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노트르담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4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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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그럼 오늘은 <파리의 노트르담> 2권을 이야기해줄게. 1권에서 카지모도가 라 에스메달라를 납치해갈 때 구해주었던 사람이 있었잖아. 기억나니? 그 사람은 중대장 페뷔스라는 사람이야. 페뷔스는 약혼녀와 약혼녀의 친구들과 베란다에 있다가 라 에스메달다가 춤추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약혼녀와 약혼녀의 친구들은 페뷔스에게 그 춤추는 이집트 아가씨를 불러서 이쪽으로 오라고 부탁했어. 그녀들은 에스메랄다를 조롱하고 놀리고 싶었거든. 에스메랄다는 자신을 부르는 페뷔스를 보았단다. 자신을 구해주었던 사람이란 걸 알았어.

사실 에스메랄다는 페뷔스가 자신을 구해준 이후 페뷔스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단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불렀으니, 얼마나 떨렸을까. 에스메랄다는 자신의 반려 동물인 염소 잘리를 데리고 페뷔스에게 갔단다. 며칠 전 밤에 구해주었을 때 에스메랄다의 얼굴을 제대로 못 봤던 페뷔스는 이제서야 에스메랄다를 제대로 보고 호감을 가졌단다. 하지만 집시인 에스메랄다를 진심으로 사랑할 생각은 없었단다. 그것도 모르는 에스메랄다는 페뷔스도 자신을 사랑하는 줄 착각하게 되었어. 그런데 에스메랄다가 광장에서 춤추고 있던 모습을 노트르담 성당 꼭대기에서 몰래 훔쳐보고 있던 이가 있었어. 바로 클로드 부주교란다. 버려진 아이 카지모도를 데려고 와서 키워준 클로드 부주교. 그는 에스메랄다와 어떤 사이길래, 1권에서는 납치를 하려고 했고, 또 에스메랄다의 춤을 몰래 보고 있는 것일까.

클로드 부주교는 우연히 그랭구아르를 만나게 되었어. 그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거든. 그랭구아르는 거지 소굴인 기적궁에 잡혔다가 에스메랄다와 형식적이지만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지금은 거지들과 함께 지낸다면 최근 자신의 안부를 이야기를 했어. 그러자, 클로드 부주교는 격분을 했어. 어떤 부분이 클로드 부주교를 격분하게 했냐고? 바로 에스메랄다와 결혼했다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야. 클로드 부주교는 에스메랄다 이야기만 나오면 예민해지고 감정이 격해졌단다. 어느날 클로드의 망나니 동생 장이 돈을 빌려달라고 찾아왔단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 장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어 답답하지만, 그의 부탁을 안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어. 돈을 주고 돌려보냈지. 그렇게 얻은 돈으로 장이 하는 것은 술집에 가서 술을 먹는 것.. 장은 페뷔스와 알고 지내고 있었어. 둘이 함께 만나 술도 먹었단다.


1.

에스메랄다는 페뷔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이후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어. 결혼을 하게 된다면 페뷔스와 하고 싶어했어. 페뷔스도 에스메랄다를 가끔 만났단다. 하지만 페뷔스는 그냥 즐기기 위해 만나는 것이었어. 집시 아가씨와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 에스메랄다는 이제 열여섯 살로 순진하고 사람 볼 줄도 모르고페뷔스와 에스메랄다가 데이트를 하다가 포옹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클로드 부주교가 나타나서 페뷔스의 등과 목을 찌르고 도망갔단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고, 놀란 에스메랄다는 정신을 잃었어.

경찰이 그 현장에 들이닥치고, 에스메랄다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에스메랄다는 살인자가 되어 있었어. 괴한이 침입을 했고, 자신이 괴한의 얼굴을 보았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에스메랄다의 말을 믿지 않았어. 결국 에스메랄다는 페뷔스를 죽인 죄로 재판까지 받게 되었단다. 재판장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클로드 부주교였단다. 에스메랄다는 클로드 부주교를 알아보았지만, 그녀의 말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자신이 결백하다고 계속 이야기를 했지만, 고진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에스메랄다는 자신이 페뷔스를 죽였다고 거짓 자백을 했단다. 거기에 에스메랄다는 마녀라고 판결받았단다.

유럽의 중세시대에는 마녀사냥이라고 해서, 기독교 교리와 어긋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을 마녀로 몰아 죽인 일이 있었어. 에스메랄다도 마녀로 지목되어 판결되었단다. 에스메랄다의 반려 동물인 염소 질다가 재주가 많은데, 그것이 마녀인 에스메랄다가 마법을 썼기 때문이라고 했어. 마녀로 판결을 받으면 교수형을 받아야 했단다. 그렇게 에스메랄다는 감옥에 갇히게 된단다.

….

감옥에 갇힌 에스메랄다를 찾아온 클로드 부주교. 지금까지 클로드 부주교가 에스메랄다에게 보였던 행동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스토킹 같은 짓들이었어. 클로드 부주교는 왜 그런 일들을 했을까. 클로드 부주교는 신학이 독실한 사람이었어. 평생 신부로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지. 그런데 어느날 에스메랄다를 보고 자신의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단다. 에스메랄다를 깊이 사랑하게 된 거지. 클로드 부주교도 괴로워했어. 평생 신학과 함께 살려고 했는데, 사랑이라니자신이 이런 모습에 정신이 혼미해졌어. 감옥에 갇혀 있는 에스메랄다를 찾아와 이런 이야기들을 했단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자신이 에스메랄다를 탈출시켜줄 수 있다면서 자신과 함께 살자고 했어. 클로드 부주교는 에스메랄다와 함께 한다면 신학도 버릴 수 있었던 거야.

하지만 에스메랄다는 클로드가 페뷔스를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런 클로드와 함께 할 수 없었지. 그를 경멸했어. 클로드는 에스메랄다를 결국 구해주지 않았단다. 에스메랄다가 자신의 뜻에 동의했다면 신학을 버리고 살아가려고 했고, 만약 에스메랄다가 자신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에스메랄다를 죽게 나둘 생각이었단다. 에스메랄다가 죽는 것은 마음 아프겠지만, 그렇게 되면 다시 신학에 몰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클로드 부주교는 완전 사이코패스 스토커였구나.


2.

에스메랄다가 교수형에 처하는 날이 되었어. 그레브 광장에서 진행되었단다. 클로드는 신부 자격으로 참가하였고, 에스메랄다에게 다시 한번 권유를 했단다. 자신을 사랑해준다면 살려줄 수 있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때 에스메랄다는 멀리 한 저택의 발코니에서 페뷔스를 보았단다. 죽은 줄 알았던 페뷔스가 그곳에 있었어. 사실 페뷔스는 살아 있었단다. 클로드에게 찔려 중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몇 달 치료를 받고 다시 회복을 한 거야. 에스메랄다는 당연히 페뷔스가 자신을 구출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페뷔스는 에스메랄다과 마주쳤던 눈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단다. 이에 에스메랄다는 배신감에 큰 충격을 받았단다. 이제서야 페뷔스의 거짓 사랑을 알게 된 거지.

이제 에스메랄다는 죽을 일만 만났어. 그런데 교수형 직전에 카지모도가 나타나서 에스메랄다를 납치해서 도망갔어. 에스메랄다를 데리고 노트르담 성당으로 피신했단다. 당시 성당 안은 성역으로 죄수들이 성당 안에 있어도 잡아가지 못했어. 하느님의 보호하고 있는 곳이니까 말이야. 그래서 카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그곳을 데리고 온 거야.

1권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카지모도를 모두 무시하고 조롱했는데, 에스메랄다만이 카지모도에게 물을 전해주었잖니. 카지모도는 아마 그때부터 에스메랄다를 진심으로 사랑했을 거야. 그래서 에스메랄다를 구출해서 노트르담 성당으로 피신할 생각까지 한 거지. 에스메랄다는 성당 안에 있었지만, 그 밖을 나갈 수는 없었어. 나가면 곧장 잡히니까 말이야. 어쩌면 성당이 아니라 감옥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구나.

정신을 잃었던 에스메랄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카지모도를 보고 깜짝 놀라 다시 정신을 잃을 뻔 했어. 에스메랄다는 카지모도를 두려워했고, 시선을 피했어. 그러면서 자신을 죽게 놔두지, 왜 구해주었냐고 울면서 말했어. 카지모도는 자신도 예전에 도움을 받아서 그렇게 했다고 했어. 사랑,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단다. 에스메랄다는 성당 안에 머물면서 안정을 찾아갔어.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카지모도는 에스메랄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단다. 할 말이 있을 때는 문 밖에서 이야기를 했어. 에스메랄다가 자고 있을 때만 와서 잠자고 있는 에스메랄다를 바라보았지.

에스메랄다는 페뷔스가 자신을 외면했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었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카지모도는 페뷔스를 찾아갔단다. 페뷔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에스메랄다를 만나러 가자고 했지만, 페뷔스는 거절했단다. 에스메랄다가 마음 아파할까 봐 카지모도는 페뷔스를 만나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단다.

클로드 부주교도 에스메랄다가 노트르담 성당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찾아왔단다. 더는 참지 못하고 에스메랄다를 겁탈하려고 했어. 에스메랄다는 카지모도가 준 호각을 힘껏 불었단다. 그 호각은 에스메랄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불라고 카지모도가 준 것이거든. 카지모도가 귀머거리이지만, 높은 호각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 카지모도는 호각소리를 듣고, 에스메랄다에게 달려왔는데, 에스메랄다를 겁탈하려는 사람이 있는거야. 그 사람을 공격하고 죽이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자신의 스승인 클로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카지모도는 잘못을 했다면서 사죄를 했단다. 카지모도에게 클로드는 절대적인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에스메랄다가 더 중요한 사람일지도 몰랐어. 심한 갈등을 하는 카지모도.


3.

클로드는 아직도 에스메랄다를 포기하지 않았어. 언제까지 에스메랄다가 성당 안에 있을 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어. 기적궁이라고 하는 거지 소굴에 있던 그랑구아르에게 이야기하여 노트르담 성당을 공격하게 했어. 그랭구아르는 기적궁의 리더인 클로팽에게 이야기하기를, 에스메랄다도 원래 기적궁 소속이었으니, 그녀를 구해주고 노트르담 성당에 보물도 훔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어.

이에 클로팽을 일당들을 데라고 노트트담 성당을 공격했단다. 이 공격에 클로드의 동생 장도 참여했단다. 카지모도는 노르트담 성당을 공격하는 기적궁 사람들이 적인 줄 알고 열심히 싸웠단다. 그 와중에 장은 죽고 말았어.

어수선한 틈에 그랭구아르와 클로드는 에스메랄다를 성당에서 빼갔단다. 클로드는 다시 한번 에스메랄다에게 자신을 사랑해 준다면 살려줄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죽음보다 싫다는 대답이었어. 클로드는 다시 그녀를 경찰에 넘기기로 한단다. 경찰을 불러오는 동안 클로드는 에스메랄다를 귀딜 수녀에게 잠시 맡겨주었어.

1권에서 귀딜 수녀 이야기했었는데, 기억나니? 본명은 파게트이고 자신의 어린 딸을 이집트 집시에게 빼앗긴 이후 이집트 집시들을 경멸하던 사람. 클로드의 부탁을 당연히 들어주었어. 에스메랄다는 이집트 집시 아가씨였으니 말이야. 그런데 에스메랄다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의 딸이었던 거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기 신발 한 짝의 다른 쪽을 에스메랄다를 가지고 있었단다. , 이런 운명이….

귀딜 수녀는 에스메랄다가 경찰에 잡힐 위험에 빠진 것을 알고 숨겨 주었어. 그리고 클로드와 헌병대가 도착했을 때, 에스메랄다가 도망을 갔다고 했단다. 아빠도 제발조마조마하면서 읽어났단다. 귀딜 수녀의 에스메랄다 숨기기는 거의 성공할 뻔했어. 헌병대에 함께 온 페뷔스의 목소리가 들려 오기 전까지는 말이야. 페뷔스의 목소리를 들은 에스메랄다는 반가운 마음에 뛰어나갔지만, 에스메랄다는 헌병에 붙잡히고 말았단다. 귀딜 수녀는 엄마의 마음으로, 에스메랄다를 구해보려고 헌병대에 매달리다가 내동댕이쳐져서 그만 뇌진탕으로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결국 에스메랄다도 교수형에 처해져서 적었어. 에스메랄다를 지켜보며 기뻐하던 클로드 부주교. 그런 클로드를 보고 분노한 카지모도를 클로도를 종탑에서 밀어 떨어뜨렸단다. 그렇게 클로드도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는 카지모도도 사라졌어.

….

세월이 흐르고 사형수들의 시체를 보관하는 납골당. 그 안에 꼭 껴안은 두 사람의 뼈가 발견되는데,

하나는 교수형을 당한 사람의 뼈이고, 나머지 하나는 등이 굽은 꼽추의 뼈였단다. 카지모도는 죽은 에스메랄다를 꼭 껴안고 자신도 죽은 것이란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아빠는 <파리의 노트르담>이런 줄거리의 소설인 줄 처음 알았단다. 예상 밖의 줄거리구나. 지은이 빅토르 위고의 또 다른 명작 <레 미제라블>의 뜻이 불쌍한 사람들인데, <파리의 노트르담>에도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구나. 카지모도도 불쌍하고, 에스메랄다도 불쌍하고, 에스메랄다의 엄마인 파케트 귀딜 수녀도 참 불쌍한 사람이구나. 클로드 부주교의 빗나간 사랑만 아니었다면, 위 세 사람의 운명이 그렇게 비극적이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소설을 읽다 보니, 지난 여행에서 본 파리의 노르트담 성당이 다시 생각났어. 몇 년 전에 정신 나간 방화범에 의해 많은 부분이 불타서, 여전히 복원작업 중이지만 말이야. 다행히 앞쪽의 석조건물은 피해를 입지 않아서 그 위상을 볼 수 있었잖니. 그렇게 아픈 역사를 갖게 된 노트르담 성당에는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있더구나. 나중에 기회가 될 지 모르겠지만, 노트르담 성당이 다 복원이 되고 나면, 내부에도 한번 들어가 보고 싶더구나. 파리 여행 기념으로 읽었던 <파리의 노트르담> 많은 늦었지만, 그래도 여행도 다시 한번 떠오르게 해서 좋았단다.


PS,

책의 첫 문장: 여러 주일이 흘러갔다.

책의 끝 문장: 그가 껴안고 있는 송장에서 그를 떼어내려고 하자, 그것은 먼지가 되어버렸다.


중세에는, 하나의 건물이 완전한 경우에는, 땅속에도 바깥과 거의 같은 정도의 건물이 있었다. 노트르담처럼 말뚝 위에 세워져 있지 않다면, 궁궐이나 요새나 성당은 으레 이중의 토대가 있게 마련이다. 대성당에는, 밤낮으로 파이프오르간과 종소리가 울리고 불빛으로 넘쳐흐르는 지상의 홀 아래에, 낮고 캄캄하고 신비롭고 빛 없고 소리 없는, 말하자면 또 하나의 지하 대성당이 있었다. 궁궐이나 성에는, 감옥이 있었고, 때로는 분묘가 있었으며, 또 때로는 그 두 가지가 다 있었단다. - P159

신부는 숨이 막혀 또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고 나서 계속했다.
"벌써 반쯤 홀린 나는 무엇엔가 매달려서 추락을 막으려고 해봤어. 나는 사탄이 이미 내 앞에 파놓은 함정을 생각했어. 내 눈 아래 있던 여자는 하늘이 아니면 지옥에서밖에 올 수 없는 그런 초인적인 미인이었어. 거기에 있는 것은 약간의 우리 흙으로 만들어진, 그리고 내면에서 여자의 넋의 가물거리는 빛으로 희미하게 밝혀진 하잘것없는 처녀가 아니었어. 그것은 천사였어! 그러나 암흑의 천사, 불꽃의 천사였어. 광명의 천사는 아니었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당신 옆에서 염소 한 마리가, 마술사의 야연의 짐승 한 마리가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어. 한낮의 태양은 그 염소의 뿔을 새빨갛게 만들어주고 있었어. 그때 나는 악마의 함정을 보는 듯했고, 당신이 지옥에서 왔다는 것을, 당신이 지옥에서 온 것은 오직 내 영혼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어. 나는 그렇게만 믿었어."
- P171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마음속을 파고 들어가면서, 자연이 거기에 얼마나 널따란 자리를 정열에게 준비해 놓았는지 보았을 때, 그는 한결 더 고통스럽게 비웃었다. 그는 자기 마음의 밑바닥에서 자신의 모든 증오를, 자신의 모든 악의를 휘저어 보고, 환자를 진찰하는 의사와 같은 냉철한 눈으로 그 증오는, 그 악의는 부패한 사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간의 모든 미덕의 원천인 이 사랑은 신부의 가슴 곳에서는 끔찍한 것으로 변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와 같이 생긴 인간은 신부가 됨으로써 악마가 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고 그는 소름 끼치게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는, 자신의 숙명적인 정열, 결국 한 여자에게는 교수대를, 한 남자에게는 지옥을 가져다주어 그 여자는 사형수가 되고 자기는 영벌 받는 사나이가 되는 결과밖에 초래하지 못한 그 부식적이고 유독하고 증오에 넘친, 빙탄 같은 사랑의 가장 끔찍한 면을 생각하고는 다시 창백해졌다. - P225

여러분은 저를 가엾게 여겨주실 거예요. 네, 나리들? 이집트 계집들이 제 딸을 훔쳐 갔어요. 그년들은 십오 년이나 그 애를 감추고 있었어요. 저는 그 애가 죽은 줄로만 믿고 있었어요. 상상을 좀 해보세요. 좋은 친구 양반들, 제가 그 애를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는 걸 말이에요. 저는 십오 년간을 여기서, 이 지하실에서, 겨울에 불도 없이 지냈어요. 그건 참 힘든 일이에요. 이 조그맣고 가련한 사랑스러운 신짝! 제가 하도 울부짖었더니 하느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셨어요. 오늘 밤, 하느님은 제 딸을 돌려주셨어요. 하느님의 기적이지요. 제 딸은 죽지 않았어요. 여러분은 어 재를 제게서 뺏어 가지 않겠지요. 저는 확신해요. 그것도 저라면, 아무 말 않겠어요. 하지만 제 딸은 열여섯 살짜리 어린애라고요! 햇빛 볼 시간을 그 아이에게 남겨주세요! 저 애가 여러분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거예요? 전혀 아무 짓도 한 게 없어요. - P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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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노트르담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3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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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왔잖니. 여행을 가기 전에 그곳에 관련된 책을 하나 읽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떠오른 책이 <파리의 노트르담>이란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영화, 만화, 뮤지컬 등으로 각색되어 많은 사람들이 접했단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카지모도가 꼽추라서, <노틀담의 꼽추>의 제목으로 각색이 많이 되었고, 아빠도 그 제목이 더 익숙하구나. 그런데, 아빠는 이 유명한 작품을 본 적도 없고, 소설로도 읽어본 적이 없구나. 동화로 각색되어 아이들도 많이 읽는데, 그런 것도 읽지 않은 것 같구나.

지은이는 그 유명한 빅토르 위고란다. 그의 소설 <레 미제라블>을 읽었는데, 장엄함이 느껴지는 줄거리와 인문학적 내용으로 읽기 어려웠지만, 재미있던 기억이 있구나. <레 미제라블>을 읽고 나서, 그의 또 다른 대표작 <파리의 노트르담>도 읽으려고 알아보았던 기억이 있어. 그런데, 우리나라에 출판된 책들의 평이 번역이 안 좋다는 평들이 많았어. 그래서 나중에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오면 그때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미뤘단다. 그러다가 이번에 여행을 앞두고 더 이상은 미룰 수 없겠다 싶어서, 아빠가 읽은 <레 미제라블>과 같은 출판사인 민음사 판 <파리의 노트르담>을 읽었단다. 옛말이 많이 섞인 부자연스러운 번역이라는 독자평이 있었는데, 아빠는 그런 것은 별로 느끼지 못하고 읽었단다. 아빠가 나이를 먹어 옛사람이 된 건 아닌지 싶다.

여행 가기 전에 다 읽긴 했는데, 너희들에게는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한참 지나고서야 이야기하는구나. 소설에 나오는 노트르담 성당도 직접 보긴 했는데, 몇 년 전에 방화로 불탄 본채에 대한 보수 공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더구나. 그래서 성당의 앞쪽은 불에 안타고 있어서 다행이었지. 그곳에서 너희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노트르담 성당과 성당의 앞 광장, 인근 건물 들 속에 있었던 것을 상상해 보았단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다 생각나지는 않지만, 소설 속 장면을 그곳에 펼쳐서 상상해 보기도 했지. 여행 가기 전에 읽은 소설로 잘 선택했던 것 같구나. , 그럼 이제 다시 소설과 여행을 되씹으면서 너희들에게 <파리의 노트르담>을 이야기해줄게. 오늘은 1권을 먼저 해주마.


1.

전에 읽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의 경우, 주인공들의 이야기 이외에 인문학적 내용이 엄청 많이 나왔는데, 이번에 읽은 <파리의 노트르담>에서도 3장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당시 파리의 건축물과 노트르담 성당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이야기해주었고, 6장에서는 옛 사법관직에 관한 이야기도 해주었단다. 주인공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데, 빅토르 위고의 글을 그냥 건너뛸 수도 없고, 꾹 참고 읽는데 읽기가 그리 편한 것도 아니어서 시간이 좀 걸렸단다.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건너뛰고, 아빠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중심으로 이야기해줄게.

1482 1월 파리 광인절에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광인절은 시민들이 재미 삼아 광인들의 교황을 뽑는 그날 날이었단다. 재판소에서는 낮 12시에 연극이 예정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군중들이 재판소에 모여 있었단다. 하지만 12시가 되었는데됴, 연극은 시작하지 않았어. 추기경이 오지 않았다는 이유였지. 시간이 지나도 연극이 시작하지 않자, 궁중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갔고, 연극을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어. 그래서 시나리오 작가인 그랭구아르가 연극을 시작하겠다고 했고, 추기경이 뭐라고 해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단다.

그렇게 시작은 연극풍자극이긴 한데, 연극이 어려워 군중들이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 연극이 한창 진행 중일 때, 브로봉 추기경이 온다는 소식에 연극은 중단되었단다. 브로봉 추기경은 오스트리아 사절단과 함께 도착을 했어. 그랭구아르는 연극을 계속하라고 소리쳤지만, 다들 연극에는 관심이 없어서 중단되었단다. 다시 연극이 재개되었지만 그리고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인 카지모도가 나타나면서, 그의 괴상한 모습을 구경하느라 연극은 또 중단되었단다. 카지모도는 꼽추에 귀머거리에 애꾸눈이었고, 얼굴도 흉측하게 생겼단다. 광인절, 광인의 교황으로 그보다 적합한 사람이 없다고 사람들은 그를 광인교황으로 선발했어.

연극은 그렇게 중단되어 버리고, 시나리오 작가인 그랭구아르는 좌절했단다. 카지모도가 광인의 교황이 되어 행렬을 하고 있었는데, 노트르담 성당의 부주교인 클로드가 나타나서 카지모도를 데리고 가버렸단다. 카지모도는 클로드 부조교에게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비는 듯했어. 이 광경을 보고 있던 그랭구아르는 의아하게 생각했단다. 어떤 사이이길래

연극이 끝나고 그랭구아르는 아름다운 집시 무리를 보고 쫓아갔는데, 그 중에 가장 아름다운 이집트 아가씨가 두 명의 괴한에게 붙잡혀 가는 것을 보게 되었어. 그랭구아르는 그 이집트 아가씨를 구해주려고 가다가 오히려 괴한들에게 한 대 맞고 정신을 잃었어. 다행히 기병대에 의해 이집트 아가씨는 구출되었고, 괴한 중 한 명을 잡았는데, 바로 카지모도였단다. 그런 괴한 중 나머지 한 명은 누구였을까? 바로 클로드 부주교였단다. 왜 클로드 부주교는 그 이집트 아가씨를 납치하려고 했을까. 그 이집트 아가씨의 이름이 바로 라 에스메랄다란다.

정신을 잃었던 그랭구아르는 거지 집단에 붙들렸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교수형에 처할 위기에 빠졌어. 그들의 규칙에는 그랭구아르를 가지겠다고 하는 여자가 있으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데, 그 이후에는 그 여자와 결혼도 해야한다고 했어. 괴상하게 생긴 여자가 구하겠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 다름 아닌 라 에스메랄다가 그랭구아르와 결혼하겠다고 했어. 목숨도 구하고 미녀와 결혼도 하고그랭구아르는 이런 복도 없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라 에스메랄다는 그랭구아르의 목숨을 구하려고 그런 거지, 실제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어. 어렸을 때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아야 한다고 했지. 그리고는 라 에스메랄다는 사라졌단다.


2.

카지모도는 노르트담 성당의 종지기라고 했는데, 어떻게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가 될 수 있었을까. 클로드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모두 역병으로 돌아가시고, 갓난 동생인 장과 돌이 살아가야했어. 클로드는 동생 장에게 형이자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지. 클로드는 동생 장을 보살피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어. 클로드는 나중에 신부가 되었고, 괴물이라고 버려진 아이 카지모도를 입양하여 키웠단다. 그것이 16년 전 일이었어. 카지모도라는 이름도 클로드가 지어 주었어. 카지모도는 부활절 이후 첫 일요일을 뜻한단다. 카지모도를 데리고 온 날이 그날이었어.

카지모도는 노트르담의 종지를 하면서 종소리를 너무 좋아했단다. 하지만 그 종소리 때문에 그만 귀도 멀게 되었어. 그의 흉측스러운 외모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를 혐오했고, 카지모도를 사람으로 대해주는 사람은 오직 클로드 부주교뿐이었단다. 그래서 카지모도는 클로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한편 성인이 된 클로드의 동생 장은 행실이 안 좋고 막무가내였단다. 완전 문제아였어. 클로드 부주교는 신학에 대한 믿음이 충만했단다. 당시 유행했던 점성술, 연금술을 믿지 않고 비판하였고, 어떤 이와 그것에 관한 언쟁이 벌어질 때는 과격한 말까지 쏟아내면서, 신학의 믿음이 강했단다. 오직 신학과 종교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어.

클로드는 건축물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는데, 그 이유는 글을 모르고 책을 접할 수 없는 시민들이 건축물에 그림으로 표현된 신학의 이야기를 보고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건축은 책이라고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건축술이 죽었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클로드는 인쇄물에 대한 반감이 컸단다.


3.

라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다가 잡힌 카지모도의 이야기를 해줄게. 카지모도는 이 일로 재판을 받게 되었어. 배석판사로는 플로리앙인데, 그도 귀머거리였는데, 주변 상황에 따라 행동을 해서 아무도 그가 귀머거리인 줄 몰랐어. 그런데 주변에서 카지모도가 귀머거리이니까 형벌을 가볍게 주라는 조언을 했는데, 잘못 알아 듣고 더 무거운 벌을 주어서, 카지모도는 2시간동안 태형을 받고 벌금도 내야했어. 그레브 광장에서 카지모도의 태형이 집행되었단다. 2시간 태형을 맞은 카지모도는 기진맥진하고 정신을 잃었딴다. 이 광경을 클로드 부주교도 지켜봤는데, 아는 척하지 못했단다.

그런데 라 에스메랄다가 카지모도에게 가서 물을 주었단다. 앞서도 그랭구아르를 살려주었던 그 심성으로 카지모도가 불쌍해서 물을 주었던 것이란다. 사람들은 그런 라 에스메랄라를 비난했는데, 그 중에는 파케트라는 창녀 출신 귀딜 수녀도 있었어.

파케트는 이집트 집시라고 엄청 싫어했고, 특히 젊은 이집트 집시 아가씨는 거의 경멸했어. 왜냐하면 사연이 있었단다. 파케트는 젊은 시절 딸 아녜스를 낳았는데, 그 딸을 무척 애지중지했단다. 그런데 어느날 아녜스를 잃어버렸어. 이집트 집시들이 훔쳐 갔어. 아녜스를 데려가면서 꼽추의 괴물 같은 아이를 두고 간 거야. 이후 파케트는 딸을 찾으려고 미친 듯이 헤맸단다. 하지만 결국 딸을 찾지 못했어.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그 일이 일어난 지 16년이 지났는데, 여전이 딸을 잊지 못하고, 은둔하면서 지냈단다. 반 정도 정신이 나간 상태로 말이야. 그러다가 지나가는 이집트 집시들을 보면 욕을 해대고 그랬지. 파케트가 왜 이집트 젊은 집시 아가씨를 싫어하는지 알겠지? 그런데, 아무래도 파케트와 라 에스메랄다가 모녀 사이 같지? 파케트는 16년 전에 어린 딸을 잃고, 라 에스메랄다는 어렸을 때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다고 했잖아. 그들의 이야기는 2권에서 더 해주어야겠구나.

….

1권의 줄거리는 대충 여기까지란다. 앞서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가 여행가기 전에 이 책을 읽어서 시간이 꽤 지난 다음 이야기를 해 주려다 보니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 같구나. 메모를 조금씩 하긴 했는데, 중간중간 기억에 의존해서 적은 부분이 많아서, 아빠가 이야기해준 부분에 틀린 부분도 있을 것 같구나. 파리의 노트르담.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인지 알겠더구나. 아빠가 부지런을 떨어서 2권의 이야기도 조만간 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시테 섬과 대학과 장안으로 이루어진 삼중의 성내에서 모든 종들이 요란스럽게 울려 퍼지는 소리에 파리 사람들이 잠을 깬 지가 오늘로 꼭 348년하고도 여섯 달 열아흐레가 되었다.

책의 끝 문장: 가자, 우리 큰 용사님.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은 아직 오늘날에도 장엄하고 숭고한 건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늙어가면서도 아무리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최초의 돌을 놓은 샤를마뉴와 최후의 돌을 놓은 필리프오귀스트에 대한 경의를 저버리고, 세월과 인간들이 동시에 이 존경할 만한 건축물에 가한 무수한 풍화와 훼손 앞에서 한숨을 쉬지 않고 분개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 P203

그 꼭대기에 숨을 헐떡거리면서 도착하는 구경꾼에게 그것은 맨 먼저 눈부신 지붕과 굴뚝과 거리와 다리와 광장과 종루 들이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눈을 사로잡았다. 깎아지른 듯한 합각머리, 뾰족한 지붕, 성벽 모퉁이에 매달린 소탑, 11세기의 피라미드식 석조 건물, 15세기의 판암 오벨리스트, 아성의 꾸밈없는 둥근 탑, 성당의 장식 네모탑, 큰 것, 작은 것, 육중한 것, 경쾌한 것 등등. 눈길은 오랫동안 그 미궁 속에 깊이깊이 잠겨 드는데, 거기에는 저마다 제 나름의 독창성과 동기와 특성과 아름다움이 없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고, 전면에 물감 칠과 조각을 하고, 바깥으로 뼈대가 불거지고, 문이 반궁륭이고, 위층들이 앞으로 불쑥 나온, 작디작은 가옥에서부터 당시에는 탑이 즐비했던 장엄한 루브르 궁에 이르기까지, 예술에서 오지 않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 P229

그런데 현재의 파리는 아무런 공통성도 없다. 그것은 여러 시대의 견본들의 집합체인데,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사라져버렸다. 수도는 가옥들로만 커져가고 있거니와, 무슨 가옥들이 그 모양인가! 파리는 이대로 가다가는 오십 년마다 새로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파리의 건축물의 역사적 의의는 날마다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기념적인 대건축물들은 더욱더 드물어져가고, 집들 속에 잠겨서 차츰 삼켜져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선조는 돌의 파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 자손은 회반죽의 파리를 갖게 될 것이다. - P256

그 반면 연금술은 가지가지의 발견을 하였소. 다음과 같은 결과들에 나리는 이의를 내세우시렵니까? 1000년 동안 땅 아래 갇혀 있던 얼음은 바위 수정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납은 모든 금속들의 선조입니다. (왜냐하면 금은 금속이 아니고 빛이니까요.) 납은 각각 200년의 기간만 있으면 차례차례로 납의 상태에서 적비소(赤砒素)의 상태로, 적비소에서 주석으로, 주석에서 은으로 옮아 갑니다. 이러한 것들이 사실이 아닙니까? 그러나 <작은 열쇠>를 믿고, 충만한 선을 믿고, 별들을 믿는다는 것은, 옛중국 사람들과 더불어, 꾀꼬리가 두더지로 변하고, 밀알이 잉어과의 물고기로 변한다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이란 말입니다!" - P324

모든 문명은 신정(神政)으로 시작되고 민주주의로 끝난다. 통일성에 뒤이어 오는 이 자유의 법칙은 건축술에 쓰여 있다. 왜냐하면, 이 점은 강조해 두거니와, 벽돌 공사가, 신전을 건축하고 신화와 성직의 상징체계를 표현하고 그 돌의 책장들에 율법의 신비로운 일람표들을 상형문자로 옮겨 쓰는 데만 효력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인류 사회에는, 신성한 상징이 자유사상 아래 닳아 없어지고 인간이 성직자를 피하고 철학과 제도들의 부속물이 종교의 얼굴을 갉아먹는 시기가 오게 되므로, 건축술은 인간 정신의 이 새로운 상태를 재현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책장들은 표면은 가득 차 있되 이면은 텅 비어 있을 것이고, 그 작품은 온전하지 못할 것이고, 그 책은 불완전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 P337

그러므로 인쇄술이 발명된 때부터 얼마나 건축술이 시나브로 여위어가고 오그라져가고 발가벗겨져 가는지 보라. 물은 줄어들고 진(津)은 밭아 들고 시대와 국민의 생각은 건축술에서 물러가는 것을 사람들은 얼마나 절감하고 있는가! 냉각은 15세기에는 거의 지각할 수 없다. 인쇄술은 아직 너무도 허약하여, 고작 해봤자 강력한 건축술의 잉여생명력을 우려먹는다. 그러나 16세기부터는 건축술의 병이 눈에 보이고, 건축술은 이미 절대적으로 사회를 더 이상 표현하지 못하고, 비참하게도 고전 예술이 되고, 갈리아의 건축술, 유럽의 건축술, 토착의 건축술에서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술이 되고, 진정하고 근대적인 건축술에서 의(義)고대적 건축술이 된다. 이러한 쇠퇴를 사람들은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그러나 화려한 쇠퇴다.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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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혁명전사 김명시
안재성 지음 / 미디어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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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안재성이라는 작가가 있는데, 이 분은 우리나라 현대사 속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위인을 찾아 소개를 해주시곤 한단다. 아빠는 그 동안 안재성 님의 책을 세 권 읽었어. <이현상 평전>,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경성 트로이카> 세 권에서 다룬 인물들은 일제시대에 사회주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란다. 아직도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대해서 교과서에서 잘 실리지 않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면서는 알 수 없는 독립운동가들일 거야. 아빠가 이번에 읽은 안재성 님의 책은 <항일혁명전사 김명시>라는 책으로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김명시라는 분에 관한 이야기란다. 책 표시에 장총을 들고 한쪽 팔뚝에 부상을 입고 있는, 한 젊은 여자의 그림이 있단다. 그러니까 김명시라는 분은 여자 독립운동가인가 보구나. 장총을 들고 있는 모습에 어떤 삶을 사셨을지 궁금하구나. 영화 <암살>도 생각나고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도 생각나고

김명시라는 이름이 그리 낯설지 않은 것 같아서, 아빠가 읽은 책들 중에서 찾아보니 정운현 님의 <조선의 딸, 총을 들다>라는 책과 임경석 님의 <독립운동 열전>에서 김명시를 짧게 소개해 준 적이 있더구나. 하지만 김명시라는 분께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 이번에 읽은 <항일혁명전사 김명시>를 통해서 또 한 명의 멋진 여전사를 만나게 되었구나. 뜨거운 열정으로 삶을 불살랐던 김명시라는 분에 대해 이야기해볼게. 너희들이 공부와 숙제로 바쁘긴 하지만, 혹시 틈이 생기면 이 책을 한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구나.


1.

마산에서 태어난 김명시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혼자 오남매를 키우셨어. 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났을 때 김명시는 13살이었는데, 엄마와 함께 삼일운동에 동참했단다. 김명시의 엄마는 주동자로 몰려 4월 중순까지 감옥에 있다가 풀려났대. 김명시의 어머니도 대단한 분이시고, 그런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으신 것 같구나. 1925 4월에는 오빠 김형선과 함께 공산당에 가입을 했단다. 당시만 해서 공산주의는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새로운 사상이었어. 이후 스탈린의 공산당, 김일성의 공산당으로 변질되기 전의 공산당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관심을 갖고 있은 시절이었단다.

당시  소련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세계 여러 나라의 공산주의자들이 모스크바로 유학을 갈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20명이 모스크바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그 중에 김명시도 포함되어 있었단다. 조봉암의 아내 김조이도 김명시와 함께 모스크바에 갔단다. 김명시는 모스크바에 있는 동방노력자 공산대학이란 곳에서 공부를 했어. 그리고 그곳에서 권오채와 친해져 연인 관계가 되었단다.

김명시는 우수장학생으로 뽑혀 상해로 파견을 하게 되었어. 애인인 권오채는 모스크바에 남고, 혼자 상해로 가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것들이 있었어. 당시 상해는 너희들도 알다시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곳으로 독립운동의 본거지였고, 우리나라의 공산당원들도 활동을 많이 하는 곳이었단다. 상해에 도착한 김명시는 지령에 따라 조봉암과 찾아가 그와 함께 활동하였단다. 조봉암이라는 분도 독립운동을 하신 유명한 분인데, 그 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드는구나. 김명시는 모스크바에서 함께 공부했던 조봉암의 아내 김조이에 대한 안부를 전해주자, 조봉암을 다시 난감해 하면서 상해에서 다른 여자와 생활하고 있다고 했어. 그의 사생활이라고 뭐라 할 수 없었지만, 다소 실망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하지만 조봉암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신임이 두터운 사람이었어. 상해에 있으면서 오빠 김형선의 소식도 전해들 었단다. 광둥 지방에서 공산당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어.


2.

그런데 당시 중국 상황이 좋지 않았어.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고 있었지. 조선 공산당원들은 독립을 위해서는 그런 중국의 내전 상황이 달갑지 않았지만, 중국 공산당을 지원해주어야 했어. 모스크바에 있던 권오채도 중국공산당을 지원하기 위해서 중국으로 넘어왔고, 상해에 찾아와 김명시와 다시 만났단다. 1928년 코민테른에서 조선공산당 해체가 결정되었어. 조선공산당은 해체되고 중국 공산당에 합류할 것이 결정된 거지. 상해와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원들의 반발이 심했어. 우리나라가 나라로써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된 거니, 화가 났을 것 같구나. 김명시는 홍남표와 함께 만주지역에 가서 조선공산당 해체에 대해 당원에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반발이 커서 쉽지 않았단다. 이후 중국공산당에 합류하여 중국의 내전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비참한 인민의 삶을 직접 목격하였단다.

임무를 마치고 다시 상해로 돌아왔는데 슬픈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어. 연인인 권오채가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는 소식이었어. 무척 힘든 시간이었어. 김명시는 상해에 머무르면서 다른 공산당원들과 교류하였는데, 이때 교류했던 이들 중에 박헌영, 김단야, 주세죽, 고명자 등이 있었어. 이 분들은 아빠가 재미있게 읽은 조선희 님의 <세 여자>라는 책에 등장하는 분들이라 더 반갑더구나.

국내 공산당 재건을 위해 이상훈과 함께 국내 잠입을 하게 된단다. 7년만에 다시 온 조국이었어. 인천에 있는 성냥 공장에서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일을 맡았는데, 갑자기 다른 명령을 받고 이동하게 되었고, 이때 고명자를 만나게 되는데, 고명시가 말하길, 김명시의 국내 잠입을 일본에서 알게 되어 수배령이 내려졌다고 다시 상해로 도망가라고 했어. 오빠인 김형선도 수배령이 내려져서 함께 도망가라고 했어. 하지만 도망가는 중에 일본경찰에 붙잡혀 신의주형무소에서 갇히게 되었단다. 온갖 고문이 이어졌고 힘든 감옥살이였어. 무려 7년이나 감옥에 있다가 1939년에 출옥했단다. 오빠 김형선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중이었고, 엄마는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

….

멀리 소련에서는 스탈린의 독재와 횡포 소식이 전해졌는데, 김명시에게는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을 거야. 공산주의 사상이 그들에게 희망이었는데, 한 사람의 독재로 그렇게 변질되고 말았으니 말이야.


3.

감옥에서 나온 김명시는 조선의용대에 참여했어. 팔로군에서 옛 동료인 김무정이 김명시를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듣고 김명시는 팔로군으로 이동하여 김무정과 해후한단다. 다시 조선의용군의 지휘관 자격으로 활동하는 김명시.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같은 부대를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조금 다른 것 같구나. 조선의용대는 국민당이 지원했었고, 조선의용대의 화북지대 수속이 조선의용군으로 이름을 바꾸는데, 조선의용군은 공산당 지원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조선의용군의 총사령관은 김무정이 맡게 되는데, 김무정과 만난 이후 김명시는 이 조선의용군의 지휘관이 된 거야. 위 내용은 이 책에 나온 것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인데, 조선의용대와 조선의용군의 차이를 좀더 찾아봐야겠구나.

조선의용군의 지휘관이 된 김명시는 중국공산당과 함께 항일투쟁에 힘썼단다. 그들의 노력들이 커다란 독립운동 줄기에 보태져서 1945 8월 해방 소식을 듣게 되었어. 조국에 돌아온 김명시. 하지만 1948년 공산당 혐의로 체포되고 말았단다. 젊은 시절 내내 독립운동을 하고 해방된 조국에 돌아왔건만 기다리고 있던 것이 사상 검열에 의한 감옥행이라니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을까.

더 가슴 아픈 소식은 김명시가 얼마 후에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소식이었어. 당시 나이는 42살이었대. 이 자살 소식을 누가 믿겠니. 항일 투쟁에 젊음을 바친 여전사가 그깟 일로 자살을 하다니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자신의 체포의 부당함을 주장했을 텐데 말이야. 해방 후 우리나라의 역사는 더 아픈 역사로 가득 찬 것이 안타까울 뿐이로구나.

김명시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대부분 안 좋은 결말이었어. 오빠인 김형선도 감옥에서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출옥 후 얼마 안되어 병에 들어 죽었고, 동생 형윤은 광복 직전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들의 이런 노력을 후세의 사람들이 알아주어야 할 텐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22년에 김명시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고 하는구나. 그것이 모든 것을 보상해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행이구나. 우리들도 꼭 기억하자꾸나. 항일혁명전사 김명시.


PS,

책의 첫 문장: 썰매를 끄는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회색 짐승 서너 마리가 눈의 바다를 헤매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김명시 일가와 동지들이 그토록 원하던 해방이 되고 무려 77년이 지난 후였다.


김명시의 말에 늦잠을 자던 알료샤가 슬그머니 목을 빼고 바라보았다. 세 여자의 대화 속에 레닌이나 스탈린이란 단어만 나오면 잔뜩 긴장하던 알료샤였다. 하지만 고리키라는 이름이 나오면 슬며시 미소를 띠었다. 세 여자가 고리키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면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했다. 알료사뿐만이 아니었다. 혁명 소설가 고리키에 대한 러시아인의 특별한 사랑은 석류 알갱이처럼 붉고 투명한 연어알절임과 당근 빛깔이 나는 묽은 야채수프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인 것 같았다. 세 여자가 열차 식당칸에서 고리키 이야기를 하자 주변의 러시아인들도 알아듣고는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소련은 역시 레닌의 나라였다. 관공서 어디를 가도 1년 전에 사망한 레닌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 P11

"내가 보기엔 당신네 공산당도 오십보백보요. 나는 사서삼경도 못 읽는 촌부이지만 당신네들이 자유시에서 조선인 독립군을 수천 명이나 학살했다는 얘기를 들었소. 당신네들은 이번에 중국인 지주들을 때려죽이자는데, 아니 지금 우리가 못사는 게 정녕 그 사람들 때문이란 말이오? 오히려 반대가 아니오? 그 사람들 아니면 우리는 벌써 첫해에 굶어 죽었을 거요. 일본 놈들을 물리치자는 말까지는 알아듣겠지만 그 이상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소이다. 나는 자기네가 권력을 잡으면 다 될 것같이 떠드는 사람들 하나도 못 믿겠소이다. 어느 놈 할 것 없이 백성의 고통을 팔아서 권세를 누리려는 것뿐이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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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수학책 - 그림으로 이해하는 일상 속 수학 개념들
벤 올린 지음, 김성훈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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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연히 인터넷 서점에서 <더 이상한 수학책>이란 책을 알게 되었단다. 미적분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는 책 같았어. 예전에 읽은 <친절한 과학책> 같은 류의 책 같았어. 재미있는 그림과 함께 미적분을 설명을 해주는 책. 이제 몇 년 후면 너희들도 미적분을 배우게 될 텐데, 미적분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책을 구매했단다. 알아보니 <더 이상한 수학책><이상한 수학책>의 후속편이더구나. 그래서 <이상한 수학책>도 구매를 해서 순서대로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이상한 수학책>을 먼저 읽었단다.

읽은 지는 꽤 되었는데, 우리가 여행을 다녀와서 이제서야 너희들에게 책 이야기를 하는구나. 책 읽은 지 며칠만 지나도 기억이 잘 나는데, 한 달이나 지나서 이야기하려니 ㅠㅠ  기대했던 것 만큼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은 짧게 마쳐야겠구나. 여행으로 인해 밀린 독서 편지가 어마어마하구나.

<이상한 수학책>의 지은이는 벤 올린이라는 사람인데, 수학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고, 여러 매체에 수학과 교육 관련 글을 쓰기도 한대, 학교에서도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대. 이런 경력으로 자신이 쓴 글들과 경험을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이상한 수학책>인 것 같구나. 책의 시작은 수학과 수학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어. 별로 공감이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문가의 이야기이니까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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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6)

하지만 수학은 적어도 한 가지 측면에서는 일반적인 언어라 할 수 있다.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 수학자들은 대부분의 독자에게 익숙한 전략을 채용한다. 바로 심상 만들기다. 수학자들은 머리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써 본다.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기술적 세부 사항들은 그냥 넘어간다. 그리고 자신이 읽고 있는 내용과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연결해 본다. 그러고 나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수학자들은 읽을거리에 감정을 이입하고 그곳에서 즐거움, 유머, 결벽증 같은 불편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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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학의 분야는 꽤 많은 편이란다. 너희들 수학 교과서의 차례만 봐도 꽤 되잖니. 이 책에서 다룬 수학의 분야는 기하학, 확률, 통계 이렇게 세 분야란다. 기하학, 확률, 통계에 관해서 이야기해준 이유는 이 분야들이 우리 일상 생활과 꽤 밀접한 분야이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런데 감탄사를 내뱉을 만한, 그런 내용들이 없어서 좀 아쉬웠단다. 마지막 장에서는 수학과 역사의 관련성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지은이는 수학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이지만 사회문제나 역사 관련된 부분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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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역사는 작은 규모에서는 단순하지만 큰 규모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인생 게임과 비슷한 방식으로 카오스적일까? 아니면 하루 단위의 작은 규모에서는 거칠게 요동치지만 장기적으로 평균하면 기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날씨와 비슷한 방식으로 카오스적일까? 아니면 역사는 코흐 곡선과 비슷해서 모든 수준에서 카오스가 등장하고 모든 규모에서 복잡성이 드러날까? 머릿속에서 이런 비유들이 서로 경쟁을 벌인다. 마치 한 화면에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 파일 세 개가 동시에 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가끔은 내가 금방이라도 세상을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뉴스를 보면 세상은 어느새 파악할 수 없는 이상한 모양으로 또다시 바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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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지만, 읽은 지도 오래되었고 크게 감동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은 아주 짧게 독서 편지를 마치련다. 원래 너희들에게 미적분을 설명해주려고 구입했던 <더 이상한 수학책>도 조만간 읽어야할텐데, 그 책은 좀 더 재미있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이 책은 수학에 관한 책이다.

책의 끝 문장: 하지만 뉴스를 보면 세상은 어느새 파악할 수 없는 이상한 모양으로 또다시 바뀌어 있다.


어째서 수학은 삶의 모든 측면에서 토대를 이루고 있을까? 수학은 어떻게 동전과 유전자, 주사위와 주식, 책과 야구 등 서로 상관없는 영역을 연결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수학이 생각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때 도움이 된다. - P8

비안네가 드무아브르의 정리를 나보다 더 잘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비안네는 자신을 지식을 명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었던 만면 나의 통찰은 두꺼운 머리뼈 안에 갇혀 어눌한 혓바닥을 통해 빠져나오지 못했다.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할 능력이 없는 수학자는 그날의 나처럼 자기 생각 속에 섬처럼 혼자 고립되어 남에게 닿지 못하는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반면 자신이 아는 진리를 공유할 수 있는 수학자는 사람들에게서 감사의 마음과 영웅 대접을 받는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 P68

몸집이 큰 동물은 내부 비중이 높기 때문에 체온을 유지하기가 쉽다. 반면 작은 동물은 표면 비중이 높아서 체온을 유지하기가 만만치 않다. 손가락, 발가락, 귀 등 표면 비중이 높은 사지 말단이 추위에 제일 약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추운 지역에 북극곰, 물개, 야크(티베트산 들소-옮긴이), 무스(북미산 큰 사슴-옮긴이), 전설 속 설인 새스쿼치 같은 대형 포유류만 사는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표면 비중이 높은 생쥐가 북극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심지어 중위도 지역에 사는 생쥐도 열 손실을 감당하려면 하루에 자기 체중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먹이를 먹어야 한다. - P121

과학은 결과 절대적 확실성이나 슈퍼맨 같은 완벽함으로 정의되었던 적이 없다. 과학에서는 언제나 건강한 회의주의 시각에서 모든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 가능 중요했다. 이런 싸움에서 통계학은 없어서는 안 될 동맹이다. 통계학이 과학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데 한몫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데 한몫하리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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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7 - 르네상스의 완성과 종교개혁 : 미술의 시대가 열리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7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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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양정무 님의 난처한 미술이야기 시리즈 7권을 읽었단다. 5권부터 이어지는 르네상스 시리즈의 마지막이라고 했어. 르네상스 이야기보다 보니 주로 이탈리아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데, 7권에서는 로마와 피렌체와 베네치아가 주로 이야기되었고, 북유럽과 종교개혁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단다. 이 책을 읽을 즈음에 우리가 로마, 피렌체 여행 계획을 하고 있어서 그거에 맞춰 읽고 가기 전에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는데, 아빠가 게을러서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야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구나. 여행 중에 책에서 본 작품들을 많이 봤는데, 책의 내용이 잘 기억나질 않아서 너희들에게 설명을 못 해준 것이 안타깝더구나. 이 놈의 저질 기억력.

로마는 고대 로마 이후 오랫동안 세계의 수도라 불리며 이어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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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

그렇죠. 로마가 세계사에 끼친 영향이 대단하기 때문에 로마를 지칭하는 말도 다양합니다. 일례로 로마를 카푸트 문디라고도 부릅니다. 라틴어로 세계의 머리, 세계의 수도란 뜻이지요. 지금은 파리나 런던, 워싱턴 같이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는 도시가 많습니다만, 여전히 세계 수도의 원조는 로마일 것입니다. 오늘날 이탈리아 수도인 로마는 고대 로마제국의 수도였고, 로마제국 멸망 후에는 기독교 세계의 중심지로 그 수도의 역사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로마라는 도시는 역사에 등장한 다음부터 지금까지 세계사의 무대에서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습니다. 과거에도 위대했고, 지금도 위대하고, 앞으로도 위대할 도시를 손꼽으라면 그중 하나가 바로 로마일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터널 시티(eternal city), 즉 영원한 도시라는 별칭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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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로마가 14세기에는 암흑기를 겪게 돼. 쓰레기와 폐허의 도시로 불렸고, 인구도 2만도 안되었대. 당시 피렌체는 인구가 10만이라고 했으니 로마를 암흑기라고 할 만했지. 로마에 머물고 있던 교황도 이때는 로마에 안 있고, 프랑스 아비뇽에 있다고 하는구나. 15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다시 로마로 왔대. 그리고 15세기 후반부터 변화의 물결이 일어났고, 16세기에는 최첨단 도시로 탈바꿈했다고 하는구나.  당시 교황이었던 율리오 2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다시 지었다는데, 공사 기간이 본당은 1506년부터 1626년까지 120년이나 걸렸고, 광장을 정비하는데 50년이 더 걸렸다고 하는구나.

당시 교황 선출에 있어 영향력 있는 집안들의 알력 다툼도 있었는데, 그렇다 보니 영향력이 셌던 메디치 가문에서 많은 교황을 배출했다고 하는구나. 16세기에만 메디치 가문에서 3명의 교황을 배출했대. 교황이 바뀔 때마다 건축 붐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그로 인대 로마가 더욱 발전한 거 같구나.

16세기 유럽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다고들 한단다. 교황과 황제. 여기서 황제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란다. 당시 양쪽의 권력이 엇비슷하여 교회 성직자의 인사권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했대. 황제 가문 중 유명한 가문은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15세기부터 300년 넘게 황제를 했다는구나. 합스부르크는 친족 결혼을 많이 해서 유전병이 발생했고, 심한 주걱턱으로 유명한 가문이었단다.  

합스부르크 출신 황제 중에 유명한 사람으로 카를 5세가 있었단다. 넓은 영지를 물려받아 막강한 힘을 갖게 되었어. 역시 땅이 힘이구나. 그렇게 막강한 힘을 갖게 되자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와 갈등을 빚다가 결국 전쟁까지 벌여졌어. 그런데 당시 동쪽에서 오스만이 진격하고 있던 때라서, 교황 바오로 3세가 화해시켜서 일단 갈등은 봉합되었단다. 로마가 발전하고 사람들도 모이다 보니 인문주의도 등장하였어. 특히 15세기 보급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많은 사람들이 책을 볼 수 있게 하는 책의 시대가 되었어. 이는 곧 지식혁명이라 할 수 있었지.


1.

당시 영향력이 많았던 메디치 가문은 신플라톤주의를 받아들였어. 신플라톤주의에서는 아름다움이란 완벽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생명력이 있냐를 기준으로 삼았대. 그래서 미술작품도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런 작품의 대가가 다름 아닌 미켈란젤로였단다. 미켈란젤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화가란다. 그가 남긴 조각의 정의는 많은 사람들이 인용한단다. 너희들도 이미 들어봤을 지도 모르지만, 다시 한번 읽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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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2)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돌에서 생명을 끌어냈습니다.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지만요. 플로티노스의 사상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맥락에서 미켈란젤로의 회화나 조각상을 바라볼 수 있어요. 미켈란젤로가 남긴 말 중에 나는 대리석 안에 천사를 봤고 그 천사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깎아 낸다.”라는 말이 유명한데요. 돌 안에 이미 형상이 깃들어 있고, 그 형상을 덮는 돌을 제거하는 작업이 조각이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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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는 피렌체 출신이었는데 활동은 주로 로마에서 했단다. 그는 건축에서 큰 재능이 있었는데,

그의 건축물들로 이루어진 교황의 길이라는 곳이 있다는구나. 라테라오 대성당부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까지 이어지는 길이야. 중간에 콜로세움, 포로로마노, 카피톨리노 언덕도 있대. 그야말로 로마의 하이라이트로구나. 미켈란젤로는 칼피톨리노 광장과 주변 건물을 설계했대. 성 베드로 대성당에 참여한 건축가 중에 한 명이라고 하는구나. 그곳에 있는 작품 중에는 <피에타>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는데 이것을 미켈란젤로 24살에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 여행 다녀온 지 얼마 안되어서 너희들도 익숙하지?^^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이것이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인가, 싶어 미켈란젤로는 어쩌면 외계인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로마에서 활동하던 미켈란젤로는 피렌체 정부의 요청으로 잠시 피렌체에 돌아와 작품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 유명한 다비드 상이란다.  그 높이가 5.17미터나 되는데, 정말 살아 있는 것 같은 작품이란다. 시뇨리아 광장에 서 있던 다비드 상 기억나지?

다시 교황 율리오 2세의 요청으로 로마에 온 미켈란젤로. 율리오 2세 무덤 프로젝트를 시작했단다. 하지만 얼마 못가 중단되었어. 왜냐하면 더 큰 프로젝트가 있었기 때문이야. 성 베드로 대성당을 다시 짓기로 한 거야. 먼저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맡게 되었단다. 그 크기는 13.2x41.2미터라고 하니 그 크기가 엄청난데, 거기에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도대체 어떤 그림을 그려 채운단 말이야. 그런데 천장에 그려야 한다고 하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할 수 있었겠니.. 미켈란젤로는 처음에는 사양했대. 자신은 화가가 아니고 조각가라고 했거든.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그 전에도 그림을 그리긴 했었대. 1504년 피렌체 팔라초 베키오라는 곳에서 미켈로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각각 한쪽 벽면씩 맡아서 벽화를 그리는 일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각자 다른 프로젝트가 생겨 중단되었대. , 그 프로젝트가 중단되지 않았다면, 엄청난 작품이 나왔을 텐데, 아쉽구나.

다행히 미켈란젤로는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아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성경 이야기를 구성하여 천장화를 그렸단다. 이 천장화에 유명한 그림이 많은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그림이 <아담의 창조>가 아닐까 싶구나. 이것도 기억 나지?^^ 당시 벽화를 그릴 때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했는데, 이것 또한 쉽지 않은 기법으로 많은 시간을 요하는 기법이래. 그건 그렇고 천장에 그림을 그렇게 오랫동안 많이 그리면 목이 남아나지 않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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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완벽주의자는 고독한 법이지요. 미켈란젤로는 이 벽화를 프레스코 작업 기업으로 그려야 해서 더 어려워했어요. 벽에 석회 반죽을 바르고 스케치를 한 후, 밑그림이 마르기 전에 재빨리 채색해야 했거든요. 프레스코(fresco)는 이탈리아어로 신선하다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석회 반죽이 마르기 전, 벽이 신선할 때 그려야 하는 일이라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이지요. 미켈란젤로도 제작 초기에는 프레스코화 기법에 익숙하지 않아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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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에게도 경쟁자가 있었으니, 라파엘로였단다. 바티칸 박물관의 정문 위에는 두 사람의 조각상이 있는데, 하나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고, 하나는 라파엘로의 조각상이란다. 안타까운 것은 라파엘로는 1483년생인데 37살에서 요절을 했단다. 그에 반해 미켈란젤로는 1475년에 태어나 거의 90세까지 살았대.(1564년 사망) 라파엘로는 우르비노라는 곳의 출신이니 피렌체 출신의 미켈란젤로보다는 출신은 좋지 않았단다. 하지만 실력 하나로 주류가 되었어. 교황집무실의 벽화를 그렸대. 교황의 신임을 얻은 건축가 중에 브라만테가 있었는데, 브라만테가 라파엘로와 동향이라서 라파엘로가 그 일을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실력은 뛰어났단다. 참고로 브라만테가 만든 건축물 중에 유명한 것은 우리도 본 바티칸 시국의 코르틸레 델 벨베데레라는 벨데데레 정원이라고 하는구나.

다시 라파엘로 이야기를 하면 그는 1504년부터 1508년까지 피렌체 유학을 가게 되는데, 이때 실력이 급상승했다고 했어. 이 시기가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활약하던 시기라고 하니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그것을 자신의 실력으로 승화시킨 것일 거야. 라파엘로가 그린 교황 집무실의 벽화 중에 유명한 작품으로는 <아테네 학당>이 있었지.

당시 고대 건축의 영향도 많이 받았는데, 콜레세움의 아치도 영향을 많이 받아서, 팔라초에 아치 형태가 많이 들어갔다고 하는구나. 팔라토는 유력 가문의 저택으로 궁궐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하는구나.


2.

북유럽과 종교개혁에 관한 이야기는 미안한데 건너뛰어야겠구나.

바로 피렌체로 넘어갈게. 피렌체라고 하면 아빠는 오래 전에 읽은 <열정과 냉정 사이>라는 소설이 떠오르는구나. 많은 인기를 끌어 영화까지 제작되었지만, 아빠의 취향은 아니었어. 아무튼 그 소설의 주요 배경이 피렌체였단다. 특히 두오모 대성당. 정식 명칭은 피렌체 대성당이란다. 피렌체 대성당에 대한 이야기는 난처한 미술 이야기 시리즈 5권 이야기하면서 해 준 것 같구나.

이번 책에서는 16세기의 피렌체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피렌체의 강력한 가문인 메디치 가문. 그들이 백성들에게 잘 대해주지는 않았나 보구나. 그들은 백성들에게 쫓겨난 적이 있는데, 그 일을 기념하여 시민들에 의해 추진하여 만든 것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다비스 상이라고 하는구나.(1504) 메디치 가문이 다시 피렌체를 점령하고 다비드 상에 대항마로 만든 것이 반디넬리의 헤라클라스 상이라고 하는구나. (1534) 헤라클라스는 근육도 더 크고 무섭게 만들었는데, 메디치 가문이 가문의 힘을 작품에 표현하려고 해서 그렇다는구나. 두 조각상은 모두 시뇨리아 광장에 있다고 해서 우리가 시뇨리아 광장에 도착했을 때, 아빠는 두 동상부터 먼저 찾아보았단다.

르네상스 후기에는 하이 르네상스라고 해서, 고대 로마 작품을 비판하는 기류가 있었대. 그러면서 고대 로마 작품을 리모델링하는 만행도 했대. 하이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시대로 넘어가기 전인 1520년부터 1600년 정도까지를 매너리즘의 시대라고 한다고 한대. 후기 르네상스라고도 하고피렌체의 대공 중에 코지모 1세라는 유명한 사람이 있었어. 그가 아내를 위해 지은 피티 궁전이 있는데, 그 크기를 보면 아내를 엄청 사랑한 것 같구나. 그리고 코지모 1세가 출퇴근하는 길을 회랑으로 만들었는데, 그 회랑을 바사리 회랑이라고 하는데 아직 그 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가 함께 갔었던 베키오 다리의 그 길이 바로 바사리 회랑의 한 구간이었단다.

….

마지막으로 베네치아의 이야기도 했는데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화가인 티치아노와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건축가인 팔라디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면서 마무리를 했단다.

….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이 책을 읽고 직접 그곳에 가서 작품들을 보았더니 감회가 새롭더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비록 아빠의 저질 기억력으로 많이 안 보였지만) 작품들도 새롭게 보였단다. 여행 다녀온 지도 꽤 지났는데, 아직 그 작품들을 보았을 때의 감동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 작품들이 괜히 명작이 아닌가 싶다. 기회가 되면 또 가고 싶지만

,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이번 강의는 로마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책의 끝 문장: 바로크 미술과 문명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의 장에서 이어지게 될 겁니다.


율리오 2세는 로마를 기독교의 심장이자 동시에 강력한 정치권력의 중심지로 만들고 싶어 했죠. 건축은 교황의 막강한 권위를 보여주기에 더없이 적절한 수단이었고 성베드로 대성당을 새롭게 짓는 일은 로마를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프로젝트에 정점을 찍을 만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성 베드로 대성당의 신축은 단기간에 끝나는 공사가 아니었습니다. 본당만 해도 1506년에 시작해 1626년까지 120년이 걸렸고 대성당 앞쪽의 광장을 정비하는 데만 또다시 50년이 걸렸습니다. - P32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가 죽은 지 한참 후에도 라파엘로를 견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일흔 살 가까운 나이에 수십 년 전 과거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쓰기도 했어요.
"교황 율리오 2세와 나 미켈란젤로 사이에 있었던 모든 불화는 라파엘로와 브라만테의 질투 때문이었다. 나를 파멸시키기 위해 이들은 교황을 속여 무덤을 세우는 계획을 중지하도록 시켰다. 라파엘로도 충분히 이런 일을 꾸몄을 것이다. 라파엘로가 미술에서 이룬 모든 것은 바로 나한테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 P143

라파엘로의 묘비명에도 "이제 그가 죽었으니 그와 함께 자연 또한 죽을까 두려워 하노라"라고 남겨져 있으니까요. 이건 교환청에서 일하던 당대의 인문주의자 피에트로 벰보가 쓴 글입니다. 자연이 라파엘로와 함께 죽었다는 말은 좀 과장처럼 들리지만 적어도 화려했던 로마 르네상스의 전성기, 하이 르네상스는 라파엘로의 죽음과 함께 서서히 눈을 감습니다. - P195

미켈란젤로는 1546년부터 그가 죽은 해인 1564년까지 18년 동안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에 매달리게 됩니다. 150년 동안 이어진 성베드로 대성당 건축 기간 중 미켈란젤로가 맡은 18년은 어떻게 보면 미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은 최초에 브라만테가 설계했고, 최종적으로는 카를로 마데르노가 완성했지만, 가장 중요한 뼤대를 만든 사람이 미켈란젤로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크게 보면 이 대성당이 미켈란젤로의 성당이라는 데 동의한다는 말입니다. - P365

이 건물은 처음부터 미술관은 아니었습니다. 우피치라는 단어가 이탈리아 말로 ‘오피스’란 뜻인데요. 코지모 1세는 사실 관공서를 지으려 했기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겁니다. 팔라초 베키오 옆에 자신이 업무를 보는 공간을 별도로 만들려고 한 것이죠. 새로운 오피스는 3층짜리 건물인데 2층에는 사무공간이, 3층에는 긴 화랑이 있습니다. 이 회랑에 메디치 가문이 소장한 미술품을 전시했어요. - P417

확실히 그런 점도 있다고 봐요. 그런데 이 매너리즘이라는 용어는 대단히 논쟁적이기도 해요. 일부 학자들은 이 시대를 특징지을 때 적극적으로 매너리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반대하는 이들도 있거든요. 소위 매너리즘 양식의 미술이 베네치아 등 다른 곳에서는 피렌체만큼 적극적으로 나타나지 않았기에 매너리즘을 한 시대를 규정짓는 양식으로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보는 학자고 많아요. - P422

그런데 이 시기 피렌체의 매너리즘 미술을 논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피렌체가 공화제에서 군주제로 급속히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런 작품들이 나왔다는 점입니다. 물론 메디치 가문은 15세기에도 피렌체에서 독주했다고 하지만 정치적으로 여전히 공화제 체제하에 있었습니다. 피렌체 시민과 메디치 가문 사이에서 일종의 힘의 균형이 있었던 거죠. 그러나 16세기에는 피렌체의 지배권이 메디치 가문에게 완전히 넘어가 버립니다. 피렌체는 결국 공작의 지배를 받는 공국이 되면서 1인 절대 지배 체제로 전환됐고 미술도 변화했죠.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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