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사회
문윤성 지음 / 아작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완전사회>란 소설은 인터넷 서점에서 우연히 알게 된 소설이란다. 일단 겉표지가 좀 옛스러웠어. 그래서 오히려 눈길을 주었단다. SF라는 말이 아닌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써 있는 것도 눈길을 끌게 했어. 이런 표지 디자인의 이유가 있었단다. 이 소설은 무려 50년이 넘은 소설이란다. 50년 전에 우리나라에도 이런 SF 소설이 있었다니, 놀랍더구나.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아빠의 선입견으로 그 시절에 우리나라에는 SF 소설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구나.

지은이는 문윤성. 본명은 김종안 님이라고 하는구나. 약력을 보니 1916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서 일제 시대 일본인 교사에서 반항하다 퇴학당하고, 광산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소설과 시를 썼다고 하는구나. 그러다가 1946년 단편을 발표했지만, 이후 활동을 하지 않다가 1965 <주간한국> 1회 추리소설 공모전(SF 소설 공모전이 아니라 추리소설 공모전이다)에서 <완전사회>로 당선되었고, 1967년 정식 출간했다고 하는구나. 추리소설의 과학화를 주장했다고 하셨다고 하는구나. 그 이후 소설들을 계속 발표를 하셨고, 2000년에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 SF를 출발 주자라 할 수 있는 이를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아빠가 너무 무심했구나. 아빠가 이번에 읽은 책은 2018년에 재출간한 책이란다.


1.

50년 전 작품이라고 하지만, 그리 낯설지 않단다. 이 책은 1985년에 개정판을 내면서 제목을 <여인공화국>바꿨고, 그 이후 조금씩 손을 보셨다고 하는구나. 1985년은 제5공화국 시절이고, ‘OO공화국라는 말을 즐겨 쓰던 시기라서 여인 공화국으로 했던 것 같구나. ‘여인 공화국보다는 원 제목인 완전 사회가 좀더 좋아 보이는구나.

, 그런 소설 속 이야기를 들려줄게. 인류는 완전인간을 선정해서 미래로 보내려는 계획을 세웠고, 그런 사람들은 지원을 받았는데, 한국의 우선구라는 평범한 회사원이 선정되었단다. 그는 남태평양의 작은 비커츠 섬에 그가 미래로 갈 기지가 있었어. 다른 SF와 비슷하게 저체온 상태로 잠들기로 되어 있었어. 그 비커츠 섬에는 미래에 어떤 일이 날지 모르니 그를 지키기 위한 무기 등 장비가 갖추어져 있었고, 그를 보호하기 위한 사람들로 작은 마을을 이루었어. 그리고 그는 만반의 준비를 언제 깨어날 지 모른 채 잠이 들었단다.

그는 잠깐 자고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161년이 흘러버렸단다. 161년이 흐른 지구의 모습은 우선구가 생각했던 지구의 모습과 전혀 달랐어. 주변에는 여자들만 있었고, 그를 인류의 조상이나 선배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낱 실험대상으로 취급했단다. 우선구를 깨운 뒤에 미래인들은 소노본이라는 곳의 병원에 감금시켰어. 그는 거기 갇혀 있으면서 미래 사회에 적응하려고 애썼어. 세계는 하나의 정부로 통합되어 있었고, 남자들은 없이 모든 구성원이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세상이었어.

우선구는 그들의 언어인 헤민어도 배웠어. 이 헤민어는 한글의 변형이라서 쉽게 배울 수 있었어.  예전이라면 너무 억지 설정이라고 하겠지만, 한류의 열풍이 불고 한글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진 최근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리고 책을 통해 장비도 익히고 기술도 익혔단다. 하지만 그는 계속 갇혀 있었고, 감시의 대상이었어.


2.

우선구는 탈출계획을 세웠고, 간신히 탈출해서 다시 비커츠 섬으로 돌아와 숨어 있었어. 그곳에 있던 기록물과 약혼녀였던 장숙원의 일기를 통해서 자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 지구의 역사에서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단다. 3, 4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거의 모든 인류가 사라지고 전 세계적으로 9천만명 정도만 살아 남았다고 했어. 남은 사람들이 합심하여 다시 재건에 힘쓰게 되었는데, 5차 세계대전이 또 일어났단다. 어떤 과학자가 남자 없이 여자 혼자 아이를 낳는 법을 발견하게 되었고, 폭력적인 남자들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어. 그로 인해 남녀간의 갈등이 생기고 전쟁으로 번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5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것이고, 이 전쟁에서는 남자는 대패하였고, 생존자들은 일부 지구에 남아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화성으로 도망을 갔단다.

세계 대전에 여러 번 발생했지만, 남태평양의 작은 섬 비커츠 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 평화로운 섬 마을을 남아 있었단다. 우선구는 비커츠 섬에 있는 통신 장치로부터 괴전파를 통한 남자 목소리를 듣게 되었어. 하지만 그 전파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어.

비커츠 섬에서 지내고 있는데, 신문 기자 리건이 찾아왔어. 리건의 호의적인 모습에 방심했단다. 리건이 쏜 광선 총으로 정신을 잃었단다. 다시 눈을 뜨니 다시 뉴질랜드 본토로 끌려 왔단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우가 달려졌어. 귀빈 대우를 받았어. 이번에는 감시와 통제는 이어졌어. 귀빈 대우를 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여전히 감시와 통제. 그가 불만을 토로하며 다시 탈출. 하지만 그는 커다란 전기감옥소에 갇히고, 벌레들의 공격과 배고픔에 죽을 위기에 빠지게 되었어. 다행히 아까 그 신문기자 리건이 친구 루비와 함께 우선구를 살려주었단다. 비커츠의 섬에서 리건이 보인 행동도 우선구를 살리려는 순수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야.

리건이 데리고 온 친구 루비는 최고지도자의 조카였어. 이 미래 사회에서도 빽이 통하는가 보구나. 이때부터 좀 안정적인 생활을 했어. 물론 감시 당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지구 상의 유일한 남자일 수도 있으니 말이야. 이 미래 지구에서는 남자라는 것은 적()의 대상이니 그에게 자유가 주어진다고 해도 감시를 완전히 풀 수 없는 점 이해했단다.

그는 점점 미래 사회에 적응을 했어. 아무리 균일화된 세계이지만 이들에게 불만을 가진 이들이 있었고, 이 세계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의 시위에 끌려가 참여했다가 감옥에 갇혀 3년 노동형의 벌을 받고 했어. 그리고 어떤 이들에 의해 강제 탈옥되었는데 알고 보니 어떤 종교의 교주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어. 다시 잡혀와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말이야.

그는 감옥에서 나와서는 자신이 보고 느낀 이 사회를 빗대어 단편 소설 <미래 전쟁>을 썼어. 이 소설의 전문이 액자식 구성으로 실리기도 했어. 지은이 문윤성의 감각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어. <미래 전쟁>에서는 채식주의자와 육식주의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그렸는데, 이 소설이 대박 히트를 치게 되었단다. 그 소설은 여성 대 남성 사이의 전쟁을 빗댄 작품이라고 볼 수 있었어. 그래서 지구인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화성에 살고 있는 이들, 그러니까 남자들과 다시 교류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단다.

이 소설이 1967년이라서 그 이후 등장하는 신기술들을 모르는 상태에서 썼지만,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미래의 기술들이 낯설지가 않았단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들과 유사한 기술들이 담겨 있었거든. 읽기 전에도 그랬지만, 읽고 나서도 지은이 문윤성 님이 정말 창의적이고 정말 글 쓰는 재능이 있는 분 같구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문윤성 님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구나.


PS:

책의 첫 문장: 인간 사회의 영원한 꿈.

책의 끝 문장: 완전인간이란 감정이 무딘 모양이지.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7-17 06: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967년이라니 우리나라 sf의 계보도 만만찮네요.

bookholic 2022-07-17 18:34   좋아요 2 | URL
그렇죠? 1967년에 놀라고, 작가의 상상력에 놀랐습니다..^^

scott 2022-08-10 16: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계신곳 비 피해 없으신지요
서울 무섭게 이틀 폭우로 ㅠ.ㅠ

bookholic 2022-08-11 00:45   좋아요 0 | URL
다행히 동네 배수가 잘되고 있는 것 같아요...^^
Scott님도 비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도 하고요...

mini74 2022-08-10 16: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분 이름을 딴 문학상이 있더라고요. 축하드립니다 *^^*

bookholic 2022-08-11 00:47   좋아요 0 | URL
문윤성 문학상이 있군요...
오늘 받은 적립금으로 수상집을 구매해야겠네요.
좋은 정보 고맙고, 축하해주신 것도 고맙습니다...^^

그레이스 2022-08-10 16: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방금전에 문윤성 문학상에 관한 알림 읽고 왔는데....!

bookholic 2022-08-11 00:4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문윤성 문학상을 통해 제2의 문윤성이 등장하기 바래 봅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새파랑 2022-08-10 17: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북홀릭님~!!
북홀릭님 이름의 문학상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축하드려요 ^^

bookholic 2022-08-11 00:49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그보다 ‘새파랑 문학상‘이 더 있어 보입니다.^^

서니데이 2022-08-10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bookholic 2022-08-11 00:49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비 조심하시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이하라 2022-08-10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 부문에 응모했던 소설로는 여겨지지 않는 스토리인데
아마도 서술 방식이 미스테리한가 짐작해 보았습니다.
이런 수준의 SF소설이 1967년에 있었다니 놀랍기만 하네요.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북홀릭님^^ 기쁜 시간 되세요^^

bookholic 2022-08-11 00:50   좋아요 1 | URL
넵, 늘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문윤성 님의 다른 책들도 함 읽어봐야겠어요~~^^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꼬마요정 2022-08-11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수상집 리뷰도 기대할게요^^

bookholic 2022-08-11 23:4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문윤성 문학상 수상집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thkang1001 2022-08-11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bookholic 2022-08-11 23:44   좋아요 0 | URL
늘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루 남은 금요일 잘 보내시고, 연휴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강나루 2022-08-12 0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이달의 당선작 되신거 축하드려요^^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bookholic 2022-08-13 23:39   좋아요 1 | URL
넵, 늘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강나루 님도 즐거운 연휴 되십시오~~

thkang1001 2022-08-12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고, 다가오는 연휴 잘 보내세요!

bookholic 2022-08-13 23:40   좋아요 0 | URL
넵!! 고압습니다~~

러블리땡 2022-08-12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50년된 SF소설이라니 표지가 리뷰 읽고 다시보니 표지가 좀 멋진것 같기도해요 ㅎㅎ 북홀릭님 이달의 당선작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2-08-13 23:41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데는 책 표지가 팔할이었던 것 같습니다..^^
축하해주셔서 고맙고요, 즐거운 주말과 광복절 되시기 바랍니다~~
 















(296)

우주는 공()이다. 존재에는 실재가 없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기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 실재하지 않기에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고, 깨닫지 못한 이들이 그것을 기적이라 부를 뿐이다.


(333-334)

세계와 자신의 불합치. 어떻게든 이 행성에서 살아갈 이유를 만드는 다른 존재들과 달리 끊임없이 이 행성의 출구를 찾는 존재. 합일되지 않은 세계 속에서 느끼는 고통과 불안. 이해 받을 수 없다는 외로움이 굳어져 만든 마음의 외벽. 동시에 이 세상에 입장해 꼬박 스물네 해를 넘긴 후에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 세상과 이 애의 관계였다. 남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그 애에게도 길이 될 수는 없었다. 그 애의 우물은 왜 생겨난 것일까. 유라는 고민했지만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기야 그 애조차 찾지 못했던 것이었으니 애초에 유라가 알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351-352)

저는 언제나 더 넓은 세계를 갈망했습니다. 그 욕망만이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머물고 있는 세계 밖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 제 욕망은 오로지 그 세계만을 꿈꿨습니다. 제 바람은 언제나 바깥에서 불어왔습니다. 아무리 배를 타고 멀리 나아간다 한들 그 세계에 발붙이고 있는 한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세계였습니다. 그곳에 갈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 저는 언제나 괴로웠습니다. 당신은 제 고통을 모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 그 세계보다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갈 수 없는 그 고통 말입니다. 제 안은 텅 비어 있습니다. 저는 욕망을 좇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은 세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제 그 욕망이 그 세계를 벗어나 더 큰 세계를 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계가 오롯이 저에게 고통만 준다면,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387-388)

사고는 순간이다. 잠시 눈을 뗀 사이, 잠시 방심한 사이, 잠시 안심한 사이. 하지만 그것은 사고에 대해 잘 모르는 소리다. 사고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이고 점층적이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확률을 좁혀가며 그 순간을 향해 뻗어나간다. 그리하여 지점에 충돌하기 전까지 그 일을 막을 무수한 기회가 있었지만 그것을 감지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기에 사회가 존재하고 국가가 존재한다. 개인이 사고의 질주를 눈치채지 못하고 막을 수 없을 때, 국가가 대신하여 사고의 확률을 미리 막아야 한다.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그 해 일어난 사고의 횟수로 알 수 있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고 막을 수 있던 숱한 일들이 안일하고 무책임한 사회 곳곳에 넘실거린다. 그러니 사고는 한순간일 수 없다. 사고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차분히 그 지점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지도를 보기 위해 숙였던 고개를 들었던 그 순간,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그 남자가 이인의 눈에 다시 보인 것도 한순간의 사고가 아닌 이전의 일로부터 파생된 사고의 연장선일 뿐이며 그로 인해 운전대를 급하게 틀다 절벽 아래로 차가 떨어진 것도 결국 계획되어 있던 일인 것이다. 누군가로, 혹은 세상의 어떤 불합리한 힘으로부터.


(404-405)

삶과 죽음의 경계는 슬픔의 척도 같았다. 얼마만큼 슬프고 괴로운지를 알리기 위해서는 삶에서 죽음으로 기꺼이 넘나들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거짓된 고통, 거짓된 슬픔 혹은 크지 않은 고통, 크지 않은 슬픔이 되었다. 고통과 슬픔, 좌절과 모멸, 증오와 살의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누간가 살라고 말했다. 죽을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시리즈 MIDNIGHT 세트 여덟 번째는 역시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의 <죽은 사람들>이란다.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작가란다. 엄청 어렵기로 소문난 <율리시스>의 지은이지. 그 밖에 또 유명한 책으로는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작품들이 있단다. 그 어렵다는 <율리시스>의 지은 사람이니, 아빠는 읽을 엄두가 나질 않아서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단다. 이번 열린책들 35주년 라인업에 그의 작품이 실려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읽었다고 해야 하나?

그나마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읽을만했단다. <죽은 사람들>이란 제목이 낯설다 싶었는데, 이 책에 실린 단편은 모두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단편들이더구나. <더블린 사람들>이 단편 모음집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단다. 소설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쓸 거야. 그러니 <더블린 사람들>은 실제 더블린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오래 전 낯선 더블린에 살았던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나라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인간 본성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1.

첫 번째 소설은 <애러비>라는 소설인데 이십 페이지도 채 안 되는 짧은 소설이란다. 주인공은 친구 맹건의 누나를 짝사랑했어. 그 누가 애러비라고 하는 바자회에 가지 않냐고 물어봤어. 그런데 맹건의 누나 자신은 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지. 그런데도 주인공은 누나가 자기에게 말 걸은 준 것에 기분이 좋아서, 자신이 가서 선물을 사다 주겠다고 약속했단다. 그날 이후 바자회가 열리는 날까지 주인공은 즐거운 흥분 상태에 있었고, 바자회가 열리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단다. 그런데 일정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바자회에 늦게 도착한 주인공,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고, 한 매점에 문을 열었지만, 가게 주인은 팔 생각이 없었고, 그렇게 허무한 하루가 지나갔단다. 이렇게 소설은 끝이 났는데, 짝사랑에 빠진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짧지만 잘 묘사한 것 같구나.

두 번째 소설은 <가슴 아픈 사건>이란 작품이란다. 주인공 제임스 더피는 채플리 조드란 곳에 살고 있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은행 출납원이란다. 그런데 우연히 그는 시니코 부인을 만나면서, 그의 삶은 평범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어. 시니코 부인과 만남이 단순한 만남이 아닌 사랑이었거든. 결혼한 부인과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들도 사랑하지만 한 켠으로 윤리적 불편함을 갖게 있었지. 시니코 부인이 더 적극적인 자세로 나오자, 그 부담감에 제임스는 시니코 부인과 헤어졌어. 잠깐 평범하지 않던 삶을 살았던 제임스 더피는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왔단다. 그로부터 4년이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신문 기사에서 시니코 부인이 기차에 치여 죽었다는 기사였어. 시니코 부인은 2년 전부터 폭음에 빠져 지냈다는 내용도 있었어. 제임스 더비는 자신도 시니코 부인의 죽음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단다. 사랑하지 않던 남편과 살던 시니코 부인에게 진정 사랑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쉽게 떠나버리자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았을까. 그래서 폭음에 빠지기도 하고시니코 부인이 불쌍하고, 제임스 더피가 잘못했구나.

….

세 번째 소설은 <죽은 사람들>이라는 작품이란다. 소프라노 출신인 줄리아와 음악인이었던 케이트는 서로 자매이고 지금은 같이 살고 있었어. 그들에게는 왕립음악원 출신인 조카 메리 제인이 있는데, 메리 제인도 같이 살고 있었어. 릴리라는 여자가 그들의 집을 관리해주고 있었어. 그들은 연회를 열고 사람들을 초대했단다. 또 다른 조카인 게이브리엘 콘로이과 그의 아내 그레타도 초대를 받았어. 많은 소님들이 참석으로 해서 그들은 음악이야기,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 이야기, 정치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그 파티에서 게이브리엘은 사람들 앞에서 축하 인사를 했는데, 이모들과 조카 메리 제인에 대한 칭찬을 해주었단다. 파트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게이브리엘과 그레타. 파티를 다년 온 후 그레타가 말이 없자 게이브리엘은 왜 그런지 물어보았고, 망설이던 그레타는 파티에서 들은 노래 때문에 옛날에 사랑했던, 하지만 지금은 죽고 없는 한 남자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 그 남자는 마이클 퓨리라는 사람인데 열일곱 살에 죽었다고 했어. 그 이야기를 듣고 죽은 남자에게 질투를 하는 게이브리엘. 이제 죽고 없는 사람인데 말이야. 그렇게 질투를 하면서도 게이브리엘은 한편으로 그런 생각을 했어. 이미 죽고 없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는가 말이야. 그러면서 이것이 인생인가? 생각했어. 그런데 그 죽은 사람들이 언제까지 영향을 미칠까?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소설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구나. 이 소설의 이야기를 통해 아빠도 아빠에게 영향을 주신 돌아가신 분들이 떠오르게도 했으니 말이야.

이렇게 세 작품을 소개해 주었는데, 이 세 작품 모두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을 하면서 그들을 통해 우리의 삶과 추억을 생각하게 해주었던 것 같구나. 그럼 오늘은 이상 줄인다.


PS:

책의 첫 문장: 노슬리치먼드가는 막다른 골목이어서 크리스천 브러더스 학교가 아이들을 풀어 주는 시간을 제외하면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거리였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눈이 부드럽게 살포시 전 우주에, 살포시 부드럽게, 마지막 종말을 향해 하강하듯이, 모든 산 자들과 죽은 자들 위에 내려앉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영혼도 천천히 희미해져 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자 강의 - 혼돈의 시대에 장자를 읽다
전호근 지음 / 동녘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알고 싶은데, 선뜻 쉽지 않아서 많이 읽지 않는 분야가 철학, 특히 동양 철학이란다. 오래된 동양의 가르침들을 잘 이해하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의 자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되는데, 그 깊이를 아빠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더구나. 그래도 가끔씩은 그런 책들을 읽어보려고 한단다. 그리고 그런 책들을 읽고 나서 쓰는 독후감 또한 쉽지 않단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 깊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 책이 좋다 나쁘다 평하기가 어려우니 뭐라 써야 할지 망설여진단다.

아빠가 이번에 읽은 전호근 님의 <장자 강의> 역시 핵심을 뽑아서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기 쉽지 않더구나. 이 책을 몇 년 전에 사두고 안 읽고 미뤄두고 있던 이유도 앞서 이야기한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단다. 이번에 읽게 된 것은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 그냥 책장에 꽂혀 있던 이 책과 눈이 맞았기 때문이야.

전호근이라는 분은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20년 이상 동양철학 고전을 강의하신 분이라고 하더구나. 혹시나 하고 유튜브로 검색을 해 보았더니, 전호근 님의 여러 강의를 만나볼 수 있더구나. 장자에 대한 강의도 있는데, 시간이 넉넉해야 볼 수 있을 정도가 많더구나. , 너희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손 가는 대로 키보드를 두들겨 볼게.


1.

<장자>라는 책에는 혁대를 훔친 자는 사형을 당하고, 나라를 훔친 자는 임금이 된다는 내용이 있단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장자가 춘추전국시대, 그러니까 전쟁으로 온 세상이 뒤덮은 시대에 살았기 때문이란다. 장자의 본명은 장주라고 알려져 있고, 태어난 해, 출신 나라가 불분명했는데, 몽이라는 지역에서 태어났다고 했어. 이 몽이라는 지역은 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자주 바뀌었다고 했어. 그러니 정치적 견해를 내기가 쉽지 않았어. 현재 점령한 나라를 좋게 이야기했다가 주인이 곧 바뀔 수 있으니 말이야. 그래서 공자와 맹자의 책들은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반면 장자의 책들은 대부분 우화를 통해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그런 우화를 통해 이야기를 함으로써 당시의 정치상을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치적인 박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던 거지.

장자의 글이 대부분 우화로 되어 있다고 보니, 장자의 글들은 읽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한다고 했어. 그것 또한 장자의 글의 특징이라고 하는구나. 춘추전국시대에 많은 철학자들이 나와서 제자백가라고 했는데 각 철학자들은 이 전쟁과 혼란을 극복하려는 자세가 달랐단다. 장자는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장자는 무위자연을 중시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했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어딘가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쓸모 없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단다. 오늘날 우리는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지, 쓸모 없는 사람이 되라고 하면 이상하게 쳐다볼 거야, 그렇지? 하지만 장자는 쓸모 없음의 쓸모를 이야기했단다.

쓸모가 없는 커다란 나무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도끼에 찍혀나가지 않을 수 있다는 거야. 그것이 바로 쓸모 없음의 쓸모인 거지. 전쟁이 극성인 시대에 쓸모 있는 이들은 어떻게 되겠니전쟁에 끌려가겠지, 그것은 장자가 생각하는 삶은 아니었던 거야.

======================

(91)

마무리하자면 장자는 커다란 나무는 바로 쓸모없기 때문에 도끼에 찍혀나갈 염려도 없고 어떤 사물도 해칠 염려가 없는데 어찌 쓸모없다는 이유가 괴로운 것이겠는가 하고 반박합니다. 결국 장자는 쓸모없음이 바로 큰 쓸모이고, 큰 쓸모가 바로 양생(養生)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지요.

======================

그 당시 사람들도 보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하면 천한 자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었을 거야. 장자는 그런 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않는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란다.

======================

(173)

그에 따르면 성인은 해와 달을 곁에 두고 우주를 옆구리에 낄 정도로 스케일이 큰 존재이지만 늘 만물과 함께 하려 하고 희미한 도에 자신을 두어서 노예도 존중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것은 나에게 이롭고 어떤 것은 해롭다는 식으로 분류하여 이로운 것은 취하고 해로운 것은 피합니다. 그런데 성인은 만물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한 사람도 똑같이 존중합니다. 사람을 볼 줄 아는 것이지요. 굳이 성인이 아니라도 그런 경우는 있습니다.

======================


2.

장자의 제1편은 소요유란다. 소요유는 낮잠을 자면서 논다는 이야기라고 했어.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고, 그것이 전쟁에 저항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이 장에서는 커다란 새와 작은 새의 우화를 통해서 어떤 것이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름을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해를 못하는 것이지, 상대가 틀린 것이 라는 거야.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개념이 다른 것을 이야기했던 거야.

장자와 노자를 보다 보면 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도라는 것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어. 사물을 제대로 보는 것이 바로 도라고 했단다.

======================

(152)

여기서 도를 대단한 추상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흔히 만나는 사물을 제대로 보는 것이 바로 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자가 보기에 사물을 이런 저런 방식으로 나누기 시작하면 그런 사람의 눈에는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당연히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겠죠. 누가 현자인지 보일 턱이 없습니다. 그런 걸 보면 노예의 무리의 섞여 있는 백리해가 현인인 것을 알아보고 양 다섯 마리를 주고 풀려나게 한 진나라 목공이나, 현인 월석보를 말 한 필과 바꿔 온 제나라 재상 안영 같은 이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

()라는 것은 어디든 있다고 했고, 이것과 저것은 상대적인 것으로 함께 가야하고, 나의 기준이 아닌 자연에 따라 시비를 따져야 한다고 했어. 옳고 그름을 나누지 말고, 크고 작음을 나누지 말고 다름을 인정하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단다.

장자에 나오는 우화 중에 가장 유명한 우화는 바로 호접몽(胡蝶夢) 일화란다. 장자가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속에서 자신이 나비가 되었는데, 그 꿈에서 꾸고 나서 크게 깨닫게 된단다. 우리의 지금 삶이 한낱 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야.

======================

(193)

장자가 꿈을 꿉니다. 유명한 호접몽(胡蝶夢)입니다. 꿈에 나비가 되어 날아다닙니다. 사람이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그런지 적지(適志)’라고 표현한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뜻에 꼭 맞아서 전혀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자기가 장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나비가 된 것이죠. 사실 난다는 표현은 인간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루었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장자의 첫 이야기는 대붕이 날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대목은 바로 장자 자신이 날아가는 장면입니다. 대붕은 구만리의 하늘을 타고 납니다. 그리고 장자는 물화’, 곧 나비가 됨으로써 하늘을 납니다. 구만리의 하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비의 날개는 아주 가벼우니까요.

======================

장자의 이야기는 혼돈 설화로 마무리한단다. 혼돈은 눈, , , 귀가 없는 존재였단다. 남쪽의 임금은 숙이고, 북쪽의 임금은 홀인데, 숙과 홀이 혼돈의 땅에서 자주 만났는데, 혼돈이 그들을 잘 접대해 주어서 그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숙과 홀은 혼돈에게 하루에 하나씩 구멍을 뚫어 주었다고 했어. 그러니까 눈, , , 입을 만들어 준 거지. 그러자 혼돈은 일주일 만에 죽고 말았다는 것이 혼돈 설화의 전부란다. 숙과 홀은 문명을 의미하는 것이고, 혼돈은 자연의 그 자체, 무위자연을 의미하려는 것이란다. 이 일화 또한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경우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란다. 선의로 행한 것이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러한 예는 인류 역사에서 많이 볼 수 있다고 했단다. 장자의 주제를 한 마디로 하자면,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이해를 했단다.

….

이 책은 <장자>에 대한 강의이다 보니 <장자>에서 인용한 글들이 많았단다. 그런 인용한 글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글들은 아빠가 다시 발췌해 보았는데, 그 중에 가장 와 닿았던 내용을  너희들에게 소개해주는 것으로 오늘 편지를 마치련다. 편지의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빠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쓴 편지라는 점 이해해 주고

======================

(371)

자연이 하는 일을 알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아는 사람은 지극한 사람이다. 자연히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자연을 따라 살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아는 사람은 그가 알고 있는 것으로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을 길러 천수를 마쳐서 중도에 요절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앎이 성대한 사람이다. 비록 그러하나 근심이 있으니 앎이라는 것은 마주하는 것이 일정한 뒤라야 꼭 맞게 되는데 마주하는 것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내가 자연이라고 생각한 것이 인간에 속한 것이 아닌 줄 알며, 내가 인간에 속한 것이라 여긴 것이 자연이 아닌 줄 알겠는가. 참다운 사람이 있은 뒤라야 참다운 앎이 있게 되는 것이다.”

======================


PS:

책의 첫 문장: <장자> 이전의 고전 중에서 <논어>는 약 1 5000여 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책의 끝 문장: 붕새가 남쪽으로 날아가는 이유를 그 누가 알겠습니까?


<1장>을 통해 장자는 모든 존재가 평등한 제물의 세계를 들려 주었습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죠. 인간 세상에 만연한 것이 차별입니다. 그런 차별은 어떤 근거에서 나오는가? 장자가 보기에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차별의 근원에는 언어가 놓여 있습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물을 분류합니다. 이 분류는 대단히 폭력적입니다. 장자는 이러한 사실을 밝힘과 동시에 차별이 없는 세상을 희구했던 옛 성인 요와 순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 P148

우리는 어떤 권위에 의존해서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하지만 장자가 보기에 그런 것들은 모두 화성(化聲), 곧 변화하는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꿈처럼 일시적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둠에 갇힌 존재일까요? 어떻게 해도 행복해지거나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일까요? 장자는 한 가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바로 ‘천예(天倪)’라고 하는 자연의 도를 따라 만물을 조화하는 것입니다. 자연의 도를 따르게 되면 세상이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여길 수 있게 됩니다. 시비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장자가 바라는 경지입니다. - P182

"우리의 삶은 끝이 있지만 지식은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을 가지고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면 위태롭다. 그런데도 지식을 추구하면 더욱 위태로워질 뿐이다. 착한 일을 하더라도 명예에 가까이 가지는 말며, 나쁜 일을 해도 형벌에 가까이 가지는 말고, 중간을 따르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으면 자기 몸을 보호할 수 있고, 생명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고, 어버이를 모실 수 있으며, 천수를 다 누릴 수 있다." - P202

물욕을 탐하지 않는다는 것은 외부와의 관계를 차단한다는 뜻이 아니라 외부의 물욕을 나서서 맞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가만히 머물지 못하는 것은 이목의 욕망을 따라 마음을 가만히 두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곧 이목의 감각을 닫아서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극을 그대로 두되 그것을 따라가려는 심지(心知)의 욕망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귀신도 찾아와서 머물고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겁니다. 고대의 성왕인 우임금과 순임금, 그리고 전설의 주인공 복희씨와 궤거씨는 모두 이런 방법으로 천하를 다스렸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 P263

"도는 제 모습과 분명함은 있지만 작용이 없고 눈에 보이는 형체가 없는지라, 전해줄 수는 있지만 받을 수는 없으며, 터득할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으니, 스스로 뿌리가 되어 하늘과 땅이 아직 있기 이전에 예로부터 분명히 있어 온 것이다. 귀신과 상제를 신령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만들며, 태극보다 앞서 존재하면서도 높은 체하지 않으며, 육극 아래에 머물면서도 깊은 체하지 않으며, 하늘과 땅보다 앞서 있으면서도 오래된 체하지 않으며, 상고보다 오래되었으면서도 늙은 체하지 않는다. - P4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8)

슈테판 성당은 살아 있는 화석이다. 중세 도시의 흔적을 온몸에 지니고 있다. 원재를 12세기에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었는데 큰불이 나서 무너졌다. 그 자리에 14세기 초부터 2백여 년 걸려 새로 성당을 지었는데 종교 건축양식으로 바꾸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흔적은 성당 전면에만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길이 107미터 너비 34미터, 축구장만 한 땅을 딛고 선 본당 건물에는 첨탑이 넷 있는데 남탑인 슈테플이 136미터로 단연 높다. 벽돌을 생선 뼈 모양으로 짜 맞춘(herring bone) 지붕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장 쌍두(雙頭) 독수리가 새겨져 있었다. 내부시설은 권력자의 취향과 유행에 따라 여러 차례 달라졌지만 중앙설교대를 비롯한 중심 공간을 고급 대리석과 화려한 귀금속으로 꾸민 것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32)

온몸을 적셔 준 비엔나커피의 달콤함이 물 밑으로 가라앉는 듯한 우울함을 덜어주었다. ‘이성은 고상할지 몰라도 사람의 내면을 항구적으로 지배하지는 못해. 매 순간 더 강하게 인간을 끌어당기는 것은 감각인지도 몰라. 어때? 그런 것 같지 않아? ‘비엔나커피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잠깐, 오해를 피하려면 비엔나커피라고 따옴표를 한 이유를 말해야겠다. 빈에는 비엔나커피가 없었다. 딱 한군데, 부다페스트행 기차를 기다렸던 중앙역 로비의 비스트로에 비엔나커피라고 써 붙여 놓은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건 비엔나커피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길다방 커피에 생크림을 올린,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은 정체불명 음료였다.


(66-67)

사람들은 비운의 주인공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지만, 빈 사람들이 시씨를 사랑하는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운명에 의해 권력형 셀럽이 되었지만 시씨는 자기다운 삶을 추구했다. 그녀는 남편이 황제여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혼인했다. 황후의 권력과 화려한 궁정 생활에서 의미와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남편이 다른 여인을 사랑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빈을 떠나 여행자의 삶을 영위했다. 아름다운 몸과 맑은 정신을 유지하려고 처절한 노력을 쏟았고 신분의 차이를 넘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려 했다. 운명을 거부하거나 극복하지는 않았으나 운명에 갇히지도 않았다.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의미를 느끼는 인생을 살아나가려고 번민하고 도전했다. 그리고 그런 끝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비극적 죽음을 맞았다. 역사의 위인은 아니었으나 사랑할 만한 미덕을 지난 황후였음에는 분명하다. 그러니 시씨의 사진과 초상화를 마케팅 수단으로 쓰는 빈의 상인들을 욕하지 마시라. 그들은 시씨를 정말 사랑해서 그러는 것이다.


(73-74)

마리아 테레지아가 오로지 타고난 성격과 재능 덕분에 유능한 군주가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남자 형제가 없었기에 어려서부터 군주가 되기 위한 공부를 했고 권력 행사와 관련한 직접 간접 경험을 쌓았다. 쇤브룬 궁전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내게 말했다. “리더십을 형성하려면 지적,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학습과 경험을 해야 한다.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그런 기회를 얻는다면 누구라도 탁월한 리더가 될 수 있다. 나를 보라.”


(101)

도나우강은 알프스 남쪽 경계를 타고 동쪽으로 흐르면서 빈을 지난 다음 부다페스트 근처에서 직각으로 몸을 틀어 남쪽으로 내려간다. 헝가리를 벗어날 때 다시 동으로 전향해 카르ㅏ티아산맥과 발칸 산맥 사이의 협곡을 따라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등 발칸반도 북부를 가로지른 후 루마니아 남부 평원과 우크라이나 저지대를 거쳐 흑해에 들어간다. 숱한 지류를 끌어안으며 알프스의 발원지에서 흑해까지 3천 킬로미터를 달리는 도나우의 품에서 빈, 부다페스트, 베오그라드 등 크고 작은 도시들이 자라났다. 1990년대에 라인강과 연결하는 운하가 개통되어 이제 도나우 물길은 흑해에서 북해까지 통하게 되었다. 하류의 도나우는 잔물결이 흐르는 푸른 강이지만 빈과 부다페스트 구간의 도나우 상류는 그렇지 않다. 탁류가 빠르게 흐르는 위험한 강이다.


(114)

부다페스트의 화려함은 헝가리 사람들이 지니고 있었던 열등감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사의 상처를 감쪽같이 지워버린 빈과 달리 부다페스트는 그 모든 것을 내놓고 보여줌으로써 여행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증언하는 초대형 기억 공간을 조성한 베를린 말고는 부다페스트만큼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을 적극 홍보하는 도시를 찾아보기 어렵다. 부다페스트에서 반드시 그런 것을 챙겨야 하는 건 아니지만, 사연을 알면 부다페스트가 더 정겹게 안겨 오는 느낌이 들 것이다.


(135)

언드라시(Andrassy Gyula, 1823~1890)는 오늘날 슬로바키아공화국에 속하는 곳에서 태어났다. 자유주의 성향을 가진 백작의 아들이었던 그는 소년 시절부터 민족주의 정치 운동에 참여했고 세체니 이슈트반의 눈에 들어 스물세 살에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1848년 귀족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크로아티아 영토전쟁에 종군했으며 헝가리혁명 정부의 명에 따라 이스탄불로 파견되어 오스만제국 정부의 협력을 끌어내려고 했다. 혁명을 진압한 합스부르크제국은 그를 반역자의 두목으로 지목했다.


(181)

나는 얀 후스를 존경한다. 후스를 모른다고 해서 프라하 여행에 지장이 생기진 않지만 알면 프라하 공간과 체코 사람들의 정서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고등학생 시절 세계사 교과서에서 얀 후스(Jan Hus, 1372~1415)라는 종교개혁가의 이름을 처음 보았다. 그렇지만 후스가 그저 종교개혁가로서 프라하의 광장에 서 있는 건 아니다. 후스의 동상은 보헤미아 민족주의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민중의 열망을 담고 있다. 그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았고 죽음 앞에서도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럴 의도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의 삶과 죽음은 보헤미아와 유럽의 역사를 바꾸었다.


(188-189)

그래서 보헤미안이라는 말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보헤미아인에 해당하는 체코 말은 체키인데 뜻은 정반대에 가깝다. ‘체키는 슬로바키아인이나 모라비아인 같은 소수민족을 제외한 보헤미아의 체코인을 가리키는 체코 말이고, ‘보헤미안은 독일인과 집시를 비롯해 체코인이 아닌 보헤미아 사람을 지칭하는 외국어였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보헤미안의 뜻이 달라졌다. 유럽 사회의 주류로 지위를 굳힌 부르주아 계급의 틀에 박힌 도덕 규범이나 행동 양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한 가치관에 따라 자유분방하게 활동하는 지식인과 예술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주로 시인, 소설가, 화가, 음악인이었다.


(209)

체코 사람들은 성 바츨라프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시, 소설, 영화, 연극, 노래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가 죽은 지 1천 년이 된 1929 9 28일부터 체코슬로바티아공화국 정부가 개최한 축제를 보려고 75만 명의 시민들이 프라하에 몰려들었다. 지금도 해마다 그날에는 성당마다 대대적인 추모 미사를 연다. 카렐 4세가 실제적 국가 창설자라면 성 바츨라프는 정신적 국가 창설자였다. 생일이 확실치 않아서 사망한 날을 정신적인 국경일로 삼았다. 통치자로서 거론할 만한 업적도 없고 재위 기간도 짧았지만 도덕적 정치적 비난을 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게다가 보헤미아의 자존을 지키려고 외세에 대항하다가 사악한 동생의 손에 목숨을 빼앗겼다. 긴 세월 외세와 종교권력의 억압과 핍박을 받으며 자존과 독립을 갈구했던 보헤미아 민중이 역사에서 그를 불러냈다. 영운은 탄생하는 게 아니다. 민중이 찾아내고 만든다.


(248)

영국과 미국 공군은 1945 2 13일 밤부터 사흘 동안 네 차례 번갈아 드레스덴을 융단폭격했다. 그때마다 고열의 화염폭풍이 도심을 집어삼켰다. 군수품 공장과 기차역뿐 아니라 주택, 상점, 호텔, 술집, 교회, 성당, 병원, 오페라하우스, 영화관, 동물원, 학교, 엘베강의 선박까지 도심 반경 3킬로미터 안에 있던 모든 것이 터지고 녹고 부서지고 불탔다. 사망자만 20만 명이라며 연합국을 비난한 나치 정부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그 폭격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몇인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전쟁이 끝나고 여러 해가 지난 뒤에도 무너진 건물에서 시신이 나왔고 지하 방공호 한군데서 1천여 명의 시신을 찾은 일도 있었다. 체코 접경지 수데텐란트(보헤미아의 독일 국경 인접 지역)에서 쫓겨나 드레스덴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던 피난민들은 거주자 통계에 잡히지도 않았다. 당시 시신을 수습한 사망자만 35천 명이 넘었다. 독일이 엘베의 피렌체라고 자랑했던 드레스덴에는 공장 몇 개 말고는 전쟁과 관계있는 시설이 없었는데도 연합국 공군은 엄청난 양의 폭탄을 투하했다.


(258)

집은 건축주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종교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건축양식은 건축기술의 발전, 활용할 수 있는 건축자재의 변화, 건축주가 동원할 수 있는 재정의 규모 등 여러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건축주의 철학과 욕망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로마제국 시대에 지은 교회는 무섭지 않다. 아테네 도심 골목의 오래된 정교회들은 아담하고 소박하고 정겹다. 원래 성당이었던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 박물관은 웅장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중세 유럽의 대세였던 고딕 양식 성당들은 그렇지 않다. 높고 날카로운 첨탑과 장중한 스테인글라스로 경외심또는 공포감을 강요한다. 고딕 양식은 가톨릭교회가 세속권력과 결탁하거나 스스로 세속권력을 능가하는 권력이었던 시대의 지배적 건축양식이다. 그들이 그런 집을 지은 것은 민중이 그곳에서 두려움을 느끼며 복종하기를 원해서였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