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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 소노 아야코의 경우록(敬友錄)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리수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친분을 쌓는 일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워낙 붙임성있는 성격도 아닌데다가 누군가 나를 두고 한 말 그대로 "도리는 다하지만 마음을 주지 않는 은둔형 인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이라는 제목의 이 책에 흥미를 느낀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책의 부제대로 저자가 말하는 "스트레스 안 받고 내 주위 사람들과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은 너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잘하려고 하지도 말고,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도 말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 친하다고 서로에게 지나친 개입을 삼가는 것, 세상의 부정적인 측면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럼으로써 긍정적인 선을 감사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 그냥 내 마음 가는대로 흘러가는 것...
그러니 나는 붙임성 없고 "도리는 다하지만 마음을 주지 않는 은둔형 인간" 그대로 살아가야 하나보다. 책을 읽고 내가 변화되기를 바랬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내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라는 걸 인정하는 쪽으로 만족했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마음은 편해졌다. 앞에서 말한 내 성격 탓에 친구가 많지는 않지만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날 챙겨주고 마음써주는 친구들이 몇 있고 (간혹 내 무심함을 원망할 때도 있지만), 마음을 쉽게 주지 않는 내 성격에 오히려 신뢰를 보내는 지인들도 있다. (나한테는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이 퍼지질 않는다나? 하긴 비밀이란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한테만 드러낼 수 있는 거니까 그런 면에선 나로 말하면 입이 꽤 무거운 편이다)
아직도 사교성 많고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섞이는 사람들이 부럽기는 하지만 나는 나대로 그냥 살아가는 것이 편안하게 사는 법이라는 것에 100% 찬성할 밖에.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겠지만 못 본 척 슬쩍 지나가는 배려도 필요하고, 친절한 사람은 그 친절한 간섭으로 때론 타인에게 지옥과도 같은 경험을 맛보게 하기도 하니까 조심하고, 정말로 피하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그 사람을 욕하지 말고,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슬며시 멀리하며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 주면 그 뿐이고, 늙더라도 자기의 체력에 맞는 범위 안에서 일과 놀이와 공부를 균형있게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하며, 때로는 상대의 도움을 거절하는 것이 오히려 실례가 되므로 때에 따라서는 상대에게 도와주는 기회를 같이 나누는 마음씀이 필요하며, 자신있는 말투를 경계하며 내가 누군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례라는 글들 속에서 타인들과 꾸려가야 할 남은 삶에 대해 은근한 용기가 솟는다면 너무 과장일까?
" 열심히 노력하는 이는 실은 곤혹스런 존재이다....(중략)...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이 정당한 일, 훌륭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타인도 자신처럼 행동하기를, 또 타인이 자신에게 반드시 감사와 칭찬을 해주기를 마음 속으로 요구한다."는 글에서는 조금 부족한 사람이 되어 남들과 어울려 서로 채우며 살아가라는 지혜로움이 묻어난다. 그리하여 "불어오는 바람처럼 언제나 솔직하고 부드럽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심히 원망하는 일 없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바램일 터이다.
결국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이란 곧 나와 다른 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부족한 모습 그대로 존중하는 일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변화란 불편한 법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