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 갑자기 외고 이야기를 꺼내고 2월 내내 고민하다가 3월에 등록한 학원. 시험을 치르고 다행히 외고준비반 중에서도 가장 높은 반에 들어가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반에 전교 1,2등하는 아이들도 몇 명 있는 우수한 반이고 학습분위기도 좋다는 학원 상담실장 말에 그런 반에 들어가 좋은 분위기를 타는 것만으로도 지니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은 목표의식이 분명한 우수한 아이들이 열의에 차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공부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나로선 충격이었다.
처음에 학원의 빡빡하게 몰아치는 학습스타일과 엄청난 학습량에 당황스러워하던 딸은 1주일 정도가 지나면서 안정되는 듯 했다. 지니는 단어와 숙어 암기도 열심히 준비해가고 학원 과제물도 빠뜨리는 법이 없었고, 따라잡기 어려운 선행수학 진도를 따로 주말을 이용해서 인터넷 강의로 보층할 정도로 성실했다.
그런데 학원갈 때 싸준 도시락을 안먹고 그냥 들고왔다. 4시 40분에 집에서 나가서 학원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빠르면 10시 30분, 늦으면 11시 20분 정도였으니, 학원가기 전에 간단하게 간식을 먹고 간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도시락을 먹지 않으면 너무 배고플 게 뻔했다.
왜 안먹고 오느냐고 했더니, 학원 여자애들이 저녁시간에(중간에 30분정도 식사할 시간이 있다) 자기들끼리 우르르 나가버린다는 것이다. 남자애들 틈바구니에서 도시락 꺼내놓고 혼자 먹기가 싫어서 그냥 오는 거라나..
학원담임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을때 그런 얘기를 했더니 아이들에게 같이 먹을 수 있게 하겠다고 하셨다. 그다음부터 지니는 학원 아이들과 함께 빈교실을 찾아가 같이 식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아무도 자기에게는 말을 안붙인단다.
그러더니 며칠 후에 하는말..
"엄마, 오늘 학원 우리반 여자애 2명이 편의점에서 물건 훔치다가 걸려서 학원에 끌려오고 학원에선 집에 전화하고 난리가 났었어. "
'허걱~ 왜 그랬대?"
"몰라. 그냥 장난으로 그랬나봐. 그런데 다들 한번씩 그래봤나봐. 어떤애는 저번에 자기는 OOO에서 훔쳤었는데 주인이 그냥 말로 뭐라고 하기만하고 넘어갔었다고 그러기도 하고.. 다 그러더라. 그리고 학원애들 단어숙어 시험볼 때도 다 컨닝해서 보고 그래, 담배피고 선생님 두고 욕하는 아이도 있는데, 뭐.."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생각했던 건 이런게 아니었는데...
저녁에 남편에게 그런 얘기들을 했더니 남편이 하는 말.
"애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런 짓을 하겠어.."
역시 남편이 나보다 한수 위다. 남편은 아이들 잘못은 무조건 어른탓이라는 신조(?)를 가진 사람이다. 청소년 범죄도 모두 기성세대, 즉 어른들 탓이라는 거다. 100%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딸아이가 학원을 가기 시작한지 3주가 되었다.
딸아이가 말한다.
"엄마, 저번에 엄마가 기차 이야기 했었잖아. 근데 기차가 나한테 안맞는 것 같아. 너무 흔들거리고 거칠고 빠르게 운전해.. 승객 생각은 전혀 안하는 난폭운전자가 모는 기차같아. 그래서 승객들도 전부 화가 나서 난폭해진 것 같아. 엄마.. 나.. 내가 나한테 맞는 기차 만들어서 내가 직접 운전해 가고 싶어.."
마음이 찡해져 온다. 딸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당장 학원 그만두고 너랑 나랑 머리 맞대고 뚝딱뚝딱 기차만들어서 우리가 직접 기차를 몰아보지, 뭐.... 그까짓 외고 못가면 어때? 너랑 나랑 기차만들어 직접 몰아보는 이 과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데.
우리 딸은 기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난폭운전 기차를 탄것도 아이에겐 경험이고 또다른 배움이었나 보다. 자기만의 기차를 만드는데 많은 참고가 될 것 같다나? 혼자 집에서 공부할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두근거린단다.
오늘 아침, 지니는 학교 임원 수련회를 떠났다. 목소리도 표정도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