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 산책 1권 - 개화기편, 천주교 박해에서 갑신정변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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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역사 관련 책을 좋아하잖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그 옛날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참 재미있더구나. 그리고 몰랐던 역사 상식 하나씩 알게 되는 것도 좋고 말이야. 비록 얼마 못 가 까먹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말이야. 이런 역사책을 학창시절에는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모르겠구나. 국사, 세계사라는 과목들이 아빠가 싫어했던 과목들이거든. 그런데 요즘에는 무척 좋아하게 되었단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여러 권으로 된 시리즈도 즐겨 있는데, 이번에 읽은 강준만 님의 <한국 근대사 시리즈>도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던 시리즈란다. 강준만 님의 <한국 현대사 시리즈>도 있는데, 그건 분량이 너무 많아서 엄두가 안 나고, <한국 근대사 시리즈> 10권으로 한번 도전할 만하다 생각했어. 너희들에게 해줄 역사 이야기꺼리도 생기고 말이야. 강준만 님은 교수이자 비평가로도 많이 활동을 하는 분이란다. 예전에는 아빠랑 정치적 노선이 맞아서 그의 책들도 여럿 가서 보긴 했는데, 언젠가부터 다른 길을 가시는 것 같더구나.

그래도 <한국 근대사 시리즈>는 역사물이니 괜찮겠다 싶었어. 아빠도 근대사를 한번 쭉 정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되고 말이야. 그런데 이 책은 구성이 좀 독특하구나.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여러 역사가들이나 비평가들이 쓴 내용들을 발췌를 해서 정리를 해주는 식이란다. 지은이의 생각도 들어있지만, 다른 역사가들과 비평가들의 글들이 더 많이 실려 있는 것 같았어, 그런데 아빠가 모르는 비평가들이 많은데, 그 비평가들이 옳게 이야기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더구나. 심지어 아빠가 싫어하는 신문의 내용도 실었는데, 아빠가 보기에는 편중된 시각으로 적힌 것 같은데, 지은이께서는 아무런 평을 하지 않더구나. 역사적 사건을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인 것 같기도 한데 그런 방법은 아빠에게는 별로였단다. 아빠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 근대사를 한번 쭉 훑어보는 기회로만 삼아야겠구나.


1.

언제부터 우리나라 근대를 봐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단다. 그 시기는 개화를 통해 외부 문화와 충돌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정의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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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개화기는 새로운 외부 문화와의 충돌을 경험한 시대였다. 그 충돌은 개화기 이전부터 일어났으니 그건 바로 천주교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 대응은 박해로 나타났다. 조선 정부의 천주교 박해는 당파싸움으로 인해 증폭되었다. 이는 개화기가 결국 망국(亡國)으로 종결된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조선의 자폐적 시스템과 더불어 내부갈등이 나라의 진로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였다는 사실을 폭로해주기 때문이다. 개화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천주교 문제를 살펴보고 넘어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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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에서도 본 것처럼 개화기에 천주교 문제는 빼놓을 수 없단다. 18~19세기 천주교가 탄압을 했는데, 천주교가 조금만 융통성을 발휘했다면 이런 일까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한단다. 천주교에서 우상 숭배를 하지 못하게 하는데, 우리나라의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우상숭배로 규정한 것이야. 우상숭배를 너무 폭넓게 본 것인데 그것은 천주교의 실수였단다. 우리나라에서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우상숭배로 했으니 당시 법이나 마찬가지였던 관혼상제를 거역하는 일이었어. 그래서 천주교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탄압하게 된 거야한참 나중에 교황에 의해 동양의 조상 숭배는 우상 숭배가 아니라고 규정을 해서 오늘날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은 제사도 지내고 그런단다.

아무튼 천주교는 17세기에 우리나라에 전파되었고, 1785년 사교로 규정지었다고 하는구나. 정조 시절에는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으나, 정조가 죽고 나서 반대파가 정권을 잡고 나서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어. 정조의 지지기반이었던 남인들이 천주교를 많이 믿었는데, 반대파 노론이 정권을 잡으면서 천주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반대파를 제거하는 목적에 사용했단다. 1810년 신유박해는 많은 천주교도가 죽었고, 남인들이 몰락하게 되었단다.  이때 아빠가 좋아하는 정약용도 유배를 가게 되었지.

이후 조선은 세도정치가 판을 치고 매관매직이 널러 퍼지게 되었단다. 대표적인 매관매직은 공명첩이 있었는데, 돈을 주고 관리직을 사는 것이었어. 능력도 필요 없고 시험도 필요 없고 돈만 있으면 관직을 가질 수 있었지. 이러니 백성들은 점점 살기 어려워졌고, 실패했지만 홍경래의 난까지 일어나게 되었단다. 헌정 때도 기해박해와 병오박해 등이 일어나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 알려진 김대건을 비롯하여 많은 천주교도들이 순교했단다.


2.

1850년이 넘어서는 이양선, 즉 서양배들이 우리나라 앞바다에 출몰이 잦았단다. 세계적으로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시절이라 동양의 끝까지 빼앗을 땅이 없나 기웃하던 배가 아닌가 싶구나. 이 때는 이미 여러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서양 열강의 식민지가 되어 있었단다. 중국 베이징도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몰락한 상태이고, 일본은 서양 열강을 따라 하는 메이지 유신이 일어났단다. 그런데 조선은 출처 없는 낙관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단다. 그렇다고 나라 기반이 제대로 되었냐? 그것도 아니야. 전정, 군정, 환정 등 삼정이 문란하여 백성의 여론은 땅에 떨어졌고, 어려울 때 빌려준다는 환곡의 이자가 치솟아 백성들은 더욱 어려워졌단다. 그래서 이 시절 민란이 많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간도나 연해주로 이주했단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절에 흥선대원군의 계략에 의해 어린 고종이 왕위에 올랐어. 고종 대신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고 있었고, 나라의 정책도 그에 의해 다 결정되었어. 비변사를 개혁하고 서원을 철폐하고, 호포법을 실시하여 양반들도 군포세를 납부하게 하는 듯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정책들을 개편하여 민심을 얻기도 했어. , 나름 정치개혁을 하려고 노력했구나. 하지만 여전히 백성들의 삶은 고달펐단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은 천주교의 호의적이었대. 쇄국정책을 일관한 사람으로 알고만 있었는데, 약간 의외구나. 오히려 유학자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어. 그들의 거센 반발을 눈치 볼 수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천주교를 탄압하기도 했대.(병인 박해)

1860 4 5일 최제우가 서학에 대항할 학문으로 동학을 창시했단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최제우를 혹세무민(惑世誣民), 즉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미혹하여 속였다고 해서 체포를 했단다. 많은 백성들의 항의로 금방 풀려났지만, 얼마 후 다시 체포되었고, 1864년 참수형으로 삶을 마감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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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에서 들어왔다가 그 선원들이 우리나라 백성들을 난폭하게 대했고 해적질을 하는 등 난동을 부렸단다. 그래서 박지원 손자인 박규수의 지휘아래 제너럴 셔먼호를 격침시켰단다. 물론 그곳에 타고 있던 선원들도 죽었지. 이 일이 나중에 미국에게 신미년에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빌미를 주게 된단다.

같은 해, 프랑스는 프랑스인 출신 신부의 죽음을 규명을 요구하기 위해 군함을 몰고 한강 따라 한강까지 왔었다고 하는구나. 서울에서 큰 진전을 보이지 않자 일단 후퇴했는데 강화도에서 이를 대비하고 있는 조선군과 격전을 벌였어. 그리고 이때 프랑스군이 이때 철수하면서 외규장각 서적, 직지심경 등 우리나라의 귀중한 보물들을 포함한 많은 책과 유물들을 약탈해갔단다. 그렇게 약탈해간 것인데 오늘날까지 돌려줄 생각을 없다니, 선진국의 양심들은 어디다 팔아먹었는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있고 5년이 지난 1871,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를 찾겠다고 왔다가 조선의 거센 항의에 전투를 벌이게 되었단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신미양요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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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열강 뿐만 아니라 일본도 호시탐탐 노렸단다. 일본은 이미 제국주의에 대한 학습이 되어 있었고, 주변국 중에 가장 만만해 보이는 조선을 간섭하기 시작했단다. 일본 운양호 사건을 조작하여 강화도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게 된단다. 이때 적극적으로 일본인 입장에서 도와준 김인승이라는 사람이 있었단다. 그러니까 이완용 이전에 김인승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그를 친일파 1호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단다.


3.

최한기라는 사람은 이름만 들어본 사람인데 그는 우리나라 개화와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많은 글을 쓰신 분이란다. 이름은 들어봤는데 그가 어떤 분이었는지 잘 몰랐는데, 조선말 진보 지식인이었고, 많은 책들을 쓰셨구나. 나중에 시간 되면 그에 관한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예전에 도올 김용옥 선생께서 최한기에 대해 쓴 책이 있는 것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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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89)

금장태는 최한기는 조선 후기 실학파의 마지막 인물이자 근대 개화사상으로 한걸음 나아갔던, 그 기대의 가장 앞선 진보적 지성인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저술은 1000권이나 된다는데 세상에 알려진 것은 아직 100여 권뿐이다. 그의 탁월한 학문의 폭넓은 식견이 알려지자 당시의 여러 재상들은 그를 조정에 끌어들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펼 수 없는 상황에서 벼슬하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신미양요로 강화도가 미국 함대에 침략당하자 친분이 있던 유수의 자문요청에 조언한 바 있다. …… 자신의 시대를 새로운 것으로 낡은 것을 바꾸는변혁의 시대로 규정한 그는 차라리 옛것을 버릴지언정 지금을 버릴 수는 없다하여 진보정신을 표방하고 과학과 문명이 더욱 발전하고 역사가 발전해나간다는 것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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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우리 사회를 바꾸자고 주장하는 개화파들은 대부분 일본 유학생 출신이었단다. 특히 서양제도와 사상까지 모두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는 급진개화파들이 그랬단다. 급진개화파들은 일본에 유학을 가면서 일본 메이지유신 계몽운동을 앞장선 후쿠자와 유키치의 영향을 받고 와서 우리나라도 서양문물을 받아 들여야 하자고 주장했단다. 참고로 급진개화파와 달리 우리 사상과 도덕은 그대로 두고 서양 기술만 받아들이자고 하는 온건개화파도 있었단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정부도 개화 정책을 추진했어. 민영익을 중심으로 개화정책을 추진했는데, 1881년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해서 청나라에는 영선사, 일본에는 신사유람단을 파견했단다. 그리고 서양의 나라와는 처음으로 미국과 1882년에 수호조약을 맺었단다. 역사책에서는 조미수호조약이라고 한단다. 그런데 조선과 미국 사이의 조약인데, 이걸 주도한 사람은 청나라의 이홍장이라는 사람과 미국의 슈펠트였단다. 이렇듯 이 시절 청나라의 간섭이 심했단다. 나라의 자존심이 서질 않던 시절이구나. 조선은 참석하지 않고 조미수호조약을 승인만 했다고 하는구나.

나라 사정이 어려워지다 보니 구식 군대에서 봉급을 일 년 넘게 미지급하게 되었는데, 참다 못한 구식 군대가 난을 일으켰으니 그것이 바로 임오군란이었단다. (1882) 임오군란을 일으킨 지도부는 흥선대원군과 면담을 했는데, 한직에 물러나 있던 흥선대원군이 이들을 뒤에서 조정한 것으로 보인단다. 난을 일으킨 군인들은 궁궐을 습격하고, 이때 민비(명성황후)는 도망을 간단다. 얼마 전에 펄 벅 여사의 <살아있는 갈대>에서도 명성황후가 궁궐 습격에 충주까지 도망을 가는 장면이 있었잖아. 그것이 바로 임오군란이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만들어진 장면이란다. 고종은 어쩔 수 없이 흥선대원군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흥선대원군은 입궁하여 다시 정권을 잡게 되었단다.

흥선대원군이 입궁을 하게 되자 난은 잠잠해졌어. 역시 흥선대원군이 뒤에서 조정한 것이 맞는 것 같구나. 흥선대원군은 입궁하자마자 정적이었던 민비의 국상을 준비했단다. 민비가 도망갔는데 죽은 걸로 치고 장례식을 치르려 했던 것이란다. 하지만, 이때 청나라가 개입하게 된단다. 아무래도 민비 쪽에서 움직인 것 같구나. 청나라는 군대를 이끌고 임오군란의 책임을 묻고, 흥선대원군을 청나라로 압송했단다. 한 나라의 왕의 아버지를 다른 나라 군대가 침입해 끌고 가다니흥선대원군이 잘못한 것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안에서 해결을 해야지다른 나라에서 끌고 간다는 것이 말이 되니? 국력이 약한 당시 우리나라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단다. 재집권한 지 33일만의 일이었어. 그렇게 끌려간 흥선대원군은 4년이나 유폐되었다가 풀려난다고 하는구나. 민비는 궁에서 도망간 지 51일만에 다시 궁으로 돌아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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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국과 수호를 맺은 다음 조선 정부는 미국에 보빙사를 파견한단다. 이것도 펄 벅 여사의 <살아있는 갈대>에서 이야기했었는데 기억나니? 1883년 민영익, 유길준, 홍영식, 서광범 등은 미국 견학을 떠나게 된단다. 민영익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들렀다고 오고, 유길준은 미국에 남아서 미국의 대학에서 공부했단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었지. 그는 미국의 신문에까지 실렸다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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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한편 최초의 미국 유학생 유길준의 미국 생활은 어떠했는가?

미국 <뉴욕타임스> 1883 11 8일자는 사절 수행원의 한 사람인 유길준은 자기나라의 옷을 벗고 지금은 서양 옷을 입고 있다. 그는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시의 에드워드 모스(1838~1925) 교수 지도하에 학생으로 이 나라에 머물 것이다. 어제 저녁 이 젊은이는 5번가(뉴욕)에 산책을 나갔다가 길을 잃었다. 그러나 몇 마디의 영어를 사용하여 경찰관에게 호텔 가는 길을 물어 찾아왔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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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파들 중 박영효, 유길준이 주축이 되어 1883년 한성순보를 창간하게 되는데, 국내 소식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소식도 많이 알려주었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학창시절 때 한성순보가 최초의 근대적 신문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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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미국과 수호조약을 맺은 이후 다른 서양의 나라들과도 조약을 맺게 되었어. 영국과 맺은 조영수호조약, 러시아와 맺은 조러수호조약 등. 그런데 조영수호조약의 내용에 영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조영신조약이라고 다시 맺었는데, 영국 제품에 낮은 관세를 보장하는 등 우리나라에 엄청난 불평등 조약이라고 하는구나. 이런 국제 관계에 대한 경험이 없던 우리나라는 이때 맺은 조약들이 대부분 우리에게 불리한 불평등 조약이었을 거야.

마지막으로 1884년에 일어난 갑신정변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김옥균은 급진개화파잖아. 그는 조선의 시스템을 서양의 제도로 싹 바꾸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고종을 만나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어. 고종도 김옥균의 주장을 지지했어. 고종도 청나라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서 개화사상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했거든. 이미 왕의 허락도 받았겠다, 이 정변의 성공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1884 12 4. 우정총국 완공 축하연회에서 척화수구파들을 비롯하여 대신들을 십여 명 죽이고 개화파가 정권을 잡았단다. 이 일을 성사시킨 사람들은 젊은 급진개화파인 박영효, 김옥균, 서재필, 홍영식 등이었단다. 그들은 새로운 내각을 구성을 했어. 갑신정변에 의해 구성된 내각은 대부분이 20대와 30대로 이루어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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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갑신정변의 내각은 청춘정권이었다. 내각 서른두 명의 연령을 보면 20대와 30대가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김옥균 서른세 살, 홍영식 스물아홉 살, 서광범 스물다섯 살, 박영효 스물세 살, 서재필 스무 살 등 주동자들은 더 젊었다. 혈기가 지혜를 앞섰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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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여서인지 고종은 그들에 반감을 갖게 되었단다. 고종의 이런 낌새와 함께 다시 청나라의 간섭으로 청나라 군대가 궁을 침략했단다. 김옥균은 고종을 설득하려고 했어. 하지만 고종은 끝내 그들을 배신하고 버렸단다. 이제 김옥균 등 갑신정변의 주역들을 3일의 권력을 내려놓고 도망을 가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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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

너희들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군주는 그렇게 개화를 버렸다. 김옥균은 군주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는다. 이제 곧 천하대역죄인이 될, 그의 부모와 아내와 아이들은 몰살을 당하게 될, 그리고 자신은 10여 년의 망명객이 될 것이며 망명지 일본에서도 버림받은 후 결국 중국 상하이에서 조선 정부가 보낸 암살자에게 목숨을 잃을, 그러나 군주를 사랑하였고 조선의 강대한 힘을 꿈꾸었던 김옥균은 이렇게 군주와 마지막 작별을 했다.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등이 김옥균과 함께 후퇴하는 일본군을 쫓아갔다. 군주의 곁에는 이제, 청군과 군중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될 홍영식, 박영교만 남았다. 실패한 혁명 뒤에 남은 것은 군중의 분노뿐이다. 거리는 살육으로 뒤덮인다. 일본인과 개화파들, 그들의 가족은 보이는 대로 습격을 당한다. 김옥균의 집과 일본공사관은 성난 군중의 손으로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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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일본군대까지 끌어들여 반대를 무차별하게 죽이면서 정권을 잡는 방식이 민심에도 부합하지 않았단다. 그러니까 정변에 대한 지지가 적었고, 그렇다 보니 명분도 줄어들었던 것 같구나. 결국 청나라 군대도 쉽게 간섭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구나. 갑신정변의 실패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역사학자들이 해석을 내놓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신용하라는 분의 말을 인용하여 정리하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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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이어 신용하는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실패 요인은 일본군 무력을 차용한 요인이라며 갑신정변은 아무리 필요하고 애국적인 목적을 갖고 있어도 그 수단에 있어서 침략의도를 가진 일본의 힘을 일부 빌려서 수행하려 해서는 실패하고 만다는 뼈아픈 역사의 교훈을 우리들에게 남겨주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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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한국 근대사 산책> 1권을 이야기해보았단다. 이 시리즈는 이미 10권까지 다 사 놓았기 때문에 끝을 봐야 한단다. 한 달에 두어 권씩 읽으면서 올해 안에 끝내는 것으로 목표를 삼아 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개화기는 새로운 외부 문화와의 충돌을 경험한 시대이다.

책의 끝 문장: 이는 김옥균 암살사건을 다루면서 더 생각해보기로 하자.


‘블라디보스토크’의 블라디는 러시아어로 ‘정복하다’는 뜻이고 보스토크는 ‘동쪽’의 의미인바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가 동쪽으로 와서 정복한 도시인 셈이다. 이전 이 땅은 발해의 중요한 거점 지역이었고 이후로는 여진과 거란의 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이 땅을 한자로 해삼위(海蔘威)라고 표기했는데 바닷가에 ‘해삼’이 많아서 해삼위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다도 4~5개월간 결빙하기 때문에 부동항을 얻으려는 러시아의 남하정책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 P72

역설이지만 서학은 물론 동학에 대한 이러한 탄압은 조선 조정이 자신들의 죄, 즉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걸 시사하는 건 아닐까? 민생을 도탄에서 건져낼 수 없는 무능이, 언제든 민심을 폭발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 제거에만 총력을 기울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 게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망국(亡國)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 P90

다블뤼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자선(慈善)의 원조 국가가 조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이 나라에서는 자선 행위를 진정으로 존숭하고 실천한다. 사랑방에서 받는 대접 이외에도 식사 때 먹을 것을 달라면 거절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일부로 그를 위해 밥을 다시 하기도 한다. 들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식사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즐거이 자기 밥을 나누어준다. 뱃사공들은 밥을 먹지 않고 배 타러 나온 사람과 나누어 먹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잔치가 벌어지면 언제나 이웃 사람들을 초대해서 형제처럼 모든 것을 나눈다. 여비가 없이 길을 떠나는 사람은 엽전 몇 닢의 도움을 받는다. 없는 사람과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조선인이 가진 덕성 중의 하나이다."
먼 훗날에라도 조선에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 P99

조선은 강화도조약에 따라 개항을 하게 되었고 근대적인 서양 문물을 수입하게 되었다. 1876년 부산이 개항하고 이어 1879년 원산, 1880년 인천이 개항했다. 학계에선 근대화가 되는 시대를 의미하는 ‘근대’가 언제부터인가 하는 논쟁이 있는데 학계의 통설적 견해는 아무런 준비 없이 강요된 것이긴 하지만 개항을 통해 새로운 서구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한 1876년을 근대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 P161

<한성순보>는 신문발간의 동기와 기술적 지원은 일본에 의존했지만 신문의 뉴스원, 내용과 관련해선 중국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이 신문이 기사로 가장 많이 다루었던 국가는 중국(453회)이었으며 그 다음으로 베트남(165ㅎ회), 프랑스(71회), 영국(56회), 일본(53회), 미국(47회) 등이었다. 중국 관련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이유는 조선과 중국의 관계가 밀접했다는 것 이외에 영국, 미국을 비롯한 열강의 선교사나 상인 등이 발간하던 중국계 신문들을 주요 뉴스원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성순보>의 실무자들은 "거의가 한학자와 중국어 역관(譯官) 출신들로서 한문에는 능통한 반면 일본어는 몰랐다는 점과 이들이 "일본보다는 중국을 더 숭상"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베트남, 프랑스 관련 기사가 많았던 건 1884년 6월 프랑스의 베트남 침략(1883) 문제로 일어난 청불전쟁과 베트남이 프랑스에 먹히는 비극에 대한 동병상련(同病相憐) 감정 때문이었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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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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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Jiny 가 학원에서 읽어야 한다면서 책목록을 보여주었단다. 그 목록에 이희영 님의 <페인트>이 있었단다. 이 책은 예전부터 인터넷 서점에서 많이 노출이 되어서 책 제목과 책 표지는 이미 알고 있던 책이었어. 책 제목과 책 표지만으로는 무슨 내용인지 가늠이 안 되었단다. 왜 제목이 페인트일까? 궁금했지. 이 궁금증은 우리 식구들 모두의 궁금증이었지.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아빠가 가장 먼저 읽어 보았단다. 그리고 그 궁금증을 해결했단다. ㅎㅎ Jiny도 아빠 다음으로 이 책을 읽었으니 이제 그 궁금증이 해결되었겠구나.

너희 같은 학생들에게 추천을 해주어서, 이 책에 교훈적인 내용도 담겼나? 하는 생각도 하면서 책을 펼쳤단다. 책 소개를 전혀 읽지 않고 읽기 시작했는데, SF 소설이더구나. , 아빠가 SF 소설은 좋아하니 더 반가웠단다. 책이 그리 두껍지 않아서 휘리릭 읽었단다. Jiny는 이미 책 내용을 알고 있을 테니, 아빠의 기억력을 백업한다는 생각으로 줄거리에 충실하게 적어보련다.


1.

가까운 미래인데, 먼 미래인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 속의 시대에는 아이들의 양육을 포기한 부모들을 위해서 나라에서 체계적으로 아이를 양육해주는 NC센터가 있었단다. NC Nation’s Children의 약자였어. 그리고 아이를 낳고 양육을 포기하는 것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했어. 그래야 양육 문제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떨어지는 출생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구나. 아이들을 낳아본 아빠로서는, 미래가 되었다고 해서 엄마, 아빠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본능이 쉽게 바뀔 것 같지가 않더구나. 그러니까 이렇게 양육 포기하는 것이 자연스런 사회가 되어도, 양육 포기를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야.

아무튼, NC센터는 국가에서 아이들을 키워주는 그런 단체였고, NC 센터는 나이에 따라 퍼스트 센터, 세컨드 센터, 라스트 센터로 구분되어 있었어. 마지막 라스트 센터는 13살부터 19살까지 머무르게 되는데, 이때 면접을 통해서 부모를 선택할 수 있었단다. 이것이 오늘날 입양 시스템과 좀 다른 것이란다. 오늘날 입양은 부모가 될 사람이 아이를 선택하게 보통인데, NC 센터에서는 입양하고 싶은 사람들을 아이가 면접을 여러 번에 걸쳐서 하고 나중에 최종적으로 결정을 하게 되면 그때 NC 센터에서 나가 자신의 선택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거야.

NC 센터의 아이들을 입양한 부모에게는 나라에서 여러 가지 혜택을 주기도 해. 이렇게 센터의 아이들이 부모를 면접하는 것을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이라고 하고, 부모 면접을 영어로 한 페어런츠 인터뷰를 줄여서 부르다 보면 페인트와 발음이 비슷해서 아이들 사이에 부모 면접을 은어로 페인트라고 불렀단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이 페인트가 된 것이란다.

센터에서 아이들을 보호해 주는 어른을 가디언이라고 하고, 줄여서 가디라고 한단다. 그리고 센터의 아이들은 입양이 되어 센터를 떠나기로 확정되면 이름을 갖게 되고 그 이전에는 자신이 태어난 달의 영어 이름을 줄인 것에 숫자를 붙여서 부른단다. 주인공은 1월에 태어나서 제누301’이라고 불렀어. 제누301 17살로 센터 안에서는 꽤 나이가 많은 편이었단다. 19살까지 부모를 만나지 못하면 NC에서 나가서 혼자 살아야 하는데, 이 경우 암암리에 NC센터 출신이라는 차별을 받게 된다고 하더구나. 센터장 박씨와 가디 최씨는 제누301 19살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부모를 만나게 해주려고 노력을 했단다. 센터장 박씨는 센터를 위해서 참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어. 자신의 일보다 센터의 일이 늘 먼저였어.


2.

보통 NC 센터에 아이를 입양하려는 부부는 준비를 많이 해 온단다. 아이의 면접을 받는 대상이 부부들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어느 날 젊은 30대 부부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센터에 들렀단다. 서하나, 이해오름이라는 부부인데 그들의 자세부터 부모가 되려는데 별 관심이 없어 보였어. 그저 국가에서 주는 혜택을 받으려고 온 사람들인 것 같아서 가디들은 그 부부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다른 준비를 많이 한 사람들과 달리 솔직함이 좋다면서 제누301은 그들을 면접하겠다고 했단다.

면접을 하면 할수록 그들의 솔직함에 면접은 3차까지 이어졌단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제누301은 입양을 거부했단다. 서하나, 이해오름 부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니야. 제누301은 이곳 NC센터에 더 배울 것이 있다고 했어. 마지막 19살 때까지 NC센터에서 배우고 이 곳을 나가서 혼자 세상에 부딪혀 보겠다고 했어. 그런 점을 마지막 면접 때 서하나에게 이야기를 했고, 서하나도 제누301의 진심을 이해해 주었단다. 그리고 NC센터를 졸업하게 되면 찾아오라고 진심으로 이야기했단다. 그러면서 부모와 자식 관계가 아니고 친구가 되자고 했단다.

제누301인 센터장인 박씨를 만나러 갔어.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했어. 센터장님을 비롯하여 가디님들과 함께 19살까지 센터에 머무르면서 공부하고 배우겠다고 했어. 그리고 NC센터 출신의 차별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당당히 차별을 없애는데 노력하겠다고 했단다. 제누301을 각별하게 생각했던 센터장님도 제누301의 진심을 받아주었단다. 그래서 제누301은 센터에 남기로 했단다. 아빠 생각에 제누301 19살에 되어 NC센터를 졸업을 하게 되더라도 NC센터에 가디로 취업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러면서 NC센터 출신의 받는 차별을 깨려는 사회운동도 함께 말이야. 센터장 박씨와 다른 가디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 같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니?

이 읽은 사람들의 서평에 나는 몇 점 부모일까?’라고 자문을 많이 하는 모양이구나. 아빠는 그런 자문은 별로라고 생각해. 부모 자식 간을 무슨 점수로 매기니. 정답 없는 사이, 아니 모든 것이 정답인 사이인데 말이야. 식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너희들이 아빠의 아이들이라서 아빠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 되었단다.


PS,

책의 첫 문장: 두 사람은 홀로그램 속 모습과 약간 달라 보였다.

책의 끝 문장: 열여덟, 아직 태어나지 않은 껑충한 아기가 성큼 계단 위로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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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노린 음모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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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스타그램에서 가끔씩 신간으로 나온 책 광고가 보인단다. 어느 날 책 광고 카피 하나를 보고 깜짝 놀랐단다. 멘트가 후덜덜.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난 후, 내 인생은 악몽이 됐다.”

라는 광고 카피였단다.

이 시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말을 대문짝 만하게 써 놓다니용감한 출판사에 박수를 보내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책인가 싶어 광고의 다음 게시물들을 넘겨 보았단다. 소설이더구나. , 지은이가 필립 로스. 필립 로스의 소설들을 서너 권 읽었는데, 모두 괜찮아서 두어 권 사서 재어두고 있었는데신간이 나왔구나. 아주 절묘한 시기에 절묘한 광고 카피를 달고 말이야. 이런 책은 안 살 수가 없지. 바로 사서 읽었단다. 이 책의 리뷰 중에 필립 로스의 책들 중에 가독성이 가장 좋았다는 평이 있었는데 그 평대로 책장이 휙휙 넘어가고, 재미 또한 좋았단다.

지나간 역사의 어떤 일이 다르게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으로 쓴 소설을 대체 역사 소설이라고 한단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이 승전국이 독일이었다면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지 않았다면이런 걸 가정하고 소설을 쓰는 것이야. 이번에 읽은 필립 로스의 <미국을 노린 음모>도 그런 대체 역사 소설이란다. 어떤 역사적 사실을 가정했냐면…. 1940년 미국 대통령이 루즈벨즈가 아니고, 반유대주의자였던 찰스 린드버그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미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계2차 대전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이 소설에서 반유대주의자로 대통령이 된 찰스 린드버그라는 사람은 실존 인물이었단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한 사람으로 미국에서 꽤나 유명한 사람인 것 같구나. 그가 살았던 시절에도 인기가 있었고, 2차세계대전에 참가에 반대하면서 반유대주의 발언도 했었다고 하는구나. 전쟁 전이긴 하지만 독일에 방문하여 히틀러부터 독일 훈장을 받기도 했다는구나. 그가 후에 대통령 후보 추천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하는데, 지은이 필립 로스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가 그때 실제로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으로 소설을 쓴 것이란다.


1.

주인공은 지은이와 이름이 똑 같은 필립 로스였단다. 당시 린드버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유대인이었던 자신의 가족들이 어떤 생활을 했을까, 상상을 하면서 소설을 쓴 것 같아.

때는 1940. 필립은 7살이었고, 형 샌디는 12살이었고,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에서 살고 있었어. 아버지는 진급을 해서 다른 마을로 이사 갈 기회가 있었으나, 이사 갈 마을은 유대인들이 적다고 진급을 포기할 정도로 유대인들과 함께 지내려고 하셨단다.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사촌형 앨빈도 함께 지내고 있었단다.

당시 미국에서는 찰스 린드버그라는 사람의 인기가 엄청 좋았어. 비행기를 타고 세계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사람인데다가 첫 아이가 유괴 당한 후 죽어서 그에 대한 동정심도 있었단다. 아이의 유괴 사건 이후 미국을 떠나 영국에서 살다가 독일에도 방문하였고, 총통과 친해지면서 독일로부터 여러 훈장들을 받았단다. 그로 인해 유대인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는데, 그런 그가 미국에 와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게 되었고, 결국 인기에 힘입어 최종 후보가 되었단다.

그가 인기를 얻을 수 있던 것은 미국은 세계대전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공약 때문이었어. 왜 우리 젊은이들이 유럽의 전쟁에 참가해서 죽어야 하는가? 라는 거지. 전쟁은 모든 이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 공약이 잘 먹혀 들어갔지. 우리만 괜찮으면 된다는 위험한 생각인데, 그것이 죽음과 관련이 있다 보니 잘 먹힌 거지. 그런데 그가 친나치에 반유대주의자란 것이 널리 알려져서 공화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단다.

필립의 가족들을 비롯하여 유대인들은 루즈벨트가 당선될 것을 믿으면서도, 혹시나 린드버그가 대통령이 어쩌나, 하는 걱정들을 했단다. 그런데 벨겔 스도르프라는 유명한 랍비가 린드버그를 지지한다고 했어. 랍비가 린드버그를 지지하는 이유는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내용 때문이야. 린드버그가 반유대주의자인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어. 린드버그는 미국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미국 고립주의로 지지도가 급상승했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단다.


2.

이에 유대인들은 몸을 사리거나 격렬히 비판했단다. 앨빈 형은 유대인의 후원으로 무료로 대학에 다닐 수 있었으나, 린드버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캐나다로 건너가 세계대전에 참가하기 위해 군대에 입대를 했단다. 아버지가 이 일이 있기 전 앨빈 형을 말렸는데, 심한 말다툼 끝에 앨빈 형은 끝내 캐나다에 갔단다.

린드버그는 취임 후 히틀러를 만나 평화 협약을 했고, 추축국 중 하나였던 일본과도 협약을 맺었단다. 이 협약들에는 미국은 전쟁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누가 봐도 미국은 추축국 편을 드는 모양이었단다.

필립의 식구들은 린드버그가 당선이 되기 전부터 워싱턴 DC를 여행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이 여행을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갔단다. 테일러 씨라는 가이드가 안내를 해주었는데, 워싱턴이 아무래도 미국의 정치적 수도이다 보니, 필립의 아버지는 대통령을 비판하는 정치적 발언을 했단다. 그것을 본 어머니는 조마조마해 하셨어. 그런데 호텔 체크인부터 문제가 생겼어. 호텔에서 실수로 이중으로 예약을 받게 되어서 돈을 환불해주면서 호텔에 묵을 수 없다고 하는 거야. 어떻게 해서든지 빈 방을 마련해주는 것이 상식인데, 돈만 툭 던져주고 만 것이란다. 아버지는 이것이 자신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했어. 경찰을 불러 따지려고 했으나, 경찰도 이야기를 들어보고 문제 없다면서 호텔 편을 들어주었단다.

가이드였던 테일러 씨가 다른 호텔을 알아봐주어 다행히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단다. 식당에서 가서는 유대인을 욕하는 반유대주의자들과 시비가 붙기도 했어. 아버지는 미국인인 자신이 왜 미국에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냐면서 큰 소리를 치셨지. 여행이 완전히 엉망이 되었단다.

….

필립에서는 이모 이블린이 있었어. 그런데 그 이모가 린드버그를 지지했던 스도르프 랍비의 비서로 일했어. 아버지는 그런 이모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단다. 어떻게 린드버그를 위해서 일할 수 있냐면서 말이야. 유대인 청소년들을 위한 소박한 사람들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하나 생겼는데, 이모는 그 프로젝트를 샌디 형에게 추천했어. 아버지가 반대를 했지만, 샌디 형은 가고 싶다면서 우겨서 8주간이나 남부에 있는 농장에서 체험을 하고 왔단다.

이 프로젝트를 다녀온 이후 샌디는 농장에 대한 동경심이 커졌고, 샌디가 다녀온 남부 지역이 공화당지지를 해서 그 영향을 샌디도 공화당을 지지하게 되었어. 아버지와 정치적 노선과 달라 충돌하기도 했어. 샌디는 그 이후 이모 이블린과 스도르프 랍비가 일하는 동화청이라는 곳에서 일하기도 했어. 소박한 사람들이라는 프로젝트가 유대인 청소년들을 공화당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인 것 같았어.


3.

한편 앨빈 형은 전쟁에 참가했다가 왼쪽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단다. 그런데 전쟁과 부상에 대한 심한 후유증을 겪게 되었어. 처음에는 거의 폐인 생활을 했는데 조금씩 재활에 힘쓰려고 했단다. 필립도 앨빈 형과 함께 지내면서 도와주었어. 하지만 이내 노름에 빠지며 일상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어.

친척 중에 몬티 삼촌이 있는데, 앨빈 형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하자, 삼촌의 말 따라 일을 하려고 했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단다. 이제는 이런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어. 그렇게 잠깐의 노력이 좌절되자, 앨빈 형은 집을 떠나서 셔시라는 친구의 삼촌이 운영하는 도박장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나라 안에서는 한 동안 조용히 있던 루즈벨트 전 대통령이 반 린드버그 세력을 집결시키면서 시위와 집회를 했단다. 필립의 집안은 정치색이 두 개로 나뉘어졌단다. 필립과 아버지, 어머니는 루즈벨트를 지지하고, 이블린 이모와 샌디 형은 린드버그를 지지했어. 이블린 이모는 스토르프 랍비와 함께 백악관에 열리는 연회에 초대받기도 했는데, 독일에서 온 히틀러의 측근도 참석했단다. 유대인들을 그렇게 학대하는 히틀러의 측근과 함께 연회를 하다니이게 말이나 될 소리냐며, 아버지는 이블린 이모와 심한 말싸움을 했고, 이모를 집에서 쫓아냈단다.

린드버그 정부는 홈스테드 42’라는 정책을 실시했는데, 이것은 유대인 가족들을 특정 지역에 이주시키는 정책이었단다. 이제는 대놓다 유대인들을 차별하려는 것이었어. 필립의 엄마 베스는 캐나다로 가자고 했으나, 아버지는 이곳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했어.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해서 이 나라에서 쫓겨나야 하냐고 말이야. 린드버그를 비판하던 유대인 방송인 윌터 윈첼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결국 그는 방송국에서 퇴출되었단다. 그리고 루즈벨트가 다음 대선에서 출마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이어지자, 윌터 윈첼은 자신이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단다. 그러면서 지역을 돌면서 유세를 했는데, 반유대주의자들의 테러에 의해서 그만 피살되고 말았단다. 나라는 점점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지. 반유대주의자들의 선동이 이어졌는데, 이를 제대로 제지하지도 않았어.


4.

그런데 뜻밖에 일이 벌어졌어. 1942 6월 어느날 린드버그는 자가비행기를 타고(그는 전직 비행사답게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단다.) 워싱턴을 가던 도중 사라졌어. (전직 비행사인 그에게 이런 일은 아주아주 드문 일이지.) 대통령의 실종. 이동 경로를 며칠 동안 수색했지만, 비행기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어. 독일은 영국군이 린드버그를 납치해 갔다고 주장했어. 영국은 독일이 린드버그를 데리고 가서 자작극을 벌이고 있다고 했어. 린드버그가 사라지고 부통령인 휠러가 대통령 대행 임무를 하고, 나라는 계엄령이 내려졌는데, 혼란은 더해갔단다. KKK를 중심으로 한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유대인들이 백여 명이나 죽고 말았단다.

이 시기 필립의 가족들과 친구들도 힘든 시기를 보냈단다. 필립의 친구 셀덴의 엄마가 반유대주의자들에게 죽음을 당했어. 엄마와 둔 둘이 살던 셀덴은 혼자 있게 되었는데, 셀덴이 살고 있는 곳까지 멀리 떨어져 있었어. 아버지는 샌디형과 함께 셀덴을 데리러 폭동과 혼란의 한 가운데를 질러 갔단다.

….

휠러의 대통령 대행은 일주일 남짓하고 의외에 사건으로 끝이 나고 말았단다. 린드버그의 아내, 그러니까 영부인이 휠러의 반국가적 불법에 대해 폭로를 했어. 영부인은 국회에 민주주의를 다시 수립해 달라고 요청을 했어. 휠러는 탄핵이 되었고, 대통령 재선거가 진행되었고, 루즈벨트 대통령이 다시 당선이 되었단다. 그렇게 다시 나라를 제자리에 돌려 놓았지. 루즈벨트 대통령은 연합국을 지지했겠지. 그가 당선된 지 한 달 만에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했고, 미국은 세계대전에 참전을 했단다. 그리고 루즈벨트는 1945년 종전을 얼마 앞두고 죽고 말았단다. 이 부분은 역사적인 사실을 그대로 가지고 왔구나. 실제로 루즈벨트 대통령은 종전을 얼마 앞둔 1945 4월에 죽었거든.

….

그런데 나중에 이블린 이모가 숨겨진 진실을 이야기해주는데 놀라움 그 자체였단다. 린드버그가 대통령이 된 것이 모두 히틀러의 작전이었다는 거야. 린드버그의 아이를 유괴한 것은 독일이었고,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그건 다른 아이였고, 실제 린드버그의 아이는 독일로 유괴해 갔으며, 린드버그 부부가 독일에 왔을 때 아이를 보여주었다고 했어. 그리고 아이를 인질로 린드버그로 하여금 미국에 친독정부를 만들게 한 거야.

집권 중에 린드버그는 다시 독일에 가서 아이를 만났는데, 아이는 부모도 알아보지 못하고 독일 소년군 수업을 받고 있었어. 완전히 독일 사람이 다 된 거지. 이에 린드버그 부부는 그 아이는 더 이상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독일에서 시키는 것에 대해 조금씩 따르지 않기 시작했다는구나. 그리고 그 와중에 린드버그가 실종된 것이라고 했어. 그렇다면 린드버그의 실종도 독일의 짓이라는 것인데….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났단다. 지은이의 상상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책이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것이 2004년이었어. 필립 로스가 1933년생이니까, 일흔 넘어서 쓴 소설인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창의력 넘치는 소설인 것 같구나. 이제부터 <미국을 노린 음모>를 아빠가 읽은 필립 로스의 소설들 중에 가장 좋았던 소설로 손꼽아야겠구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불편함이 하나 있었어. 만약 아빠가 그 시절 미국에 살고 있었고, 전쟁에 나갈 나이가 되었거나 그런 자식들이 있었다고 했을 때, 친나치이긴 하지만 린드버그처럼 절대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가지고 대선에 나왔다면 그를 뽑지 않을 도덕성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어. 루즈벨트가 하는 일이 정의롭다고 하지만, 내가 또는 내 자식들이 전쟁에 나가서 죽을 지도 모르는데, 그를 지지할 수 있었을까.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 되었을 것 같구나.

그런데 친나치주의자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약을 해도, 그걸 끝까지 지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구나. 오히려 추축국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구나. 선거를 할 때, 후보자가 나중에 자신의 공약을 지킬 수 있는지도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단다. 그걸 우리나라 국민들이 못해서 고생을 하고 있구나. 줄거리를 주절주절 쓰다 보니 독서 편지가 길어졌는데 그만해야겠다. 안녕.


PS,

책의 첫 문장: 이 기억엔 두려움이 잔뜩 스며 있다.

책의 끝 문장: 그애 자체가 토막난 다리였고, 그애가 결혼한 이모와 함께 살기 위해 열 달 후 브루클린으로 떠날 때까지 나는 그애의 의족이었다.


윈첼은 리벤트로프를 신사인 척하는 사기꾼이라 불러. 그가 전쟁 전에 뭘 했는지 아니? 샴페인을 팔았어. 술을 파는 장사꾼이었단다. 샌디. 그는 사기꾼이야. 재별 정치인에 도둑에 사기꾼이지. 심지어 그의 이름에 붙은 ‘폰’도 가짜야. 하지만 넌 이런 것들 것들을 전혀 모르고 있어. 넌 폰 리벤트로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괴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괴벨스와 힘러와 헤스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난 알고 있다. 폰 리벤트로프 씨가 다른 나치 전범들과 호화 만찬을 즐기는 오스트리아의 성이 어떤 곳인지 들어봤니? 어떻게 그의 것이 됐는지 알아? 빼앗았어. 성주(城主)인 귀족을 힘러가 강제수용소에 집어넣었고, 그래서 술 장사꾼의 소유가 된 거야! 샌디, 단치히가 어디인지, 거기가 어떻게 됐는지 아니? 베르사유 협약이 뭔지 알아? <나의 투쟁>에 대해 들어봤니? 폰 리벤트로프에게 물어봐라. 그가 대답해줄 거다. 그리고 나치의 관점은 아니지만, 나도 대답해줄 수 있어. - P269

아버지의 삶이 고되다는 건 아침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술을 한 잔씩 하는 걸 보고 알 수 있었다. 보통 우리집에서 포어로제스 한 병이 비려면 몇 년이 걸렸다. 절대금주를 유난히 강조하는 어머니는 스트레이트 위스키의 냄새는 물론이고 거품이 이는 맥주잔을 보기만 해도 치를 떨었다. 그리고 아버지 역시 두 분의 기념일이나 저녁식사에 초대한 보스에게 얼음을 넣은 포어로제스를 대접할 때가 아니면 언제 술을 마셨던가? 하지만 이제 아버지는 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고 샤워하기도 전에 작은 유리잔에 위스키를 따른 후 머리를 뒤로 젖히며 벌컥벌컥 마셨고 그런 뒤에는 즉시 백열전구를 집어삼킨 듯한 얼굴로 변했다. "좋아!" 아버지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아주 좋아!" 그런 뒤에야 아버지는 긴장을 풀고 양껏 음식을 먹었고 단 한 번도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았다. - P331

마치 이렇게 해괴한 경우에 다른 사람의 눈에는 옳은 판단과 틀린 판단이 분명히 보이는 것처럼, 그런 곤경에 처했을 때 다른 누구도 어리석음의 손에 이끌리지 않는 것처럼 어머니의 비통함은 후회로, 자신을 향한 무자비한 채찍질로 표출되었다. 어머니는 단지 직감에 따라 행동했으며 그 직감은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올바르지 않은 판단을 내렸다며 자책했다. 하지만 정말 가혹하게도 어머니는 설령 본능을 거부하고 행동했다고 해도 어떤 이유를 찾아내 자신의 행동을 개탄했을 정도로 무조건 자신이 파국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 P465

어머니가 고통스러운 혼란에 빠져 자책하는 것을 지켜보는(그리고 그 자신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온 것은, 사람이란 옳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잘못된 일을 할 수 있고, 가끔은 그것이 너무 잘못된 일이라 혼란이 지배하고 모든 것이 위태로울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으며(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곧 뭔가를 하는 경우일 때를 제외하고…… 그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주 큰일을 하는 것이므로) 심지어 감당할 수 없는 삶의 흐름에 매일 체계적으로 저항하는 어머니에게도 그렇게까지 불길한 혼란을 감당할 체계적인 방법은 없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 P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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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 배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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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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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읽었단다. 최근 수상작은 아니고, 21회 수상작이니까, 몇 년은 지난 것 같구나. 제목은 <누운 배>. 아빠는 이 책을 몇 년 전에 인터넷 서점에서 알게 되었단다.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소설인가 싶었단다. 그런데 그건 아니더구나. 어떤 상징적인 의미로 쓰인 말도 아니고, 실제로 배가 누운 것을 소재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아빠가 조선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지만, 너무 실감나게 잘 풀어나갔단다.

조선업을 하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어떤 장면은 아빠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었단다. 배를 설계하고 만들고 판매하고그러다가 크고 작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게 되고그럼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움직이는 이런 장면들은 여느 회사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인 것 같구나. 소설 속 대화를 읽다 보면 회의실에 직접 앉아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회사 경영진들의 답답한 결정을 보면 기시감을 느끼면서도 찐 고구마를 잔뜩 먹은 기분도 들고 그랬단다.

많은 사람들이 몸 담고 있는 회사라는 세계.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회사라는 세계도 민주주의 세계일까? 예전에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여러 번 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단다. <누운 배>라는 소설을 읽다 보면 지은이가 조선소에서 일하지 않고는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선업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단다. 작가의 말을 보니 지은이 이혁진 님은 실제로 조선소에서 근무했었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또 한 명 추가를 해야겠구나. 이 책을 덮고 이혁진 님의 책을 두어 권 주문했단다.


1.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신설 조선업 회사. 거대한 배를 처음으로 두 척이나 수주를 받고 만들게 되었단다. 진척율 80% 정도를 보이던 어느 날 두 척 중에 한 척이 기울어지고 있었단다. 전직원 비상 소집으로 소설인 시작되었단다. 주인공 문 기사도 마찬가지로 팀장의 전화를 받고 회사로 복귀했단다. 하지만 경영기획팀 소속인 문 기사는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단다. 그리고 결국 배는 완전히 옆으로 누워버렸단다.

주인공은 문 기사. 이름이 기사는 아니고 직급이 기사였단다. 이 회사의 직급을 잠깐 소개하자면, 회사에 입사를 하면 먼저 기사라는 직급을 갖게 된단다. 그래서 지은도 성을 함께 붙여 문기사로 불렸다. 소설 속에서 이름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문기사로만 불려서 아빠도 그냥 문기사라고 부를게. 그 위의 직급은 다른 회사들과 비슷하게 대리, 과장, 부장으로 이어진단다.

문기사는 전직기자 출신으로 이 조선소에서는 경영기획팀에 소속되어 회사 홍보를 비롯하여 여러 잡일을 하고 있었단다. 배가 기울어진 이후에는 보험 업무를 하게 되었단다. 거대한 배가 쓰러진 것은 단순히 생각만 해도 엄청난 손해가 날 것 같구나. 손해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서는 보험회사에서 많은 돈을 뜯어내야 하기 때문에 보험 업무는 무척 중요했단다. 회사는 이번 사고가 천재지변에 의한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단다.

이런 일에 전문가인 홍소장이라는 사람도 긴급 섭외했단다. 보험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문서와 증빙 서류가 엄청 필요했단다. 하지만 이 회사는 신설 회사이고 해서 제대로 된 문서가 별로 없었단다. 프로세스를 미준수한 것도 여럿 있었어. 보험회사도 돈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만만치 않았어. 손해사정사로 미스터 캉이라고 부르는 중국인을 데리고 왔는데, 홍사장과 마스터 캉의 기싸움이 엄청 났단다. 주인공 문 기사도 보험 회사에 제출할 문서와 증빙자료를 조작하는 등 회사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나갔다. 결국은 이곳도 인맥의 싸움인가? 홍사장과 조선소 회장의 뒷배로 보험 처리가 원하는 대로 될 것 같았단다. 회사 창단 이래 첫 번째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단다.


2.

그런데 다음 해 신년 인사에서 회장은 뜬금없이 누워 있는 배를 세우겠다고 발표를 했단다. 이미 보험회사에서 어느 정도 손해 배상을 받았는데 왜 배를 세워? 배를 세우는 일은 그 일이 가능하다고 해도 세우는 배용과 수리하는 비용, 그리고 인건비 등을 다 더하면 배 값보다 크다는 것이 실무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단다. 하지만 신년회에 참석한 경영진은 누구도 반대 의사를 보이지 않았단다. 이 회사는 회장의 권력이 막강한 그런 회사였던 거야. 독재라고 볼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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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아무리 그렇더라도 귀가 있고 생각이 있으면 임원들의 횡설수설을 모를 리 없지 않은가? 상관없었다. 회장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틀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회장의 힘이고 지위고 회장을 둘러싼 찬란한 광배였다. 회장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강력하게 군림했다. 임원들이 가짜를 말해도 회장이 진짜라면 진짜가 되고 진짜를 말해도 회장이 가짜라면 가짜였다. 사고 원인을 결정한 사람도 회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했다.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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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회사 방침에 불만 있는 이들은 하나둘 퇴사를 하게 되고, 회장이 영입한 임원들은 무능력한 자들이고 아래 실무자들만 달달 볶는 스타일이었단다. 외부 영입 임원들 포함 임원들 수는 늘어나는데 사정이 어렵다면서 직원들 연봉은 협상 없이 지난해와 동결 결정되었단다. 그야말로 독재가 따로 없구나. 문 기사의 직속상사 팀장도 무능한 임원과 갈등으로 퇴사를 하였단다. 그러면서 팀이 해체되어 문 기사는 생산기획팀으로 옮겼어.

전 세계적으로 금융환란이 일어났단다. 조선업계도 위기가 불어 닥쳤어. 환율이 올라서 중국 내에서 생활하는 것도 어려워지기 시작했어. 가뜩이나 월급도 동결되었는데 말이야. 불만이 가득한 채권단은 사장을 자르고 새로운 사장을 선임했단다. 조선업에서 잔뼈가 굵은 황철주라는 사장이란다. 이전 사장은 회장의 바지 사장이라고 하면 이번 사장은 야심을 넘어 야욕이 넘치는 사람이었단다. 새로운 사장이 오면 보통 허니문 기간이 있는데, 황사장은 처음부터 사람들을 속된 말로 조졌단다. 특히 임원들을 더욱 강하게 몰아 부쳤어. 무능한 임원들 밑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은 속이 시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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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황 사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회의를 기준으로 삼기 바랍니다. 이전에도, 또 다른 회사에서도 똑같이 해왔다는 말 같잖은 소리는 집어치우십시오. 모른다, 확인하겠다, 말만 하지 말고 미리 준비해서 들어들 오세요. 이 회의는 주간 공정 회의입니다. 회의 이름에 걸맞게 지난주 생산 실적을 확인, 정리하고 다가올 한 주의 생산을 제고할 방안을 미리 세운다는 관점에서 준비들 해오세요. 이 회의에 참석한 여러분은 모두 관리자고 책임잡니다. 1 1초가 귀한 사람들입니다. 설명 같은 변명, 변명 같은 핑계, 핑계 같은 거짓말, 불순하고 무책임한 잡설로 자신의 시간을 허비하고 남의 시간을 뺏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황 사장은 수첩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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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 보면 회사 내 조직 간 상충되는 일이 있단다. 그렇다 보면 다른 조직 핑계되면서 일정이 밀릴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하지. 이전 사장 같았으면 그럼 조정된 일정으로 다시 계획을 수립했지만, 황사장 앞에서는 그것이 안되었단다. 책임과 고통을 분담해서 일정을 맞춰야 한다.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찾아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임원의 역할이다. 이런 식으로 임원을 다그쳤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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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167)

황 사장은 자신의 책상 양옆으로 앉아 있는 임원들을 봤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회사의 모든 사람이 그 고통을 나눠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나누는 게 책임을 나눠 진다는 건 아닙니다. 회사가 어려워진다면 잘못은 내게 있고 또 각자 가지 분야에서 최고참이자 전문가인 임원들, 우리 경영진에 잘못이 있습니다. 책임 역시 내 책임이고 우리 경영진의 책임입니다. 수십 년 일해온 우리가 각자 자신이 맡은 일조차 장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뒤집어 말해 돌발 상황과 변수를 통제하지 못하고 다른 부서가 일하는 것에 자기 일을 맞춰나가겠다고 하는 이 상황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내 일의 주도권을 남에게, 외부 요인에 내줬다는 게 명백한데도 그걸 되찾을 거라고, 되찾아야 한다고 어떻게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실패와 지연에 적응하고 익숙해질 수 있습니까?” 회의실 안은 적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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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의 전반적인 부조리도 바꾸려고 했단다. 임원 전용 식당을 폐쇄하고, 사장 스스로 중국인 지원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개선점이 있으면 바로 고쳤어.


3.

문 기사는 우연히 황사장의 신문 인터뷰를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되었어. 문 기사가 전직 기자 출신이라서 일을 맡게 되었지. 사장님을 독대하고 사장의 비전을 들었는데, 독불장군 같기는 하지만 황사장의 혁신은 명확하고 시원했단다. 이 인터뷰 내용을 문 기사가 정리해서 보여드렸더니 황사장은 문 기사의 글 솜씨에 마음에 들어 했어. 그래서 문 기사에게 새로운 일을 맡겼단다. 임원 회의에 참석해서 회의 내용을 정리해서 담당자에게 전달하고 진행 사항을 체크하는 일이야.

그리고 황사장은 혁신팀을 만들어 활동도 했어. 연말이 되기 전에 생산력을 2.5배까지 늘리는 것이 주 목표인데, 이게 말이 쉽지, 이를 위해서는 또 누군가는 뺑이쳐야했단다. 임원들과 팀원들 중심으로 황사장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어. 특히 회장 라인의 임원들과 갈등이 심했는데, 어느 날은 대놓고 대판 말싸움이긴 하지만 대판 싸우기도 했단다.  이렇다 보니 사장도 자신의 몸도 사리게 되는 정치적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어. 그 중에 하나가 누운 배를 다시 세워 수리하는 일이었단다. 황사장이 오면서 다른 배들을 건조하고 제작하느라 뒷전에 밀렸던 회장님의 무모한 야심이었는데, 그 이야기가 다시 돌았고, 황사장도 거절하지 못하고 배를 세우기로 했단다. 예상했던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어. 우여곡절 끝에 몇 달 몇 일을 밤색 작업 끝에 2년간 바닷속에 잠겨 있던 배의 반대편이 드러났단다. 예상보다 손상은 엄청났단다. 바다에 잠겼던 부분은 거의 녹아 내린 수준이었고, 그냥 봐도 재건조는 불가능한 수준이었어.

….

이 누운 배를 세우는데 많은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서 그런지, 새로 만들고 있던 배에서 또 사고가 났단다. 진수를 진행하고 있던 배 한 척이 배로 떠밀려갔고 그 충격으로 배 뒷쪽이 가라앉았어. 다급히 수습하여 피해를 최소화했지만, 최소화한 피해도 이미 막심한 피해였단다. 이 일을 책임지고 황사장이 사퇴를 했단다. 사장이 영입했던 사람들도 줄줄이 사퇴를 했단다. 갑자기 사장이 공석이 되고, 이 공석으로 노리려는 임원들이 몇몇 있었단다. 이런 회사의 미래를 불을 보듯 뻔한 것 같았단다. 자꾸 쓰러지는 배들이 이 회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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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분명한 것은 일을 일로 하지 않는 회사는, 야합과 담합으로, 협잡과 인습으로, 사람에게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에 사람을 끼워 맞춰가며 시키는 회사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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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 기사, 아니 이제는 진급한 문 대리도 회사를 그만 두었단다. 그리고 자신이 오래 전 하고 싶었던 글쓰기를 다시 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이 소설은 끝이 났단다.

….

이 소설에는 아빠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도 여기저기 실려 있었단다. 아빠가 책을 읽으면 인상적인 부분을 발췌하는데, 이 책에는 발췌한 부분이 꽤 많았단다. 예전에 아빠가 월급이라는 것이 아빠의 시간을 팔아서 받은 돈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더구나. 월급을 받으면서 젊음을 잃는다고그러고 보니 아빠도 20년 월급을 받고 나니 어느덧 아무도 모르게 젊음이 사라져 버린 것 같구나. 괜히 서글퍼지는구나.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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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 젊음이 인생의 금화라던 황 사장의 말 역시 수사가 아니다. 이대로 10, 20년 또 어느 회사에서 삶을 보내든 그 회사가 모두 이렇다면 내 인생의 금화는 결국 몇 푼 월급으로, 지폐로 바뀌어 녹아버릴 테고 나는 그저 노인이 돼 있을 터였다. 그다음은 끔찍하다. 명예퇴직, 권고퇴직, 그런 말 아닌 말로 수십 년 회사 일에만 길들고 늙은 사람인 채 양계장에서 풀어준 노계처럼 세상에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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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배가 쓰러지니 어서 회사로 들어오라는 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책의 끝 문장: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 같았다.


입회해 회의실 안쪽 가장 큰 책상 뒤에 앉았다. 임원들이 차례로 일어나 발표를 시작했다. 무엇을 어떻게 혁신하겠다는 것인지 내용은 하나도 없었고 핵심 관리 지표라는 것도 모두 타 회사 자료에서 베꼈는지 회사 실정과 전혀 동떨어져 있었다. 중언부언에 말끝마다 혁신, 혁신, 혁신 모두 그뿐이었다. 말밖에 안 되는 말이 중력 없이 떠돌았고 드러낸 것보다 감춘 것이 더 많은 실적 수치들은 속이 텅 빈 전망을 쌓아 올렸다. 하지만 회장은 아무 불만도,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수량 넉넉한 호수처럼 관대하게 웃었고, 횡설수설하는 임원들을 지켜보며 이따금 알아듣겠다는 듯 고래를 끄덕였다. 회의는 원만히 이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P74

문서라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 문서란 엉성하고 허술한 현실에서 부스스 떨어져 내린 각질에 불과했다. 하지만 누가 문서를 우습게 보는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이 문서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현실을, 회사를, 정부나 국가를, 종교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누운 배 한 척이 그렇게 됐듯 사실이라는 것은, 참이나 거짓이라는 것은 힘으로 흔들 수 있었다. 세상은 성기고 흐릿한 실체였다. 그것을 움켜쥔 힘만이 억세고 선명했다. 힘은 우스운 것이 아니었다. 아마리 우스운 것도 우습지 않게 만드는 것이 힘이었다. - P99

성질 괄괄하고, 억센 부산 사투리를 쓰고, 돌려 말해야 할 것 같으면 차라리 입을 다물고, 현장 안 나간 지 보름이 지나도록 턱 끈 자국이 지워지지 않을 만큼 밖으로 쏘다니며 일하던 남자에게 있는 것은 결국 정이었다. 그 남자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겪고 당하면서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쓰거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덮어둔 채 버티고 견딜 수 있게 해주던 그 정이,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뜻이었다. - P116

결국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거입니다. 이미 일어나고 지나간 것을 어떻게 바꾸는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테지만 나는 다르게 봅니다. 과거야말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겁니다. 링 위에서 똑바로 못 했다면 이유가 뭐겠습니까? 링에 오르기 전까지, 링 밑에서 똑바로 안 했기 때문입니다. 현재를 견디고 헤쳐나가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 되레 우리 발목을 잡고 억압하는 과거, 인습, 껍데기뿐인 규정과 규제, 타성, 그런 것들이야말로 바꿀 수 있고 바꿔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현재를 돌파하는 데 도움 주는 것들, 전통, 통찰, 지혜라고 부르는 것, 아니 더 쉽게 말해서 지금도 쓸모 있는 것,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것, 많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옳고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것만 과거에 남겨둬야 합니다. - P177

그게 말입니까? 잘못은 한 사람이 저지르고 수습은 왜 열 사람이 나눠 합니까? 임원이라서요? 생각들 똑바로 하세요! 임원이기 때문에 한 사람도 수습할 일 없게 일해야 하는 겁니다! 당신들이 똑바로 안 하면 당신들 밑에 있는 수십 명이 바로 당신 하나 때문에 개고생, 헛고생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이사 행세, 상무 행세, 뭐든 다 아는 척 거들먹거리면서 대접이나 받고 특권이나 누리라고 회사가 그 많은 연봉을 당신들에게 지급한다고 생각합니까? 당신들부터 똑바로 하세요! - P241

나는 계속 일했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산정으로 밀어 올리면 굴러떨어지고 다시 밀어 올리면 다시 굴러떨어지는, 아무 희망도 보람도 주지 않는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매일 굴러떨어졌다. 젊은 카뮈는 매일 굴러떨어지는 바위의 부조리와 그것을 각성하면서도 그치지 않는 투쟁에 관해 썼다. 투쟁을 통해 부조리를 비웃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유일한 미덕이고 행복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 바위는 결국 모든 것을 깔아뭉갠다. 신이 아닌, 노쇠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결국 바위를 이기지 못한다. 어리석음도, 각성도, 비웃음도, 경멸도, 희망도, 젊음도 굴러떨어지는 바위의 요란한 소리에 묻힌다. 쾅쾅쾅! 늙은 인간을 깔아뭉갠 바위만이 저 끝, 힘이 다해 더 굴러갈 수 없는 곳에 멈춘다. 모든 것이 침묵한다. - P302

분명한 것은 일을 일로 하지 않는 회사는, 야합과 담합으로, 협잡과 인습으로, 사람에게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에 사람을 끼워 맞춰가며 시키는 회사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치였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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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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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었단다. 독서 기록을 찾아보니 2016년에 읽은 것이 마지막이구나. , 그렇게나 오래 되었나? 얼마 안 지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월이 빨리도 흘러가는구나. 둘째가라면 서러운 다작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7년 가까이 읽지 않았으니,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작품을 썼을까 싶구나.

아빠가 이번에 읽은 책은 작년에 출간된 <희망의 끈>이라는 책이란다. 희망을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런 말이 이 책의 내용과 연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책을 펼쳤단다. 오랜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어디 가지는 않았구나. 여전히 책장 잘 넘어가고, 잘 짜여진 구조물처럼 촘촘한 이야기가 펼쳐지는구나.


1.

프롤로그는 안타깝고 무서운 이야기로 시작한단다. 유키노부와 레이코 부부의 어린 아이들이 처음으로 둘만 외할머니네 집에 갔단다. 대견하게 둘은 아무런 문제없이 외할머니 집에 갔단다. 그런데 그 지역에서 대지진이 발생했고, 그만 어린 남매는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단다. 유키노부와 레이코 부부는 크게 좌절하여 삶이 무너지는 듯했어. 그리고 그들은 삶의 희망을 다시 찾아보고자 아이를 갖기로 했어. 이젠 나이가 많았던 레이코는 임신이 쉽지 않았고, 병원에서 어렵게 체외수정을 통해 힘들게 임신에 성공을 했단다.

….

야요이 찻집을 운용하는 찻집 주인 하나즈카 야요이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단다. 사라진 물건은 없어 보였어. 담당 형사인 마쓰미야는 수사를 시작하기 시작했어. 야요이는 50대 중반의 여자로 이혼을 해서 혼자 지내고 있고, 자녀들은 없었어. 마쓰미야는 사촌이자 상사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는데, 그 상사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의 주인공 가가 교이치로였단다. 그럼 이것도 가가 형사 시리즈인가 싶긴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마쓰미야로 볼 수 있단다. 가가 형사가 조연이나 특별출연으로 출현했다고 해야 할까.

이 소설은 야요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마쓰미야의 숨겨진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도 있단다. 어느날 아야코라는 사람한테 연락이 왔단다. 모르는 사람인데 아야코는 마쓰미야의 어머니를 알고 있는 것 같았어. 그래서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니, 아야코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했단다. 어머니도 뭔가 아는데 말씀을 안 해주시는 것 같았어. 아야코가 마쓰미야에게 연락한 이유는 아버지의 유언장 때문이었단다. 작은 숙박 시설을 의미하는 료칸의 주인 요시하라 아야코.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 아버지는 말기암이었단다. 그런데 아버지의 유언장에는 낯선 이름 마쓰미야 유헤이란 이름이 있었어. 그래서 연락을 하게 되었던 것이란다. 대충 이러면 숨겨둔 아들일 확률이 높은데,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단다. 변호사를 통해 마쓰미야가 아버지의 사생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아야코와 마쓰미야는 만났고, 아버지의 유언장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으로 알았던 마쓰미야는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의 존재에 조금 당황을 했고,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겠다고 했어.


2.

그건 그거고 마쓰미야는 야요이 살인사건에 대해 열심히 수사를 했단다. 죽은 야요이는 평판이 좋은 착한 사람이었단다. 야요이가 죽기 전에 만난 사람들을 중심으로 탐문 수사를 했단다. 피트니스 강사, 피부관리사, 전남편 등 주변 사람들을 만났지만 특이한 점이 없었어. 전남편을 오랜만에 만난 것이 특이한 점이지만, 그들은 아이를 갖지 못해서 합의해서 헤어진 것이라서 안부를 전하기도 했었나 봐. 이번에는 오랜만에 만나기는 했지만전남편은 알리바이가 확실했단다.

한 가지 또 특이한 점은 평생 관심 없던 피트니스 클럽과 피부관리를 한 달 전에 등록했다는 점. , 사랑을 시작하셨나? 그 다음 탐문 수사는 단골 손님들이었어. 단골 손님 중에 프롤로그에서 남매를 잃었던 부부 중에 남편 유키노부가 있었단다. 그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프롤로그 때와는 시간이 꽤 흘러서 유키노부는 예순두 살이었고, 그때 어렵게 낳은 아이는 어느덧 14살이 되었어. 이름은 모나였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내 레이코는 2년 전에 백혈병으로 죽고 말았단다. 유키노부는 딸 모나와 단 둘이 지냈단다. 하지만 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어. 유키노부와 레이코 부부는 모나가 태어났을 때부터 잘 보살피려고 했단다. 사고로 남매를 잃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조심을 하는 건 좋았는데, 너무 도가 지나쳤단다. 뿐만 아니라 모나 앞에서 계속 죽은 남매 이야기를 했는데, 그건 모나에게 숨겼어야 했다고 생각한단다. 어렸을 때는 모르겠지만, 사춘기 소녀에게 죽은 오빠 언니의 이야기는 오히려 부모와 관계를 좋지 않게 만들었을 거야. 역시 모나와 아버지 유키노부 사이는 좋지 않았단다. 집에서도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런 유키노부가 야오이 찻집에 자주 들렀던 것이란다. 그럼 야요이가 사랑에 빠진 이가 유키노부인가? 하지만 유키노부 역시 알리바이도 있고 특이한 점도 없었어. 사랑하는 사이 같지도 않았어. 유키노부와 인터뷰를 해보니 야요이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던 것은 맞지만, 야요이가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고 했어.

….

한편 마쓰미야의 상사이자 사촌형인 가가는 야요이의 전남편 와타누키과 동거인 다유코를 인터뷰했단다. 와타누키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다유코와 함께 살고 있었단다. 그런데 뜻밖에도 다유코는 가가와 이야기하다가 자신이 죽었다고 범행 사실을 이야기했단다. 아니, ? 질투심 때문에? 와타누키가 전부인 야요이를 만나고 와서 행동이 이상해진 것을 눈치채고, 무슨 일인가 야요이를 만나러 갔다가 우발적으로 야요이를 죽이게 되었고, 지금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었단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3.

가가가 다유코를 인터뷰하는 동안 마쓰미야는 유키노부 주변 인물들을 조사했는데, 당연히 그의 딸 모나를 조사했어. 모나를 만나 야요이의 사진을 보여주자, 얼굴을 아는 사람이라고 했어. 모나가 테니스부에 있는데, 연습하는 것을 자주 보러 온 사람이라고 했어. 왜 야요이는 모나의 학교에 찾아온 걸까. 마쓰미야는 야요이의 부모님 댁에도 찾아갔어. 그리고 그곳에서 야요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깜짝 놀랐단다. 왜냐하면 야요이의 어린 시절 사진과 모나와 너무 똑 닮았기 때문이야. 뭐지? 머릿속에서 스치는 가설이 하나 지나갔어..

체외수정소설 속 주인공 마쓰미야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확인만 해보면 되겠지. 그리고 유키노부를 다시 만나서 자신의 추측을 이야기하자, 유키노부는 더 이상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해주었단다. 유키노부와 레이코 부부가 불임치료를 받았던 병원은 애광병원이라는 곳이었는데, 모나를 임신했을 때 수정란이 바뀐 것 같다고 했어. 모든 것은 병원의 실수라고 했지. 그런데 안 바뀌었을 확률은 아주 조금은 있다고 했어. 그래서 유키노부와 레이코 부부는 그냥 아이를 낳기로 했단다. 그렇게 모나가 태어난 것이고, 모나는 자라면서 이상하게 엄마도 아빠 모두 닮지 않았단다. 하지만 친딸처럼 아니 친딸보다 더 소중하게 키웠단다.

이 비밀은 유키노부와 레이코 부부만 알고 있었단다. 그런데 레이코가 2년 전 죽기 전에 모나의 친부모에게 알려주는 것이 낫겠다고 했어. 그래서 유키노부는 수소문 끝에 야요이 찻집까지 오게 된 것이란다. 야요이게 진실을 이야기해주었어. 야요이는 비교적 침착했단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야요이는 전남편 와타누키를 만나 이야기를 했단다. 그래서 최근에 오랜만에 전남편을 만난 거야. 야요이는 자신의 딸을 멀리서라도 보기 위해 모나가 다니고 있는 중학교에 자주 갔던 것이란다. 그리고 모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피트니스 클럽도 다니고 피부관리도 받았던 거야.

그렇다면 왜 다유코는 야요이를 죽였을까. 다유코는 와타누키를 만나기 전에 어떤 유부남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있었어. 와타누키를 만나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와타누키가 전부인을 만나고 와서는 입양을 검색하는 등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였어. 그래서 자기를 버리고 전부인과 재결합을 하는 줄 알고 야요이를 찾아갔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해를 해서 우발적으로 죽였다고 했어. 가가 형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오해를 했다는 것을 알고 크게 후회를 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자백을 하게 되었다는 거야.

유키노부는 이제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유일한 사람 모나에게도 이야기를 했단다. 모나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버지와 화해를 하고 진짜 살가운 딸처럼 대했단다. 유키노부의 결정이 모나가 이 세상에 나오게 한 것이고 하고, 자신을 평생 보살펴 준 것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 아닌가 싶구나. 이렇게 진실은 밝혀지고 사건도 해결되고…. 그런데 굳이 야요이를 찾아가 진실을 이야기를 해야했을까. 야요이가 알게 되어서 좋을 것이 뭐가 있다고이야기를 위한 설정이겠지, 실제 그럴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더구나.

….

그런데 마쓰미야와 아야코의 이야기도 있잖니. 그들이 남매인 거잖니. 그렇다면 마쓰미야의 어머니와 아카코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겠지. 그 사랑도 가슴 아픈 사랑이더구나. 그 이야기는 아빠가 졸려서 생략해야겠구나.

….

오랜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무서운 살인 사건을 다루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 향기 나는 그런 소설이구나. 그런데 왜 소설 제목이 <희망의 끈>이었던 거지?


PS,

책의 첫 문장: 오우마가도키(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마귀를 만나는 시간이라는 뜻-옮긴이)라는 말이 있다.

책의 끝 문장: “긴 끈이 끊기지 않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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