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정판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은경 옮김 / 향연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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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소세키의 전기 삼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10년 3월 1일부터 6월 12일까지 도쿄와 오사카의 아사히신문에 동시 연재되었다. 이 책에는 제목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신문사에서 다음 작품의 예고를 위해 책 제목을 말해달라고 하자 소세키는 친구에게 제목을 정해보라고 했다. 고민하던 친구는 책상위에 뒹구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아무데나 펼쳐 눈에 띄는 ‘문’이라는 단어를 권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아무런 의미 없이 정해진 제목의 소설을 의미 있게 읽고 있는 셈이다. 제목을 받고 소설을 구상한 것인지 초안이 잡힌 상태에서 제목과 관련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소세키의 책 제목들은 이런 에피소드를 갖고 있는 것들이 많다.

‘어지간히 배짱 없는 분’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대학생 산시로, 대학 졸업 후 아무런 직업 없이 자신의 취향만 가꾸다가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자 밥벌이에 나설 운명에 처한 다이스케, 『문』은 그 후의 이야기로 대학 2학년의 소스케가 주인공이다. 소세키의 전기 3부작은 주인공들이 처해진 상황이 연결될 뿐 이름은 각기 다르다.

소스케는 단짝 친구인 야스이 집을 드나들다가 여동생이라는 오요네를 소개받는다. 일을 저질러놓고 보니 그녀는 친구의 여자였다. 불륜이 발각되었을 때 소스케는 비록 자퇴의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그 충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그들은 부모도 친척도 친구도 버렸다. 일반 사회를 버린 셈이다. 그리고 그들은 막다른 골목의 벼랑아래 작은 셋집을 얻어 살고 있다. 그들의 행동반경은 너무나 좁아서 한 귀퉁이 옅은 물에 개구리 알을 띄운 한마지기 논도 넓어 보일 지경이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함께 살게 되지만 이 작품의 초점은 그들의 애틋한 사랑에 있지 않다. 오히려 죄책감을 안고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 말조심 하며 살아가는 부부의 잔잔한 일상과 내면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함께 산지 육년이 되었지만 아이가 없다. 오요네가 세 번씩이나 유산을 한 탓이다. 그녀는 자기에게 아이가 없는 것이 자신들이 저지른 죄 값이라고 생각한다. 소스케는 주인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옛 친구 야스이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야스이를 맞닥뜨릴 것이 두려워 피난 가듯이 절에 들어간다.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어 참선에 들었지만 해답을 구하지 못한다.

소세키의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이 이 소설의 무게중심 역시 사건에 있지 않다. 때문에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주를 이룬다. 이렇다한 사건의 전개가 없기도 하고 그나마 있는 사건마저 정면대결을 피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뛰어들어 맞짱 뜨고 싶은 심정이 되어버린다. 소세키는 이 소설의 연재를 마치고 위궤양으로 한 달 넘게 입원을 하게 된다. 온천으로 전지요양을 떠났지만 증상은 더욱 악화되고 대량의 각혈을 한다. 이렇게 속 타는 인물들을 그려 내고도 위장병이 도지지 않고 각혈을 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닐 듯 싶기도 하다.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는 근대적 자아의 욕망을 다루면서 그 비난을 소세키가 다 짊어진 것은 아닌가 싶다. 소세키는 그의 전기 3부작을 통해 사회와 화합하지 못하는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그들의 내면을 그리는데 주력했다. 후기 삼부작은 어떤 형태로 진행될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면서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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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3-04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소스케라는 이름은 우리 해든이가 좋아하는 ponyo에 나오는 남자주인공 이름인데!!ㅎㅎ
잘 기억이 안나지만 소세키의 [산시로]가 일본 문학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에게 이름이 주어지는 소설인가요???소세키의 산시로 이전의 작품에서는(제가 알기로 두권-님이 올리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을 보면 주인공들은 이름이 없었던게 맞는듯 싶은데,,,)갑자기 쌩뚱맞게스리,,;;
아니면 소세키 이전의 일본 문학엔 인물들의 이름이 없고 인물들을 장황하게 설명만 했나요???예를들어 머리에 모자를 쓰고 긴 코트를 멋스럽게 입고 있는 키가 좀 큰 편인 여자,,,뭐 이런식으로 말이지요,,,ㅎㅎㅎ(검색하기 귀찮아서 님을 귀찮게 하기로 결정함,,ㅋㅋ)

반딧불이 2010-03-05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자키 하야오가 소세키를 좋아해서 자기 영화에다가 소스케를 그대로 썼다고 해요.

일본 문학에도 주인공이름은 다 있어요. 나비님. 소세키 초기작품에만 주인공들이 이름 없이 등장하죠. 그냥 '도련님'이라든가, 그냥 '고양이'일 뿐이죠. 이런 귀찮음은 마구 환영이에요~

바밤바 2010-03-07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 님 사진에 나오는 그림 누구 그림이에요?
번 존스 그림인가요? 제 아는바를 드러내려는 게 아니라 그림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여쭈어 봅니다. 작은 사진으로 봤을 땐 아라크네가 실 짓는 그림이라고 봤는데 큰 사진으로 보니까 책 읽는 그림이네요.
그리고 소세키 관련해선 앞으로 물어볼 게 많을 듯. 좋은 글 꾸준히 기대할께요^^

반딧불이 2010-03-07 13:36   좋아요 0 | URL
제 모르는 바를 드러내야하는 질문을 하셨네요. 예전에 밀레이의 '오필리아'를 뒤지다가 외국의 어느 박물관 싸이트에서 가져왔는데요. 저한테는 낯선 이름이어서 어디다 적어두긴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바밤바님 음악에도 그림에도 조예가 깊으신듯하니 혹시라도 찾으면 저도 좀 알려주세요.

스트레인지러브 2010-03-1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엇? 포뇨의 소스케가 [문]의 소스케에서 따 왔다고요? 이것 참 신통하네요.
삼각관계에 대한 죄책감에서 사회와 동떨어진 생활 하는 거 보니 [마음]의 선생님삘이...
거기에서 선생이 "사랑은 죄악입니다" 운운하는 것만 봐도 속 탔는데 이 작품도 오죽하겠나
싶긴 하네요. 그래도 읽어봐야 할 것 같은.

반딧불이 2010-03-16 12:26   좋아요 0 | URL
ㅎㅎ 마음님 벌써 삘이..? 사실 마음은 소세키 삼부작 이후의 뒷얘기라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아요. 어쨌거나..<마음>은 정말 속태우는 작품이죠. 가끔 소세키 읽으면서 저도 뒤집어집니다.
 
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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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상중을 만나게 된 것은 나쓰메 소세키라는 징검다리를 통해서였다. 소세키의 작품을 발표순서대로 시작해서 1910년까지의 작품을 읽었다. 장편 6편과 단편집, 그의 문학예술론, 서간집, 소세키의 평전이라고 할 만한 고모리 요이치의 평론 등이 그것이다. 한 주에 한권씩 읽었으니 3개월을 꼬박 소세키 책만 읽은 셈이다. 구글 어스를 갖고 놀면서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곳을 앉은자리에서 찾아보지만 전기불도 없이 등잔불을 밝히던 당시를 고스란히 느껴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가진 근대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해서 당시의 인물이 되고자 노력했다. 소세키의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문제, 그런 주인공들을 그려내며 피를 토하던 소세키의 고민에 동참하고자 나도 고민했다. 그러나 1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뛸 타임머신도 상상력의 머신도 내게 없다. 소세키에게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해 이런 저런 책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의 하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책을 다 읽고 밑줄 그어놓은 부분을 요약 정리하다보니 대부분 소세키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소세키의 많은 작품이 이 책 전편에 인용되고 있지만 이 책이 소세키 작품해설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강상중은 이 책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왜 소세키인가를 알기위해 다시 읽어야했다.

저자가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선택한 것은 그들이 살고 있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동일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는 100년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세기말이 존재하고, 당시의 제국주의와 현재의 글로벌 머니, 국민이 전쟁(국가)의 소모품처럼 간주되던 당시와 자본주의의 부속품처럼 전락된 현재, 19세기 말 유럽에 횡행하던 세기말 문화와 현재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그 예로 들고 있다. 저자는 근대의 입구에서 생겨난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문제의 덩어리로 자라나 지금도 여전하다고 보고 있다.

저자는 근대의 문제와 맞섰던 베버와 소세키의 고민을 살피면서 현재 우리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여덟 개의 질문을 놓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형식을 취한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소세키의 주인공들이 있고 베버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서 타자를 발견할 것을,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라는 질문에는 돈은 경시하기 힘들지만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 외에도 그가 묻는 질문들 즉, 사랑, 종교, 죽음, 일 등에 대한 답은 경청해야할 사안들이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늘 떠돌고 있고, 이것이 마치 서양의 지식을 더 수입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되는 경향이 있는 가운데 저자의 이런 질문과 답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늙어서 최강이 되라’는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는 배우가 되고 싶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썼다. 그가 만드는 영화의 첫 장면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한참을 웃었다. 또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싶다고도 한다. 그는 할리데이비슨에 끌리는 이유를 예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자세의 뻔뻔함에서 찾고 있었다. ‘해골 아이콘을 달고 가죽장화를 신고 뻔뻔한 모습으로 할리데이비슨 위에 걸터앉아 뻔뻔한 태도로 김정일의 머리에 알밤을 먹이고’ 싶은 그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호모 페이션스(Homo patience, 고민하는 인간)의 가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보다 더 높다.” “고민하는 인간은 도움이 되는 인간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 빅터 E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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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3-01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을 읽다>를 읽고, <고민하는 힘>을 읽고, <산시로>는 아직 읽지 않았지만, 도쿄 올림픽이 좀 궁금하더라구요. 당시에 대한 이야기들이요. 마침 이번에 나온 <올림픽의 몸값> 오쿠다 히데오 책이에요. 책은 그냥저냥 괜찮았는데, 도쿄올림픽 이야기가 많이 나와있어서 별을 다섯개나 줬다지요. 그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산시로와 청춘을 읽다와 나쓰메 소세키를 생각했지요. 시골에서 올라와서 당시의 화려한 도쿄를 보고 느끼는 박탈감 같은 것, 혹은 당시의 도쿄에 대한 열광 같은 것이 나와있어요. 좀 더 찾아보려구요, 도쿄올림픽 당시의 이야기. 또 찾으면 알려드릴께요. ^^

반딧불이 2010-03-02 00:12   좋아요 0 | URL
<공중그네>가 오쿠다 히데오를 만난 책인데요. <남쪽으로 튀어>는 준비해놓고 아직이에요. 소세키 읽기가 하이드님 덕분에 도쿄 올림픽으로 점프하는 거네요. 저도 궁금해져요. 늘 고맙습니다.

바밤바 2010-03-0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방에서 올라온 지라 서울의 풍경이 낯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엔 제 지방색을 지우려는 가련한 노력이 있곤 했었죠.
가장 외롭다 여긴 고민이 이렇듯 가장 평범한 고민일 수도 있다는 것.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입니다.

헌데 강상중 씨의 글에선 '외로움'을 찾기 힘들었더랬습니다. 예전에 별점 2개만 줬던 기억이 나네요. 그들 각자의 기억이 하나의 접점으로 이어질 때 독자와 필자는 바투 이어지는 듯 합니다. 전 아쉽게도 강상중과의 마주침이 어긋났네요. 님은 저자와 같은 곳을 본 듯 하여 부럽습니다. ^^

반딧불이 2010-03-02 00:29   좋아요 0 | URL
바밤바님의 리뷰를 찾을 수가 없네요. 아마도 제가 저자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소세키 덕분일거라고 생각해요. 책이 모든 독자와 교감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 저도 뼈아프게 느끼고 있답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접하실 기회가 있기를 바래봅니다.

스트레인지러브 2010-03-02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홍보되었을 때 관심이 갔던 기억이 나네요.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중요한 축으로 등장하는 군요. 소세키 작품을 읽는 데,
괜찮은 키워드가 되려나요? "고민하는 힘"이라,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고민하면 머리만 아프곤 한데ㅎㅎ 기회 되면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강상중 씨는 일전에 한번 저서 사 본 적이 있는데(재일교포 관해서) 그 당시에는 리폿 쓰는데 꽤나 더움이 되었었지만요.
아, 산시로 이전에 "마음"에 먼저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선생"의 고백이 와닿더군요.
(마음 먼저 읽고 산시로, 그 후, 문으로 갈 생각입니다)
"남을 못 믿게 되지만 결국엔 자기까지 못 믿게 되는" 선생님의 유서.
근데 이상한 건, 메이지 일왕의 죽음과 노기 장군의 순사가 작중인물들에게 정신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일본인의 정서가 되어 보지 않아서 그건 잘 모르겠더군요.

반딧불이 2010-03-02 09:36   좋아요 0 | URL
마음님. 다시뵙네요. 마음님도 <마음>먼저 읽으셨군요. 지금까지 제가 읽은 작품에서는 소세키의 정치적 성향을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천황, 노기장군, 이토 히로부미등 작품속에 죽음이 실시간으로 등장하지만 언제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더라구요.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소식을 듣고는 "이토는 살해당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야. 그냥 죽었어봐, 신문에서 그렇게 취급했겠나"라는 반응을 보이죠. 소세키의 정서는 일반적인 일본인의 정서와는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또 우리가 보고 있는 소세키의 정장한 모습의 사진은 천황장례식에 참석했던 날 옷도 잘 챙겨입은 겸 기념으로 찍은거래요. 작품 읽으시면서 또 같이 얘기 해봐요. 마음님.
 
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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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전기 삼부작(『산시로』,『그 후』,『문』)중 두 번째다. 『산시로』의 주인공은 시골에서 도쿄대학교 인문학부에 진학한 학생이다. 그의 희망은 시골에서 어머니를 모셔오고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여 학문에 전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학문적 성과도 경제적 능력도 없다.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지만 여자는 금테안경을 낀 남자에게 시집가버렸다. 『그 후』는 그 후의 이야기다.

 
다이스케는 부유한 아버지 덕택에 하루 종일 책이나 읽고 음악이나 들으면서 지낸다. 본가에서 나와 부엌일과 심부름 하는 사람을 두고 혼자 살고 있다. 물론 생활은 본가의 아버지와 형님이 책임진다. 비록 생활비를 정기적으로 아버지에게서 받아 오긴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만큼 피아노 치는 실력도 있고 실내장식을 위해 서양화를 주문제작하기도 한다. 그는 잠결에 동백꽃 지는 소리를 들을 만큼 또 베개 밑이나 방의 네 귀퉁이에 향수를 뿌리고 잠을 잘 만큼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다. 그러니까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매력 있는 육체와 빈틈없는 사고력을 갖추고 풍족한 생활을 즐기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다이스케에게 왜 일을 하지 않느냐는 친구의 물음은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하나마나한 소리다. 생활만을 위한 일은 무가치 하며, 빵과 무관한 신성한 일이라면 왜 자기가 마다하겠느냐는 다이스케의 말은 그 만이 할 수 있는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다.

이런 다이스케가 친구의 아내 미치요와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결혼 전부터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미치요는 다이스케의 친구와 결혼했다. 그러나 아이도 잃고 건강도 나쁘다. 더구나 남편의 부정행위로 직장을 잃고 생활이 곤란해지자 다이스케를 찾아온 미치요. 다이스케가 결혼 선물로 준 진주 반지를 전당포에 맡겨야 할 만큼 그녀의 생활은 곤궁하다. 남편은 새로운 직장을 찾느라 바쁘고 부부의 관계는 소원하다. 이런 미치요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갖던 다이스케의 감정은 과거를 떠올리며 점점 연민으로 깊어간다.

 
회사 경영에 부정한 수단을 동원했던 다이스케의 아버지는 위기를 맞게 되고 다이스케에게 재력가의 딸과 결혼할 것을 강요한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게 되면 집안도 살리고 자신도 지금처럼 만족한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미치요를 택할 경우 부자간의 관계도 끊기고 당장 생활이 막막해지게 된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을 타락한 노동이라 생각하고 감자를 다이아몬드보다 소중히 여기게 된다면 인간은 끝장이라고 믿는 다이스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소세키는 다이스케에게 아버지가 소중히 여기는 덕목에 역행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구시대적 통념에서 벗어나려는 인물로 그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존재로 그리고 있다. 소세키는 다이스케의 연적인 히라오카의 입을 빌려 비판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거기에 서 큰 힘은 느껴지지 않는다.

『도련님』에서 보여 지던 건강한 웃음과 활기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보여 지던 잔잔한 웃음과 건강한 수다도 없다. 『산시로』에서 볼 수 있었던 청년의 수줍음도 없고 한차례 열병 같은 사랑도 아니다. 주인공들이 생활현장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면서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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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2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보는 듯 해요. 반딧불이님. 부잣집 막내 도련님으로 태어나 글쓰고 사랑하고 그렇게 살았지만 자살을 할만큼 언제나 괴로워했던 그사람.. 다이스케와 닮았네요. (소스케도 부잣집 막내도련님이긴 했지만은요...) 역시 사회상에 대한 풍경들이 스치듯 읽혀지는 소설이었는지 궁금해지네요.. ^^

반딧불이 2010-02-21 14:49   좋아요 0 | URL
오래되어 믿을 수 없는 기억이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 제게 좀 어두웠던 느낌으로 남아있어요. 말씀하신대로의 작가의 영향이 크겠지요? 반면 다이스케는 차가운 봄날 피어난 매화처럼 화사하다고 해야할까요. 지적이면서도 외롭고 매력적인 캐릭터에요.

물론 지식인이 바라보는 백년전 일본의 모습도 스치듯 읽을 수 있구요.

프레이야 2010-02-21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어지는 소세키 리뷰 잘 읽고 있어요.
이것도 담아갑니다.^^

반딧불이 2010-02-21 14:5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제가 리뷰를 재미있게 쓰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데요. 소세키 책 모두 재미있어요. 저보다 책읽기에 정치하시고 감정이입이 잘되시까 아마도 바로 소세키 빠~가 되지 않으실까...걱정인걸요.

바밤바 2010-02-21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어떤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가 좋은 리뷰라면 반디 님은 정녕 좋은 리뷰어인듯^^

반딧불이 2010-02-22 16:20   좋아요 0 | URL
저의 리뷰보다 백배는 좋은 소세키의 책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스트레인지러브 2010-02-23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반딧불이님. 처음 서재에 글 남겨보네요.
소세키... 이번에 도련님 읽으면서 막 빠져들었는데, "마음"이나 "산시로" "그 후"
같은 건 어쨰 두껍고 딱딱할 것 같아서 쉽게 손대지 못했네요.
하지만 여기서 산시로랑 그 후 리뷰 보면서 대충 줄거리 알았으니,
다시 완독 도전해보려고요. 편히 쉬시길 ^^

반딧불이 2010-02-23 22:4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마음님. 도련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살짝 무겁기는 하지만 절대로 안두껍, 안딱딱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직 리뷰를 못썼는데요. 전기 삼부작은 '산시로','그후', '문'의 순서대로 읽으시면 더 재미있을거에요. 자주 뵈요. 마음님.
 
청춘을 읽는다 - 강상중의 청춘독서노트
강상중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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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창작연대 순으로 읽고 있는 중이다. 이번엔 『산시로』 차례다. 이미 읽었던 작품들이 많지만 마음 내키는 대로 듬성듬성 읽었던 터라 새로 읽는 느낌이다. 시쳇말로 소세키의 전작읽기에 도전한 셈인데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곁가지로 보아야하는 책들이 많다. 작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강상중의 책도 이런 곁가지 중의 하나였다. 『고민하는 힘』은 로쟈님의 페이퍼에서 보았다. 『청춘을 읽는다』는 하이드님이 소세키를 읽고 있는 나를 기억하고는 일부러 서재에 찾아와 글을 남겨 주신 것이 인연이 되었다.

자신이 뛰어놀던 산이나 강이 소설 속에 등장해서 그대로 묘사되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어릴 적 다니던 학교나 선생님이 이야기 속에 나온다면 그 기분은 또 어떨까? 책 속의 주인공이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 기분은 또 어떤 것일까? 반갑고 놀라울 것이다. 마치 내가 책 속의 주인공이 된 듯 가슴이 벅차고, 경사 급한 슬로프를 내려오는 스키어처럼 책 읽는 속도는 탄력을 받을 것이다.

강상중의 『청춘을 읽는다』에는 바로 이런 독서경험이 나온다.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강상중의 경험이다.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가 살았던 집 옆집에 살았으며 소세키의 아내가 자살을 시도했던 강에서 물놀이를 하며 자랐다고 한다. 또 강상중은『산시로』에서 언급되는 연못속의 산에서 뛰어놀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 속에는 소세키의 책들이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다.

강상중의 글을 읽다가 문득 어째서 내게는 내 인생을 변화시킨 한권의 책도 한 줄의 글귀도 없단 말인가? 아무리 나의 독서량이 미천하기로서니 어쩌면 공감할 수 있는 주인공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혹시 나는 불감증 환자가 아닐까? 하는 한탄과 질문들이 꼬리를 물어서 그의 책을 덮게 만들었다. 『산시로』를 읽던 중 펴들었던 책이어서 다시 『산시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첫사랑을 며칠간의 감기와 맞바꿔버린 주인공과 모든 등장인물들이 ‘길 잃은 양’이 되어 헤매는 『산시로』를 덮고 강상중의 책을 다시 펼쳐들었을 때, 나는 독자가 아니라 창작자의 입장이 되어있었다. 그리고는 모든 문학작품이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독자와 공감대가 형성될 때라는 것을 절감했다. 독자는 주인공에게 공감하면서 위안을 얻기도 하고 그 위안을 발판삼아 자신의 길을 모색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감과 위안은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을 때 공감도 가능한 것이니 어쩌면 강상중과 소세키와의 사적인 인연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나쓰메 소세키 외에도 보들레르, T.K生, 마루야마 마사오, 막스 베버의 책이 언급되고 있다. 소세키부터 베버까지 단숨에 읽어 내릴 만큼 문장은 쉽지만 절대 가벼운 글은 아니다. 책의 제목이 책을 읽는다가 아니라 ‘청춘을 읽는다’라는 것을 유념하며 읽어야할 책이다.

본문을 다 읽었을 즈음 요의를 느꼈다. 볕이 좋아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으니 화장실까지는 열 발자국 안팎이다. 호흡이 끊기는 것이 싫어서 참고 맺음말까지 읽었다. 맺음말을 읽고 나니 ‘옮긴이의 사사로운 뒷글’이 있어 사사로이 생각하고는 마저 읽었다. 그런데 또 해제가 붙어있다. 나는 생리적 욕구를 해결해야할 위기에 봉착했지만 두어줄 읽다보니 ‘궁금했을 뿐이다’ ‘무관심이었다’ ‘간주하지 않았다’ 등 부정적인 술부들이 자꾸만 내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서경식이 ‘소프트’했고 강상중은 ‘하드’했다는 말이 나를 일어나지 못하게 했고, 실존적 물음과 학문적 과제가 분리되지 않았다는 말이 다시 주저앉게 만들었으며 “인생은 한 갑 성냥을 닮았다. 소중하게 다루는 건 어리석고,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아쿠다가와의 말을 재해석 해놓은 부분에서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책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나머지 두 문단의 글을 변기에 앉아 읽었다. 그리고 그 해제를 쓴 이가 내가 도무지 빠져 나갈 수 없는 책의 그물망을 쳐놓은 알라딘 서재의 로쟈님이라는 걸 확인했다. 내가 문자를 깨우치고 난 이후 화장실에서 읽은 최초의 책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난 사람이 로쟈님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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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7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7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0-02-07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웃어서 미안해요~.(마지막 단락보고,,,^^;;;)음~.( ")
암튼 저도 요즘 다른 책이지만 책을 읽다가 반딧불이님을 잠시 생각할때가 있어요.
제가 읽었던 곽아람의 [모든 기다림의 순간,,,나는 책을 읽는다]책에서 소세키의 [산시로]에 대한 글을 읽게 될때처럼요,,,,
사랑스러운 반딧불이님~ 오늘 날씨 좋죠????

반딧불이 2010-02-07 23:55   좋아요 0 | URL
나비님.미안해하지 마시고 마음껏 웃어주세요. 말씀하신 책은 저도 찾아 볼께요. 나비님 날씨는 나비님 마음처럼 따뜻하고 화사했어요.

에고에고..팔 다리 허리 어깨 아포~
아까 나비님이 헹가래치셨다가 땅바닥에 떨어뜨려서 온몸이 쑤시자나요~ 노인네 희롱하심 못써욧!!

라로 2010-02-07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전에 있는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러 왔다고 해요.
남편되는 사람의 전공이 심리학이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 영어를 가르치러 왔다고 해서 놀랐어요.
온 이유가 와이프의 친구 때문이래요,,,저와 같이 교회를 다니는 미국여자가 친구인데
그 친구가 한국에서 오래 살기로 결정을 해서 그 친구와 몇년이라도 함께 지내고 싶어서 그런 결정을 내렸는데 학원에서 가르쳐야 하는 남편은 무척 괴로운가봐요,,,,박사학위를 가지고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이...
제가 그 커플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ㅎㅎㅎㅎ

반딧불이 2010-02-07 21:12   좋아요 0 | URL
1.공처가야? 애처가야?
2. 그나물에 그밥이로세.
몰라몰라..나비님.(그나저나 이일을 어찌 수습할꼬..)

반딧불이 2010-02-0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거덕..우째 이런일이!!!
나비님..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라로 2010-02-07 23:15   좋아요 0 | URL
헤헤헤~ 한번만 봐주세요~.^^;;;( 다른거 삭제 했다는,,)

2010-02-20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1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시로
나쓰메 소세키 지음, 최재철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0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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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문』과 함께 소세키 초기 삼부작으로 불리는『산시로』는 1908년 아사히신문에 연재 되었다. 소세키가 도쿄제국대학의 교수직을 그만두고 아사히신문의 문학기자로 옮긴 다음해다. 1904년부터 발표되기 시작한 소세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름이 없었다. 명료하게 이름이 등장하고 그것이 책의 제목이 된 경우는 『산시로』가 처음이다.

산시로는 구마모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제국대학 문과생으로 진학한다. 그는 일본의 최남단 규슈의 후쿠야마에서 기차를 타고 혼슈의 도쿄로 간다. 기차에서 만난 여자와 나고야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내게 되는 23세의 오가와 산시로. 한 모기장 속에서 잠을 자게 되지만 깔려있는 시트를 둘둘 말아 여자와 자기 사이에 흰 경계선을 만들고 수건 두 장을 깔고 반듯하게 잠을 잔다. 다음날 산시로는 여자로부터 ‘어지간히 배짱 없는 분’이라는 말을 듣는다.

‘어지간히 배짱 없는 분’은 도쿄에 처음 도착해서 전차의 땡땡 울리는 소리,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모습, 큰 빌딩이 줄지어선 모습, 어딜 가나 목재가 방치되고 돌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란다. 도쿄의 대단한 활력에 놀라고 불안해하면서도 그는 차츰 도시 생활에 적응해 간다. 고향의 연고로 알게 된 이과대학원생 물리학자 노노미야와 그의 여동생 요시코, 같은 강의를 듣는 돈키호테형 청년 요지로, 세속을 초월한 듯 아무런 욕망이 없는 ‘위대한 어둠’이라는 별명의 히로타 선생, 아름다운 신여성 미네코, 실물크기의 미네코 그림을 그리게 되는 화가 하라구치 등이 산시로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교내 연못에서 처음 만난 미네코를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나게 되면서 산시로는 그녀를 마음에 두게 된다. 마음을 온통 그녀에게 빼앗기고 있지만 산시로는 어떤 행동을 하기에는 ‘어지간히 배짱 없는 분’이다. 결국 그는 미네코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는커녕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흔히 『산시로』를 풋풋한 사랑소설, 청춘 교양소설이라고 부른다. 어느 곳에 중점을 두느냐의 문제겠지만, 둘 다 옳고 또 둘 다 그르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랑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사랑고백은커녕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는 산시로의 담백한 사랑 때문에 답답함을 너머 화가 날지도 모르겠다. 당시에 일본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아직 생기기 전이었나 회의하면서 나는 이 답답함을 그동안 보고 읽은 영화적, 문학적 사랑에 내가 너무 오염된 탓을 했다. 하지만 소세키가 산시로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대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미네코는 교육받은 여성이고 교회에 다니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자신 명의의 소액당좌예금통장을 가지고 있다. 당시는 호주인 남자가 생활비를 책임지고 여자로부터 가사활동이나 육아를 제공받고, 성적 욕망을 충족 하던 시기였다. 남자가 여자를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권력구도 속에서 미네코는 경제적 주체로 등장하는 예외적 여성인 셈이다. 미네코에 비하면 산시로는 고향의 어머니로부터 교육비와 하숙비를 송금 받고 있다. 학문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자립하지 못한 상태이다. 산시로뿐만 아니라 『산시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정신은 살아있지만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모두 독신자이거나 미혼이다.

『산시로』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사랑이야기뿐만이 아니다. 도쿄와 지방도시와의 현격한 발달의 차이, 대학의 강사나 연구원인 노노미야의 잦은 이사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당시의 경제 상황, 요지로와 히로타 선생의 입을 통해서 전하는 문학과 사회에 대한 소세키의 생각 등. 근대문학의 갖가지 요소들이 보석처럼 박혀있다.

한 가지 덧붙여야 할 것은 이 책의 내용이 아니라 책 자체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것으로 2007년 9월 21일 발행 수정판 2쇄다. 수정판이라는 말을 적어놓지나 말던가. 수정까지 거쳤는데도 내 눈에는 오자가 모래알처럼 박힌다. 18-19쪽에는 오탈자 3개가 몰려있다. 종이 질은 좋은지 모르겠으나 스탠드 밑에 어떤 각도로 놓아도 반사가 되어 눈이 너무 피로 했다. 주석을 책 뒤편에 모아두지 않은 것은 좋았지만 45번 주석은 똑같은 번호가 세 번이나 나온다. 내 독서량이 극히 미약한 탓인지 이런 주석처리는 아직 보질 못했다. 출판 관계자분, 오자를 직접 찾기 불편하시거든 언제든 연락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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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1-31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오랜만에 주신 글이어서.. ^^
일본 영화 중에 '좋아해' 라는 영화가 있는데 알고 계실 수도 있겠다 싶어요. 반딧불이님. 그 영화에 등장하는 두 남녀는 약 15년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수끼다.. 일본어로 '좋아해' 라는 말을 하지 못하다가 결국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는 걸로 영화가 끝나는데 정말 한편의 수채화 같이 아름답거든요. 산시로의 담백한 사랑 처럼 답답함을 너머 화가 날만도 한데 저는 너무 아름답고 소중하게 본 영화로 남아서 글을 읽어가며 그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언급하신 소설처럼 그렇게 사회상을 많이 읽어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어요.
그나저나 건강하셨지요?!...반딧불이님.
날도 많이 푸근해졌습니다. ^^

반딧불이 2010-01-31 22:51   좋아요 0 | URL
그간 평안하셨는지 저도 궁금했습니다만 안부를 여쭙지도 못했네요. 새해 첫날부터 이상하게 들락거릴 일이 많아서 잠시 소원했어요. 날짜를 보니 꼬박 한달만에 리뷰를 올리는 거네요. 영화는 아직 못봤는데 현대인들님이 주신 정보가 있으니 화가 나진 않을거에요. 꼭 챙겨 볼께요. 건강하세요.

라로 2010-02-04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출판 관계자분, 오자를 직접 찾기 불편하시거든 언제든 연락하시기 바란다."라니!!
저도 종합편 기대할께요,,,,님 덕분에 소세키에 대해 조금 알게 되어 기뻐요,,,하지만 아직 읽을 엄두는 안나고 님의 리뷰나 앞으로의 종합편으로,,,^^;;;;

근데 요즘 많이 바쁘세요???

반딧불이 2010-02-05 00:12   좋아요 0 | URL
나비님~ <도련님> 읽어보세요. 금방 반하실거에요~
바쁘자고 작정하고 바쁜건 아니구요. 이상하게 새해 첫날부터 나가게 되더니 바깥일이 너무 많아요. 이렇게는 살수 없다!!! 제발 설날까지만이다.. 혼자 빌고 혼자 다짐하고있답니다.

바밤바 2010-02-21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글 정말 잘 쓰시는 듯^^

반딧불이 2010-02-22 16:19   좋아요 0 | URL
과찬의 말씀을....저도 바밤바님의 글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있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4-07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류에 들고자 길을 떠난 근대의 청년으로 <산시로>를 읽었는데요. 물론 여성을 찾아 떠난 길이기도 하구요. 그런 면에서 모리 오가이의 <청년>속의 고이즈미 준이치와 매우 비슷하죠. 소설도 물론 비슷하구요. 실제 <청년>속엔 나쓰메를 닮은 강연자가 나오기도 합니다. 연구자들은 그가 나쓰메라고 하죠.
'반딧불이'님의 나쓰메 소세키 서평을 죽 읽으며 가졌던 생각을 좀 써 볼게요. 중세적 교양 혹은 감정과 힘겹게 싸우는 나쓰메의 주인공들이 그걸 벗어나 근대적 주체로 섰을 때 묘하게도 천황, 아버지, 선생님 같은 인물들에 다시 등을 기대죠. 애국주의 혹은 순결주의에 시선을 빼앗기는 그들을 보며 전 불편함을 가졌습니다. 그런 면에서 나쓰메가 근대에 대해 갖는 생각의 안일함을 지적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나쓰메가 좋은 작가란 건 인정하지만 그가 식민주의와 천황의 존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묻자면 생각을 달리 할 수밖에 없네요.

반딧불이 2010-04-07 16:51   좋아요 0 | URL
파고세운닥나무님. 우선 반갑습니다.
문학작품은 읽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것 같아요. 모리 오가이의 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소세키 읽기가 끝나면 당대의 작품들을 찾아볼까 해요.

사실 저는 아버지, 선생님, 천황이 근대의 일본인들에게나 소세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몹시 궁금해요. <마음>의 리뷰를 쓸 때 생각을 보태볼 작정이에요. 그런데 '나무'님과는 좀 다른 생각이 드는군요. 나무님께서는 '근대적 주체로 섰을 때 묘하게도 천황, 아버지, 선생님 같은 인물들에 다시 등을 기'댄다고 하셨는데 저는 어느 작품에서도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어요.

<도련님>에서는 늙은 하녀 하나가 있을 뿐 고아나 마찬가지죠. <산시로>에는 어머니만 있을 뿐 아예 아버지는 등장도 하지 않아요. <그 후>에서는 아버지가 소중히 여기는 덕목을 거스르는 인물로 나오구요. <마음>에서는 생물학적인 아버지는 병으로, 정신적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선생님은 자살을 하죠.

소세키 작품의 어떤 주인공의 어떤 점을 애국주의, 순결주의로 빠지는 걸로 보셨는지....
사실 저는 소세키의 정치적 입장이 어떠한지가 몹시 궁금해요. 다만 <만한 이곳저곳>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배가 아프다는 말이 제국주의로 뻗어가는 자국에 대한 불편한 소세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닌가 짐작해보고 있을 뿐이에요.

이론서나 비평을 가능하면 아직 읽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저 나름대로의 생각을 모아보고 나중에 참고하려구요. '나무'님의 댓글 덕분에 이것저것 생각해볼 거리가 생겼네요. 고맙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4-08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마음>을 놓고 얘기해 볼게요. 선생의 죽음이 일개인의 죽음으로 그치지 않는 건 우선 노기대장과의 관련성이겠죠. 노기대장의 죽음을 순사라 일컫는 선생은 곧 죽음을 결심하잖아요. 노기대장과 선생은 메이지 신민으로서의 일치감을 갖는거죠. 두 자살을 우선 천황에 대한 충성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 역시 곧 죽음을 맞는데, 천황과 노기대장을 언급하며 ‘뒤를 따르’니 ‘면목이 없’니란 말을 되뇌죠. 세 죽음의 모습이 모두 다르지만 그 안엔 국가란 이데올로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세 죽음을 그리는 작가의 태도 속에 비판적 거리를 저는 찾지 못합니다. 물론 전적으로 긍정하지도 않구요. 그건 나쓰메답지 않으니까요. 이것을 애국주의로 해석하는 게 무리일까요? 순결주의는 세 죽음의 이유가 친구에 대한 배신, 천황에 대한 배신, 결국은 국가에 대한 배신 때문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구요. <그 후>의 다이스케가 국가에 별무관심인 듯 하지만 이런 말을 내뱉어요. “문학자도 공로병(恐露病)에 걸려있는 동안에는 아직 멀었다. 일단 일러전쟁을 경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애국주의-전쟁의 현장에선 제국주의가 되겠죠-가 보이는 모습이 아닐까요?
나쓰메의 소설을 꼭 사회적 혹은 정치적으로 읽을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누구나 심리소설로 읽을 까닭도 없을테구요. 그리고 정치적 언설이 아니더라도 그의 정치 의식, 사회 의식이 소설 속에 충분히 드러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걸 챙겨보는 게 적어도 식민 경험을 지닌 우리가 갖는 일종의 책임 아닐까 합니다.
나쓰메를 꼼꼼하게 읽고 계시는 ‘반딧불이’님을 만난 반가움을 이런식으로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못 본 나쓰메의 여러 구석들을 ‘반딧불이’님이 꼼꼼이 보고 계셔서 리뷰를 고맙게 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반딧불이 2010-04-09 23:08   좋아요 0 | URL
닥나무님께서 말씀 하신 애국주의와 순결주의가 어떤 뜻에서 하신 말씀인지 이제 이해되었어요.
<마음>은 거의 죽음의 향연이라고 해야할 만큼 죽음이 많이 나오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아버지와 선생님은 죽음은 노기대장과 천황의 죽음으로 연결되고 있고 그리고 K의 죽음은 도와도 관련이 있구요. 이것은 말씀처럼 애국주의나 순결주의로 보시는 것이 마땅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이러한 죽음들이 남아있는 주인공 '나'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인지에 더 관심있어요. 그러니까 쇼군이나 천황에게 죽음(할복)으로 충성을 확인하던 사람들 세대가 모조리 죽게되는 이 상황이 과연 남아있는 주인공에게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이제는 번, 막부, 천황 등의 공통항으로 묶이던 끈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생각해보는거죠.

<그후>의 다이스케가 하는 말은 러시아문학을 좋아해서 없는 돈으로 신간서적을 사 나르는 친구에게 한 말이죠. 그대로 옮겨보면 "그가 러시안 문학에 너무나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다이스케가 문학가라도 공로병에 걸려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며, 일단 러일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야기가 안된다고 비꼬아준 적 있었다." 저는 이말을 서양문물(외국문학포함)을 무조건 좋은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닥나무님 말씀처럼 소설을 꼭 정치적 사회적으로 읽을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소세키를 읽다보니 저는 궁금해서 아니 답답해서 못견디겠어요. 소세키가 평생 다섯번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더구나 최고교육을 받은자로서, 거기다 신문사에 있었잖아요. 이런 사람이 정말 교묘하게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것(피안지날때가지 읽었습니다)이 신기할 정도에요.

'반가움을 이런식으로 해서 죄송합니다'<==천부당 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4-10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게 나쓰메의 모호함이라 생각됩니다. '과거와의 단절'이라 하셨지만 그것 역시 모호하죠. 그리고 그 뒤로 나쓰메와 그의 주인공들은 숨어버리구요. 그걸 '일본적'이라 일본인들이 말하며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리뷰에 강상중의 책들이 있던데요, 그의 책을 보며 아쉬웠던 건 그 역시 여느 일본인과 같이 나쓰메를 읽고 있어서에요. 전공인 정치학이 어찌 나쓰메를 만나면 쑥 들어가고 그저 작가와 인물의 심리만 찾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천황에 관해서도 그래요. 자이니치의 부당한 현실을 제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천황에 관해 나쓰메가 선명한 시각을 보여주지 못하는데도 강상중은 정치학을 말할 때는 자이니치의 비참함을 얘기하지만 나쓰메에게선 또 제쳐두니까요. 그런 면에서 자이니치 서경식은 다르죠. 나쓰메에 대해선 일절 언급을 하지 않거든요. 모호함 뒤에 숨은 정치적 시선을 서경식은 아는듯 해요. 그것을 일본적이라 말하는 일본인들의 음흉함도 못마땅해하는 것 같구요.
나쓰메의 정치적 언설에는 그의 정치관이 좀 더 또렷이 드러납니다. 그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국가주의와 제국주의를 덜 드러냈을 뿐이지 없지는 않았죠. 없다고 믿고 싶은 사람-여기에 일본인들만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비극인듯 합니다-들이 많으니 언제부턴가 안 보이는 거겠죠. 늘 그게 아쉬워 이리 긴 댓글을 달아보았습니다. 나쓰메에 대한 다른 리뷰도 기다리겠습니다.

반딧불이 2010-04-10 16:58   좋아요 0 | URL
소세키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견지했던 것은 근대에 대한 소세키의 입장과 그것을 어떻게 그려내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사실 자국에 대한 그러니까 일본의 제국주의에 관한 소세키의 입장은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있었어요. 후기작으로 갈수록 그러한 면이 궁금해졌던 것이구요. 말씀처럼 '일본적'이라 말하면 달리 할 말이 없는듯 싶습니다.

강상중의 책은 조금 관점을 달리해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가 글을 쓴 목적이 자이니치의 부당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쓴 책은 아니었으니까요.

지금까지 소세키의 작품만에 국한했지만 말씀하신 정치적 언설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혹 궁금한 것이 생기면 여쭙도록 할께요. 도와주실거지요? 닥나무님께서 다른 리뷰를 기다린다고 하시니 갑자기 리뷰 쓰는 일이 부담스러워지는군요. 어쨌거나 성의껏 댓글을 달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4-10 21:42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근대'를 밑절미 삼아 나쓰메를 읽고 있습니다. 일본이라는 근대 국가와 민족을 만드는 데 그가 한 역할에 관심이 많구요. 누구 말마따나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면 그러한 상상을 하는 데 있어 나쓰메가 소설로서 누구보다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강상중에게 과한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전의 양식을 띠는 글속에 자이니치의 현실을 뉘엿뉘엿 말하지만 작가와 주인공이 부닥친 현실을 밑둥에서부터 정치하게 보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적어도 그가 우리 사회에 일본의 극우세력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는 자이니치 지식인이라는 이름을 갖는다면 말이죠.
제가 리뷰를 통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부담을 드리는 말도, 입에 발린 말도 아니구요. 저도 배우는 처지라 잘 알지 못하지만 서로 같고 다름을 알아가는 가운데 배웠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