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스트 걸 - 노벨 평화상 수상자 나디아 무라드의 전쟁, 폭력 그리고 여성 이야기
나디아 무라드 지음, 제나 크라제스키 엮음, 공경희 옮김, 아말 클루니 서문 / 북트리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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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조그마한 지구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단다. 그 전쟁은 군인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준단다. 특히 여성이나 아이들과 같은 이들은 전쟁에 더욱 고통을 받게 된단다. 지구 상에는 여러 분쟁 지구가 있는데, 그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 중에 하나가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 지역이란다. 일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로 인해 이슬람 전체에 대한 이미지도 실추되었고, 그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단다.

오늘 너희들에게 소개해줄 책은 그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큰 아픔과 고통 속에서 살다가 탈출에 성공한 이후 여성 인권 운동과 IS의 만행을 전세계에 알리는 나디아 무라드라는 사람의 자서전이란다. 나디아 무라드는 두 번째 최연소 수상자로 2018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어. 평화롭고 조용한 이라크의 시골 마을에 도대체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 읽는 내내 가슴 아프고 답답했단다. 나디아 무라드의 가족, 친구들을 고통 속에 빠뜨린 이들은 IS라는 사람들인데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IS Islamic State의 약자로 ISIS(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로도 부른단다. 이 책에서도 IS ISISI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단다. 아빠는 철자가 짧은 IS라고 할게. IS라는 조직은 책에 설명이 되어 있으니 그걸 참고하는 것이 낫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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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ISIS(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 2003년 국제 테러 조직 알 케에다의 이라크 하부 조직에서 출발해, 2011년 시리아 내전 이후 시리아로 거점을 옮겨 활동하였으며 세력을 넓혔다. 급진 수니파 무장 단체로, 집단 학살과 잔인한 테러를 일삼았다. ISIS IS(Islamic State)가 그들 스스로 국가 수립을 선언하기 이전의 이름이다. 2019년 현재 IS는 대부분 와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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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 지은이 나디아 무라드의 이야기를 해볼게.

 

1.

나디아가 살고 있는 곳은 이라크 북쪽의 코초라는 작은 야지디 마을이란다. 야지디란 이라크 모술 지역과 터키 디야르바기르 지역, 이란의 일부 지역, 아르메니아 등지에 분포된 종교로써,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유대교, 네스토리우스 파의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도적인 요소가 혼합된 종교라고 하는구나. 나디아가 살고 있는 코초 마을의 사람들은 대부분 야지디를 믿고 있었어. 코초 사람들의 언어는 쿠드르어를 사용했으며, 종파 유지를 위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결혼하지 않았대. 종파 유지를 위해 다산을 장려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나디아도 11남매 중 막내로 1993년에 태어났단다. 나디아의 아버지는 첫 번째 부인과 네 남매를 낳았고 나디아의 어머니와 열한 남매를 낳았단다.

야지디가 정통 이슬람교가 아니다 보니, 이웃한 다른 종파들로부터 탄압을 받기도 했는데, 특히 수니파 아랍족이 그들을 많이 탄압했다는구나. 코초 마을이 이라크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라크 북쪽은 늘 전쟁과 끊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여러 민족과 종교의 종파들이 이웃하고 살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아빠가 예전에 읽은 김영미 님의 <세상의 왜 싸우는가>라는 책에서 알게 된 것인데 쿠르드 족이 살고 있는 땅이 엄청 큰데 중동 여러 나라에 걸쳐 있고, 그들이 독립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했어.

국경이 불분명하던 중동 지역을 서양 열강이 자기 마음으로 국경을 긋다가 쿠르드 족을 여러 나라에게 속하게 국경을 긋는 바람에 생긴 문제라고 했어. 그때 쿠르드 족을 하나의 나라로 인정하는 국경을 그었다면 나았을 텐데 지금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단다. 쿠르드 족은 쿠르드 족대로 독립 운동을 할 수 밖에 없고 말이야. 이라크는 한때 수니파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 지배했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에는 시아파로 지배를 하고 있었어. 아무튼 코초 마을이 있는 이라크 북쪽 지역은 상황이 늘 복잡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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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코초의 북동쪽, 쿠르드 자치구의 남쪽 경계에는 아랍인과 쿠르드 인에 이어 제3의 민족인 투르크멘족이 산다. 무슬림은 투르크멘족 역시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뉜다. 기독교인들은-그중 아시리아인, 칼데아인, 아르메니아인-나라 전역, 특히 니네베 평원을 흩어져 산다. 기타 지역에는 아프리카인과 같은 마쉬 아랍족을 비롯해 카카이, 샤박, 로마니, 만다야 같은 소수 집단이 산다. 바그다드 인근 어딘가에는 아직도 이라크의 유대인 집단이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고 들었다. 이라크의 종교와 민족을 두고서는 다양한 구분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쿠르드족은 수니파 무슬림이지만, 그들은 쿠르드족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야지디의 경우는 종교를 믿는 이들이 그 자체로 하나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이라크 아랍족은 시아파나 수니파 무슬림이다. 이러한 복잡한 구분들이 오랜 세월 수많은 분쟁을 야기해 왔다. 이런 세세한 이야기는 이라크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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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의 집안 이야기를 다시 해줄게. 나디아의 아버지가 나중에 후처를 들인 후 어머니와 식구들을 버렸대. 그렇다 보니 나디아의 어머니와 아이들은 가난하게 살았다고 하는구나. 2003년에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돌아가신 이후는 더욱 생활이 궁핍해졌지만, 나디아의 어머니가 그 많은 아이들을 돌보며 어찌어찌 꾸려나갔단다. 나디아의 식구들은 가난했지만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지냈어. 나디아가 어렸을 때 코초 마을도 개방이 조금씩 되어 텔레비전, 세탁기 등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서구 세계와도 조금씩 교류를 하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수니파 사담 후세인이 정권을 잡은 이후 쿠르드 지역을 포함한 이라크 북쪽 지역에 강력한 탄압이 이어졌어.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는 2003년까지 이어졌단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했을 때 쿠르드 지역에서는 해방이라고 이야기를 했어. 야지디 사회도 안정을 되찾고 외부와 교류도 하게 되었단다. 한편 정권을 잃어버린 수니파는 조금씩 반항군을 조직하였는데, 그 조직이 점점 커져서 나중에 IS가 되었단다.

 

2.

2009년 미국은 이라크에서 철수를 했어. 미국이 철수하자마자 힘을 키워오던 IS가 쿠르드 지역을 점령하게 되었지. 그들의 침략은 예견되어 있어서 나디아가 살고 있는 코초 마을 사람들도 도망갈 기회가 있었어. 하지만 쿠르드 자치 정부에서 그들이 방어하겠다면서 그냥 있으라고 권고했지. 그런데 어느날 쿠르드 지역의 사람들 대부분 도망을 가 버렸고, 야지디 사람들만 그대로 남겨져 있다가 IS에게 점령당하고 말았어. IS는 이라크 북부 주요 도시인 모술을 점령하고 야지디 마을들을 모두 포위했는데 나디아 살고 있는 코초 마을도 포위되었어. 외부와 모든 것이 단절된 코초 마을은 먹는 것도 부족한 상태에서 미국이든 쿠르드든 구조만 기다리는 상황이었어.

하지만, 미국과 쿠르드 모두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어. 굶주려 죽는 사람도 생겼고, 탈출하다가 잡혀 죽는 사람도 생겼어. 점령군이 야지디 마을들로 들어와서, 젊은 남자들만 모아서 데리고 갔는데 그들은 모두 총살 당했단다. 나디아 오빠들 중 두 명이 그렇게 죽고 말았어. 다른 오빠 중에는 총상을 입고 죽은 척하고 있다가 밤중이 되어서 산으로 도망을 간 오빠도 있었어. IS는 여자들과 아이들은 따로 모아 감금했는데, 며칠 뒤 젊은 여자들을 데리고 모술로 데리고 갔어. 가는 길에 성추행을 당하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게 되어 나디아는 항의했다가 뺨만 맞고 말았단다. 더 심한 것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나디아와 여자들은 어떤 곳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곳에 먼저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었어. 강간 당하고 IS의 간부들에게 성노예로 끌려간다는 거야. 이것이 21세기에 있을 법한 이야기란 말인가. 나디아는 성노예로 살 바에는 자살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여 자살을 생각했다가 살아서 도망갈 계획을 세우기로 했단다. 하지만 쉽지 않았어. 나디아는 조카인 캐서린, 니스린, 로지안과 올케 질란이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얼마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단다. 모두 성노예로 팔려가게 되고, 나디아도 하지 살만이라는 사람에게 팔려갔어. 나디아는 하지 살만에게 강간과 폭행을 당해야 했어. IS에게는 양심도 없고 인권도 없고 윤리도 없었어.

나디아는 혼자 있는 기회를 틈타 도망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단다. 실패에 대한 대가는 너무 컸어. 경비대 3명에게 성폭력을 당하게 하고, 다시 다른 IS 사람에게 팔려갔단다. IS 사람들을 다에시라고 하는데 그래서 이 책에서 다에시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단다. 그 이후로도 계속 다른 다에시로 팔려 다니는 나디아한 명쯤은 나디아를 불쌍히 여길 만도 한데, 다에시들은 모두 짐승 같은 놈들이었어. 나디아는 다시 도망을 시도했어.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나디아는 신에 운명을 맡긴다는 생각으로 아무 집이나 노크를 했어.

 

3.

열린 문으로 들어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도와달라고 애원을 했어. 그 집은 수니파 집안이었지만, 심성이 모두 착한 사람들이었단다. 자신의 지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나디아를 숨겨주고 도망가는데 도와주겠다고 했어. 그 집은 히샴이라는 사람이 가장이었는데, 히샴의 도움으로 외국에 있는 큰 오빠 헤즈니와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어. 헤즈니와 도움으로 탈출하게 되면 만나는 장소를 잡았단다. 그런데 그곳까지 나디아 혼자 가기는 너무 위험했어. 나디아는 도망자 신분으로 수배령도 내려진 상태였거든. 검문소마다 사진도 붙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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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지난 3년간 야지디 여자들이 ISIS에게 잡혀 성 노예가 된 사연을 많이 들었다. 대부분 같은 폭력을 겪은 피해자들이었다. 우린 시장에서 판매되거나, 신병 혹은 고위 지휘관에게 선물로 건네졌다. 그러면 그의 집으로 끌려가서 강간당하고 모욕을 받았으며, 대부분 폭행당했다. 그런 뒤에는 다시 팔리거나 선물로 건네져서 강간과 폭행을 당하고, 또다시 팔리거나 선물로 건네져 강간과 폭행을 당했다. 쓸모가 다하고 죽기 전까지 이런 식이었다. 탈출을 시도하면 지독한 벌을 받았다. 하지 살만의 경고처럼 ISIS는 검문소에 우리 사진을 붙였고, 모술 주민들은 노예를 가까운 IS 센터에 신고하라고 지시받았다. 그러면 5,000달러를 보상금으로 받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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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샴의 큰아들 나세르가 탈출하는 것을 도와주기로 했어. 나디아와 부부 사이로 위장을 하고 나디아의 친정집에 가는 것으로 말을 맞췄어. 나세르 또한 이것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었단다. 드디어 그들의 탈출이 시작되었단다. 가장 힘든 관문은 모술 밖으로 나는 것이었어. 모술 밖으로 나가는 모든 차들에 대해서 검문을 하는데 무척 자세히 조사를 했어. 몇 개의 검문소를 지나는데, 읽는 아빠도 조마조마하더구나. 마지막 검문소에서 모술 밖의 수니파 사람 중에 신원을 보증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어. 네사르는 아버지의 친구분이 생각이 났단다. 그 아버지의 친구와 통화가 되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어.

모술을 통과한 이후에도 방심하지 않고 여러 번 택시를 갈아 타고 안전 지역인 쿠르디스탄에 드디어 도착을 했단다. 그곳에서 조카 사바와 만났어. 그곳까지 목숨을 걸고 도와주었던 네사르는 이제 다시 모술로 돌아가야 했어. 나중에 알게 된 소식으로는, IS가 네사르가 나디아를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체포되었다고 했어. 그 이후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하고네사르는 부디 안전해야 할 텐데, IS의 지금껏 만행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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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왜 나세르는 선량한데 모술의 수많은 사람들은 그리 잔인했는지 모르겠다. 마음 깊이 선량한 사람이라면 IS 근거지에서 나고 자라도 여전히 선량한 것 같다. 강제 개종을 당해도 내가 그 종교를 믿지 않고 여전히 야지디인 것처럼. 그런 인품은 내면에 달려 있다. 내가 나세르에게 말했다. “조심해요. 몸을 잘 챙기고, 가능한 범죄자들과 멀리 지내요. , 헤즈니의 전화번호를 받아요.” 나는 헤즈니의 휴대폰 번호를 적은 쪽지와 그의 가족이 내준 택시비를 내밀었다. “언제라도 헤즈니에게 전해도 돼요. 내게 베푼 은혜를 잊지 않을게요. 당신은 제 목숨을 구해줬어요.”

그가 말했다. “행복하게 살기 바라요, 나디아. 지금부터 쭉 멋진 인생을 살아요. 우리 가족은 당신 같은 사람들을 도우려고 애쓸 거예요. 모술에서 탈출하려는 여자들을 알게 되면 우리에게 전화해요. 우리가 도와주려고 노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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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는 난민캠프에 도축을 해서 살아있는 식구들을 하나둘 만나게 되었고, 그 동안 몰랐던 식구들의 소식도 듣게 되었어. 그 소식 중에는 나디아의 어머니의 죽음 소식도 있었단다.  IS에 의해 총살 당하셨다고 했어. 정말 나쁜 놈들이구나. 나디아와 함께 성노예로 잡혀 있던 캐서린이 몇 번의 도망 실패 뒤에 성공하여 난민 캠프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하지만, 그만 오는 길에 지뢰를 밞아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정말 가슴 아픈 소식이었어.

….

독일 정부는 나디아 같은 IS의 성노예였던 이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어. 나디아는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독일로 왔다가 유학을 하게 되었단다. 그 후 나디아는 여성 인권 활동가가 되어 활동하였단다. UN 등에서도 야지디의 성노예 희생자들에 대해 알라고, IS의 만행을 폭로하는 등 활동을 했단다. 지금도 계속 그런 일을 하실 것 같구나. 이 책의 제목이 <더 라스트 걸>인 이유는 나디아의 연설 속 일부를 따 온 것이란다. 자신 같은 사람이 자신으로 마지막이길 바라는 연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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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

나는 간단히 연설했다. 내 사연을 말한 다음 계속 이야기했다. 나는 연설을 잘하는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든 야지디는 ISIS가 집단 학살 죄로 기소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청중들은 세계의 약한 자들이 보호받도록 도울 만한 권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난 우릴 유린한 남자들의 눈을 똑바로 보고, 그들이 벌받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나 같은 사연을 가진 마지막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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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정당한 폭력은 있을 수 없단다. 전쟁은 더욱 정당할 수 없단다. 일부 극단주의자들과 무능한 지도자들에 의해 전쟁은 일어나는데 그런 전쟁이 오늘날에게 끊이지 않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구나. 하기야 우리 나라도 우파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전쟁의 위험 지수가 올라가니 남 탓을 할 때가 아니구나. 그러니 선거를 잘 해야 하는데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올 때가 많구나.

이 책의 지은이 나디아 무라드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악몽처럼 보냈는데, 이제라도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았으면 좋겠구나. 많은 가족들과 친구들을 잃은 슬픔이 쉽게 잊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남겨진 가족들과 새로 만난 친구들과 희망을 만들어가길 바래 본다.

오늘은 이만 할까?

 

PS,

책의 첫 문장: 코초는 이라크 북쪽 지역에 있는 작은 야지디 마을로,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고 최근까지 평생 살 줄 알았던 곳이다.

책의 끝 문장: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나 같은 사연을 가진 마지막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삶은 흘러간다. 이라크인, 특히 야지디족 같은 소수 부족들은 새로운 위협에 잘 적응했다. 무너지는 나라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그래야 한다. 적응이라 하면 때론 아주 소소한 일들을 뜻한다. 우리는 꿈의 크기를 줄였다. 학교를 졸업하는 것, 농사일을 그만두고 덜 힘든 일을 하는 것, 제때 결혼식을 하는 것 같은 바람들 말이다. 그리고 애초에 그런 꿈은 이룰 수 없었다고 쉽사리 자신을 설득했다. 이따금 적응은 아무도 모르게 차츰 이루어졌다. 학교에서 무슬림 학생들과 대화하는 것을 멈추었고, 낯선 이가 마을을 지나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또 공격과 관련된 TV 뉴스를 보면서 정세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혹은 입 다물고 지내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고 아예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기도 했다. 매번 공격이 있을 때마다 남자들은 시리아에 면한 서쪽에서 시작해 코초 외곽 장벽을 연장했다. 어느 날 깨어 보니 성벽이 마을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었다. 그래도 불안해서 남자들은 마을 주변에 참호를 팠다. - P26

어린 시절 나는 내 나라가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제재와 전쟁, 극악한 정치, 점령 등이 일어나는 행성 같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이웃들은 서로 등을 돌려 버렸다. 이라크 북단은 쿠르드족이 독립을 원하는 지역이었다. 남쪽은 주로 시아파 무슬림들의 본거지였는데, 이들이 종교와 정치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중부에는 수니파 아랍족이 있다. 이들은 한때 수니파 대통령 사담 후세인과 함께 주(州)를 지배했던 적도 있었으나, 이라크 침공 이후 지금은 시아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라크에 저항하는 세력이 되었다. - P49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었다. 주민들은 ISIS의 눈에 뛸까 봐 집 안에만 있었고, 그렇게 코초의 삶은 정지되었다. 마을 사람들과 떨어져서 지내니 이상했다. 코초는 밤늦도록 남의 집에서 친구들과 식사하고, 옥상에서 이웃끼리 떠들다 자는 일이 일상인 동네였다. 그러나 ISIS가 포위한 뒤로는 잠에 바로 옆에 누운 사람과 소곤대는 것과 위험해 보였다. 우린 최대한 눈에 안 띄려 했다. 그러면 ISIS가 우리를 잊기라도 할 것처럼. 점점 뼈만 남게 말라 가는 것도 자기를 보호하려는 방법 같았다. 곡기를 끊으면 결국 투명인간이라도 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친척들은 살피러 가거나, 물품을 가지러 가거나, 아픈 사람을 도우러 갈 때만 집을 나섰다. 그때도 빗자루를 피해 달아나는 벌레들처럼 늘 피할 곳이 있는 쪽으로 잽싸게 걸었다. - P102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부분이다. 이 때문에 야지디에서는 종교 지도자층의 일원을 종교적인 의미의 형제자매로 삼는다. 그들은 종교를 가르치고 내세에서 우릴 도와준다. 나의 자매는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고 아름다웠으며 야지디 교리를 매우 잘 알았다. 그녀는 한 번 결혼했다가 이혼을 했고, 친정에 돌아와 살면서 신과 종교에 자신을 바쳤다. 나의 자매는 ISIS가 집 가까이 오기 전에 탈출하여, 독일에서 안전하게 지냈다. 이런 형제나 자매의 가장 중요한 소임은 우리가 죽은 뒤 신과 타우시 멜렉 곁에 앉아 우리를 변호하는 일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자는 제가 생전에 알던 사람입니다. 영혼이 지상으로 돌아갈 자격이 있는, 선량한 사람입니다." - P148

난 떨면서 연설문을 낭독했다. 어떻게 코초가 점령당하고 나 같은 여자들이 사비야로 끌려갔는지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어떻게 반복해서 강간과 폭행을 당하다 결국 탈출했는지 설명했다. 오빠들이 살해당한 이야기도 전했다. 청중은 조용히 경청했다. 연설이 끝나고 나서, 나중에 한 터키 여성이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러더니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 오빠 알리도 살해됐어요. 그 일로 온 가족이 충격에 빠졌어요. 어떻게 한꺼번에 오빠 여섯을 잃고 버틸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힘들어요. 하지만 우리보다 더 많은 가족을 잃은 집도 있어요." 내가 말했다.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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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예술로 빛난다 -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답
조원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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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방구석 미술관> 시리즈의 지은이 조원재 님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작년에 들었는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이제서야 읽었단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라는 책이야.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책을 쓰곤 하는데 이 책도 그런 측면을 이야기하고 있단다. 아빠가 10년 다이어리를 쓰고 있는데, 자기 전에 그날 있었던 일을 메모 형식으로 간단히 적는단다. 그런데 어느 때는 계속 비슷한 내용의 반복일 뿐이야. 그래서 너무 졸린 날은 어제와 비슷이라고 적은 날도 있었단다. 지은이는 이런 반복적인 삶에서 예술적 행위를 찾는구나. 반복적인 삶에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늘 같은 일 속에서 다른 점을 찾고, 그것을 즐겁게 느끼는 것 또한 예술적 행위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화가 이우환 님의 어머니 일화를 이야기해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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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

화가 이우환은 어릴 적 어머니와의 대화를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한다. 소년 시절 그는 쌀을 씻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매일 똑 같은 쌀 씻기를 하면서 어떻게 즐거우실 수 있냐고.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똑 같은 쌀 씻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신은 그 일을 할 때마다 매일 다르게 느낀다고. 어떤 때는 시원한 물이 생기를 주고, 지저귀는 새소리에 흥이 오르기도 한다고. 쌀과 물과 손이 하나가 되어 잘 움직일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어 매일 쌀 씻는 것이 항상 새롭다고. 어린 후환의 눈에 매일같이 반복되는 어머니의 쌀 씻기는 지루하기 짝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쌀 씻기는 매일, 매 순간 전혀 새롭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행위였다. 이를 우리는 예술적 행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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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듣고 매일 지나오는 퇴근길이 다시 보였단다. 퇴근길에 가로수들이 색상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요즘은 더욱 실감이 되더구나. 아빠는 비슷한 시간이 늘 같은 거리를 지나지만, 가로수는 계속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공기의 느낌도 점점 달라지니 어제와 오늘이 같다고 볼 수 없겠구나. 지은이에 따르면 아빠의 퇴근길은 예술적 행위가 되는구나. 그러니까 지은이가 이야기하려는 핵심 우리 삶은 예술 그 자체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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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삶과 예술, 예술과 삶. 이 둘은 너무나도 닮아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예술은 우주 어딘가에 지구로 떨어진 출처가 불분명한 운석 같은 것이 아니다. 예술은 분명히 인간의 삶 속에서 나온 것이다. 엄마의 배 속에서 나온 아기가 엄마를 빼닮듯, 인간의 삶 속에서 나온 예술이 인간과 삶을 쏙 빼닮지 않을 수는 없다. 아이가 엄마의 정수를 담고 있듯, 예술은 인간과 삶의 정수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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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렘브란트는 수많은 자화상을 그린 사람으로도 유명하단다. 20대 젊었을 때부터 삶을 마감할 때까지 자주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어.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라 이야기를 한단다. 젊은이 한풀 꺾인 렘브란트의 50대 자화상에 대해 지은이가 설명을 해주었는데, 이제 막 50대에 들어선 아빠도 그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담긴 감정이 공감이 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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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50대에 그의 내면을 물감으로 물질화한 이 자화상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한껏 찌푸린 미간과 꼿꼿이 당겨 세운 하관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삶의 난관에 당당히 맞서겠다는 의지가 엿보임과 동시에, 검고 큰 눈동자에서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감지되어 때문이다. 중년이 되어 맞닥뜨린 어떤 난관의 거친 파도 앞에서 렘브란트는 전의를 불태우려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그는 그런 내면의 심정을 숨김없이 마주했고, 속속들이 자화상에 밝히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50여 년을 산 한 화가의 자아 성찰의 힘과 진정성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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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는 자화상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지은이는 아빠처럼 그림에 소질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과 이야기하기 위해 일기를 써보라고 제안하는구나.

앞서 삶과 예술은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둘 모두 처음에는 허접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듭하지만, 꾸준하게 나아가면 결국 그 허접함은 비범함이 된다고 말이야. 너희들도 젊은 시절 실수와 시행착오를 하게 되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말고 비범함으로 가는 단계라고 생각하면 좋겠구나. 또 예술은 누군가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들의 예를 들어주었어. 돌을 예술로 만든 이우환, 물방울을 예술로 만든 김창열, 소쿠리를 예술로 만든 최정화 등이 그들이란다. 그들의 작품이 책에 실려 있는데, 감탄할 만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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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예술가가 예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언가에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하고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힘으로부터 예술이라는 삶의 꽃은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우리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에겐 무언가에 의미를 발견하고 부여하는 능력이 있다. 이 능력으로 인해 우리는 대량생산된 물감으로 오밀조밀 칠해진 화면을 보며 예상치 못했던 무언가를 느낄 수 있고, 버려진 나뭇조각을 이리저리 그러모아 만든 독특한 구조물을 보며 색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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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 낯설게 보기란 것이 있단다. 예술가는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모습을 낯설게 보는데, 그것은 일상 속에서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낸다는 것을 말해. 그렇게 예술이 되는 것이지. 평범했던 우리 삶을 낯설게 보면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예술이야. 우리 삶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예술이 담겨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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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라는 평범한 이가 바다를 매 순간 낯설게 보고자 노력하며 그것의 숨겨진 미를 매 순간 새롭게 발견하고 감동하는 일상. 그 낯설게 보는 눈으로 미술관에 가 작품의 숨겨진 미를 새롭게 발견하며 미적, 지적 쾌감을 느끼는 일상. 그 눈으로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미를 새록새록 발견하는 기쁨. 그 눈으로 내 삶에 주어진 것들을 새롭게 보고 항상 감사히 여기는 풍요. 그 눈으로 세상에 놓인 모든 것을 새롭게 보며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놀라운 마법.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마법 같은 일상과 삶이 먼 곳에 있는 것 같지 않다. 낯설게 보고자 하면, 모든 것에서 그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샘솟아 나는 마법이, 예술이 펼쳐지니 말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돌을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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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삶과 예술의 또다른 공통점, 둘 다 정답이 없다고 하는구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정답은 없지, 자시만의 삶을 살아갈 뿐. 예술도 자기만의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창조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자기만의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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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 그런 예술을 창안해 낸 우리 인간의 삶 역시 정답이 없다. 예술을 즐기기 위해 나에게 예술이 무엇인지를 먼저 스스로 정의해야 하듯, 삶을 즐기기 위해 나에게 삶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당연히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가르쳐둔다 한들 자신이 몸소 체험을 통해 깨닫지 않는 이상 삶에 깊이 스며들지 않는다.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만의 삶의 정의를 체험하고 감각하며, 그 속에서 숱한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영감을 얻고 깨닫는 과정을 반복해 가며 삶에 대한 자기 나름의 정의를 찾아나가야 한다. 예술가를 자기 나름의 예술의 정의를 정립해 자기만의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창조하듯, 삶을 사는 우리도 자기 나름의 삶의 정의를 정립해 자기만의 독창적인 을 창조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삶은 예술과 하나가 된다. 인간은 삶과 다르지 않은 예술을 삶 속에서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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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식상한 말이지만,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보라고 했어.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 경제적 수입과 연계되면 좋겠지만, 그것은 쉽지 않더구나.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 부부가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독특하게도 포장이라는 것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이야. 별 거 없이 어떤 사물을 포장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다른 이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기도 했대.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그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했대. 결국 그들의 포장은 하나의 예술 행위이자 작품이 되었어. 프랑스 파리의 퐁네프 다리도 포장을 했다는구나. 행정적인 절차 포함하여 퐁네프 다리를 포장하는데 10년을 준비했다는데, 전시는 14일만 하고 철거를 했다는구나. 긴 준비 기간에 비해 전시기간이 짧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미학은 10년 동안의 준비 과정에 있다고 했대. 멋지시네.

지은이 조원재 님도 젊은 시절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대학 졸업 후 무작정 미술 여행을 떠났다고 하는구나. 일본과 유럽에서 긴 여행을 마치고 바뀐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대. 그 여행을 통해서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하네. 그래서 일탈이 필요하다고 하는구나. 자신의 의지로 한 일탈은 참 를 찾는 과정이라고 하는구나. 비록 여행을 통해서 지은이처럼 참 를 찾을 수 없을지라도, 세상을 보는 눈도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여행과 일탈은 좋을 것 같구나.

어떤 화가 한 명이 있었어. 그 화가도 일탈 후 화가가 되었대. 16살 때 화랑에서 일하던 그는 7년 후 해고 당하게 되었는데 자발적 일탈로 벨기에 광산에서 전도사를 하면서 광산 일도 도와주었대. 광산에서 5년간 전도사 일을 했는데, 다른 전도사들의 멸시를 받게 되어 쫓겨나게 되었다는구나. 그리고 다시 자신의 쓸모를 찾고 있던 그는 자신이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27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구나. 그 화가는 바로 빈센트 반 고흐였대. 아빠가 이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를 축약해서 하다 보니 재미가 반감되었구나. 지은이는 그 사람의 정체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하게 하면서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가서 마지막에 짜잔, 정체를 밝혔단다.

지은이 조원재 님은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독자를 끌어당기는 글솜씨를 가지고 있는 것 같구나. 이 빈센트 반 고흐의 예를 이야기해 준 이유는 자발적 일탈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라는 것이었어. 한 번 일탈로 안되면, 두 번, 세 번 일탈을 해보라고생각해 보니 아빠는 그런 일탈을 한 번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구나.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할 수 밖에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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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

한 차례 자발적 일탈을 감행했음에도 자신에 대한 자각이 여전히 흐릿하다면, 두 번째 자발적 일탈을 감행하면 된다. 그 후에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여전히 불투명하다면, 세 번째 자발적 일탈을 감행하면 된다. 화랑에서 일을 하다, 불쑥 기숙학교에서 선생을 하다, 불쑥 광산으로 간 빈센트처럼. 한 번, 두 번, 세 번그 모든 불확실한 일탈의 감행이 모여 건강한 방황으로 정의되리라 믿는다. 그 일탈의 체험과 기억이 쌓이면 쌓일수록 자신의 정체가 점점 밝고 분명해지리라. 수많은 시도 끝에 점점 초점이 또렷해지는 피사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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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예술이란 무엇인지 물어본단다. 지은이는 예술을 삶에서 행한 어떤 행위가 행위자에게 정신적 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작업라고 이야기하는데, 문득 이 사람 나이가 궁금하더구나. 그래서 찾아보니 이제 39살이네. 아빠보다 한참 어린데, 저런 걸 깨닫다니여행과 일탈을 하게 되면 참 를 발견하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깊은 생각도 얻을 수 있는가 보구나. 지은이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진정으로 행하는 삶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이고 싶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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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예술인가 무엇인가?” 그래서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삶에서 행한 어떤 행위가 행위자에게 정신적 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작업. 그것이 예술이다.” 겉으로 예술을 하고 있는 듯 보이는 이가 실제로 정신적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정말 그 행위를 왜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정신적 만족을 충성하게 누리는 예술이 되기 위한 해답은 결코 우리 바깥에 있지 않다. 우리 안에 있다. 자기 내면에서 울리는 자신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흔들림 없이 행하는 삶을 창조해 가야 한다. 그 어떤 외부의 압력과 강요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자기 내면에서부터 끝없이 선명하게 울려오는 나만의 그림 그리기를 평생 흔들림 없이 행한 세잔처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진정으로 행하는 삶. 이런 삶은 필연적으로 정신적 만족을 동반한다. 그렇게 정신적 만족을 누리는 삶을 사는 이를 두고 우리는 예술가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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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눈을 장착하지는 못했단다. 그래서 이 책에 담겨 있는 많은 작품을 보면서 큰 감흥은 느끼지 못했지만, 많은 새로운 작품들을 보게 되어서 좋았단다. 아빠가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들에도 좋은 내용도 많고, 많은 예술가들도 소개해 주어서 좋았어. 아빠의 변변치 못한 기억력으로 오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아빠가 주변 사람들에게 책 추천을 잘 안 하는 편인데, 누군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이 책은 추천해 주고 싶구나. 물론 너희들도 좀더 커서 읽어보면 좋겠구나.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어릴 적 우리는 모두 예술가였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그것을 단 한 번뿐인 당신의 삶에서 행할 때, 당신에게 예술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다른 대상이 아닌, (당신 자신)이 된다.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이 있다. 평생에 이뤄지는 단 한 번의 만남, 단 한 번뿐인 일. 이 말은 차 마시는 행위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다도(茶道)에서 쓰인다. 어제도 차를 마셨고 엊그제 역시 차를 마셨지만, 차를 마시는 지금 이 순간은 평생에 단 한 번 일어나는 일임을 가슴에 새겨 차 한 모금을 아주 새롭게 음미한다는 마음의 자세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한 인간이 지닌 지성의 문제로, 누군가가 가르쳐주고 알려준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이 내면에 지닌 지성으로 해내는 일이다. 우리의 일상이, 삶이 아무리 매일 반복되더라도 매 순간은 진실로 새로운 순간이다. 우리가 지성을 발휘해 그 진실을 매일 매 순간 의식하려 노력한다면, 무미건조하게 여기던 것들 것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전혀 다른 의미로, 전혀 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의 평범한 삶 속에 듣도 보도 못한 색과 형과 향을 지닌 꽃이 피어날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의 삶에 예술이 피어날지 모른다. - P31

정말 <모나리자>를 봤는지, <모나리자>를 누가 언제 그렸는지, 그림을 그린 화가는 어떻게 살았는지, 화가가 살던 시대상은 어땠는지, 그를 후원해준 사람은 누구이고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 ‘<모나리자>라는 작품에서 파생되는 나오는’ 지식을 알고 있는지 묻는 것이 아니다. <모나리자>라는 그림 자체, 그 이미지 자체, 그 물리적 대상 자체를 진심으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보기 위해 노력했는지 묻는 것이다. 예술작품 하나를 몸으로 만나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진심을 다해 보고 듣고 감각하며 생각하고 느끼는 체험을 했는가 묻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 체험의 과정 속에서 당신만의 독창적인 ‘의미’가 내면에서 샘솟듯, 꽃피듯 생성되었다면, 그 작품은 평생 당신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당신 스스로 창조한‘의미’와함께 생생히 살아 숨쉬게 될것이다. 그리고 그 작품은 당신의 기억 속에 생생히, 또렷이 남아 있는 ‘본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당신의 정신을,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구성할것이다. - P62

인간은 모두 자신에게 무지한 백지상태로 태어난다. 누군가는 삶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영영 자신에 대해 정확히 모를 수도 있다. 다른 누군가는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스스로 번데기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 번데기 속에서 누군가는 자기만의 해답을 발견해 찢고 나와 나비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실패하기도 한다. 물론, 거듭된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다면 끝내 나비가 될 수도 있다. 애벌레가 번데기 껍질을 까고 나와 나비가 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이는 온전히 애벌레의 선택과 노력에 달렸다. 지금 우리는 그 과정 어디쯤에 있을까?

- P94

그렇다. 이 모든 행위는 사회적으로 비생산적이고 쓸모없이 보이는 것이다. 나태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사회적으로 비생산적이고 쓸모없이 보이는 행위에 골몰할 힘을 얻게 된다. 내 눈을 넘어 오감을 강렬하게 사로잡으며 뒤흔드는 작품을 만났을 때, 거대한 나태함으로 그것을 영혼이 흠뻑 젖을 때까지 감각하고 생각하고 느낄 한없는 시간의 여유를 창조할 수 있다. 그 작품과 대화를 나눈 뒤에도 우리는 변함없이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 나태해지는 시간의 공터를 습관처럼 만들어놓을 수 있다면, 당신을 흔들었던 그 작품은 당신의 삶과 맞물리며 어느 날 어느 순간 불현듯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나태함으로 그 작품을 마음속으로 붙잡아 한껏 곱씹어 보며 진정 내 영혼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나태한 시간이 모여 당신의 기억을 구성하고, 나아가 당신의 내면, 당신만의 독창적인 정체성을 구성할 것이다. - P112

예술의 순간을 체험하는 것이 예술가가 아닌 이에게 무슨 가치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건 오직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체험뿐이라고. 내가 하는 체험만이 지금과 내일의 나를 빚는 재료가 되는 것이라고. - P237

삶에서 하는 일 자체를 예술로 만든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서 자신만의 수단과 통찰로 진진하고 순수한 ‘나만의 작품’을 시도했다고 말하는 세잔의 정신을 본다. 내가 미술관에 가서 만난 어떤 작품. 그 작품만이 지닌 고유한 형식과 재료, 그만의 독특한 색채와 형태, 그만의 오묘한 에너지와 개성, 그만의 비범한 철학과 주장을 내 몸과 정신으로 직접 파헤쳐 마주했을 때 느끼는 희열. 그러니까 세상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그 작가만의 독창적인 미학과 감각을 외부로 표현해 낸 작품을 만났을 때 맞이하는 찬란한 기쁨. 그 감정과 동일한 것을 나는 일상에, 도처에 있는 이들에게서도 본다. 그 감정과 동일한 것을 나는 일상에, 도처에 있는 이들에게서도 본다. 그러니까 그들 모두 예술가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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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쇼핑을 멈추는 건 생각보다 큰일이다. 기분이 안 좋을 땐 뭐라도 사라고, 기분이 좋으면 그에 맞게 쇼핑을 하라고, 그게 네가 존재하는 방식이자 이유라고 온 세상이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요란한 목소리를 외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지속가능성 문제를 고민하다 보면 왜 시민들 개개인이 죄책감을 느끼고 신념을 포기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곤 한다. 라면을 먹으려 해도 비닐봉지를 최소한 세 장은 버려야 하는데, 커다란 매대를 온갖 종류의 라면으로 채운 대형마트에서는 오히려 소비자를 향해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자고 외친다. 개인과 가정에서보다 기업에서 배출하는 비닐쓰레기가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말이다. 그래서 걱정도 됐다. 이런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더 이상 옷을 사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게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말처럼 들릴 것 같았다.


(36)

패스트패션의 오염 규모를 가늠하는 데 참고할 만한 큰 숫자는 또 있다. 세계 물 소비량의 20퍼센트가 옷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매년 의류 제조에 물 93조 리터가 쓰이는데, 이는 무려 500만 명이 생존에 쓸 수 있는 양이다. 서울 시민의 절반이 1년간 마실 수 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물이 약 7000피터,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는 약 2700피터가 필요하다. 청바지와 흰색 면 티셔츠는 각각 한 사람이 9년간, 3년간 마실 물을 집어삼키는 셈이다.


(37)

개인이 체감할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의 오염을 일상으로 자리 잡게 한 패스트패션’.  이 단어는 1989 <뉴욕 타임스>가 스페인의 자라를 소개할 때 처음 등장했다. “패션쇼 런웨이에 오른 제품을 무려 15일 안에 대량고급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패션업체에서 새 옷을 기획하고 디자인해 제조 유통 출시하기까지 약 6개월이 걸렸지만, 자라는 이 모든 일을 2주 안에 해내는 혁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는 폭발적인 자원 낭비와 오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51)

버려지거나 세탁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더라도 옷은 제조 과정에서부터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합성섬유로 만든 옷 5킬로그램을 세탁하면, 옷에서 떨어져 나온 미세플라스틱 600만 개가 세탁수를 통해 유출된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세탁기의 규격이 주로 10킬로그램을 감안하면, 한 번 세탁할 때마다 미세플라스틱이 1000만 개씩 나오는 셈이다. 옆집, 우리 동, 아파트 전체, 단지, 그리고 전국의 세대 수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금방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엄지 손가락 하나로 스마트폰 화면을 끌어내리며 업데이트된 신상품을 손쉽게 훑어보면서도 금세 싫증을 느끼는 우리의 인스턴트식 패션 취향의 대가는 머나먼 바다 건너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이미 우리의 삶과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68-69)

인도 농부들은 더 강력한 살충제를 구매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런데 농부들은 머잖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욱 강력한 살충제를 판매하는 회사가 자신에게 Bt면화를 팔던 바로 그 몬산토였기 때문이다. Bt면화는 일반적인 식물과 달리 씨앗을 받을 수 없고 혹 씨앗을 받았다 해도 발아하지 않는 터미네이터 종자였기에 인도 농민들은 종자와 살충제를 해마다 구입해야 했고, 점점 늘어나는 부채로 신음했다.


(135)

모 패션 플랫폼 담당자 D는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쿠폰을 발급하고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기 일쑤라고 털어놨다. 옷을 중개해 잘 팔수록 플랫폼에게는 손해가 되는 것이다. 플랫폼은 이미 옷으로 돈을 벌고 있지 않다. 대신 셀러들에게 좋은 구좌를 비싼 가격에 판매해 수익을 낸다. 비싸고 잘 보이는 자리에 걸린 옷 광고를 본 소비자들은 또다시 소비하는 굴레에 빠진다. 소비자를 모아 판매자를 모으고, 판매자를 모아 소비하게 하는 플랫폼. 그 안에서 수요와 공급은 시작과 끝의 구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원히 순환한다. 또다시 물건이 존재해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소비를 해야 물건이 존재하는 구조가 갖춰지는 것이다.


(149)

. 패션기업은 임금이 가장 저렴한 나라에 공장을 짓는다.

. 많은 옷을 싸세 제작하기 위해 저렴한 임금으로 노동력이 투입된다. (대부분 나이가 어린 여성 노동자나 이주 노동자다.)

. 경비 절감의 이유로 안전장치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공장에 산업재해가 발생한다.

. 수많은 노동자가 다치고 사망한다.

. 공장주나 기업 관계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 기업은 규제가 약하거나 임금이 저렴한 또 다른 나라로 이동해 새로운 공장을 짓는다.


(166)

그 후로 하나의 공식이 굳어졌다. 테러나 전염병 등으로 국가 경제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우리를 구원한 것은 소비였다. 자본주의에서 멈춤은 곧 재앙이다. 자본주의 세상에 태어났다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관성의 궤도에서 이탈할 수 없다. 9.11테러 이후 미국에서는 최소 600억 달러 규모의 자산과 5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이는 테러리스트 때문이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가 갑자기 소비에 열정을 잃은 결과였다. 2006년 경기 침체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자 결국 부시 대통령은 자국민들을 향해 소비하라라고 직접 요청했다.


(184-185)

아시아는 타 대륙보다 명품을 압도적으로 많이 소비한다. 현재 세계 명품시장은 약 8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그중 37퍼센트가 아시아에서 팔린다. 루이비통, 에르메스, 구찌, 까르띠에, 불가리 같은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는 전체 매출의 50~60퍼센트를 아시아 소비자에게서 거둬들인다. 프라다, 샤넬, 버버리, 보테가베네타 등 세계 최고 브랜드 대부분의 매출 10퍼센트 이상은 한국인이 차지한다. 아시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명품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86)

실제로 2021년 이후 여덟 개 이상의 하이엔드 브랜드가 한국 내 브랜딩과 유통을 담당하던 파트너와 계약을 종료한 뒤 한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글로벌 투자 은행 모건 스탠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1인당 명품 소비가 가장 많은 국가였다. 2022년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우리 돈 약 40 4000원으로, 미국 34 8000, 중국 6 8000원 등을 제치고 세계 최대를 기록했다. 2022년 한국 명품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24퍼센트 성장해 세계 6~7위 수준인 168억 달러( 20 9000억 원)에 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주변에도 명품가방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많다.


(206)

사람들은 유행에 쉽게 휩쓸렸다가 유행이 지난 것에 금방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유행을 찾아 떠난다. 그사이 패스트패션 회사 CEO는 세계 5위까지 부호의 자리를 지키며 배를 불리고, 저임금 국가의 노동자들은 착취당하다 죽음에 이르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섬유폐기물은 지구를 덮치고 있다.


(219)

말하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옷장에 잠들어 있는 티셔츠와 청바지도 오래오래 입을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패션이지, 페페트병으로 티셔츠나 청바지를 만들기 위한 물절약 공정 과정이 아니다.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소비자도, 섬유폐기물로 몸살을 겪고 있는 지구도 그런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로지 제조와 판매를 통해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패스트패션 기업에게나 필요할 뿐이다. 페트병 티셔츠는 지구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매출을 늘리기 위한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다.


(260)

우리가 입는 옷은 세 번 이상 세탁한 후에도 계속 입을 수 있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하게 들리는 이 말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프란스 티메르만스가 패스트패션 제품의 형편없는 품질을 꼬집으며 남긴 말이다. 2030년까지 유럽연합 내에서 거래되는 모든 섬유 제품은 내구성, 수선 및 재활용 가능성 보장, 재활용 섬유 사용 확대, 유해물질 제거, 사회적 권리를 존중에 제조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의류 제조 과정에서부터 수선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했다. 한 옷을 오래 입게 하려는 지속가능한 순환 섬유 전략으로, 사실상 많이 싸게 파는 것이 곧 생존 전략이었던 패스트패션을 퇴출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옷을 일회용품 팔 듯 해치우며 돈을 벌던 패션산업은 이제 수선, 회수, 재사용, 재활용이 가능한 순환경제 비즈니스 모델에 한층 까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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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10 - 제4부 동트는 광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10권을 이야기해줄게. 이제 10, 11, 12권 세 권 남았구나. 이 세 권은 제4부로 동트는 광야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단다. 동튼다는 의미는 해방이 찾아온다는 뜻이겠구나. 길고 긴 일제암흑기의 끝이 보이는구나.

, 그럼 바로 10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 윤철훈은 비밀 임무를 위해 국내 잠입하여 원산에서 다른 공산주의자 최현옥과 임무를 수행했단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위장 연인인 척 했단다. 그런데 윤철훈과 최현옥은 서로 호감을 가졌어. 하지만 그들은 공적인 만남이었고, 임무를 수행 중이라서 서로 속마음을 꺼내지 못했단다. 좋은 시절에 만났다면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을 텐데, 결국 그들은 임무 수행을 하고 서로 헤어지고 말았단다. 이 시기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와 농민들과 연계하면서 8시간 노동제 실현, 차별대우 철폐, 복지제도 개선, 소작료 인하 등을 실천하려고 했지만, 일본 경찰의 폭정과 밀정들 때문에 제대도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조직이 많이 와해되었단다.

….

만주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조선혁명당 사령관 양세봉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더 잔인한 것은 일본군이 양세봉의 시신을 조선의 농민들에게 작두로 자르라는 잔인한 짓을 시켰다는 거야. 그리고 그 말을 거절한 농민들은 그 자리에서 죽이고 말이야. 뿐만 아니라 일제는 친일파로 하여금 민생단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만주 지역의 공산주의 운동을 교란시키는 작전을 썼어. 그러면서 중국공산당에 일본의 스파이가 있다는 소문을 만들고, 그로 인해 중국공산당에서 일제 스파이로 의심되는 조선 사람들을 죽였는데, 죄가 없는 사람도 누명을 쓰고 많이 죽었다고 하는구나. 주위에 죄도 없이 누명을 쓰고 죽는 동료를 보니, 중국공산당에서 활동하던 일부 조선 사람들은 중국공산당을 탈출하여 일본군으로 넘어가버린 사람들도 있다. 일본이 파 놓은 함정에 중국공산당이 보기 좋게 빠져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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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9)

도대체 민생단투쟁이란 게 뭔가?”

학습이 끝나고 노병갑은 홍완섭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래, 자네도 지휘간부로서 알아둬야 할 일이지. 그러니까 말야,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만주국이 세워지기 직전인 32 2월에 조선에서 용정으로 건너온 친일파 김성화가 왜놈들의 사주를 받아 <경성매일신보> 부사장 박선윤, 광명회의 정사빈 등과 연합해서 민생단이란 것을 조직했네. 그 단체는 겉으로는 조선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주사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주장과 일치하는 거지. 그런데 속에 감춰진 목적은 북간도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교란시키고 파괴하자는 것이었지. 다시 말하면 민생단은 대규모 밀정 스파이단체였던 거네. 민생단원들은 백색구역(일제 통치지역)의 친공산권은 말할 것도 없고 적색구역(유격근거지)에까지 자원유격대원으로 가장해 잠입 침투해서 간도 자치며 생활 보장, 조선인 우대 등을 교사하며 내부분열 공작을 획책한 거네. 그러기를 5개월쯤 하다가 민생단은 해산됐지. 그런데 문제는 그놈들의 암약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유격근거지에서 조선사람이면 일단 민생단분자로 의심받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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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수익은 결국 일본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15년형을 받았단다. 송수익이 감옥에 있다는 소식은 가족에게도 전해졌어. 송수익의 친구이자 사돈인 신세호는 서울에 가서, 송수익의 아들이자 자신의 사위인 송중원과 송수익의 차남 송가원을 만나 이 일을 의논했단다. 그들은 면회 준비를 하였고, 가원은 자신이 만주에 머무르면서 아버지의 옥바라지를 하겠다고 했어. 중원은 장남인 자신이 하겠다고 했지만, 중원은 아직 투옥의 후유증으로 아직 몸이 안 좋았기 때문에 가원이 하는 것으로 했단다. 가원은 이 기회를 허영 덩어리 아내 미애와 헤어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 가원은 자신이 만주에서 아버지 옥바라지를 해야 한다고 아내 미애에게 통보를 했고, 미애는 큰소리로 화를 냈지만, 가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만주로 향했단다.

미애의 사기에 가까운 수법으로 가원이 미애와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되고 나서, 옥비는 소리에 전념하여 경성에서 유명한 소리꾼이 되었단다. 공허 스님으로부터 송수익 소식과 송가원이 만주를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돈을 전달해달라고 공허 스님께 부탁을 했단다. 옥비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가원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나 봐. 자신도 가원을 따라 만주를 가고 싶지만, 내색은 못했어.

….

이경욱은 아버지 이동만이 죽고 나서도 고등고시를 계속 봤지만 계속해서 떨어지고 말았어. 이경욱은 옛스승 고서완을 찾아갔어. 고서완은 이경욱을 반기면서 함께 농사를 짓자고 제안했단다. 그런데 고서완은 그냥 농사가 아니고, 자신만의 사회주의 방식으로 농장을 만들어서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던 거야. 그로 인해 조선의 농부도 보호하고, 자신의 이상도 실천하고그걸 혼자 하기 어려우니 이경욱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했고, 이경욱은 고등고시 합격보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동참하기로 했단다. 고서완이 꿈꾸는 사회주의의 내용은 아래와 같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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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 들어보게. 자네도 알다시피 왜놈들은 만주사변 이후로 조선땅에 군대를 강화하고 경찰들을 증원했네.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이 사회주의자들의 색출과 처벌이네.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이 사회주의자들의 색출과 처벌이네. 그건 왜 그렇겠나? 두 가지 목적 때문이지. 첫째는 조선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새롭게 등장한 적을 완전히 말살시키고 하는 것이지. 그리고 둘째는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으로 농민층과 노동자층이 끝없이 쟁의를 일으키면서 조선땅이 동요하는 것은 제놈들의 만주 장악에 치명적이기 때문이야. 조선의 안정이 만주의 안정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이네. 그래서 왜놈들은 준전시체라는 상황을 설정해 놓고 사회주의 세력의 말살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일세. 그놈들의 총력전은 효과를 거두고 있고, 사회주의자들은 그동안 만 6천여 명이나 검거되면서 악화일로를 걸어왔네. 참 시인하고 싶지 않지만, 냉정하게 판단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머지않아 거의 검거되거나 운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네. 나는 감옥에서 나와 감금상태에 있으면서 이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지. 또 잡혀서 감옥에 갇히는 것을 각오하고 그전 식으로 운동을 계속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방법밖에 없느냐 하면, 감금상태는 바로 운동의 중지상태니까. 그런데 운동을 계속하다가 잡히게 되면 재범이고, 재범은 중형을 당하게 되는 것은 더 말할 것 없지 않은가. 그것 또한 운동의 중지상태야. 이 대목에서 내 고민은 심해졌지. 왜놈들은 절대로 사회주의 운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사회적으로 왜놈들은 절대로 사회주의 운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사회적으로 왜놈들의 횡포는 계속되는데 과연 실현이 가능하지 않은 사회주의 운동을 밀어붙이다가 부지하세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였지. 그 방법은 치열하긴 하지만 자폭적이고, 어느 면에서는 왜놈들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네. 그런 측면에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갖게 되었네. 왜놈들의 식민지 횡포가 계속되는 속에서 어떤 형태든 행동의 중지보다는 적극성이 떨어지더라도 행동의 지속이 더 낫다는 생각이었지. 그래서 구상한 것이 개인적 사회주의화야. 다시 말해서 우리 집안의 농토를 바탕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해 나가는 집단농장의 경영이야. 단 사회주의라는 냄새는 일체 풍기지 않고 속으로 감추었으니까 경찰에서 볼 때는 평범한 지주에 불과하지. 허나 실제로는 소작제가 아니라 공동경영이고, 잉여재산으로는 딴 지주의, 특히 왜놈들 농장의 빚을 써서 논이 넘어가게 된 농부들의 빚을 갚아주고 흡수해 들이는 거네. 그럼 그 농부도 보호하고, 왜놈농장들이 토지를 장악해 나가는 것도 막을 수 있는 이중 효과를 발휘하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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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서완 같은 사람에 의해 보호를 받는 농민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본 지주와 친일파 지주의 악덕으로 등골이 휘었단다. <아리랑> 초반부에서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일제에 땅을 빼앗기고 소작을 하는 이들이 많았잖아. 그 중에 염서방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염서방의 아들이 일본인 지주 아들의 놀림에 분을 참지 못하고 때린 일이 있어. 그러자 그 일본인 지주는 염서방을 끌고 와서 모진 매를 때리고 소작까지 빼앗아 버렸단다. 매까지는 참아도 소작을 떼이면 먹고 살 길이 없어서 간절히 부탁했지만, 결국은 소작까지 떼이고 말았단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염서방은 그 일본인 지주들 가족을 모두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참 먹먹한 사건이로구나. 소설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제 시대 이렇게 억울한 일들이 많았을 거야.

 

2.

신세호, 송중원, 송가원이 송수익을 면회를 했어. 생각보다 송수익의 건강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단다. 간수에게 뒷돈을 아무리 주어도 병보석은 해주지 않고, 치료도 안 된다고 했어. 면회도 짧은 시간 간신히 할 수 있었어. 전향서를 쓰면 치료를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지만, 송수익은 완강히 거절했단다. 신세호와 송중원은 다시 국내로 돌아오고, 송가원은 그곳에 남아 병원에 취직을 하고 아버지 옥바라지도 했단다. 송수익과 필녀도 송수익의 소식을 듣고 감옥이 있는 봉천으로 이사를 왔단다. 하지만 면회를 허락되지 않았어.

한편, 옥비는 송가원이 아내와 헤어져 혼자 만주에 갔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만주로 향했단다. 송가원은 뜻밖에 찾아온 옥비를 보고 무척 반가워했고, 그들은 몇 년 동안 참았던 사랑을 드디어 하게 되었어. 송수익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안 좋아졌어. 평생 송수익을 짝사랑했던 필녀의 간절함송수익이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만나게 해달라는 소원송가원은 간수에게 큰 돈을 주고 필녀는 송수익을 면회할 수 있었어. 하지만 송수익은 결국 감옥에서 죽고 말았단다. 비록 소설 속 인물이지만, 신채호처럼 평생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을 만나지 못하고 감옥에서 삶을 마감하신 분들이 어디 한둘이겠니. 정말 슬픈 역사로구나.

송수익이 죽고 나서 송가원은 그곳에 남아 독립군에 참가하겠다고 했어. 군의관이 되어 부상자를 돕는 일을 하겠다고 했단다. 옥비도 자신도 독립군이 되겠다고 했어. 송가원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자신은 노래라도 불러서 군 사기를 높이겠다고 했어. 그렇게 그들은 모두 독립군이 되었단다.

….

연해주의 소식을 좀 들려줄게. 윤선숙과 조강섭 부부는 이상한 소식을 들었어. 조선 사람들이 일본의 스파이가 되어 연해주 지역으로 들어온다는 소문이었어. 그렇게 되자, 소련은 조선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단다. 그리고 강제로 조선 독립군 해체를 지시했어. 학교에서는 조선어 교육을 금지시켰어. 소문은 소문으로 끝나지 않았단다. 주변 사람들이 억울하게 일본 스파이로 누명을 쓰고 체포되기도 했어. 윤선숙의 사촌 오빠인 윤철훈도 도착했지만, 그들은 이 사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어. 연해주에서도 점점 살아가기 쉽지 않았단다. 소련의 조선인 통제가 심해지던 어느 날 날벼락이 떨어졌어. 조선인 20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는 명령이 내려왔어.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2일 후 곧바로 떠나야 한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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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278)

20만 조선사람들의 강제이주는 1937 8 21일 소련 인민위원회 및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강제이주 결정사항 제1428-326cc호에 기록된 공식적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조선사람들의 첩자행위 방지, 둘째는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의 농업인력 공급이었다.

그리고 강제이주를 직접 명령한 것은 스탈린이었다.

 

하바로프스크, 당지구위. 조선인들 이주 문제 – – 시기적으로 성숙했음.

이주 시기에 조금도 차질이 없도록 철저한 조치를 조속한 시일 내에 강구하기 바람.

                              당중앙위원회 서기 스탈린

                              1937 9 11 17 40

 

이것은 스탈린이 보낸 암호전보였다.

그 명령에 따라 연해주 일대의 조선사람 20여만 명은 9월 중순에서부터 11월 말까지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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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대우를 해주면서 이주시키면 모를까. 화물 기차칸 하나에 40명씩 몰아넣었단다. 중앙아시아까지 가는 길이 먼데 화물 기차칸에 화장실도 없이 40명씩 넣다니거기에 그들은 배고픔과 추위와 싸워야 했어. 윤선숙의 식구들도 모두 끌려갔단다. 기차가 중간 역에 잠시 멈췄을 때 윤선숙의 남편 조강섭은 기차에 타고 있는 당원들과 함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문의하러 소련군을 찾아갔어. 그런데,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단다. 비밀 경찰이 그들을 데리고 갔다는 이야기만 하고 기차는 그냥 출발했어. 그렇게 윤선숙은 남편과 헤어지게 되었단다. 나중에 알게 된 소식이지만 비밀경찰에 끌려간 이들은 소련군에 의해 모두 죽고 말았단다. 윤선숙은 아이들과 시어머니 때문에 남편을 찾아 나설 수 없었어. 계속된 추위와 굶주림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갔단다. 윤선숙의 시어머니도 기차 안에서 돌아가셨어. 결국 많은 사람들이 죽고 타슈켄트라는 낯선 곳에 도착했단다. 허허벌판이었어.

 

3.

다시 국내 사정을 이야기해볼게. 일본 순사로 일하던 장칠문은 순사를 그만두고 아버지의 가게와 회사를 물려 받았단다. 이젠 사장으로 불렸어. 장칠문은 상공회의소 회원 가입도 했어. 아버지에 이어 대를 잇는 친일파가 되었구나. 그런데 최근 친일파들이 피습 당해 죽는 일들이 발생했대. 혈청단이라는 조직이 벌인 일이라고 했어. 그런데 그 혈청단의 단장이 다름 아닌 보름이의 장남인 오삼봉이었단다. 하지만 혈청단의 조직은 금방 들통이 났단다. 조직원이 잡히고 말았어. 삼봉이는 도망가야 했어. 엄마인 보름이와 동생 금예도 피해를 볼 것 같아 같이 도망을 갔단다. 공허 스님에게 도움을 청했어.

공허 스님은 보름과 금예를 홍씨에게 맡기고, 삼봉이와 함께 만주로 향했단다. 하지만 압록강을 건너고 나서 그만 일본 경찰에게 정체가 드러났고, 공허 스님은 일본 경찰에 총탄에 맞아 죽고 말았고, 삼봉이만 간신히 도망을 갔단다. 그렇게 공허 스님도 해방을 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단다. 비록 소설 속 인물이지만, 공허 스님의 죽음 또한 안타깝구나. 오삼봉은 만주에 도착해서 외삼촌인 방대근과 이모 수국을 만나게 되었어. 한 핏줄이지만 그들은 첫 만남이었단다. 오삼봉은 외삼촌 방대근이 있는 동북항일연군에 합류하기로 했단다.

박건식의 장남 동화는 감옥에 다녀온 이후 공산주의에 회의를 느끼고, 친일로 변절했단다. 그의 머릿속에는 잘 살겠다는 것만 생각했어. 감옥에 다녀온 이후 학교 퇴학 조치로 인해 취직하는데 제한이 생겨 공산주의를 더 경멸하게 되었단다. 친일로 변절하는 것은 박동화뿐만 아니었어. 이 즈음 많은 사람들이 친일로 변절했단다. 이광수, 최남선을 비롯하면 많은 문인들이 친일로 변절했어. 잡지사에서 일하던 송중원도 그런 친일파들을 보며 씁쓸해했어. 송중원이 일하는 잡지사도 사회 이슈보다 연애 소설의 비중을 점점 늘려가는 것을 보고 송중원은 곧 잡지사에서 쫓겨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

만주의 조선혁명당을 이끌던 양세봉이 죽고, 조선혁명당은 동북항일연군에 합류하기로 했단다. 동북항일연군은 한국과 중국 연합 군대였어. 방대근도 동북항일연군 사령부에 소속되어 있었고, 밀정을 찾아내는 별동대를 지휘하고 있었어. 동북항일연군 소속의 김일성은 국경 넘어 함경남도 보천보를 기습하여 승리를 거두는 성과를 했단다. 이 소식은 국내에 전해지면서 기쁨을 주었어. 이런 김일성이 나중에 북한에서 그런 악랄한 독재자가 될지 누가 알았겠니.

마지막으로 하와이에 있는 조선인 이야기를 짧게 하고 마칠게. 방영근이 하와이에 온지 어느덧 33년이 되었단다. 그렇게 오래 있다 보니, 조국을 보지 못하고 하와이에서 삶을 마감하는 이들이 생겨났어. 방영근이 형님으로 모시는 구상배라는 사람도 폐암에 걸려 그만 조국 땅을 밟지 못하고 하와이에서 삶을 마감했단다. 죽어서 끝이 아니라 영혼이 있다면 좋겠구나. 영혼이라도 조국땅에 올 수 있으니까. 그리고 끝내 우리나라가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알 수 있으니까 말이야.

….

여기까지가 <아리랑> 10권의 이야기란다. 여전히 한반도는 암흑시대로구나. 해방이 될 때까지 일제의 탄압은 더욱 악랄해진단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 친일을 부르짖는 이들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구나. 역사를 제대로 안다면 과연 그런 발언들을 할 수 있을지..그래서 역사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란다. 우리 함께 역사를 읽고 공부해 보자꾸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모래밭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연모하는 사람을 찾아 만주까지 와서 뜻을 이룬 것도 그렇고, 목숨 내걸고 싸움터로 뛰어든 것도 그랬다


일본스파이 문제가 연해주의 조선사람들 사회에서 떠돌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 만주를 점령한 다음부터였다. 조선사람들이 일본스파이가 되어 소련국경을 넘나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해주의 조선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나보나 하며 별 관심 없이 들어넘겼다. 스파이라는 특이함도 특이함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보다도 더 관심 써야 할 중요한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혁명사회 건설이라고 하여 사회 전반의 제도와 바뀌고 있었고, 특히 농촌에서는 지주라는 것이 전부 없어지고 집단농장이 조직되고 있었던 것이다. 연해주의 조선사람들도 만주의 조선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다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해주에서도 어김없이 논을 일구었지만 그 땅이 러시아지주들의 것인 점도 만주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동안 소작인 생활을 겪어온 그들에게 지주 없는 집단농장이 만들어지는 것은 경이었고, 새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 조선사람들은 그런 사회 건설을 그야말로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 P126

그러나 양세봉 장군을 잃어버린 조선혁명당군들의 사기는 전만 같지 못했다. 그런데다 이탈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사기는 더욱 저하되어 갔다. 반면에 일본군과 만주군들의 공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승리하는 전투가 없어지면서 자꾸 궁지로 몰리게 되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총사령 김호석이 만주꾼에 체포되고 말았다. 조선혁명단군이 분산될 위기에 봉착한 것이었다. 그 위기 앞에서 손을 뻗친 것이 동북항일연군이었다. 조선사람들과 중국사람들의 연합군대인 동북항일연군으로 들어와 함께 싸우자는 것이었다. 조선혁명당군들은 만주에 새롭게 등장한 항일세력인 동북항일연군에 편입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혁명당군들은 동북항일연군 대원들로 모습을 바꾸게 되었다. 그런데 그건 단순히 힘이 약한 군대가 힘이 강한 군대에 흡수된 것이 아니었다. 조선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 그건 조국해방을 위해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이 서로 연합하고 협동한 것이었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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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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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부터 불로그나 유튜브에서 추천을 많이 추천한 책 <맡겨진 소녀>를 읽었단다. 지은이는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이라는 사람이야. 이 책의 표지 스타일과 제목만 봤을 때 아빠는 이 책이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했단다. 먼저 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추리 소설은 아닌 것 같더구나. 슬프면서 아름답고 이런 평들이 많았어.

평이 좋다 보니 귀가 얇은 아빠도 읽어봐야겠다고 주문을 했단다. 집에 도착하고 난 책을 보고 약간 놀랬단다. 책이 엄청 얇았거든. 전체 페이지가 104페이지이고, 실제 이야기부분은 100페이지도 안되었단다. 이 얇은 책에 어떤 매력이 있길래 많은 사람들이 추천을 할까. 책을 폈단다.

 

1.

1980년대 초반 아일랜드의 시골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어느 일요일 아침 소녀의 아버지는 주인공을 데리고, 엄마의 고향으로 향했어. 그리고 엄마의 먼 친척 집에 소녀를 방학 동안 맡겼단다. 10살 남짓의 나이였어.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라서 주인공 이름이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단다. 아빠가 캐치하지 못했을 수 있고 말이야. 그래서 그 주인공을 소녀라고 하고 이야기를 진행할게.

소녀가 친척집에 맡겨진 이유는 소녀의 집에 아이들이 많고 엄마가 또 출산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야. 소녀는 다섯째 중에 셋째였단다. 그렇게 소녀는 에드나 킨셀라 아줌마와 존 킨셀라 아저씨의 집에 도착했단다. 이 부분에서 <빨간 머리 앤>이 떠올랐는데, 그 부분 말고도 중간중간 아빠는 <빨간 머리 앤>이 떠올랐단다. 그런데 Jiny는 이 책의 겉표지를 보고는 이 책이 <빨간 머리 앤>이냐고 물어봤지? 아빠는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겉표지의 소녀의 머리 색깔이 빨갛긴 하구나. 그렇다면 이 소설은 지은이가 <빨간 머리 앤>을 오마주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구나.

아무튼 다시 책 이야기로 와서, 소녀는 존 아저씨와 에드나 아줌마의 집에서 일을 도와주며 함께 시골 생활을 했단다. 두 분은 소녀에게 무척 잘 대해주었단다. 집에서 느낄 수 없던 사랑을 느꼈단다. 특히 에드나 아주마는 소녀를 딸처럼 잘 대해 주었고, 배려심도 깊었어. 소녀가 낯선 생활에 긴장을 했는지 자다가 이불에 오줌을 쌌는데, 모른 척 하시고 이불이 원래 축축했었다면서 모른 척 이불을 말려주시곤 했어. 존 아저씨도 처음에는 좀 무뚝뚝했지만 나중에는 잘 대해주셨어.

어느날은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이웃 집에 초상이 나서 가야 했어. 그곳에 또래 아이들이 없을까 봐 아줌마는 소녀를 이웃의 밀드러 아줌마한테 맡겼단다. 밀드러 아줌마도 아주 반기면서 소녀를 맡아주었는데, 밀드러 아줌마의 단점은 너무 말이 많다는 것이었어. 남 이야기 하는 것도 좋아하고소녀에게 에드나 아줌마와 존 아저씨의 옛 이야기를 해주었어. 사고로 죽은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까지남의 아픈, 숨기고 싶은 이야기까지 왜 할까.

에드나 아줌마와 존 아저씨는 그런 아픔을 가슴에 품고 계셨구나. 하나밖에 아들을 보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그런 와중에 사랑스러운 소녀가 왔으니 얼마나 사랑스럽고, 이 아이는 꼭 지켜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소녀도 집에서 느껴보지 못한 아줌마와 아저씨의 다정함과 사랑에 한 단계 따뜻한 성장을 하게 되었지.

….

시간은 흘러 방학이 끝날 즈음이 되어 엄마의 편지가 도착을 했단다. 소녀를 데리러 오겠다고 말이야. 소녀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에둘러 말하지만, 어른들이 결정하는 것을 바꿀 수 없던 것이야. 이제 다시 북적북적하고 답답한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어. 에드나 아주머니는 소녀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뜨개질을 하셨어. 떠나기 전날 소녀는 에드나 아주머니를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혼자 우물에 물을 뜨러 갔다가 그만 우물에 빠지고 말았단다. 아빠는 소설이 갑자기 스릴러로 변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소녀는 잘 구출되었어. 단지 감기가 걸려서 집에 가는 시간이 조금 미뤄졌단다.

에드나 아주머니와 존 아저씨가 얼마나 놀랬을까. 자기 집에서 아이도 또 죽었다면 이번에는 더 큰 슬픔에 빠져서 회복하지 못 하셨을 거야. 소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단다.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를 돌봐준 에드나 아줌마와 존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소녀가 감기 걸린 것을 두 분 탓으로 돌렸단다. 소녀의 아버지가 좀 상식이 모자란 분이구나. 하지만 에드나 아줌마와 존 아저씨는 그것에 반박하지 않으시고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시게 된단다. 소녀는 돌아가시는 그 두 분을 향해 달려가 깊은 포옹을 하면서, 소설을 끝이 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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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아주 짧은 소설로, 소녀와 에드나 아주머니, 존 아저씨의 따뜻한 사랑과 그들만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이라고 아빠는 짧게 평하고 싶구나. 다른 이들이 많이 추천을 했지만, 너무 기대를 해서인지 아빠는 추천할 정도는 아닌 것 같구나. 이 소설의 인기에 힘 입은 건지 지은이 클레어 키건의 또 다른 작품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번역 출간되었단다. 이 작품은 어떨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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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검색을 하다 보니 소설 <맡겨진 소녀>는 영화 <말없는 소녀>로 만들어지기도 했다는구나. 제목은 왜 다르게 했을까, 홍보하기에는 제목을 똑같이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아무튼 영화 <말없는 소녀>도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도 했다고 하던데, 아빠는 처음 들어본 영화로구나. 시간은 별로 없고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읽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이 영화를 볼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겠구나. , 그럼 오늘은 이렇게 간단히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일요일 이른 아침, 클로너걸에서의 첫 미사를 마친 다음 아빠는 나를 집으로 데려가는 대신 엄마의 고향인 해안 쪽을 행해 웩스퍼드 깊숙이 차를 달린다.

책의 끝 문장: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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