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숲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천선란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천선란 님의 신간이 나오면 문자가 온단다. 이번에 읽은 <이끼숲>이라는 책은 그렇게 알게 되어 읽은 책이란다. 아빠가 좋아하는 SF 소설은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SF 소설인데, 천선란 님의 소설들이 그런 아빠의 취향에 딱 맞는 것 같단다. 그리고 Jiny도 천선란 님의 책을 읽곤 하니까 같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출간 문자를 보자마자 구매했단다.

이번 책은 <바다눈>, <우주늪>, <이끼숲> 이렇게 3편이 실려 있는데, 독립적인 소설이 아니라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 연작소설이란다. 아빠는 이런 소설 구성을 좋아한단다. A라는 작품에서는 까메오나 단역으로 나왔던 인물이 B라는 작품에서는 주인공으로 나오는 구성 말이야. , 그럼 이야기를 해볼게.


1.

먼저 <바다눈>이라는 작품을 이야기 볼게. 먼저 이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세상을 이야기해주어야겠구나.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지하 세계를 구축해서 살고 있단다. 왜 지하 세계에서만 살고 있는지는 소설의 뒷부분에 나오니 그때 자세히 이야기해주겠지만, 대략 왜 그런지는 추측해 볼 수 있겠구나. 대기는 점점 오염되고 이상기후로 인해 지구의 온도는 점점 올라가서, 지상에서는 살 수 있게 되어서 지하에 살고 있을 것 같구나.

<바다눈>의 주인공 마르코는 15살로 제작실 경비를 서고 있단다. 마르코의 친구들로는 소마, 유오, 톨가, 의주 등이 있단다. 경비를 서던 마르코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감미로운 목소리에 끌려 갔는데, 그곳에는 은희라는 동갑내기 경비원이 있었어. 그 이후 마르코와 은희는 친하게 되었단다. 마르코는 은희에게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더니 은희는 마르코를 지하 깊이 위치하고 있는 재즈바에 데리고 가서 그곳에서 노래를 불러 주었단다. 은희는 그곳에서 이미 유명했었어.

마르코가 따르는 선배 커커스가 있는데, 커커스를 비롯하여 많은 동료들이 임금인상을 위한 파업을 했어. 마르코는 입사한 지 얼마 안되어 동참하지 않았고, 파업한 이들을 대신하여 대리 근무를 하게 되었단다. 은희는 집안일로 결근을 하였고, 마르코는 은희의 집을 찾아갔단다. 은희는 외진 곳에서 좋지 않은 집안 환경이었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었어. , 가슴 아픔 이야기인데,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지은이의 경험에서 소재를 따 온 것 같구나. 지은이 천선란 님의 어머니는 많지 않은 나이에 치매에 걸려서 고생하시고 계시거든. 치매라는 것이 완치는 없다고 하는데, 부디 진행이 아주 천천히 되길

금방 끝날 것은 파업은 길어지면서 4개월간 이어졌고, 커커스는 마르코에 동참해줄 것을 부탁해서, 마르크도 고민 끝에 서명을 했단다. 하지만 그들의 파업은 실패를 했어. 그래도 회사가 내년에는 임금을 인상해준다고 약속을 했으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도 되려나. 긴 파업 투쟁 동안 커커스는 그만 건강을 잃고 말았고 어디론가 사라졌어.

그 해 마지막 날, 회사의 부도 소식이 전해졌어. 그리고 다른 회사가 인수를 한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약속했던 내년도 임금 인상은 사라졌지. 새로 인수한 회사는 그런 약속을 지킬 의무가 없다면서, 이런 개 뼈다귀 같은 소리가 있니. 부도가 난 것도 거짓일 수 있어. 임금 인상을 해주기 싫어서 회사 명의만 지인이나 친척에 넘길 것일 수도어느 곳에나 직원들을 하나의 부속품처럼 보는 회사의 본능은 똑같구나.

그 해 마지막 날 마르코는 다시 은희의 집을 찾았단다. 하지만 은희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계속 찾아갔지만 나타나지 않았단다. 마르코와 은희가 애틋한 정을 쌓아가던 소설의 초반부를 제외하고는 우울하고 암울함으로 가득 찬 이야기였단다. 어쩌면 우리가 맞닥뜨릴 미래의 모습이 아닌가 싶구나.


2.

두 번째 소설은 <우주늪>이라는 소설이란다. 의주와 의조는 쌍둥이란다. 의주는 앞선 소설 <바다눈>에서도 마르코의 친구로 잠시 등장했단다. <우주늪>의 주인공은 의주의 쌍둥이 동생 의조였단다. 미래에서는 계획에 없는 사람들은 사회 생활이 허락되지 않는 세상이었단다. 지하 세계에서 살아가도 보니 사람수에도 제한을 두고, 신고 받은 사람만이 칩을 받고 머리에 그 칩을 심어야 했단다. 그 칩이 없는 사람은 제거당할 수도 있었어. 의주와 의조를 임신했을 때 쌍둥이였던 것을 몰랐던 부모님은 한 명만 신고를 했고, 칩도 하나만 받게 되었단다. 나중에 쌍둥이인 것을 알게 되고 칩을 하나 더 받으면 좋았겠지만, 그곳 세계에서는 그런 것이 용납되지 않는 콱 막힌 사회였던 것 같았어.

부모님은 결국 부모님들의 가위바위보를 해서 칩을 넣을 아이를 결정했고, 그렇게 의주의 머릿속에 칩을 넣었단다. 이 세상을 살아가지 못할 의조를 부모님은 죽여야 했지만, 자기 자식을 죽일 수 있는 강심장을 가진 이가 얼마나 되겠니. 부모님은 의조를 집안에서만 키우기로 했단다. 집에서만 지내는 어린 시절 의조는 어느날 집 밖으로 나갔다가 이를 알게 된 아버지가 혼비백산이 되어 의조를 데리고 온 적이 있었단다. 다행히 칩 센서가 설치된 곳까지 안 갔고, 의조를 알아챈 사람들도 없었어. 그 이후 의조는 계속 방안에서는 지냈고, 의조는 자기 대신 선택되어 바깥 생활을 하는 의주를 미워하기도 했단다.

의조는 어느날 도시의 환풍구를 위한 배관 통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배관통로를 통해 도시 곳곳을 다니게 되었단다. 주로 의주가 다니는 곳을 돌아다녔어. 가끔 창살 밖 세상을 쳐다보기도 했는데, 그때 창살 밖 어떤 사람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어. 나중에 둘은 대화도 나누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치유키로 의주의 친구 중에 한 명이었어. 치유키는 의조를 알게 된 사실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어. 둘은 호감을 갖게 되었지만, 등록이 안된 의조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지.

의조는 배관통로를 다니다가 벽에 이곳은 위험하니 가지 말 것이라는 내용의 낙서를 했어. 이건 자신을 위한 낙서였단다. 그런데 어느날 그 낙서에 답변이 달려 있는 것을 보았단다. 그러니까 배관통로를 은밀히 다니는 존재가 의조 혼자만은 아니라는 것이지. 의조에게는 꿈이 있단다. 치유키가 알려준 폭탄이 가득 들어 있는 방을 찾는 거야. 그리고 그 폭탄을 이용해서 이 도시를 날려버리는 것…. 의조는 그 꿈을 위해 오늘도 배관통로를 산책하고 있단다. 의조 같은 삶이라면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까. 자신을 그렇게 만든 그 세상을 없애고 싶어하는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가는구나.


3.

세 번째 마지막 이야기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끼숲>이란다. 마르코의 친구 소마는 통신국에서 일하는데 며칠 째 회사에 안 오고 있었어. 소마가 그렇게 집에만 있는 이유가 있었어. 얼마 전에 친구 유오가 죽었기 때문인데, 유오가 죽은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 때문이었어. 유오가 하는 일은 건축 관련 일인데, 그 일이 좀 위험한 일이었단다. 유오처럼 위험한 일을 하는 경우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클론을 만들어 놓는단다. 그 클론이라는 중상을 입을 경우를 대비한 것인데, 이번처럼 죽었을 경우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단다. 유오처럼 클론의 주인이 죽은 경우는 더 이상 클론이 필요가 없어지게 되어 클론을 폐기하게 되는데, 유오의 클론도 폐기하기로 결정되었고, 그 소식을 마르코가 소마에게 전해주러 왔단다.

마르코는 소마에게 유오의 클론을 막아야 하지 않냐고 이야기를 했고, 소마도 그 생각에 동의했단다. 유오가 죽기 전 꿈이 있었는데, 마르코와 소마는 유오의 꿈을 유오의 클론으로 이루어 주자고 했어. 유오의 꿈은 지상 세계에 있는 숲에 가는 것이었단다. 유오의 클론이 비록 유오의 기억까지 갖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야. 마르코와 소마의 친구들인 의주, 톨가, 치유키 등도 그들을 도왔단다.

<이끼숲>에 왜 그들이 지하 세계에서 생활하게 되었는지 이야기가 나온단다. 지구온난화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정책으로 광합성을 잘하게 하려고 오래된 나무를 뽑고 그 자리를 어린 나무로 심는 정책이 있었어.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정책이었던 것 같은데 이건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정책이란다. 소설에서는 그렇게 심은 어린 나무들에 전염병이 생겼고, 전염병의 속도가 빠르다 보니 오히려 산불로 전염병의 경로를 차단하자고 했는데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악영향만 주어 산불과 나무의 전염병으로 황폐화되었고, 더 이상 지상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어 지하 세계를 건설하고 그곳에서 생활했던 것이란다.

이 지하 세계의 꼭대기는 숲으로 이루어진 돔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실제로 그곳까지 가 본 사람은 드물었단다. 소마와 마르코의 친구들과 함께 유오의 클론을 빼왔고 소마가 유오의 클론을 업고 돔까지 도착했단다. 돔에는 지하세계의 통치자가 있었는데 소마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어. 그 통치자는 마치 소마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어. 돔에는 소문과 달리 숲이 없었고, 말라 비틀어진 나무들만 있었단다. 그곳도 이미 죽음만 가득한 공간이었단다. 통치자는 소마가 돔 밖에 나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걸 막지 않겠다고 했어. 그 또한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보였단다. 소마는 유오의 클론을 업고 돔 밖으로 나갔어.

거대한 녹색 벽이 보였단다. 소마는 무작정 그 벽을 향해 갔단다. 벽 근처에 가니 그 벽의 정체가 드러났단다. 거대한 숲의 시작이었어. 그곳까지 유오의 클론을 업고 온 소마는 지쳤고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단다. 잠에서 깬 소마, 그곳에서는 깨어난 유오의 클론이 있었어. 그런데 그 클론이 유오의 기억마저 갖고 있었단다. 그렇게 유오의 꿈은 완성되었단다.

올 여름은 엘리뇨 때문에 경함하지 못한 엄청난 장마를 겪고 있단다. 그와 함께 무더위도 함께 찾아왔는데,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겠지. 그 뿐만 아니라 얼마전에 지구의 평균 기온을 연일 경신하고 있어. 기후 위기는 이제 미래가 아니고 현실이란다. 이 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지구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될 거야. 어쩌면 이 소설처럼 지하 세계를 건설해야 할 수도 있어. 그런 지하 세계에서라도 생활할 수 있으면 다행일 수도이런 비극적인 미래를 막기 위해서 모든 인류들이 노력을 해야겠지만, 이미 편안함에 익숙한 사람들이 할 수 있을는지

정말 걱정이구나.


PS:

책의 첫 문장: 노래가 들려온 건 제작실 서문 쪽에 있는 반 층짜리 계단 아래였다.

책의 끝 문장: 절대로.

"너 그 사람의 목소리에 흠뻑 빠졌구나! 그 목소리를 사랑하는 거야. 상대방이 가진 만 가지의 특징 중에서 단 하나의 특징이 마음에 쏙 들어오면, 사랑이 시작되는 거 같아. 나는 그 형이 문장 끝에 마침표를 잘 찍는 게 그렇게 좋았어. 다른 사람들은 그 말투가 딱딱해서 정이 안 간다고 하던데, 나는 자기 생각이 확고한 사람 같아서 좋았거든." - P40

"인간 복제는 인간의 한계 같아. 그 한 사람을 온전히 살릴 수 있다면 아무도 인간 복제 따위는 하지 않으려 할걸. 인간은 영생에 실패했고, 뇌 정복에 실패했어. 전부 다 실패했어. 고작 똑 같은 인간 만들고 땅이나 파고 있다니. 최악의 진화 아니니? 이런 세상인 줄 알았으면 태어나지 않았을 건데. 너는?" - P69

어떤 것도 안 됐을 거야. 지상이 황무지라고 하더라도 어쩌다 남은 들꽃 한 송이에 그 애는 모든 가진 듯 행복해했겠지. 세계를 지배한 절망보다 나약하게 핀 희망을 사랑했을 테니까.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면서. - P156

이끼가 처음 등장하고 그로부터 일억 년 후, 관다발식물이 등장해 지표면세 붙어 퍼지는 이끼와 다르게 하늘로 솟아오르며 광합성을 시작했다. 고생대 데본기에 들어선 뒤에야 흩어져 있던 식물들이 군집을 이룬 숲이 등장했다. 고생대 초창기에는 커다란 고사리류가 이끼와 함께 지구를 뒤덮었다가, 고사리류는 버티지 못하고 멸종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침엽수 수목들이 대신하고 꽃은 더 나중에야 등장한다. 식물의 생태는 침묵 속에서 그 어떤 생태보다 소란스럽게 격변했다.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숱한 개체가 근본 없이 생겨나는 동안 이끼는 가장 낮은 곳에,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없는 축축한 틈 곳곳에 머물고 있다. 멸종되지 않고. - P163

바위틈에도 살고, 보도블록 사이에도 살고 멸망한 도시에서도 살 수 있으면 좋잖아. 고귀한 필요 없이, 특별하고 우아할 필요 없이 겨우 제 몸만한 영역만을 쓰면서 지상 어디에서든 살기만 했으면 좋겠어. 햇빛을 많이 보기 위해 그림자를 만들지 않고, 물을 마시지 못해 메마를 일도 없게. 그렇게 가만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거야. 시시하겠지만 조금 시시해도 괜찮지 않을까? - P2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녹색평론 2023년 여름호 - 통권 182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기다리고 기다리고 녹색평론 182호가 돌아왔단다. 2021 11, 창간 30주년과 함께 1년간 쉰다고 했었어. 2022 30년만에 대한민국은 녹색평론이 없는 1년을 보냈고, 많은 것이 바뀌었단다. 기후 위기는 더욱 강력해지고, 코로나는 만성이 되어 규제를 완화되고, 무엇보다 정권이 바뀌어버렸단다. 녹색평론의 쓴소리가 필요한 시기에 녹색평론이 잠시 없었어. 아빠는 올해 1월이 되자마자 녹색평론 182호를 검색해 보았단다. 쉬기로 했던 1년이 지났으니까.... 그런데 소식이 없더구나.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검색을 해보았지만 여전히 소식 없던 녹색평론. 초여름 더위가 아빠를 짜증내기 시작할 즈음 나타났단다.

새롭게 계간지로 돌아왔어. 계간지로 바뀌어서 앞으로는 적게 만나게 되겠지만 반갑더구나. 녹색평론이 없던 1년 동안 녹색평론이 추구했던 철학은 더 후퇴한 사회가 되었으니, 얼마나 또 할 말이 많을까. 반가워서 바로 주문을 해서 읽었어. 예전 그대로 우리 주변의 숨겨져 있던 불편한 진실들을 많이 이야기해주었단다. 불편한 진실이 불편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두려운 미래를 예견하고 있어서 걱정도 같이 쌓였단다.

앞으로는 쉬는 기간 없이 우리 사회와 생태계를 위해서 좋은 가이드를 해주길 바란다. 녹색평론이 읽기 어려운 글들도 있지만, 아빠도 그들의 노력에 동참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읽어보련다. 그러면 이번 호에서 이야기해 준 것에 대해 몇몇을 소개해 줄게.

1.

아빠가 얼마 전에 읽었던 <6℃의 멸종>이라는 책에서도 나왔던 지구를 지키기 위한 마지노선 1.5℃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녹색평론에서도 했단다. 아무래도 지구에 놓인 위기 중에서 가장 심각하고 급한 것이 기후 위기이다 보니, 그 주제를 먼저 다룬 것 같구나. 지구 구성원 모두 다 함께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지만, 전쟁이나 경제성장 등 역행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다. 우리나라 정부의 환경정책도 환경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환경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만 일삼고 있다고 하는구나. 환경부에서 하는 일이 환경을 살리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규제를 완화해주는 일만 하고 있대. 설악산 케이블카도 문제없다고 도장 찍은 준 것이 환경부라고 하니, 정말 속이 부글부글 끓는구나.

=======================

(28-29)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환경성, 경제성 등 모든 면에서 낙제점으로 이미 지난 정부 때 불허했음에도 막가파식 억지 논리를 받아들여 환경부는 손바닥 뒤집듯 환경영향평가를 협의해주었다. 한국환경연구원, 국립공원공단, 국립생태원, 국립환경과학원, 국립기상과학원 등 5개 전문기관이 부정적인 검토의견을 냈지만 대통령의 공약사항은 무조건 통과다. 해당 지역은 국립공원의 자연보전지구, 백두대간 보호지역 중 핵심구역,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보호지역 카테고리II(보전 중심 관리),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등 국내외 법제도로 겹겹이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이제 우리 국토 중 관광용 케이블카가 놓이지 못할 곳은 없다.

=======================

탄소중립 정책도 문제란다. 국제 협약에 의해 아니 그것이 아니더라도 인류가 살 수 있는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탄소중립은 빨리 실천해야 한단다. 2030년까지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량은 5억톤이 넘게 남았는데, 현정부는 자신의 임기까지 25%만 줄인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단다. 임기가 끝나면 2030년까지는 3년 남았는데, 그때 나머지 70%를 줄여야 하는데, 다음 정부한테 책임을 떠넘기면서 죽어봐라, 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니.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환경부가 환경을 파괴하는 정부가 25% 약속은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

(37)

우리가 2050년 탄소중립을 하려면 2021 6 8000t이 넘는 총배출량을 2050년에는 8000t(시나리오 A) 수준으로 줄이고, 8000t을 흡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2030년까지는 총배출량 5 1200t으로 줄여야 한다. 앞으로 7년여 동안 1 6800t을 줄이는데, 그다음 20년은 4 3200t을 줄여야 하니 감축부담을 뒤로 미룬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수립한 계획의 가장 큰 특징도 2030년 감축목표량을 윤석열 정부 임기 이후로 떠넘겼다는 것이다. 현 정부 임기 동안 2030년까지의 총감축량 25%를 줄이고, 다음 정부는 3년 만에 75%를 줄여야 한다.

=======================

2.

이번 호에서 많은 이야기를 다룬 것은 전쟁에 관한 이야기란다. 아무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때문이겠지. 러시아의 명분 없는 전쟁 때문에 양국의 많은 군인들과 국민들이 죽은 것이 가장 비극적인 일이긴 하겠지만, 지구의 입장에서 봐도 심각한 문제를 계속 일으키고 있단다. 그리고 두 나라 간의 휴전이나 정전에 대한 전제 조건이 까다로워서 당장 전쟁이 끝날 것 같지도 않아서 더욱 심각하단다. 아빠는 잘 몰랐는데, 전쟁이라는 것이 엄청난 탄소를 배출한다고 하는구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이 일어난 후 첫 7개월 동안 배출한 온실가스는 네덜란드가 배출한 양과 같다고 하는구나.

=======================

(95)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환경부 등이 전쟁 9개월쯤 군사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계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쟁 7개월 동안 배출된 온실가스는 약 1tCO2eq에 달하고, 이는 네덜란드와 같은 국가가 같은 기간 동안 배출한 온실가스량과 유사한 수준이다. 그러나 전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전투는 우크라이나에서 재생에너지 단지가 밀집한 지역 위에서 벌어지고, 기후위기 대응 프로그램이 운영되던 시설 인근을 배경으로 하기도 한다. 전쟁은 어떤 경제활동보다도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또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한 국가와 시민들의 노력, 성과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기후위기에 악영향을 미친다.

=======================

이렇게 전쟁은 생태적 비용이 엄청 들어가기 때문에 이 전쟁뿐만 아니라 그 어떤 전쟁도 일어나서는 안 된단다. 생명의 희생뿐만 아니라 지구 기후 위기를 가속화시키기 때문이야.

….

녹색평론이 잠시 쉬기로 했던 2021 11월은 코로나가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던 시기였고 거의 모든 규제가 없어진 지금도 여전히 코로나 환자가 간간히 발생하고 있단다. 이제 코로나는 토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단다. 하지만 안심을 놓기에는 이르단다. 앞으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우리가 모르고 있던 바이러스의 출현은 더 잦아질 것이고, 그것들은 더 빨리 전 세계로 퍼질 것이라고 예상들하고 있단다. 이번 호에서 코로나에 대한 리뷰를 두 개 꼭지 들어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

그 밖에 녹색평론에서 꾸준히 다루고 있던 농업과 농촌 살리기에 대한 주제도 이번 호에서 다루었고, 마지막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서평들로 마무리를 했단다. 이번에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해주었는데 아빠는 <해월 최시형 평전>이라는 책과 <노동자 없는 노동>이라는 책을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읽어보려고 리스트에 올려 두었단다. 이렇게 해서 녹색평론 182호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았단다.

이 책의 뒷부분에 보면 각 지역별 독자모임에 대한 실려있단다. 우리 동네 근처에도 모임 소식이 있더구나. 아빠가 녹색평론을 십 년 넘게 읽었지만, 그런 모임에 나가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오랜만에 재개한 녹색평론을 읽다 보니 녹색평론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해보고 녹색평론에서 추구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실천할 수 있는지 서로 이야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런데 아빠가 이런 생각만 하고, 실천까지 옮기는 데는 또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그리고 굳이 그 모임까지 안 나가고 우리 식구들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해 봐도 좋을 것 같구나. 너희들도 학교에서 탄소중립이라든가, 기후위기 같은 것을 공부하는 것 같으니 말이야.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그리고 녹색평론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다시는 녹색평론이 휴간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너무 늦은 것을 아닐까?

책의 끝 문장: 과연 이번에는 다를 것인가-이것은 한가한 관전자의 물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걸린 절체절명의 화두다.


전쟁이라는 비상상황 앞에서 기후대응은 언제까지나 뒷전으로 미루어도 좋은 것일까. 현재 기후과학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일은 온난화로 인해서 영구동토층과 심해에 묻혀 있는 메탄이 대기 중으로 풀려나서 지구온난화가 손쓸 수 없이 가속화하는 것이다. 이 위험을 전 세계 440여 기 원전에서 멜트다운이 일어나는 일에 비견하는 전문가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많은 지역, 특히 남반구에서 전쟁의 참화와 하등 다를 것 없는 재난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인류, 특히 북반구 선진국 주민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무기를 들지 않고도 일상적으로 전쟁에 가담해왔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약탈적 관계 한가운데에 기후변화와 군국주의가 맞물린 위기가 놓여 있는 것이다. - P3

환경정책은 실종되고 오로지 산업정책만 난무한 이번 정부의 폭주는 고작 1년 만에 국토 곳곳을 난도질하며 짓밟고 있다.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지구적 합의에도 빠른 걸음으로 역행하는 정부다. ‘대한민국 1호 세일즈맨’을 자처하는 대통령은 환경부에서 산업부처가 되라면서 대한민국의 환경과 우리의 미래를 시나브로 팔아먹고 있다. 다만 무엇을 대가로 받는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환경부가 아주 기본적인 존재의무도 저버리고 반(反)환경 정권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는 몇 가지 사례들을 나열해보겠다. - P25

한번 훼손되고 오염된 땅을 농지로 복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농지에 불법폐기물 투기하는 일도 종종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것도 빨리 해결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서둘러 계획을 세워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지목이 농지인 것 외에도 간수할 방법도 찾아야 됩니다. 학교에서 농사를 가르치고, 지역사회마다 텃밭을 마련해서 사람들이 농사지을 수 있도록 하고, 아직 남아있는 농지를 최대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됩니다. - P158

지금 우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죽음을 목격하고 있다. 지구 위에서의 삶(生) 자체의 종언에 맞닥뜨리고 있다. 생물종, 바다, 숲, 호수, 강이 퇴락하고 있다는 기사가 하루도 빠짐없이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이 지구의 생물지구화학 체계들을 교란하고 있다. 우리는 마비가 된 것 같다. 아니면 매혹되어 있는 것일까. 지금 인류는 더할 나위 없는 규모로 죽음을 유발하면서, 동시에 죽음을 있는 힘껏 거부하고 있다. 어차피 맞게 될 죽음을 이토록 애써 부정하거나, 언젠가 닥칠 죽음을 예고할 뿐인 얼굴의 주름 같은 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이토록 돈을 퍼붓는 문화는 없다. 기술에 의해서 우리의 두려움은 더욱 확대되었고, 죽음과 대면하는 일은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일이 되었다. - P207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란공 2023-07-12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사 보고 녹색평론 소식을 알게되었습니다.
https://v.daum.net/v/20230612170600905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 한 분이 녹색평론 기사 한 꼭지를 읽어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bookholic 2023-07-12 21:02   좋아요 1 | URL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참 멋지셨네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 : 서울편 4 - 한양도성 밖 역사의 체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 : 서울편 4>를 읽었단다. 이번으로 서울편은 마무리가 되었단다. 4권에서는 성북동, 선정릉, 봉은사, 겸재정선미술과 허준박물관, 망우리역사문화공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다들 유명한 동네이고 장소여서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그곳에 깃든 역사는 모르고 있었단다. 먼저 나온 성북동은 <성북동 비둘기>라는 유명한 시 때문에 알고 있는 동네이지, 가본 적이 없는 것 같구나. 그런데 그 성북동은 근대 사회를 거치면서 형성된 동네로 근현대사의 역사적인 동네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성북동은 한양도성 북쪽 성곽에 위치하여 성북동이라고 불렀다고 하는구나.

==========================

(13)

성북동은 한양도성 북쪽 성곽과 맞붙어 있는 산동네로 북악산(백악산) 구준봉에서 발원한 성북천의 산자락에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집들이 무리 지어 들어서 있다. 타동네 사람들은 성북동이라고 하면 번듯한 외국 대사관저와 높직한 축대 위의 대저택들이 들어서 있는 부촌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드라마에서 부잣집 사모님이 전화를 걸 때 여기는 성북동인데요라는 대사가 나오곤 한다. 그러나 이 집들은 1970 12 30, 삼청터널이 개통된 이후 양지바른 남쪽 산자락을 개발해 꿩의 바다라는 길을 중심으로 들어선 신흥 저택들이다. 성북동에는 이곳 외에도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되어온 묵은 동네들이 따로 있다.

==========================

원래는 사람들 거주를 금지하던 곳이었는데, 18세기 영조 때부터 살기 시작했고 성북둔이라는 둔전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근현대로 오면서 이곳에 별장과 별서가 많이 들어왔다고 하더구나. 이곳 주민들이 복숭아나무를 심어서 봄이면 복사꽃이 만발하여 복사꽃 마을로 부르기도 했다는구나. 성북동과 관련된 인사들인 이태준, 김환기, 박태원, 한용운, 윤이상, 김광섭 등의 일화도 들려주었단다. 그리고 대원각이라는 요정의 주인 김자야라는 분이 법정 스님께 기증하여 길상사로 다시 태어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길상사도 이곳 성북동에 있단다.

이 이야기는 아빠가 예전에 <백석 평전>을 이야기할 때도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단다. 왜냐하면 김자야라는 분이 바로 백석과 사랑에 빠졌던 진향이라는 기생이었거든.. 본명은 김영한이었고자야라는 이름도 백석이 지어준 이름이었다고 하는구나. 대원각의 재산이 아깝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의 자야가 어떻게 답변했는지 아니?

==========================

(121-122)

일선에서 물러난 김자야는 스승 하규일의 일대기와 가곡 악보를 채록한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펴냈다. 그러다 1987년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다가 불현듯 대원각을 절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도움을 청할 생각으로 법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법정은 주지를 맡아본 경험이 없고 아무것에도 메이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라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거절했다. 이후 자야가 10년을 두고 부탁하자 법정은 마침내 이 곳을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이자 맑고 향기롭게운동의 근본 도량으로 삼기로 했고, 대원각은 1997년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자야게는 길상화라는 법명이 주어졌다.

당시 대원각의 재산은 시가 1천억 원이 넘는 것이었다. 기자간담회 때 그 많은 재산이 아깝지 않느냐는 물음에 자야는 “1천억은 그 사람(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

멋지시구나.

1.

서울 한양도성 밖에는 왕릉이 많이 있단다. 그중에 선정릉을 소개해 주고 있단다. 선정릉은 선릉과 정릉을 함께 부르는 말인데, 선릉은 강남 근처에 있는 왕으로 2호선 지하철 역으로 유명하고, 정릉은 아빠가 알기로는 서울 북쪽 국민대학교 근처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걸 왜 함께 선정릉이라고 부르지?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정릉은 성북구에 있는 정릉이 아니고, 선릉 옆에 함께 있는 정릉이라고 하는구나. 그리고 선릉역 말고 선정릉역이라는 지하철도 있다고 하는구나. ㅎㅎ 아빠가 시골 촌놈 티를 팍팍 냈구나.

선정릉은 그럼 누구의 릉이냐먼저 선릉은 성종과 성종의 왕비인 정현왕후의 릉이라고 하는구나. 보통 부부는 합장해서 하나의 릉으로 조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종과 정현왕후의 릉은 각각 떨어져서 조성했다고 하는구나. 그래도 두 개의 릉을 합쳐서 선릉이라고 부른대. 예전에 이곳에 정릉까지 포함해서 묘지가 일단 세 개가 있으니, 누군가 잘못 알고 삼릉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고 하는구나. 여긴 엄연히 릉은 선릉과 정릉, 두 개가 있어 삼릉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하는구나. 그럼 정릉은 누구의 릉이냐면, 바로 중종의 릉이란다.

왕릉들이 누구의 왕릉인지는 외워도 시간이 지나면 늘 헛갈리는구나. 지은이 유홍준 님도 그래서 문화재청장 시절에 왕릉을 부를 때 왕의 이름과 같이 부를 것을 제안했다고 하더구나. 성종대왕 선릉, 중종대왕 정릉, 세종대왕 영릉, 정조대왕 건릉 이렇게 말이야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당시 국회의원과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 거절을 했다고 하는구나. , 왜 그랬을까. 이름 조금 길어지는 것이 그렇게 불편했을까? 국회의원과 전문가들 중에 유홍준 님을 싫어하는 이들이 많았을 수도

선정릉 다음으로는 봉은사를 소개를 해주었단다. 강남 한복판에 왠 절이 있나, 싶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곳은 그저 한양도성 밖의 마을이었던 것이란다. 중종의 왕비 문정왕후가 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대리청정 할 때 불교를 중흥시키려고 세웠던 절이라고 하는구나. 강남 개발이 한창일 때 사라질 뻔 했는데 당시 주지 스님인 영암 스님의 노력으로 살아남았다고 하는구나.

2.

다음은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을 소개해주었단다. 이 두 곳은 너희들과 함께 외가댁을 갈 때 늘 이정표만 보던 곳이란다. 아빠는 그 이정표들을 볼 때마다 왜 이곳에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이 있을까, 생각하고 한번도 방문할 생각은 하지 못했단다.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이 있는 곳은 서울 강서구인데, 겸재 정선은 그곳에서 양천현 현령으로 일한 적이 있고, 허준은 그의 관향(管餉), 즉 시조의 고향이 그곳이었다는 인연이 있다고 하는구나.

책에서는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의 관람기와 겸재 정선과 허준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대부분 새로 알게 된 내용들인데,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 넘어갈게. 허준이 <동의보감>을 쓰면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하더구나. 첫째는 병을 고치기 앞서 수명을 늘리고 병에 안 걸리게 하는 방법을 중요시했고, 둘째는 처방은 요점만 간추려서 하고, 셋째는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약초 이름을 한글로 쓴다는 것이었대. 허준의 배려심을 느껴지는구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의 마지막은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이었단다.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은 오래 전에는 망우리 공동묘지로 불렀단다. 이곳에는 시인 박인환, 화가 이중석, 조봉암, 안창호의 가묘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묻혀 계신단다. 예전에는 서울 곳곳에 공동 묘지가 있었는데, 1933년 도시 계획을 하면서 망우리 한 곳에 모았고, 그렇게 이장하면서 연고 없는 분들의 합동묘들도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유관순 누나도 그런 합동묘에 계셔서 따로 묘지가 없다고 하는구나. 안타까운 일이구나.

유럽에는 그 나라의 유명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 공원을 관광 코스로 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망우리 역사문화공원도 그런 곳과 비슷하게 많은 사람들이 찾도록 해야 한다고 하셨어. 그러면서 우리 나라를 위해 애쓰시고, 희생하신 분들을 한번 이라도 더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될 수 있게 말이야. 이곳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에는 어린이날을 지정하신 방정환 님도 잠들어 계신대. 1922 5 1일 처음으로 어린이날을 지정했는데, 노동절과 겹쳐서 5월 첫째 일요일로 바꾸었다가 1937년 일제 탄압으로 어린이날 행사가 중단되었고, 해방 후 5 5일로 어린이날로 다시 지정했다고 하는구나. 방정환 님이 어린이라는 말과 어린이날을 만드신 분으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돌아가실 때까지 독립운동도 많이 하셨다고 하는구나. 몸이 허약하셔서 1931 31살의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하셨다고 하니 무척 안타깝구나.

….

여기까지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 : 서울편 4>의 이야기를 간추려서 이야기해 보았단다. 서울은 주로 친구들을 만나거나 행사가 있을 때만 주로 가곤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 탐방으로도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서울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서 가끔씩 역사탐방 하러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서울편 총 4권의 각 챕터에 나와 있는 장소들을 책과 함께 가면 더 좋을 것 같구나.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성북동은 한양도성 북쪽 성곽과 맞붙어 있는 산동네로 북악산(백악산) 구준봉에서 발원한 성북천의 산자락에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집들이 무리 지어 들어서 있다.

책의 끝 문장: 우리는 홍어 대신 코다리(명태)회를 무친 비빔냉면을 맛있게 먹으면서 계속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받은 감동을 되새김하듯 답사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동아일보> 1930년 4월 6일자에 실린 김동섭의 <성북의 향기>는 이런 사실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성북동에 별장이 많다. 그것은 예전 일이려니와 요새는 없던 집에 들어서곤 또 들어선다. 늙은 울송(鬱松) 밑에 양관(洋館)이 있는가 하면 좌청룡 우백호를 서로 응하고 화해서 네 귀를 든 조선식 건물이 있다. 그 뒤로 빠근히 내다뵈는 아담한 모던 빌딩이 보인다. 성북동은 이렇게 기(氣)를 피우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십 년 뒤 평(坪) 값까지 구구(九九)를 치기도 한다. 집거간(부동산 중개업자)이라는 새 직업이 마전으로 먹고 사는 이 동리에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 P42

또 내가 존경하는 문학평론가 형님께 "형님이 해방공간에 있었으면 어떻게 처신하셨겠어요?"라고 묻자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남에 있었으면 북으로 올라갔을 거고, 북에 있었으면 남으로 내려왔겠지."
일제강점기라는 불우한 시대를 살다가 마침내 희망찬 해방을 맞이했으나 어지러운 해방공간에서 길을 잘못 들어 결과적으로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그분들과, 동족상잔의 전란 속에 남에서 북으로, 혹은 북에서 남으로 올라가고 내려오고 한 지식인들의 삶이 안타깝게 다가오기만 한다.
- P91

봉은사는 명종 5년(1550) 문정왕후(중종의 왕비)가 어린 명종을 대신해 대리청정하면서 보우(1509~65) 스님을 앞세워 조선불교를 중흥하며 선교 양종(兩宗)을 부활시킬 때 선종의 수사찰(首寺刹)이 되었다. 그때 교종의 수사찰은 세조 광릉의 능사인 남양주 봉선사였다. 그리고 보우 스님은 판선종사 도대선사로 봉은사 주지를 맡으면서 사실상 오늘날 봉은사의 중창조가 되었다. - P193

본래 불상이란 그 시대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반영한다. 삼국시대 청동불이 절대자의 친절성을 나타내는 미소가 특징이고, 통일신라 석불이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서 절대자의 근엄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고, 나말여초의 철불에 힘있고 현세적인 능력이 강조되어 있고, 고려시대 철불 석불이 파격적인 괴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 반하여 조선시대 불상은 이 봉은사 삼존불상처럼 거의 다 조용히 앉아 있는 침묵의 좌상 모습을 하고 있다. - P219

압구정 정자를 세운 한명회는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는 계유정란의 일등공신으로 이후 세조대부터 줄곧 정승 자리를 차지하고 두 딸을 예종과 성종의 왕비로 시집보낸 당대의 권세가였다. 압구정이라는 정자 이름은 한명회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예겸이라는 당대의 문인에게 부탁하여 기문과 함께 받은 것이다. 뜻인즉, 송나라 때 한 재상이 정계를 떠나 갈매기와 벗하며 지냈다는 고사를 이끌어 만년에 자연과 벗하면서 지낼 만한 곳이라고 지어준 것이다. 이후 압구정은 한강변의 뛰어난 명소로 수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시문을 남겼다. - P263

선조는 임진왜란이라는 전란을 겪었기 때문에 간혹 의주로 피란한 무능한 임금으로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선조는 문예를 아끼고 키운 인문군주였다. 허준에게 <동의보감>을 펴내게 지시하며 왕실 소장본까지 내준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한석봉을 만년에 조용한 곳으로 가서 편안히 작품활동 많이 하라며 한직인 가평군수로 내려보낸 것도 감동적이다. 또 율곡 이이에게는 매월당 김시습 전기를 지어오라고 명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정조 시대 문인들은 선조의 치세를 일컬어 그의 능 이름을 따서 "목릉성세(穆陵盛世)’하고 칭송했다. 풀이하자면 선조대왕 문예부흥기라는 뜻으로 명문이 나오면 ‘목릉성세’에도 이런 문장은 없었다’라며 칭송하곤 했다. - P2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 : 서울편 3 - 사대문 안동네 : 내 고향 서울 이야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시리즈 서울편 3권을 읽었단다. 코로나 시절 서울편 1, 2권을 몇 년 전에 재미있게 읽으면서 코로나 끝나면 그 책에 나왔던 곳들을 너희들과 함께 가봐야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가 그 마음먹은 것까지 잊고 말았구나. 이번에 3, 4권을 읽으면서 그때 마음 먹었던 것이 기억났어. 이번에 읽은 3, 4권에서 나온 곳들도 너희들과 함께 가보고 싶구나.

몇 달 전인가 코로나로부터 좀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을 때 너희들과 함께 인사동 나들이를 간 적이 있었잖니. 이 책을 읽고 인사동에 갔다면 너희들에게 좀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3권에서 인사동도 이야기해주었거든. , 서울이 그리 먼 곳도 아니고 또 가면 되지...

서울은 조선왕조 600년의 수도로써 역사적인 유물이 많이 있는 곳이잖니. 조선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에도 중심지이다 보니 아픈 역사의 현장도 많이 남아 있는 곳이 서울이란다. 이번 3권의 부제목은 <사대문 안동네 : 내 고향 서울 이야기>더구나. 지은이 유홍준 님은 사대문 안에서 태어나서 자란 순수 서울 토박이라고 하시는구나. 글 속에서 서울 토박이에 대한 자부심도 크신 것 같았어. 그래서 3권의 이야기는 다른 책과 달리 자신이 자라온 이야기와 경험담이 많이 실려 있었단다. ‘서울의 문화 유산 이야기플러스 유홍준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고나 할까. 3권에서는 북악산, 서촌, 인왕산, 북촌, 인사동, 북한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1.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단다. 멀리 한강이 앞에 흐르고 북악산이 병풍처럼 막고 있는 서울의 옛 사대문 안은 무학대사가 아니라도 누가 봐도 명당 자리인 것 같구나. 일제 시대는 조선총독부가 있었고, 해방 후에는 청와대가 있다 보니 오랫동안 금단의 지역이었는데 최근에 전면 개방된 곳이란다. 그래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도 안 가본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싶구나. 아빠는 청와대를 개방한 사람을 싫어하고 개방한 이유도 마음에 안 들어서 더욱 안 가려고 한단다.

역사와 문화유산의 측면에서 봤을 때, 북악산 인근에는 많은 역사 유물이 많다고 하더구나.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를 기리기 위한 육상궁이 있고, 이 육상궁을 포함하여 나중에 왕을 낳은 일곱 명의 후궁의 사당인 칠궁도 이곳에 있다고 하는구나. 육상궁, 칠궁 모두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궁이로구나. 조선의 역사는 긴 만큼 유물도 다양하고 많구나. 그밖에 북악산 근처에 있는 여러 문화유산들을 이야기해주고 발길을 서촌으로 돌린단다.

서촌은 인왕상 아랫동네를 부르는 말인데, 원래는 청운동이니, 효자동이니 동 이름으로 불렀는데, 최근에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 북촌과 비슷하게 서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아빠도 서촌이라는 말을 최근에 많이 들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이곳 서촌은 지은이 유홍준 님의 고향으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어린 시절에는 보존되었다가 지금은 없어진 건물이나 장소 등도 많이 이야기해주었단다. 예전에 아빠도 결혼하기 전에 서울에서 일 보다가 본가에 갈 때 이쪽에 있는 자하문 터널을 이용했었단다. 이쪽 길을 하다 보면 오래된 집들이 많아서 고풍스러우면서 편안한 느낌이 들었어.

서촌의 대표적인 명소인 통인시장, 자하문로, 자교교회, 국립서울맹학교 농학교뿐만 아니라 그곳 출신 아니면 모를 것 같은 형제상회라는 곳도 사진과 함께 소개해 주더구나. 서촌에는 인왕산 경치를 볼 수 있는데, 인왕산 하면 유명한 화가 겸재 정선이잖니, 그 정선도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하는구나. 서촌 지역에 유독 친일파 집도 많았다고 하는데, 매국노 이완용이 살았던 집도 이곳 옥인동에 있었고, 이완용보다 더 심한 매국노인데 사람들이 많이 모르는 윤덕영이라는 악질 친일파도 인왕산 자락에 벽수산장이라는 프랑스식 3층 건물을 짓고 살았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벽수산장은 2만평의 땅에 이 프랑스식 3층 건물을 포함해서 18채의 건물을 짓고 떵떵거리면서 살았다고 하는구나. 이 벽수산장은 아빠가 재작년에 읽은 심윤경 님의 <영원한 유산>이라는 소설의 배경으로 알게 된 곳이기도 하지. 그 벽수산장의 주인인 윤덕영이 친일파라는 것은 알았는데, 얼마나 악덕한 친일파라는 것은 이번에 새롭게 알았단다. 1910년 경술국치 때 옥새를 치마폭에 숨겼던 순종의 황후 순정효황후. 그 황후의 치마폭에서 옥새를 빼내어 도장을 빼낸 이가 바로 윤덕영이라는 놈이라고 하는구나.

=================

(128)

윤덕영(尹德榮, 1873~1940)은 순종황제의 부인인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로 1910년 경술년 강제 한일합병 조인 때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치마폭에 숨기고 내놓지 않는 것을 알고 강제로 빼앗아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넘겨준 인물이다. 윤덕영은 그 공로로 조선귀족 자작이 수여되어 일제로부터 당시 5만 엔의 은사공채금을 받아 옥인동 일대를 사들였다.

=================

못난 남자들이 나라를 팔아 먹으려고 할 때 옥새를 빼앗아 치마폭에 넣었다는 순정효황후의 이야기는 가슴을 아프게 하는구나. 심윤경 님의 소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해방 이후 벽수산장은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줄여서 언커크의 건물로 사용되었고, 나중에 보수공사 중에 화재로 전소되었다고 하는구나. 이것도 심윤경 님의 <영원한 유산>이라는 소설에서 이야기되었었지.

….

인왕산에 송성원이라는 추사 김정희가 쓴 암각 글씨가 있었다고 하는구나. 오래 전에 찍은 사진도 있는데, 그것이 지금은 사라졌대.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못 찾고 있다고 하는데, 안타까우면서 어디선가 불쑥 짠~ 하고 나타났으면 좋겠구나.

=================

(126)

송석원 바위에는 추가 김정희가 큰 글씨로 쓴 송석원이라는 암각 글씨가 있었다. 글씨 옆에 정축 청화월 소봉래 서(丁丑淸和月小蓬萊書)’라고 관지가 쓰여 있어 추가 31세 때인 1817 4월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소봉래는 추사의 또 다른 호이다. 이 바위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데, 최종현은 <오래된 서울>에서 박노수미술관 뒤쪽에 계단식 바위벽에 새겨져 있었는데 지금은 흙에 묻힌 상태로 추정하고 있고, 혹자는 지금은 폐업한 술집 마당에 이 암벽이 있는데 시멘트로 덮여 있다고 한다.

=================


2.

북촌은 그야말로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곳이란다. 전통 한옥 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도 현대식 건물의 서울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곳이 있어서 서울의 옛모습과 오늘날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으로 외국 관광객의 필수코스가 된 곳이란다. 그냥 단순히 북쪽에 위치해서 북촌이라고 부르는 줄 알았는데, 정확하게는 종로 이북에 위치해서 북촌이라고 불렀고, 종로 남쪽은 남촌이라고 불렀다고 하는구나.

=================

(154)

북촌이라고 하면 우리는 막연히 조선왕조 대대로 내려오는 양반 동네를 떠올리기 쉽다. 북촌이라는 말의 유래 때문이다. 예부터 한양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청계천과 종로를 중심으로 남쪽 남산 아랫동네는 남촌, 북쪽 동네는 북촌이라고 불러왔다. 매천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고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고 하는데 소론, 남인, 북인 삼색(三色)이 섞여 살았다.”

=================

조선시대에는 노론들이 살던 북촌이 개화기로 넘어오면서는 신문화를 이끌던 개화파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는구나. 박지원의 손자이자 개화파를 이끌었던 박규수가 이곳에 살았는데, 박규수의 제자들 중에는 김옥균, 서재필, 홍영식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갑신정변의 주역들이었단다.  비록 실패했지만그밖에 여운형, 유길준, 현상윤 등도 이곳에 살았대. 아빠가 유홍준 님을 좋아하긴 하지만, 현상윤에 대한 유홍준 님의 평가에는 동의할 수 없구나. 유홍준 님은 현상윤이 교육자로써 존경할 만하다고 했는데, 아빠가 알기로는 현상윤은 변절한 친일파로 알고 있거든. 그리고 현상윤의 생몰년을 1893~1945로 기록하면서 한국전쟁 중에 사망했다고 해서 어떤 것이 잘못되었나 찾아봤더니 생몰년이 잘못되었더구나.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사망했다고 하는구나. 오타 발견. 아무튼 현상윤은 친일파.

….

북촌 다음으로 인사동은 3개 챕터에 걸쳐서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그만큼 사연도 많고 유물도 많고 역사도 많이 깃든 곳인가 보구나. 삼일절 기미독립선언서를 읽었던 태화관도 이곳에 있는데, 아빠가 얼마 전에 <만세열전>이라는 책을 읽고 이야기한 것처럼 기미독립선언서는 이곳 태화관이 아닌 종로 거리에서 많은 백성들 앞에서 낭독했어야 옳은 것이라 생각한단다. 인사동이란 이름은 일제시대 행정 지역을 개편하면서 생겼다고 하는구나. 이후 인사동은 출판사와 서점의 거리로 시작해서, 고서점과 헌책방의 거리, 고미술상과 민예품을 파는 거리, 화가들이 전시회를 여는 거리 등으로 변해왔다고 하는구나. 지은이는 이런 인사동을 시대별로 구분했단다.

=================

(271)

나의 체험에 입각해보건대 인사동길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의 거리로 변해온 발자취는 대략 다음과 같다. 1960년대는 고서점, 1970~80년대는 화랑과 고미술상, 1980~90년대는 전통찻집과 카페, 2000년 이후는 쌈지길과 관광 거리.

=================


3.

마지막으로 사대문 안은 아니지만, 서울의 대표적인 명도 북한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서울에 북한산이 있는 것은 서울 사람들에게는 큰 축복이라고들 한단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산을 갈 수 있으니 말이야. 산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풍경 또한 멋지고아빠는 서울 사람이 아니지만 북한산을 여러 번 올랐는데 갈 때마다 좋았단다. 나중에 너희들과도 함께 오르고 싶구나.

북한산의 비봉이라는 곳에 가보면 진흥왕 순수비가 놓여 있단다. 아빠도 이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사촌형님이랑 같이 갔는데, 그 형님께서 진흥왕 순수비가 국보 3호라고 알려주어서 그제서야 진흥왕 순수비가 국보 3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라서 국보 1호만 알았지,

국보 3호도 모르고 있었다니그런데 국보 2호는 뭐였지? 그러면서 그때 국보 2호를 찾아봐서 아빠는 국보 2호가 원각사지 십층석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단다. 이렇게 알게 되어서 그런지 국보 2, 3호는 잘 안 까먹게 되는구나. 북한산의 진흥왕 순수비에 대해서 이번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 두 가지가 있단다. 첫째는 이 비석이 진흥왕 순수비라고 확인한 분이 추사 김정희였다는 점

=================

(335)

진흥왕 순수비 3기는 모두 세월의 흐름 속에 잊혔다. 황초령 순수비의 존재는 조선 중기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북한산 순수비를 사람들의 무학대사비라고 했다. 세상에 전하기로 무학대사가 한양 도읍 자리를 물색하기 위해 비봉에 올라오니 무학이 잘못 찾아와 이 비에 이르렀다라고 쓰여 있어 놀라서 내려갔는데 세월이 흘러 글씨가 안 보인다고 전해온 것이다. 이것이 다시 진흥왕 순수비임을 확인한 이는 추사 김정희였다.

=================

둘째는 북한산 비봉에 있는 진흥왕 순수비의 복제비를 문재인 대통령님이 참여정부 때 민정수석으로 계시면서 제안을 했고, 당시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 님이 추진해서 만들었다는 것이란다. 진짜 진흥왕 순수비는 훼손의 이유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원래는 작은 안내 표지석만 세워져 있었는데, 2006년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 제안, 유홍준 문화재청장 실행으로 복제품을 만들어 세웠다고 하는구나.

이상으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편 3권에서 소개한 서울의 이야기 중 일부를 이야기해보았단다. 최근에 서울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무척 많이 늘어난 것 같더구나. 한류의 열풍에 힘입어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이 부쩍 는 것 같구나. 거기에 코로나도 끝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찾는 것 같아. 그리고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대표도시인 서울을 먼저 찾지 않을까 싶구나. K-, K-영화, K-드라마, K-푸드 등에 맞춘 여행 코스가 많이 차지하겠지만, K-역사를 알리는 코스도 많았으면 좋겠구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서울편 시리즈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구나. 영문판으로 번역을 하면 어떨까, 싶다가도.... 외국인들에게 읽기에는 너무 내용이 깊은 것 같기도 하고... ㅎㅎ 자, 오늘은 여기까지조만 간에 서울편 4권도 이야기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북악산은 높이 342미터의 화강암 골산으로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책의 끝 문장: 아무튼 진흥왕 북한산 순수비의 복제비 건립은 그에게나 나에게나 큰 보람이자 자랑이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는 대통령 집무실에 반드시 필요한 지하 벙커와 헬기장 등의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어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관저만 삼청동에 있는 안가 두세 채를 합쳐 옮길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위해서는 또 예산을 들여야 하고 공사가 완료되자면 시간이 걸려 실제로 살 수 있는 기간이 얼마 안 된다며 자신은 소박하게 옮기고 싶으나 다음 대통령에게 멀쩡한 관저를 두고 작은 집으로 가서 살라고 하는 셈이 된다고 거부했다. - P41

현실적으로 이미 개방한 청와대의 문을 다시 닫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나아가서는 최종적인 개방 형태에 대해서는 명확한 그림을 제시해야 한다. 청와대라는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을 앞으로 어떻게 사용할 것이라는 마스터플랜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는 대통령 혹은 문화부장관이나 문화재청장 개인의 상식적인 소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것도 단편적이고 아이디어 제공이라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P56

이후 조영석의 증언대로 그(겸재 정선)는 그림을 그릴 때면 백악산과 인왕산을 바라보며 우리 산천의 생김새를 탐구했고, 그가 그리면서 쓴 붓을 내다 쌓으면 무덤이 된다고 할 정도로 끊임없는 수련과 연찬을 통해 이루어낸 것이 겸재 예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겸재 예술의 자산은 좋은 스승, 벗들과의 어울림, 학문, 문학과 미술의 만남, 그리고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만 권의 책을 읽고 천 리를 여행하는 것이 문인의 길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한 결과였다. - P96

서촌의 공간적 가치는 기에 있고 그 길 중간중간에는 작은 한옥들이 담장을 맞대고 있는 골목이 있고 그 골목엔 역사 인물의 자취가 있고 길끝에는 유적지가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다 인왕산이라는 아름답고 듬직한 산이 받쳐주고 조금만 올라가도 명승이 나온다는 점에서 매력과 가치가 더해진다. - P106

인사동 민예품 가게 진열장에 있는 그 흔한 신라토기, 가야토기의 경우 시가로 몇 십만 원이면 살 수 있는데 반출 허가를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실상 거래가 막혀 있는 것이다. 이는 심각하게 재고되어야 한다. 영국 사람이 가야토기를 사가면 영국 토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국 사람도 가야토기를 통해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는 것이다. 귀중한 유물은 당연히 반출이 금지되어야 하지만 민예품 가게 진열장에 있는 평범한 것까지 규제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국제적 홍보를 막는 행위이다. - P269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3-07-05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울을 더욱 깊게 알수 있어서 좋네요. 젊을 때 더 많이 다녀볼 걸... 후회도 되네요. 칠십대 중반 나이에 가난에 밀려 이젠 경기도로 나왔으니 점점 그 길이 멀어 보이네요.ㅠㅠ

bookholic 2023-07-05 09:51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 님께서 이 책을 읽으시면 추억도 함께 읽으실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요...
 
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피에르 르메르트의 신간을 읽었단다. 아빠의 독서기록을 찾아보니 피에르 르메트르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이 2013년이고, 이번이 여섯 번째이니 약 2년에 한 작품씩 읽은 것이구나. 그렇다면 아빠는 피에르 르메트르를 좋아한다고 할만할까? ㅎㅎ 이번에 읽은 책은 일명 오르부아르 삼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우리 슬픔의 거울>이라는 작품이란다. 먼저 읽은 이들의 평점이 하늘을 찌를 듯했단다. 아빠는 오르부아르의 삼부작의 이전 작품들 <오르부아르> <화재의 색>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먼저 읽은 이들의 평점은 <우리 슬픔의 거울>이 더 좋더구나. 남의 목소리에 많이 흔들리는 아빠는 지갑을 열 수밖에 없었단다.

책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펼쳐 들었어. 재미있더구나. 줄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하면서 읽었단다. 이제 그 메모를 보면서 너희들에게 독서편지를 쓰려고 하는데, 눈이 침침하구나. 작년부터 급격히 침침해진 눈, 서글프구나. 내가 쓴 글씨가 내가 잘 안 보이다니...

아빠가 줄거리를 까먹지 않기 위해서 책의 마지막까지 더 너희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이 책은 적극 추천이니 나중에 이 편지를 보더라도 책을 먼저 읽었으면 좋겠구나.


1.

1940 4 6일 전운이 감도는 파리. 아이를 낳고 싶었던 루이즈는 불임을 진단 받은 이후로는 쭉 남자를 안 사귀고 혼자 지냈단다. 낮에는 초등학교 선생이었고, 저녁에는 쥘 씨가 운영하는 카페 종업원으로 일했어. 나이는 서른이었지. 그 카페에 늘 같은 창가 자리에 앉는 의사선생이라고 부르는 단골손님이 있었어. 어느날 그 손님은 루이즈에게 이상한 부탁을 했어. 그냥 보기만 할 테니 자기 앞에서 옷을 벗어달라는 부탁. 점잖은 노신사가 그런 변태 같은 부탁을 하다니루이즈는 무응답으로 답변했어. 노신사는 원하는 돈을 이야기하라고 했고, 루이즈는 거절의 의미로 엄청나게 큰 돈인 만 프랑으로 장난하듯 이야기했어. 그런데 의사는 바로 알겠다고 했단다.

이후 루이즈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을 했어. 그냥 알몸만 한번 보여주고 만 프랑이라니결국 루이즈는 노신사가 알려준 호텔을 찾아갔고 그의 앞에서 옷을 벗었단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자마자 노신사는 권총 자살을 했어. 깜짝 놀란 루이즈는 혼비백산하여 옷 벗은 그 상태로 밖으로 도망을 갔고, 길거리에서 경찰에게 체포 당했단다.

수학교사 출신으로 지금은 병참대 통신병으로 근무하는 가브리엘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가브리엘은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올바른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와 반대의 성향을 가진 라울 랑드라드라는 사람이 가브리엘과 같은 내무반에 있었어. 라울은 똘마니 2명을 데리고 다녔고, 군대 내에서 온갖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벌고 있었어. 라울과 똘마니들은 가브리엘을 괴롭혔어. 그들 때문에 가브리엘은 피를 토한 일도 있었는데, 다행히 의무반에서 진료를 받고 군의관의 도움으로 특별 보급관으로 전출을 갔단다. 보급관이라는 직책은 군대의 각종 보급품을 사병들에게 나눠주는 직책이야. 라울이 찾아와 협박을 하여 보급품을 빼돌리는 것에 협조를 할 수 밖에 없었어. 올바른 생활만 하던 가브리엘에게는 내키지 않은 일이지만, 당장의 라울의 협박이 무서웠던 것이지.

한편 루이즈는 경찰에 체포된 이후 노신사의 죽음에 대해 조차를 받았어. 하지만 루이즈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잖아. 심지어 그 노신사의 이름이 티리옹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결국 그 사건은 노신사의 자살로 종결되었고, 루이즈는 집으로 돌아왔단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루이즈는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단다. 작년에 엄마를 잃을 슬픔을 간신히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겪어야 했어.

그렇게 자살로 사건이 종결되었는데 며칠 뒤 다시 재판소에서 소환장이 날라왔단다. 재판장이 죽은 노신사의 부인도 같이 소환을 했단다. 티리옹 부인에게 루이즈를 죽은 티리옹을 협박했을 있다면서 협박죄로 기소를 할 수 있다고 제안을 했어. 오지랖 넓은 재판장이구나. 하지만 티리옹 부인은 거절을 했고, 루이즈는 다시 풀려나서 집으로 돌아왔단다. 이 사건으로 학교 선생님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카페에도 나가지 않았단다.

또 한 명 주요 인물 데지레 미고에 대해 소개해줄게. 그는 제빵사 아가씨의 살인사건을 정당방위라는 논리를 집행유예를 이끌어낸 유능한 변호사였다. 아니 변호사인줄 알았단다. 데지레는 가짜 변호사 행세를 했어. 그런데 가짜 변호사 행세 이전에는 가짜 선생님, 가짜 파일럿, 가짜 외사의사를 했던 이력이 있구나. 마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라는 영화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맡은 역처럼 말이야. 가짜 변호사라는 사실이 들통이 날 것 같게 되자 그곳을 떠났단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가짜 신분으로 외교부에서 검열관으로 일하게 되었어.

….

소설은 아빠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해주게 된단다. 읽다 보면 이 사람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또는 이 사람들이 언제쯤 만나게 될까? 하는 호기심을 갖고 읽었단다.


2.

이야기를 계속 해보자꾸나. 1940년이면 세계2차대전이 막 시작되어 유럽 전체로 전쟁이 퍼져나가려고 하는 시기였단다. 일반 국민들도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에 두려워하고 있었지. 결국 독일은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로 쳐들어왔단다. 가브리엘은 아르덴 숲 근처에 배치를 받고 55보병사단을 지원하는 200명에 선출되어 뮈즈강에 전진 배치되었단다. 최전선에 배치를 받은 것인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가브리엘은 독일 전차들의 예상 경로에 있는 교각에 폭탄을 설치하는 일을 하게 되었어. 이 일에 라울도 같이 차출되어 있더구나. 그들이 설치한 폭탄의 도화선이 그만 오작동해서 터지지 않았단다. 이를 어째다른 이들은 다 후퇴하는데 가브리엘은 총으로 폭탄을 사격했어. 그리고 결국 성공하여 폭탄을 터뜨리는 성과를 냈단다. 역시 모범생이구나. 가브리엘과 라울은 독일의 전차 공격이 있은 후로 무조건 도망을 갔단다.

가브리엘은 어쩌다가 자신을 괴롭히던 라울과 함께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단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던 프랑스 군일들이 흩어져 각자 알아서 도망을 갔어. 가브리엘은 라울이 훔친 차를 타고 빈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음식을 먹고 그랬어. 가브리엘은 이런 일들이 옳지 않은 일이라서 불편했지만, 라울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군대를 이탈해서 도망가는 것이 탈영이 아닌가 하고 걱정도 했단다. 그와 달리 라울은 이런 불법적인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했어.

….

한편, 루이즈는 전쟁이 나고 난민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단다. 그런데 어느날 노파가 찾아왔는데, 노파는 자신이 호텔 주인이라고 했어. 그 노신사가 자살하고, 루이즈가 혼비백산되어 뛰쳐나왔던 그 호텔의 주인. 왜 찾아왔을까? 루이즈는 호텔 주인으로부터 호텔이 손해 본 것에 대해 배상하라고 했어. , 이것을 루이즈가 배상을 해주어야 하는 게 맞는 건가? 그러면서 이상한 이야기를 했어. 오래 전에 루이즈의 엄마와 그 의사가 한동안 자신의 호텔을 자주 찾았었대. 그게 정확히 언제냐면 1905년에서 1906년이라고 했어. 그때면 루이즈의 엄마가 결혼하기 전이었지. 루이즈의 엄마는 결혼하기 전이라고 해도 티리옹은 결혼을 한 상태였을 텐데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불편했어. 그런데 루이즈의 엄마가 결혼하고 나서인 1912년부터 1914년까지도 왔었다는 거야.

1914년에 1차세계대전이 일어났는데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그들은 오지 않았다고 했어. 그 시기라면 루이즈의 엄마가 결혼도 하고 루이즈도 낳은 다음인데 말이야. 루이즈는 이런 사실을 당연히 전혀 몰랐지. 도대체 엄마와 자살한 티리옹과는 무슨 관계였던 것일까. 적절한 관계는 아닌 것처럼 보이는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의사가 카페에 와서 앉은 창가자리는 루이즈의 집에 잘 보이는 위치였단다. 그렇다면 그가 그 카페에 처음부터 온 이유도 루이즈의 집을 보기 위해서어쩌면 루이즈의 엄마를 보기 위해서그리고 카페에서 일하던 루이즈를 보기 위해서?

루이즈는 엄마와 티리옹 씨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확인해 보려고 티리옹 부인을 찾아갔단다. 티리옹 부인도 알고 있었어. 티리옹과 루이즈의 엄마가 불륜 사이라는 것을심지어 루이즈의 엄마가 티리옹의 아들을 임신한 적도 있었고, 그 아들은 1907년 태어났는데, 티리옹이 그 아들을 보육원에 버렸다고 했어.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그렇다면 그 티리옹의 아들은 지금까지 등장했던 이들 중에 한 명일 가능성이 높겠구나. 그렇게 등장인물들이 이어지는구나. 누굴까? 모범생 가브리엘?  불법을 많이 저지르는 라울? 캐치 미 이프 유 캔 데지레?

한편 전쟁이 나고 데지레는 공보국 대변이 되어 전쟁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맡았어.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모호하게 소식을 전했단다. 어떻게 보면 사기를 치는 거잖니. 그리고 사기를 치는 거는 데지레가 잘 하는 일이고적성에 맞는다고 해야 할까, 데지레는 이 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단다. 인정을 받으면 시기를 하는 사람이 생기는 법. 데지레에게 이전 이력에 대해서 캐묻는 사람이 있었어. , 자칫하면 이 일을 또 그만두어야 할 수도 있겠구나.


2.

가브리엘과 라울은 계속 도망을 갔단다. 훔친 자동차의 기름이 떨어지자 차를 버리고 이번에는 자전거를 훔쳐서 도망을 갔어. 라울은 빈 술집에 들어가 술도 먹고, 가브리엘은 이런 라울을 불편해 하고하지만 그와 헤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고그렇게 길을 가다가 그들은 다른 프랑스군을 만나 체포되고 만단다.

루이즈는 티리옹이 버린 아이를 추적했어. 1907년에 태어났다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오빠였단다. 아빠는 다르지만 엄마가 같은 오빠. 그리고 보육원에 가서 그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된단다. 라울 랑드라드. 오호, 라울이었구나.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라울을 입양해 간 사람이 다름 아닌 티리옹이었단다. 그러니까 티리옹은 루이즈의 엄마와 불륜으로 낳은 아들을 보육원에 버렸다가 나중에 자신이 다시 입양한 것이야. 이런 사실을 루이즈의 엄마는 평생 몰랐어. 알았다면 삶이 더 괴로웠을려나.

루이즈는 티리옹의 딸 앙리에트도 만났단다. 앙리에트는 라울보다 15살이나 많았어. 티리옹이 라울을 입양을 했으니 앙리에트는 라울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사람이지. 티리옹 부인은 라울을 멸시했대. 그 아이가 티리옹의 사생아라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 그래도 앙리에트는 나이 차 많이 나는 라울을 잘 보살펴 주었대. 라울에게 유일하게 잘 해준 사람이 아닐까 싶구나. 라울은 지금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군대에 갔다고 했어. 그러면서 라울의 사진도 주고, 루이즈의 엄마가 티리옹에게 보냈던 편지들도 전해주었단다.

페르낭이라는 헌병대원이 있었어. 그는 아내 알리스와 파리에 살고 있었고, 알리스는 몸이 허약해서 먼저 누나가 살고 있는 시골집으로 피신시켰단다. 페르낭은 어느날 세르슈미의 교도소로 집합하라는 명령어를 받았단다. 세르슈미의 교도소에는 체포되었던 라울과 가브리엘이 수감되어 있었어. 루이즈도 라울이 세르슈미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을 알고 면회하려 왔었지만, 허가가 나지 않았단다. 라울과 가브리엘은 다른 죄수들과 함께 모두 어디론가 이감하게 되는데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인솔하는 헌병대원들도 몰랐단다.

그 헌병대원들 중에 페르낭도 포함되어 있었단다. 루이즈는 라울이 파리의 남쪽 오를레앙으로 이감된다는 소문을 듣고 오를레앙으로 향했단다. 루이즈가 일하던 카페의 사장 쥘 씨가 도와주겠다고 했어. 쥘 씨의 차를 파리를 떠나 남쪽으로 향했지만, 파리를 떠나려는 수많은 피난민들 때문에 계속 정체되었단다. 피난길을 그야말로 고생길이었어. 노숙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먹는 것, 화장실 가는 것 등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단다. 루이즈는 쥘 씨와 함께 라울의 부대를 쫓아가면서, 엄마의 편지들을 읽어보았단다. 뜨겁고 진정 담긴 사랑이 담겨 있는 편지였어. 루이즈는 라울의 우연히 이감을 담당하고 있는 페르낭을 만나게 되어 편지를 전달해 주었단다. 라울에게 보내는 편지. 페르낭은 그 편지를 라울에게 전달하였고, 라울도 자신에게 이부 여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

페르낭은 수인들을 인솔하는데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사항들에 불만이 많았어. 수인들에 대한 처우가 상당히 열악했거든. 시설들은 둘째 치고라도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 수인들은 불만이 터지기 직전이었어. 그들은 죄수들이었으니 언제 어떻게 터져도 이상할 게 없었지. 라울은 탈출을 계획했단다. 가브리엘도 어쩔 수 없이 동참했어. 이제 라울은 가브리엘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동료였단다. 페르낭은 주변 농장에서 먹을 것을 징발하였단다. 그리고 시골에 있는 아내가 걱정이 되어 우체국에 들러 누나의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아내는 근처 예배당에서 지낸다고 했어.

알리스는 예배당에서 난민들을 보살피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어. 그런데 이 예배당의 신부가 누구인지 아니? 바로 데지레 신부였어. , 웃음이 나오더구나. 데지레가 공보국에 더 있다가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까 봐 그곳을 도망쳐 나와 신부로 변장하고 이곳 시골 예배당으로 온 것이야.

...


3.

루이즈와 쥘 씨도 공습 때 헤어지게 되었어. 루이즈는 가는 길에 어떤 보육원 보모가 공습에 죽은 걸 봤단다. 그런데 그 보모가 보살피던 아이 셋은 살아 있었어. 그 아이들을 버릴 수 없어서 루이즈는 그 아이 셋을 데리고 갔단다. 루이즈는 아이 셋을 데리고 피난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았어. 전쟁통에 아이 셋 있는 여자를 도와주려는 이는 많지 않았어. 그러다가 한 신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신부는 루이즈와 아이 셋을 자기가 관리하는 예배당으로 데려갔단다. 그 신부가 누구인지 알겠지? 그래, 너희들도 예상했겠지만 데지레야.. 데지레가 비록 가짜 신부였지만,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마음은 진심이었던 것 같아. 곰곰이 생각해보면 데지레가 가짜 변호사일 때는 억울한 빵집 아가씨를 정당방위로 집행유예를 이끌어냈고, 가짜 외교부 대변인으로 일할 때는 그 자리에서 나름 인정을 받았고, 신부가 되었을 때는 또 신부 역할을 잘 하는 것 같구나. 그를 사기꾼이라고 보면 안 될 것 같구나.

….

라울이 이감되는 동안 공습이 잦아지고 있었고, 그 공습에 가브리엘이 허벅지 관통상을 당하고 말았어. 페르낭도 계속된 공습에 수인들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시도 없고, 먹을 것은 또 떨어지고 불만이 가득했어. 그 와중에 상부에서 지시가 떨어졌는데, 수인들을 도보로 30km 이동시키라고 했고, 낙오자들이 있으면 도망자로 취급해서 죽이라고 했어. 페르낭은 부상자들이 있다며 도보로 이동이 어렵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라울은 부상당한 가브리엘을 들쳐 업고 걸어갔다. 그리고 결국 그들을 몰래 행렬에서 이탈해서 도망을 갔단다. 가브리엘은 부상당했지 먹을 것은 없지 언제 공습이 또 올지 모르지, 쉽지 않은 도망길이었단다. 그들이 가는 길에 어떤 시골집에서 노파를 한 명 만났는데 노파는 그들이 불쌍해서 데지레 신부의 예배당을 알려주었단다. 그렇게 라울과 가브리엘도 데지레의 예배당에 도착했단다. 가브리엘은 부상이 덧나서 정신을 잃었고, 라울은 가브리엘을 엎고 오느라 탈진해서 정신을 잃었어. 그곳에 이부 여동생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겠지.

그렇게 출발점이 달랐던 주인공들은 예배당에서 모두 모이게 되었단다. 라울은 휴식을 취하고 정신이 들고 나서 드디어 이부 여동생인 루이즈와 생애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단다. 이런 역경을 겪으면서 만났으니 앞으로 평생 사이 좋은 남매가 될 것 같구나.

페르낭의 이야기도 해줄게. 페르낭은 수감자들의 수송 임무를 모두 마치고 알리스가 있는 예배당에 왔단다. 페르낭은 그곳에서 라울과 가브리엘을 보았지만 이젠 다 같은 전쟁 피해자일뿐이지. 그런데 아빠가 한창 칭찬을 했던 데지레 신부가 사라졌단다. 페르낭이 가지고 온 거금이 들어 있던 가방과 함께ㅎㅎ 데지레는 마지막까지 웃음을 주는 캐릭터로구나. 지은이의 이런 블랙 유머가 마음에 드는구나. 그런데 에필로그를 보니 데지레가 나중에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는 이야기도 했대.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났단다.

오르부아르 삼부작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지은이 피에르 르메르트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의 배경으로 하는 소설도 3부작으로 계획하고 있다는구나. 그 중에 1부는 벌써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 열심히 번역 중이겠구나. 그 시리즈도 무척 기대되는구나.

이상. .


PS:

책의 첫 문장: 전쟁이 곧 시작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시들해져 있었고, 누구보다도 쥘 씨가 그랬다.

책의 끝 문장: 지금 우리는 롤랑 바르트가 <데지레의 신화>라고 부른 것의 심화된 연구(출판사 사람들의 말로는, 굉장한 사실들을 밝혀 줄 것이라고 한다)를 예고한 용감한 역사가의 작업을 몹시 궁금해하며 기다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