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





천 리 너머 대륙의 북풍

큰 하품을 하자

서리가

겨울로 가는 지름길을 냈다

내게로 오는 모든

따스한 바람이 묶이고

천지가 숙연하다

다시 한 철

외로움의 관절

하얗게

삐걱이겠다   

 

 

 

 

 

새벽 두시, 잠들기 직전 쓰레기를 버리고 왔더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언제부터 날씨가 이렇게 추워진게냐.
마음까지 춥지는 말아야 할텐데... 
구시렁거리며 절기를 보니 내일 모레가 한로, 24일이 상강이다.  
젠장, 벌써부터 마음까지 상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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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0-07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뜸하신 동안 시를 쓰셨군요! 혼자 읽기엔 아까운 절창이라 오늘은 더욱 힘주어 추천을 누릅니다^^

반딧불이 2011-10-08 22:2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후와님. 다 들켰네요. 그런데 시도는 했지만 작황은 형편없사옵니다.

릴케 현상 2011-10-08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장자나 박지원의 호방함이 느껴지네요^^ 과연 고전으로 다져진 내공!

반딧불이 2011-10-08 22:23   좋아요 0 | URL
힛~ 이게 그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전을 읽으면 스스로가 먼지같은 존재가 되어서 쓸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긴 합디다.

쉽싸리 2011-10-20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품,지름길,묶이고,관절이 하얗게 삐걱이다...
초,절창입니다.

반딧불이 2012-04-19 15: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맨날 절창만 부르고 싶어지게 만드시네요.이러면 고단해질텐데.. 쩝
 
황금가지 1 - 을유세계사상고전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박규태 역주 / 을유문화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곳은 ‘숲의 디아나’라고 불리는 성소이다. 이 성스러운 숲속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있고, 그 둘레에는 밤낮 없이 잔뜩 긴장한 한 사람이 번쩍거리는 칼을 들고 언제 기습을 받을지 모른다는 듯이 긴장된 자세로 늘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는 사제인 동시에 살인자이다. 그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이유는 그도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가 그의 사제직을 계승하기 위해서 그를 살해하려 호시탐탐 노리기 때문이다. 이 성소가 바로 사제직을 계승하는 장소로서, 사제가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그의 전임자를 살해하여야 하고, 황금가지를 꺾어야만 그 직을 쟁취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성소의 엄격한 율법이다.”


이 성소의 율법에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사제는 왜 살해 되어야 하는가? 사제를 살해하려는 사람은 왜 반드시 황금가지를 꺾어야 하는가? 또 황금가지란 무엇인가? 프레이져의 『황금가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안락의자 위의 인류학자’라는 비난을 듣고 있는 프레이져의 황금가지는 총 13권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후대를 위해서인지 그는 스스로 1권의 축약본을 만들기도 했다. 아직도 나오고 있을 것만 같은 세헤라자데의 이야기 속 쥐만큼이나 방대한 자료들은 지루함을 넘어 끔찍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료를 통한 그의 이론은 더러 흥미롭기도 하고 가끔은 탄성을 자아내게도 하며 꽤 설득력이 지니고 있기도 하다.

고대사회에서 사제나 왕, 추장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여겨졌다. 이들은 자연재해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고 예기치 못한 자연의 폭력 앞에서 그들이 무너질 때 이 재난은 그들의 죄과로 돌려져 지위를 박탈당하거나 살해당하였다.

황금가지는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의 다른 이름이었다. 겨우살이의 가지를 잘라두면 잎뿐만 아니라 가지까지 황금색으로 변해 그야말로 황금가지로 보여 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겨울이 되어 참나무가 그 잎을 다 떨어뜨려도 이 겨우살이는 푸르름을 간직한 채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죽은 참나무의 정령이 그 겨우살이에 거처를 정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땅에도 하늘에도 속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곳으로 여겨졌다. 황금빛과 노란색은 동종주술의 원리에 의해 불씨 혹은 태양을 상징한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듬해 참나무가 다시 소생하는 것을 보고 겨우살이에 깃들었던 참나무의 정령이 겨울을 잘 보내고 참나무로 거처를 옮겨간 것으로 여긴 듯하다. 황금가지는 불이나 태양의 상징으로 모든 생명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축제를 통해 악령을 제거하는 정화의 의식에도 사용되었다.

프레이져의 연구는 디아나 숲의 사제 살해 모티프에 대한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준다. 그러나 왜 참나무여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질문도 대답도 없다. 우리는 흔히 새 중의 새를 참새라 하고 나무 중의 나무를 참나무라 한다. 북부 이탈리아의 디아나 숲의 그 참나무도 내가 알고 있는 이 참나무라면 그곳에서 이 참나무가 어떤 의미였는지도 설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프레이져는 캐임브릿지 대학의 자기 서재 안에서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섭렵한 다음 그것을 정리했다. 그의 범위는 유럽뿐만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아시아 등 지리적 경계를 망라하고 농경민족과 유목민족 등 인류의 생활양식도 함께 고찰한다. 그는 원시인의 주술, 신화, 입사의식, 터부, 수목의 정령이나 인간을 포함한 동물 살해, 축제 등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례를 비교 정리 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프레이져는 유사의 법칙에 의한 ‘동종주술(모방주술)’과 접촉, 전염의 법칙을 바탕으로 한 ‘감염주술’로서 인간이 가진 본질적 유사성을 추출해 낸다. 그것은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인간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영혼불멸의 신앙이다. 프레이져는 마치 자연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자연은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순환되지만 그것이 반드시 일정불변의 법칙을 가진 것은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해마다 반복되지만 그 계절이 모두 똑같을 수는 없다(반복과 차이/엘리아데의 영원회귀). 자연은 친숙하고 다정한 얼굴로 찾아오기도 하고 폭력적인 재앙으로 예고도 없이 찾아들기도 한다. 처음 인간은 자연에 대해 자신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초자연적 힘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간의 이 같은 믿음은 주술을 낳았다. 주술사는 자연에 대항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종의 해결사였다. 그러던 인간이 자연의 폭력 앞에 무릎 꿇어야 했을 때 그는 보이지 않는 어떤 위대한 존재가 있다고 믿었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자비심을 구하는 일 뿐이었다. 인간은 초자연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서 종교가 생겨났다.  

 

프레이져는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사유는 이렇게 주술에서 종교를 거쳐 과학으로 진행되어왔다고 결론짓는다. 과연 그의 말대로 주술은 종교보다 앞서 존재했고 종교는 과학보다 앞서 존재하면서 진화론적으로 발달하는 것일까? 문명화의 식민지와 같고 과학에 대한 믿음이 망상으로까지 치닫는 현대에도 여전히 주술이 행해지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주술과 종교의 차이는 다만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방법적 접근의 차이로서만 설명될 수 있을까? 과학은 진보하지만 주술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 효력이 극대화되었다. 혹시 프레이져가 말하는 미개인에게는 주술이 과학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기독교에 대한 프레이져의 생각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불 축제에 대해 고찰하면서 크리스마스가 태양의 탄생에 관한 고대 이교도의 축제들을 대신하기 위해서 교회에 의해 제도화되었다고 했을 때 기독교도들의 비판을 받을 만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25일이라는 날짜가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동지 즈음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는 것 역시 우주만물의 순환과 농경사회에서의 태양의 의미, 주역에서의 괘 등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한 가지 불편한 심사가 뒤따른다. 프레이져가 말하는 미개인들이 인간과 동물 사이에 뚜렷한 경계의식을 두지 않았고 또 자신이 죽이는 동물에 대해 아무리 경건한 의식을 갖추고 존경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가 인간 우월주의, 인간 중심주의, 힘의 논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살육이고 이론의 확립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배제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러한 예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나 맛좋은 고기를 제공하는 동물은 경건한 의식으로 존중되고, 무섭지도 않고 맛도 없는 동물은 멸시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숭배하기 때문에 살해하지도 먹지도 않는가 하면 바로 그 숭배 때문에 살해하고 먹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이헌령비헌령이 따로 없다. 자신에게 닥친 재앙을 무생물이나 동물 심지어 같은 인간에게까지 옮기는 행위, 속죄양을 만드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스스로도 이런 행위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을 때, 또 끝내 비껴갈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할 때 넘을 수 없는 벽을 맞닥뜨린 것 같고 암담한 거울 앞에 서 있는 듯하다. 사물을 비추지 않으면 거울이 아니다. 어쩌면 사람을 비추지 않으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황금가지는 나를 비추는 종이거울이며 프레이져는 인간의 형상을 한 거울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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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9-30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같이 쉬시다가 저와 같을 때 리뷰를 남기셨네요. ㅋㅋㅋ 뭔가 왠지 모를 동지 의식을 느낍니다. 휴! 어려운 책을 읽으신 것 같아요. 속죄양을 만드는 행위라는 부분이 마음에 와 닿네요. 항상 정치도 그렇고 속죄양을 만드는 것에 능숙한 것이 지금의 사회이지 않나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사물을 비추지 않으면 거울이 아니다'란 표현 음~확 와닿네요. 전 이런 문장들이 좋아요. 뭔가 가슴을 후벼 파는 문장 말이죠. 개인적으로 너무 긴 책은 읽지 못하는 습성이 있는데 <황금가지>를 쓴 저자를 보면 참으로 반성이 되네요. 대단하다는 생각 뿐입니다. ^^ 오셔서 너무 반가워요. ㅋㅋ

반딧불이 2011-10-03 13:37   좋아요 0 | URL
답이 늦었습니다. 저도 다시뵈어 반가워요.

속죄양.말씀을 듣다보니 고대사회에서의 속죄양과 현대사회의 속죄양은 좀 다른의미로 쓰이는것 같네요. 아주 중요한 것을 짚어주셨어요.

프레이져는 좀 심하게 길어요. 저도 이런책 별로~ 안좋아한답니다. 앞으로 종종 뵐 수 있기를 바래요.


비로그인 2011-10-01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활동을 재개하신 건가요? 그럼 이제 반딧불이님의 글을 읽을 수 있겠군요ㅎㅎ
저는 한겨레출판에서 낸 <황금가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도 그럼 축약본이겠군요.
암튼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네요. 감기 조심하시길...^^

반딧불이 2011-10-03 13:43   좋아요 0 | URL
활동이라 할 만한 것도 없고 후와님께서 즐겨 읽으실 가치도 별로 없는 글인걸요. 뭐
<황금가지>는 나와있는 것이 모두 축약본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1980년에 출간된 삼성출판사 책을 가지고 있는데요. 혹시나해서 을유문화사본을 도서관에서 빌려 함께 보았습니다. 이 책이 참고사진이나 주석 등을 통해 다양한 설명을 곁들여 놓아서 도움이 되더라구요. 늘 필요한 부분만 찾아보다가 통독을 하고 나니 속은 시원한데, 씁쓸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cyrus 2011-10-01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고 계셨나요? 오랜만에 서재에 들리게 되었어요.
저는 축약본이라고 해도 과연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몇몇 서재 이웃분들 사이에서도 이 책에 대해서 좋게 평가하시던데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요 ^^;;
이제부터 날씨가 쌀쌀해진다고 하네요.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


반딧불이 2011-10-03 13:46   좋아요 0 | URL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영감을 얻는다고 해요. 대표적인 사람이 T.S.엘리엇이죠.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그의 시 <황무지>가 이 책을 읽고 쓰여졌다고 하네요.
책도 인연이 있다는 것이 제 생각이니 언젠가 인연이 되면 읽으시겠지요. 환절기 건강하게 보내시기 바래요.

맥거핀 2011-10-01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이 점점 발달하고, 미개인이 모두 사라지고, 언젠가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주술이 사라질까요? 종교도 사라질 수 있을까요? 글을 읽다보니 궁금해집니다.

컴백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글 자주 볼 수 있기를..

반딧불이 2011-10-03 13:51   좋아요 0 | URL
다시 뵈서 반가워요. 맥거핀님. 이 책도 그렇고 레비스트로스도 그렇고 나카자와 신이치도 그렇고 엘리아데도...신화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랄까 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듯했어요. 이 세계가 어떤 법칙으로 움직이는지 잘 모르겠지만 자연을 떠나 살 수 없는 인간에게서 주술이 사라질수는 없을 것 같다는 것이 제 생각이네요.

릴케 현상 2011-10-07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방가방가 계속 띄엄띄엄 인사드리게 되네요^^ 합리성 속에 언제나 신화가 깃들어 있다는 말이 문득 생각나네요. 저도 긴 책은 통 읽기 어려워요. 두꺼운 책 한 권 들고 잠적하고 싶은 밤입니다요

반딧불이 2011-10-07 10:32   좋아요 0 | URL
산책님~~ 재앙같은 여름을 견디고 절 기다려주신건가요? ㅋㅋ
산책님께는 짧으면서도 겹겹인 시가 있으시잖아요~ 그나저나 논문쓸때 되신거 아니유?

릴케 현상 2011-10-08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저도 여름 내내 납작 업드렸다가 반딧불이님 돌아올 때 쯤 된 듯해서 들렀어요
 

 


시간은 단선적으로 흘러간다, 문명은 진보한다고 현대인들은 믿고 있다. 이 같은 믿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은 없었을까? 신화와 인류학은 우리의 이런 믿음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역사의 바깥에서 묻는다. 꾸역꾸역 읽은 것들, 또 읽어야 할 것들의 목록을 마련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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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회귀의 신화
미르치아 엘리아데 지음, 심재중 옮김 / 이학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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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에서 왕으로 - 국가, 그리고 야만의 탄생- 카이에 소바주 2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3년 11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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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2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박규태 역주 / 을유문화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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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1- 을유세계사상고전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박규태 역주 / 을유문화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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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싸리 2011-10-0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바로 읽기의 어려움. 제대로 살기의 어려움. 반딧불 만큼이나 귀한 존재.

반딧불이 2011-10-03 13:52   좋아요 0 | URL
아이고..이렇게 어려운 화두를 던져주시다니요. 평안하시죠? 쉽싸리님. 지금은 귀한 쉽싸리 꽃도 다 졌겠지요?
 
마르탱 게르의 귀향
내털리 데이비스 지음, 양희영 옮김 / 지식의풍경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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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반 프랑스의 툴루즈 고등법원에서 한 남자의 형사재판이 진행되었다. 한 여자가 3년을 함께 산 자신의 남편을 가짜라고 고발한 사건이었다. 재판을 진행했던 한 판사는 이 사건을 <잊을 수 없는 판결>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했다. 이 책은 이후 6년간 다섯 번이나 재인쇄 되었고 라틴어로도 발간되었다. <잊을 수 없는 판결>은 <마틴 기어의 귀향>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영화 작업에 협력했던 역사학자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는 영화가 역사적 기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리고 영화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아쉬워했다. 그녀는 이런 아쉬움을 해결하기 위해 미시사적으로 재접근했다. 이렇게 쓰여진 책이 사건의 주인공 이름을 딴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다.

마르탱 게르는 열네 살에 베르트랑드와 결혼했다. 당시의 관습으로는 자식을 낳아야 결혼이 완성된 것으로 여겼지만 그들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마르탱이 성불능자였기 때문이다. 자식 없이 3년을 넘기면 결혼은 취소될 수 있었으므로 베르트랑드의 가족은 그녀에게 이혼할 것을 종용했다. 결혼 후에는 교회법에 따라 재혼도 허락되었다. 하지만 베르트랑드는 가족의 뜻을 따르지 않았고 8년 후 우여곡절 끝에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마르탱은 스물네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곡식 약간을 훔치고는 아버지의 처벌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름다운 아내와 아들, 상속지, 부모를 모두 버리고 온다간다 말 한마디 없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베르트랑드는 정조를 지키며 자식을 키웠고 8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은 전혀 딴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새 마르탱은 모든 면에서 베르트랑드를 만족시켜주었다. 비록 하나는 죽었지만 삼 년 만에 딸을 하나 더 얻었다. 그렇게 평화롭고 화목하게 살던 베르트랑드가 갑자기 남편을 가짜 마르탱이라고 고발했다.

마르탱 자신은 물론 촌락의 많은 사람들이 가짜 마르탱을 진짜 마르탱이라고 증언했고 그의 열정적인 설득은 진실로 받아들여져 재판관들의 판결만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판결이 내려질 무렵 극적이게도 진짜 마르탱이 외다리가 되어 등장함으로써 가짜 마르탱은 사형에 처해진다.

대체 베르트랑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사람들은 왜 가짜 마르탱을 진짜 마르탱이라고 증언했을까? 마르탱이 마르탱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가짜 마르탱이 되어 마르탱으로 살았던 아르노 뒤틸의 삶마저 진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을까. 16세기 사람들은 진실과 재산 중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두었을까? 그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 되는가? 내가 ‘나’라는 것은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 법률적, 역사적, 철학적, 존재론적 진실은 어떻게 다른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진실인가, 사실인가?

저자는 가짜 마르탱 역할을 했던 아르노 뒤틸에게 단순히 마르탱의 재산과 아내를 탐한 사기꾼이 아니라고, 또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혼생활을 지속했던 베르트랑드를 재빠른 현실 감각을 가진 의지의 여인으로 묘사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결혼은 새로운 삶과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간 ‘창안된 결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저자는 또 이 기록에 대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보이는 관심을 덧붙였다. 작가들은 믿기 어려운 기이한 특징들에 관심이 있었고 아르노 뒤틸을 경탄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제거되어야 하는 인물로 묘사했다. 일반 남성들은 사기꾼보다 속은 아내에게 일체감을 가졌으며 20세기까지 이 사건에 대한 여성의 논평이 없음도 밝혀두었다. 또 저자는 몽테뉴의 에세이를 언급하고 있다. 몽테뉴는 이 사건을 보면서 진실을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인간 이성이 얼마나 불확실한 도구인지를 강조하면서 재판장의 사형 판결은 매우 대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녀 재판이 횡행하던 당시에 더구나 이단이 판을 치던 랑그독 지방에서 재판관은 어떤 판결을 내려야 했을까? 더구나 재판관은 판결을 기다리는 사건 당사자들과 수많은 마을 사람들을 면전에 두고 있었다. 몽테뉴라면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흥행의 극적 요건을 갖춘 이 사건은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마르탱 게르를 마치 영웅전설의 주인공처럼 만들었다. 같은 사건을 다루었지만 미시사적으로 접근한 책은 사건의 갈피갈피에 상상력을 불어넣으면서 인물들에게 주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 사실 사이만을 오갈 수 있는 추론식의 역사적 상상력 때문인지 문학적 상상력과는 다른 한계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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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6-06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인데요. 16세기에 판결을 내려야 했다면 그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증명 지금은 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당연하게 생각되고 인식되지 않은 문제인 듯 느껴지지만 이렇게 발달한 문명의 한복판에도 단순히 '나'라는 사람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고 가지 가지로 다른 모습을 보이며 사는 것도 있지 않은가 생각을 합니다.
하여튼 내용적인 면에서는 굉장히 흥미롭네요. ^^ 오랜만에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배 불러요. ㅋ

반딧불이 2011-06-07 08:43   좋아요 0 | URL
저자가 영화에서 다룰 수 없던 것들을 다루면서 정체성의 문제에 주목했던 것 같아요. 마을 사람들이 마르탱을 증언하는 내용이 재미있는데, 어떤 사람은 신발 사이즈로 어떤 사람은 기억으로 또 어떤 사람은 키로 마르탱을 기억하거든요. 이런 것들이 마르탱을 마르탱이게 하는 증거가 되지만 진짜 마르탱이 나타났을 때 아무 의미가 없어지죠. 내용은 재미있는데 책은 그렇게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아요. 참고하셔요.

루쉰P 2011-06-07 19:5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완전 참고하겠습니다. ㅋㅋ 반딧불이님 덕분에 항상 책에 대한 수고를 덜어요. 또 좋은 리뷰 기대하고 있을께요!!

2011-06-18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8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3 0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3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라하가 사랑한 천재들 - 카프카에서 스메타나까지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2
조성관 지음 / 열대림 / 200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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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책을 처음 만났다. 이 책은 맛있는 먹거리나 훌륭한 쇼핑센터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여행 안내서라면 반드시 있어야할 그 흔한 지도도 한 장 없다. 그런데도 이 책은 프라하를 여행할 때 반드시 챙겨가고 싶은 책이다. 여행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도 가끔씩 들여다보는 책이기도 하다.

프라하는 한국인이 가고 싶어 하는 유럽도시 1순위라고 한다. 그 이유가 뭘까?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약소국이고 과거 한때 식민지였다는 동질감 때문일까? 만약 그런 이유라면 지리적 혹은 역사적 동질감의 확인을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아주 예외적 인물이 넘쳐나는 나라에 나는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 여행하고 싶은 도시 1순위는 짐작하건대 체코라는 나라이름보다도 프라하라는 도시 이미지가 강하게 작용 한듯싶다. 우리나라에서 프라하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데에는 ‘프라하의 연인’이라는 드라마가 단단히 한 몫 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이미 오랜 전에 ‘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도 있었다. ‘프라하의 봄’은 또 체코 국민음악의 아버지 스메타나를 추모하는 음악축제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원작이고, 축제는 매년 5월 12일에 개막해 6월 초순까지 계속된다. 프라하나 체코의 이름이 알려진 데는 밀란 쿤데라나 스메타나 외에도 『변신』의 프란츠 카프카,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의 밀로스 포먼 감독, <신세계 교향곡>의 드보르자크, 벨벳혁명을 이끌었고 전직 대통령이며 극작가인 하벨 등 많은 예술가들이 기여했다.

프라하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도 연합군의 폭격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중세의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프라하는 합스부르크 제국시절에는 식민지의 중심도시였고, 1989년 벨벳혁명이 일어나 공산정권이 붕괴할 때까지 사회주의 국가였으므로 상업자본주의의 흔적도 거의 없다.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은 프라하를 사랑했고 프라하는 또 천재를 알아보고 키워낼 줄 아는 도시였다. 가히 예술의 도시라 할만하다. 가보고 싶은 도시 1순위로 자리매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기자출신의 저자는 여섯 명의 예술가들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족적을 따라 프라하를 소개하고 있다. 각 예술가들의 짧지만 애정 어린 평전을 읽는 듯도 하고 반드시 찾아보아야할 여행지를 안내해 주는 듯도 하다. 카프카가 글을 썼던 지붕 밑의 다락방과 묘지, 스메타나의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을 들으며 거닐면 좋을 블타바 강과 카를교, 토론과 집회의 메카였지만 ‘프라하의 봄’이 짓밟힌 바츨라프 광장,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집으로 여러 번 등장했던 흐라드찬스케 광장 7번지의 주택 등이 깔끔한 사진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 살다간 시기는 비록 달랐지만 어디에선가 그들의 발자국이 겹치기도 했을 것만 같다. 품격 있는 여행안내서로 영혼을 살찌우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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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5-16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카프카를 무척 좋아하는 터라 가고 싶은 도시로 손 꼽는 도시인데 거기를 가신다니 부럽네요. ^^

하벨 대통령도 무척 좋아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에요.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상당히 뛰어나는 느낌을 받거든요. 아무쪼록 프라하에서 이 책에 써 있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다 보고 오셨으면 합니다. 아! 대박 부러워요.

반딧불이 2011-05-16 00:31   좋아요 0 | URL
프라하를 작년에 가려다 못갔어요. 그때 읽었던 책인데 6월에 예정되어 있는 터기 여행관련 책을 찾다가 이걸 다시 보게 되었네요. 다시봐도 제 수준과 입맛에 딱 맞는 책이네요.

여담이지만 저는 제가 글을 올리면 누가 첫 추천을 누르나 늘 궁금했어요. 오늘은 그 범인(?)을 현장에서 체포한 기분인데요. 고맙습니다.

루쉰P 2011-05-19 23:00   좋아요 0 | URL
ㅋㅋㅋ 체포 당했지만 상쾌한데요. 아! 이 변태적인 범인의 심리 ㅋ

우와 6월에는 터키 여행이시라니 정말 부럽네요. ^^ 항상 어딘가를 떠나고 싶지만 항상 같은 곳에 잡혀 있는 저로서는 완전 부럽다고 밖에 할 수 밖에 없어요. 갔다 오시면 꼭 좀 글 좀 올려주세용!

여담이지만 저도 제 글에 추천하는 사람이 항상 궁금해요. ㅋ

비로그인 2011-05-16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라하를 가보고는 싶은데 당장은 어려운데다 영원히 기회를 얻지 못할 가능성도 농후하니 그저 이 책으로나마 위안을 삼아야겠군요 쩝! 내달에 터키를 가시는 모양이네요 ㅎㅎ^^

반딧불이 2011-05-16 11:10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에요. 하여간 저는 준비하면 못간다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어서 아무 생각없이 있다가 그냥 떠나려고 맘먹었어요.

터키도 프라하꼴 날까 싶어 바로 티켓팅을 하고 아무 준비도 안하고 날짜만 세고 있습니다. 에어텔을 예약했으니 천재지변이 나기 전에는 떠날 수 있겠죠? 왠지 불안해진다는...

파고세운닥나무 2011-05-16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영어회화 수업을 듣는데, 미국인 강사가 한 여학생에게 해외 어디에 가고 싶냐니까 '파리의 연인'을 흥미롭게 봤다면서 파리에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프라하도 그렇겠지만 대중 문화 속의 이미지들이 강하게 작용하는 듯 합니다.
터키에 가세요? 아마 체코와 더불어 터키도 유럽 속 변방이란 이미지가 강한 듯 합니다.
저도 티켓팅을 해두고 미국 가는 날을 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부의 도시인데, 근래 이상기후 때문에 그 쪽 지방에 피해가 있더군요. 5년간 안전하게 있다 돌아와야 할텐데요...

반딧불이 2011-05-16 11:17   좋아요 0 | URL
한류를 봐도 그렇죠. 저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으면서 가봐야겠다는 마음을 굳혔어요. 아시아의 끝, 유럽의 시작,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았던 곳, 지중해, 흑해 이런 것들이 저를 마구 끌어당기더라구요.

아마도 닥나무님께서 가실때쯤이면 이상기후가 물러가지 않을까요? 건강하게 무사히 잘 다녀 오시기를 바랍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1-05-17 11:06   좋아요 0 | URL
말씀 고맙습니다^^

언젠가 여행을 목적으로 해외에 나갈 일이 있겠죠? 저는 이번이 첫 출국이랍니다^^;

여행간 안전하시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2011-05-19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9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6-0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인은 프라하 특유의 고풍스럽고 세련된 우아함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아직도 옛 느낌이 살아있는 그림엽서 같은 그런 풍경...유럽의 옛 사회주의 국가들은 왠지 백인나라들 중에서도 좀 칙칙하다는 평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체코가 좀 예외죠.사실 2차대전 전에도 과학기술이 발달한 나라이기도 했고요.그 반면 체코와 갈라진 슬로바키아는 왠지 인지도도 떨어지고 좀 그렇죠.

반딧불이 2011-06-08 12: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말씀을 들으니까 반드시 현장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습니다. 그런데 노자님은 여러가지 분야에 참 관심이 많으신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1-06-08 16:14   좋아요 0 | URL
아...예...제가 민족분쟁이나 문명교류 쪽에 관심이 많고 외신기사도 정독하는 편이라서 그렇습니다.또 세계각지의 식생 동물분포 기후 지질 등도 관심대상이죠.

반딧불이 2011-06-10 11:45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그런데 말씀하신 영역뿐만 아니라 가요나 교육, 언어, 정치 등 많은 분야에 정통하신듯 하던걸요.

노이에자이트 2011-06-10 16:4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정통한 정도는 아니고...워낙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