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쌍의 손이 물에서 나와 각진 구멍의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탐색하는 손가락이 아주 작은 협곡의 경사면을 닮은 구멍의 두꺼운 안쪽 벽을 기어올라 표면까지 나오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가장자리 너머에 이른 손은 갈고리처럼 눈을 움키고 당겼다.
머리가 나왔다. 헤엄치던 사람이 눈을 떴다. 그는 지평선조차 보이지 않는 광활하고 단조로운 풍경을 바라보았다. 길고 흰 머리카락과 턱수염이 지푸라기 빛깔이 들어간 끈으로 묶여 있었다.
그에게는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설령 숨이 찼더라도 날숨에서 나오는 김은 아무 색깔 없는 배경 속에서 보이지 않있다. 그는 팔꿈치와 가슴을 얕은 눈밭에 올려놓고 몸을 돌렸다.
- P9

그들의 작은 행렬은 계속해서 움직이며 칼에 
베인 새와 개, 파충류, 설치류로 이루어진 흔적을 남겼다.
수업 도중에 로리머는 종종 제자에게, 칼을 잡은 
손에 진실을 찾는 눈의 인도를 받는 사랑이 어리지 않는다면 메스를 다루는 호칸의 놀라운 재능은 결국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로리머는 돋보기 아래에서 돌과 식물, 동물이 
얼어붙게 된다면자연에 대한 탐구는 삭막해진다고말했다.  - P88

동식물 연구자는 열렬한 사랑은 아니더라도 따뜻한 애정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했다. 메스가 끝내버린 생명은 그 생명체의 반복될 수 없는 개별성에 대한 깊고도 헌신적인 감사로 기려야 했다. 동시에 이런 감사는, 이상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그 생명체가 자연계 전체를 대표한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주의깊게 살펴보면, 해부된 토끼는 다른 모든 동물의 부위와 특질, 더 나아가 환경까지 조명해주었다. 토끼는, 풀잎 한 장이나 석탄 한 조각과 마찬가지로,전체의 작은 파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전체를 담고 있었다. 이 사실이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다. 다른 점을 전부
차치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똑같은 물질로 만들어져 있으니까.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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