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0: 서문>인식론과 방법론, 유물론


4. 기존 학문에 대한 비판과 페미니즘 관점의 발전

하지만 과학도, 페미니즘도 국경이 없다. 
지식의 평가는 국가적인 차원도, 다국적 차원도 
아니고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1975년 내가 소원이라 불렀던 전세계적 ‘지식의 페미니즘적 혁명‘은 시작되었으며 계속되고 있다. 페미니즘적 사유는 지난 30 년 간 사회과학 전체가 한 것보다  더 많은 가설을 낳았고, 더 많은 개념을 만들어냈으며, 더 많은 대상 ㅡ‘여성 억압‘을 비롯해ㅡ을 구성해냈다. - P64

페미니즘사상에 대항하는 프랑스 지식 기관 대표자들의 격렬한 공격(Delphy, Armengaud et Jasser1994)은 후위전戰 특유의 형태를 보인다. 페미니즘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페미니즘이 만들어낸 개념(예를 들면 젠더) 중일부를 빌려야만 하기 때문에, 이 대표자들은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 P65

하지만 젠더가 ‘섹스‘와 동의어로 (개념이 아닌 용어로) 쓰이는 경우에도, ‘젠더‘라는 단어가 발화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담론에서 싫든 좋든,
가장 일반적인 차원에서 가장 전복적인 차원-‘젠더‘를 사회 분열의 주요 쟁점으로 만드는-에 이르기까지 젠더에 대한 모든 함의를 끌어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이들은 페미니즘의 영역으로 끌려 나오게 된다. 그들이 페미니즘과 그 영역이 존재할 만한 장소가 없거나
말할 가치가 없다는 듯 군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된다. - P65

계급 개념에서 젠더 개념으로

계급이라는 개념은 사회 구성의 개념에서 출발했으며 그 결과를 구체화한다. 집단은 더 이상 관계에 앞서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관계가 집단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성별 분업을 구성함으로써 ‘성별‘이라 일컬어지는 집단을 만드는 사회적 관계와 사회적 관행을 밝혀내야 한다. - P70

1970년대, 영어권에서 ‘젠더‘라는 개념이 탄생하면서 이론적으로 매우 주요한 발걸음을 떼게 되었다. 나는 1976년부터 이 개념을 사용했다. 
젠더 개념은 처음 등장했을 때 단 한 단어로 
‘성적‘ 이분법의 사회적 측면을 인정하고 그 사회적 측면을 사회적으로 다뤄야 할 필요성을 포괄했으며, 결과적으로 사회적인 측면을 성의 해부학적·생물학적인 면과 분리했다. 젠더는 성 역할에 대한 시선을 ‘성‘의 구성 자체로 이동하게 할 방편을 잠정적으로나마 가지고 있다. 

어떻게 이 잠재적인 힘을 발현시켜 가부장제를 연구하고, 여전히 부재하는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이어지는 책에서 다루려 한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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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가벼운데 다루는 내용과 문장은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다. 유산상속에 대한 고찰이라니..
흥미로운 내용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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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4-11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이팅!!

은하수 2024-04-11 13:18   좋아요 1 | URL
이 달엔 기필코 끝까지 읽고 싶네요~~^^*
 

한 쌍의 손이 물에서 나와 각진 구멍의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탐색하는 손가락이 아주 작은 협곡의 경사면을 닮은 구멍의 두꺼운 안쪽 벽을 기어올라 표면까지 나오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가장자리 너머에 이른 손은 갈고리처럼 눈을 움키고 당겼다.
머리가 나왔다. 헤엄치던 사람이 눈을 떴다. 그는 지평선조차 보이지 않는 광활하고 단조로운 풍경을 바라보았다. 길고 흰 머리카락과 턱수염이 지푸라기 빛깔이 들어간 끈으로 묶여 있었다.
그에게는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설령 숨이 찼더라도 날숨에서 나오는 김은 아무 색깔 없는 배경 속에서 보이지 않있다. 그는 팔꿈치와 가슴을 얕은 눈밭에 올려놓고 몸을 돌렸다.
- P9

그들의 작은 행렬은 계속해서 움직이며 칼에 
베인 새와 개, 파충류, 설치류로 이루어진 흔적을 남겼다.
수업 도중에 로리머는 종종 제자에게, 칼을 잡은 
손에 진실을 찾는 눈의 인도를 받는 사랑이 어리지 않는다면 메스를 다루는 호칸의 놀라운 재능은 결국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로리머는 돋보기 아래에서 돌과 식물, 동물이 
얼어붙게 된다면자연에 대한 탐구는 삭막해진다고말했다.  - P88

동식물 연구자는 열렬한 사랑은 아니더라도 따뜻한 애정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했다. 메스가 끝내버린 생명은 그 생명체의 반복될 수 없는 개별성에 대한 깊고도 헌신적인 감사로 기려야 했다. 동시에 이런 감사는, 이상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그 생명체가 자연계 전체를 대표한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주의깊게 살펴보면, 해부된 토끼는 다른 모든 동물의 부위와 특질, 더 나아가 환경까지 조명해주었다. 토끼는, 풀잎 한 장이나 석탄 한 조각과 마찬가지로,전체의 작은 파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전체를 담고 있었다. 이 사실이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다. 다른 점을 전부
차치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똑같은 물질로 만들어져 있으니까.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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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왔다. 나는 길을 건너기가 두려웠고 
비스듬하게 서 있는 집들이 내 쪽으로 쓰러지거나 
보도가 솟구쳐 나를 들이받을까 두려웠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지나가는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언제든지 그들 중 누구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내게 다가와 나를 때려눕히거나, 아니면 내게 한껏 길게 혀를 내밀어 보일 수도 있었다. 고향에서 메타가 그랬을 때처럼. 가면무도회가 열렸을 때 그녀는 나를 보러 와서 가면의 틈새로 내게 혀를 내밀었다.

택시 한대가 지나갔다. 손을 들자 운전사가 멈췄다. 내가 문을 열지 못하자 그가 내려서 문을 열어 주었다. - P217

모든 것이 항상 그토록 똑같았다 내가 결코 익숙해질 수 없었던게 바로 그 점이었다. 
그리고 그 추위. 또 다 똑같은 집들과 동서남북으로 뻗은 다 똑같은 거리들. - P218

나는 ‘고통이란...... 하고 생각했지만, 그게 어떤 것이었는지 이미 아주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나는 괜찮았다. 가끔 가다 마치 침대밑을 뚫고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은 순간이 있는 걸 빼곤. - P221

그들의 말소리가 멈추자 빛줄기가 다시 방문 아래로 들어왔다.
마치 모든 것이 다 잊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억이 물밀 듯 되돌아오는 것처럼. 나는 누워서 그 빛줄기를 보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새롭고 신선하다는 것에 대해 무슨 일이든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아침들과 안개 낀 날들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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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가씨가 이렇게 살면 안돼요." 도스 부인이 말했다.
월터가 떠난 뒤로 내가 일주일 동안 바깥에 나가지 않자 하는 말이었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항상 피곤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하고싶은 일이라곤 
아주 늦게까지 침대에 누워 있다가 침대에서 뭘 좀
먹고 그러다가 오후에는 오래오래 욕조 안에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 나는 머리를 물 속에 담그고 수돗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게 폭포라고 상상했다. 모건 쉼터에서 우리가 목욕을 하던 연못으로 떨어지는 폭포 같은. - P110

그리고 나는 항상 그 연못이 나오는 꿈을 꾸고 있었다. 폭포가떨어지는 바로 근처는 물이 깨끗했지만 얕은 곳들은 진흙탕이었다. 연못 주위에는 밤이면 피어나는 그 커다란 흰색 꽃들이 자랐다. 팝꽃,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백합 모양에 진한 단내가 아주 강하게났다. 멀리 떨어져서도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헤스터는 그 향을 견디지 못했고, 그 냄새를 맡으면 어지러워했다. 강가의 바위 밑에는 게가 있었다. 나는 목욕을 하다가 게들 때문에 첨벙대곤 했다.
게는 긴 더듬이 끝에 작은 눈이 달려 있었고, 사람들이 던진 돌에맞으면 껍데기가 으스러지면서 부드럽고 하얀 물질이 보글보글 흘러나왔다. 나는 항상 이 연못이 나오는 꿈을 꾸며 꿈속에서 그 녹갈색 물을 보고 있었다. - P111

"안돼요, 젊은 아가씨가 이렇게 살면 안돼요." 도스 부인이 말했다.
사람들은 ‘젊은‘이라는 말을 하며 마치 젊다는 게 무슨 범죄라도 되는 양 굴지만, 정작 늙어가는 것은 항상 그리도 무서워한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늙어서 이 모든 망할 일이 다 끝났으면 좋겠어. 그럼 도무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이렇게 침울한 기분에 빠져있진 않을 텐데! - P111

이윽고 택시가 왔다. 길 양편의 집들은 작고 
칙칙하건 크고 칙칙하건 모두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살아오는 
동안 줄곧 알고 있었으며 오랫동안 두려워해왔다는것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두려워해왔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제 그 두려움이 자라나 있었다. 거대하게 자라나 있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나를 가득 채우고 온 세상을가득 채웠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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