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카이노라고 불렸던 오사카시 이쿠노구, 어머니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재일코리안 사회의 축소판과 같은이곳은 주민의 4분의 1이상을 재일코리안이 차지하고 있었다. 국적이나 사상과 관계없이 이곳에 사는 재일코리안의 9할은 한반도의 남쪽, 한국 출신이다. 일본 사회의 민족 차별과가난으로 고통받던 이들의 생활은 조국 분단으로 인해 더 큰혼란에 빠졌다. 북이냐, 남이냐. 모두가 이념을 따져야 했다.
정치와 떼어놓을 수 있는 일상이란 없었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 중에서 - P17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 갈등이 격화되는 본국의 상황은 재일 사회에도 그대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선술집이나 고깃집에서는 테이블마다 남한 지지자와 북조선 지지자가 따로 앉았고, 문득들려오는 대화의 말꼬리를 잡아 말싸움을 시작하거나 주먹다짐까지 했다. 남한을 지지하는 거류민단과 북조선을 지지하는 조총련의 대립도 심각했다. 김치 가게와 한복점이 늘어선 미유키모리 상점가를 찾는 손님들은 김치 맛보다 가게 주인의 정치 성향을 기준으로 가게를 골랐다. 상점가에 걸린 현수막에도 "죽음의 신청 ‘영주권 취소하고 괴뢰 ‘한국적‘을 조선으로 고치자!"라는 강렬한 정치적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반도는 삼팔선으로 둘로 분단되었지만, 재일코리안 사회는 거리 구석구석까지 구불구불 삼팔선이 얽혀 있었다. - P19

내 기억 속 이카이노는 여성들이다. 이카이노에 사는 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딸들은 제주도와 경상도, 오사카 사투리로 말했다. 뼈 빠지게 일하고 호탕하게 웃던 그녀들 뒤에는 가혹한 역사가감춰져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둘 것을, 뒤늦게 후회한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계속 파헤쳐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 P24

사상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아버지와 꼭 한번 술을 마셔보고 싶다는 이들도 많았다. 강렬한 캐릭터의 아버지 덕에<디어 평양>은 사람들에게 선명한 인상을 남기며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발표한 지 17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팬들이 전 세계에 있다. - P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