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해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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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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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너희들과 함께 했던 여행 동안 읽으려고 책 서너 권을 챙겼단다. 여행 중에는 재미있는 책을 가지고 가야 그나마 읽는다는 생각에 재미 있을 것 같은 책들로 챙겼단다. 그 중에 하나가 이혁진 님의 <사랑의 이해>라는 책이란다. <누운 배> <관리자들>이라는 책으로 팬이 된 이혁진 님의 또 다른 책이란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사랑의 이해>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더구나. 앞서 읽은 책들이 아빠의 취향이어서 <사랑의 이해>는 지은이 이름만 보고 샀단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랑에 관한 책이더구나. 두 쌍의 젊은이들이 나오면서 얽히서 설킨 사랑 이야기. 아빠 같은 아재가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는 소재이긴 하지만, 아빠가 로맨스 소설도 좋아하는 편이니까 소재는 뭐 나쁘지 않았어. 다만 전체적인 재미가 이전에 읽은 이혁진 님의 소설들보다는 좀 부족했단다. 책이라는 것이 사람의 취향마다 다르니까, 이전의 책들보다 아빠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구나. 세대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약간은 공감하지 않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도 있고...

....


1.

, 그러면 <사랑의 이해>를 간단히 이야기해줄게. 이야기는 은행에서 일어났단다. 주인공 하상수 계장은 계약직으로 텔러로 일하는 안수영을 좋아했어. 얼마 전에 하상수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면서 첫 데이트를 했고, 두 번째 약속을 정했단다. 그런데 두 번째 약속이 있던 날,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기고 그날 따라 핸드폰은 고장이고그래서 약속 장소에 늦게 나갔는데, 이미 수영은 자리를 떠난 이후였단다. ,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 수영은 상수에게 냉담하게 굴었단다. 상수는 미안하다고 몇 번씩 이야기를 했지만 용서를 받지 못했어. 그런 와중에 수영은 은행경비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종현과 썸을 타게 된단다. 수영은 상수와 몇 번의 어긋남이 있고, 종현의 대시로 인해 종현과 정식으로 사귀게 되었어. 젊을 때이니 이런 사랑도 해보고 저런 사랑도 해보고 그래야겠지. 하지만 상수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봐 주었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그런데 어느날 박미경이라는 사람이 은행으로 전배를 왔어. 미경은 상수의 대학 후배였고 상수를 대놓고 좋아했단다. 미경의 적극적인 대시에 몇 번 만난 상수. 미경도 여자 친구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러자, 미경의 배경도 보이기 시작했단다. 미경은 은행의 정직원이고, 부잣집 딸이었어상수가 미경과 사귀기로 결정한 데는 그런 배경이 없었다고는 말 못했을 거야.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이 뭐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지

종현은 은행경비원으로 근무하면서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단다. 그런데 경찰 공무원 시험을 아쉬운 점수차로 떨어지고 말았어. 이에 수영은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했단다. 종현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수영을 멀리하려는 것 같았어. 시골에 계신 아버지가 막노동을 하다가 크게 다치셔서 경제활동을 못한다고 하셨어. 그래서 자신의 은행경비원으로 생계가 어려워, 지방의 호텔에서 일하기로 했다면서 시골로 내려간다고 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수영과 일부러 멀어지려는 의도 같았단다. 그러나 종현도 수영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인지 얼마 못 가 다시 은행 경비원으로 일했고, 둘은 돈도 아낄 겸 동거를 하기 시작했단다. 수영은 이번에는 종현이 경찰 공무원에 꼭 합격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열심히 했어.

한편 상수와 미경도 같이 살기 시작했단다. 미경은 상수를 사촌 오빠와 아버지에게 소개 시켜주는 등 적극적이었어. 상수는 미경의 아버지가 불편하면서도 잘 보여야겠다는 나름 예의를 차리면서 술자리도 함께 했는데, 미경의 아버지는 상수를 못마땅해하는 것 같았단다. 아무래도 사람 자체보다 배경이 더 크게 보이겠지. 상수도 그리 넉넉한 집안이 아니었거든.

….

1년이 또 지나고 종현은 또 경찰공무원 시험에 떨어졌단다. 수영과 종현의 사이는 급격히 안 좋아졌어. 사실 수영도 경찰공무원에 합격한 종현의 미래의 모습도 사귀게 된 이유 중에 하나였던 것 같거든남녀 간의 사랑, 특히 결혼을 전재로 하는 사랑에 사람 자체만을 사랑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구나. 상수는 미경과 사귀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알 수 없는 벽을 보는 듯했어. 살아온 배경이 너무 달라서 오는 그 차이가 계속 불편했어. 결국 수영과 종현, 상수와 미경은 모두 헤어져서 다들 혼자가 되었단다.

이 시점에 수영이 다시 상수와 만나 잘 되는 것도 이상하고, 지은이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소설은 몇 년 뒤 상수와 수영이 우연히 만나 안부를 묻고 헤어지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단다. 아빠가 이 책도 읽은 오래 되어 잘못된 기억으로 쓴 부분도 있을지 모르니 양해 바란다.


2.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혁진 님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아빠 취향이 아니었어. 그리고 또 하나 이질감을 느낀 것은 소설 속에 직원들 사이에 나눈 대화들이란다. 너무 서로 막말을 하는 듯했어. 성추행에 가까운 말들도 던지곤 하는데, 요즘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그렇지 않을 텐데 말이야. 그것이 좀 부자연스러웠단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있다고 했잖아. 소설을 아주 재미있게 읽지는 않아서 그 드라마도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유튜브 등에 한두 시간으로 간추린 영상이 있으면 1.5배속으로 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함 찾아봐야겠다.

이번 여행에서 배운 것 하나. 여행 중에 책 욕심은 부리면 안되겠더구나. 우리 집에서 자주 타는 교통편에서 책 읽는 것은 집중이 잘 되는 편인데, 낯선 곳에서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곳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책에 눈을 두기가 쉽지 않더구나. 바깥 경치가 더 좋은 책이었어. 가지고 간 책이 4권인데, 2권을 겨우 읽었구나. ㅎ 

나머지 한 권도 곧 이야기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부지점장은 파란색 플러스 펜으로 상수의 셔츠 주머니 아래를 찔렀다.

책의 끝 문장: 가는 빗방울이 우산 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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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한창훈 지음, 한단하 그림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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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소개해 줄 책은 한창훈 님의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라는 책이란다. 몇 년 전에 사 두었다가 이제서야 읽었단다. 이 책은 얇고 우화풍 소설이라서 금방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자투리로 읽을 시간이 생기면 읽으려고 사 두고도 한참 읽지 않은 것이야. 아무튼, 아빠가 자투리 시간이 생겨서 이 책을 후다닥 읽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읽은 것이란다.

지은이 한창훈 님의 작품은 처음 읽는 것인데, 지은이 소개를 보니 <홍합>이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더구나. 이 책을 이 분이 쓴 거구나. 지은이 한창훈 님께서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를 쓰게 된 이유를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작가가 20대일 때 우연히 본 신문칼럼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아빠도 좋아하는 <녹색평론> 김종철 님의 <단 하나의 법조문만 있는 나라>라는 글이라고 하더구나. 그 글이 좋아서 가위로 오려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계속 읽으셨대

남대서양 화산섬 트리스탄 다 쿠냐 섬의 이야기였대. 그 글을 읽은 지 20여 년이 지나고 우화풍 소설을 의뢰 받은 지은이는 그 글이 떠올라서 소설로 쓰신 것이 <그 나라로 간 사람들>이라는 단편이라고 하는구나. 아빠가 읽은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는 연작 소설집로 단편 소설이 5개가 실려있긴 한데, 하나의 장편 소설로 봐도 좋을 것 같았어. 연작 소설이라고 한 것처럼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이 서로 연결되어 있거든


1.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맞아 우연히 섬에 정착한 사람들.. 그곳에서 작은 사회를 이루며 살아간단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섬에 사람들이 더 모이고, 그들은 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회의를 통해 단 하나의 법을 만들었단다. ‘어느 누구도 다른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가 그 법이란다. 이 법대로 그 섬 사람들은 서로 도우며 살아가다 보니 모두나 평등하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어. 늘 행복하다 보니 행복이 일상이 되었고,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행복하겠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지. 그래서 행복이라는 말을 모르고, 책 제목처럼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가 되었어.

그런 섬이 화산 폭발 우려가 있어서 대피를 해야 한다고 했어. 그래서 섬 사람들은 섬을 떠나 본토로 당분간 이주하게 되었지. 섬에서 살던 방식과 본토에서 살던 방식이 다르긴 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원칙을 지키면서 때론 본토 사람들의 방식을 따르면서 살아갔단다. 그러면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준단다.

우화풍 소설을 의도적으로 쓴 것이라 그런지 등장인물들이 너무 착한 사람들뿐인 것 같구나. 단 하나의 법 조항으로 사는 섬이 실제 있다고 하고 그를 모티브로 쓰긴 했지만, 사람 사는 사회에 갈등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 또한 아빠가 이 속세에서 살다 보니 생긴 편견일 수도 있지만 말이야. 이 책은 우화풍이라서 교육적인 면도 있고 하지만, 약간은 뻔한 우화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래서 적극 추천까지는 안 할 것 같아.

오늘은 책도 얇으니, 편지도 짧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어제 완성한 망루가 오늘 아침 풍랑에 넘어졌습니다.

책의 끝 문장: 웃음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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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9)

나혜석은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1021년 최초의 개인전을 가진 화가로 한국 근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자리매김되고 있다. 또 그녀는 한국 근대 문화사에서 최초의 여류소설가 역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안숙원은 그의 소설 <경희>는 한국 현대문학사상 최초의 페미니즘 텍스트라고 평가하면서 이 소설에 나타난 신여성론은 동시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과 맞겨룰 만한 담론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나혜석은 여성도 사람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여성 계몽적 시 <노라>를 발표, 1920년대 계몽주의 문학의 중요 작가로 재평가 받고 있다. 이상경은 나혜석은 자유연애주의자가 아니라 자기 성취를 추구하며 온몸으로 계몽주의 사상을 밀고 나갔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46)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인덕을 비난했지만, 윤치호는 박인덕을 옹호했다. 그는 1931 10 26일자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첫째로, 나는 수많은 젊은 남자들이 자기 아내와 이혼하는 것과 똑같이 그녀 역시 남편과 이혼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런 남자들 중에는 더 매력적인 여자와 결혼하길 바라는 것 말고 어떤 이유도 없는 자들이 많다. 이들 무정한 젊은 남자들은 비난하지 않고 그저 박인덕만 욕하고 온갖 험담을 늘어놓는 것은 여성은 영원히 남성의 노예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93-94)

마찬가지로 일제는 조선의 라디오를 황국신민화 사업에 적극 활용하고자 했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과 함께 일제는 본격적으로 방송을 국민동원과 전시선전의 도구로 삼기 시작했다. 조선총독부는 황국신민화, 내선일체, 일본어 상용 등의 명분을 내걸어 우리말 뉴스방송에서도 일본어 혼용을 강요하였고, ‘궁성요배(宮城遙拜)의 시간이니 심전개발(心田開發)’이니 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토록 하였다. 그런가 하면 나중엔 일본군이 되어 천황폐하를 위해 싸우다가 백골이 되어 호국신사에 봉안되는 것이 효도의 길이라는 노래 아들의 혈서를 당대의 인기 가수 백년설이 매일 방송하느라고 2개월간 방송국에 통근했다.”


(114)

1930년대 조선의 중상류층은 행여 뒤처질세라 서양 냄새를 피우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서양화가 곧 계급이요 교양의 척도이자 상징이었다. 1930 11 <매일신보>가 여러 차례에 걸쳐 그런 경향을 지적하고 나선 게 흥미롭다.

11 23일자에 따르면, “서양류의 가수는 성악가라 하여 숭상하고 우리 조선의 고유한 가수는 광대라 하여 천시하고 멸시함은 무슨 까닭인고? 물론 이에는 여러 가지 원인과 동기가 있겠으나 도대체 남의 것이라면 좋으나 그르나 귀하에 여기고 우리의 것이라면 덮어 놓고 천하게 여기는 과도기에 처한 조선의 사회적 결함과 일반 가수의 인격적 저하(低下)가 그 주요한 원인이 된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일이니 조선의 가수가 결코 본시부터 천한 것은 아니었다.”


(126)

서울 종로경찰서 고등계에서는 이 노래의 가사에 의심을 품고 레코드사 사장 이하 관련자들을 불렀다. 경찰이 문제 삼은 건 삼백연 원안풍은 노적봉 밑에라는 구절이었다. 손목인의 회고에 따르면, “사장 이하 관련자들은 원안풍은원한 품은아니라 원안풍은이라고 극구 해명하고 사정하여 간신히 무마는 되었지만, 솔직히 말해 목포의 눈물삼백연 원안풍삼백 년 원한 품은이라는 뜻으로 우리 민족의 설움과 일제에 대한 겨레의 분노를 노래한 것이다. ‘목포의 눈물’ SP는 이 사건을 겪으면서 더욱 잘 팔려 나갔다.


(160)

일제강점기의 대중가요에 대해 민족의 정서를 황폐화시키고 시적 표현을 왜곡시켰다거나 유행 창가 전반의 의식세계는 결국 식민지배에의 봉사로 귀결되었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나라 잃은 식민지 민중에게 슬픔을 벗어나라고 주문하는 건 오늘의 관점에서 본 무리한 요구가 아닌가 싶다. 때론 슬픔도 힘이 되는 게 아닐까? 게다가 슬픈 노래가 나라 찾고 경제발전 이룬 뒤에도 계속되는 걸 보면, 이는 좀 더 정교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는 걸 말해주는 거라고 볼 수 있다.


(179)

이효석은 조선일보사가 발생한 <조선문학독본>(1938 12월호)에 쓴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가을 낙엽을 태우는 냄새에서 갓 볶음 커피 냄새가 난다라고 썼다. 이에 대해 이영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정말 커피 냄새가 낙엽 태우는 냄새와 비슷한 줄 알았다. 1970년대만 해도 원두커피를 갈아서 끓어주는 커피 전문점들이 없었고, 다방은 미성년자가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갓 볶은 커피 냄새가 뭔지 알게 된 지금 생각하면 웬걸, 낙엽 태우는 냄새와 비슷도 하지 않다. 그러고 보면 이효석은 커피 냄새를 잘 몰랐던 것이 분명하다. 구태여 익숙하지도 않은 커피 냄새를 들먹인 것은 분명 커피라는 말이 주는 문화적 의미 때문이었을 것이다. “


(224)

1920년대 말부터 유행한 남성의 장발에 가해진 탄압은 한 사나이의 운명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1937 3월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던 박정희가 교사 일을 그만두고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게 된 계기에 장발이 관련돼 있다는 게 흥미롭다. 교사 생활 3년째 되던 1939년 가을 연구수업 시찰차 나왔던 일본이 시학(오늘날 장학사)과 교장이 술자리에서 박정희의 장발을 문제 삼자 박정희는 이에 반발, 술잔을 던지는 등 소동을 벌인 후 사표를 냈다는 것이다. 당시 교사들은 머리를 박박 깎게 되어 있었으나, 박정희만은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먼 훗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뒤에 장발을 혹독하게 탄압하게 된다.


(262-263)

위생에 대한 문화적 차이도 있었다. 일본인들의 기준에선 조선인들이 목욕을 잘 하지 않는 게 야만이었겠지만, 조선인들의 기준으로 볼 때엔 일본의 목욕문화가 야만이었다. 한국 최초의 대중목욕탕은 1905년 서울 서린동 근방에 등장했지만, 여럿이 벌가벗고 목욕을 한다는 것이 익숙지 않은 문화적 저항 때문에 사람이 오질 않아 곧 문을 닫고 말았다. 대중목욕탕에 익숙해질 때까진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왕실에서도 1919년에서야 목욕실을 두었고, 대중목욕탕은 1920년대에서야 본격적으로 생겨나게 된다.


(266)

쥐잡기운동, 빈대잡기운동, 기생충 박멸운동 등도 병행되었으며, 이는 1930년대에도 지속되었다. 아마도 가장 괴로운 건 빈대의 습격이 아니었을까? 이상은 1936년에 발표한 소설 <날개>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빈대가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러나 내 방에서도 겨울에도 몇 마리의 빈대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내게 근심이 있었다면 오직 이 빈대를 미워하는 근심일 것이다. 나는 빈대에게 물려서 가려운 자리를 피가 나도록 긁었다.”


(281)

해마다 화려해지는 유흥가의 축하연 덕분에 크리스마스 이브는 일 년 중 가장 퇴폐적인 밤이 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총독부는 유흥업소의 크리스마스 축하연을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맘먹고 놀겠다는 데야 어디 빠져나갈 길이 없겠는가.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 유흥가는 생뚱맞게 국위선양 기념회’ ‘남경 함락 축하 만찬회’ ‘황국 전승 대연회현수막을 갈아 달고 축하연의 전통을 이어갔다. 크리스마스가 상업적으로 왜곡된 것은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 직전인 12 16일이 200~400페센트씩 지급되는 연말보너스 받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월급쟁이들은 12월 봉급까지 더해 평상시 월급의 3~5배까지 두툼한 월급봉투를 받았다. 오랜만에 두툼해진 월급쟁이의 호주머니를 털기에 크리스마스 이브 축하연만큼 그럴듯한 명분이 없었다.”


(312)

권투의 인기도 그러했을진대 축구의 경우엔 더 말해 무엇하랴.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일제 치하에서의 축구는 카타르시스였다. 프로이트는 인간은 공격을 표현함으로써 분노의 감정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프로이트는 이런 과정을 정화 또는 카타르시스라고 하였다. 프로이트의 카타르시스 이론은 우리는 내부에 공격적 에너지의 저장소를 항상 지니고 있다고 가정한다. 늘 발산시켜버려야 할 공격성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축구를 통해 그 공격성을 발산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한국인들의 억눌린 상태는 해방이 되었다고 일시에 해소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에겐 또 다른 종류의 억압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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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2023년~

알라딘 친구 여러분들, 2023년 좋은 책들 많이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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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2-31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한 자리에 책 쌓으시는데만도 한참 걸리셨겠어요? 23년의 독서기록을 사진 한장으로 압축하셨군요!! 와! 내년에도 좋은 책들 함께 나눠요. 북홀릭님

bookholic 2023-12-31 18:48   좋아요 0 | URL
한 해 마무리의 루틴이 되었어요^^
얄라알라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좋은 책 소개 부탁드려요~~

호시우행 2023-12-31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이 읽었네요. 건강과 행운을~~

bookholic 2023-12-31 18:49   좋아요 0 | URL
책 읽는 것이 몇 안 되는 낙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파랑 2023-12-31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북홀릭님의 독서는 매년 엄청나네요~!! 진정한 책 중독자이십니다~!! 책탑 사진만 봐도 뿌듯 하네요~!!

bookholic 2023-12-31 18:51   좋아요 1 | URL
북플이나 알라딘 서재에서는 중독이라고 하기 어렵죠^^ 닉네임을 부끄럽습니다 ㅎㅎ
새파랑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즐독 하시길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3-12-31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책탑이고, 그것을 또 다 읽으셨다는 것에 감동 받습니다.
매년 저에게 내년에 더 분발해야겠다는 의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ookholic 2023-12-31 18:54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저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좀더 높여보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23-12-31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푸짐하군요.
새해에도 건필하십시오.^^

bookholic 2023-12-31 18:56   좋아요 1 | URL
올 한 해 잔잔하면서 따뜻한 좋은 글들 감사했습니다.
내년에도 부탁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대장정 2023-12-31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어봤습니다. 104권 맞나요? 역시 북홀릭이십니다. 👍 내년에도 健讀하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ookholic 2023-12-31 18:59   좋아요 1 | URL
아...힘들게 세시다니.. 고맙습니다.. 몇 권 빠진 것 같아요^^
대장정 님도 내년에 올해를 뛰어넘으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니데이 2023-12-31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복많이받으세요.^^

bookholic 2023-12-31 19:0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님~~
늘 좋은 글도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행복하세요...

호시우행 2023-12-31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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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간단한 기계여서 제아무리 바보라도 사용할 수 있는데, 도전이라면 그것으로 예술, 곧 참된 것과 아름다움의 결합을 창조하는 데 있다. 그러한 탐색은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일이다. 나는 투명한 가을 낙엽과 해변의 완벽한 모양의 소라에서, 여체의 등허리 곡선과 오래된 나무둥치의 결 조직에서 참과 아름다움을 찾는다. 포착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형태들에서도 찾는다. 때때로 암실에서 하나의 상을 가지고 작업하다가 한 사람의 영혼, 한 사건의 감동 또는 한 사물의 생동하는 본질을 만난다. 그러면 감사하는 마음이 치솟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렇게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내 일의 목적이다.


(252-253)

그녀는 세기가 바뀐 이래 칠레에 벌써 다섯 차례의 전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우리 칠레인들은 악의가 없어 보이고 심지가 약하다는 평판도 있는 데다 심지어 저기요, 제발 물 한잔 좀 주실 수 있을까요?”하는 식의 비굴한 말투를 사용할 정도지만, 일단 기회만 닿으면 식인종으로 돌변한다고 했다. 우리의 난폭한 기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조상은 스페인에서 온 정복자들 중에서도 가장 노련하고 사나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막의 태양에 시뻘겋게 달궈진 무기를 들고 최악의 자연 장애물을 이겨 내면서 걸어서 칠레까지 올 생각을 한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그러고는 자신들 못지않게 용맹스러워서 결코 굴복하지 않은 유일한 신대륙 부족이었떤 아라우칸족과 혈통을 섞었다. 아라우칸족은 포로들과 자신들의 추장 토키를 먹는 습성이 있었고 정복자들의 껍질을 말려 제식용 가면을 만들었는데, 특히 턱수염과 콧수염이 있는 사람들의 가죽을 선호했다. 자신들은 수염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백인들에게 복수도 할 수 있었다. 반대로 백인들은 인디오를 산 채로 태워 창에 꽂은 뒤 팔다리를 자르고 눈알을 뽑았다는 니베아의 설명이었다. “그만해라, 됐다! 그런 끔찍한 얘기를 내 손녀딸 앞에서 하지 않도록 해라.” 할머니가 그녀의 말을 중단시켰다.


(348)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진보의 메아리는 우리에게 들려왔고 사회의 변화를 모르고 지낼 수 없었다. 산티아고에서는 이미 실외 스포츠와 실외 게임, 산책 등 카스티야 이레온 귀족의 느긋한 후손들보다는 외향적인 영국인들에게 맞는 놀이들을 광적으로 즐기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유래한 예술과 문화의 바람으로 칠레의 분위기가 새로워졌고, 독일산 기계들이 중후하게 돌아가는 소리에 칠레의 오랜 식민기적 낮잠은 중단되고 말았다. 벼락부자에 교육도 받고 부자들처럼 살고 싶어 하는 새로운 중산층이 탄생했다. 파업, 폭행, 실업, 칼을 뽑아 든 기마경찰의 공격 등으로 국가 기강이 흔들리는 사회 위기가 조성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아주 먼 이야기여서 칼레우푸의 생활 리듬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백 년 전에 같은 침대를 썼던 고조부들처럼 여전히 농장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20세기는 찾아들었다.


(430)

기억은 허구다. 우리는 부끄러운 부분은 잊어버리고 가장 밝은 부분과 가장 어두운 부분만 선택하여 인생이라는 널찍한 융단에 수를 놓는다. 나는 사진과 글을 통해 내 존재의 덧없는 상황을 이겨 내고 사라져 가는 순간들을 붙들어 과거의 혼돈을 벗겨 내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매 순간은 순식간에 사라져 금방 과거가 되어 버린다. 현실은 하루살이같이 덧없고 변하는 것이며 순순한 그리움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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