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학원을 종합학원으로 바꿨다.
2월 28일에 학원등록을 하고 왔다.
그날은 날씨가 무척 좋았다.
큰아이가 자기가 집에서 비니를 볼테니 엄마 혼자 다녀오라고 해서 작은 손가방 하나 들고
집을 나섰다.
가벼움, 혼자만의 외출.
하늘은 파랗고 구름 한 조각 보이지 않았었다.
햇볕도 바람도 투명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아,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바로 이렇게 숨쉬고 살았었는데...
내 호흡 하나하나가 다르게 느껴졌다.
내 기분과는 어울리지 않게 터덜거리며 힘겹게 달려오는 듯한 마을 버스를 흔쾌히 올라탔다.
기왕이면 날렵하고 세련된 몸체를 가진 오픈카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 달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큰아이가 다니는 학교 앞에서 마을 버스가 멈췄다.
작년에 운동장에 새로 깔은 인조잔디의 초록빛이 햇살 아래서 반짝이고 있었다.
겨울 풍경 속에서 그 초록빛은 부자연스러운 빛깔이었다.
조금.. 현실로 돌아온다.
그래, 난 큰아이 학원을 등록하러 가는 길이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셨다.
일부러 햇볕이 들어오는 쪽의 좌석에 앉은 탓이다.
학원에 도착..
아까의 그 가벼움은 어디로 갔는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현실은 늘 무겁다.
등록을 마치고 학원에서 나오니 핸드폰이 울렸다. 큰아이다.
비니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다가 들어왔단다.
전화를 끊고 큰아이가 다닐 학원을 다시 올려다 보았다.
칙칙한 회색건물.
열명남짓의 청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질주, 폭발, 자유, 만용, 일탈....여러가지 단어가 지나갔다.
우리딸은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 단어들이 던지는 유혹들을 10대의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딸이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혼자만의 외출을 바람처럼 가볍게 느끼고 잠시 즐거움을 느꼈던 내가
딸을 밤늦게 잡아둘 회색건물 앞에 서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오늘이다. 3월 3일. 우리 큰딸 생일 다음날. 토요일.
우리 큰아이가 종합학원으로 공부하러 가는 첫날이다.
적어도 엄마인 나는 아이를 옥죄고 다그치고 꽁꽁 묶어놓는 족쇄같은 사람이 되진 말아야지.
그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