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통권 168호 - 2019년 9월~10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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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녹색평론 168호를 읽었단다. 이번 호의 부제는 한일 갈등, 출구는 무엇인가란다. 그리고 앞면에는 이름 모를 식물이 하나 그려져 있었단다. 한일 갈등과 이 식물이 무슨 연관성이 있나? 라는 생각과 함께 책을 펼쳤단다. 앞면의 나온 식물은 한일 갈등과 관련 없는 꼭지에서 소개된 식물이었단다. 하기야 각 호의 부제와 관련 있는 사진을 표지로 잡은 적이 얼마나 있었다고아무튼 그 식물은 대마초로 유명한 대마라는 식물이란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라 대마초를 키우면 경찰에 잡혀가고 대마초라는 것이 중독성이 강한 것이라는 인식에 이미지가 좋지 않단다. 대마초라고 하면 마약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거야. 그런데, 이런 대마의 사진을 녹색평론의 앞면에? 라고 의아해 하는 이라면 녹색평론을 많이 읽지 않을 사람일 거야. 몇 차례 대마의 의약적 활용 등 좋은 점을 소개했던 기억이 있단다. 이번 호에서는 대마를 그런 의약적 장점이 아닌, 무려 지구를 구하는 식물로 소개하고 있더구나.

대마에는 중독성이 없는 대마가 있다고 하는데, 그 대마의 쓰임새가 어마무시하다고 하는구나. 지구는 이산화탄소를 비롯하여 공기 중 탄소량이 급증한 상태라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손꼽히고 있는데, 이 대마는 그 어떤 식물보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흡수한다고 하는구나. 키우기 어렵냐? 그렇지도 않대. 아주 적은 양의 물만 있으면 잘 자란대.. 비료도 필요없대. 그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으로도 만들 수 있는데, 대마로 만든 플라스틱이라면, 현재 플라스틱 공해의 아주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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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대마 생산물은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킬 수 있고, 오늘날 1분에 트럭 1대분의 쓰레기가 되어 바다에 버려지고 있는 석유화학물질, 즉 플라스틱을 대체함으로써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다. 매년 100만 마리의 바닷새들이 플라스틱을 먹어서 죽고 있으며, 바닷새들 90%의 내장에 플라스틱이 들어 있다. 커다란 플라스틱 조각들과 햇빛과 파도에 의해 잘게 부서진 미세플라스택과 목욕세제와 세안제에 포함된 미세플라스틱 알갱이들은 바다의 스모그라고 불려지고 있다. 그것들은 몸속의 독성물질들을 흡수하고 먹이사슬 속으로 들어가 결국은 인간의 몸으로 들어간다. 그 모든 것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연분해가 가능하고 독성이 없는 대마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을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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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대마는 값싸고 질 좋은 종이를 만들 수도 있고, 바이오 연료로 추출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단다. 18세기만 해도 대마는 미국 농촌에서 많이 가꾸었다고 하는데,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위에서 이야기한 장점들 때문에 다른 경쟁 산업의 눈총을 받았고, 강력한 힘들을 가진 경쟁자들이 대마초라는 누명을 씌워 불법으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구나. 대마는 죽어가고 있는 대마를 살릴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라고 하는데, 많은 나라에서 지구를 살리는 목적으로 대마를 심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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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호의 주요 주제인 한일 갈등에 대한 꼭지들이 많이 있었단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지난 몇 십 년 간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 했다고 생각해. 그런데 최근처럼 관계가 좋지 않았단 적은 없었던 것 같구나. 그렇다고 한일 관계를 꼭 개선할 필요가 있나? 이런 생각을 드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아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단다. 일본에서 과거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다짐을 하고,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 보자는 자세로 나온다면, 물론 한일 관계가 좋아지면 좋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강압적이고, 과거 반성을 하지 않는 자세로 지들 잘났다고 하는 마당에, 뭐가 아쉬워서, 아니 아쉬운 것이 있어도 친하게 지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단다. 이웃도 이웃 같아야 이웃이지.

대부분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들은 두 개의 큰 정당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정권을 잡곤 하는데, 일본은 우익 정당이 오랫동안 정당을 차지는 것 같구나. 예전에 잠깐 진보 성향의 민주당에서 총리를 했었고, 줄곧 우익 성향의 자민당의 총재가 총리직을 맡고 있단다. 일본의 국민들은 왜 자민당의 보수 우익 전쟁광들을 좋아하는 것일까? 그들의 계략에 다 넘어간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섬사람들만의 무엇인가 있는가?

한일 관계에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인기를 먹고 사는 아베를 지지하는 일본 사람들이 꽤 있는 것으로 보아, 악화된 한일 관계는 앞으로도 꽤 유지될 것 같구나. 일본의 우파 세력은 그들이 요리하기 편했던 박근혜 정부의 종말을 무척 싫어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등장을 엄청 싫어했대. 어떤 일본 우익이 쓴 글을 이번 녹색평론에 실었는데, 황당하기 그지 없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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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박근혜는 뭐니뭐니 해도 5,000만 한국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이었다. 그게 고작 100만 명의, 그것도 북조선(북한)의 공작원이 관여했을지도 모르는 데모()의 의해 탄핵결의로 내몰렸다. 이것이 민주화의 발로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문재인 정권은 세계에서 가장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나라, 김정은의 북조선을 어떤 나라보다 지지하는 정책을 내걸고 있다. 그런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 정말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가?” <산케이 신문>과 더불어 일본 보수우파의 대변지인 <요미우리신문> 등은 촛불시위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을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미숙한 탓이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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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일본 우익의 논조는 우리나라 가장 큰 야당의 자세와 비슷하다는 것이란다. 그들에게는 국민은 뒷전이고, 오직 권력을 되찾겠다는 욕망만 있는 것처럼 아빠는 보인단다. 그러니 만날 친일파 소리를 듣는 거지그럼에도 그들의 소리가 줄어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있어서 그런 것 같구나.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국민들이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말이야. 언론에 속지 말고, 정치인들에 속지 말지어라.

최근 일본의 우경화를 이끌고 있고, 한국과 적대적 관계를 이용하여 일본국민들의 지지를 먹고 사는 아베라는 이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 사람이 총리가 된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오래도 하는구나. 내각정치라고 하지만 총재 임기도 없는가? 이번 녹색평론에 아베에 대해 짧게 소개를 해주었는데, 읽는 내내 화를 돋구는 이력을 가지고 있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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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아베는, 일본군 성노예뿐만 아니라 난징학살 등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는 침략전쟁 중에 일본군이 저지른 온갖 전쟁범죄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그러한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려는 적극적인 활동을, 최초로 국회의원이 된 1993년부터 지금까지 26년에 걸쳐 일관되게 계속해왔다. 그 활동 내용은 정치적 반대 운동이라고 단순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만과 허위, 정치적 압력 등 온갖 사악한 수단을 동원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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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이 사람 참 위험한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단다. 전쟁하고 싶어 죽겠는데, 미국 등 주변국 눈치 보느라 참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런 이를 지지하는 일본 사람들은그와 같은 역사관과 전쟁관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나전쟁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어서 스트레스 잔뜩 받아서 큰 병이나 생겨서 정치판에서 떠났으면 좋겠구나.

이번 녹색평론에 또 다른 꼭지에서 정치지도자가 마음에 새겨야 할 내용을 소개해 준 것이 있는데, 아베는 완전 반대로 하고 있는 것 같구나. 그런데도 한 나라의 총리를 하고 있다니.. 연구대상이구나. 이 궁금증을 풀어야 하나? 아베에 관한 책을 한번 읽어야 하나? 그런 사람에 관해 알려고 시간을 낭비해야 하나? 그냥 그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얼른 정치판을 떠났으면 좋겠구나. 우리나라 몇몇 정치인들도 말이야.

아참, 이 책에 나온 정치지도자가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아래와 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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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도자는 다음에 열거한 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 인류의 도덕률은 모든 국민이 기본적으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존엄에 대한 권리를 대등하게 보유하고 있다는 통찰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

- 이 인류의 도덕률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혹은 자국민 혹은 자국의 이익추구보다도 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

- 정치지도자는 타국의 국민도 자국민과 마찬가지로 인정해야 할 이익추구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 따라서 양보의 미덕, 절도와 자제 등 기본적 미덕은 도덕적 계율이며, 이들은 결코 방기돼서는 안되는 이성적 원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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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더 이상 자본주의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것 같다가도 그 자본주의의 족쇄에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고들 생각하는 것 같아. 이젠 기후 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 최악은 막아보자는 것이 최선이 되어버린 것 같구나. 그렇게 최악이라도 막아서 인류가 잘 생존하게 된다면, 100년 뒤의 모습은 어떨까? 이번 녹색평론에서는 여러 꼭지를 할애하여 자본주의 이후의 세상으로 소농 공동체에 관한 글을 실었단다.

나중에 석유가 다 떨어지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몇몇 소수 공동체가 자급을 하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어.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란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오랫동안 자본주의에 물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아빠가 얼마 전에 예전 친구들을 오랜 만에 만났는데, 아주 잠깐 기후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 그런데 어떤 친구가 이야기 하기를 우리와 우리 아이들 세대까지는 괜찮다면서 별일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거야. 그리고 그 친구의 말에 동조하는 이들도 있고 말이야. 그들은 나름 정치적인 견해들이 진보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야. 이런 생각들이 현재 살고 있는 이들의 대부분의 생각이라면, 최악을 막아보는 것도 어렵지 않을까 싶구나. 지난 녹색평론에서 소개했던 폴란드 소녀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전 세계의 10대들이 울부짖는 기후변화에 대해 어른들이 앞장서서 노력을 해야 하는데 말이야. 그레타 툰베리를 대놓고 외면하는 트럼프의 사진을 보고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구나. 너희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아빠들을 비롯한 지금의 어름 세대들을 얼마나 원망을 할까미안하구나.

이 책에서 100년 뒤 미래라고 하면서 이야기한 것이 있는데, 이런 모습이라도 되기 위해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최악을 막아야 하는데, 그렇게 될지 모르겠구나. 그렇게 되었다 치고 100년 후의 모습을 미래 그려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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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92)

그럼 이제 100년 후의 사회를 농사를 중심으로 해서, 내부와 외부의 관점을 섞어서 묘사해보겠습니다.

(1) 인구가 3분의 1로 줄어도 농민은 국민의 과반이 넘습니다. 농지는 마을에서 공동소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되며, 농민은 모두가 동경하는 직업이 됩니다.

(2) 많은 사람들이 먹거리를 중심으로 가능한 한 자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외국으로부터 식량 수입은 거의 없어지고, 수출은 식량이 부족한 나라나 지역으로만 하게 됩니다.

(3) 돈이 없어도 먹고살 수 있는 보장을 마을에서 얻게 됩니다. 작은 상점가들도 활기가 넘칩니다.

(4)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효율을 경쟁하는 일은 없어지고, 애초에 경쟁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됩니다.

(5) 천지자연에 대한 몰입은 빼놓을 수 없는 관습이 됩니다. 도시에도 여기저기 농지가 조성됩니다.

(6) 천지유정의 풍경이 풍요롭게 되살아나서, 어디를 가더라도 아름답고 차분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7) 마을의 천지자연으로부터 얻은 장작이나 낙엽, 잡초 등이 주요한 애너지원이 되고,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화석에너지는 중요한 분야나 재해시에 이용하도록 배당됩니다. 농업에 배당되는 것은 간척지의 배수펌프 정도일 것입니다.

(8) 수차나 퇴비의 열, 가스, 유채나 콩의 기름, 태양열 등이 잘 이용되고 에너지 소비 그 자체도 상당히 감소할 것입니다.

(9) 정치는 마을에서 자치가 이루어지고, 지자체 합병으로 거대해졌던 행정단위들의 영역은, 인구 수백에서 수천 단위로 재편성됩니다. 국가는 마을연합의 형태가 되고 그 기능은 극히 제한적이 될 것입니다.

(10) 수송기관은 주로 자력으로 움직이게 되고, 자동차는 제한된 분야에서만 사용됩니다.

(11) 유기농업이 당연한 농법이 되고, 농약이나 화학비료는 최소한으로만 사용합니다. 농업기술에서는 생산성을 부정하고, 천지자연의 은혜가 오래 계속되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심이 되게 합니다.

(12) 교육은 지역을 기반으로 재편성되고, 농사가 필수과목이 됩니다.

(13) ‘농본주의 유산을 인증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관장지가 됩니다.

(14) 농사는 천지에 떠 있는 커다란 배가 되고, 모두 이 배에 함께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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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은 이만 마칠게

.

PS:

책의 첫 문장: <신생> 창간 20주년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의 끝 문장: 이러한 제한은 차별 요소가 없어야 하며, 오직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완전히 인정하고 존중하고 보장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민주주의사회의 공정하고 가장 필수 불가결한 요건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제한을 두어야 한다.


지금 근대문명이 벼랑 끝에 이르렀다는 것은 누구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인류가 살아남고, 인간다운 삶이 최소한이나마 유지될 수 있는 상황을 지속시키려면, 근대문명을 넘어서 생태문명을 재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생태문명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은 우리들 뇌리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고정관념, 즉 역사는 보다 나은 단계로 발전해간다는 이른바 발전사관과 이에 결부된 시대구분입니다. 근대문명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하고, 생태문명을 재창조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발전이니 진보니 하는 관념적 장벽부터 깨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P8

그러니까 생태문명의 재창조란 ‘근대’가 이 세계를 전면적으로 지배하기 이전의 거의 모든 토착적 혹은 전통적인 삶의 복구를 통해서 또하나의 ‘비근대적 문명’을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복구는 단순한 복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근대’를 통과해오는 동안 불가피하게 손상된 자연적 및 사회적 질서를 수선, 치유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인류 사회에 축적되어온 갖가지 창조적인 지혜와 경험과 기술을 살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가 ‘재창조’라는 용어를 강조하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P10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 모리시마 교수는 그 이유를 ‘정치의 빈곤’을 들었다. “정치가의 일은 새로운 정치적인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데 있다”고 보는 그는, 정치혁신 없이 이대로 갈 경우 일본은 고립돼 망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정치의 빈곤을 떨쳐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동북아시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것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밝아지고 경기가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며, 모든 6개 블록으로 나눈 동북아 공동체의 수도를 독립한 오키나와에 둔다면 남북한 분단이나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독도 등을 둘러싼 영토문제도 자동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갈라파고스 일본에서 그런 생각이 가능할까.- P36

발전소 주변에는 여전히 극심한 비극이 진행 중이다. 사고 당일 ‘원자력긴급사태’가 발령되어 처음에는 3km, 다음에는 10km 그리고 20km로 강제피난 지시가 확대되었고, 사람들은 손에 잡히는 짐만 가지고 집을 떠났다. 가축이나 애완동물들은 버려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40~50km 떨어져 있어서 사고 직후에는 아무런 경고나 지시도 받지 않았던 지역민 아디테무라에는, 사고 후 1개월 이상이 지나고 나서 극도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피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마을 전체가 피난했다. 사람의 행복이란 대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에게는 가족, 친구, 이웃, 연인과의 평온한 말이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평범하게 이어지는 것이 바로 행복일 것이다.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중단된 것이다. - P89

- 인류는 그걸 왜 해결하려 안할까요. 지금이 아니라 미래의 일이라 그런가요? 이게 인류의 모순일까요?
이상하죠. 그러니까 인류는 자기 혼자나 가족이 먼저 죽는다고 하면 겁을 내는데, 다 같이 죽는 건 겁을 안 내더라구요. 공멸은 신경 안 써요. 인류의 모순이죠. 한계죠. 그러니까 호모사피엔스라는 게 현명한 인간이 아니죠. 바보죠. 공멸이 더 무서운 건데. 그야말로 다 죽잖아요.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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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문지 스펙트럼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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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은 SNS을 통해서 알게 된 책이란다. 이 책에 대한 호평과 지은이에 대한 호평이 있었어. 아빠는 모르고 있던 작가인데 말이야. 그래서 그의 책 몇 권을 덥석 샀단다. 다니엘 페나크. 20년 넘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어린이를 위한 책도 많이 출간하고, 어른들을 위한 책도 많이 썼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이번에 산 다니엘 페나크의 책들 중에는 너희들을 위한 책도 있어. 나중에 같이 읽어보자꾸나.

그리고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처럼>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단다. 생각보다 무척 얇은 책이더구나. 아빠는 이 책을 펴기 전까지는 소설인 줄 알았어. 그런데, 에세이더구나. 본격적으로 책에 들어가기 전에 앞머리에 이런 문장이 써 있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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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이 책을 강압적인 교육의 수단으로 삼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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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에 관한 책인가? 그런데 교육의 수단으로 삼지 말라? 20년 넘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력을 가진 지은이가? 호기심이 일었단다. 그리고 다음 장을 폈는데, 강력한 첫 문장을 만나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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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읽다라는 동사에는 명령형이 먹혀들지 않는다. 이를테면 사랑하다라든가 꿈꾸다같은 동사처럼, ‘읽다는 명령형으로 쓰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줄기차게 시도해볼 수는 있다. “사랑해라!” “꿈을 가져라!”라든가, “책 좀 읽어라, 제발!” “, 이 자식, 책 읽으라고 했잖아!”라고.

네 방에 들어가서 책 좀 읽어!”

효과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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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강렬한 첫문장이 아닐 수 없었단다. 현실을 꿰뚫는 비유. ‘읽다의 명령어는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는 말. 하지만,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명령어 중에 하나. 어쩌면 그 명령어로 인해 아이들과 부모들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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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교를 들어가기 전 아이들은 대부분을 좋아한단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고, 나이를 하나 둘 먹고 나면 책읽기는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사춘기에 접어들면 극에 달하게 된단다. 그러면 그때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명령어를 가장 많이 듣게 될 거야. 이 책은 왜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책읽기에 대한 거부 반응이 생겨났는지 알아보고, 다시 책읽기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단다.

지은이 자신이 학교 선생님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어낸 답을 알려준단다. 답안을 알기 전에 먼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꾸나. 사춘기에 접어들게 되면 신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같은 사람 맞나 할 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난단다. 그 변화는 대개 (부모의 처지에서 보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하게 된단다. 우리 아이는 안 그럴 거야. 하는 기대는 금물이란다. 우리나라에서도 2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잖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사춘기 학생들도 마찬가지인가 보구나. 다음을 한번 읽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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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그런데 이제 어느샌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제 방에 틀어박혀, 읽지 않는 책을 마주하고 있다.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은 아이의 열망이 아이와 펼쳐진 책 사이에 희뿌연 막이 되어 행간이 흩뜨린다. 아이는 방문을 닫아건 채 문을 등지고 창 쪽을 향해 앉아 있다. 48페이지. 여기까지 읽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차마 헤아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책 전체는 정확하게 466페이지다. 그러니까 거의 500페이지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다. 500페이지! 대화라도 좀 섞여 있으면 좋으련만! 어림없는 소리다! 페이지마다 얼마 되지도 않은 여백을 두고 좁쌀만 한 글자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새카맣게 행을 이루며 빼곡히 이어진다. 어쩌다 한번씩 가물에 콩 나듯 드문드문 대화가 섞일 뿐이다. 한 인물이 상대방에게 건네는 말을 가리키는 따옴표(“ ”)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라도 되는 양 반갑기 그지없다. 하지만 상대방은 아무런 대꾸가 없다. 그러고는 다시 12페이지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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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다 보니 미소가 지어지더구나. 아빠의 사춘기 시절도 생각이 나고, 앞으로 너희들의 어떤 사춘기 시절을 보낼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이런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도 절대 실망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춘기에는 이런 습성을 갖게 되니까 말이야. 이런 학생들에게 두꺼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하니 그것보다 악몽이 어디 있겠니. 책이라는 것은 그리고 사람을 아래쪽으로 끌어당기잖니.. 이 글을 읽고 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겠구나, 싶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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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더군다나 책이 지니는 무게란 한결같이 사람을 아래쪽으로 잡아당기는 성향이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무너질 가벼운 결심을 하고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몇 페이지도 못 읽고, 아이는 익히 알고 있는 그 끔찍한 무게에 짓눌리기 시작한다. 책의 무게, 지루함의 무게, 아무리 기를 써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버거움의 무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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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들과 20년 넘게 생활한 지은이라서 그런지 그들의 습성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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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6)

마냥 늑장을 부리다가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마지못해 저녁 식탁에 얼굴을 들이민 아이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사춘기 특유의 무게를 잡고 앉아서, 한마디 사과는커녕 식구들 간의 대화에 끼려는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는 식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후닥닥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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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지만 방법이 있단다. 사춘기의 학생들이 책읽기의 즐거움을 사라진 것이 아니란다.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라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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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독서의 즐거움이 사라져간다고 해서(다들 우리의 아들딸이, 요즘 젊은 아이들이 책읽기를 싫어한다고들 하니까), 아주 까마득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다.

그 즐거움은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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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즐거움을 다시 찾는 방법은 어려운 것이 아니야. 아이들이 어렸을 때, 책읽기를 좋아하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된단다. 엄마, 아빠가 책을 읽어주면 얼마나 좋아했었니? 더 읽어달라고 조르던 시절 말이야. 아이들을 글을 읽고 나서는 더 이상 책 읽어주기를 하지 않게 되었지. 눈으로 조용히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하였지. 그게 문제라는 것이지. 진정한 책읽기는 소리내어 책을 읽는 것이고, 아이들은 여전히 누군가 읽어주는 것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거야.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들에게도 말이야.

그래서 지은이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국어 수업 시간에 고전을 처음부터 읽어주었다고 하는구나. 그 전까지 볼 수 없었던 집중력을 아이들이 보였대. 한 시간 동안에 읽어봐야 얼마나 많이 읽겠니. 아이들은 뒷이야기를 궁금해서 스스로 찾아 있는 아이들도 생겨났다는 거야.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교과서에 실린다면 해석해야 하고 설명해야 하는 작품이 되어야 해서 학생들이 가장 거부하는 작품이 되는 것은 동서고금을 따지지 않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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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미국 고등학생들에게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크나큰 골칫거리라는 말을 해주자, 얼마 전에 그 책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은 벌링턴과 바이크족이 가장 놀라워했다. 단지 <호밀밭의 파수꾼>이 교과 과정에 포함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 미국의 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샐린저를 강매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동안에, 한쪽 구석에서는 텍사스의 어떤 바이크족이 에마 보바리에게 푹 빠져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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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8-179)

초등학생이건 고등학생이건 적어도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늘 작품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숙제가 아이들을 따라다닌다. 그런 식의 과제는 아이들을 질리게 만들어 급기야 책과 벗할 기회마저도 빼앗기기 십상이다. 20세기 말인 지금도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주인처럼 군림하는 설명에 가려, 정작 설명하는 대상은 뒷전으로 밀려 보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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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답은 심플하단다. 책을 읽으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어주면 되는 것이야. 그래서 아빠도 한번 해봤어. 너희들이 읽었으면 하고 사 둔 지 꽤 오래되었는데, 너희들이 책장도 펴지 않는 책 하나를 집어 들고, 잠들기 전에 한 챕터씩 읽어주었어. 그러자 너희들이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고 더 읽어달라고 하더구나. 하하, 지은이의 말이 딱 맞네. 그리고 아빠도 오랜만에 너희들에 책을 읽어주니 기분이 좋더구나. 그래서 한 챕터 읽어 주고아빠가 회사일로 바빠 늦게 퇴근한 날은 읽어주지 못해서, 진도가 좀 느리기도 했지만, 엊그제 한 권을 마쳤잖니..

정말 뿌듯하더구나. 그래서 아빠는 계속 해보려고그리고 다음에 읽을 책으로 정한 것이 이 책의 지은이 다니엘 페나크가 어린이들을 위해 쓴 <늑대의 눈>이란다. 또 같이 읽어보자꾸나.

….

마지막으로 독서 지도를 할 때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권리를 적은 것이 있는데, 그 내용이 재미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아빠도 너희들에게 아래의 모든 권리를 부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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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독서에 관한 한, 우리 독자들은 스스로 모든 권리를 허용한다. 우리가 이른바 독서 지도를 한다면서 청소년들에게는 일절 허용하지 않았던 권리를 비롯해서 말이다.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슴을 누릴 권리

7)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어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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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읽다라는 동사에는 명령형이 먹혀들지 않는다.

책의 끝 문장: 살아 계시건 돌아가셨건 간에 그분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보름이라고요? 400페이지(사실은 500페이지다)나 되는 책을 보름 만에 다 읽으라고요? 말도 안 돼요, 선생님!”
선생님에게 타협이란 없다.
정말 골 때리는 책이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는 영겁의 돌덩이, 지겨움 그 자체다. 그게 책이다. 그냥 ‘책’ 말이다. 아이는 논술 과제를 쓸 때 책을 ‘책’이라고밖에 달리 뭐라 이름 붙일 수가 없다. 이 책이든 저 책이든 아이에게는 그저 그렇고 그런 책일 뿐이다.- P24

“아이는 냉철하기 그지없는 훌륭한 독자입니다.”

아이는 누구나 훌륭한 독자가 될 자질을 타고난다. 그리고 주위의 어른들이 몇 가지 지침만 잊지 않는다면 아이는 언제까지고 훌륭한 독자로 남을 것이다. 우선은 어른들이 자신의 능력만을 내세우려 들기보다는, 아이에게 열정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무조건 암기와 복습만을 강요할 게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북돋워 줘야 할 것이다. 모퉁이에 서서 아이가 도착하기만 기다릴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볼 일이다. 어떻게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들기보다는, 기꺼이 아이에게 저녁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 미래를 담보로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기보다는 아이의 현재가 한껏 펼쳐질 수 있도록 마음 써야 한다. 한때는 아이의 더없는 즐거움이었던 일이 결코 마지못해서 하는 고역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자면 아이가 그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도록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P67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싶다. 생각을 추스르고 교사는 다시 아이들의 과제물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한낱 과제물 채점자에 지나지 않는 교사의 고독감을 그 누가 알겠는가?) 몇 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어느새 눈에 익은 낱말이 태반이다. 그렇고 그런 논지가 계속 반복되는 상황이다. 울컥 짜증이 치민다. 마치 반 아이들이 모두가 그에게 무슨 경전이라도 읊어대고 있는 듯하다.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어야 한다!라고, 눈에 들어오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전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뻔히 드러내고 있는데도, 읽어야 한다니……! 그것은 끝없이 반복될 뿐인 공허한 교육적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P94

우선 이제까지의 정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제까지 우리 인격을 형성해온 책읽기란 대개 순응하고 따르는 책읽기라기보다는, 무언가에 반하고 맞서는 책읽기였다. 즉 이제껏 우리는 마치 세상과 등지듯 현실을 거부하고 현실과 대립하기 위해 책을 읽어왔다. 그래서 때론 우리가 현실 도피자처럼 여겨지고 현실마저 우리가 탐닉하는 독서의 ‘매력’에 가려져 아득해지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도망자,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탈주자인 것이다.- P103

결국 아이들은 두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두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아이들은 (탄복할 정도로!) 세련되고 ‘쿨’한데, 학교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끊임없이 아이들을 괴롭히고 혹사시킨다. 아이들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언젠가 어른이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끝없는 항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P140

그렇다고 무슨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장족의 발전을 이루기까지 교사가 한 일이라곤 거의 없다. 책읽기의 즐거움이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다만 읽어도 모를까 봐 지레 겁을 먹었던 (그야말로 오랜 고질병과도 같은) 그 말 못 할 두려움으로 인해 줄곧 사춘기 아이들의 기억 저편에 묻혀 있었을 뿐이다.-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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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평전
김희곤 지음 / 푸른역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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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육사라는 시인을 모르는 없지 않을까 싶구나. 학창시절 교과서에 이육사의 시가 실렸으니까 말이야. 청포도, 광야그 강렬하고도 뜨거운 시들…. 그리고 감옥에 수감되어 받아든 수인번호 264를 따서 이름을 이육사로 바꿨다는 일화까지일제시대 저항시인의 작품은 시험에도 자주 나오기 때문에 그의 시는 달달 외우고, 철저하게 분석을 해야만 했단다. 요즘 교과서에도 그의 시가 실려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아빠도 사실 그의 대표적인 시만 알고 있었지, 그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단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알게 되었단다. 이육사 평전. 시인이기 전에 독립투사였던, 그의 짧은 삶을 그려 낸 이야기. 1904년 태어나 1944년 돌아가시다. 그야말로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암흑의 시대에 짧은 삶을 사셨구나. 광복 일 년을 앞두고 눈을 감으셨다니우리 죽음 이후에도 영혼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래야 광복된 조국을 보셨을 테니. 비록 다시 둘로 갈라질지언정….

1.

이육사 정도 되면 상당히 유명하신 분인데, 그에 대한 자료가 이렇게 적은 줄은 정말 몰랐단다. 그 동안 이육사에게 잘못 알려진 부분들이 많았다고 하는구나. 그나마 이 책의 지은이 김희곤님이 여기저기서 이육사의 자료들을 모아 잘못 알려진 부분들을 바로 잡았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여전히 그의 행적에 있어 추정한 경우도 많더구나. 그가 삶을 마감한 곳도 베이징의 동창후뚱 1호라는 곳도 정확히 어디인지 모른다고 했어. 안타깝구나.

이육사. 수인번호를 따서 지었다는 이름그가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 받은 이름은 이원록이었어. 그는 이육사라는 이름 이외도 이활 등 여러 이름을 사용했단다. 그의 나이 26살 때 광주학생항일투쟁의 여파로 일본 경찰은 전국적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잡아들였는데, 대구에서 대구청년동맹 간부로 있던 이육사도 체포되었어. 그때 수인번호가 264였다고 하는구나.

다시 풀려나서 조선일보사에서 기자로 일했는데, 그때 사용한 필명 중에 하나가 대구 이육사(二六四)였다고 하는구나. 그러나 그의 공식 한자는 李陸史라고 해이육사라는 이름에 한자를 여러 개로 바꾸어 썼다고 하는구나. 二六四로 시작했지만, 肉瀉(고기를 먹고 설사하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고, 戮史(역사를 죽이다)라는 이름도 사용하기도 하고, 마지막에 陸史 정했다고 하는구나. 그는 기자로도 일하면서 이러 평론을 썼다고 하는데, 국내 정세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에 대한 비판의 글들도 많이 썼다고 했어. 평론을 쓸 때는 필명을 이활을 사용했다고 했어.

2.

1932년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에 그는 중국으로 길을 떠났단다. 독립운동을 하려고 말이야. 아빠가 이육사가 그런 무장투쟁을 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의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단다. 이육사는 의열단을 이끄는 김원봉이 운영하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대. 그렇다고 정식 의열단원이 된 것은 아니었어. 김원봉과 사이가 썩 좋지 않다고 했어. 당시 독립운동의 최고봉이었던 김원봉과 대립각을 세울 정도라면, 이육사라는 분은 자신의 주장도 뚜렷했었던 것 같구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마치고, 상해에서 루쉰을 만나기로 하고, 다시 국내로 들어왔다고 했어. 그러다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동기생이자 처남인 안병철이 체포되면서, 체포되었다가 기소유예로 풀려나고, 다시 글을 쓰기도 했어. 이 시절에 시들을 비롯하여 많은 글을 썼다고 했어. 그렇다고 그의 독립운동의 의지가 중단된 것은 아니란다.

그리고 1943년 다시 중국으로 가서 무력투쟁을 위한 준비를 했어. 하지만 국내에 귀국했다가 체포되어.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다시 베이징으로 붙들려갔어. 그리고 1944 1 16…. 베이징 동창후뚱 1호라는 곳에서 돌아가시고 말았어. 나라 없이 살았던 짧은 삶. 그의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 조국을 되찾고 노력했던 많은 분들을 위해서라도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구나.

이육사.. 그를 그리면서 그의 시 <광야>를 다시 한번 소리 내어 읽어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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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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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를 이육사(李陸史)라고 부른다.

책의 끝 문장: 이미 광복된 날을 내다보며 미리 민족의 가슴에 노래를 불어넣은 그 자신이 곧 백마 타고 온 초인이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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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디 러브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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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조이스 캐롤 오츠라는 분의 소설을 읽었단다. 그의 소설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을 칭찬한 글들을 보았거든. 그런 다른 사람들의 평에 너무 기대를 했나, 아빠는 실망했단다. 다른 범죄소설들에 비해 차별성도 없어 보였고, 다른 사람들이 극찬을 하는 이유를 안타깝게도 찾지 못했단다. 아빠가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소설들을 몇 권 사뒀는데, 그 책들도 이런 실망감을 가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소설가를 한 권의 책으로 평가하면 안되지만, 이 소설은 아빠의 취향이 아니었단다. 그래도 조이스 캐롤 오츠의 다음 소설들에 기대를 해봐야겠지.

..

1.

사실 아빠는 지은이의 이름만 보고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었단다.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몰랐어. 제목 대디 러브. 아빠 사랑? 아빠와 관련된 이야기인가 싶었어. 하지만 범죄 소설, 그것도 어린 아이를 유괴하여 살해하는 사이코패스의 이야기였어. 그 사이코패스가 자신의 닉네임으로 붙인 것이 바로 대디 러브였단다. 나쁜 놈.

다이너와 로비는 다정한 엄마와 아들이었단다. 로비는 이제 다섯 살. 둘이 쇼핑몰에 갔다가 주차장으로 오는 길에 다이너는 어떤 괴한으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아들의 손을 놓쳤단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떤 SUV에 자신의 아들을 싣고 도망가는 길이었어. 혼신의 힘으로 그 차를 잡아챘지만, 빠른 차의 속도에 다시 나동그라지고 다시 정신을 잃었단다.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다이너가 죽은 줄만 알았지. 하지만, 다이너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단다. 하지만 온 몸에 중상을 입었고, 특히 얼굴 아래쪽은 거의 복구 불능이 되어버렸단다. 그래도 아들을 잃은 것만큼 상처를 입었을까. 다이너는 그렇게 길고 긴 고통의 나날을 보냈어. 남편 위트도 가슴 아파 했고, 다이너와 위트는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어. 더욱이 로비가 사라진 지 며칠이 지나도, 몇 주가 지나도 유괴범은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않았단다.

2.

로비를 유괴한 사람은 체스터 캐시라는 중년의 남자야. 그는 공예가이면서,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설교를 하는 사람이야. 남들이 보면 신심 깊은 신자였던 것이지. 하지만 그는 어린 남자 아이들을 데려다가 키우곤 했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 잃은 자신의 아들이라도 했어. 로비 말고도 다른 아이들을 유괴했었는데,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게 되면 죽여서 암매장을 하고, 다시 다른 아이를 유괴하고그런 사이코패스였어. 현실에서는 절대 있으면 안될 사람이었지. 그러니까 그는 돈을 위한 것이 아니었어. 체스터 캐시는 로비를 데리고 와서 자신을 대디 러브라고 부르라고 했고, 로비에게도 새로운 이름을 주었어. 기드온. 로비는 하지만, 그 무서운 사람에게 억눌려 이상 성격의 소유자가 되어갔어.

그렇게 육 년이 흐르고로비는 이제 학교도 다니고 있지만, 다른 친구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상에 살고 있었어. 그림의 실력이 월등해서 선생님이 칭찬을 하자, 체스터는 그 선생님의 집에 불을 내버렸어. 로비는 점점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반항기도 생겨났지. 그러면서 성격도 폭력적이 되어가곤 했어.

어느날 로비는 체스터가 다른 아이를 유괴해 온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로비를 어떤 산속으로 데리고 갔지. 삽으로 땅을 파라고 했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 빠른 로비는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 삽으로 방심하고 있던 체스터를 공격해서 그 자리에서 도망을 갔단다.

3.

그렇게 탈출한 로비는 우여곡절 끝에 가족과 다시 만났단다. 다섯 살 때 헤어졌던 아들이 열한 살이 되어 찾아왔을 때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예전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때. 아들만 돌아오면 온전한 가족이 될 줄 알았지만, 엄마는 아들에게 여전히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아들은 엄마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서, 또한 미안함을 느끼고엄마, 아빠라고 불러보지만 그 어색함. 그들에게는 적응 기간이 필요했지.

의사의 도움을 받기도 했어. 하지만 그 시간이 짧지는 않을 거야. 또 하지만 헤어져 있던 시간보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함을 알고 서서히 다시 가까워지리라 믿는단다. 한편, 체스터는 경찰에 잡혀 그 동안 아이들을 유괴하고 살해한 진실이 드러났단다. 그리고 로비 다음으로 유괴했던 아이도 발견되어 안전하게 부모에게 인도되었어. 로비 덕분에 다행히

….

이렇게 소설은 끝이 났지만, 아이들 유괴를 다룬 범죄소설이라서 읽는 내내 불편했단다. 아이들 유괴 사건과 아이들 실종 사건에 대한 기사를 볼 때면 마음이 불편하고, 아직도 저런 놈들이 있나 싶단다. 불완전한 생명체 인간의 가장 악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인간이기는 포기한 이들우리나라에도 어린이를 상대로 한 범죄자들은 가중치를 최고로 해서, 겁나서라도 그런 짓을 하지 못해서 했음 좋겠구나. 불완전한 생명체를 다루는데 아직까지는 강력한 법은 필요하다고 생각해

.

PS:

책의 첫 문장: 내 손 잡아. 그녀가 말했다.

책의 끝 문장: “오셨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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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드러머 걸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4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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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읽었단다. 아빠가 읽은 존 르 카레의 소설은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한 편이야. 존 르 카레는 첩보 소설만 쓰는 사람으로 유명하단다. 예전에 냉전시대에 자신이 직접 첩보 활동도 했다고 했어. 예전에 읽은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그의 소설 중 가장 유명한 소설이었지. 아빠는 그 소설을 괜찮지만 읽기 쉽지 않은 소설로 기억하고 있단다. 그래도 괜찮았다는 기억이 좀 더 크기 때문에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서핑하다가 우연히 그의 소설을 만나게 되면 반갑더구나.

이번에 읽은 <리틀 드러머 걸>도 그렇게 알게 된 책이야. <리틀 드러머 걸>의 원작은 1983년인데,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2014년이고, 아빠가 읽은 책은 작년에 특별판으로 재출간한 책이란다. 왜 작년에 굳이 재출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소개를 보니 알겠더구나. 영국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는 내용을 봤단다. 그런데 그 드라마의 감독이 우리나라의 유명한 박찬욱 감독이었어. 그래서 책을 재출간 한 것구나. 드라마 덕에 책 좀 팔아보려고 말이야.

그런데 책제목 <리틀 드러머 걸>만 보고, 이번에는 첩보 소설이 아닌가 보네이렇게 생각을 했지만, 첫 페이지를 넘어가기도 전에 , 역시 첩보 소설이네라는 생각을 들게 했단다. 그런데 왜 제목이 리틀 드러머 걸이지? 드럼을 치고는 소녀가 나오나? 이런 책을 하며 책을 들었지만 끝내 드럼을 치는 소녀는 나오지 않았단다. 아빠가 놓쳤는지 모르겠지만, 책에서도 리틀 드러머 걸이라는 뜻을 보지 못했단다. 그래서 책 제목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검색을 해보았어. 이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하면서 그 뜻을 이야기한 것을 보았단다.

"북 치는 소년이라는 의미의드러머 보이는 서양의 전쟁사에서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 독려하는 존재였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여배우 찰리는 낭만에 이끌려 참혹한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순진한 아이, 혹은 어른들에게 이용당하는 아이라는 의미의리틀 드러머 걸이라고 생각한다

, 그런 의미인가 보구나.

이 책은 700페이지나 넘는데, 이 책 또한 읽기 또한 쉽지 않았단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 읽는 속도도 잘 안 붙었어. 하지만 중간에 놓칠 못했단다. 결말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 궁금하게 만들었거든. 비록 조금은 예상이 되는 결말이긴 했지만 말이야.

 

1.

이 소설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이야기를 주제로 다루고 있단다. 아빠가 그들의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대충은 알고 있었어. 2000년 가까이 터를 잡고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이 어느날 떼로 들어와 자신들의 땅이라고 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아 버리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들었어. 삶의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순순히 물러날 수 있겠니. 저항했지. 그렇게 그들은 서로 총칼을 들게 되었어. 그게 벌써 70년이 넘은 것 같구나. 유대인의 막강한 경제력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고 강국을 조정해서 한동안 이스라엘의 이미지를 좋은 시절도 있었단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실체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나서는 좋게 생각하는 이들은 별로 없는 것 같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누구나 팔레스타인의 편을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란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이라는 든든한 백으로 버티고 있단다. 이 소설이 나온 것이 1983년이고, 소설의 배경이 1979~1980년인데 이 이후에도 관계가 좋았다 나빴다 하긴 했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은 여전하단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상황이구나.

 

2.

, 그럼 소설의 이야기를 해볼게. 7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지만 줄거리를 짧게 해줄 수 있을 것 같구나. 본질은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독일 본 근처 바트고데스베르크라는 동네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났단다. 그 동네에는 외국 대사관과 영사관들이 많은 동네였단다. 이스라엘 영사관에 배달된 여행용 가방에 폭탄이 배달이 되었고, 그것이 터졌어. 어린이를 포함한 인명 피해가 있었단다. 수사를 위해 이스라엘에서 파견된 쿠르츠라는 사람이 팀을 꾸렸어. 쿠르츠는 첩보원답게 이름이 여러 개로 나오는데, 쿠르츠로 이야기할게. 이미 그 테러의 배후세력인 누구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어. 팔레스타인의 급진세력인 칼릴이라는 자였지. 그를 잡기 위해 작전을 짰어.

….

이쯤 영국 런던에서 이류 연극 배우로 활동하는 찰리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찰리.. 남자 이름이지만 그는 젊은 아가씨였단다. 반골 성향에 급진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었어. 진보 성향의 세미나에도 참석한 적이 있어. 찰리는 친구들과 그리스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자주 눈에 걸렸어. 그 남자는 키도 크고 매력적인 외모로 여자들의 눈길을 끌었어. 찰리도 마찬가지였지. 찰리 일행은 그 남자를 요제프라는 이름을 붙여서 불렀어. 그리고 결국 그와 안면을 텄어. 말이 적은 그는 그냥 자신을 요제프라고 부르라고 했어. 찰리와 요제프는 더 가까워지고, 일행과 헤어져 둘만의 밀월 여행을 떠났어.

요제프그는 쿠르츠와 함께 일하는 이스라엘 첩보원으로 가드 베커라는 사람이란다. 가드 베커는 찰리를 쿠르츠에게 데리고 왔어. 그들은 이미 처음부터 찰리를 포섭하려고 했던 거야. ? 칼릴의 남동생이자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미셸의 애인 역할을 맡는 거야. 찰리와 친구들을 그리스 여행으로 유인한 것도 그들이었어.

그럼 그들이 찰리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짠 시나리오는 이런 것이었어. 미셸이 런던이 잠입해 있는 동안, 찰리와 알게 되고 사귀었다는 것이야. 그 점을 이용해서 찰리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접근하게 만들고, 결국 찰리를 이용해서 칼릴을 노리는 것이지

쿠르츠는 찰리에 대한 뒷조사를 해서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찰리가 이 역할을 수용한다면 많은 돈도 약속했어.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었어. 찰리는 이 작전에 이상하게 끌렸어. , 아무래도 속긴 했지만, 요제프 때문이 아닌가 싶어. 짧은 시간이었지만, 찰리는 요제프를 사랑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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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츠 일행은 찰리에게 미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주었단다. 그리고 그리스 여행에서 일행과 헤어진 이유도 요제프가 아닌, 미셸과 만나기 위해 헤어진 것으로 했어. 찰리는 미셸의 애인 역할을 하기 위해, 미셸의 대역이 필요했어. 요제프가 그 역할 맡았지. 그래서 찰리와 요제프는 연기이지만 다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단다. 그들은 완벽한 시나리오를 만들어갔지. 그리고 찰리는 실제로 폭탄을 운반하는 일도 맡게 되었어. 테러리스트로 첫번째 역할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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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미셸은 뮌헨 서부에서 대규모 폭탄 테러가 죽었어. 찰리가 미셸의 가짜 애인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쿠르츠 일행과 찰리 밖에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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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찰리는 애인을 잃은 평범한 영국 여자로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어. 찰리는 자신의 역할에 푹 빠져 있어서 런던에 와서도 자신이 진짜 미셸의 연인이었던 것처럼 생각했어. 슬퍼하고 힘들어했지. 어쩌면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어. 요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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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있던 찰리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접근했어. 드디어 쿠르츠 일행이 꾸몄던 일들이 벌어지려고 했던 거야. 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갔어.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실상을 보게 되었지. 언제 폭격을 받을지 모르는 그런 상황 속에서 생활했어. 아무리 연기라고 하지만,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한 폭격을 받기도 했단다. 요제프, 그러니까 가드 베커는 찰리가 팔레스타인에 있으니 찰리의 안전을 위해 폭격을 하지 말자고 했지만, 그들에게 그들만의 대의가 있었겠지.

미셸의 지인들이 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어.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찰리의 연기에 결국 찰리를 믿게 되었어. 이번에는 팔레스타인의 지령을 받고 가명으로 유럽으로 향했어. 그곳에서 칼릴을 만났어. 찰리가 이런 행보를 보이는 동안 쿠르츠 일행과 한동안 연락을 할 수가 없었어. 쿠르츠 일행은 혹시 찰리가 배신한 것은 아니가 그런 의심을 하기도 했어찰리의 진보적인 정치적 성향을 봤을 때,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직접 눈을 보고, 그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났으니 마음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쿠르츠가 짠 이 작전은 결국 성공했을까? 이 작전의 결말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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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쿠르츠에게 완벽하게 이용을 당하고 있는 것인데, 도대체 왜.. 이런 위험한 일을 계속 해야 하는 것인가. 결국 사랑이었어. 요제프와 사랑.. 요제프도 첩보원으로 국가를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과정에서 찰리를 만난 것이라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찰리를 사랑했던 것이야. 모든 것이 끝나고.. 찰리와 요제프는 다시 만났단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사랑뿐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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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고 나서, 박찬욱이 연출했다고 하는 드라마를 한번 보고 싶더구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독일 당국이야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지만 어쨌든 증거를 제공한 건 바트 고데스베르크 사건이었다.

책의 끝 문장: 도시는 두 사람에게 너무 낯설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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