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을 당하는 자는 나약함이나 어리석음과 같은 부정적인 면으로 이어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약함이나 어리석음, 비참함 따위가 나 자신과 딱 들어맞을 때, 서로를 외면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증오가 싹튼다. 나 자신의 비참함과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된 자가 느끼는 짜증이 그 속에 있다. 여자들끼리 미워하고 갈등하면서 낳은 중오. 그것은 여자인 채 어떻게 ‘여자로 살기‘를 그만두면 좋을지 논의하지 못하고 여자라는 사실로부터 도망 다니는 자가 느끼는 비참함, 바로 여자의 역사성에서 나온다. - P29

바보 역할은 진짜 배우에게도 어렵다는데, 스스로를 바보라고 믿도록 강요당한 자는 바보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부정의 부정이 긍정이라고는 하나, 살아 있는 인간에 관한 부정의 부정은 전면적인 부정일뿐이다. 존재의 전면적인 부정이다. 그래서 결코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 여자만이 ‘바보 여자‘인 척 연기할 수 있다. - P29

여자로 사는 어려움, 이것은 여자의 일상을 끊임없이 침식하는 가치가없는 나‘라는 협박 같은 관념과 함께 존재한다. "인류 및 여성 여러분"이라고 처음 말한 이가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하는데, 그 말은 여자는 과학자든예술가든 음악가든 될 수가 없고, ‘암컷‘만 될 수 있는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역사의 진실을 묻어 버리지 않고 알려 주는 말이다. 물론남자를 제치고 사회를 자신의 것으로 밝혀 온 여자들이 지금껏 무수히 있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여류 음악가‘, ‘여기자‘, ‘의사‘ 등 ‘여류‘로 그존재를 허락받았던 것에 불과하다.  - P33

 ‘남자인간‘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사회에서 여자가 개인 주체로 어떻게 나 자신을 찾아야 할지, "여자인 주제에" 하고 매도당하며 암컷으로 살아온 역사성이 우리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남자는 집 문지방만 넘어서면 사방이 적인지라 엄혹한 세상에서 녹초가 되어 살아간다는데, ‘사회‘에서 자신을 찾고 구하려는 여자들에게는
‘사회‘ 자체가 적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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