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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강의 - 혼돈의 시대에 장자를 읽다
전호근 지음 / 동녘 / 2015년 1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알고 싶은데, 선뜻 쉽지 않아서 많이 읽지 않는 분야가 철학, 특히 동양 철학이란다. 오래된 동양의 가르침들을 잘 이해하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의 자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되는데, 그 깊이를 아빠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더구나. 그래도 가끔씩은 그런 책들을 읽어보려고 한단다. 그리고
그런 책들을 읽고 나서 쓰는 독후감 또한 쉽지 않단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 깊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 책이 좋다 나쁘다 평하기가 어려우니 뭐라 써야 할지 망설여진단다.
아빠가 이번에 읽은 전호근 님의 <장자 강의> 역시 핵심을 뽑아서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기 쉽지 않더구나. 이
책을 몇 년 전에 사두고 안 읽고 미뤄두고 있던 이유도 앞서 이야기한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단다. 이번에
읽게 된 것은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 그냥 책장에 꽂혀 있던 이 책과 눈이 맞았기 때문이야.
전호근이라는 분은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20년 이상 동양철학 고전을
강의하신 분이라고 하더구나. 혹시나 하고 유튜브로 검색을 해 보았더니,
전호근 님의 여러 강의를 만나볼 수 있더구나. 장자에 대한 강의도 있는데, 시간이 넉넉해야 볼 수 있을 정도가 많더구나. 자, 너희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손 가는
대로 키보드를 두들겨 볼게.
1.
<장자>라는
책에는 “혁대를 훔친 자는 사형을 당하고, 나라를 훔친 자는
임금이 된다’는 내용이 있단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장자가 춘추전국시대, 그러니까 전쟁으로 온 세상이 뒤덮은 시대에 살았기 때문이란다. 장자의 본명은 장주라고 알려져 있고, 태어난 해, 출신 나라가 불분명했는데, 몽이라는 지역에서 태어났다고 했어. 이 몽이라는 지역은 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자주 바뀌었다고 했어. 그러니
정치적 견해를 내기가 쉽지 않았어. 현재 점령한 나라를 좋게 이야기했다가 주인이 곧 바뀔 수 있으니
말이야. 그래서 공자와 맹자의 책들은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반면 장자의 책들은 대부분 우화를
통해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그런 우화를 통해 이야기를 함으로써 당시의 정치상을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치적인
박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던 거지.
장자의 글이 대부분 우화로 되어 있다고 보니, 장자의 글들은 읽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한다고 했어. 그것 또한 장자의 글의 특징이라고 하는구나. 춘추전국시대에 많은 철학자들이 나와서 제자백가라고 했는데 각 철학자들은 이 전쟁과 혼란을 극복하려는 자세가
달랐단다. 장자는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장자는 무위자연을 중시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했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어딘가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쓸모 없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단다. 오늘날 우리는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지, 쓸모 없는 사람이 되라고 하면 이상하게 쳐다볼 거야, 그렇지? 하지만 장자는 쓸모 없음의 쓸모를 이야기했단다.
쓸모가 없는 커다란 나무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도끼에 찍혀나가지 않을 수 있다는 거야. 그것이 바로 쓸모 없음의 쓸모인 거지. 전쟁이 극성인 시대에 쓸모 있는 이들은 어떻게 되겠니… 전쟁에 끌려가겠지, 그것은 장자가 생각하는 삶은 아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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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마무리하자면
장자는 커다란 나무는 바로 쓸모없기 때문에 도끼에 찍혀나갈 염려도 없고 어떤 사물도 해칠 염려가 없는데 어찌 쓸모없다는 이유가 괴로운 것이겠는가
하고 반박합니다. 결국 장자는 쓸모없음이 바로 큰 쓸모이고, 큰
쓸모가 바로 양생(養生)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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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사람들도 보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하면 천한 자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었을 거야. 장자는 그런 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않는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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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그에
따르면 성인은 해와 달을 곁에 두고 우주를 옆구리에 낄 정도로 스케일이 큰 존재이지만 늘 만물과 함께 하려 하고 희미한 도에 자신을 두어서 노예도
존중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것은 나에게 이롭고 어떤 것은 해롭다는 식으로 분류하여 이로운 것은
취하고 해로운 것은 피합니다. 그런데 성인은 만물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한 사람도 똑같이 존중합니다. 사람을
볼 줄 아는 것이지요. 굳이 성인이 아니라도 그런 경우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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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자의 제1편은 ‘소요유’란다. 소요유는 낮잠을 자면서 논다는 이야기라고 했어.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고, 그것이 전쟁에 저항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이 장에서는 커다란 새와 작은 새의 우화를 통해서 어떤 것이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름을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해를 못하는 것이지, 상대가 틀린 것이 라는 거야.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개념이
다른 것을 이야기했던 거야.
…
장자와 노자를 보다 보면 도(道)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도라는 것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어. 사물을 제대로 보는 것이 바로 도라고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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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여기서
도를 대단한 추상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흔히 만나는 사물을 제대로 보는 것이 바로 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자가 보기에 사물을 이런 저런 방식으로 나누기 시작하면 그런 사람의 눈에는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당연히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겠죠. 누가 현자인지 보일 턱이 없습니다. 그런 걸 보면 노예의 무리의
섞여 있는 백리해가 현인인 것을 알아보고 양 다섯 마리를 주고 풀려나게 한 진나라 목공이나, 현인 월석보를
말 한 필과 바꿔 온 제나라 재상 안영 같은 이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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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라는 것은 어디든
있다고 했고, 이것과 저것은 상대적인 것으로 함께 가야하고, 나의
기준이 아닌 자연에 따라 시비를 따져야 한다고 했어. 옳고 그름을 나누지 말고, 크고 작음을 나누지 말고 다름을 인정하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단다.
…
장자에 나오는 우화 중에 가장 유명한 우화는 바로 호접몽(胡蝶夢) 일화란다. 장자가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속에서 자신이 나비가 되었는데, 그 꿈에서 꾸고 나서 크게
깨닫게 된단다. 우리의 지금 삶이 한낱 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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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장자가
꿈을 꿉니다. 유명한 호접몽(胡蝶夢)입니다. 꿈에 나비가 되어 날아다닙니다. 사람이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그런지 ‘적지(適志)’라고 표현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뜻에 꼭 맞아서 전혀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자기가 장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나비가 된 것이죠. 사실
난다는 표현은 인간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루었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장자의 첫 이야기는 대붕이
날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대목은 바로 장자 자신이 날아가는
장면입니다. 대붕은 구만리의 하늘을 타고 납니다. 그리고
장자는 ‘물화’, 곧 나비가 됨으로써 하늘을 납니다. 구만리의 하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비의 날개는 아주 가벼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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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의 이야기는 혼돈 설화로 마무리한단다. 혼돈은 눈, 코, 입, 귀가 없는
존재였단다. 남쪽의 임금은 숙이고, 북쪽의 임금은 홀인데, 숙과 홀이 혼돈의 땅에서 자주 만났는데, 혼돈이 그들을 잘 접대해
주어서 그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숙과 홀은 혼돈에게 하루에 하나씩 구멍을 뚫어 주었다고 했어. 그러니까
눈, 귀, 코, 입을
만들어 준 거지. 그러자 혼돈은 일주일 만에 죽고 말았다는 것이 혼돈 설화의 전부란다. 숙과 홀은 문명을 의미하는 것이고, 혼돈은 자연의 그 자체, 무위자연을 의미하려는 것이란다. 이 일화 또한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경우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란다. 선의로 행한 것이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러한 예는 인류 역사에서 많이 볼 수 있다고 했단다. 장자의 주제를
한 마디로 하자면,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이해를 했단다.
….
이 책은 <장자>에
대한 강의이다 보니 <장자>에서 인용한 글들이
많았단다. 그런 인용한 글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글들은 아빠가 다시 발췌해 보았는데, 그 중에 가장 와 닿았던 내용을 너희들에게
소개해주는 것으로 오늘 편지를 마치련다. 휴… 편지의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빠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쓴 편지라는 점 이해해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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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자연이 하는 일을 알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아는 사람은 지극한 사람이다. 자연히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자연을 따라 살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아는 사람은 그가 알고 있는 것으로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을 길러 천수를 마쳐서 중도에
요절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앎이 성대한 사람이다. 비록
그러하나 근심이 있으니 앎이라는 것은 마주하는 것이 일정한 뒤라야 꼭 맞게 되는데 마주하는 것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내가 자연이라고 생각한 것이 인간에 속한 것이 아닌 줄 알며, 내가
인간에 속한 것이라 여긴 것이 자연이 아닌 줄 알겠는가. 참다운 사람이 있은 뒤라야 참다운 앎이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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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장자>
이전의 고전 중에서 <논어>는 약 1만 5000여 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책의 끝 문장: 붕새가 남쪽으로 날아가는 이유를 그 누가 알겠습니까?
<1장>을 통해 장자는 모든 존재가 평등한 제물의 세계를 들려 주었습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죠. 인간 세상에 만연한 것이 차별입니다. 그런 차별은 어떤 근거에서 나오는가? 장자가 보기에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차별의 근원에는 언어가 놓여 있습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물을 분류합니다. 이 분류는 대단히 폭력적입니다. 장자는 이러한 사실을 밝힘과 동시에 차별이 없는 세상을 희구했던 옛 성인 요와 순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 P148
우리는 어떤 권위에 의존해서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하지만 장자가 보기에 그런 것들은 모두 화성(化聲), 곧 변화하는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꿈처럼 일시적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둠에 갇힌 존재일까요? 어떻게 해도 행복해지거나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일까요? 장자는 한 가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바로 ‘천예(天倪)’라고 하는 자연의 도를 따라 만물을 조화하는 것입니다. 자연의 도를 따르게 되면 세상이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여길 수 있게 됩니다. 시비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장자가 바라는 경지입니다. - P182
"우리의 삶은 끝이 있지만 지식은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을 가지고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면 위태롭다. 그런데도 지식을 추구하면 더욱 위태로워질 뿐이다. 착한 일을 하더라도 명예에 가까이 가지는 말며, 나쁜 일을 해도 형벌에 가까이 가지는 말고, 중간을 따르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으면 자기 몸을 보호할 수 있고, 생명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고, 어버이를 모실 수 있으며, 천수를 다 누릴 수 있다." - P202
물욕을 탐하지 않는다는 것은 외부와의 관계를 차단한다는 뜻이 아니라 외부의 물욕을 나서서 맞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가만히 머물지 못하는 것은 이목의 욕망을 따라 마음을 가만히 두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곧 이목의 감각을 닫아서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극을 그대로 두되 그것을 따라가려는 심지(心知)의 욕망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귀신도 찾아와서 머물고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겁니다. 고대의 성왕인 우임금과 순임금, 그리고 전설의 주인공 복희씨와 궤거씨는 모두 이런 방법으로 천하를 다스렸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 P263
"도는 제 모습과 분명함은 있지만 작용이 없고 눈에 보이는 형체가 없는지라, 전해줄 수는 있지만 받을 수는 없으며, 터득할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으니, 스스로 뿌리가 되어 하늘과 땅이 아직 있기 이전에 예로부터 분명히 있어 온 것이다. 귀신과 상제를 신령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만들며, 태극보다 앞서 존재하면서도 높은 체하지 않으며, 육극 아래에 머물면서도 깊은 체하지 않으며, 하늘과 땅보다 앞서 있으면서도 오래된 체하지 않으며, 상고보다 오래되었으면서도 늙은 체하지 않는다.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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