 했는데, 어쩐지 그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돌아오면 장례가 모두 끝나있겠지만 늘 바쁘게 지내다가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고 단 며칠간의 여행을 즐기려는 사람을 마음 무겁게 하고 싶진 않다.  알아도 금방 올수도 없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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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임이네 2007-01-30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니도 1월이 생일이군요 ..1월생 여기도 있네요 님 늦은 인사지만 비니야 생일축하하고 건강하게 잘아다오 ..
큰애 파자마파티 전 해보지 않았지만 쨈 나겠는걸요 ..좋은시간 보내고 아이들위해
님께서 애쓰셨내요 몸살은 안 나셨는지요 ..
남편분 배려하시는 님의 사랑이 여기까지 전해 옵니다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도 행복하게 즐거운 시간 되세요 .

섬사이 2007-01-30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임이네님, 고마워요. 파자마 파티는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요. 공식적으로 허가 받은 일탈인 셈이니까요. 어찌나 시끄럽게 떠들어대던지 이웃집에서 항의가 들어올까봐 조마조마했답니다. 애들이 새벽 네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더군요. ^^

치유 2007-02-01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맘 쓰심이 어쩜 이렇게 이뻐요??..
옆에 있다면 엉덩이 토닥여 줄것 같아요..헤헤~~~~~
정말 애쓰셨네요..

치유 2007-02-01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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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2-01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알라딘 마을에 도배를 하고
시간보니 새벽기도 가야할 시간도 놓치고 이러고 있답니다..

섬사이 2007-02-01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말씀만으로도 제 엉덩이에 닿는 님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 (제가 너무 민감한가요?^^) 겨울에 새벽기도를 다니세요? 알라딘엔 다들 부지런한 분들만 모여계시나봐요. 전 좀 게으른 성격에 올빼미 체질이라 새벽기도는 생각도 못하는데..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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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쉰들러 리스트> 등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유대인들이 느껴야 했던 극히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고통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비껴서서 그들의 고통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주인공들에게 연민을 품으며 이미 흘러가버린 가슴아픈 역사의 한 순간에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약자의 편에 선 정의롭고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홀로코스트 유대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무척 실제적이고 내면적이며 객관적이고 본질적이다. '증언작가'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 글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비참한 생활의 다른 면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작가 자신도 "나는 이성과 토론이 진보를 위한 최선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의를 증오 앞에 놓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쓸 때 의도적으로, 희생자의 한탄섞인 어조나 복수심을 품은 사람의 날선 언어가 아닌, 침착하고 절제된 증언의 언어들을 사용하고자 했다.  나는 내 언어가 객과적일수록,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을수록 신뢰를 주고 유용하게 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 때에만 정당한 증언이 제 기능을 할 것이며 바로 그 때 심판의 장이 마련될 것이다. 심판관은 바로 여러분이다."라고 말했다. 

이야기 하고 싶었고, 우리가 들어주길 원했고, 그래서 다시는 누군가를 대상으로 이런 광기어린 폭력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했던 작가는 자신의 10개월에 걸친 수용소의 지옥같은 체험을 놀랍도록 차분하게 분석하고 정리하고 증언한다.  나는 작가의 증언들을 읽어내려가면서 나 자신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존엄성이라든가 이성, 인간미 등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고  광기어린 잔인성에 휩쓸릴 수도 있는, 그리하여 약자의 편에 선 정의롭고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 포악하고 야멸차고 무자비한 악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는 인간 중의 하나라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했다. 작가도 그걸 원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광기어린 잔인성에 어느 누구라도 휘말리지 않도록 경계하고 조심하기를 바라고 또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나치 치하의 유대인들의 게토와 지금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겹쳐지는 것을 어쩌랴.  그들의 홀로코스트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팔레스타인 대학살이 중첩되고 독일의 나치즘과 이스라엘의 광적인 시오니즘의 교집합적인 부분을 느끼는 건 어떻게 하랴.  20세기가 넘도록 짊어져야 했던  디아스포라의 서러움과 반유대주의와 파시즘에 희생되어야 했던 유대인들의 아픔이 도달한 곳이 겨우 중동지역의 전쟁과 또다른 희생자들의 양산이라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비참한 약자였던 유대민족이 미국과 서방세력을 등에 업은 강자로 등장하여 무력의 칼을 휘두르는 모습에 당황하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니리라.

그래서 작가의 트라우마는 결코 치유될 수 없었던 것일까.. 돌연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가 생전에 감당해야 했을  번뇌와 고통의 무게가 안타깝다. 

유대인의 홀로코스트라는 비정한 역사적 사건은 이제 그 감정적인 호소력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우슈비츠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결코 작지 않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유대인을 보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라도 다시 불어올 수 있는 광기어린 바람과 그 바람 속에서 모든 것을 잃고 맨몸으로 서있는 힘없는 인간을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 바람을 만들수도, 그 바람에 희생자가 될 수도 있음을 느끼고 몸서리치게 된다.  이것이 이 책이 가진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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