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5시 50분 ; 안방 알람이 울리며 불이 켜졌다.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난다. 뭉기적거려봤자 더 힘들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지니가 6시에 깨워달랬다. 욕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정신수습.. 곤히 잠들어 있는 딸아이 잠을 깨우려니 잠시 망설여졌다. 조금 더 자라고 할까? 

오전 6시 ; 마음 독하게 먹고 깨운다. 오늘 학원에서 단어.숙어 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학원에서 6교시를 하고 11시 반이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삶은 고구마로 늦은 야식을 먹고 오늘 시험 볼 단어와 숙어를 정리하고 잠든 딸이다. 지니와 같이 앉아서 영어단어.숙어 암기를 도와주다가 나도 늦게 잠이 들었다. 딸아이가 힘들게 몸을 일으킨다. 더 자겠단 투정 한 번 안부리고 일어나서 욕실로 들어가 세수하고 나오는 딸이 안쓰럽다.

오전 6시 30분 ; 딸아이가 시험 볼 단어,숙어를 옆에서 불러주며 도와주다가 아침밥을 앉히고 다시 딸아이 공부를 도왔다.

오전 7시 ; 비니가 깼다. 업고 나와서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오전 7시 20분 ; 지니의 아침식사. 어제 하루종일 고아놓은 사골국과 데쳐놓은 브로컬리, 오징어볶음, 메추리알, 오이지무침, 콩장... 맨날 그게 그거인 밥상이 미안해진다.

오전 7시 30분 ; 남편과 뽀를 깨운다. 시간차를 두고 깨우는 건 욕실사용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다. 이상하게도 안방욕실은 쓰려고 하질 않는다.

오전 8시 ; 지니 등교. "잘 다녀와. 사랑해~"란 말로 아이를 격려해본다. 지니가 또 버텨내야 하는 오늘 하루의 무게에 턱없이 모자라는 격려의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마땅히 다른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래도 지니는 "사랑한다"는 내말에 살며시 웃음지어준다. 그 웃음에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는다. 이제 나도 비니와 함께 식사..

오전 8시 15분 ; 뽀의 등교. 수저와 물통을 챙겨넣는 걸 깜박하고 나가서 베란다 창문을 열고 다시 불러들였다. 엄마의 흘긴 눈을 보고는 "미안,미안"하며 너스레를 떤다. 아들의 저른 너스레가 밉지 않다. 오히려 주눅들고 같이 신경질을 내면 그게 더 속상하지.. 곧이어 남편의 출근. 자기한테 관심이 없다며 괜한 투정이다. 아이들도 안하는 투정을. ㅉㅉㅉ

오전 9시 ; 반찬 정리하고 설거지하는데 비니과 와서 매달린다. 같이 놀자고. 조금만 기다려해도 막무가내다. 겨우겨우 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내 손을 잡고 거실로 간다. 스티커 붙이기를 같이 하잔다. 앉아서 비니와 함께 스티커 붙이기에 열중~~~ 어제 잠자기 전에 거둬놓은 빨래가 1인용 소파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니가 쉽게 놔줄 것 같지가 않다.

오전 9시 40분 ; 자꾸 졸려온다. 내가 이렇게 졸리니 우리 큰딸은 학교에서 얼마나 졸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7교시 수업이 있는 날이라 오자마자 곧장 학원으로 가야하는데.. 비니가 비디오테잎을 틀어달라고 한다. 비니가 20분짜리 비디오를 보는 동안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존다. 비니가 비디오테잎에 나오는 대로 같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자고 해서 다시 일어난다.

오전 10시 10분 ; 비니 간식. 빵을 달라고 해서 뿌요 요구르트랑 빵을 줬다.

오전 10시 30분 ; 밖에 나가 놀기는 아직 이른 것 같고,,,수채화 물감을 계란판을 네칸으로 오려서 빨강, 노랑, 파랑, 초록색을 짜놓고 식탁에 신문지를 깔았다. 수케치북을 펼쳐놓고 비니 손바닥에 물감을 칠해주고는 스케치북에 찍게 했다. 붓을 하나 줬더니 난리도 아니다. 옛날에 지니랑 뽀도 저렇게 놀았었는데.. 비니가 참 많이 컸다.

오전 11시 ; 물감 놀이를 더 하겠다는 비니를 가까스로 설득해서 물감투성이인 비니를 씻기는 데 성공. 아수라장이 된 식탁을 정리하고 나니 밖에 나가잔다.

오후 12시 ; 놀이터에 나가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도 타고..아직 바람이 쌀쌀하긴 하지만 밖에 나오니 기분이 한결 밝아진다.

오후1시 20분 ; 비니는 지치지도 않나보다. 분명히 잠을 자야 할 시간이건만.. 풍선이 있어야 한다는 비니의 주장에 따라 슈퍼에 가서 풍선을 사고, 우유도 사고, 비니 먹을 과자도 사서 겨우겨우 집에 들어왔다. 씻겨서 점심을 챙겨 먹였다. 먹는 것 좀 그만하고 살고 싶어진다.

오후 2시 ; 설거지 하고 돌아보니 비니가 거실에 쓰러져 잠들었다. 그럼 그렇지. 안 방에 데려다 눕히고 지니 학원에 싸보낼 도시락 반찬을 준비하고 쌀을 새로 씻어놓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식으로 줄 떡볶이 준비도 미리 해놓고..

오후 2시 45분 ; 뽀가 오기 전에 잠시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이렇게 알라딘에 들어와 오늘 하루를 남겨본다.

오후 3시 5분 : 뽀가 왔다. 엄마가 컴 앞에 앉아 있는 걸 보더니 자기도 컴을 하고 싶단다. 안된다고 하고 방에 들어가 구몬이나 해 놓라고 엄포. 난 나쁜 엄마다. ㅎㅎ 이제 꺼야겠다. 떡볶이도 마저 해놓아야 하고, 밥도 해서 울딸 도시락 싸줘야 한다. 나머지는 다음 이시간에..

오후 3시 25분 ; 울아들 지금 방에서 나왔다. 빨리 비켜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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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3-13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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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붙여 놓고 읽겠습니다..으하하하~~~~~~~~@@


치유 2007-03-13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학원에서 볼 단어 숙어까지도 다 챙기시는군요..대단하십니다..울 소라는학교에서 단어 숙어 맨날 쪽지 시험이다고 그거 불러주고 맞았나 확인하는것도 전 너무 너무 벅차더이다..엊간히 많아 야 말이죠...ㅜ,ㅜ..물감놀이신나게 하고 ㅋㅋ놀이터에서 놀고 ..지칠만 하겠어요..귀엽습니다..아.도시락 가지고 학원가나 보네요..에구...참말로..뭔 세상이 이런지..님의 바쁜 일상도 모두 아이들 위주군요..저도 제 시간 갖고 싶다고 하면서도 맨날 ..ㅋㅋ뽀 컴못하게 하는 섬사이님 나쁜 엄마..아니 착한엄마..ㅋㅋㅋ나도 떡복이 먹고 싶어요.아이들 간식이래도...한입 뺏어먹고 싶네요..

섬사이 2007-03-1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니가 종합학원으로 옮기고 나서 무척 힘들어 했었거든요. 한번에 단어숙어를 100개도 넘게 외우라고 하니 애가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어요. 워낙 자유롭게 공부하고 자유롭게 놀고 했던 애라 단어숙어를 강제로 외워야 한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더군요. 그래서 도와준 거예요. 엄마가 옆에서 같이 해주면 혼자 할 때보다 덜 힘들어하더라구요. 그래도 이번 주는 좀 수월하게 학원에 가주네요. 지난 주엔 온가족이 큰딸 눈치보느라 진땀 좀 뺐죠. ^^ 4시 45분에 학원에 가서 10시 30분 정도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니 도시락을 안싸줄 수가 없어요. 배꽃님한테 떡볶이 한입이 아니라 두입 세입도 드릴 수 있는데,,^^ 아직은 아이들 위주로 하루가 움직이네요. 가끔은 이러다 우울증 걸리는 거 아냐 싶게 축 처지다가도 아이들 때문에 벌떡 일어나 정신차리게 돼요. 언젠가는 제 시간을 보낼 수 있겠죠? 그런데 내 시간 보내기에 익숙하지 않을 듯.. ^^;;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수지 모건스턴.알리야 모건스턴 지음, 최윤정 옮김 / 웅진주니어 / 199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나오는 자녀교육서들을 보면 숨이 막힌다.  자녀들의 최고의 매니저가 되라고 하기도 하고,  완벽한(?) 자녀들로 만들기 위한 방법들을 읽다보면 내 자신이 어찌나 한심스러워 보이던지.. 책에 나오는 대로 했다간 우리 아이들이 날 얼마나 도끼눈을 하고 쳐다볼까 싶어서 책과 함께 내 마음도 그냥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에게 늘 말한다.  공부 때문에 엄마와 너희들 사이가 나빠져선 안된다고.  공부보다 더 중요한건 부모와 자식사이에 오고가야할 사랑을 잘 지키는 일이라고..

하지만 간혹, 아니 자주  아이들과 대립되는 때가 있다.  하는 짓 하나하나가 맘에 안들고, 열번도 넘게 한 잔소리를 또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스스로를 혐오스러워할 때도 많다.  도대체 우리집만 이런건지, 아니면 다른 집 엄마와 애들도 다 이렇게 지지고 볶고 사는건지 궁굼할 때도 많았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모녀가  나랑 우리집 아이들이랑 참 너무나 닮아 있다.  읽으면서 고개도 끄덕거리고 낄낄 웃기도 하고, 옆에 있는 딸래미 얼굴도 한번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면서 읽었다. 

나를 이 책에 빨려들어가 읽게 만든 한국어판 작가 서문에 써있던 글.

" 엄마들은 엄마라는 이름의 일을 지치지도 않고 계속하고 있다.  말하자면, 들볶고 조바심치고 불안해하고 기를 꺾어놓고 기운을 돋우어주고 잔소리하고 상처입히고 부려먹고 가슴뿌듯해하고 실망하고 기대하고,  한마디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엄마와 딸이라는 한 쌍을 이루는 각각의 짝들은 그럭저럭 살아남는다.......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엄마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사랑이란 건 그렇게 효과적이지가 못하다.  늘 그런 식이다.  엄마들도 딸들도,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

어쨌든 우리 딸과 나는 서로 사랑하고 있는 거다.  가끔씩 또는 자주 아니면 매일 매일 서로를 맘에 안들어하면서도 각자 나름대로 서로를 참아주고 견뎌주고 봐줘가며 서로를 끔찍하게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 책이다.  다들, 그렇게 저렇게 살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준 책,   엄마 노릇에 조금은 뻔뻔해지고 용감해질 수 있도록 나를 위로해 준 책이다.  

엄마와 딸이 같은 일을 두고 서로의 입장에서 쓴 글을 읽다보면 엄마가 쓴 글에만 공감이 가는 건 아니었다.  나도 또한 사춘기 십대의 시절을 살아봤기에 딸의 글에서도 공감할 부분을 찾아 내게 된다.  엄마들은 딸아이의 마음을 살펴보는 마음으로 또 딸들은 엄마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마음으로 읽어보면 서로의 마음이 맞닿는 따뜻한 사랑의 영토를 찾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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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행이다
    from 2007-12-17 13:50 
    나도 우리집만 그런줄 알았는데... 안 그런집 있으면 댓글 달아요.
 
 
프레이야 2007-03-05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달전 이책을 중2딸에게 권했어요. 읽더군요. 그리곤 무슨 일로 잠시 저랑 언쟁이
있었는데, 제가 딸의 요구사항을 안 들어주고 따지니까, 엄마는 이 책 안 읽어봤냐고
그러더군요.^^ 사실 전 안 읽어보고 권했거든요. 읽어봐야겠어요.^^

섬사이 2007-03-07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읽어보세요.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난공불락의 그들만의 세상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더라구요. 아이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내가 아이를 많이 봐주고 참아준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도 나를 참 많이 참아주고 봐주고 있겠구나 싶고.. ㅎㅎㅎ
 

어제까지만 해도 여름날 장마비처럼 비가 거하게도 내리더니

오늘 눈발이 날린다.

커다란 베란다 창너머에 이제 막 노란 산수유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사이로 하얗고 여린 눈발이 놀자는 듯 희롱한다.

화단 흙을 헤치고 뾰족 돋아난 히야신스의 새싹이 얼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저 뻗은 길 옆 담벼락에 나란히 서있는 매화나무 열그루.

곧 뻥하고 터질 듯한 뻥튀기처럼, 하얀 팦콘알들처럼,

꽃봉오리들이 잔뜩 부풀어 올랐는데

바람에 눈발에 다 떨어져버리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지난 해 봄, 저녁에 설거지를 끝내고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 온다는 핑계로

뿌연 보라빛 어둠 속으로 걸어나가면

봄날, 활짝 핀 매화나무 열그루 아래를 지날 때

은은하게 풍겨오는 꽃향기란.. 

이래서 꽃향기에 취한다는 말이 나오는 거구나 하며 얼마나 황홀했던지.

화려한 벚꽃과는 다르게 정결하고 다소곳하고 수줍어 숨은 듯한 매화는

옛 선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을만한 매력이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매화나무 아래에서

늑장을 부리며 일부러 걸음을 늦추곤 했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내가 얼른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과 남편을 지우고

매화나무 아래서 그윽한 시간을 갖는다고 큰 잘못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멈춰서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했었다.

흩어져 떨어지는 가녀린 눈발에라도 행여 매화꽃봉오리가 다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건 지난해 봄에 누렸던 그 짧은 정취가 그립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길가 돌틈에 피어 있는 민들레를 만날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다.

그 강하고 끈질긴 생명력 앞에 설 때마다 얼마나 숙연해지고 감격하게 되는지,

그 작고 동그란 노란 꽃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예뻐보이는지..

대학 시절에도 캠퍼스 안에서 민들레를 만나면 그 앞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있곤 했다.

그런데 봄이 오는 길목에서 흩날리고 있는 저 눈들을 어떻게 하면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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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3-07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칩니다..아우..날아갈뻔(?)ㅋㅋ했답니다..귀가 얼마나 시린지..아/..집이 젤입니다..
그래도 또 봄꽃은 피어날거고 황홀함에 미소짓게 할 겁니다..우리 조금만 기다려 보지요..이 시샘도 곧 물러갈터이니..^^&

섬사이 2007-03-07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전 아들녀석 새학기 준비물을 사러 나갔다 왔는데요, 우와~~정말 바람이 장난이 아니네요. 눈도 내리고.. 하지만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죠?
 

큰아이 학원을 종합학원으로 바꿨다. 

2월 28일에 학원등록을 하고 왔다. 

그날은 날씨가 무척 좋았다.

큰아이가 자기가 집에서 비니를 볼테니 엄마 혼자 다녀오라고 해서 작은 손가방 하나 들고

집을 나섰다.

가벼움, 혼자만의 외출.

하늘은 파랗고 구름 한 조각 보이지 않았었다.

햇볕도 바람도 투명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아,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바로 이렇게 숨쉬고 살았었는데...

내 호흡 하나하나가 다르게 느껴졌다.

내 기분과는 어울리지 않게 터덜거리며 힘겹게 달려오는 듯한 마을 버스를 흔쾌히 올라탔다.

기왕이면 날렵하고 세련된 몸체를 가진 오픈카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 달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큰아이가 다니는 학교 앞에서 마을 버스가 멈췄다.

작년에 운동장에 새로 깔은 인조잔디의 초록빛이 햇살 아래서 반짝이고 있었다.

겨울 풍경 속에서 그 초록빛은 부자연스러운 빛깔이었다. 

조금.. 현실로 돌아온다. 

그래, 난 큰아이 학원을 등록하러 가는 길이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셨다.

일부러 햇볕이 들어오는 쪽의 좌석에 앉은 탓이다.

학원에 도착..

아까의 그 가벼움은 어디로 갔는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현실은 늘 무겁다.

등록을 마치고 학원에서 나오니 핸드폰이 울렸다.  큰아이다.

비니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다가 들어왔단다.

전화를 끊고 큰아이가 다닐 학원을 다시 올려다 보았다.

칙칙한 회색건물.

열명남짓의 청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질주, 폭발, 자유, 만용, 일탈....여러가지 단어가 지나갔다.

우리딸은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 단어들이 던지는 유혹들을 10대의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딸이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혼자만의 외출을 바람처럼 가볍게 느끼고 잠시 즐거움을 느꼈던 내가

딸을 밤늦게 잡아둘 회색건물 앞에 서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오늘이다.  3월 3일. 우리 큰딸 생일 다음날. 토요일.

우리 큰아이가 종합학원으로 공부하러 가는 첫날이다.

적어도 엄마인 나는 아이를 옥죄고 다그치고 꽁꽁 묶어놓는 족쇄같은 사람이 되진 말아야지.

그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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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3 0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07-03-03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배꽃님.. 애들이 안쓰러워 보일 때마다 배꽃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을 터이니 이웃으로 산다면 저야 행운을 거머쥔 사람이 되겠지요. 제가 좀 감성이 메마른 사람이라 배꽃님처럼 따뜻한 사람 옆에서 곁불을 쬘 필요가 있거든요.

치유 2007-03-13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니하고만 즐거운 시간 보내시는지요??
 
세상에서 젤 꼬질꼬질한 과학책 - 바퀴벌레에서 코딱지까지 숨은 과학 찾기
임숙영 지음, 김이랑 그림 / 웅진씽크하우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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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내용의 책이라는 거 알고 주문했다.   아이들의 심리를 잘 이용한 책이구나 싶었다.  똥이라든가 방귀라든가.. 그런 소리를 들으면 "우웩~"거리며 다소 과장된 몸짓과 언어로 거부감을 표현하면서도 재밌어서 낄낄거리는 게 아이들이니까.

막상 책을 받아 펼쳐보고는 아이들도 그렇지만 나도 "으악~"하고 말았다.  그림 그리신  김이랑님, 정말 리얼하게 잘 그리셨다.  그림만 보고도 난 읽기가 두려워지건만 아이들은 냉큼 집어들고 자기방 침대 속으로 들어가 눕는다.  중학생 딸래미는 책을 읽고 있자니 몸이 가려워진다며 몸 여기저기를 벅벅 긁어대가며 읽고, 초등학생 아들래미는 책읽는 중간중간 "으악~". "아, 정말 드러워~".를 연발해가면서도 눈을 못떼고 있다.

나? 나는 아이들이 읽고 전달해주는 이야기를 미리 듣고 각오를 단단히 한 뒤에 틈틈이 화장실에서 읽었다. ^^ 식탁위에서나 거실에서나 아니면 잠자리에서 읽고 나면 그 자리를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과학소년>이라는 잡지에 연재되었던 글을 모아 책으로 만든 거라는데 <과학소년>이라는 잡지까지 궁금해지게 만든다. 아들이 구독해서 읽고 있는 <어린이 과학동아>를 끊고 <과학소년>으로 바꿔볼까 하는 유혹에 잠시 흔들렸다.

진지하고 깊은 내용을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너무 당연한 얘긴가?)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책은 재미삼아 읽을만한 초급 과학상식 수준의 책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책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지한 내용의 책들 사이 사이에 가끔 한 번씩 이런 책을 끼워주는 것도 바쁘고 무미건조하게 살고 있는 도시의 우리 아이들의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억눌러 두었던 욕구를 해소해 버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고 함께 낄낄거리기엔 더없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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