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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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쉰들러 리스트> 등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유대인들이 느껴야 했던 극히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고통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비껴서서 그들의 고통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주인공들에게 연민을 품으며 이미 흘러가버린 가슴아픈 역사의 한 순간에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약자의 편에 선 정의롭고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홀로코스트 유대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무척 실제적이고 내면적이며 객관적이고 본질적이다. '증언작가'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 글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비참한 생활의 다른 면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작가 자신도 "나는 이성과 토론이 진보를 위한 최선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의를 증오 앞에 놓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쓸 때 의도적으로, 희생자의 한탄섞인 어조나 복수심을 품은 사람의 날선 언어가 아닌, 침착하고 절제된 증언의 언어들을 사용하고자 했다.  나는 내 언어가 객과적일수록,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을수록 신뢰를 주고 유용하게 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 때에만 정당한 증언이 제 기능을 할 것이며 바로 그 때 심판의 장이 마련될 것이다. 심판관은 바로 여러분이다."라고 말했다. 

이야기 하고 싶었고, 우리가 들어주길 원했고, 그래서 다시는 누군가를 대상으로 이런 광기어린 폭력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했던 작가는 자신의 10개월에 걸친 수용소의 지옥같은 체험을 놀랍도록 차분하게 분석하고 정리하고 증언한다.  나는 작가의 증언들을 읽어내려가면서 나 자신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존엄성이라든가 이성, 인간미 등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고  광기어린 잔인성에 휩쓸릴 수도 있는, 그리하여 약자의 편에 선 정의롭고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 포악하고 야멸차고 무자비한 악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는 인간 중의 하나라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했다. 작가도 그걸 원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광기어린 잔인성에 어느 누구라도 휘말리지 않도록 경계하고 조심하기를 바라고 또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나치 치하의 유대인들의 게토와 지금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겹쳐지는 것을 어쩌랴.  그들의 홀로코스트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팔레스타인 대학살이 중첩되고 독일의 나치즘과 이스라엘의 광적인 시오니즘의 교집합적인 부분을 느끼는 건 어떻게 하랴.  20세기가 넘도록 짊어져야 했던  디아스포라의 서러움과 반유대주의와 파시즘에 희생되어야 했던 유대인들의 아픔이 도달한 곳이 겨우 중동지역의 전쟁과 또다른 희생자들의 양산이라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비참한 약자였던 유대민족이 미국과 서방세력을 등에 업은 강자로 등장하여 무력의 칼을 휘두르는 모습에 당황하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니리라.

그래서 작가의 트라우마는 결코 치유될 수 없었던 것일까.. 돌연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가 생전에 감당해야 했을  번뇌와 고통의 무게가 안타깝다. 

유대인의 홀로코스트라는 비정한 역사적 사건은 이제 그 감정적인 호소력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우슈비츠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결코 작지 않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유대인을 보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라도 다시 불어올 수 있는 광기어린 바람과 그 바람 속에서 모든 것을 잃고 맨몸으로 서있는 힘없는 인간을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 바람을 만들수도, 그 바람에 희생자가 될 수도 있음을 느끼고 몸서리치게 된다.  이것이 이 책이 가진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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