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봄, 나는 어쩐지 긴장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거실에 있다가 ‘지금밖에 없다!‘ 직감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까지 꼬여버렸다. "세 명 전부 보내서 후회해?" 갑자기 물어보자 침묵이 흘렸다. 될 대로 되라지 생각한 순간,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이미 가버린 건 별수 없다 싶지만, 그, 가서………… 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으려나 그렇게는 생각하지." 내 귀를 의심하면서 신중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타임캡슐을 타고 북송 사업이 활발했던 무렵으로 돌아가서 목차를 훑는 듯한 표정이었다. - P92
지아버지의 솔직함에 놀랐다. 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줘서 고마웠다. 아버지, 그리고 활동가로서 금지했던 문장을 꺼낸 이유는나를 향한 신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딸에게 약해진 나머지 마에 흘린 것이었을까. 촬영을 하면서 아버지에게 죄송하고 또 고마웠다. 이걸로 영화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 P92
그날의 아버지는 조금 이상했다. 여태껏 결코 입에 올린 적 없던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아버지는 <디어 평양>의 클라이맥스에서 내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도록 허락하면서 한국에 시집가도 되니까 그저 상대만 찾으라고 말한다. 자신은 생애 마지막까지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하겠지만, 딸은 별개이니 자유롭게 살라고 한다. 실은 오빠들의 ‘귀국‘에 대해 후회하는 장면부터 나의 국적 변경을 허락하는 장면까지 모두 같은 날 찍은 영상이다. 그다음 날, 나는 예정대로 도쿄로 돌아갔다. 일주일 후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고, 일련의 대화는 아버지와 내가 주고받은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 P93
<디어 평양>을 공개하자 조총련은 나에게 사과문을 쓰도록강요했고, 이를 무시하자 북한 입국을 금지했다. 2005년 방북을마지막으로 나는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2009년에는 이 우스꽝스러운 ‘처벌‘을 내리는 조직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심정으로 <굿바이, 평양>을 공개했다. 부모님이 인생을 바친 조직의판단으로 가족은 또 한 번 이산가족이 되었다. 어머니는 "벌칙 게임도 아니고, 한심해"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살던 어머니에게 항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딸의 영화 때문에 그때까지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소원해진 어머니에게 죄송했다. - P95
"영희가 정한 길, 쭈욱 가면 돼." 아버지가 말했다. 거짓말처럼 또렷하게 들렸다. 쭈욱이라는 말이 아버지다웠다. 갑자기 아버지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가슴을 크게 부풀려 어깨를 흔들면서격렬하게 숨을 내쉬었다. 목숨 걸고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입힐 옷을 들고 병실에 도착했다. 간호사들도 들어왔다. 아버지의 숨은 더욱 거칠어져갔다. 상반신을 공중으로 밀어 올리듯 들숨을 쉬고, 떠오른 머리와 등을 침대에 격렬하게 떨어뜨리며 날숨을 뱉었다. 아버지는 이를 여러 번 반복하다천천히 단계를 거치듯이 숨을 거두었다. 인간은 이렇게 죽어가는것이라고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계속 잡고 있던 아버지의 손이 ㅊ가워졌다. 얼굴도 목덜미도 차가워졌다. 차가워도 괜찮으니까 골에 들어가지 말고 영원히 이대로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P103
평양에서 나고 자란 조카 선화가 내 분신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선화와 나 둘 다 어린 시절 상실감을 겪었기때문이었다. 다섯 살 때 엄마를 잃은 선화의 슬픔과 외로움을 내가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여섯 살 때 세오빠와 헤어지면서 당연한 존재였던 가족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경험은 나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행동했지만, 어린 선화에게 엄마의 죽음은 커다란 상처가 됐을 것이다. - P113
선화는 둘째 건화 오빠의 딸이다. 건화 오빠는 첫 번째 아내와이혼하면서 지성, 지홍 두 아들을 데려왔고, 선화의 엄마인 정정순 씨와 재혼했다. 선화에게는 이복형제가 둘 있는 셈이다. 정순씨는 초혼에서 이미 두 아들을 얻은 오빠와 결혼하며 전처가 낳은아이들을 친자식처럼 돌봤다. 형 지성이는 아직 젖먹이였던 동생을 소중히 키워준 새엄마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였다. 어린 동생과 자신을 두고 떠난 친모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새엄마에 대한 믿음으로 덮어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 P114
선화가 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 정순씨가 복통을 호소했다. 아파트 근처에 있던 진료소에서 위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처방약을복용하던 중이었다. 며칠이 지나 다시 복통을 호소한 정순 씨가 출혈을 하며 쓰러져 큰 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날 숨을 거두었다. 사인은 자궁외임신이었다. - P115
새엄마 혜경씨가 노래를 부르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는 듯했다. 아버지는 열다섯 때 제주도에서 헤어진 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 할머니를, 세 오빠들은 오사카에살면서 물자 공급에 여념이 없는 어머니를 올케언니들은 친정어머니를, 선화의 이복형제인 지성과 지홍은 자신을 두고 떠나간 친모와 그 이후 자신들을 키워준 정순 씨를, 선화도 다섯 살 때 사망한 친모 정순 씨를 이 얼마나 보편적인 노래인가. 전 세계의 언어로 번역되어 불리면 좋겠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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