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카파》 X 김경훈, 아르테클래식 클라우드
오늘밤,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적이고 파렴치한 비상계엄령의 선포를 목도하였다. 국민의 생존권과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치를 버젓이 내려놓고 국민의 행복과 안녕을 말하다니... 믿을 수가 없네!
‘그래, 이제 카파가 옆에 없어도 난 내 몫을 오롯이 해낼 수있어‘ 아마도 당시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오늘 밤 마드리드에서 송별회를 합시다. 삼페인이 준비되어 있를 합시다 있어요." 그러나 이러한 만족과 안도의 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퇴각 중이던 공화군 탱크가 운전병의 조종 미숙으로 타로와 일행이 타고 있던 차량의 측면을 들이받았다. 육중한 탱크의 충격에 타로는 튕겨나가면서 복부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사고를 당한 타로는 곧 야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타로의 내장기관은 심하게 훼손됐고 수술을 마친 의료진이 해줄 수 있는 것은 타로가 통증을 덜 느끼도록 다량의 모르핀을 놓아 주는 것밖에 없었다. - P177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사고를 당한 후에도 타로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의식이 또렷한 만큼 타로는 고스란히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직감하며 타로는 의사에게 프랑스에 있는 카파와 「수아르」의 편집장에게 전보를 쳐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자신의 카메라가 괜찮느냐고 계속 물었다고 한다. 당시 그녀를 간호했던 간호사가 영화배우처럼 아름다웠다고 회상했던 타로는 다음 날 새벽, 세상을 떠났다. - P177
파리에 있던 카파는 신문을 통해 사랑했던 연인의 죽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카파는 파리에서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갈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타로와 함께 취재한 사진들을 「수아르」에 넘겼고 남은 사진들은 다른 잡지사에도 판매할 수 있었고 제법 괜찮은 돈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스페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잡지사로부터 일감, 즉 취재 의뢰를 먼저 받아야 했어서 카파는 스페인행을 지체하고 있었다. 조만간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 타로와 재회하는 것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카파에게 갑작스러운 비보가 전해진 것이었다. - P178
프랑스의 「뤼마니테L‘Humanité」에는 ‘프랑스 기자 타로, 브루네테 전투에서 사망‘이라고 실렸다. 타로가 세상을 떠나고 하루가 지난 뒤였다. - P178
타로를 혼자 스페인에 남겨 놓고 오면서 절대 위험한 곳에는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으며 타로와 마지막 여정을 함께했던 앨런에게 타로를 보살펴줄 것을 부탁하고 왔던 카파에게 타로의 죽음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다가오는 8월 1일은 타로의 생일이었고, 예정대로 타로가 26일 스페인을 떠났다면 그 둘은 파리에서 재회하여 사진기자로서 우뚝 서게 만들어준 스페인에서의 성공을 자축하며 멋진 생일 파티를 함께 했을 것이다. 하지만 타로는 시신이 되어 파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 P178
주체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카파는 타로의 관이 묻히는 파리의묘지에서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브레송은 자신의 친구 카파가그처럼 슬픔에 빠져 있는 모습을 이전에도 이후에도 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는, 카파는 타로의 죽음 이후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곤 했다. - P180
한편 그녀에게는 전쟁에서 사망한 최초의 여성 종군 사진기자라는 타이틀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녀가 브루네티에서 남긴 훌륭한 사진들은 타로가 카파 없이도 온전히 자립할 수 있는 보도사진가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그녀의 사진과 그녀의 죽음은 이만 오천 명의의 공화군 측 사상자가 나온 당시의 전쟁의 생생한 증거가 되기도 했다. 아름답고 젊은 여성의 사명감과 용기가 엿보이는 죽음은 새로운 전설의 탄생이 되었다. - P183
게르다 타로는 파리의 페르 라쉐즈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오스카 와일드, 프루스트, 발자크, 쇼팽 등의 저명한 인사들의 무덤이 있는 페리 라쉐즈의 한편에 그녀의 작고 가냘픈 몸만큼이나 조그만 타로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 P183
타로의 무덤에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당신의 무조건적인 투쟁은 아무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프랑스어와 카탈루냐어로 쓰인 비문이 있고,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카파와 함께 있누 타로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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