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통권 167호 - 2019년 7월~8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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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녹색평론 167호를 읽었단다. 녹색평론 167호의 표지 사진에는 한 앳띤 소녀 한명이 알 수 없는 글이 써 있는 표지판을 들고 있는 있단다. 그 소녀는 스웨덴의 한 학생이라고 하는구나.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고 2018 8월부터 금요일마다 등교를 거부하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그레타 툰베리라는 학생이란다. 그레타가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는 한 가지. 기후위기에 어른들에게 행동하라고, 긴급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하는 거야. 미래는 어쩌면 어른들보다 너희들 같은 어린이나 청소년의 것이잖아. 그런 미래를 어른들이 엉망으로 망쳐 놓으니, 그러지 말라는 하는 거야.

그레타의 이런 1인 시위는 세계의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청소년들이 동맹휴학을 하고 시위하도록 촉발했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어른의 한 사람으로써,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구의 온도가 이렇게 빨리 올라갈 줄 몰랐어. 오늘도 아빠가 어렸을 때는 볼 수 없었던, 스콜 같은 강한 소나기가 한줄기를 뿌리고, 소나기가 오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던 어렸을 때와는 달리 최근의 소나기가 지나가면 후덥지근한 날씨만 남기더구나. 아빠는 몇 번 이야기했지만, 기후변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 같아. 너희들 세대에게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야. 그레타는 어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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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가 100살까지 산다면 저는 2103년에 살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지금 미래를 생각할 때는 2050년 너머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오래 산다면, 2050년은 제가 절반도 살지 못한 때입니다.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2078년에는 제가 75번째 생일을 맞을 겁니다. 저에게 아이나 손주들이 있다면, 그들은 저와 함께 그날을 보내겠지요. 아마도 그들은 저에게 2018년에 살았던 여러분들에 관해 물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왜 여러분이 아직 행동할 시간이 있는데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지 물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행동하거나 하지 않는 것 때문에 나의 전 생애와 내 자녀와 손자와 손녀들의 삶이 영향을 입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하거나 하지 않는 일의 결과를 저와 저의 세대는 미래에 되돌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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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의 어른 세대가 잘못한 것이 날씨만이겠니. 핵발전소는 또 얼마나 많이 만들었니. 그것들은 죄다 너희들에게 만년 쓰레기가 될 텐데 말이야. 그래도 핵발전소는 선진들을 중심으로 줄이면서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기후위기에 대한 대처는 왜 그리 미온적인지 모르겠구나. 온도 변화가 서서히 와서 그런 것이니기후위기에 대해서 많은 깨어있는 자들이 경고를 해 왔는데, 선진국들도 협의를 깨고, 미루고 그러잖니우리 인류는 이제, 서서히 끓는 물에 죽는 줄 모르는 개구리와 같은 신세가 아닌가 싶구나.

지금이라도 어른 세대는 각성해야 한단다. 청소년과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더 늦게 전에 노력을 해봐야 한단다. 아빠도 조그마한 노력이라도 할게. 전기도 아껴 쓰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웬만한 더위는 참아 보고, 연료도 아껴 쓰고 말이야. 미래는 너희들 것이란다. 그 미래를 지키기 위해 너희들도 함께 동참하도록 하자꾸나.

 ….

며칠 동안 아빠가 회사 일로 정신 없이 바빠서 이번 독서 편지는 아주 짧게 끝낼게. 이해 바람^^

PS:

책의 첫 문장: 하노이 회담 결렬되는 것 보고 다들 걱정 많이 하셨지요?

책의 끝 문장: 읽기의 위기가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야간에 한반도를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휴전선 남쪽은 휘황찬란한데, 북쪽은 깜깜하잖아요. 흔히 우리는 이 사진을 남한은 발전하고 번영한 사회, 북학은 아주 낙후된 암담한 사회를 상징하는 기표로 보고 있지만, 오늘날 크나큰 위기에 처한 지구 환경문제를 생각하면 북쪽이 남쪽을 따라 할 게 아니라 오히려 남쪽이 북쪽을 따르는 게 순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아무 생각도 없이 흥청망청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살고 있잖아요. 이 조그마한 나라가 식량자급도, 에너지자급도 못하면서, 석유 낭비가 구조화된 경제를 맹목적으로 확대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다 보니 결국 미국에 대해서도 할 말 제대로 못 하고 굴종적인 처지가 된 거란 말이에요. 미국인들이 이런 한국에 대해 존경심이 들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다는 공허한 이야기나 하고 있습니다. 그런 수치가 무슨 의미가 있어요? - P6

사람들이 지구온난화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근본 이유 중 하나가 날씨(기상)와 기후를 혼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후는 장기적 균형상태이고 날씨는 그 균형에서 벗어나는 단기적 일탈을 뜻한다. 기후학자들은 ‘날씨는 기분이고 기후는 성품’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날씨가 수시로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기후가 변하면 인간과 문명은 예상치 못한 위험에 처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교차가 10℃를 넘어도 큰 탈이 없는데 지구 온도가 1~2℃ 상승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한다. 지구 평균기온은 날씨에 견주어 그 성격과 범위가 전혀 다르다.- P39

국가의 지출은 새로운 화폐 창출에 의해 충당된다. 그래야 민간이 세금 납부 수단으로 국가가 인정한 화폐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민간이 세금 납부에 필요한 화폐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민간이 세금 납부에 필요한 화폐를 가질 수 있도록 정부는 적자재정을 운영해야만 한다. 또한 조세수입 혹은 국채 판매 금액은 지출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는 화폐의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출을 행하기 위해 조세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민간에서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정부가 지출을 먼저 행해야 하는 것이다. 조세는 실질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 증표를 화폐로서 통용되게 만드는 원동력이지만(세금 낼 때 필요하므로) 정부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조세는 민간의 총수요를 억제하는 수단 등으로 활용될 뿐이다.- P74

일로서의 농사와 직업으로서의 농부에 대해 나는 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좋은 직업이 농부라고 생각한다. 수입을 많고 적고는 상관이 없다. 멋을 좇고 돈을 좇는 사람은 도시에서 살아야 하겠지만, 나는 아름다움과 내면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시골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인생을 관통하는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내면적으로 보다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저마다의 그릇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보통사람들처럼 그저 운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고, 늘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나를 이끌어준, 나의 ‘영웅’이 두 사람 있는데, 심리학자 칼 융과 함석헌 선생이다.- P170

백년 전, 루쉰은 고향을 떠나면서 짙은 쪽빛 하늘에 걸린 황금빛 보름달을 보면 이렇게도 생각했단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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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 - 수학자 아버지가 들려주는 수학으로 본 세계
오구리 히로시 지음, 서혜숙.고선윤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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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수학에 관한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야. 그래서 책제목에 수학이 들어가는 교양서적을 보면 눈 여겨 본단다. 이 책도 그렇게 눈 여겨 보았는데, 지은이가 낯이 익더구나. 오구리 히로시라는 일본 사람이야. 아빠가 작년에 <중력, 우주를 지배하는 힘>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을 지은 사람이란다. , 물리학자로 알고 있었는데, 수학에 관련된 책도 썼구나. 머리말을 읽어보니, 지은이 자신은 물리학자지만,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는구나. 하기야 물리학과 수학은 단짝 친구라고 할 수 있지. <중력, 우주의 지배하는 힘>을 괜찮게 읽어서 이 책도 읽기로 마음먹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단다. 수학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이 책은 지은이가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 읽다 보니 작년에 읽은 EBS에서 엮음 <넘버스>라는 책과 겹치는 내용이 많았단다. 뭐랄까… <넘버스>라는 책보다는 좀더 깊게 서술되어 있었어. 어려운 수식들이 나왔어. 아빠가 수학 전공자도 아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 이해하려고는 하지는 않았어. 이해할 수 있는 것들만 이해하고 넘어갔단다.

1.

숫자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자연수, 음수를 포함한 정수, , 무리수, 허수 등등수학의 역사를 보았을 때, 하나하나 새로 생겨난 수들그것을 보면서 혹시 앞으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수가 생겨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허수와 실수를 같이 엮어 부르는 복소수가 있는데, 그 복소수보다 더 큰 범위에 있는 수의 개념이 미래에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 그럼 수학이 더 어려워져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더 많이 나오면 어쩌지?

..

숫자는 참 신기한 것 같단다. 숫자들에 비밀도 많이 숨겨져 있어. 얼마 전에 너희들과 함께 수학 공부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져 1만 잔뜩 있는 숫자들을 하나씩 곱하다가 결과가 재미있게 나와서 1을 하나씩 계속 추가해서 곱해봤잖아. 너희들도 그 결과를 재미있어 하고 말이야. 그렇듯 수학의 셈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 것 같구나. 이 책에서도 그런 예들이 심심치 않게 나왔는데, 한가지만 이야기해줄게.

1 0.9999999999…… 는 같다! 이 말은 틀린 말일까? 맞는 말일까? 일반적으로 생각해볼 때, 0.9에서 9가 무한대로 이어져도 결국 1보다는 작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것은 잘못된 이야기란다. 1 0.999999….. 는 같은 수란다. 그 이유는 아래 책에서 발췌한 내용을 참고해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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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1=0.99999…. 는 납득할 수 없다?

숫자를 소수로 표현하면 소수점 이하의 무한의 숫자가 늘어서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1 3으로 나누면

1÷3=0.3333333…..

와 같이 0. 다음에 3이 무한개 늘어선다. 이러한무한 소수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2장에서 나눗셈은 곱셈의 역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3으로 나눈다는 것은 3을 곱하는 것의 역이다. 그러면

1=(1÷3)x3

이 된다. 여기서 우변을 계산해 보면

(1÷3)x3 = 0.3333333… x 3 = 0.9999999…

이 된다. 이것이 좌변과 같으므로

1=0.99999999…..

이 성립한다. 이것은나눗셈은 곱셈의 역이라는 정의로부터 유도한 식이므로 맞아야 한다. 그러나 이 등식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좌변의 1과 우변의 0.9999999…는 보기에서 다르므로 등호로 연결하는 것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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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에 여러 수학사의 유명한 에피소드들을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어. 그러자면 여러 유명한 수학자들의 이야기들도 해주었는데, 그 이야기들도 재미있더구나. 기하학을 정립한 유클리드, 고대 면적을 재기 위해 적분을 고안해 낸 아르키메데스. 잠깐, 아르키메데스라는 사람의 에피소드는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겠구나. 이 아르키메데스라는 사람도 천재였던 것 같아. 너희들도 이 아르키메데스 알지? 얼마 전에 너희들과 함께 아르키메데스가 외친 유레카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잖아. 그 아르키메데스는 수학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어. 그 아르키메데스가 적분을 처음 알아낸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단다. 그런데 아빠는 당연히 미분이 먼저 발명되고 적분이 발명된 것인 줄 알았어. 왜냐하면 예전에 배운 교과서에 미분을 먼저 배우고, 적분을 나중에 배웠거든. 그런데 적분이 한참 먼저 발명되었더구나. 미분은 중세시대에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거의 동시에 발명되었잖아. 아무튼 아르키메데스라는 이 위대한 수학자는 수학을 전쟁에 응용하여 로마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나라인 시라쿠사를 막아냈다고 하는구나. 정말 위대한 수학자가 아닐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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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시라쿠사를 포위한 로마군을 맞이한 것은 고대 세계 최고의 수학자라고 불리던 아르키메데스와 그가 발명한 수많은 무기였다. 탄착점을 조정할 수 있는 투석기에는 사각지대가 없었고, 지레와 도르래의 원리를 응용한 크레인은 바다로부터 접근해오는 군함을 들어 올려 전복시켰다. 성벽으로 다가갈 수 없었던 로마군은 포위망을 풀고 일시적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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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읽은 김민형님의 <수학이 필요한 순간>에서도 소개되었던 철학자인줄만 알았던 데카르트의 이야기가 이 책에도 나왔단다. 혹시 기억나니? 데카르트가 좌표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아서, , 타원형 등을 수식으로 설명할 수 있게 했잖아. 그리고, 작년에 읽은 <넘버스>라는 책에서 소개되었던,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치정극의 결투로 사망한 갈루아에 대한 이야기를 방정식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해주었단다. 몰랐던 수학자들의 에피소드들은 참 재미있더구나.

3.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수학과 숫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는데,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만 해줄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미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을 했대. 그 이유를 세가지 들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상당히 과학적인 증거였단다. 장소에 따라 북극성의 높이가 다르게 보인다는 이유가 첫 번째이고, 월식의 원인이 달이 지구의 그늘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 그늘의 가장자리 모양이 둥글다는 사실로 지구가 구형이라고 생각했다는 거야. 이 두 가지는 상당히 정확한 근거란다. 그런데 마지막 세 번째 증거가 재미있단다. 지구가 둥근 이유는 바로 코끼기가 서쪽에서 살고, 동쪽에서 살기 때문이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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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또 다른 이유는 동물인 코끼리 때문이다. 그리스인에게 코끼리는 동방과 서방에만 있는 신기한 동물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 326년에 인도까지 동방 원정을 갔을 때 마가다국의 군대는 6,000마리의 코끼를 몰고 나와 대치했다. 한편, 지중해 문명의 중심시 중 하나였던 이집트 서방의 카르타고에는 지금은 멸종된 북아프리카 코끼리가 있었다. 기원전 218년에 시작된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30마리 이상의 코끼리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 공화국으로 쳐들어간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리스인들은 인도코끼리와 아프리카코끼리가 다르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동방과 서방에 같은 모양의 코끼리가 살고 있고 그 중간에 있는 자기들이 사는 곳에는 코끼리가 없으므로 동과 서는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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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민주주의. 지은이의 말이 궤변 같기도 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 수학과 민주주의를 엮어서 이야기를 해 준 것에 공감이 가더구나. 고대 그리스에서 수학이 발전한 이유는  민주주의 풍토가 수학을 발전시켰다는 논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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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수학과 민주주의는 둘 다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했습니다. 수학은 종교와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만인에게 받아들여진 이론만을 사용해서 진실을 찾아가는 방법입니다. 위에서 강요하는 결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머리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이런 자세는 민주주의가 건전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수학과 민주주의가 거의 동시대에 같은 장소에서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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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아빠가 생각나는 부분과 메모한 부분을 위주로 두서없이 편지를 썼구나. 원래 수학이라는 것이 뭐 그렇지여기 풀다가 저기 풀다가 ㅎㅎ

 

PS:

책의 첫 문장: 네가 태어났을 때, 나는 네가 행복한 삶을 사는 동시에 이 사회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단다.

책의 끝 문장: 이 책에서 소개하는 수학의 언어가 이것을 위한 힌트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음수를 당당하게 사용하게 된 것은 영(0)보다도 훗날의 일이다. 유럽에서는 17세기가 되어서도 음수를 사용하는 것을 주저했다. 수학, 과학, 철학의 광범위한 영역에 영향을 미친 블레즈 파스칼마저도 ‘0에서 4를 빼면 0 그대로다’라도 주장했다. 또한 근대 합리주의의 원조라고 하는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도 방정식을 풀고 음수가 나오면 ‘무보다 작은 수는 없다’면서 거부했다. 음수를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한 사람은 17세기의 철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였다고 전해진다.- P53

고등학교 수학에서는 거의 모든 교과서가 미분을 먼저 설명한 후에 그 역역산으로서 부정적분을 도입한다. 그리고 면적을 계산하기 위한 정적분은 부정적분의 차이로서 정의한다. 이러한 순서는 완성된 수학을 논리적으로 가르친다는 의미에서는 이치에 맞지만, 역사적인 발전 순서로 보면 정반대이다. 아르키메데스가 면적을 계산하기 위해 적분을 연구한 것은 기원전 3세기이고 뉴턴과 라이프니치가 미분법을 고안해낸 것은 17세기. 두 시기 사이에는 1800년 이상이나 차이가 있다.-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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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읽다라는 동사에는 명령형이 먹혀들지 않는다. 이를테면 사랑하다라든가 꿈꾸다같은 동사처럼, ‘읽다는 명령형으로 쓰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줄기차게 시도해볼 수는 있다. “사랑해라!” “꿈을 가져라!”라든가, “책 좀 읽어라, 제발!” “, 이 자식, 책 읽으라고 했잖아!”라고.

네 방에 들어가서 책 좀 읽어!”

효과는?

전혀 없다.

(22)

그런데 이제 어느샌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제 방에 틀어박혀, 읽지 않는 책을 마주하고 있다.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은 아이의 열망이 아이와 펼쳐진 책 사이에 희뿌연 막이 되어 행간이 흩뜨린다. 아이는 방문을 닫아건 채 문을 등지고 창 쪽을 향해 앉아 있다. 48페이지. 여기까지 읽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차마 헤아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책 전체는 정확하게 466페이지다. 그러니까 거의 500페이지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다. 500페이지! 대화라도 좀 섞여 있으면 좋으련만! 어림없는 소리다! 페이지마다 얼마 되지도 않은 여백을 두고 좁쌀만 한 글자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새카맣게 행을 이루며 빼곡히 이어진다. 어쩌다 한번씩 가물에 콩 나듯 드문드문 대화가 섞일 뿐이다. 한 인물이 상대방에게 건네는 말을 가리키는 따옴표(“ ”)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라도 되는 양 반갑기 그지없다. 하지만 상대방은 아무런 대꾸가 없다. 그러고는 다시 12페이지가 이어진다.

(24)

보름이라고요? 400페이지(사실은 500페이지다)나 되는 책을 보름 만에 다 읽으라고요? 말도 안 돼요, 선생님!”

선생님에게 타협이란 없다.

정말 골 때리는 책이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는 영겁의 돌덩이, 지겨움 그 자체다. 그게 책이다. 그냥 말이다. 아이는 논술 과제를 쓸 때 책을 이라고밖에 달리 뭐라 이름 붙일 수가 없다. 이 책이든 저 책이든 아이에게는 그저 그렇고 그런 책일 뿐이다.

(25)

더군다나 책이 지니는 무게란 한결같이 사람을 아래쪽으로 잡아당기는 성향이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무너질 가벼운 결심을 하고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몇 페이지도 못 읽고, 아이는 익히 알고 있는 그 끔찍한 무게에 짓눌리기 시작한다. 책의 무게, 지루함의 무게, 아무리 기를 써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버거움의 무게에.

(35-36)

마냥 늑장을 부리다가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마지못해 저녁 식탁에 얼굴을 들이민 아이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사춘기 특유의 무게를 잡고 앉아서, 한마디 사과는커녕 식구들 간의 대화에 끼려는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는 식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후닥닥 일어선다.

(50)

독서의 즐거움이 사라져간다고 해서(다들 우리의 아들딸이, 요즘 젊은 아이들이 책읽기를 싫어한다고들 하니까), 아주 까마득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다.

그 즐거움은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다.

(67)

아이는 냉철하기 그지없는 훌륭한 독자입니다.”

아이는 누구나 훌륭한 독자가 될 자질을 타고난다. 그리고 주위의 어른들이 몇 가지 지침만 잊지 않는다면 아이는 언제까지고 훌륭한 독자로 남을 것이다. 우선은 어른들이 자신의 능력만을 내세우려 들기보다는, 아이에게 열정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무조건 암기와 복습만을 강요할 게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북돋워 줘야 할 것이다. 모퉁이에 서서 아이가 도착하기만 기다릴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볼 일이다. 어떻게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들기보다는, 기꺼이 아이에게 저녁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 미래를 담보로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기보다는 아이의 현재가 한껏 펼쳐질 수 있도록 마음 써야 한다. 한때는 아이의 더없는 즐거움이었던 일이 결코 마지못해서 하는 고역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자면 아이가 그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도록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적어도 아이 스스로가 그 즐거움을 의무로 삼고자 할 때까지는 말이다.

(94)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싶다. 생각을 추스르고 교사는 다시 아이들의 과제물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한낱 과제물 채점자에 지나지 않는 교사의 고독감을 그 누가 알겠는가?) 몇 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어느새 눈에 익은 낱말이 태반이다. 그렇고 그런 논지가 계속 반복되는 상황이다. 울컥 짜증이 치민다. 마치 반 아이들이 모두가 그에게 무슨 경전이라도 읊어대고 있는 듯하다.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어야 한다!라고, 눈에 들어오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전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뻔히 드러내고 있는데도, 읽어야 한다니……! 그것은 끝없이 반복될 뿐인 공허한 교육적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103)

우선 이제까지의 정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제까지 우리 인격을 형성해온 책읽기란 대개 순응하고 따르는 책읽기라기보다는, 무언가에 반하고 맞서는 책읽기였다. 즉 이제껏 우리는 마치 세상과 등지듯 현실을 거부하고 현실과 대립하기 위해 책을 읽어왔다. 그래서 때론 우리가 현실 도피자처럼 여겨지고 현실마저 우리가 탐닉하는 독서의 매력에 가려져 아득해지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도망자,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탈주자인 것이다.

(140)

결국 아이들은 두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두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아이들은 (탄복할 정도로!) 세련되고 한데, 학교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끊임없이 아이들을 괴롭히고 혹사시킨다. 아이들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언젠가 어른이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끝없는 항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151)

그렇다고 무슨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장족의 발전을 이루기까지 교사가 한 일이라곤 거의 없다. 책읽기의 즐거움이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다만 읽어도 모를까 봐 지레 겁을 먹었던 (그야말로 오랜 고질병과도 같은) 그 말 못 할 두려움으로 인해 줄곧 사춘기 아이들의 기억 저편에 묻혀 있었을 뿐이다.

(174)

미국 고등학생들에게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크나큰 골칫거리라는 말을 해주자, 얼마 전에 그 책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은 벌링턴과 바이크족이 가장 놀라워했다. 단지 <호밀밭의 파수꾼>이 교과 과정에 포함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 미국의 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샐린저를 강매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동안에, 한쪽 구석에서는 텍사스의 어떤 바이크족이 에마 보바리에게 푹 빠져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177)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학교의 문학 교육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관건은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이해력 못지않게 전략을 구사하는 능력을 훈련시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열등생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극히 정상적인 보통의 아이일 경우가 허다하다. 단지 전술적인 대처 능력이 부족할 뿐이다. 자신이 어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아이는 곧 학교 교육과 교양을 혼동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거부당한 학생은 자신이 도서나 교양과는 애당초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만다. ‘읽는다는 것은 자기와는 전혀 다른 부류가 다른 선민들이나 하는 고상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로 아이는 평생 책과 담을 쌓고 지내게 된다.

(178-179)

초등학생이건 고등학생이건 적어도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늘 작품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숙제가 아이들을 따라다닌다. 그런 식의 과제는 아이들을 질리게 만들어 급기야 책과 벗할 기회마저도 빼앗기기 십상이다. 20세기 말인 지금도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주인처럼 군림하는 설명에 가려, 정작 설명하는 대상은 뒷전으로 밀려 보이지도 않는다.

(189)

독서에 관한 한, 우리 독자들은 스스로 모든 권리를 허용한다. 우리가 이른바 독서 지도를 한다면서 청소년들에게는 일절 허용하지 않았던 권리를 비롯해서 말이다.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슴을 누릴 권리

7)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어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202)

한 권의 소설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던져버릴 만한 이유는 3 6,000가지쯤 있다. 이를테면 전에 어디선가 읽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다지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작가가 주장하는 바에 전혀 동조할 수가 없어서, 혹은 닭살이 돋을 만큼 문체가 역겨워서, 더 이상 읽어나갈 이유를 찾지 못할 만큼 문체가 진부해서라는 등……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여기서 굳이 나머지 3 5,995가지 이유까지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225)

인간을 살아 있기 때문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쓴다. 인간은 무리 짓는 습성이 있기에 모여서 산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독서는 인간에게 동반자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 자리는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자리도,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어떠한 명쾌한 설명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삶과 인간 사이에 촘촘한 그물망 하나를 은밀히 공모하여 얽어놓을 뿐이다. 그 작고 은밀한 얼개는 삶의 비극적인 부조리를 드러내면서도 살아간다는 것의 역설적인 행복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만큼이나 불가사의하다. 그러니 아무도 우리에게 책과의 내밀한 관계에 대해 보고서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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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7
소포클레스 지음, 강대진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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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너무나 유명한 그리스 희곡 <오이디푸스 왕>을 읽었단다. 이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줄거리를 모두 알고 있을 거야. 아빠도 어디서 이 이야기를 들었는지(또는 봤는지) 모르겠지만, 오이디푸스 왕에 관한 이야기는 알고 있단다. 원전을 읽어보고 싶었어.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원전을 번역한 책이긴 하지만.. 지은이는 원전 번역에 충실히 했다고 했어. 그래서 이야기가 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고, 읽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앞머리에 이야기를 했단다. 이런 고전은 읽기 어렵기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발번역 같은 것에 대한 핑계는 아니겠지?^^

지은이는 소포클레스라는 사람이야. 무려 기원전 497년에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이름을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처음 들어본 것 같기도 한  이 사람은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라는 분들과 함께 그리스 3대 비극 시인으로 꼽힌다고 하더구나. 비극 작가로도 알려져 있지만, 어떤 곳에서는 비극 시인으로 소개하고 있어. 그러니까 그의 작품들은 시로 이루어져 있는 거야. 연극에 바로 올릴 수 있는 희곡의 형식이 맞긴 한데, 그 대사들이 하나같이 시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읽기 쉽지 않다는 거지.

소포클레스. 이 사람에 좀 알아보니, 이 사람은 고대 그리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하는구나. 부잣집 아들로 잘 크다가 비극 경연대회에서 선배인,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3개 비극 시인 중에 한 사람인, 아이스킬로스를 이기면서 유명해졌대. 정치 생활도 좀 하고, 전쟁에도 참여를 했었고 하는구나. 그 오래 전에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희곡들을 썼을까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어보려고 했단다.

 

1.

이 책에는 총 4개의 희곡이 실려 있단다. 비극 작가답게 모두 비극이었어. 네 편 중에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는 이야기가 이어졌단다. 마치 시즌2라든가, 영화의 속편과 같은 느낌이 들었단다. 그래서 두 작품의 줄거리는 같이 이야기해볼게. 사실 인터넷을 찾아보는 것이 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더 잘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하지만 아빠는 너희들에게 이야기하고픈 것을 글로 남기는 거니까 그냥 적을게.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 순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었어. 이야기의 시작은 오이디푸스 왕이 이미 테바이 왕에 오른 이후부터 시작했어. 그리고 선왕이자, 자신의 아내인 왕비 이오카스테의 전남편인 라이오스 왕을 죽인 범인을 찾는 재판으로 시작된단다. 너무 유명한 이야기라서, 라이오스 왕을 죽인 이는 바로 오이디푸스 왕이고, 그 라이오스는 자신의 아버지였으며, 왕비인 이오카스테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을 읽는 이들이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그런 줄거리를 모르고 이 희곡을 읽었다면, 또는 이 희곡으로 만든 연극을 보았다면 대단한 반전에 사람들이 감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아빠는 책을 읽으면서도 아빠가 이 내용을 모른다고 가정하고 읽어봤어.

오이디푸스 왕 앞에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찾아왔어. 테이레시아스는 이미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오이디푸스 왕에게는 비극적인 미래만 넌지시 알려주었어. 그것 때문에 오이디푸스 왕은 화가 단단히 났단다. 테이레시아스는 퇴장하고 왕비 이오카스테에게 라이모스가 어떻게 죽었냐고 물어보았어. 삼거리 부근에서 죽었다고 하고 인상착의를 이야기하는데, 오이디푸스가 이곳에 오면서 시비가 붙어 죽인 어떤 일행들과 비슷했어. 점점 불안했어.

이오카스테는 더 먼 과거의 이야기를 했단다. 자신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 신탁에 따르면 그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와 결혼한다고그래서 라이오스 왕은 그 아들을 발목을 꿰어 죽이라고 시켰다고그런데 어떤 괴한이 라이오스 왕을 죽였으니 신탁이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했어.

오이디푸스 왕도 자신의 신탁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내용이어서, 그럴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부모님 곁을 떠나 떠돌아다녔다고 했어. 그랬다가 어떤 이들과 시비가 붙어서 죽인 것이라고 했어. 그 이후 테바이까지 오게 되고, 이오카스테와 결혼하게 되고 테바이의 왕까지 된 것이라고 이야기했어.

….

이오카스테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고, 오이디푸스 왕도 제발 아니길 빌면서 그 무서운 진실을 알고자 했단다. 그래서 라이오스 왕이 아들을 죽이라고 시킨 하인을 찾아냈어. 그리고 그 무서운 예상이 무서운 진실임을 알게 되었어.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를 찾았지만, 이미 목매달아 죽고 난 뒤였어. 이오카스테를 끌어안다가 이오카스테의 옷핀을 보고 그 옷핀으로 자신의 양쪽 눈을 찔러 장님으로 만들었단다. 더 이상 비극적인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오이디푸스 왕은 오래 살지 못했어.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왕이 된 에테오클레스와 원정을 떠났던 폴뤼레이케스.. 그런데 폴뤼레이케스는 군대를 이끌고 성으로 와서 에테오클레스와 전투를 했고,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는 모두 죽고 말았단다. 이후 반란을 정리한 것은 이오카스테의 동생 크레온이었어 크레온이 왕이 되었어. 크레온은 반역자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허락하지 않고, 시신을 버려주라고 했어. 오이디푸스는 아들 둘 이외에 딸이 둘 있었어.

안티고네와 이스네메. 안티고네는 가족으로서 순수한 마음으로 폴뤼네이케스의 장례식을 치 주었어. 이 일을 알게 된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잡아왔단다. 사실 안티고네는 자신이 이렇게 잡혀와서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일이었어. 안티도네는 크레온 왕 앞에서도 당당했어. 크레온 왕 입장에서 보면 안티고네는 조카였지만, 왕이 내뱉은 말이 있으니 법대로 죽일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안티고네의 약혼자가 다름 아닌 크레온 왕의 아들 하이몬이었단다. 하이몬은 안티고네를 변호했어. 하지만 크레온 왕은 완강했어. 하이몬은 아버지와 언쟁을 벌였단다.

안티고네는 동굴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결국 자살을 하였단다. 이를 본 하이몬도 잇달아 자살을 했단다. 이 소식을 들은 하이몬의 엄마도 자살을 했어. 크레온은 뒤늦게 후회를 해본들,,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겠니크레온 왕의 입장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모두 죽은 이들인데, 가족들의 순순한 마음은 인정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2.

세번째 희곡은 <아이아스>라는 작품이란다. 각 희곡이 시작하기 전에 등장인물을 소개하는데, 아이아스라는 희곡의 등장인물이 정말 화려하구나. 전쟁의 신 아테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뒷세우스. 마찬가지로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가멤논,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도대체 아이아스가 누굴길래.. 아빠가 분명 트로이 전쟁에 관한 책을 두어 권 읽었는데, 아이아스라는 이름은 기억이 없구나. 아이아스 또한 트로이 전쟁에서 싸운 영웅이라고 하는데 말이야. 아빠의 기억력이 그렇지그저 아주유명한 사람들만 알지

아이아스도 오뒷세우스와 함께 희랍의 장군이었대. 아킬레우스가 죽고 난 다음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아이아스는 당연히 자신이 차지할 것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장수들의 판결에 의해 오뒷세우스가 차지하게 되었지. 아이아스는 승복할 수 없었어. 이에 잔뜩 삐친 아이아스의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란다. 아이아스는 분에 이기지 못하고 오뒷세우스를 지지하는 장수들에게 복수를 감행했어. 장수들을 모두 죽여버린 것이지. 하지만, 그가 한 복수는 아테네가 술수를 쓴 것을

아이아스는 가축들을 죽인 것뿐인데 환상을 본 것이었어. 나중에 자신이 한 짓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자살을 하게 된단다. 그가 한 짓이 소문이 나서 다른 장군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리라 생각했거든. 아이아스가 죽고 나서 그의 장례에 대해 메넬라오스 왕과 아가멤논은 치르지 못하게 명령을 내렸고, 아이아스의 동생 테우크로스는 전쟁도 불사하려고 했어. 오뒷세우스가 찾아와서 교통정리를 해서, 테우크로스는 형 아이아스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어. 아이아스란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아빠는 처음 알게 되었단다.

 

3.

마지막 이야기는 트라키스 여인들이라는 희곡이야. 이 희곡도 마찬가지로 비극이겠지? 이런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단다. 마찬가지로 등장인물 소개를 보았는데, 헤라클레스가 나오고, 헤라클레스의 아내 데이아네이라가 등장한단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헤라클레스. 그의 죽음이 이렇게 허망했던 것을 아빠는 처음 알았단다.

헤라클레스의 아내 데이아네이라는 헤라클레스가 전리품으로 먼저 보낸 이올레라는 젊은 여자에게 질투를 느꼈어. 그리고 질투를 참지 못하고, 헤라클레스로부터 다시 애정을 찾아오겠다는 일념으로, 제사 의복에 네소스의 피를 묻혀 헤라클레스에게 보냈어. 오래 전에 네소스라는 이가 헤라클레스에게 죽으면서 자신의 피가 남편의 애정을 돌려놓을 수 있다는 말을 했었거든. 그러나, 네소스의 피는 독이었어. 네소스의 피가 묻은 옷은 헤라클레스가 입자 헤라클레스의 몸에 달라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고, 극심한 고통을 주었단다. 헤라클레스는 그 극심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죽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주변 사람들에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어. 아무도 못하고 있었으나, 한 용기 있는 자가 헤라클레스가 죽게 도와주었단다. 힘센 장사로만 알고 있었던 헤라클레스가 이런 허망한 죽음을 맞이했다니. 놀랍구나. 그리고 이런 사태를 만든 데이아네이라 역시 자살을 하고 말았단다.

이렇게 네 편의 희곡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오이디푸스 왕이야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서 놀랍지 않았으나, 나머지 세 편의 희곡은 처음 알게 된 이야기로 놀랍고도 재미있더구나. 지은이가 이야기한 것처럼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고전 그대로의 분위기를 살려서 읽기가 조금 어려웠지만,

나름 괜찮았단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읽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었어. 고전으로 오랫동안 사랑 받는 이유가 다 있더구나.

 

PS:

책의 첫 문장: , 자녀들이여, 옛적 카드모스의 새 자손들이여, 대체 왜 이러한 자세로 그대들은 앉아 있는가, 양털을 둘러 감은 탄원의 나뭇가지를 들고서?

책의 끝 문장: 처녀여, 그대도 집에 머물지 마라, 새로운 커다란 죽음들을 보았고, 처음 겪는 많은 고통들도 보았으니. 하지만 이들 중 어느 것도 제우스 아닌 것은 없도다.

아아, 필멸의 인간 종족이여.
그대들이 살아 있을 때조차 아무것도 아님을
내 얼마나 헤아렸던가!
대체 누가, 어떤 인간이
겉으로만 행복해 보이고, 그러다가
기울어 저무는 것 이상의
행복을 얻고 있는가?
오, 가여운 오이디푸스여, 내 그대의,
그대의, 그대의 운명을
거울로 삼아, 그 어떤 인간도
행복하다 여기지 않으리.- P96

안티고네 “하지만 하데스는 그들을 동등하게 대할 것을 요구합니다.”
크레온 “아니, 이익을 주는 이가 사악한 자와 같은 몫을 받을 수는 없다.”
안티고네 “저승에서는 이것이 합당한 일이 될는지 누가 아나요?”
크레온 “원수는 절대로, 죽었다 해도 친구가 될 수 없다.”
안티고네 “저는 모두 미워하기보다는 모두 사랑하게끔 타고났어요.”- P150

그러니 만일 누가 두 날 혹은
더 많은 날들에 궁리한다면,
그건 헛된 짓이오. 내일이란 없으니 말이오,
오늘을 잘 보내기 전에는.-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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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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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김상욱 교수님의 책을 읽었단다. 그동안 아빠가 읽은 김상욱 교수님의 책들은 과학 본연의 주제를 담고 있었고, 특히 김상욱 교수님의 전문 분야인 양자역학에 대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어. 이번에 읽은 책은 과학보다는 조금 멀고, 우리 일상에 좀더 가까운 글들이었단다. 떨림과 울림이라는 책 제목도 좋았단다. 가끔 책 제목이 <떨림과 울림>인지, <울림과 떨림>인지 헛갈린 때가 있지만 말이야.

..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세상 만물은 모두 떨림이 있다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 것도 좋았어.

========================

(5)

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수천 년 동안 한자리에서 말없이 서 있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떨고 있다. 그 떨림이 너무 미약하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미세한 떨림을 볼 수 있다. 소리는 떨림이다. 우리가 말하는 동안 공기가 떤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의 미세한 떨림이 나의 말을 상대의 귀까지 전달해준다. 빛은 떨림이다.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시공간상에서 진동하는 것이다. 사람의 눈은 가시광선밖에 볼 수 없지만 우리 주위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빛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전자기장의 떨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상은 볼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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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이 아닌 떨림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더 좋았단다. 진동이라고 하면 왠지 과학 용어처럼 보이지만, 같은 뜻이라도 떨림이라고 하니 가슴 떨림이라는 말도 생각나고 말이야. 아무튼 우리 세상은 모두 떨림이란다. 심지어 빛도 떨림이라는 것이지. 138억년 전 우주의 탄생과 함께 탄생한 빛은 아직도 우주 전체를 떠돌고 있다는 것이 100년도 못사는 인간의 뇌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인 것 같구나.

1.

이런 신기한 빛은 옛사람들에게도 신비함 그 자체였단다. 빛의 정체를 밝히려고 했던 사람들의 노력들무모해 보이지만, 빛의 속도를 측정하려고 했던 사람들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단다. 오늘날 빛의 속도는 파장과 진동수를 곱한 것으로 정확히 구할 수 있다는 하는구나. 빛은 파동의 성질도 가지고 있으니까, 파동의 속도 = 파장 x 진동수. 이 공식을 이용한 빛의 속도는 299,792,458m/s. 문득 이 숫자들을 외워볼까 싶었는데, 늙어가는 두뇌로 무모한 일이다 싶어, 그냥 쉽게 초속 30만 킬로미터라는 상식으로 만족하기로 했단다.

빛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빼놓을 수 없지. 관측자의 속도에 상관없이 똑 같은 속도로 관찰되는 빛의 속도로부터 출발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한마디로 시간과 공간은 별개가 아닌 얽혀있는 하나, 시공간이라는 곳.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그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으니 오늘은 생략할게.

138억년 전 빛만 생겨난 것이 아니야. 우주의 탄생과 함께 시간과 공간도 생겨났단다.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일까. 공간이란 무엇일까. 시간은 왜 되돌릴 수는 없을까.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길래. 아빠는 시간의 정제보다 더 궁금한 것은 시간이 생기기 전이란다. 빅뱅과 함께 우주가 생기고, 공간이 생기고, 시간이 생겼다고 하는데그런 그 이전은 무슨 상태였단 말인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밝힐 수 없는 것들

그러나 우리 과거에는 밝힐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밝히 사례들이 있으니, 한번 기대해보자꾸나.

2.

과학 이야기에서, 가장 큰 세계로 우주의 이야기가 있다면 가장 작은 세계의 이야기로는 원자의 이야기가 있겠지. 더욱이 지은이는 양자역학 전문가잖니원자 이야기는 아빠가 최근에 여러 번 했으니 생략을 할게. 그래도 하나만사람은 죽지만, 원자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 죽음뿐이겠니, 이 거대한 우주도 결국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이 원자 놀음인가. 원자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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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어린 시절 죽음이 가장 두려운 상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원자는 불명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너무 슬플 때는 우리 존재가 원자로 구성되었음을 떠올려보라. 그의 봄은 원자로 산산이 나뉘어 또 다른 무엇인가의 일부분이 될 테니까. 모든 것이 원자의 일이라는 말에 허무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허무함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그 순간에도 이 모든 일은 사실 원자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으니 원자를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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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토콘드리아게 관한 이야기도 짧게 해주었는데, 그 이야기는 아빠로 하여금 미토콘드리아에 관한 더 알고 싶게 만들었단다. 예전에 김상욱 교수님의 책인지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어떤 책에서 미토콘드리아에 관한 책을 추천했었어. 그 책이 엄청 두껍고 어렵겠지만, 언젠가는 한번 도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김상욱 교수님의 이전 책들에서도 괜찮은 과학 서적을 추천해주시곤 했는데, 이번 책에서도 자신이 직접 쓴 책 서평을 실으면서 책을 추천해 주시기도 했단다. 아빠도 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대한 서평도 실려있고, 리사 랜들이라는 여성 과학자가 쓴 <천국의 문의 두르리며>라는 책을 소개해주었어. 이 책 뿐만 아니라 리사 랜들이라는 분이 쓰신 책들을 한번 읽어보고 싶더구나. 언젠가는

3.

과학에 관한 이야기들을 우리 일상과 읽혀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책에서는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단다. 그 이전 책들을 읽고 생긴 지은이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것일까. 방송 출현 등으로 유명해진 덕에 출판사에서도 신간을 얼른 내고 싶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 단행본을 낼 만큼의 페이지를 꾸역꾸역 채워냈다는 기분도 들었거든. 그리고 지은이가 의식적으로 지난 책들에게 이야기한 것들은 하지 않으려고 의도도 보였어. 그것이 오히려 좀 부자연스러운 문체로 느껴졌단다.

이번 책으로 김상욱님의 책을 처음 읽는 사람들은, 뭔가 빠진 기분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아빠는 김상욱 교수님의 그 이전 책들에 비해 이번 책은 약간 실망을 했다고 한 거야. 그래서 혹시 이 책이 김상욱님의 책이 처음인 분들은 그 이전의 책들을 읽어볼 것을 추천해 본단다.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

,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마무리는 괜찮았단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라는 말 말이야. 과학적인 태도로 살아가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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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270)

과학은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 태도이다. 충분한 물리적 보상이 없을 때, 불확실을 전망을 하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과학의 진정한 힘과 결과의 정확한 예측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불확실성을 인정할 있는 데에서 온다. 결국 과학이란 논리라기보다 경험이며, 이론이라기보다 실험이며, 확신시기보다 의심하는 것이며, 권위적이기보다 민주적인 것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길 기원한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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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책의 끝 문장: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니까.


현재 1초의 정의는 세슘 원자가 내는 특정 진동수의 빛이 9,192,63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언젠가 미래에 인류문명이 멸망하더라도, 이 정의를 본 누군가는 1미터를 정확히 복구해낼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90억 번가량의 진동을 정확히 셀 수 있어야 하므로, 엄청난 정확도로 진동수를 알고 있어야 한다. 2005년 노벨물리학상은 존 홀과 테오도어 헨슈에게 주어졌다. 이들의 업적은 정확한 진동수를 갖는 빛을 만든 것이다. 최근 이 방법을 사용하여 진동수를 19자리까지 알 수 있었다. 비유하자면 서울과 뉴욕 사이의 거리를 원자 하나의 크기보다 작은 오차로 잴 수 있다는 뜻이다.- P32

사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자연현상은 전가지력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자연현상은 전자기력 때문이다. 신문 또는 스마트폰에서 출발한 전가지파, 즉 빛이 당신의 눈에 도달했다. 눈의 망막에 있는 분자들이 빛 때문에 변형을 일으키고, 그 결과 화학신호가 발생하고, 그것이 전기신호가 되어 뇌로 전달되는데, 이 모든 것이 전자기력 때문이다. 심지어 당신의 글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은 뇌 속의 전기적 작용, 즉 전자기력 때문이다. 우리가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은 모두 전자기력이라. 우리 주변 대부분의 기계들이 전기를 이용하는 이유다. 전기가 예뻐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다른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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