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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세계 - 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의 삶과 시대 ㅣ 계명대학교 여성학연구소 전환의 시대와 젠더 번역총서 1
마리아 미즈 지음, 안숙영 외 옮김 / 에코리브르 / 2024년 5월
평점 :
"만일 세계적 자유 무역에 반대한다면 대안으로 어떤 경제와 사회를 제시하시나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마리아 미즈의 답은 사람들이, "대안은 없다" 증후군을 거부할 때 시작한다고 말한다.
"대안은 없다" 증후군이라고 말하니 정말 대안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고 사실 너무 아득해서 답을 찾을 수나 있을지 솔직히 너무 어렵고 머리가 복잡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나 혼자만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나도 "대안은 없다" 증후군에 빠져있는 거 같다고 생각한다.
자유무역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우리 경제가 IMF 사태를 겪으면서 부실기업은 강제로 통폐합 되거나 부도가 나고, 국가 주도로 강제로 워크 아웃, 흡수되거나 합병되는 등의 과정을 겪었다. 그 당시 남편 회사도 이익이 나는 사업부를 팔아 공장 증설로 인해 일시적으로 부채비율이 높았을 뿐인데 부실채권으로 분류되었던 모기업을 청산하라는 압박을 받았고, 유망한 사업부였는데도 거의 빼앗기다시피 다른 기업에 넘겨야만 하는 상황을 맞았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다. 남편은 양복 상의 주머니에 사표를 써서 넣고 다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량실업이 발생하였고 자영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폐업이 속출하고, 가족이 흩어지고 일가족이 동반자살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었다. 모든 규제는 철폐되어야 했고 기업은 무한경쟁의 시대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개인은 거대한 구조의 부속품으로 전락했다. IMF, IBRD, ADB 등의 거대 자본은 신자유주의 물결을 등에 없고 파산한 우리 경제를 쥐고 흔들며 파상공세를 펼쳤다. 우리 국민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익히 알다시피 금 모으기 운동으로도 기억하게 된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된 이유는 우리 국민이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과연 그랬나. 그것은 북반구의 경제대국들과 세계의 경제를 쥐고 흔드는 거대 자본들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한 하나의 사례에 불과했으며, 비단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개발도상국, 남반구의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20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이 체제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의 삶은 더 팍팍해졌고 앞으로의 미래도 희망적이지는 않다. 이제는 이 실패한 체제가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한때 '세계화'라는 말로 모든 것이 가능했고 가능해야만 했던 무한 경쟁, 자유 무역은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하는 실패한 것이 분명한 체제이지만 이 거대한 수레바퀴를 뒤로 돌릴 수 있을까? 대안이 있기는 할까?
마리아 미즈는 그렇기 때문에 "대안은 없다" 증후군을 거부하라고 말한다. "세계화 대신 지역화"를 강조하면서 거대 기업 권력에 반대하며 보낸 세월동안 희망을 준 것은 세계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자 한다는 깨달음이었다고 말한다. 식량, 공기, 물, 보건 의료 체제, 학교, 환경, 대중교통 등의 필수 생활 조건들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민주적으로 조직하는데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소규모 경제 단위를 제안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세계 모든 시장의 개방화를 목표로 했다. 이는 제3세계의 가난한 농민들뿐만 아니라 소규모 산업체도 망가뜨렸다. 거대자본을 가진 다국적 기업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곤경을 자양분 삼아 대규모 공장을 짓고 가장 낮은 임금을 지불한다. 이런 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90퍼센트가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은 임금삭감의 본질이 성별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 여성들은 살충제와 인공 비료를 거부하고 오래된 형태의 농업을 고수하고 재발견하며 전통을 지키고 의식적으로 다국적 기업을 거부함으로써 물, 유전적,문화적 다양성 등의 자급기반을 지키기 위한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여기서 마리아 미즈가 말하는 자급이란 무엇인가.
자급 또는 삶의 생산은 삶의 직접 유지 외에 다른 목적이 없는 일을 모두 포함한다. 자급 생산은 상품 및 이여 가치 생산과 정반대에 위치한다. 자급 생산의 목적은 '삶'인 반면 상품 생산의 목표는 '돈'으로, 이 돈은 더 많은 돈 또는 자본 축적을 '생산'한다. 이런 생산 양식에서 삶은 말하자면 우연한 '부작용'일 뿐이다. 자본주의 산업 체제의 전형은 무상으로 착취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자연이나 천연자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기에는 제 3세계 농민의 노동뿐만 아니라 여성의 가사노동, 자연의 모든 생산성 역시 포함된다.(206쪽)
전 지구에서 자급 생산의 상당 부분을 여성이 수행한다. 즉 그들은 자녀를 낳고 기르며, 무급 가사 노동을 하고, 노인과 환자를 돌본다. 한마디로 이른바 무임금 '재생산 노동'을 하는 것이다. ... 임금 없이 가사 노동을 전유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구조적.직접적이라는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폭려은 인간과 자연, 농민과 산업, 수도와 식민지 사이 모든 착취 관계의 특징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핵심은 식민지와 같다고 간주하는 이유다."(같은쪽)
오늘날에도 자급 관점은 여전히 친숙하다.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는 다양한 욕구와 활동을 포함하는 소규모 농업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텃밭과 정원, 채소와 과일의 저장, 공예, 농산물 직거래, 물물교환, 이웃의 도움을 받는 수리나 수선도 해당이 된다. 이러한 활동의 실천에는 제대로 기능하는 지역 공동체가 필요하다. 마리아 미즈와 여성들은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는 대규모 농업, 다국적 기업의 단일 작물재배 사업, 식물 유전자 변형, 유전자 및 재생산 기술에 반대하며 "여성의 식량 안보를 위한 라이프치히 호소"를 바탕으로 여성과 자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많은 활동과 투쟁의 기록들인데 우린 왜 이다지도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을까.
다양한 활동이 펼쳐진 과정들을 돌아보는 글을 읽다보니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더 열악하고 가난한 제3세계, 인도, 라틴아메리카의 여성들이 우리 지구의 환경과 미래에 대한 투쟁에 더 적극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성하게 된다. 하지만 나도 이러한 활동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좋았던 글도 있었다. 좋은 삶을 위한 '텃밭 가꾸기'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적인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약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텃밭을 일구고 소박하게 사는 삶을 예찬한다. 필요한 적절한 시기에 맞춰 씨를 뿌리고 자연의 리듬에 따라 잘 자랄 수 "따뜻함, 물, 사랑"을 주었으며, 거름을 주고 단일 경작이 아니라 다양한 식물을 경작하며 그 텃밭에서 난 작물을 이웃과 나누는 활동과 그것을 향유하는 좋은 삶! 이 과정에서 마리아 미즈가 느낀 것은 자연은 인색하지 않고 언제나 풍요로운 산출을 돕는다는 것, 항상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줌으로써 나눔을 가르친다는 것, 그로 인해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것. 이러한 사실을 나도 느끼고 그것을 즐기는 삶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작은 실천을 계속해 나가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소규모 커뮤니티의 활성화가 우리 마을을 넘어서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본다.
마리아 미즈가 고향 마을에서 지낼 때 독일 전역을 강타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태풍 신시아로 인해 대규모 정전 사태를 직면했을 때의 일은 나에게도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나 걱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정전이 발생하면 불을 피울 수도 없고 난방도 안되고 음식을 보관하고 조리할 수도 없으며 통신은 물론 안되고 찬물만 나올테니 어두운 욕실에서 목욕도 힘들고... 대체 할 수 있는게 얼마나 될까.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게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지난달 첫 폭설 때 나무가 쓰러지면서 전선 위로 넘어지는 바람에 우리 동네도 정전이 됐었다. 밤 사이 전기는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면서 식구들을 불안하게 하였고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럼 다른 대안은? 글쎄? 하면서 얼른 떠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거의 35 년간 살다가 단독주택으로 이사오고 나서 절실히 느낀 것이 있었다. 내가 아파트에서 얼마나 에너지를 펑펑 낭비하면서 살았는지를. 그때의 나는 미쳤었구나(물론 그때도 아껴쓰려고 했지만 기본적으로 아파트는 보일러를 안돌려도 20도 이하로는 절대 안떨어졌다. 남향이라 더 그럴지도)!
우리집은 주택이긴 하지만 그다지 넓지 않아서 벽난로를 설치하긴 애매했다. 거기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기점으로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못하는 지역이라 난방은 LPG. 넋 놓고 보일러 돌렸다간 하루치 가스요금 얼만지 계산할 필요도 없이 정말 후덜덜 장난 아니게 나온다. 이젠 계산이 너무 잘돼. 넋 놓고 돌린 나란 여자 정말 응징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실내온도는 언제나 18 도를 넘지 못한다(자의반, 타의반 국가시책에 호응하는 애국자가 되었구나). 아낄 수 있는 한 최대로 아낀다. 겨울에 반팔 입고 거실을 활보하는 건 이제 먼나라 이야기가 됐다. 히트텍에 기모 상하의 필수, 거기에 패딩 조끼나 카디건, 숄이나 얇은 목도리, 두꺼운 양말, 그리고 목폴라. 겨울 동안 난 내 방에 틀어박혀 생활한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만 보일러 풀로 해두긴 하지만 잠깐씩만 보일러를 돌린다. 그래서 난방 기구는 좀 다양하게 이용한다. 안 그럼 겨울나기 몹시 힘들다. 다행히 전기는 태양열로... 얼마나 감사한지. 그런 관계로 오늘 해가 뜨나 안 뜨나 매일 궁금해 한다. 아파트 생활자가 절대 다수인 우리나라에서 겨울인데 최소한 반팔 입고 거실을 활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생각은 아닐 것이다!
마리아 미즈의 글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런걸 생각하게 된다. 아니 사실 생각할 게 너무 많다. 마치 방학 전에 엄청난 숙제를 받은 기분이다. 한편으론 마리아 미즈가 우리에게 남기는 "당부의 말" 같기도 하고 에필로그를 읽을 땐 정말 기나긴 유언장을 읽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유언장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건데... 그녀가 말한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현명해져야 하는 걸까. 이 미친 세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