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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평점 :
내가 강상중을 만나게 된 것은 나쓰메 소세키라는 징검다리를 통해서였다. 소세키의 작품을 발표순서대로 시작해서 1910년까지의 작품을 읽었다. 장편 6편과 단편집, 그의 문학예술론, 서간집, 소세키의 평전이라고 할 만한 고모리 요이치의 평론 등이 그것이다. 한 주에 한권씩 읽었으니 3개월을 꼬박 소세키 책만 읽은 셈이다. 구글 어스를 갖고 놀면서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곳을 앉은자리에서 찾아보지만 전기불도 없이 등잔불을 밝히던 당시를 고스란히 느껴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가진 근대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해서 당시의 인물이 되고자 노력했다. 소세키의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문제, 그런 주인공들을 그려내며 피를 토하던 소세키의 고민에 동참하고자 나도 고민했다. 그러나 1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뛸 타임머신도 상상력의 머신도 내게 없다. 소세키에게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해 이런 저런 책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의 하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책을 다 읽고 밑줄 그어놓은 부분을 요약 정리하다보니 대부분 소세키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소세키의 많은 작품이 이 책 전편에 인용되고 있지만 이 책이 소세키 작품해설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강상중은 이 책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왜 소세키인가를 알기위해 다시 읽어야했다.
저자가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선택한 것은 그들이 살고 있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동일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는 100년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세기말이 존재하고, 당시의 제국주의와 현재의 글로벌 머니, 국민이 전쟁(국가)의 소모품처럼 간주되던 당시와 자본주의의 부속품처럼 전락된 현재, 19세기 말 유럽에 횡행하던 세기말 문화와 현재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그 예로 들고 있다. 저자는 근대의 입구에서 생겨난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문제의 덩어리로 자라나 지금도 여전하다고 보고 있다.
저자는 근대의 문제와 맞섰던 베버와 소세키의 고민을 살피면서 현재 우리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여덟 개의 질문을 놓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형식을 취한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소세키의 주인공들이 있고 베버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서 타자를 발견할 것을,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라는 질문에는 돈은 경시하기 힘들지만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 외에도 그가 묻는 질문들 즉, 사랑, 종교, 죽음, 일 등에 대한 답은 경청해야할 사안들이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늘 떠돌고 있고, 이것이 마치 서양의 지식을 더 수입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되는 경향이 있는 가운데 저자의 이런 질문과 답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늙어서 최강이 되라’는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는 배우가 되고 싶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썼다. 그가 만드는 영화의 첫 장면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한참을 웃었다. 또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싶다고도 한다. 그는 할리데이비슨에 끌리는 이유를 예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자세의 뻔뻔함에서 찾고 있었다. ‘해골 아이콘을 달고 가죽장화를 신고 뻔뻔한 모습으로 할리데이비슨 위에 걸터앉아 뻔뻔한 태도로 김정일의 머리에 알밤을 먹이고’ 싶은 그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호모 페이션스(Homo patience, 고민하는 인간)의 가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보다 더 높다.” “고민하는 인간은 도움이 되는 인간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 빅터 E 프랭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