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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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유시민 님의 신간이 나왔단다. 지금까지 쓰신 책들과 결이 다른 책이었어. 책 제목에 이미 어떤 책인지 알려주는구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아빠는 처음에 제목을 슬쩍 봐서, <문과 남자의 이과 공부>인줄 알았단다. 나중에 다시 책을 검색을 해보니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더구나.

유시민 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다녔단다. 지금과는 다르겠지만, 서울대 경제학과를 들어가려면 문과이긴 하지만 수학과 과학도 공부를 꽤 잘해야 할 것 같은데, 유시민 님은 수학과 과학은 잘 못했다고 하더구나. 그래도 시험은 잘 봐야 하니까, 많은 문제를 풀어 패턴을 외워서 시험을 풀었다고 했어. 난관이 있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해결책을 찾으셨구나. 유시민 님의 부인되시는 한경혜 님은 유시민 님이 그렇게 취약하다고 한 수학을 전공하셨다고 하는구나. 그것도 박사까지 밟으셨대. 이번 책의 기획은 그런 아내 분께서 제안을 해서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유시민 님께서 과학 분야의 책들도 여럿 읽었으니 그런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라고 말이야.

아빠가 생각하는 유시민 님의 장점은 어떤 내용에 대해서 먼저 자신이 이해를 하고 그 내용을 논리적으로 쉽게 잘 전달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단다. 유시민 님께서 과학 분야는 잘 모른다고 했지만, 읽으신 과학 책에 대한 내용은 잘 정리해서 이야기해줄 거라 생각했단다. 이 책에서 소개한 교양 과학책들 중에는 아빠도 읽은 책들도 여럿 있었단다. 아빠는 그 내용만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유시민 님께서는 그 내용을 인문학적 영역으로 확장해서 설명을 해주셨단다. 역시 유시민 님이구나.

그냥 과학책의 리뷰로 끝났다면 다른 독서 리뷰책과 다를 바 없었을 텐데, 유시민 님의 색깔을 덮여 놓으니 색다른 장르의 책이 하나 나온 듯싶었단다. 이번에는 과학과 인문학의 콜라보였는데, 다음에는 또 다른 분야, .. 예를 들어 예술과 인문학의 콜라보이런 소재로도 책을 써보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1.

예전에 인문학 교양을 겸비한 엔지니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단다. 그런데 그 반대로 과학 교양을 겸비한 인문학자는 좀 낯설구나. 유시민 님은 인문학의 위기를 과학 공부를 하는 인문학자가 없다는 데서 보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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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인문학이 진짜 위기에 빠지는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은 때다. 나는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닌지 의심한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굳이 과학 공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인문학 위기론을 꺼냈다. 나는 인문학자가 과학을 공부하지 않고 과학자들이 찾아낸 사실을 활용하지 않는 데서 인문학의 위기가 싹텄다고 본다. 운명적 문과로서 인문학 책만 읽으며 살았던 내가 요즘은 인문학 책이 재미없다. 강력한 지적 자극을 받은 경우가 드물다. 무엇인가를 새로 아는 즐거움을 주거나 오래된 생각을 교정하도록 격려한 것은 과학 책이었다. 설마 나만 그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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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과학 공부를 하는 가이드도 함께 이 책을 통해서 주었단다. 우리 같이 일반 사람들은 과학 전공까지 볼 필요는 없다고 하고 교양 과학 서적과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의 유튜브만 봐도 충분하다고 하셨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분야는 순서대로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 순으로 이야기를 주고 있단다. 뇌과학에서는 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뇌과학 측면에도 이야기를 해보았단다. 뇌과학 측면에서는 나는 내일 바뀔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단다. 그리고 아빠와 같은 나이에서는 점점 퇴화하고 있다고 하는구나. 살아온 날이 많아지는 만큼 데이터는 쌓이지만 뇌는 어리석어진다고…. 늘어나는 데이터와 어리석어지는 뇌를 잘 조합해야 꼰대가 되지 않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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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00)

뇌과학자들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과 거꾸로 뉴런의 연결 패턴에 영향을 준다.’ 자아가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는 말이다. 물질이 아닌 자아가 물질인 뇌를 바꾼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내 뇌는 매순간 퇴화하고 있다. 내 자아는 날마다 어리석어지는 중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덜 어리석어지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세상과 연대하며 낯선 곳을 여행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뇌에 새로운 데이터를 공급하는 것뿐이다. 어리석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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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물학 분야에서는 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책인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대해서 이야기를 한단다. <종의 기원>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과학적 고찰인데 정치인들은 이것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려고 했단다. 우파는 <종의 기원>을 오남용해서 약자들을 그냥 두라고 이야기하고 극단적인 우생학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좌파는 <종의 기원>을 배척했는데 그 이유는 우파가 <종의 기원>을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하더구나. 다윈주의를 제대로 이해할 생각은 하지 않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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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다윈의 이론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보다 더한 시련을 겪었다. 누구는 진화론을 오용(誤用)해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고, 누구는 진화론을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준 이론이라 비난하고 배척했다. 오용한 쪽은 우파’, 배척한 쪽은 좌파. 우파와 좌파를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다윈주의와 관련해서는 그나마 수월하게 구별할 수 있다. 우파는 생존경쟁을 피할 수 없는 자연법칙으로 간주하고 격차와 불평등을 발전의 동력이라고 옹호하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정책에 반대하는 개인과 집단이다. 좌파는 사회적 약자, 착취당하는 사람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인가 하려는 개인과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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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관련해서 소개한 또 다른 책은 <이기적 유전자>란 책이야. 이 책은 아빠도 예전에 읽어봤는데, 번역이 좋지 않은 판본으로 읽어서 안 좋은 기억만 남았는데, 그 책의 요점은 유전자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를 조종한다는 내용이야. 유전자 자신들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몸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는 것이지. 유전자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희생도 감수한다고 것도 기억이 나는구나. 이런 유전자의 가설에 있어 유전자들이 모인 개체들이 간혹 취하는 이타주의를 입증해야 하는데 그것도 유전 연관도라는 내용으로 증명을 했다고 하는구나. 그러니까 개체가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유전자 입장에서는 이득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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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오해할까 봐 다시 강조한다. 유전자는 친족이타주의를 설계하지 않았다. 유전자는 그 무엇도 설계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를 복제할 뿐이다. 일꾼개미와 여왕개미의 분업은 유전적 우연과 자연선택이라는 필연의 산물이다. 대부분의 동물이 출산과 양육을 위해 헌신하도록 진화한 것은 자식을 잘 돌보도록 하는 유전자를 가진 개체의 번식 성공률이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자연선택은 어떤 종 어떤 개체한테도 특권을 주지 않으며 진화는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식을 돌보는 것과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훌륭해서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다. 해밀턴은 그 모든 형태의 친족이타주의에 유전 연관도라는 생물학적 기초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나는 그 이론에서 물질의 증거를 토대로 대상의 보이지 않는 실체에 다가서는 과학의 매력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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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소와 원자라는 의미가 헛갈리곤 하는데, 유시민 님도 원소와 원자가 헛갈리셨나 보구나. 원소와 원자의 차이를 정의해 주었단다. 그러면서 원소는 호모 사피엔스, 원자는 한 사람으로 비유하셨는데,

적절한 비유로구나. 나중에 원소가 호모 사피엔스였는지 원자가 호모 사피엔스였는지 헛갈리면, 원자(原子)의 한자에 아들(사람)을 의미하는 한자가 있으니 원자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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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170)

우주의 모든 물질은 원소(元素)’로 이루어져 있다. 결합해서 어떤 물질의 분자를 이루는 원소는 보통 두 종류 이상이지만 산소, , 다이아몬드처럼 원소가 하나인 물질도 많다. 더 작게 나누면 고유의 성질을 잃는다는 의미에서 물질의 기본 성본인 원소는 원자(原子)와 같고 또 다르다. 물리학 책에는 주로 원자가 나오고 화학 책에는 원소와 원자가 뒤섞여 나온다. 한참을 헤맨 끝에 나름대로 이해했다. 원자는 원소의 한 단위다. 생물학 언어로 하면 원소는 호모 사피엔스, 원자는 한 사람이다. 물질의 성질과 변화를 연구하는 화학자에게는 원소가 중요하고, 미시세계의 역학을 탐구하는 물리학자에게는 원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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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분야에서는 주기율표에 얽힌 이야기와 탄소와 관한 이야기도 해주었어. 기후 위기로 탄소 농도가 점점 높아져서 골치가 아픈데, 생명체를 이루는 요소에도 탄소는 아주 중요한 원소란다. 아마 우주에서 다른 생명체가 발견된다면 그 생명체도 탄소가 주요 원소일 것이라고 하더구나.

물리학 부분은 주로 현대 물리학에 관한 이야기를 했단다. 현대 물리학의 두 가지 거대한 이론인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유시민 님이 양자역학의 대중화에 힘을 쓰신 김상욱 교수님과 친분이 있으시니, 양자역학에 대해 더욱 잘 설명해 주시는 것 같았단다. 아빠도 두 분이 함께 나오는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를 좀 봤는데 서로 존경하는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았어.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하나로 모으려는 통합이론에 관한 이야기도 있는데, 이 통합이론 또는 통일장이론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언제쯤 밝혀질까. 일반인인 아빠도 무척 궁금하구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아빠도 관심이 많아 다른 책 이야기할 때 여러 번 했으니 오늘은 생략할게.

이 책에서 마지막으로 이야기해준 것은 수학 분야란다. 간단한 수식으로 표현하는 수학의 정리들은 아빠가 봐도 아름답더구나. 예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이라 부르는 오일러의 공식은 아빠도 인정한단다. 그런 간단하고 공식을 찾고자 많은 수학자들이 있었나 보구나. 수학자들 중에는 특히 괴짜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하나의 수식, 하나의 증명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도 참 많단다. 유시민 님들은 그 중에 몇 명의 수학자들을 소개해 주었는데, 너희들은 수학자가 안 되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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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수학을 모르면 우주의 철학을 알 수 없다고 했던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을 받고 피렌체 변두리의 시골집에 갇혀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냈다. 수학자들이 가우스에 버금가는 수학 천재로 인정하는 뉴턴은 다른 과학자들과 숱한 연구업적다툼을 벌였다. 가우스는 냉담하고 무지한 아버지 때문에 어린 시절을 고달프게 보냈고 어른이 된 후에는 아내와 두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오일러는 백내장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생애 마지막 15년 동안 앞을 보지 못했다. 갈루아는 프랑스대혁명에 가담했다가 스무 살에 감옥에 갇혔고 스물한 살에 결투를 하다 목숨을 잃었다. 라마누잔은 우울증으로 자살을 기도했고 극단적 채식으로 건강을 해쳐 서른세 살에 죽었다. 칸토어는 마흔도 되기 전에 우울증에 걸려 수학 연구를 그만두었고 극심한 망상 증세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정신병원에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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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짧은 지식으로 과학과 인문학이 잘 어우러진 이런 책의 독서편지 쓰기는 역시 어렵구나.


PS,

책의 첫 문장: 2009년 봄이었다.

책의 끝 문장: 인생의 막바지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이런 아쉬움을 느끼는 문과가 없기를  바라면서 과학에 관한 인문학 잡담을 마친다.


공부에는 너무 늦은 법이 없다는 말, 수학에는 통하지 않는다. 두뇌가 원활하게 돌아가던 젊은 시절에도 되지 않았던 수학 공부가 노년에 접어드는 지금 될 리 없다. 그런 나를 세이건 선생과 도킨스 선생이 격려해 주었다. ‘수학을 몰라도 돼. 내가 인간의 언어로 말해 줄게.’ 나는 그들의 말을 일부 알아들었다. 용기를 북돋워 주는 문장도 만났다.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 하는 방법이다." 문과라도, 나이를 먹었어도, 과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 P31

‘나는 나를 알아!’ 흔히 하는 착각이다. 나도 한때는 착각했다. 나는 조용히 방에서 혼자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한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불편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하다. 내게 잘해주는 사람도 좋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 더 좋다. 부자한테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시민을 돕는 데 찬성한다. 화력발전과 핵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하는 데 필요하다면 전기요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려고 배달 음식 주문을 삼간다. 외모를 꾸미는 데 돈 쓰기를 주저한다. 기도를 들어주는 신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후 세계, 지옥과 천국, 윤회, 육체와 분리된 영혼, 구원, 영생 같은 것을 믿지 않는다. 지성을 뽐내는 사람은 부러워하지만 돈과 권력을 자랑하는 사람은 경멸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안다. 그러면 나를 아는 것인가? - P45

어느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직원 평균 연봉의 1000배를 가져가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 연봉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지 생산에 1000배 더 기여해서가 아니다.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똑 같은 작업을 하는 원청 소속 노동자의 절반 수준 시급을 받는 것은 중간착취와 불평등을 허용하는 제도 때문이지 생산 기여도가 낮아서가 아니다. 한계생산력분배이론의 오류는 신경세포의 작동 원리를 물리법칙 형식으로 만들어 신경세포와는 무관한 경제현상에 적용한 데서 생겼다. 아름다운 수학을 썼다고 해서 진리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그 이론을 강단에서 가르치고 대중에게 전파한다. 부자가 좋아하는 우화를 퍼뜨리면 보상이 따라온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 P62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인문학자들은 오랜 세월 인간 본성을 두고 논쟁했지만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 논쟁을 종결하려면 사실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인문학자는 하지 못했던 그 일을 신경과학자들이 해냈다. 1992년 이탈리아 파르마대학교 연구진은 특정한 행동을 할 때 발화하는 원숭이 두피질의 일부 뉴런이 다른 원숭이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도 발화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후속 연구자들이 인간의 뇌에도 같은 기능을 하는 뉴런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거울신경세포’라는 멋진 이름을 얻은 그 세포는 세상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마음을 읽는 세포’라거나 ‘문명을 만든 뉴런’이라고 명예로운 별명도 생겼다. - P85

유전자는 특정 종의 생존에 관심이 없다. 모든 종의 모든 개체에 서식하고 있으니 어떤 종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에서 지구를 구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공감하지만 전적으로 공감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지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없을 때도 지구와 생물은 존재했다. 인류가 사라진다고 해도 지구에는 아무 문제 없다. 기후위기와 핵폭탄에서 우리 자신을 구하려면 인류 전체가 협력해야 하는데, 호모 사피엔스가 그 일을 해낼 것이라고 확신할 근거가 없다. 그래도 무언가 하긴 해야 한다. 우리 자신 말고는 누구도 우리를 구할 수 없으니까. - P159

엔트로피 법칙은 우주의 묵시록이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나는 러셀의 말에 공감한다. 신을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엔트로피 법칙은 영원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 우주에는 그 무엇도, 우주 자체도 영원하지 않다. 오래간다고 의미가 그 무엇도, 우주 자체도 영원하지 않다. 오래간다고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존재의 의미는 지금, 여기에서, 각자가 만들어야 한다. 우주에도 자연에도 생명에도 주어진 의미는 없다. 삶은 내가 부여하는 만큼 의미를 가진다. 길든 짧든 시간을 조금 덜어 이 책을 썼다. 쓰는 동아 즐거웠다. 남들과 나누면 더 좋을 것 같다. 그게 전부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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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석사과정중 2023-10-04 06: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상당히 동의하지 못하는 내용이 있어서 댓글 답니다.

˝우파는 생존경쟁을 피할 수 없는 자연법칙으로 간주하고 격차와 불평등을 발전의 동력이라고 옹호하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정책에 반대하는 개인과 집단이다??? 좌파는 사회적 약자, 착취당하는 사람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인가 하려는 개인과 집단이다????˝

우파 정책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메시지와 정책이 얼마나 많은데, 한쪽 진영을 약자보호를 경멸하는 개인과 집단으로 매도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여러 댓글을 보며 예측해보건데 40~50대로 보이고, 님의 아들 딸은 저랑 비슷한 20대인것같습니다. 아들 딸에게 메시지를 남긴다고 하셨으니 자녀 세대로서 한마디 드리겠습니다.
되도록이면 편향적이고 편협한 얇은 지식이 아닌, 넓고 본받을 만한 지식을 다음세대에 전수해주는 것이 올바른 어른이자 부모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대들이 정해놓은 사회적 틀안에 저희세대를 가두려는 시도를 멈춰주시고 저희세대는 이것을 강력히 거부합니다.
좌파 우파 그거 모릅니다. 관심없습니다. 다만, 한쪽 진영만이 사회적으로 약자를 돌보고 평등을 추구하는 선한집단, 반대집단은 기득권을 놓치않은 악의 집단이라는 아주아주 좁디좁은 사고의 틀을 제발 그쪽 세대에서 끊어주세요. 그러한 유산을 저희 세대는 강력히 거부합니다.
 
80일간의 세계 일주 - 개정판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4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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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쥘 베른. SF 소설도 많이 쓴 쥘 베른의 대표작 중에 하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었단다. 이 소설은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서, 영화나 만화로도 여러 번 제작이 되었고, 어린이용으로도 많이 판본이 있단다. 이 소설을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훨씬 많을 듯. 그런데 아빠는 이 소설을 읽은 적이 없었단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동화로 편집된 책도 읽은 적이 없는 것 같아.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책 제목처럼 어떤 사람이 80일 동안 세계 여행을 하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했단다. 80일간 이어지는 세계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왜 재미있을까? 이런 생각도 했지. 읽고 났더니 왜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지 알겠더구나. 너희들도 예전에 짧게 동화로 편집된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었으니 대충 줄거리를 알겠지만, 아빠가 한 번 더 이야기해줄게.

1.

1872년 런던에 필리어스 포그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엄청 꼼꼼하고 시간은 철저하게 지키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단다. 하인이 면도할 물의 온도를 30도가 아닌 29도로 가지고 와서 그 하인을 자를 정도로 칼날 같은 사람이었어. 그렇다고 아주 구두쇠는 아니었다고 하는구나. 그는 혁신클럽에 가입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80일 안에 세계일주를 할 수 있다 없다로 논쟁이 벌어졌고, 포그는 할 수 있다고 주장했어.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내기를 하자고 했단다. 그렇게 80일간 세계 일주에 대한 내기를 하게 되었단다. 금액은 무려 2만파운드를 걸었어.

포그는 그날 바로 출발하기로 했단다. 얼마 전에 하인을 해고했다고 했잖아. 새로운 하인으로 프랑스 출신 장 파스파르투를 고용했고 그와 함께 여행을 출발했단다. 포그의 머릿속에는 각 구간별 소요되는 시간이 다 들어 있었고, 그 구간별 시간만 지키면 정확하게 80일만에 다시 런던에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 포그가 떠나고 런던에서는 그의 성공 여부에 대한 또 다른 내기가 벌어졌고, 언론에서도 그의 소식을 전하고 포그에 대한 주식도 생기기도 했단다. 얼마 후 어떤 언론에서 그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면서 냉철하게 분석한 기사를 썼는데 사람들이 그 기사를 보고 대부분 실패한다는 쪽에 돈을 걸었단다.

픽스라는 형사가 있었어. 그는 거금의 은행 돈을 훔친 은행절도 용의자의 용모가 포그와 똑같다면서 포그의 뒤를 쫓게 된단다. 픽스는 아직 포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받지 못해서 그를 체포하지는 못하고 일단 추격만 했어. 픽스는 런던경찰청에 전보를 보내서 영장을 요청했지만, 그 당시에는 영장은 우편물과 함께 오다 보니 시간이 한참 걸렸단다. 포그는 런던을 출발하여 지중해와 아랍 지역을 통과하여 인도까지는 오는데 아무런 사고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계획보다 2일이나 앞당기게 되었단다.

그런데 인도를 횡단하는 기차길이 80km나 끊겨 있었단다. 아직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구간이야. 그런데도 기차표를 팔다니….  일정이 지연되었지만 앞서 2일이나 벌어 놓은 것이 있어서 문제가 없었어. 지은이 쥘 베른이라는 분은 80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세계 일주도 80일간 하고, 인도 기차길 끊긴 거리고 80km이고아무튼 포그와 파스파르투는 80km를 마차를 타고 가기로 했단다.

가는 길에 이상한 부족의 이상한 장례 풍습을 보게 되었단다. 서티라고 하는 풍습인데 죽은 남편을 따라 아내를 불에 태우는 잔인한 풍습이었단다. 마침 아우다라는 젊은 부인이 서티를 앞두고 있었단다. 포그는 이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파스파르투와 동행하던 프랜시스 크로마티 경이라는 사람과 함께 아우다 부인을 극적으로 구출해 주었단다. 알고 보니 아우다 부인은 어렸을 때 유럽에서 공부를 해서 영어도 잘 했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늙은 부자에게 시집을 갔다가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했어. 아우다 부인은 일단 갈 곳이 없어서 동행하기로 했고, 아우다 부인은 홍콩에 있는 친척 집으로 가겠다고 했어.

….

캘커타에 도착한 포그는 사원의 물건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해서 구류 8일을 선고 받았단다. , 80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8이네…. 쥘 베른이 8을 좋아하나? 중국 사람도 아니면서아무튼 구류 8일이면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물 건너가게 되는 거야. 사실 이런 일은 픽스 경찰이 영장이 올 때까지 그들을 억류시키려고 했던 거란다. 하지만 포그는 거금을 주고 보석으로 풀려났단다. 그리고 제시간에 홍콩에 도착을 했단다.

2.

아우다 부인을 친척 집에 데려다 주려고 했는데, 친척은 유럽 여행을 갔다고 했어. 이런, 어쩔 수 없지아우다 부인도 다시 유럽까지 동행하기로 했단다. 이미 아우다 부인과 포그 사이에 썸을 타고 있어서 그들은 내심 좋았했단다. 픽스는 어떻게 하면 포그를 잡을까 고민하다가 포그의 하인인 파스파르투에게 접근하여 이야기하기로 했단다. 파스파르투는 이미 포그의 인간미에 반해서 무조건 충성을 외치는 사람인데, 픽스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단다. 그러자 픽스는 파스파르투에게 마약을 주어 정신을 잃게 했단다. 사실 포그 일행이 타기로 했던 배 시간이 앞당겨졌고, 그 사실을 파스파르투가 알고 있었는데, 픽스가 마약을 주어 파스파르투를 정신 잃게 하여 배를 놓치게 한 것이란다.

그렇게 포그 일행은 배를 놓치고 말았고, 다음 배는 일주일 있다 출발한다고 했어. 그렇다면 80일은 물 건너가는 것인가. 어떤 일이 일어나도 포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단다. 그들이 홍콩에서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하여 미국행 배를 타려고 했던 것인데 알아 보니 그 배의 출발지는 요코하마가 아니라 중국 상하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상하이에서 출발 요코하마를 경유해서 미국으로 가는 배지. 그리고 아직 상하이에서 그 배는 출발하지 않았고 말이야. 포그는 파스파르쿠가 걱정되긴 했지만, 일단 상하이로 가기로 했단다. 픽스는 이 사실을 알고 자신도 미국에 간다면서 같이 가자고 했단다. 아직 영장이 오지 않아서 픽스는 포그를 계속 추격을 해야 했거든. 포그는 거금을 주고 홍콩에서 상하이에 태워준다는 배를 구했고, 픽스, 아우다 부인과 함께 상하이에 간신히 시간 맞춰 도착했단다. 그렇게 상하이에서 배를 타고 요코하마로 향했단다.

한편 마약으로 정신을 잃었던 파스파르투는 아편에 비몽사몽하면서도 배를 무조건 타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 시간에 배에 탔단다. 나중에 정신이 들자 자신이 혼자 탔음을 하고 자책을 했단다. 그렇게 포그와 파스파르투는 다른 배를 탔지만 둘 다 요코하마에 도착을 했고, 그곳에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게 되었단다. 픽스 형사는 요코하마에서 드디어 영장을 받기는 했지만, 그곳은 영국령이 아니라서, 체포를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다시 포그를 쫓아가야 했단다. 그리고 이제는 포그가 빨리 영국에 도착하는 것이 픽스에게 가장 베스트였단다. 그래야 그를 영국에서 합법적으로 체포할 수 있으니 말이야. 그래서 픽스는 이제 포그가 영국에 빨리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단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후 그들을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가기로 했어. 하지만 가는 길에 인디언의 습격으로 파스파르투가 납치당했단다. (인디언으로 악인으로 설정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더구나. 인디언들의 유럽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저항을 하고 있는 것 뿐인데…) 포그는 이제 더 이상 80일은 생각하지 않았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파스파르투를 구하기로 했단다. 얼마 후 포그가 파스파르투를 안전하게 구출해 왔지만, 기차는 이미 떠나고 말았단다. 픽스는 이제 포그를 도와주기로 했잖아. 당시는 겨울이었는데, 픽스는 오마하까지 눈썰매를 타고 가자는 아이디어를 냈어. 오마하에서 뉴욕에 가는 기차가 있다고 했어.

그렇게 그들은 오마하에 출발하여 시카고를 거쳐 뉴욕에 도착했단다. 하지만, 또 안타깝게도 45분 전에 이미 리버풀행 여객선이 떠나고 말았단다. 그런데 이번에는 80분이 아니고 45분이구나

3.

포그는 여전히 당황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어. 프랑스 보르도가 가는 화물선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 그는 거금을 주고 태워달라고 했고, 포그 일행은 화물선으로 일단 유럽으로 가기로 했단다. 배에 타자마자 포그는 선장을 가두고 배를 리버풀로 경로를 바꿨단다. 하지만 가는 길에 석탄을 써버려서 배를 움직일 연료가 없었어. 포그는 다시 선장과 협상을 했어. 포그는 선장이 놀랠 정도의 거금으로 배를 사겠다고 했어. 선장은 오케이를 했고, 그러자 포그는 배의 갑판 등 나무들로 되어 있는 부분을 뜯어서 연료를 쓰기 시작했단다. 포그는 그냥 뜯어낸 것이 아니고 배를 큰 돈 주고 산 다음에 갑판을 뜯었다는 것은 그가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단다.

다행히 제 시간에 리버풀에 도착을 했단다. 그런데 픽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포그를 체포했단다. , 이리 허망한 일이 있나. 아빠가 포그 같았으면 항의하거나 잡아가더라도 잠깐만 시간을 달라고 했을 것 같은데 포그는 순순히 잡혀 들어갔단다. 몇 시간 뒤 픽스는 포그에 미안하다고 하면서 풀어주었어. 며칠 전에 진범이 이미 잡혔다는 거야. , 이런아직 시간이 남았나. 포그는 얼른 약속장소인 혁신클럽으로 갔단다. 하지만 약속 시간인 8 45분보다 5분이 늦은 8 50분에 도착하고 말았단다. , 이것으로 포그는 2만 파운드를 날리게 되었단다.

그렇게 돈은 날렸지만, 그는 사실 사랑을 얻었단다. 썸을 타던 아우다 부인이 포그에게 청혼을 했고, 포그도 좋다고 했어. , 돈을 잃고 사랑을 얻었으면 됐지. 그런데 픽스만 아니었으면그에게 가서 분풀이라도 하지영국 신사 포그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단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에 파스파르투가 급하게 달려왔어. 아직 80일이 안되었고 말이야. 포그는 약속했던 날보다 24시간 먼저 도착했던 것이라고 했어.

시간을 그렇게 철저하게 지키고 계획적인 포그가 날짜를 헛갈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철저했던 포그도 한가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어. 그들이 세계일주를 할 때 지구의 동쪽으로 이동을 했는데 그러면서 날짜변경선을 지나면서 하루가 뒤로 가게 되었는데 포그가 그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야. 시간을 보니 8 45분까지 7분이 남았단다. 포그는 달리고 달려서 8 45 3초전에 극적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을 했단다. 그렇게 2만 파운드를 벌었단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쓴 것이 1 9천파운드였으니 큰 돈은 벌지 못했겠구나.

마지막까지 재미있는 반전이 있어 좋았단다.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 포그가 참 매력이 있더구나. 특히 어떤 어려움이나 경황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냉정하면서 차분하게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은 본 받을 만 하지만 절대로 쉽지는 않겠구나.

….

아빠가 읽은 쥘 베른의 소설은 이번이 두 번째란다. 아주 오래 전에 <해저 2만리>를 읽었고, 이번이 두 번째야. 그의 다른 책들도 좀더 읽어봐야겠구나. 너희들도 예전에 동화본으로 짧게 편집된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었는데 풀버전으로 한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구나. 일단 지루하지 않는 건 보장하니까.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872, 벌링턴 가든스의 새빌로 가 7번지.

책의 끝 문장: 사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하찮은 것을 위해서라도 세계일주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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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단 대학 탐방기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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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작년에 박지리 님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재미있게 읽고 나서 박지리 님에 대해 알아보다가 안타깝게도 삶을 마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빠도 무척 슬퍼했던 기억이 있구나. 왜 그랬을까. 이렇게 좋은 작품을 쓰셨다면, 앞으로도 더 많은 작품을 남기셨을 텐데 말이야. 어쩔 수 없이 남긴 작품들을 하나 둘 찾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박지리 님의 책을 두어 권을 두 샀단다. 그 때 산 책들 중에 이번에 <양춘단 대학 탐방기>라는 책을 읽었단다.

졸린 눈의 뽀글이 파마를 한 사람이 코끼리를 타고 있는 책 표지는 책의 내용이 코믹하면서 유쾌할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단다. 주인공이 그런 캐릭터였어. 사투리 진하게 쓰고, 다른 사람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하고픈 말 하고 하고픈 대로 하는 양춘단이 주인공이었어. 하지만 이 소설이 이야기하려는 주제는 유쾌하고 코믹한 이야기가 아니었단다.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담겨 있고, 그런 문제들에 대해 생각을 하게 했단다. 작년에 읽은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라는 소설과는 전혀 다른 장르이지만, 이 소설도 훌륭하더구나. 천재 작가의 짧은 삶의 안타까움이 다시 한번 떠올랐단다.


1.

영일은 평생 농사일만 한 농사꾼이었단다. 암에 걸려서 수술을 해야 하고, 수술을 하고 나서도 요양이 필요해서 서울에 있는 둘째 아들 종찬이네 집으로 이사를 갔단다. 영일의 아내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양춘단이란다.

춘단이 생애를 짧게 이야기를 하자면, 석공의 딸이었는데, 아버지가 엄청난 태몽을 꾸어서 자신의 업을 이어받을 대단한 아들이 태어날 거라 기대를 했는데, 딸이 태어났고 그 아이가 춘단이었어. 초등학교 5학년을 다니던 중 부모님에 의해 학교를 중퇴해야 했어. 춘단은 학교를 더 다니고 싶어서 아버지에게 졸랐지만, 아버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어. 오빠 둘에 남동생 하나, 여동생 하나인 식구들이 모두 공부할 수 없다고 했어. 그렇게 공부에 한이 맺히고 평생 소원이 대학에 가는 것이었단다. 춘단은 아버지를 따라 석공 일도 하고 그랬단다. 춘단은 영일과 결혼하고 나서도 억센 생활력과 친화력으로 마을에서 알아주는 유명인사였단다.

….

서울 아들 집으로 이사를 온 영일과 춘단. 아들 종찬은 2층 양옥집인데, 영일과 춘단은 1층을 썼어. 1층에는 영일과 춘단 말고 고시를 준비하는 법대생이 한 명 하숙을 하고 있었단다. 그 하숙생은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어. 춘단은 아는 사람 소개로 인근의 대학에서 미화원으로 취직을 했단다. 춘단의 평생 소원인 대학에 가는 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지. 오빠들, 동생들에게 전화를 해서 자랑을 해댔지. 어찌했든 대학에 간 건 간 거니까 말이야 , ㅎㅎ. 춘단이 간 대학교 이름은 천지대학교. 이 학교의 명물로는 커다란 호수와 커다란 코끼리 상이 있었단다.

학교 미화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었어. 좁은 컨테이너나 지하실 같은 곳에서 밥을 먹고,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에게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생활해야 했어. 그런데 미화원들 사이에도 알력 다툼이 있은 것 같았지. 처음 온 춘단에게 낙하산으로 들어왔다고 왕따를 시키기도 했어. 춘단은 그런 걸 신경 쓸 사람도 아니고, 혼자 옥상에서 도시락을 먹으려고 했단다.

그런데 옥상에서 쉬고 있는 한도진이라는 시간 강사를 알게 되었어. 밥도 안 먹은 것 같아서 도시락을 건넸고, 한도진은 몇 번 거절을 하다가 마지 못해 숟가락을 들었단다. 그 다음부터는 춘단은 한도진의 도시락도 따로 싸 왔단다. 한도진의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가 처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시간강사임을 금방 알 수 있더구나. 예전에 시간강사의 처우가 너무 좋지 않아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좀 좋아졌는지 모르겠구나.


2.

양춘단은 우연히 강의가 진행되고 있는 강의실에 들어갔다가 맨 뒷좌석에 앉았어. 여성학에 대한 강의였는데, 그 동안 당연하다고 살았던 삶이 착취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여성의 삶이 착취였다고 깨닫는 순간을 예상했는데, 춘단은 그 교수와 생각이 다르다고 생각했단다. 식구들을 위해서 한 것들이지, 착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이야. 춘단은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혼잣말로 넋두리를 하곤 하는데, 여성학 강의와 다른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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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워쨌든 나는 내외간, 자슥간에 착취란 말은 쓰고 싶지 않허요. 왠지 나는 그 말이 싫으요, 착취, 착취 해봤자 불쌍한 게 누구요. 결국 나 아니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착취당했다는데 그라믄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닌가. 지들 엄메가 바보라는데 서방이라고 좋겄소 자슥이라고 좋겄소. 그 교수 선생한테 가서 내 생각은 이란디 내가 틀린 것이오, 당신이 틀린 것이오, 그라고 묻고 싶은 맴도 있었지만 워디 가당키나 한 일이오. 을매나 배웠으면 여자가 그 젊은 나이에 교수까지 하고 있을 것이오. 내가 무슨 수로 그런 사람을 당해낼 수 있겄소. 그냥 속이 답답해서 엄메한테나 하는 말이지라. 엄메가 아니면 내가 또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하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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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수의 착취론에 대해 동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날 저녁 꼰대 남편 영일에게 자신을 평생 착취했다고, 앞으로는 잘 하라고 한 마디 했단다. 역시 양춘단!!!

….

어느날 학교에서 어떤 교수를 고발하는 대자보가 붙었단다. 대자보 내용도 내용이지만, 정말 오랜만에 붙은 대자보를 신기하게들 보았단다. 아빠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대자보를 붙일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많이 붙였는데, 요즘은 대학 문화도 많이 바뀌었나 보구나. 컴퓨터에 스마트폰까지 있는 마당에 대자보를 쓰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겠다. 아무튼 그 대자보 사건 이후 학교 벽 이곳 저곳에 그 교수를 고발하는 낙서가 이어졌어. 미화원들 관리하는 소장이 있는데, 소장은 미화들 중에서 특별대를 조직하고 낙서 지우는 일을 하게 했어. 춘단도 특별대에 뽑혀 열심히 낙서를 지웠단다.

….

춘단은 집에서는 하숙생에게도 잘 해주려고 했어. 하숙생이 세상과 담을 쌓은 듯 행동했지만, 밥은 꼭 챙겨주려고 했고, 집안 행사에도 데려가서 맛있는 것을 먹게 하려고 했어. 그 하숙생이 오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그 하숙생 이름은 서성환이었는데, 어느날 새벽에 춘단과 영일의 방문을 노크했어. 고향 집에 일이 있다고 고향에 내려가야 한다면서 불쑥 사라지면 걱정하실 것 같아서 인사를 드린다고 했어. 말은 없었지만, 인성은 착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

그런데 얼마 뒤 집에 경찰들이 들이닥쳤단다. 춘단과 영일, 아들 종찬도 경찰 조사를 받았어. 알고 보니 하숙생의 본명은 장대열이었고, 뉴스에도 났던 YD공장의 폭력 시위를 주도했던 사람이라는 거야. 하숙생은 공부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도망 중이었던 거야. 그리고 거처가 들통이 나서 다른 곳으로 또 도망간 것이고 말이야. 시간강사도 그렇고 하숙생도 그렇고 안타까운 사람들뿐이냐.


3.

새로운 소장이 왔단다. 그런데 이 소장은 완전 꼴통이었어. 자기보다 나이 많은 미화원들에게 군대식으로 기합도 주었어. 시급도 최저 수준인 4800원에서 4300원으로 줄였어. 미화원들 불만은 커지고, 그 불만을 공문으로 대학에 보냈는데, 대학에서는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면서 소장에게 그 편지를 전달했다는 거야. , 대학 관계자도 열 받게 하네.

그 편지를 받은 소장은 다시 불호령을 내면서 더 독하게 대했단다. 미화원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코끼리 상에서 시위를 했단다. 모든 미화원들이 참석했지만, 양춘단만 불참했어. 불참 이유는 자신은 500원보다 대학에 오는 것 자체가 좋다고 했어. 미화원들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학생회에서도 미화원들 지지선원을 하고 돕겠다고 했어. 그렇게 미화원들이 청소를 하지 않자, 학교는 쓰레기 천국이 되었단다. 화장실은 막히고 쓰레기통 주변은 악취가 진동하고, 강의실도 엉망이 되고

양춘단이 혼자 청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어. 미화원들의 시위가 길어졌지만 청소업체나 학교 측 어디도 그들을 의견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단다. 그러던 어느 주말 학교에 학생들이 거의 없을 때 공권력을 투입하여 미화원들의 시위를 진압했어. 진압 과정에 코끼리 상에 올라간 미화원 한 분이 떨어지면서 부상을 입기도 했단다. 이후 청소업체가 바뀌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되었고, 이전 미화원들은 모두 실직당했단다. 그렇게 미화원이 실직당했지만, 아무도 알아주는 이는 없었어. 춘단만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단다.

….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춘단은 옥상에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시간강사 한도진과도 많이 친해졌단다. 한도진이 살아온 이야기도 들었어. 공부 잘하는 자랑스러운 박사 아들이었지만, 교수 되기는 쉽지 않고 시간강사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

학기가 바뀌고는 시간이 맞지 않아 춘단은 한도진과 밥을 같이 먹지 못했단다. 그렇게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한도진은 의외의 장소 의외의 모습으로 나타났단다. 학교의 명물인 호수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거야. 시간강사의 힘든 삶을 스스로 끝을 낸 거란다. 춘단은 큰 충격을 받았으면서도 그의 선택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단다. 사실 자신의 큰 아들도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많이 하고, 나중에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했었어. 그래서 한도진을 더욱 아들처럼 대해주었을 텐데, 한도진 마저 자신의 아들과 똑 같은 선택을 했으니, 정말 충격이 컸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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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285)

사람의 운명이란 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하룻밤만의 생각으로 내리는 결정일까. 아니면 먼 훗날, 소중한 무언가를 지킬 수 없는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면, 부모도 모르게, 형제도 모르게, 친구도 모르게 자신의 발목을 자르고 스스로 뛰어내겠다고 신에게만 조용히 고백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오래된 결심일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삶에 미련을 가지도록 달콤한 말들로 꾀어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얼굴이 상해 보인다, 무슨 고민이 있느냐, 다 괜찮아질 것이다, 정도의 서툰 걱정이 무슨 위안이 될 수 있을까. 그 깊고 차가운 물 앞에 섰을 때는 이미 이 밤이 나의 마지막 밤이라고 결정지어놓은 것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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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고, 춘단은 청소일을 그만 두고 집에서만 지냈단다. 한도진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에 자책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어느날 한도진으로부터 소포가 왔어. 소포는 한도진이 남긴 일기였는데, 그 일기에는 천지대학교의 부정비리와 자신이 받은 부당처우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단다. 한도진은 왜 일기를 자신에게 보냈을까. 춘단은 미화원으로 다시 학교에 출근했어. 춘단은 한도진이 쓴 내용을 몰래 학교 화장실에 썼단다. 학교에서는 귀신이 나타나서 글을 쓴다고 했어.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어느 퇴근길에 강도의 습격을 받았는데 가방을 도난 당하고 말았어. 그 가방에 한도진의 일기가 있었는데…. 일기를 집에 두고 내용만 따로 적어서 가지고 가시지아무튼 나중에 경찰에 의해 가방은 찾았으나, 일기장은 사라지고 말았단다. 누가 그랬는지도 밝혀지지 않았어. 양춘단도 이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

춘단은 마지막으로 대학에 복수를 계획한단다. 아주 오래 걸리고 아무도 눈치 챌 수 없는 복수. 천지대학교의 상징이자 명물인 코끼리 상…. 그걸 복수의 대상으로 한단다. 춘단의 길고 오랜 계획은 결국

….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소설의 주제가 그리 가볍지만 않단다. 뉴스에서 볼 법한 내용들을 소재로 했어. 대학교 미화원들에 대한 부당 처우에 대한 것도 뉴스에 본 적이 있고, 시간 강사들의 자살 소식은 한때 안타깝지만 뉴스의 단골이기도 했어. 하숙생처럼 노동자들의 부당함을 대신해서 싸워주는 것도 실제 있었던 일들이고소설 속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시원하게 해결되지 못했단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불완전한 시스템이란다. 이 소설이 쓰여졌을 때보다 더 부조리한 것들이 늘었을 수도 있어. 그런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것이 정치인들이 할 일인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는 그런 희망을 걸면 안 된단다. 늘 자기 밥그릇 챙기는데만 관심있는 부류들. 최근에도 말도 안되는 사고들이 반복하고 있잖니. 각자도생 해야 하는 시대우리는 불운의 시대를 살고 있단다.

오늘은 이만하련다.


PS,

책의 첫 문장: 엄메 아베여, 춘단이 오늘 대학교 댕겨왔습니다.

책의 끝 문장: 혼자 지낼 만허요?


"지금 저기에서 제일 가슴 아픈 사람은요, 사장도 아니고 주주도 아니고 인근 음식점 주인도 아니고, 바로 자기 일터에다 불을 질러야 하는 저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어르신께서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네요. 자기 권리를 모르는 사람은 종이 되는 겁니다. 싸우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종이 된다고요." - P134

"그 형사 하는 말이, 하숙생은 원체 세상에 불만이 많은 인물이라 여그랑은 완전히 다른 꿈나라 같은 세상을 그리워해서 그런 짓거리를 한고 다닌다는디, 저가 살아본 적도 없는 세상을 워떻게 그리워한다는 건지 나는 그게 이해가 안 가는 거라. 한 번이라도 겪어봤어야 그리워하든 보고 잪아 하든 하는 거 아니오? 아, 우리가 먹는 이 밥만 해도 그렇지 않소? 뭐가 먹고 잪아도 어릴 때 한두 번씩 해먹던 음식이나 그리워하지 생판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을 뭔 맛인 줄 알고 그리워하겄소?"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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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박경리 유고 산문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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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박경리는, 아니 박경리 선생님은 우리나라 소설가 중에 엄청 유명하신 분에 한 분이란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읽고들 있어. 아빠도 모르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절로 나오는구나. 아빠는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은 대표작인 <토지>와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만 읽어보았단다. 최근 새로 출간된 <토지>는 모두 20권으로 엮어서 나왔는데, 아빠가 읽은 버전은 21권짜리였단다. 언제 읽었는지 확인해 보니, , 20년이 넘었구나. 다시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21권짜리다 보니 큰 마음을 먹어야겠구나. 사두고 한 번도 읽지 않은 책들도 쌓여 있고 말이야. 박경리 선생님의 책들도 여럿 사 두었는데 아직 열어보지 못했구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도 좋았던 기억이 있구나. 아빠가 그 책을 읽고 쓴 리뷰를 다시 읽어보았단다. , 이 책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더구나.

….

이번에 읽은 박경리 선생님의 <일본산고>는 알라딘 인터넷 서점 신간 코너에서 알게 된 책이란다.  나는 철두철미 반일 작가입니다라고 적힌 책 띠의 문구가 너무 강렬해서 클릭을 할 수 밖에 없었단다. 책 제목에 있는 산고라는 말은 한자로 散考라고 쓰는데 사전에서 찾아보면 나오지 않는 말이란다. 한자의 뜻을 풀이해 보면 일본에 대해 간간히 생각해 봤던 글정도로 생각할 수 있단다. 그러니까 박경리 선생님이 일본에 대해 쓴 글들을 모아 놓은 글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생전에 발표한 글들도 있고, 미발표된 글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구나. 예전에도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는데,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온 것이란다.


1.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 대해 반성도 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단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피해국가들에 진정한 사과를 한다면 대외적인 국가 이미지도 좋아지고 외교 관계도 좋아져서 경제적으로 더 이득이 될 것 같은데, 왜 안 하는지 그걸 모르겠구나. 반성이나 사과를 안 했을 때 자신들에게 어떤 이득이 가는지 잘 모르겠구나. 정말 자신들이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그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우리나라에 친일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때가 기회가 싶은지 반성, 사과는커녕 욱일기를 매단 군함을 몰고 우리나라에 오기도 했단다.

박경리 선생님은 1926년에 태어셨고, 꽃다운 나이를 일제시대에 보내셨으니, 일본의 만행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분일 거야. 해방 이후 당연히 전범국인 일본의 사과가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이니 얼마나 답답해 하셨을까. 그런 내용들이 이 책 전반에 걸쳐 있었단다. 일본 역사를 통해서 일본 국가권력의 몰염치한 태도의 원인을 찾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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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생각해 보면 개인의 사고를 그토록 붙들어 맨 일본의 국가권력은 놀랍다. 그것도 장구하게 유지해 왔다는 것이 더욱 놀랍고 유례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기능과 세기(細技)가 우수하면서도 일본은 항상 남의 틀과 본을 훔쳐 오거나 얻어 와서 갈고 닦고 할밖에 없었다. 본과 틀이 없는 나라, 그들의 정치 이념은 창조의 활력이 위축된 민족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날조된 역사 교과서는 여전히 피해받은 국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고 고래심줄 같은 몰염치는 그것을 시정하지 않은 채 뻗치고 있는 것이다. 가는 시냇물처럼 이어져 온 일본의 맑은 줄기, 선병질적이리만큼 맑은 양심의 인사(人士), 학자들이 소리를 내어 보지만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 반대로 높아져 가고 있는 우익의 고함은 우리의 근심이며 공포다.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비극이다. 아닌 것을 그렇다 하여 분명한 것이 차츰 부풀어 거대해질 때 우리가, 인류가, 누구보다 일본이 자신이 환란을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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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리 선생님은 일본에 대한 이런 생각을 갖고 계셨기에 일본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도 자신 있게 자신을 반일작가라고 이야기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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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나는 내 자신을 소개하기를 철두철미 반일(反日) 작가다.” 두 사람은 약간 놀라는 것 같았다. 왜 충격을 받을까? 전에도 그런 얘기는 했었고 일본인들은 가만히 듣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깨달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반일을 당연하다고 본 그들은 이제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들과 나는 꽤 오랜 시간 얘기를 했다. 남경(南京, 난징) 학살 사건에 관한 말이 나왔을 때 그들의 안색은 변했고 실은 겁이 많은 것이 일본 사람 아니냐 했을 때는 당혹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손님에게 너무 무례했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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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읽는 이로 하여금 시원하게 해 주시는구나. 오늘날 정부는 일본에 눈치를 보는 짓과 말만 해서 창피했는데 말이야. 반성과 사과 없는 일본에 예()를 차리지 말라는 호통이 시원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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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일본인에게는 예()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 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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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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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근에 기후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걱정이란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의 온도를 1.5도 상승을 막으면 아직 희망이 있다고 하는데, 요즘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세계 날씨들을 살펴보면 이미 늦은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구나. 박경리 선생님도 생전에 이런 인간들의 환경 파괴에 대한 비판의 말씀도 하셨단다. 인간들은 지금 탈출할 수 없는 자신의 집에 불을 붙이고 부채질까지 하고 있는 모양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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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인간들의 지칠 줄 모르는 파괴와 약탈로 아시다시피 지구는 지금 만신창이가 돼 있습니다. 설령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자업자득, 어디 봄의 죄이겠습니까. 소생시켜 놓은 생명들이 참살을 당하고 멸종이 된들 봄에게는 임무 밖의 일이지요. 다만 길손일 뿐, 노쇠해 가는 길손일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그도 인간이 저질러서 맞이하게 될 재난에 희생되어 처지일 수도 있고 지구와 생명들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노쇠한 봄이라는 말은 물론 합당하지 않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세월의 조화인데 계절 자체가 세월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늙고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오도 가도 못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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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내 생각에는 말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또 창조적 열정은 균형을 잡고 균형을 잡아주어 존재하게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균형을 잡아주어 존재하게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균형을 파괴하고 존재를 흔들리게 하는 것으로 바로 오늘, 현재가 그 같은 것을 여실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구 도처에서 균형을 망가뜨리고 있지 않습니까. 땅이 죽어간다거나 물이 썩어간다거나. 이젠 그것이 대단한 일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보다 가공할 일은 오존층이 찢기어 점점 넓어져 가고 있다는 것, 환경호르몬에 관한 것, 지구온난화 현상, 여차하면 자멸의 무기 핵폭탄 등. 이것들이 하늘이 내린 재앙이라 하겠습니까? 지구의 사막화, 도처에서 범람하는 물, 이런 상황이 천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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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님도 오래 전부터 인간의 야욕에 의해 황폐화되는 지구를 경고했지만, 우매한 지구인들은 결국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구나.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믿어보고 우리도 작은 것이라도 지구온난화를 늦출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하자꾸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해방 후, 1950년 일본서 초판을 발행한 <세계문예사전 동양 편>을 보면 문예사조 항목에 무려 26페이지가 일본 문학을 위해 할애되어 있고 중국 문학이 12페이지, 인도 문학이 약 5페이지, 아라비아 페르샤 남방아세아가 각각 1페이지 안팎, 다음은 일본 주변 문학으로 묶었는데 아이누, 유구(류쿠), 대만 순으로, 그중에서도 맨 끄트머리에 조선 문학(朝鮮文學)이라 하여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

책의 끝 문장: 또 그것이 의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종교나 도적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것들은 적시적소에 써먹은 도구에 불과하고 어떤 권력이든 도구화하려는 속성은 있게 마련이지만 일본처럼 철저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일사불란하게 그런 그들에게 내세관이 희박한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유한(有限)을 잘 소화시켜 온 민족이다. 유한은 인간의 숙명이지만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생명이 오는 곳 생명이 가는 곳, 그 한(恨) 때문에 사람은 유한 밖으로 나가려 몸부림치는 것이며 그 몸부림은 신의 축복인 창조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신의 축복이 없는 나라 일본, 역사상 한 번 기회가 있었다. 시마바라의 난으로까지 몰고 갔으나 섬멸되고 만 천주교도들, 답회령(踏繪令)으로 수없는 순교자를 냈던 그때, 아마테라스를 뛰어넘고 영혼의 구제로 향한 죽음들이 있었다. - P39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였지만 그들은 거의 보상하지 않았다.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통분이 무슨 사과인가? 그러고도 욕을 안 먹겠다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다. 가와무라 씨는 한글세대는 반일이라는 대전제를 전면에 세우고 있으나 구체적 체험과 연구 관찰이라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다만 반일이라는 민족교육으로 길러진 지식과 근본적 이미지에 의해 일본을 단죄, 규탄하는 태도를 가지기 일쑤다 했는데 동감이다. 그러나 동감의 뉘앙스는 상당히 다르다. 도식적인 교육을 떠나 생생한 역사적 사실 역사적 입김에 접할 수 있다면 한글세대는 무조건 감정적 시비를 떠나 조목조목 따지고 넘어가는 사상적 강화(强化)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전후세대도 우리 한글세대에 대한 불만을 사실에 입각하여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관찰하고 연구해야만 한다. 대로(大路)는 결코 일방통행일 수 없기 때문이다. - P62

전쟁은 문화의 어머니요 어쩌고 하는 말도 생각이 난다. 일본 지식인들의 대부분은 한국인의 분노를 지겹고 불쾌하고 귀찮아한다.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 하면서도 철도를 놓아주었느니, 학교를 세워주었느니, 아무도 그것을 부탁한 바 없는 일을 좀스럽고 쩨쩨하게 늘어놓는 데 대해서는 말이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침략이 아니라는 망언에 대해서도 무반응이다. 그들의 계속되는 망언은 괜찮아도 한국인의 분노는 왜 지겨운가. 사리를 명백하게 하지 않는 이상 잘못은 되풀이된다. 과거지사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데서 오는 근심이다. 장차 세계에서, 인류라는 차원에서 일본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인류에 속하는 일본인 역시 오늘 군비 확장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자결하지 못하는 모친의 목을 조르는 아들의 비극이 없기 위하여. - P76

언제였는지 일본인의 저축열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일본인은 저금통장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결코 저금통장을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살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사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저금통장이 필요한 것이지 저금통장을 위해 삶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쿠타가와의 예술지상주의가 만일 저금통장을 위한 삶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전적으로 허위인 것입니다. 착각이거나 아쿠타가와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의식구조는 반생명적인 경향이 농후하며 그것이 체제에서 굳어져 버린 것이고 보면 분재와도 같이, 축소되고 불구적인 정신세계를 떠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국체를 부정하고 진실에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 P93

이삼 년 종안 나는 우리 뒷동산에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리는 일을 계속하여 육십오 계단이라는 꼬불꼬불 계단이 만들어졌습니다. 비록 만리장성은 아닐지라도 내 손자가 오르내리는 기쁨의 자리가 되었고, 오른다는 것 무한히 오른다는 것 무한히 간다는 것…… 나는 그 계단을 끝내고서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계단 위에 산이 계속되고 또 울타리가 없다면 계단은 계속하여 쌓아 올려졌을 거라고. 그리고 시시포스의 바위를 생각했지요. 부정적, 근원적으로 부정적인 인생과 문학 행위. 아마도 긍정적이었다면 갈 길은 없었을 것이요, 배불리 먹고 눈물이 없고 죽음이 없고 사랑도 없고 존재뿐인 삶은 비인간 로보트가 아니겠습니까.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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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특별판)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카이 버드.마틴 셔윈 지음, 최형섭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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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라는 영화가 얼마 안 있으면 개봉한단다. 오펜하이머라고 하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람인데, 2차 세계대전 때 핵폭탄을 만든 맨하튼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사람으로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갖고도 있단다. 아빠는 오래 전에 제레미 번스타인의 <베일 속의 사나이 오펜하이머>라는 책을 읽고 나서 오펜하이머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되었단다. 그런데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 예고편이 추천동영상으로 떠서 보게 되었단다. 눈이 돌아갈만한 화려한 출현진도 출현진이지만, CG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핵폭탄 장면을 어떻게 찍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예고편만 봐도 영화의 웅장함이 느껴졌단다. 우리나라의 개봉일은 8 15일에 한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의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날짜를 잘 잡았구나. 아무래도 우리나라 광복과도 연관이 있는 사람이니까….

유튜브에서 <오펜하이머> 예고편을 보고 난 얼마 후 알라딘 인터넷 서점의 초기 화면에 낯익은 얼굴이 책 앞표지를 가득 채운 책 한 권이 올라왔단다. 유튜브에서 본 예고편 속의 그 얼굴. 오펜하이머. 그 책을 바로 클릭해봤는데 오펜하이머의 평전이더구나. 책의 제목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으로부터 불을 빼앗아 간제우스 신으로부터 다시 불을 빼앗아 온 그리스 신이잖니..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식상한 말보다 훨씬 있어 보이는구나. 책 제목 잘 지은 것 같구나. 이 책은 영화 <오펜하이머> 개봉을 앞두고 출간한 모양인데, 이미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인데 이번에 특별판으로 다시 출간한 것이라고 했단다.

아빠가 오펜하이머의 얼굴을 모르고 있었어. 그런데도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영화 <오펜하이머>의 예고편이 떠올랐다고 했잖아. 그래서 처음에는 책 표지 사진이 영화 속 배우 사진인줄 알았단다. 다시 자세히 훑어 보니 오펜하이머의 실제 사진이었단다. 당연히 오펜하이머의 사진이어야겠지. 순간 든 생각은 영화 속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을 진짜 잘 뽑았다는 생각과, 엄청 잘생겼다는 생각이었단다. 책 소개를 읽다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책을 읽고 영화화 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이미 오래 전에 오펜하이머에 대한 책을 읽었지만, 기억도 다 흐려졌고, 영화를 보기 전에 준비 운동으로 읽어보려고 바로 결재했단다.

결재할 때는 책 소개를 자세히 보지 않았는데, 집에 도착한 책을 보니 어마어마한 벽돌책이더구나. 천 페이지가 넘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주석과 참고 문헌이 백 페이지 정도 되었고, 실제 읽어야 할 부분은 900페이지 남짓이었단다. 그래도 900 페이지라도…. 이렇게 두꺼우면 출판사 욕심이 분책을 했을 텐데, 분책하지 않고 한 권으로 내준 것이 고맙구나. 이 책은 카이 버드라는 사람과 마션 셔윈이라는 사람의 공저인데, 참고 문헌도 엄청난 것으로 보아 지은이들도 참 대단한 사람들인 것 같구나. , 그럼 이 책의 내용을 시작해 보자꾸나.


1.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그의 부모님은 독일계 이민 1, 2세대로 아버지는 사업가이시고, 어머니는 화가였단다. 모두 유태인이었고, 뉴욕에서 살고 있어서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1904 4 22일 뉴욕에서 태어났단다. 오펜하이머가 성()이긴 한데 그 이름이 유명하니, 호칭은 오펜하이머로 이야기를 할게. 오펜하이머가 어렸을 때 아버지의 사업 성공으로 생활이 넉넉했단다. 네 살 어린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죽어서, 오펜하이머의 부모님들은 오펜하이머를 과잉보호 하면서 키웠다고 하는구나. 다시 동생이 태어났는데 오펜하이머보다 여덟 살 어린 프랭크였단다. 여덟 살이나 차이가 났지만, 둘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무척 친하게 지냈단다.

오펜하이머는 하버드에 입학을 해서 화학을 전공했는데, 3년만에 졸업을 하고 물리를 공부하고 싶어서 영국 켐브리지 대학의 러더퍼드 교수의 제자가 되겠다고 지원을 했단다. 화학과 물리, 그 어려운 학문을 둘다 하고 싶었다니아빠 같은 범인은 이해가 가질 않는구나. 그런데 러더퍼드는 오펜하이머를 불합격시켰다고 하는구나. 그러면서 오펜하이머의 추천서를 톰슨에게 넘겼는데, 톰슨은 그를 받아주었어. 러더퍼드, 톰슨이런 분들은 현대물리학에서 있어 유명한 사람들로 너희들도 교과서에서 많이 보게 될 사람들이란다. 어떤 일은 한 것까지 이야기하기에는 이 편지가 길어질 것 같으니, 오늘은 오펜하이머에만 집중을 하는 것으로 하자.

그렇게 영국 켐브리지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처음으로 양자역학을 접했다고 하는구나. 지금까지 삶을 보면 공부를 엄청 잘하는 모범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에게도 단점이 있단다. 학교 생활에 불안을 느끼는 경향이 있어 우울증도 겪고 발작 증세도 있었어. 그래서 정신과 진료도 한 동한 받았다고 하는구나. 친한 친구들과 여행을 하고 증세가 좀 좋아졌다고 하는구나. 친한 친구들과 여행은 이렇게 사람의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해주는구나.

오펜하이머는 점점 공부하면 이론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했어. 그런데 당시 켐브리지 대학은 실험 물리학의 중심지였어. 이론 물리학의 중심지는 독일의 괴팅겐이라는 곳이었어. 그래서 오펜하이머는 1926년 괴팅겐으로 자리를 옮겼단다. 괴팅겐에는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많았고, 오펜하이머 역시 그들과 교류하면서 양자역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했단다. 막스 보른, 하이젠베르크, 디랙 등 양자역학을 연구한 물리학자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젊은 과학자들이었어. 이제 막 떠오르는 양자역학은 젊은이들의 과학이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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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양자 물리학은 확실히 젊은이들의 과학이었다. 젊은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이 새로운 물리학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을 그의 시대가 지나갔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몇 년 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아인슈타인을 만난 오펜하이머는 실망한 채로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오만방자하게도 아인슈타인은 완전히 맛이 갔어.”라고 썼다. 하지만 1920년대 말까지만 해도 괴팅겐의(그리고 보어의 코펜하겐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아인슈타인에게 그들의 양자 이론을 설득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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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보른은 오펜하이머의 지도교수였어. 오펜하이머는 괴팅겐에서 공부하면서 양자역학에 대한 논문을 많이 꼈단다. 1927년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그는 캘리포니아 공대(칼텍)에서 강의를 했는데 당시 미국에는 양자역학을 연구한 물리학자들이 드물어서 오펜하이너는 양자역학의 선두주자라 볼 수 있었지. 잠시 미국에 머물던 오펜하이머는 다시 양자역학을 공부하기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에렌페스트 교수에게 배우려고 했는데, 에펜페스트 교수가 우울증을 앓고 계셔서 오펜하이머는 스위스 취리히 파울리 교수에게 지도를 받게 되었단다. 파울리 교수 밑에서 1929년까지 많은 논문을 썼는데, 이 즈음에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어.

1929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어. 잠시 쉴 때는 주로 뉴멕시코에서 지냈는데, 동생 프랭크와 자주 같이 지냈다고 하는구나. 형으로서 십대 프랭크의 인생상담도 많이 해준 것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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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1929년 오펜하이머는 동생에게 모든 남자들은 여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어 하지. 그런 욕망이 꼭 허영심만은 아니야. 하지만 그와 같은 매력은 가지고 싶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사람들은 멋진 취향이나 행복을 갖고 싶어 하지만 의지만으로 그것들을 얻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것들은 한 사람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들이야.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무런 설계도 없이 기계를 만들려는 것과 같을 테니까.”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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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는 물리학뿐만 아니라 문학도 많이 읽고, 철학에도 관심이 많았고 시도 자주 썼는데, 문학잡지에 실리기도 했다는구나.


2.

미국에 와서 그는 칼텍과 버클리 대학교 분교에서 일하게 되었어. 그와 친한 동료 교수로는 로런스 교수가 있는데, 로런스는 실험 물리학을 전공하였고,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단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 정세가 급박하게 변했어. 1933년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유태인을 탄압하게 되어 많은 유태인들이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는데 그 중에 유명한 과학자들도 많이 있었어. 오펜하이머는 이들 과학자들을 후원하기도 했단다. 오펜하이머는 이때 인도출신 동료 교수를 알게 되어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를 읽고 영향을 받기도 했대.

1930년대는 히틀러의 나치가 독일에서 세력을 키워나가고 공산주의도 전세계적으로 퍼지던 시기여서,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 오펜하이머와 주변 사람들도 관심을 갖게 되는데 1930년를 살던 사람이 정치성을 띠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단다.

, 이번에는 오펜하이머의 사랑 이야기를 좀 해보자꾸나. 1936년 스탠퍼드 의대생 진 태트록을 알게 되어 둘은 사랑에 빠진단다. 그런데 진 태트록은 공산당을 가입하게 되어 나중에 오펜하이머에도 이 일로 심문을 받게 된단다. 그리고 진 태트록을 통해서 다른 공산당원들과 교류를 하게 돼.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공산당에 정식 가입한 이력은 없다고 하는구나.(공산당에 가입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긴 해.) 그래서 FBI에서 오펜하이머도 조사 대상에 올렸고, 단순동조자로 판단하였다고 하는구나.

1939년 독일과 소련은 독소불가침 조약을 맺었어. 이것이 무엇이냐면, 독일과 소련은 서로 침략하지 않고, 남을 침략해도 간섭하지 않겠다는 거야. 당시 독일이 폴란드를 불법 침략을 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시작했는데, 소련은 간섭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독일 편을 들어준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어. 이 소식을 들은 미국 내 공산주의자들도 의견이 분분하였고, 소련의 이런 행동에 실망한 이들의 공산당 탈당 러시가 이루어졌대. 오펜하이머도 이 때부터 소련을 경멸하기 시작했다는구나.

오펜하이머는 진 태트록과 4년 정도 사귀고 헤어졌어. 그리고 키티 퓨닝이라는 유부녀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임신까지 하게 되어 키티는 이혼을 하고 오펜하이머와 결혼을 하였단다. 1940 11월이었어. 키티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하면, 키티도 공산주의자로 유럽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었어. 첫 번째 남편은 한술 더 떠서 스페인 내전까지 참전했는데, 그만 전쟁에서 죽고 말았단다. 남편이 전사하고 나서 키티는 충격을 받고 미국으로 와서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생물, 화학, 수학을 공부했대. 그 대학에 다니다가 같은 대학 의과 대학 인턴을 사귀고 두번째 결혼했는데 이 결혼은 실패한 결혼으로 무늬만 유부녀였어. 그 시기에 오펜하이머를 만난 것이란다.


3.

1939 1월 우라늄의 원자핵을 2개 이상으로 쪼갤 수 있다는 실험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 이것이 뭐 대단한 것이냐고 보통 사람들은 이야기하겠지만, 물리학자들에게는 한 가지를 떠올리게 했어. 핵폭탄(원자폭탄). 우라늄의 원자핵 분리를 이용하면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 1942년 미국의 물리학자들(아인슈타인도 포함)과 여러 관계자들은 모여서 원자폭탄 개발의 필요성을 루즈벨트 대통령한테 설명을 했대. 특히 독일이 원자폭탄을 먼저 만들면 큰 일 난다고 했고, 이미 독일은 원자폭탄 개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어. 미국은 독일에 비해 원자폭탄 개발이 늦었다고

루즈벨트 대통령은 그들의 제안을 허락했고, S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조직이 만들어졌는데 오펜하이머도 동참했단다. 이 프로젝트는 나중에 맨하튼 프로젝트라고 명명했고, 엔지니어 출신 육군 중령인 그로보스가 총지휘를 하였단다. 이렇게 맨하튼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 1942 9월이었단다. 그로보스는 연구 총책임자로 오펜하이머로 지목했어. 하지만 당시 동료연구원들은 오펜하이머가 총책임자로 적임자는 아닌 것 같다고 했어. 정치권에서도 그가 공산주의 활동을 이유로 반대를 했어.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는 일을 하면 할수록 총책임자의 적임자가 되어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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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한때 괴짜 이론 물리학자이자 장발의 좌파 지식인이었던 오펜하이머는 이제 대단히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일류 지도자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윌슨은 그에게는 품위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지요. 그는 우리가 그의 약점이라고 지적했던 것들을 단 몇 달만에 말끔하게 털어버렸습니다. 게다가 행정적인 절차들에 대해서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의구심은 깨끗이 사라졌습니다.”라고 말했다. 1943년 여름 무렵이면 윌슨은 그와 함께 있으면 내 능력 이상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오펜하이머의 사람이 되었고, 그를 매우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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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밀 프로젝트를 위해서 장소를 섭외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협곡 사이에 위치한 로스앨러모스라는 곳이었어. 그곳에 대규모 연구 단지를 지었고, 가족들이 함께 와서 살 수 있는 마을도 새로 지었단다. 오펜하이머는 연구 단지뿐만 아니라 연구 단지 마을의 인프라에도 신경을 써서 부족함 없게 했다는구나. 오펜하이머는 전국 각지의 인재들을 섭외하게 되었는데 그중에 리처드 파인만도 포함되었다고 하는구나. 오펜하이머의 가족들도 로스앨러모스의 공동체 마을에서 생활했는데, 카티는 이곳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대. 이곳에 와서 둘째 아이인 딸 토니를 낳았는데, 갓난 아기 토니를 이웃집에 맡기고 첫째 피터만 데리고 여행을 하기도 했다는데 그만큼 그곳 생활을 적응하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이제 오펜하이머의 목적은 단 하나. 나치스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일. 독일에서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하는 인물이 하이젠베르크라는 소문이 있어. 하이젠베르크를 납치하려는 계획도 있었으나 실행하지는 않았다고 하는구나. 하이젠베르크가 독일로부터 원자폭탄 개발을 제안 받았으나 그가 일부러 개발을 늦추거나 못하겠다고 하는 소문도 있었다는 기억이 나는구나.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쓴 소설 <클링조르를 찾아서>을 읽은 적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구나. 그 책을 일고 쓴 독서편지를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

이런 와중에도 FBI는 여전히 오펜하이머를 검열하고 도청하면서 감시했다고 하는구나. 오펜하이머가 전 여친 진 태트록을 만났는데, 소련을 정보를 빼내려고 했다고 의심을 하기도 했어. 하지만 진 태트록은 조울증과 우울증과 싸우고 있었으며, 결국 그 싸움에서 지고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고 하는구나.


4.

양자역학의 거물급 학자인 닐스 보어도 미국으로 망명을 왔단다. 2년 전에 하이젠베르크를 만났다고 했는데 그 때 어떤 대화가 이루어졌는지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지만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고 했어. 이 내용도 앞서 이야기한 소설 <클링조르를 찾아서>에서도 그들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구나. 보어는 원자폭탄 개발에 있어 정치적 윤리적 문제를 가지고 국제적으로 협의를 해야 한다고 했어.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은 개발이 진행될수록 고민이 되었을 거야.

1943 12, 독일이 원자폭탄 개발을 중단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어. 그러면 미국도 원자폭탄 개발을 중단해야 하는가. 독일이 아니면 일본도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했어. 원자폭탄 개발은 일정대로 진행되었어. 1945 5월 히틀러가 자살을 하면서 사실상 유럽에서2차 세계대전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단다. 원자폭탄을 개발해도 쓸 데가 없는 건가? 이제 남은 것은 일본인데, 사실 일본도 시간만 지나면 패망할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었어. 정치인들과 군인들 사이 폭탄 사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어.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아이젠하워 장군은 원자폭탄에 반대했다는구나.

하지만 변수가 하나 있었어. 소련이 미국과 일본 전쟁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어. 시간이 지나면 일본이 패망하는 것은 맞는데, 소련이 일본본토에 군대를 이끌고 들어오면 전쟁 후 상황이 복잡해질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소련이 개입하기 전에 전쟁을 끝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원자폭탄이 해결책이라고 했지. 드디어 원자폭탄 개발이 완료되어 사막에서 폭발 시험을 했는데, 시험은 성공적이었지만, 그 성능에 모든 사람들이 놀라면서도 향후 이 무기가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고 겁을 먹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1945 8 6일 오전 8 14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어. 3일 후에는 나가사키에 떨어졌고그 두 방으로 일본은 곧바로 항복을 하고 전쟁은 끝이 났단다. 피해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도시는 폐허가 되었단다.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끌려온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았는데 우리나라 사람도 많이 돌아가셨어. 그 이야기는 한수산 님의 소설 <군함도>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구나.

...

이 일이 있고 오펜하이머는 핵무기는 화학무기처럼 국제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고, 그것이 국제 회담에서 논의되길 바랬어. 하지만 미국, 영국, 러시아(소련)이 모여 진행한 포츠담 회담에서 핵무기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어. 오펜하이머는 이에 실망하면서도 계속 원자폭탄을 포함한 슈퍼폭탄은 더 이상 안 되고 국제적으로 규제해야 하고 미국도 핵폐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들과 군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이 일본에 떨어진 순간부터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후회를 하는 것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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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

만약에 오펜하이머가 히로시마 폭탄 투하 전에 대통령이 일본인들은 평화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을 인지했다면, 그리고 대도시를 대상으로 한 원자 폭탄의 군사적 이용이 8월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면, 그가 어떻게 반응했을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이 속았다고 믿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가 정부 관료들이 하는 말이면 뭐든지 의심하게 되었음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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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트루먼 대통령을 앞에서 내 손에 피가 묻어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은 대통령에게 밉보이는 행동이 되기도 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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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누군가 대통령이 손에 피라니, 제길. 그는 내 손에 묻은 피의 절반도 묻히지 않았어. 그걸 아프다고 떠들고 다니다니.”라고 중얼대는 것을 들었다. 그는 나중에 애치슨에게 나는 두 번 다시 저 개자식을 만나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다. 1946 1월까지도 이 일은 그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고, 그는 애치슨에게 오펜하이머를 “5~6개월 전에 내 사무실로 찾아와 손을 비비면서 원자력 에너지를 발견하여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혔다고 말한 울보 과학자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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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펜하이머는 1945 10.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총 책임자 자리를 사임하고 다시 칼텍으로 돌아왔어. 당시 FBI 국장인 후버는 오펜하이머가 공산당원일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감시를 시작했는데 1946년부터 무려 8년간 감시를 했다는구나. 오펜하이머의 사생활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겠구나. 그런 감시와는 별개로 그의 과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1947 3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했고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 이사로도 임명되었어.

그는 연구소장에 있으면서 TS 엘리엇 등 인문학자들과 작가들을 초빙해서 강의를 개설했지만, 다른 연구원들에게는 좋은 반응으로 보이지는 않았대. 당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는 엄청난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었어. 아인슈타인, 보이, 디랙, 파울리, 괴델, 폰 노이만 등이 있었어.

당시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냉전시대에 돌입했어. 그러다 보니 정치권에서도 냉전시대의 안 좋은 흐름이 생기기 시작했어. 1949년 정치권에서는 반미활동조사위원회도 그런 것 중에 하나였단다. 공산주의자 지인들이 많은 오펜하이머도 조사를 받았어. 첫 번째 청문회에서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간 줄 알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내뱉은 이름들이 큰 영향을 받았어. 동료들과 제자들이 대학에서 쫓겨나기도 했어.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알고 담당자를 찾아가 잘못 이야기했다고 했지만, 그들은 오펜하이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어.

동생인 프랭크와 프랭트의 아내 재키도 공산주의자 이력이 있어서 조사를 받았는데, 그 후 프랭크도 대학에서 쫓겨나고 농장 일을 시작했다는구나. 한편 오펜하이머의 아내 키티는 여전히 일상 생활을 힘들어했어. 술에 취해 있는 시간이 많았고 우울증을 달고 살았어. 오펜하이머와 키티는 결혼생활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래 행복한 생활은 아니었어.

1949 8월 소련이 원자폭탄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오펜하이머가 경고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거야. 미국은 소련의 원자폭탄에 대항하기 위해 그보다 성능이 좋은 슈퍼폭탄을 개발하자고 했어. 자문위원회였던 오펜하이머는 강하게 반대의견을 피력했단다. 하지만 트루먼 정부는 적극적인 슈퍼폭탄 개발 의지를 보였어. 오펜하이머는 반대파로부터 과거 좌익 이력이 있다면서 다시 공격을 받았어. 그 중에 원자력에너지 위원장을 맡고 있던 스트라우스가 선봉에 섰단다.

스트라우스는 오펜하이머의 뒷조사를 철저하게 했고, 그에게 비밀취급인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어. 1950년대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이라는 것이 있었단다. 공산주의자를 색출하여 처벌하는 열풍을 이야기하는데, 미국 상원의원 매카시가 처음 공산주의자가 숨어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서 시작했는데 근거도 없이 리스트에 오르는 등 피해를 입었다고 했단다. 어쩌면 오펜하이머도 그런 매카시즘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었어. 이미 그 전에 청문회나 맨하튼 프로젝트 책임자를 맡을 때 조사를 이상 혐의점 없다고 했는데 다시 조사하고 청문회를 열게 되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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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가을에 워싱턴은 마녀사냥에 사로잡혀 있었다. 수백 명의 공무원들이 사소한 혐의 때문에 공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그 누구도, 심지어 대통령조차도 매카시 상원 의원에 맞서려 하지 않았다. 195311 24일에 매카시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애처로운 유화 정책을 펴고 있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다음날 잭슨은 <뉴욕 타임스>의 제임스 레스턴에게 자신은 매카시가 대통령에게 전쟁을 선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레스턴은 이 말을 익명의 백악관 관계자의 이야기라며 자신의 칼럼에 인용했다. 한 아이젠하워 보좌관은 기사를 읽고서 잭슨의 발언은 매카시와 그의 동지들이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하기 어렵게 만들 뿐이라며 비난했다. 잭슨은 매카시의 공격에 아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지도력의 부재에 대해 걱정하던 느낌들이 이번 주에 기어코 현실화되고 말았다. 나는 두렵다라고 썼다. 그는 대통령 수석 보좌관 셔먼 애덤스에게 자신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최소한 매카시가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대통령 보좌관들의 생각이 바뀌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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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오펜하이머는 청문회에서 재판을 받았어. 그의 사적인 것까지 다 까발려져 공개되었단다.  그렇게 되자 여론은 오펜하이머가 갈릴레이처럼 박해 받는 과학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대. 또는 드레퓌스 사건에 비유하기도 했어. 그만큼 그의 청문회는 납득이 가지 않는 청문회였던 거야. 결국 그는 비밀취급인가 자격을 취소당했는데, 그것보다 더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았을까 싶구나. 1960년대 들어서 케네디 정부가 들어서면서 오펜하이머는 일부 복권이 되었고, 그의 성과들을 다시 인정받아 페르미 상을 수상하기도 했어. 오펜하이머의 영원한 정적 스트라우스는 이에 격분하기도 했대.

오펜하이머는 1965년 후두암에 걸렸는데 40년 동안 이어진 줄담배가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치료를 시작하여 후두암은 완치가 되었지만, 다른 곳에 전이가 되어서 결국 다시 일어나지 못했단다. 1967 2 18일 오전 10 40분 오펜하이머는 마지막 숨을 쉬었단다. 그리고 1972년에는 오펜하이머의 아내 키티가 죽었고, 1977년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딸 토니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대. 아빠가 생각하기에 딸 토니의 자살에는 엄마 키티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렸을 때부터 딸에 대해 거의 신경 쓰지 않았고, 우울증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술에 취해 있던 시간이 많았으니

이 책에는 앞부분과 뒷부분에 오펜하이머, 그의 가족들, 그와 연관된 많은 사람들의 일상 사진들이 담겨 있단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젠 이 세상의 사람들이 아니겠구나. 그들이 남긴 업적들은 여전이 오늘날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좋든 나쁘든 영향을 받고 있단다. 누군가는 핵무기가 오히려 전쟁 억제에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이도 있단다. 하지만 여전히 핵무기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갖고 있단다. 어떤 또라이 같은 지도자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핵무기를 쓸 수도 있으니 말이야.

….

, 아빠가 메모를 하면서 읽었고, 메모를 바탕으로 독서 편지를 썼어. 메모 중간 건너뛰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 독서 편지는 엄청 길어졌구나. 이제 곧 영화 <오펜하이머>가 개봉을 하는데 우리들이 좋아하는 로버트 다우트 주니어도 출현한다고 하더구나. 어떤 역으로 출현하나 찾아봤더니, 오펜하이머의 정적인 스트라우스 역으로 나오는구나. 아이언맨의 악역 연기가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니 기대가 되는구나.

, 그럼 오늘은 이만. 긴 글 읽느라 고생했다.


PS,

책의 첫 문장: 1967 2 25.

책의 끝 문장: 하지만 그 자리에는 주민 회관이 세워졌고, 그 부근은 오펜하이머 해변이라고 불리고 있다.


뉴욕으로 돌아온 오펜하이머는 러더퍼드가 자신을 불합격시켰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러더퍼드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브리지먼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내 경력 역시 그의 눈길을 끌지 못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러더퍼드는 오펜하이머의 지원서를 J.J. 톰슨(1856~1940년)에게 넘겼다. 톰슨은 러더퍼드 이전에 캐번디시 연구소의 소장을 맡았던 저명한 물리학자였다. 69세의 톰슨은 전자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0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19년에 그는 행정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놓았고, 1925년 무렵에는 실험실에 띄엄띄엄 나오며 가뭄에 콩 나듯 학생을 받고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슨이 자신을 받아 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서는 크게 안도했다. 그는 물리학을 직업으로 선택했고, 물리학의 미래와 함께 자신의 미래 역시 유럽에 있다고 확신했다. - P77

오펜하이머는 프루스트의 소설을 처음 읽은 지 10년이 지난 후에도 잔인함을 논하는 구절을 외워 슈발리에를 놀라게 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이 남에게 주는 고통에 무관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사악함이 그토록 드물고, 비정상적이며, 소외된 상태가 아니고 심지어 그 안에서 편히 쉴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와 같은 무관심을 지칭하는 단어는 여럿 있지만, 결국은 끔찍하고 영구적인 형태의 잔인함이라고 할 수 있다."
코르시카에서 오펜하이머는 이 글을 외울 정도로 반복해 읽으면서 자신이 남에게 끼치는 고통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의식했을 것이다.
- P93

나중에 MIT 총장까지 오르게 될 콤프턴은 당시 오펜하이머의 박학다식함에 기가 눌리는 것 같았다. 그는 과학 분야에서는 오펜하이머의 맞수가 될 수 있었지만, 이 젊은이가 문학, 철학, 심지어 정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전혀 대응할 수가 없었다. 오펜하이머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괴팅겐에 와 있는 미국인들은 대개 "프린스턴 대학교나 캘리포니아에서 온 기혼자 대학 교수들이야. 그들은 물리학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지만, 교양 교육은 전혀 받지 못한 것 같아. 그들은 독일인들의 섬세하고 잘 조직된 지적 활동을 부러워하고 있고, 그와 같은 물리학을 미국으로 이식하고 싶어 하지."라고 썼다. 이는 확실히 콤프턴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 P105

괴팅겐은 성인이 되어 가던 젊은이로서 오펜하이머가 처음으로 진정한 승리를 거둔 곳이었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자가 된다는 것이 "터널을 통해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터널 반대편이 계속 위쪽으로 이어져 있는지, 아니면 출구가 있기는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양자 혁명의 끝자락에 걸쳐져 있던 젊은 과학자에게 특히 그러했을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물리학의 대변동에서 참가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증인에 가까웠지만, 자신이 물리학을 평생 직업으로 삼을 만한 지적인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짧은 9개월 동안 그는 학문적 성과와 성격의 변화를 이루었고, 그 결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단지 1년 전만 해도 그의 생존까지 위협했던 불안한 감정 상태는 이제 상당한 학문적 업적과 그에 따르는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세상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 P118

요점을 말하자면 오펜하이머는 항상 스스로 자유롭게 사고하고 스스로의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어떤 대의에의 헌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매카시 시기의 가장 해로운 특징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오펜하이머의 정치적 편력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1930년대에 미국의 사회, 경제적 정의를 위해 헌신했다는 것이고,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좌파의 편에 서기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 P244

오펜하이머는 양자 역학을 책만 읽어서는 배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설명하는 과정에서 언어를 가지고 씨름하는 것 자체가 이해에 이를 수 있는 첩경이었다. 그는 같은 강의를 두 번 하지 않았다. 와인버그는 "그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청중의 얼굴을 보고 어떤 부분에서 이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파악하고는 즉석에서 설명 방법을 완전히 바꾸기도 했다. 한번은 단 한 명의 학생의 관심을 자극하기 위해 강의 시간 전체를 특정한 문제를 설명하는 데 집중하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고 그 학생은 오펜하이머에게 달려가 그 문제를 자신이 풀어 봐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오펜하이머는 "좋아, 그것이 내가 오늘 세미나를 한 이유라네."라고 대답했다. - P273

오펜하이머는 로스앨러모스의 무시무시한 비밀을 세계가 알지 않고서는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주장을 전개함으로써 설득에 성공했다. 이것은 모두에게 중요한 순간이었다. 보어의 논리는 오펜하이머의 동료 과학자들에게 특히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앞에 서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 역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윌슨이 그 순간을 회고했듯이, "내가 당시 오펜하이머에게 느꼈던 것은, 이 사람은 천사처럼 진실하고 솔직해서 잘못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를 믿었습니다. - P443

몇 분 후, 뜨거운 뉴멕시코의 태양을 받으며 단상 위에 앉아 있던 오펜하이머는 그로브스 장군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기 위해 일어섰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그는 앞으로 연구소의 작업에 참여했던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의 성취를 돌아볼 수 있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는 말했다. "오늘 그 자부심은 깊은 우려와 함께해야 합니다. 원자 폭탄이 무기고의 신무기에 불과한 것이 된다면, 인류가 로스앨러모스와 히로시마의 이름을 저주할 날이 올 것입니다." - P501

그래도 오펜하이머는 연구소가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까지도 아루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굳게 믿었다. 연구소에 대한 그의 강연에서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들이 과학 자체의 특성과 결과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수학자들은 불과 몇 명만이 그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을 뿐이었다. 노이만은 자신의 분야만큼이나 고대 로마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오펜하이머처럼 시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이 연구소를 인간의 삶이 처해 있는 상황들을 총체적이고 다면적으로 이해하는 데 관심을 가진 과학자, 사회 과학자, 그리고 인문학자들의 안식처로 만들고 싶어 했다. 이는 그가 청년 시절부터 동등하게 관심을 기울여 왔던 과학과 인문학을 화합시킬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그런 의미에서 고등 연구소는 로스앨러모스의 정반대이자 심리적 해독제였다. - P571

1953년 무렵이면 냉전은 워싱턴과 모스크바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의 선택지를 협소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핵의 지니 요정을 호리병 속에 가두려 했던 오펜하이머의 노력은 미국 내부에서의 정치적 기류로 인해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제 공화당 출신의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 정치 기류는 오펜하이머를 병에 가둬 바닷속으로 던져버리려 했다. - P684

그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두 강대국들이 상대방은 물론이고 인류 문명 전체를 끝장낼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만 자국의 파멸까지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오펜하이머는 "우리는 유리병 속에 든 두 마리의 전갈과 같습니다. 서로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러려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지요."라고 덧붙여 청중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 P701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폴드 홀 사무실로 걸어가면서 오펜하이머가 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조교에게 "저기 나르(nar, 바보)가 간다."라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물론 미국이 나치스 독일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펜하이머가 도망쳐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매카시즘에 크게 놀랐다. 1951년 초에 그는 자신의 친구인 벨기에의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편지를 써서, 이곳 미국에서 "수년 전 독일에서의 재앙이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악의 세력들에게 저항도 하지 않은 채 묵종하고 그들과 보조를 맞추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그는 오펜하이머가 정부의 보안 위원회에 협조함으로써 자신을 굴욕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유해한 과정 자체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 P746

개리슨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본 청문회에서는 오펜하이머 박사만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합중국 정부 역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개리슨은 "이 나라를 휩쓸고 있는 걱정"에 대해 말하며 은근히 매카시즘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트루먼과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기에 창궐했던 반공 히스테리로 인해 미국의 국가 안보 기구들은 이제 "공산주의라는 단일한 세력이 훌륭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미국은 자국민들을 먹어 치워서는 안 됩니다." 개리슨은 그레이 위원회가 "사람 전체를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최종 변론을 마쳤다. - P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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