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메이 아줌마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13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4월
장바구니담기


엄마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어떤 엄마들보다도 오랫동안 나를 안아 주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 때까지 받은 사랑 덕분에 나는 다시 그러한 사랑을 보거나 느낄 때 바로 사랑인 줄 알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무도 나는 맡으려 하지 않았을 때도, 이모나 삼촌들 손에 끌려 이집 저집 전전할 때도 나는 그 사랑을 가슴 속 깊이 간직했으며, 아무도 나를 친딸처럼 받아들이지 않아도 투정을 부리거나 남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가엾은 우리 엄마는 나를 받아 줄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내가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사랑을 남겨두고 간 것이다. -11쪽

메이 아줌마는 밭을 가꾸다가 돌아가셨다. '밭을 가꾼다'는 표현은 아줌마가 즐겨 쓰던 말이다. 파예트 군에서는 누구나 밭에 일하러 나간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 말은 어쩐지 흙먼지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투덜대면서 일하는 광경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메이 아줌마는 밭을 '가꾸었고', 아줌마가 그렇게 말하면 아주 사랑스런 사람이 머리에 노란 꽃 모자를 쓰고 어깨에 작은 울새들을 잔뜩 앉힌 채 귀여운 분홍 장미를 다듬는 장면이 떠오른다. -17쪽

그것은 단지 쓸쓸함일 뿐이었다. 등 뒤에는 오브 아저씨가 바람개비들이 잠들어 있는 낡은 트레일러 속에 혼자 남아 있고, 나는 이 캄캄한 길을 혼자 걷는다.
아저씨도 나도 메이 아줌마가 몹시 그립다. 이 어둠, 이 겨울, 그리고 이 차디찬 새벽에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약한 일이다. -19쪽

나는 메이 아줌마처럼 좋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오브 아저씨보다도 훨씬 좋았다. 아줌마는 오직 사랑밖에 없는 커다란 통 같았다.
오브 아저씨와 내가 몽상에 빠져 헤매고 다닐 때도, 아줌마는 늘 이 트레일러에서 우리가 돌아왔을 때 아늑하게 쉴 수 있도록 집 안을 정돈해 두었다.
아줌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했고, 누가 어떻게 행동하든 간섭하지 않았다. 아줌마는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를 다 믿었고, 그 믿음은 결코 아줌마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아줌마를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사람들은 아줌마가 자신들의 가장 좋은 면만 본다는 점을 알고, 아줌마에게 그런 면만 보여 줌으로써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했던 모양이다. -26쪽

지금 메이 아줌마가 여기 있다면, 나와 클리스터에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것들은 꼭 붙잡으라고.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도록 태어났으니 서로를 꼭 붙들라고. 우리는 모두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아줌마는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곳이 이 세상만이 아니라고 일러주곤 했다. 이 세상의 삶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을 모두 얻지 못한다고 실망하지 말라고. 또 다른 생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37~38쪽

일단 장례식을 직업으로 삼은 장의사나 목사들 같은 외부인들이 오고 나면 사람들의 슬픔마저 어떤 틀에 맞춰야 한다. 마치 극장에 들어가려면 누구나 줄을 서는 것처럼, 혹은 병원에 가서 앉아 있는 것처럼.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와 나는 그저 트레일러 안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몇날 며칠이고 엉엉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짬도 없었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거나 교회에 다니거나 아이를 키울 때와 마찬가지로 친척이 죽어서 슬픔에 잠기는 시간도 정해진 틀에 따르기를 바란다. -54~55쪽

"너도 알겠지만, 오브 아저씨의 바람개비는 그게 뭔지 한눈에는 알아볼 수 없어.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건 하나도 없지. 아저씨는 현실에 존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아저씨는 마당을 꾸밀 장식품 따윈 안 만들잖아. 예술 작품을 만들지. 나는 아저씨가 왜 바람개비들을 마당에 내다 걸지 않는지 알아. 아저씨는 이웃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생각 같은 건 없거든. 메이 아줌마는 그런 아저씨에게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를 준거야."
클리터스는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저씨에게는 상상의 세계가 있어. 서머 너랑 똑같이. 하지만 넌 항상 그걸 떨쳐 버리려고 애쓰지."-58쪽

메이 아줌마는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기 전에는 모두 천사였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삶이 끝나면 다시 천사로 되돌아간다고. 그러면 다시는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 지상에 머무르고 싶어할까? 왜 그런 끔찍한 고통을 견디면서도 이 곳에 머무르려 할까?
예전에는 죽음이 두려워서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헤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것 같다. -113쪽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신 뒤,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울어 보지 못했다. 그저 아줌마의 빈 자리를 견디는 데 급급해서 지난 두 계절 동안 내 속에 차오르던 눈물을 안으로 삼켜 왔다. (중략)
아저씨는 나를 꼭 끌어 안고는, 내가 울음으로 쏟아 내는 생명보다 더 많은 생명을 나한테 불어넣어 주었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몸 속의 눈물이 다 빠져나가서 가뿐해질 때까지 나를 안고, 크고 튼튼한 손으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마침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나는 아저씨에게 조그맣게 속삭였다.
"메이 아줌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러자 아저씨가 대답했다.
"아줌마는 여기 있단다, 아가야. 사람들은 늘 우리 곁에 있단다."-11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5년 6월
구판절판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9쪽

이 사람과 함께 있으니 마음이 평화로웠다. 다음 날에도 나는 그의 집에서 하루 더 머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무엇도 그의 마음을 흐트러뜨릴 수 없다는 인상을 나는 받았다. -25쪽

이 모든 것이 아무런 기술적인 장비도 갖추지 못한 오직 한 사람의 영혼과 손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니,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느님처럼 유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0~41쪽

창조란 꼬리를 물고 새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엘제아르 부피에는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주 단순하게 자신이 할 일을 고집스럽게 해 나갈 뿐이었다. -43쪽

그동안 나는 그가 실의에 빠지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을 전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가 겪은 시련을 잘 아실 것이다. 나는 그가 겪었을 좌절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을 것이고, 그러한 열정이 확실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절망과 싸워야 했으리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46쪽

하지만 이런 뛰어난 인격을 가진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가 홀로 철저한 고독 속에서 일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다. 그는 너무나도 외롭게 살았기 때문에 말년에는 말하는 습관을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아니, 어쩌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48쪽

평화롭고 규칙적인 일, 고산지대의 살아 있는 공기, 소박한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화가 이 노인에게 놀라우리만큼 훌륭한 건강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하느님이 보내준 일꾼이었다. -55쪽

한 사람이 오직 정신적, 육체적 힘만으로 황무지에서 이런 가나안 땅을 이룩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힘이란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위대한 혼과 고결한 인격을 지닌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이 없었던들 이러한 결과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7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이레 / 2001년 10월
절판


아주 이따금,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 어느 한 순간, 땅 위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우리 인간만이 이 같은 사물의 순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사물의 불멸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 번뿐인 인생인 양 자기만의 것, 별나고 특별한 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기이하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17쪽

우리는 자신이 무척 창조적인 존재이며 또 우리의 영혼이 늘상 세계의 지속적인 창조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 쉽게 발견한다. 우리와 자연 속에서 활동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 분리될 수 없는 신성함이다. 그러므로 외부 세계가 몰락하더라도,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다시 그 세계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산과 강, 나무와 잎사귀, 뿌리와 꽃, 이 모든 자연의 형상은 우리 안에 그 원형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영원성을 지닌 영혼, 우리가 비록 그 본질은 알지 못하나 사랑의 힘, 창조의 힘으로 느끼는 그 영혼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26~27쪽

우리들의 마음은 환경을 얼마나 많이 가공하고 변화시키는가. 심지어 얼마나 많이 수정해 버리고 마는가. 또한 우리의 삶의 추억은 얼마나 강하게 내면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는가. -31쪽

우리들이 서글퍼져 더이상 삶을 버텨내기 힘들어질 때, 나무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조용히 하라! 조용히 하라! 나를 바라보라! 삶은 쉬운 것이 아니다. 삶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은 모두 어린아이 같은 것이다. 신이 네 안에서 말씀하시도록 하라. 그리고 너는 침묵하라. 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네가 가는 길이 너를 어머니로부터,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딛는 걸음마다, 매일매일이 너를 새롭게 어머니에게 이끌어간다. 고향이란 여기 혹은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고향은 너의 내면에 있든가 아니면 어디에도 없다."
(중략)
나무들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이상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53~54쪽

산업이란 이런 형태(태곳적부터의 형태)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어설프게 새롭지만 무의미하고 유희적인 것들로 대치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산업이란, 현대인들이 일하고 즐길 때 사용하는 물건들에 전혀 애착심을 갖지 않고 자주 바꾸어 버려야만 그 바탕 위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산업은 이 모든 물건들을 유행의 노예로 만들어 놓는 데 성공한 셈이다. 한 때만을 보고 계산된 이런 유행에서 태고 이래로 고수되어 온 연장들의 아름답고 생명력 있고 정연한 진짜 형태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80~81쪽

전쟁이 일어났다. 오래지 않아 나의 불만과 우울증의 원인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어져 버렸다. 나는 분명하게 그 원인들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아무것도 치유될 수 없지만, 이 지옥 같은 시대를 헤치며 살아 나가는 것이 이기적인 우울함이나 환멸에 대한 훌륭한 치료가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85쪽

하지만 친구여, 우리 동료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우리 같은 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 위험에 처해 있지. 미국 취향으로 변한 현대인들의 음악성이란 전축을 소유하는 것이고, 반짝거리게 니스 칠이 잘된 자동차가 그들에게는 아름다움의 세계에 속하는 물건이 되고 말았거든. (중략)
겉보기에는 저렇듯 둔감하고 저주스러울 만큼 건강한, 돈과 기계에 매달리는 인간이 바보처럼 행복에 젖어 한 세대 가량을 흘려보내고 나면, 그 다음에 아마 그들은 의사나 선생, 예술가, 마술사들을 찾아가 많은 돈을 주고 자신들을 다시 아름다움의 비밀로, 영혼의 비밀로 이끌어달라고 요청하게 될 것이네.-104쪽

나는 이 생활에 열정적으로 몰두할 마음은 없고, 그저 여유를 갖고 해나갈 생각이다.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한가롭게 즐길 것이며, 수풀을 개간하고 곡식을 재배하기보다는 가을의 타는 장작불의 푸른 연기 곁에서 꿈꿀 것이다.
(중략)
인생에는 어려운 일, 슬픈 일들이 있다. 그래도 때때로 꿈이 이루어지고 행복이 찾아온다.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 행복은 잠시 동안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한곳에 머물며 고향을 갖는다는 기분, 꽃들과 나무, 흙, 샘물과 친해진다는 기분, 한 조각의 땅에 책임을 진다는 기분, 50여그루의 나무와 몇 포기의 화초, 무화과나무나 복숭아나무에 책임을 진다는 기분이 그런 것이다. -122쪽

농촌 생황은 도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거칠지는 않지만 온화한 것도 아니다. 정신적이거나 영웅적인 생활도 아니다. 하지만 마치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고향처럼 모든 정신적인 인간과 영웅적인 인간의 마음을 그 깊은 곳까지 끌어당긴다. 왜냐하면 이런 것이야말로 가장 오래 존속돼 온 가장 소박하고 경건한 인간 생활이기 때문이다.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근면과 노고로 가득 차 있으나 성급함이 없고 걱정 따위도 없다. 그런 일상의 밑바탕에는 경건함이 있다. 대지, 물, 공기, 사계절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이 있고 식물과 동물들이 지닌 생명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다. -126~127쪽

그러니 현명하다는 것은
현자들에게는 연금술이자 유희인 것이다.
세계가 거칠고 격렬한 충동에 지배되는 동안에도.
그러니 우리는 겸허해지자. 가능하면
세계가 질주하며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도
저 영혼의 고요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옛사람들이 칭찬하고 노력했던 것이니, 우리도 그 선한 것을 따르자.
제발 서둘러 세계를 바꾸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갈 것이다.-159쪽

잘 가거라. 내 소중한 복숭아 나무여! 하지만 너는 그래도 품위있고 자연스럽게 온당한 죽음을 맞이했으니 행복하다고 해도 좋으리라. 너는 더는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버텼으며, 거대한 적이 너의 가지들을 비틀 때까지 반항했다. 결국 너는 굴복하고 쓰러져 뿌리가 뽑히고 말았다. 그래도 너는 공중 폭격을 받아 산산이 부서진 건 아니지 않으냐. 악마처럼 독한 산酸으로 태워진 것도 아니지 않으냐. 너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처럼 고향 땅에서 뿌리 뽑히고 낯선 땅에 임시로 심어졌다가 다시 짐을 싸고 떠나는 실향민의 운명을 겪지는 않았다. 너는 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몰락, 파괴, 전쟁, 수치를 겪으면서 비참하게 죽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너는 너와 같은 나무들에게 주어지는 숙명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너는 우리들보다 더 멋있고 아름답게 나이가 들어 기품있게 죽어갔다. 우리 인간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독으로 오염된 비참한 세상에 저항하지 않으면 안된다. 주위에서 썩어 가는 것들에 대항해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매번 투쟁하지 않으면 안된다. -170쪽

비가 오지 않을 때면, 나는 매일 잡초를 뽑는 일로 소일합니다. (중략) 그런 일을 할 때는 물질적인 충동이나 사색으로부터 완전히 순수하게 벗어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수백 시간, 아니 셀 수도 없이 많은 시간동안 정원의 채소밭에서 일해도, 기껏해야 서너 바구니 정도밖에는 수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대신 이런 노동은 무언가 종교적인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땅에 무릎을 꿇고 잡초를 뽑아내는 일은 마치 하나의 의식을 치르는 것과 같지요. 그것은 의식 그 자체를 위한 것이며, 영원히 새롭게 행해지는 것입니다. -194쪽

게다가 나는 정원 일에 매달리는 노예가 되는 것이 싫지 않습니다. (중략)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지껄이는 모든 일들 가운데서 이런 일이야말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선하고 쾌적한 일이겠지요. -197쪽

땅과 식물을 상대로 일하는 것은 명상과 마찬가지로 영혼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쉬게 해주는 것입니다. -212쪽

작은 장미 화단조차 해안이나 넓은 세계처럼 감각과 관념에 의해 다 퍼올릴 수 없음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소유란 무엇이든지 제한적인 것이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건 바로 체념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체념하는 일은, 미소와 명상을 통해 성스럽게 변모되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220쪽

인생의 한창때를 지나 보내고 긴 그림자가 비치는 골짜기 깊은 곳으로 내려온 후로, 그는 죽음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가 원래 나온 장소와 이제부터 가야 할 곳이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삶이 유혹하는 소리, 어린 시절부터 날마다 그를 부르며 그의 발걸음을 끊임없이 앞으로, 또 앞으로 몰아세웠던 그 유혹의 소리는 점차 저세상에서 부르는 죽음의 소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소리를 따라가는 것이 생의 유혹에 대답하는 것과 별다를 바 없이 아름답고 기이하게 느껴졌다.
삶이라고 하는 것, 죽음이라고 하는 것, 그런 것은 단지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유혹의 소리는 실제로 존재하면서 노래부르고 그를 끌어당기며, 하루하루를 올바른 리듬에 맞춰 살아가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그의 길은 고향으로 향해 있었다. -222쪽

식물을 가꾸고 좋은 정원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단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마찬가지로 어렵지. 불완전한 것까지도 사랑하려고 결심하지 않으면 안돼. 그렇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고 말지. 너야 물론 나보다 잘해 낼 거야. 너도 아니? 의지의 자유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아주 샅샅이 연구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정원 일에 몰두해 봐야 한다. 대단찮아 보이는 관목도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자라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냐. 네가 어떤 관목을 골라 심었더라도 그건 완전히 너의 자유의지에 의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몇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단다. 그 배후에는 어떤 무의식적인 바람, 추억, 필연성이 숨어있기 때문이지. -227쪽

사물들이 조용하면서도 강인하게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 멋지고 명상적이며 포근한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이 없다면 그는 살아갈 수 없으리라. (중략)
그는 모든 사물에 깃들인 생명을 느낄 수 있었다. 그처럼 고요하면서도 확고하게 생명을 지닌 사물들 속에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이따금 부당하고 비정하게, 일종의 죄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속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속죄하더라도 단지 한순간, 사물들에 대한 좀더 깊은 애정에 의해서만, 잠깐 사이 고독과 무상감 속에서 재빠르게 스쳐 가는 전율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244쪽

"Œ었을 때는 말이다, 한스야. 자신이 많이 고독하다고 느끼는 법이다. 그리고 고독한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친구들을 찾아 나서고, 사랑에 빠지고, 가족과 조국을 찾는다. 그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 덕에 세계가 번영하는 거니까. 그렇지만 나이가 들 만큼 들면 그런 것들이 더는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다. 그때 가서는 우정과 사랑, 조국은 우리를 다른 것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전체로부터 떼어 놓는 껍질 같은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단다. 나이가 들면 우리는 전체와 하나가 되고 싶어하지. 이 전체가 다름 아닌 신神이란다. -246쪽

"우리는 자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를 연구했다. 하지만 그 결과 세계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신을 믿는 대신에, 뢴트겐 광선에 관한 비밀 따위를 몇 개 알고 있을 뿐이지. 그런 지식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에 갑자기 구멍을 뚫어 버렸다. 그리하여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보다 훨씬 더 기이하고 놀라운 것임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옛날보다 가난해진 것은 물론 아니다. 아니, 그 반대로 우리는 어쩐지 갑자기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에게는 진짜 중요한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노인은 작은 화분을 들어올려 화초가 제대로 심어져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중요한 것이란 도대체 뭐지요?"
한스는 주저하듯이 물었다.
"소박함이란다."
노인은 짧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249쪽

매번 우리는 그저 자신이 한번 좋아했던 것에 매달리게 되지. 그러면서 그렇게 매달리는 것을 충실하다고 여기지만, 그건 게으름에 불과하다. (중략) 예술은 우리와 세계의 심장 사이에 존재하는 섬세하고 민감한 막膜이란다. 단단한 갑옷보다야 이 얇은 막이 낫겠지. 그러나 세계의 심장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것마저도 뚫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259쪽

이 지상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은 하나의 상징이며, 모든 상징은 열려진 문이다. 그 열린 문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은 내면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 세계에서는 너와 나, 낮과 밤 그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된다. 어떤 사람이든 살아가는 동안 여기저기서 그 길로 통하는 문을 만난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상징이며 그 이면에는 영원한 삶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만이 상징의 문을 통과해 예감해 왔던 내면의 세계에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266쪽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그런 것을 느낀다. 누구나 안젤름처럼 강렬하고 섬세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해도. 많은 아이들은 글자를 배울 무렵이 되면 모든 것을 잊어버려, 상징의 열린 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비밀을 오래도록 간직할 뿐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숨겨진 비밀의 여운을 훗날 백발이 되고 몸이 쇠약해질 때까지 지니고 간다. 그들의 영혼은 끊임없이 오직 단 하나 중요한 것에만 몰두한다. 바로 자기 자신에게 열중하고, 자기 자신과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수수께끼처럼 비밀스러운 관계에 열중하는 것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성숙해지면서 진실을 탐구하고자 하는 현명한 사람들은 되돌아와 이 일에 몰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한 내면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평생 동안 잡다한 걱정과 갈망, 목표 같은 미망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어떤 것도 그들을 자신의 내면으로 진정한 고향으로 이끌지 못한다. -268쪽

사랑하는 안젤름, 나는 우리가 이 지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잃어버린 아득한 소리에 대해 명상하고 모색하고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기 위해서지요. 그 뒤쪽에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있을 겁니다.-27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만난 아이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4년 5월
구판절판


"...... 야스코, 잘 생각해 봐.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는 건 도둑질을 한 사실이 아니라 도둑질을 한 뒤의 마음이야. 사람은 나쁜 짓을 하고 나면 반드시 뭔가에 기대려는 마음을 품게 돼. 실컷 야단맞고 나면 어쩐지 마음이 후련해지지. 그게 바로 인간이 기대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증거야. 아이들도 나쁜 짓을 했을 때 야단을 맞고 나면 훨씬 즐겁게 놀지 않니? 어른들도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깊이 반성했나 보다 하고 안심하지.
하지만 양쪽 다 터무니없는 착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한 번 저지른 죄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선생님은 생각해. 그 죄를 평생 지닌 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해. -52쪽

인간의 상냥함이나 낙천성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분명 어딘가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인간의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다른 사람의 상냥함이나 낙천성을 흙발로 짓밟는 일일 것이다. -69쪽

러시아의 시인이자 아동 문학가였던 코르네이 추코프스키는 어린이 영혼의 뛰어난 특징, 곧 낙천주의를 이렇게 말한다.
" 낙천주의는 어린이에게 공기와 같은 것이다. 흔히들 죽음의 관념은 이 낙천주의에 큰 타격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린이는 이러한 비탄으로부터 자신을 꿋꿋이 지킨다. 어린이 영혼의 무기고에는 자신에게 필요한 낙천주의를 지킬 수 있는 무기가 충분히 저장되어 있다. 어린이는 다섯 살쯤이면 생명이 있는 존재는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지만, 그 순간 자신만은 죽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려 한다. "-71쪽

사사오 스스무는 반항이라는 행동으로 자신의 내면 깊이 간직한 인간성과 상냥함을 끝까지 지켜 냈다. 그 아이의 상냥함을 보려 하지 않았던 교사들, 그 아이의 상냥함에 상처를 준 나, 그로 인해 우리는 지옥에 떨어졌다.
나는 그 아이를 통해 저항의 의미를 배웠다. "절망과 맞부딪쳐 이겨내지 않고서는 진정한 상냥함을 지닐 수 없다."는 노(老)철학자 하야시 다케지 씨의 말이 지금 이순간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그 말이 내 가슴을 찌른다.
새삼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껏 나를 길러 준 상냥한 사람들의 고독과 절망을 먹으며 살아왔다고.
상냥함은 정서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키고 타인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것은 아이들이었다. -93~94쪽

"아름다운 것은 말이지, 참고 참고 또 참았을 때 만들어지는 거야."-130쪽

이들은 하나의 생명은 다른 무수한 생명에 지탱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리라.
여기서 나는 또 한 번 생각한다. 그런 세계를 삶 속에서 온전히 실천하는 것이 바로 어린이라고. 그 증거는 아이들의 표현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144쪽

아이들은 생명이란 아무리 작고 보잘것 없는 것이라도 평등하다고 여기고, 순식간에 그 생명과 우정을 쌓을 수 있다. 개나 고양이와도, 나비나 새와도, 풀이나 나무나 바람이나 눈과도, 온갖 자연물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아이들은, 그리고 오키나와 사람들은 그런 세계를 갖고 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에서 멀어졌을 때 인간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나는 어렴풋이 생각하게 되었다. -146쪽

어린이는 작은 거인이다.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어린이, 스스로 성장하려는 한없는 에너지를 지닌 인간으로서의 어린이, 내가 어린이를 이런 존재로 보게 된 바탕에 오키나와가 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어린이가 어떻게 낙천적일 수 있는가.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는 어린이의 내면이 어떻게 상냥함으로 가득할 수 있는가. (중략)
진정한 거인은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며 그러기 위해서 싸울 수 있는 인간이리라. -154쪽

어느날 마코토는 황당한 일을 벌인다. 갖가지 형태의 상자를 갖가지 끈으로 자유롭게 묶는 조형 놀이의 일종인 '묶기 그림' 시간이었다.
"뭐든지 묶어도 돼요?"
"응"
내가 대답하자, 마코토의 얼굴이 환해졌다.
마코토가 하려던 일은 학교를 묶는 것이었다. 어이없어하는 우리를 곁눈으로 보면서, 마코토는 의기양양하게 학교를 밧줄로 묶기 시작했다.
나는 마코토의 행동에서 한없이 뻗어나가는 힘을 본다. 마코토의 생명력이 힘차게 약동할 때,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창조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인간이 완전한 자유를 획득했을 때 연소되는 생명의 불꽃이다. 고통스러운 말이지만, 교육은 마코토를 짓누름으로써 그것이 비교육적 행위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159쪽

"<태양의 아이>를 완성했을 때 맨 처음 머리에 떠오른 것은, 나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작품 속에서 내가 살고, 살아내고, 그리해서 생명이 끝난 느낌이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글 쓰는 이에게 행복한 일인지 불행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162쪽

어린이, 그들은 당신에게는 단순히 미숙한 존재가 아닙니다. 가장 완벽한 창조물이며, 손상되어서는 안되는 인류의 원형이었습니다.
어린이는 결코 쓸모없는 존재이거나, 귀여운 애완동물이 아니라,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풍요롭고 의미깊은 노동을 하는 지적 노동자이자 인류의 창조성을 보장하는 원동력입니다. 어린이는 낙천적이고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존재이며, 바라보는 것만으로 우리 마음에 평화를 깃들게 하는 사상가입니다. 이런 어린이들에게는 가르칠 것보다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을 당신은 항상 지적했습니다. -103쪽

명령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킬 것이냐,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고 자기 개혁을 일으키도록 아이들을 이끌 것이냐. 둘 중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 교사에게 묻는 말이기도 한다. -193쪽

"아이들의 불행은 교사 자신은 변화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것 아닐까요?"
"아이들의 생활과 교사들의 생활이 분리된 지점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게 문제예요."
"교사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차별에는 민감하지만, 교사 자신이 일상 생활 속에서 만들어 내는 차별에는 너무나 둔감해요."
"참된 상냥함은 절망을 헤치고 나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습니다."-195쪽

창의성 없는 교사의 빈약한 수업이 정말로 공부하고 싶은 아이를 공부하기 싫은 아이로 만들고 있다. -198쪽

하야시 선생님 수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로 하여금 빌려 온 지식을 버리게 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온전히 어린이가 주체가 돼 수업이 이루어졌을 때 성적의 좋고 나쁨은 사라진다는 하야시 선생님의 지론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208쪽

나는 오키나와에서, 그리고 아이들에게서 생명의 의미를 배웠다.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다른 무수한 생명이 그 생명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상, 내 생명 또한 다른 생명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상이 인간의 성실함을 낳고 상냥함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배웠다.
하나의 '생명' 속에는 수많은 '죽음'이 살아 있으며 온갖 고통과 번민이 깃들여 있다. 그것이 흙 속의 양분처럼 새로운 생명을 길러내고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생명에는 끝이 없다는 생각이 이제야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228쪽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지 않는다.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까닭은 타인의 불행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모르는 곳에
갖가지 인생이 있다.
너희 인생이
둘도 없이 소중하듯
너희가 모르는 인생도
둘도 없이 소중하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모르는 인생을 사랑하는 일이다.

-<외톨이 동물원> 중에서-22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타샤 튜더 캐주얼 에디션 2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구판절판


난 고독을 만끽하다. 이기적일지는 모르지만, 그게 뭐 어때서. 오스카 와일드의 말마따나 인생이란 워낙 중요한 것이니 심각하게 맘에 담아둘 필요가 없다. 자녀가 넓은 세상을 찾아 집을 떠나고 싶어할 때 낙담하는 어머니들을 보면 딱하다. 상실감이 느껴지긴 하겠지만, 어떤 신나는 일들을 할 수 있는지 둘러보기를. 인생은 보람을 느낄 일을 다 할 수 없을 만큼 짧다. 그러니 홀로 지내는 것마저도 얼마나 큰 특권인가. 오염에 물들고 무시무시한 일들이 터지긴 하지만,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해마다 별이 한 번만 뜬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생각이 나느지. 세상은 얼마나 근사한가!-64쪽

하기야 누구나 달랑 자기 마음만 있는 외톨이들인 것을. -77쪽

우리가족은 재미 삼아 세이커 교파같은 '고요한 물'이라는 종교를 만들었다. (중략) '고요한 물'교는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추구한다. 고요한 물이란 아주 평화롭고, 스트레스 없는 삶을 의미한다.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정신없이 산다. 카모마일 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 앞에 앉아 개똥지빠귀의 고운 노래를 듣는다면 한결 인생을 즐기게 될텐데.-90쪽

나는 다림질, 세탁, 설거지, 요리 같은 집안일을 하는 게 좋다.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늘 가정주부라고 적는다. 찬탄할 만한 직업인데 왜들 유감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가정주부라서 무식한 게 아닌데.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을. -142쪽

인생을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들에게 해줄 이야기는 없다. 철학이 있다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에 잘 표현되어 있다. '자신 있게 꿈을 향해 나아가고 상상해온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이라면,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성공을 만날 것이다.' 그게 내 신조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내 삶 전체가 바로 그런 것을. -17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