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사실이라는 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같아.

그게 그렇게 무서우니까 세상엔 그렇게 많은 거짓말들이 있는 거겠지.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다 이해해. 너무너무 이해해.

나는 지금도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미치겠거든.

 

(225)

나는 시현이를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그 아이를 이해할 수는 없었어. 자꾸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시현이에게 겹쳐 보였거든. 내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고 어머니는 허드렛일을 하며 나를 키웠지.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내 학비를 내 손으로 벌면서 살았어. 사는 시현이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론 참을 수 없이 답답한 거야. 저 아이는 좋은 학교에 다니고 과외 선생님까지 있는데 이렇게 쉬운 수학 문제를 틀리다니. 제 방 가득히 책이 있는데 읽지 않다니. 외국에서 온 원어민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는 데 영어가 싫다니. 나는 그 모든 걸 혼자 힘으로 다 해냈는데, 이 아이는 이렇게 서투르다니!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단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났고, 그 아이가 점점 미워졌던 거야. 그래,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미워했단다.”

 

(244)

시현이 이모네 집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나는 시현이네 집에서 살아보았지만 시현이는 이모네에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른다. 허름함의 첫 충격을 극복하기만 하면 시현은 스마트폰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곳을 좋아할 것이다. 하루 종일 유튜브를 들여다보며 춤동작을 연구할지도 모른다. 곽은태 선생님 부부가 꿈꾸는 시현의 미래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게 될지도 모르고, 나는 그런 시현의 미래에 대해 아무 책임도 질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달콤한 무심함을 시현에게 한 숟갈만 떠먹여주고 싶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 최고의 가정에서 자란 시현이 단 하나 가지지 못한 바로 그것, 허술하고 허점투성이인 부모 밑에서 누리는 내 마음대로의 씩씩한 삶 말이다.

 

(269-270)

만약 고양이를 키워도 된다면 나는 시현의 집에서 살 것이다라는 문장은 잠시 다녔던 영어 학원에서 늘 들었던 지겨운 조건법 시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If는 최고로 골칫덩어리라서 일단 그것이 달리면 문장의 시제는 4차원 시공간처럼 마구 뒤틀리고 아이들의 미간은 고통스럽게 찡그려진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시현은 강아지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같은 문장이 성립되고 강아지의 이름은 벡터가 되며 약속이 깨지는 순간 강아지는 쫓겨난다. 강아지는 수학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걸 아버지학교가 곽은태 선생님에게 단단히 가르쳐주었을까? 호랑이 같은 눈을 가질 내 고양이에게 나는 결코 그런 이름을 지어주지 않을 것이다.

 

(270)

곽은태 선생님의 반석 같은 어깨 위에서 엉덩이춤을 추며 자랐을 시현을 한없이 부러워한 시간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두드리기만 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부모의 어깨 위도 알고 보니 멀미 나게 흔들리는 곳이었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어깨는 없다.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한때 시현이 악마처럼 사악한 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 아이도 나처럼 격렬한 어지러움에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더 이상 시현을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타인의 부러워하는 시선 속에서, 남들은 모르는 어깨 위의 흔들림을 견뎌야 했던 시현이 나보다 더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상 최강의 철학 입문 - 최강의 진리를 향한 철학 격투
야무차 지음, 한태준 옮김 / 동녘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공대 출신인 아빠이지만 철학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단다. 하지만 철학책은 늘 읽기가 어려워. 그냥 글씨가 써 있으니 읽고, 다 읽고 나서도 뭔 소리인가 하는 경우가 많아. 그러다 보니 철학책 읽기가 꺼려지게 된단다. 그러다가 가끔 쉽게 써진 것 같은 철학책이 눈에 띄면 겁도 없이 관심을 갖게 된단다. 이번에 읽은 <사상 최강의 철학 입문>도 그렇게 알게 된 것이란다.

책 겉표지에 제목이 없었다면, 이 책이 철학책이라는 것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야. 마치 만화책 표지와 같았어. 그리고 이 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자마자 뜨는 생각은 일본에서 나온 책일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역시 일본 작가가 쓴 책이란다. 겉표지에 그려진 그림이 일본풍인 것도 있었지만, 일본에는 이 책처럼 철학에 관한 책을 쉽게 풀어 쓰려는 노력들이 있는 것 같았어. 아빠가 작년에 읽은 <대논쟁! 철학 배틀>이라는 책도 비슷한 성격의 책이었거든. 겉표지에 그런 그림의 성격도 비슷하고 말이야. 그래서 혹시 지은이도 같은 사람인가 보니까, 지은이는 다른 사람이었단다.

이번에 읽은 <사상 최강의 철학 입문>은 야무차라는 사람이 썼어. 야무차라는 이름은 필명이고,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가 사업을 해서 성공한 사람이래. 작가이자, 경영자이고, 만화가 지망생이라고 하는구나. 그 동안 철학, 과학, 수학 등을 재미있게 설명하는 책들을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이번에 읽은 <사상 최강의 철학 입문>은 말 그대로 철학 입문서란다. 철학이라고 하면 철학자가 꼭 등장하게 돼. 고대부터 현대까지 유명한 서른 한 명의 철학자들을 비슷한 주제로 묶고 그 철학자들이 주장한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단다. 아빠가 기억력이 좋다면 참 유용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쉽게 썼다고 했지만, 그보다 간단히 요약해서 썼다고 해야 옳을 것 같구나. 각 철학자들의 사상들을 주제별로 엮어서 요약한 그런 책. 기억력이 좋거나, 이 책을 시험공부 하듯이 열심히 공부한다면 이 책에 나온 서른 한 명의 철학자들에 대한 아는 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아빠는 한번 정독을 했지만, 기억력은 그리 길지 않아서 이미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구나. 그래서 책의 내용을 설명해 주기는 쉽지 않을 것 같고, 지금까지 주절주절 책이 어떻게 구성된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거야.

 

1.

아빠가 책을 읽을 때 쪽지에 메모를 하면서 읽으려고 해. 기억력을 조금이라도 더 보존하기 위한 이유이고, 너희들에게 독서 편지를 쓸 때 도움을 받기 위한 이유이지.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는 그런 메모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렇게 메모 없이 책을 읽는 경우도 있거든. 독서 편지를 너희들에게 쓰려고 책을 쭉 훑어봤는데, 이런,,, (많지는 않지만) 메모를 해 둔 게 있더구나. 다시 한번 아빠의 기억력에 대실망. 아빠는 분명 메모를 한 기억이 전혀 없었는데 말이야. 나이를 먹으면 진짜 기억력은 급속도로 감퇴하는 슬픈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더 나이 먹기 전에 열심히 읽고 열심히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겠구나.’

진리란 무엇인가. 결국 철학이라는 것은 진리를 찾아가는 길이 아닐까 싶구나. 그럼 진리는 것이 무엇인가. 절대적인 진리가 있을까. 철학자들도 주장이 서로 달랐어. 인간이 다다를 없는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프로타고라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상대주의 일인자라고 했어. 절대적인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어. 인간이 만물이 척도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했어. 사람들마다 진리가 다르다고 했어. 어떻게 생각하면 유연한 것 같지만,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었지. 당시 프로타고라스의 상대주의가 온 세상을 점령하고 있어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용감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낸 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였단다. 소크라테스는 절대 진리가 있다고 주장했고, 자신을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했어.

==========================================

(38)

우선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네!”

이것이 소크라테스의무지의 지의 진정한 의도다. 결국 그는 특별히 무지를 자각하고 있는 자신이 위대하다고 겸허함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무지를 자각해야만진리를 알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가슴 속에서 끓어오른다고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

당시 유명한 정치인들과 철학자들과 대화를 통해 그들의 모순을 이끌어냈어. 요즘 말로 하면도장 깨기를 했다고 해야하나. 그런 소크라테스는 다른 이들에게 미움을 사서 결국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지.

기독교가 등장하고 나서는 오랫동안 절대 진리를 주장하는 이는 없었어. 그러다가 중세를 지나 데카르트가 출현했지. 최근에 아빠가 데카르트를 자주 이야기하게 되는구나. 얼마 전에 읽은 수학책을 이야기하면서 이야기를 두어 번 했었는데오늘은 수학자가 아닌 철학자로서 데카르트야. 데카르트는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유명한데, 너희들도 이제 조만간 학교에서 배우게 되지 않을까 싶구나. 그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는구나.

책은 이렇게 진리를 찾아가는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어.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프로타고라스, 소크라테스, 데카르트로 시작하는 진리의 진리라는 이야기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홉스 등으로 이어지는 국가의 진리에 관한 이야기. 에리쿠로스, 예수 그리스도 니체 등이 출현하는 신의 진리에 관한 이야기.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데모크리토스, 뉴턴 등이 출현하는 존재의 진리 이야기이렇게 크게 4가지로 구성되어 있단다.

그 중에 아빠가 가장 관심이 갔던 분야는 국가의 진리에 관한 글들이었어. 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빠도 인정해. 법의 테두리로 아빠의 신변을 보호해 줄 수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국가의 권력이 국민들의 신변을 위협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를 역사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보면서 과연 국가는 왜 존재해야 하고 어떤 국가가 가장 이상적인 국가일까? 하는 생각을 평상시에도 자주 했었거든. 국가를 리바이어던이라는 가상 괴물로 정의 내린 홉스의 이야기에 많이 공감이 갔단다.

==========================================

(165)

“타자를 죽이는 자유를 포기한 보상으로 안전을 얻는다. 다시 말해 국가란 개인의 자유를 포기해서 손에 얻은 안전보장 체계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에 이런 말을 썼다. 리바이어던이란 성서에서 나오는 무서운 짐승의 이름으로, 절대적인 공포의 대상이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의 모습이야말로 국가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 인간의 끝없는 파멸적인 욕망을 제한하기 위해 인간은 스스로 리바이어던(국가, )이라는 가상 괴물을 만들어 그 괴물을 두려워하고 복종함으로써 어쨌든 서로 죽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안전보장 체계가 국가의 정체라고 홉스는 주장했다.

==========================================

홉스라는 사람은 이름만 알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의 사상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어 좋았단다. 아빠가 그의 저서를 읽을 철학적 역량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한번 읽고 보고 싶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어.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책에 서른한 명의 철학자들(사실 과학자들도 일부 포함되었어.)을 한 명씩 이렇게 정리해서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아빠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이 책에 관해서는 이 정도로만 하고, 너희들이 좀 더 커서 이 책을 읽을 수준이 되면 그때 책을 통해 직접 서른한 명의 철학자를 만나기를 바란단다.

오늘은 이만메리 크리스마스.

 

PS:

책의 첫 문장: 철학을 처음 접하는 분이나 철학을 배우려고 했지만 몇 번이나 좌절했던 사람을 위한 입문서가 있으면 좋겠어요..

책의 끝 문장: 끝으로 이 책을 제 둘째와 잭 한마씨에게 바칩니다..


‘신화’라는 절대적인 가치관이 붕괴된 시대에 상대주의를 대표한 철학자가 프로타고라스다. 그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주장했다.- P27

샤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라는 형벌을 받고 있다”라고 말한 철학자로도 유명한데, 그는 왜 ‘자유를 형벌’이라고 했을까? 일반적으로 자유라고 하면 모두가 추구하는 훌륭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유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자유란 무엇이 올바른지 알지 못하는데 알아서 하라며 내팽개쳐진 불안정한 상태를 말하네.”- P85

동양은 왜 역사에 그런 대략적인 방식을 취했을까? 동양에서 역사란 영원히 돌고 도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시간에 끝이 없고 역사가 영원히 계속된다면 몇만 년 전 아주 오래전부터 같은 일은 몇 번이고 되풀이됐을 것이고, 앞으로 몇만 년 후 미래에도 몇 번이고 되풀이될 것이다. 어떤 남자가 여성에게 빠져 멸망하는 일은 몇만 년 전에 존재했던 남자도 겪었고, 몇만 년 후의 남자도 겪을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시간이 움직이고 장소가 바뀌어도 인류의 일상은 바뀌지 않는다.- P96

니체는 자신의 저서에서 종말의 시대, 즉 모든 가치관이 붕괴된 세계를 사는 종말인이라 불리는 자의 모습을 묘사한다. 종말인이란 그 무엇도 목표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그들은 그저 건강과 좋은 잠자리만을 원하며, 원만하게 인생을 보내기 바라는 평범하게 살아갈 뿐인 존재다.니체는 가까운 시일에 신이 죽은 세계가 도래하고 종말인이 나타날 것이라고 백 년도 훨씬 전에 예언했다. 이런 종말인의 삶이 현대를 사는 우리와 정말 다를까.- P274

이러한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만약 당신에게 결코 양보할 수 없고 가장 소중한 ‘가치가 있는 무어가’가 존재한다 해도 당신이 죽으면 그 존재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바라보는 세계는 당신 특유의 가치로 재단한 세계이며,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당신 특유의 가치로 재단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없는 세계는 당신이 생각하고 있던 세계 그대로 결코 존재하지 않고 지속되지도 않는다.
존재란 그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는 존재가 있어야 비로소 존재하기 때문이다.- P338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9-12-24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bookholic 2019-12-25 01:25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도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되신 거 축하합니다~~
그리고 때마다 인사해 주셔서도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시고,
내년에도 좋은 글들 부탁드려요... 좋은 이웃 되어 주시고요...
늘 행복하세요~~~
 
귀신나방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장용민이라는 분의 <귀신나방>이라는 책을 읽었단다. 아빠가 장용민님의 책을 읽은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단다. 첫 번째 읽은 책은 <궁극의 아이>라는 책인데, 읽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구나. 우리나라에도 이런 장르 소설을 이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쓰는 작가가 있다니 말이야.. 당시 읽었던 <궁극의 아이>는 이야기가 얽히고 설켜서 줄거리 이야기해주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구나.

이번에 읽은 <귀신나방>이라는 소설도 스토리텔링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단다. 다만, 아빠가 군대에 있을 때 읽었던 <모레>라는 소설과 살짝 모티브가 같아 보였고, 약간은 예상되는 반전이 있었어. 하지만 전체적으로 재미있었단다. 소재도 기발했고, 이따가 이야기하겠지만 예전에 <녹색평론> 등 다른 책에서 읽었던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강력한 파워의 진실도 알 수 있었어.

1.

오토 바우만이라는 유태인이 있었어. 때는 1960년대. 장소는 미국. 오토는 뮤지컬을 감상하고 있는 어떤 열일곱 살 소년을 총으로 죽였단다. 오토는 그 자리에서 경찰에 잡혔고,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그의 눈에는 드디어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을 보이고 있었단다. 열 일곱 살 소년을 무자비하게 죽은 오토 바우만. 그는 어쩌다 그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

오토 바우만의 지난 날을 이야기해줄게. 오토 바우만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에서 연합군의 시설 복구팀으로 일하고 있었어. 그에게는 슬픈 과거가 있었단다. 아우슈비츠에서 모든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았던 거야. 오토는 연합군 비밀조직 아디 헌터의 마커스 소령의 통역을 우연히 도와주었다가 팀원이 되었단다. ‘아디 헌터라는 비밀 조직의 임무는 바로 진짜 히틀러를 찾는 일을 있다고 했어. 뭐라고? 히틀러라고? 독일 어느 한 벙커에서 죽은 히틀러는 진짜가 아니라는 거야. 그 사람은 가짜 히틀러이고, 진짜 히틀러는 어딘가 생존해 있다는 거야. 당시 실제로 그런 소문들이 있었나? 아무튼 아우슈비츠에서 가족을 모두 잃은 그였으니 히틀러는 철천지원수였어.

아디 헌터의 팀장은 마커스 소령으로 그들은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하다가 1949년 재정적인 이유로 팀이 해체되고 말았단다. 결국 진짜 히틀러의 정체는 밝혀내지 못했단다. 마커스 소령의 도움으로 오토는 미국으로 이민을 왔단다.

2.

비록 팀은 해체되었지만, 오토는 여전히 히틀러의 뒤를 쫓고 있었어. 그에게 히틀러는 한 세상에 같이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니까아디 헌터에 있으면서 가지고 있던 정보들을 가지고 뒤를 쫓았지. 큰 성과 없이 시간이 지나갔어. 그는 경찰이 되었어. 1962년 우연히 아디 헌터의 옛 멤버들을 알아보다가 마커스 소령을 빼고 모두 의문사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오랜만에 마커스 소령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마커스 소령도 괴한의 습격을 받아 죽고 말았단다. 죽기 전에 마커스 소령이 한 이야기…. “애덤 휘슬러를 찾아라.” 그 다음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어.

마커스 소령은 어떤 비밀을 말하려던 것일까. 당연히 히틀러와 관계된 이야기였겠지. 오토 바우만은 애덤 휘슬러라는 사람이 히틀러와 연관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린츠라는 시골 마을에서 애덤 휘슬러라는 사람을 찾는 광고를 냈어. 오토는 그 시골 마을을 갖고, 그곳에 얼마 전까지 애덤 휘슬러가 그곳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애덤 휘슬러는 외지에 온 마음씨 착한 청년인 것처럼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샀지만, 이에 이간질을 시켜 조용한 시골 마을을 풍비박산으로 만들었어. 서로 살인을 하게 말이야. 그들을 이간질 시킨 근본적인 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용한 것이었어.

오토 바우만은 애덤 휘슬러를 쫓기 시작했어. ? 그가 바로 그니까 말이야. 무슨 소리냐고? 그게 바로 장용민 작가가 이번 소설에게 선보인 비장의 카드라고 할 수 있단다. 아주 핵심적인 내용이라서 스포가 될까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이 소설을 읽는 이라면 소설의 앞부분부터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단다. 지은이도 그 사실을 크게 숨기지 않았어. 읽는 이로 하여금 애덤 휘슬러가 바로 히틀러라는 것을 눈치채게 되어 있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아우슈비츠에서 생체실험을 했어. 너무 잔인한 짓이었지. 그리고 그 생체실험을 통해서 위험한 실험이 성공시켰단다. 뇌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실험.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지? 히틀러의 뇌를 애덤 휘슬러라는 사람의 몸에 이식을 했던 거야. 물론 수술을 하고 나면 후유증으로 한창 동안 괴로워 한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휘슬러라는 사람의 몸에 적응을 하게 되면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어. 늙은 몸은 버리고 아주 쌩쌩한 젊은이의 몸을 얻었으니…. 그리고 생존해 있는 그의 옛 측근들도 몰래 다시 모여들었어. 그렇게 미국 내에서 세력을 만들어갔지.

….

미국에 정착한 애덤 휘슬러, 아니 히틀러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는 거야. 완전한 세계를 만드는 것. 어떻게? 자본주의로 말이야. 미국식 자본주의를 점령하는 것이란다. 그렇기 위해서 그는 연방준비은행에 접근을 했단다. 이름과 달리 연방준비은행은 정부 소속이 아니고 철저하게 사기업과 같은 조직이었단다. 그런 조직이 미국, 나아가 전세계의 경제를 쥐락펴락 하고 있는 거야. 연방준비은행의 권한을 억제하려는 대통령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도 있다고 이야기들은 적 있단다. 그 배후에 연방준비은행이 있다는 썰도 있어. 그렇게 죽은 대통령 중에는 바로 케네디 대통령도 있었다.

감 잡았지? 이 소설에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장면도 나온단다. 히틀러가 애담 휘슬러의 몸에 들어갔고, 애담 휘슬러가 연방준비은행의 최고 수장인 밀턴에게 신임을 얻게 되고, 미국의 대통령을 제거하는 거지. 이보다 미국을 접수하기 위한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어디 더 있겠니?

….

3.

이야기는 그런 줄기를 가지고 흘러간단다. 연방준비은행의 수장이었던 밀턴도 늙고 병든 노인이었는데, 애담 휘슬러가 어떻게 그를 꼬셨겠니? 바로 뇌이식이겠지그런 늙은이의 뇌를 가진 젊은이는 두 명이 되겠지. 아참, 애담 휘슬러는 20대 청년인데,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오토가 히틀러라고 죽인 이는 열일곱 살 소년이었잖아. 어떻게 된 거냐고? 몇 년 전에 사실 오토가 애담 휘슬러을 드디어 찾아내서 죽였단다. 죽였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의 총은 그의 뇌를 겨냥하지 않았던 거야.

이해하겠지? 다시 다른 사람의 몸으로 갈아 탄 것이야. 이 사실을 나중에 눈치챈 오토가 다시 추격을 했고, 그렇게 알아낸 이가 열일곱 살의 소년이었던 거야. 결국 가족들의 복수에 성공한 오토 바우만. 이번에는 정확하게 뇌에 총을 쏘았지. 비록 사형을 당했지만, 행복하게 죽을 수 있었어.

... 오토가 죽은 후 또 한번의 반전이 일어난단다. 오토가 죽인 뇌는…. (누구였을까?)

아빠가 거의 끝까지 다 이야기해주었구나. 완전 스포일러. 나중에 너희들이 이 글을 읽을 때는 이 소설을 읽고 난 다음이기를 바라며 오늘은 이만 마칠게.

이 책의 제목 귀신나방은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 나방이라고 책에 나와서, 진짜 있는 곤충인줄 알았는데, 아니라는구나. 지은이가 만들어낸 곤충이래.

===========================

“자네, 귀신나방이라고 들어봤나?”

그놈들은 천둥이 가까워오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 나무에 내려앉는다. 그러면 놀랍게도 그 나무에 벼락이 치는데, 녀석들은 벼락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에 마지막 순간 죽음을 향해 비행한다. 우기가 끝나면 아침 햇살과 함께 부화한 유충들이 나타나 어미가 생을 마감했던 나뭇등걸로 모여든다. 그곳에 둥지를 틀고, 또다시 반복될 생애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한다.

===========================

PS:

책의 첫 문장 : 날이 저물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 기억상실증이라는 칵테일에 취한 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12-23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4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30)

아옌데는 시대를 통해 만들어졌다. 새로운 사회계급이 국가경제에서 제 몫을 요구하기 위해 싸우고, 자기 사회를 어떻게 운영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투쟁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이념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던 시대였고, 혁명은 이룰 수 이 없는 꿈이 아니라 분명한 가능성이었다. 지구촌의 다른 수많은 사람들처럼, 아옌데의 생각도 그 시대의 거대한 이념을 바탕으로 꼴을 갖추었다. 그것은 바로 마르크스주의였다. 이를 통해 아옌데는 역사를 해석하는 수단을 얻었고, 절대다수의 인간들이 고통받고 있는 소외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착취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킴으로써, 사회주의는 또한 압제자들을 자유롭게 하는 길도 제시했다. 말 그대로 아메리카혁명과 프랑스혁명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었다. 아옌데는 바로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삶을 살았다. 그가 권력을 추구했다면, 그것은 이런 이상이 실현되는 나라와 세상을 만드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을 통해 그는 칠레를 변혁했고, 이를 통해 칠레 인민과 역사 속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40)

아옌데는 부와 권력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발파라이소에서의 삶의 현실적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었고, 당시의 요동치는 정세는 아옌데를 부촌인 비냐델마르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프롤레타이아트의 항구도시에 걸맞게 했다. 1972년 레지스 드브레와의 인터뷰에서 아옌데는 스스로를 발파라이소 항구 출신을 일컫는 자랑스러운 포르테뇨이자, 포르테뇨 출신 첫 대통령이라고 표현했다.


.

(68)

지구촌 차원의 경제위기가 촉발한 혼란 속에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브라질에서는 제툴리오 바르가스 독재체제가 들어섰다. 베네수엘라, 페루, 아르헨티나도 권위주의 정권이 수립됐다. 엘살바도르에서는 마르티네스 장군이 소규모 공산당을 짓밟고 3만여 농민을 학살했다. 니타라과에서는 1933년 소모사가 아우구스토 산디노를 암살하고 독재체제를 강화했으며,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트루히요가 집권했다. ‘볼셰비즘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이들 정권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30년 경제위기의 여파로 차관과 쌍무협정을 통한 간접 통제에 기반을 둔 경제체계가 형성됐다. 미국이 힘이 약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를 11로 맞상태하면서 우위를 점하는 정치적 체제도 마련됐다.

(74)

현실적인 보탬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아옌데는 프리메이슨에 고결하고 숭고한 사명이 있다고 여겼다. 프리메이슨 회원은 현대적 기준을 활용해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을 규정하고, 이를 통해 소외도 실업도 저임금도 없는 사회,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고통받지 않는 사회를 건설해내려 했다. 이를 위해 제대로 기능하는 효과적인 사회복지제도를 만들어 모든 이들에게 폭넓은 문화적 혜택의 문호를 열어젖혀야 한다는 것이다. 아옌데는 이 같은 내용을 프리메이슨의 사명으로 채택할 것을 줄기차게 요청했다. 또한 노동계급 출신과 청년 지식인 회원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운영의 민주화에도 더욱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92)

라틴아메리카의 지지가 필요한 것은 신생 국제연합(유엔) 무대에서뿐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필수 천연자원을 싼값에 조달해온 상황을 지속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이 전후 유럽 재건을 위해 마련한 마셜 플랜에 들어간 막대한 재원을 제공한 것도 결국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이었다. 그러니 공산당에 대한 탄압이 재개된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칠레 소수 지배계급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공의식은 이제 미국 정부 및 미국계 다국적 기업과 공유됐다. 이때부터 이들 세 부류는 이른바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 함께 싸우게 된다.


(94)

당시 연설에서 아옌데는 칠레의 기존 민주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거론했다. 그는 현재 칠레 사회 구성원들이 누리는 자유는 허울일 뿐이며, 권력과 생산수단을 손에 쥔 극소수만이 자유를 누리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현실 인식에 기초에 지금으로서는칠레에서 사회주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당이 칠레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체제를 존중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현행 민주주의 체제가 선거 결과와 노동조합, 사회적 권리를 존중하는 한, 그리고 사상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보장하는 한 우리는 법체제 안에서 활동해나갈 것이다.”


(95)

그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합니다.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기회이며, 지속적으로 나아지기를 열망하는 정신적 태도이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의장님, 민주주의는 원칙과 사상, 이념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의식적 노력의 결과물이지, 단순히 정책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96)

그러니 혁명은 다른 정치세력과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 역시 일정한 형태의 혁명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인민전선 정보는 종말을 고했지만, 인민전선이 거둔 성과는 아옌데에게 평화적 혁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우쳐주었다. 칠레 국가 기구는 정책 목표를 바꿔 급격한 변혁을 추진하더라도 그 과정을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유연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아옌데는 이런 관점을 남은 삶 동안 확고하게 유지했다. 인민전선은 비록 막을 내렸지만, 그 실험은 1973년은 물론 그 이후까지도 칠레 사회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평화적 방식을 통해서도 혁명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10)

아옌데는 구리 업계가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사이, 칠레 정부가 차관을 얻기 위해 외국 정부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분개했다. 또 정부 내 어느 누구도 미국과 칠레 간 불평등한 구리협정이 체결됐다거나, 미국계 구리 업계와도 별도의 협정을 맺었다는 점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는 이런 현실은 칠레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구리 업계의 오만한 태도와도 모순되며, 칠레의 국가적 자존심에도 먹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구리 재벌 6명이 쥐락펴락하고 있는 칠레를 포함한 국제 구리 시장은 제국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아옌데는 구리 생산을 감독하고, 생산된 구리를 국제시장에 수출하는 업무를 총괄할 국영 구리 기업 창설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구리 생산원가를 파악함으로써, 칠레 경제의 중요한 부문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었다.


(141)

칠레 언론의 선동 공작은 아옌데를 악마로 만드는 데 집중됐다. 미국은 아옌데의 정적을 적극 지원했다. 필요한 공작금은 아낌없이 투입했다. 오랜 세월 칠레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했지만, 미국이 이 정도 규모로 개입한 것은 칠레 선거 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CIA 칠레 지부는 1953년부터 우파 뉴스통신사와 교양 잡지, 주간 신문들을 지원해왔다. 1961년부터는 주요 정당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반공 선동전을 확산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선거관리위원회가 워싱턴과 산티아고에 설치되어, 칠레의 민주적 선거 절차를 전복하기 위한 미국의 개입 방식을 조율했다.


(176-7)

아옌데의 집권은 칠레에서 마르크스주의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 했던 미국의 노력이 실패했음을 뜻했다. 아옌데 취임 이틀 뒤인 11 6일 닉슨 미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해 아옌데 정부를 붕괴시킬 방안을 논의했다. 닉슨에게는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아옌데가 끼칠 영향이 위험천만해 보였다. “남아메리카의 잠재적 지도자들이 칠레와 유사한 시도를 하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내버려두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가 아예 우리 손에서 떠나간 것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를 미국 수중에 유지하기를 원한다.” 닉슨은 이런 식으로 말을 이었다. 이날 회의에 따라 결정된 사항은 표면상 냉정하고 적절한입장을 이해하고, 칠레에 맞서기 위한 미국의 노력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며, 칠레의 모든 대외경제, 금융 분야 협력을 봉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180)

칠레에서 복지제도는 사람들의 행동과,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사고체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과 연계돼 있었다. 칠레 국민들은 그저 국가의 관대한 복지 혜택을 수동적으로 받는 존재가 아니라, 존엄한 삶을 누리기 위해 복지정책 입안하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복지제도 운영 전반에 대한 참여를 요구할 수 있게 했다. 복지정책 입안과 집행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참여가 필요했다. 또 노동자는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고,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도 기업 운영과 계획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집권 후 인민연합 정부가 취한 첫 번째 조치는 칠레노동조합총연맹을 창립 약 20주년 만에 처음으로 법적으로 인정하는 합의서에 서명하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은 앞서 노동조합 총회 등에서 논의됐던 것으로, 아옌데 정부 아래서 노동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첫걸음이었다.

(229)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군부 절대다수가 반란에 가담했습니다. 이 어두운 시기에, 지난 1971년 제가 드렸던 말씀을 여러분께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차분하고 평정심을 유지한 채 말입니다. 저는 사도도 아니고 메시아도 아닙니다. 저는 순교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저는 인민이 제게 부여한 과업을 완수하려는 사회적 투사일 뿐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리는 세력, 칠레 절대다수 인민의 의지를 무시하려는 세력이 깨닫도록 할 것입니다. 순교자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저는 여기서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반역의 무리에게 알리겠습니다. 듣게 하겠습니다.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칠레 인민들이 제게 부여한 사명을 완수한 뒤에야 저는 모네다궁을 떠날 것입니다.


(236)

조국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반역이 우리에게 강요한 이 잿빛의 쓰디쓴 순간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그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자유로운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당당하게 걸어갈 드넓은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말입니다. 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적어도 제 희생을 통해 범죄자와 비겁한 자, 반역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도적적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269)

아옌데 정부의 붕괴를 지켜보면서, 라틴아메리카는 물론 전세계 좌파 진영이 인민연합 정부의 패배에서 교훈을 얻고자 했다. 아옌데의 패배는 제국주의가 어떠한 좌파 정부에게라도 활용할 수 있는 대응방식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전세계 좌파는 칠레의 민주적 사회주의에서 여전히 영감을 얻고 있다. 칠레의 사례는 한편으로 선거를 통한 혁명 세력의 집권이 가능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다른 한편으로 칠레의 경험은 혁명적 과정을 효과적으로 방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9)

미쳤습니까? 처음으로 돌아간다고요? 그딴 일은 일어나질 않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지나 다시 봄이 와도 그 봄은 작년의 봄이 아닙죠. 마음에 품은 정인을 10년이 지난 뒤 다시 만나더라도, 그건 첫 만남과 완전히 다른 겁니다. 성진은 성진이고 양소유는 양소윱니다. 성진이 양소유의 삶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권한이 없어요. 그렇게 양소유의 삶이 마음에 안 들면, 성진과 양소유가 수표교에서라도 만나 맞짱을 뜨든가 해야죠. 양소유 입장에선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두 눈 시퍼렇게 뜬 채 코 베인 꼴입니다. <구운몽>이라 했던가요? 그 소설에서 가장 시시한 대목이 바로 거깁니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렸네요. 이걸 쓴 매설가가 누굽니까?”

서포 김만중 선생이시네.”


(50)

제목이 구운몽이니까, 꿈을 꿨다가 깨어나는 것으로 소설을 마무리 짓는 게 자연스럽지 않겠어?”

, 정말, 몽몽 몽몽몽거리는 말씀만 하십니다. 깨어나긴 뭘 깨어납니까. 현실이 낮에 꾸는 꿈같고 꿈이 밤에 찾아드는 현실 같으니, 밤이든 낮이든 현실이든 꿈이든 어디서나 행복하면 그만입지요. 뒤늦게 깨어나면 뭘 하겠습니까? 욕심입니다 그건, 지금 누리는 행복보다 더 나은 행복이 있을 거라는 황당한 욕심!”


(88)

평범한 날들이 쌓여 오늘 이 모양이 된 거니까요. 사람이 사람이 되고 삼이 삼이 되려면 특별함이라곤 전혀 없는 하루하루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315)

그렇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저는 다릅니다. 책임 없이 사랑하는 게 훨씬 더 깊고 넓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땐 사랑만 해야 합니다. 사랑에 책임이든 뭐든 딴 걸 덧붙이면 안됩니다. 그래야 사랑이 변하거나 사라질 때, 엉뚱한 걸 사랑이라 붙들고 세월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341)

충격은 받겠지만 돈을 위해 각자의 삶을 헛되이 쓰는 것보단 훨씬 낫습니다. 도성에 사는 대부분의 백성이 돈 없인 하루도 못살겠다고 하지만, 상평통보가 없던 시절에도 그들은 잘만 살았습니다. 그게 세상에 나온 지 아직 70년도 되지 않았잖습니까?”


(560)

이게 다 누구 잘못이오? 봄부터 가을까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잘못, 산 넘고 물 건너 돌림병이 돌고 돈 잘못, 죽은 남편과 이제 갓 돌 지난 아들 군포 못 낸 잘못, 관아에서 빌린 보리 한 말을 쌀 백 섬으로 못 갚은 잘못, 조세 낼 돈이 없어 달아난 잘못, 달아나 산에 불을 지르고 밭을 일군 잘못, 섬으로 건너가 몰래 물고기를 잡은 잘못, 산과 섬에 숨어든 백성들 잡으려고 달려드는 관군과 싸운 잘못, 하늘과 조상과 나라님을 감히 원망한 잘못, 이 나라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단정한 잘못, 이게 다 말뚝이 잘못이오? 아니면 여기 구경 나온 여러분 잘못이오? 잘못을 따지려 들면, 꼬리에 꼬리가 줄줄줄 줄줄줄 매달려 나오는구나. 수만 나졸의 잘못을 댕기면 수천 아전의 잘못이고, 수천 아전의 잘못을 댕기면 수백 사또의 잘못이고, 수백 사또의 잘못을 댕기면 육판의 잘못이고, 육판서의 잘못을 훅 잡아당기면 삼정승의 잘못이고, 손에 침 탁탁 뱉은 뒤에 삼정승의 잘못을 화악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잡아당기면 누구냐? , , 나는 차마 말 못 하겠네. 말뚝이가 씨부리지 않아도 다들 누군지 알겠지? , , 나는 말한 적 없지만, 이 모든 잘못을 저지른 삼정승보다 더 크고 높은 단 한 사람은 누구겠어? 확실한 것 하나는 나, 나 말뚝이는 아니라고. 아니고말고.”


(578)

왜 안했느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자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져선 안 됩니다. 돈도 집도 사람도!”

예법에 어긋나지 않느냐?”

예법을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무엇이냐, 그것이?”

달문이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또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자근만을 봤다. 그리고 답했다.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겁니다.”

과인을 믿느냐?”

믿습니다.”

과인은 지금 당장 너를 죽일 수도 있다. 그래도 믿느냐?”

사람을 믿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가를 보고 나서 정하는 게 아닙니다. 먼저 믿는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