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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개정판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은경 옮김 / 향연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문』은 소세키의 전기 삼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10년 3월 1일부터 6월 12일까지 도쿄와 오사카의 아사히신문에 동시 연재되었다. 이 책에는 제목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신문사에서 다음 작품의 예고를 위해 책 제목을 말해달라고 하자 소세키는 친구에게 제목을 정해보라고 했다. 고민하던 친구는 책상위에 뒹구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아무데나 펼쳐 눈에 띄는 ‘문’이라는 단어를 권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아무런 의미 없이 정해진 제목의 소설을 의미 있게 읽고 있는 셈이다. 제목을 받고 소설을 구상한 것인지 초안이 잡힌 상태에서 제목과 관련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소세키의 책 제목들은 이런 에피소드를 갖고 있는 것들이 많다.
‘어지간히 배짱 없는 분’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대학생 산시로, 대학 졸업 후 아무런 직업 없이 자신의 취향만 가꾸다가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자 밥벌이에 나설 운명에 처한 다이스케, 『문』은 그 후의 이야기로 대학 2학년의 소스케가 주인공이다. 소세키의 전기 3부작은 주인공들이 처해진 상황이 연결될 뿐 이름은 각기 다르다.
소스케는 단짝 친구인 야스이 집을 드나들다가 여동생이라는 오요네를 소개받는다. 일을 저질러놓고 보니 그녀는 친구의 여자였다. 불륜이 발각되었을 때 소스케는 비록 자퇴의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그 충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그들은 부모도 친척도 친구도 버렸다. 일반 사회를 버린 셈이다. 그리고 그들은 막다른 골목의 벼랑아래 작은 셋집을 얻어 살고 있다. 그들의 행동반경은 너무나 좁아서 한 귀퉁이 옅은 물에 개구리 알을 띄운 한마지기 논도 넓어 보일 지경이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함께 살게 되지만 이 작품의 초점은 그들의 애틋한 사랑에 있지 않다. 오히려 죄책감을 안고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 말조심 하며 살아가는 부부의 잔잔한 일상과 내면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함께 산지 육년이 되었지만 아이가 없다. 오요네가 세 번씩이나 유산을 한 탓이다. 그녀는 자기에게 아이가 없는 것이 자신들이 저지른 죄 값이라고 생각한다. 소스케는 주인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옛 친구 야스이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야스이를 맞닥뜨릴 것이 두려워 피난 가듯이 절에 들어간다.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어 참선에 들었지만 해답을 구하지 못한다.
소세키의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이 이 소설의 무게중심 역시 사건에 있지 않다. 때문에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주를 이룬다. 이렇다한 사건의 전개가 없기도 하고 그나마 있는 사건마저 정면대결을 피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뛰어들어 맞짱 뜨고 싶은 심정이 되어버린다. 소세키는 이 소설의 연재를 마치고 위궤양으로 한 달 넘게 입원을 하게 된다. 온천으로 전지요양을 떠났지만 증상은 더욱 악화되고 대량의 각혈을 한다. 이렇게 속 타는 인물들을 그려 내고도 위장병이 도지지 않고 각혈을 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닐 듯 싶기도 하다.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는 근대적 자아의 욕망을 다루면서 그 비난을 소세키가 다 짊어진 것은 아닌가 싶다. 소세키는 그의 전기 3부작을 통해 사회와 화합하지 못하는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그들의 내면을 그리는데 주력했다. 후기 삼부작은 어떤 형태로 진행될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면서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