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와 이저벨》
_____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지난달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바닷가의 루시》를 읽었을 때 마지막에 작가의 모든 주인공들이 한 곳에 모인 것을 보았다. 루시와 올리브 키터리지, 버지스, 에이미... 메인주 바닷가 마을에 모두 모인 주인공들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 비록 《에이미와 이저벨》, 《버지스 형제》를 읽진 않았지만 이 책들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닷가의 루시》에 너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 에이미, 버지스가 작가 작품의 그들이란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아직 읽지 않은 두 작품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998년에 발표된 데뷔작인 《에이미와 이저벨》부터 읽기 시작이다.
지지난주 도서관에 가서 빌려왔다. 반납일이 얼마남지 않았는데 이제서야 겨우 읽기 시작했고 빨리 읽어야겠단 생각에 맘이 급한데...
에이미와 이저벨은 모녀지간이었다.... 이 사실이 순간 내게 크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딸과 함께 있기 때문이고 에이미와 이저벨을 읽어나가다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는데 그 부분에서도 나와 딸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다시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저벨은 부모님도 남편도 죽고 아기 때부터 에이미를 홀로 키우는 엄마였다. 일을 하러 나가야 하니 에이미를 남의 집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에이미는 같이 있어주는 엄마에 목말랐을 것이다. 이저벨은 그런 에이미의 마음을 잘 받아주었고 에이미가 꾸무럭거리며 먹던 시간 동안 늘 같이 있어주었다. "엄마.", "같이 앉아 있어줄 거죠?" 하고 불안스레 물어보면 이저벨은 지치고 신경이 곤두서서 차라리 잡지를 뒤적이거나 설거지를 해치우고 싶었지만 아이의 조그만 소화기관이 놀랄까봐 재촉은 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는데 그 시간이 두 모녀만의 오붓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내가 특히 와 닿은 문장들은 이 부분이다.
"그 시절 이저벨은 일하러 가면서 에이미를 에스터 해치의 집에 맡겼다. 해치의 집은 타운 변두리에 있는 다 쓰러져가는 농가였는데, 아기들과 고양이들이 우글거리고 고양이 오줌 냄새가 코를 찌르는 끔찍한 곳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저벨의 벌이로 감당할 수 있는 곳은 고곳뿐이었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에이미를 그 집에 두고 떠나기 싫었고, 에이미가 헤어질 때 인사하지 않는 것도, 창문으로 쪼르르 달려간 뒤 소파에 기어올라 멀어지는 엄마를 지켜보는 것도 싫었다. 이따금 이저벨은 진입로에서 차를 빼면서 에이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손을 흔들었는데, 그건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에이미가 창가에서 그렇게, 창백한 얼굴로 웃지도 않는 것을 보면 누가 목구멍에 뭔가를 억지로 쑤셔넣는 기분이 들었다. 에스터 해치는 에이미가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 했다.(34쪽)
30 개월 무렵부터 우리 옆 동 놀이방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을 했는데 아이를 안고 옆 동으로 갈 때부터 울기 시작해서 놀이방에 도착해 선생님에게 안겨줄 때까지 내 목을 꽉 끌어안고 놀이방 가기 싫다고 떼를 쓰며 울고 불고 해서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그야말로 눈물의 이별이 되곤 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그 여리디 여린 팔 어디에 그런 힘이 있었는지 정말 내 목이 아플 정도로 꽉 끌어안고 매달리던 그 감촉과 몰아치던 강렬한 팔의 힘이 내 목에 고스란히, 그리고 생생하게 남아 있다. 아이를 선생님에게 안겨주곤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가슴이 찢어진 채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왔었다. 퇴근해서 아이를 다시 데리러 가면 아이는 다른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 한산해진 놀이방에 홀로 남아 힘없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고 나오면 다시 엄마 목을 꽉 끌어안고 다시는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듯이 매달렸다. 그러면 나는 그 작고 여린 몸을 꼭 안아주었다.
에이미는 엄마에게 떼쓰는 아이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울지 않았던 거다. 우리 딸과는 달랐다. 그래도 나는 그 시절의 우리 딸이 맘 아프고 그래서 에이미에게서도 그런 감정을 느낀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지 더 궁금해진다.
지난 주 화요일, 우리 딸이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복강경 수술을 하게 되어 월요일부터 바빴다. 1박2일의 짧은 입원을 하게 되지만 입원 준비를 위해 용인 우리집에서 딸이 있는 고양시까지 가서 이것저것 준비하러 다니고 화욜 새벽에 입원해서 차례를 기다렸다 수술을 하고 다행히 경과가 좋아 하루 만에 퇴원을 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무리 복강경으로 하는 수술이라지만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통증이 심했고 허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어 힘들어 하는 딸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진통제를 먹었는데 약기운이 떨어지면 계속 아파했고 그게 2~3일 정도 지속됐는데 주말 쯤부터는 많이 나아졌다고 해서 움직임이 한결 편해지게 되었다. 그 동안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고 잠도 실컷 자고 엄마의 케어를 받으며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는 딸을 보니 한편으론 짠하고 맴이 아픈데 한편으론 또 뿌듯하고 행복한 기분도 들어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정신 없는 중에 주말에 김장도 했다.
텃밭에서 키운 우리의 배추 35포기, 쪽파, 무, 청갓과 홍갓을 뽑고 다듬고 씻어 김칫소를 버무려 배추김치와 쪽파 김치를 담가 김치냉장고 가득 채우고 나니 벌써 맘이 푸근하고 든든하다. 생굴 넉넉하게 넣은 김칫소에 수육 삶아 친구네와 같이 술잔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올해 처음으로 삼시세끼에서 늘 보던 화로 사서 커다란 솥 걸고 불 피워 수육을 삶아봤다. 확실히 인덕션이나 가스보다 화력이 세서 진짜 깜짝 놀랐다. 삼겹살 큰 덩어리째 넣었는데 금방 익는거 아닌가! 이런게 사는 재미런가 싶어 행복해졌다.
금방 회복한 딸램과 함께 할 수 있어 더 좋다!
이곳 카페는 잠봉뵈르 샌드위치가 진짜 맛이 좋다. 딸램 오면 꼭 같이 와야지.. 했는데 지금 이렇게 같이 와 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도 반으로 잘라 나눠 먹었고, 난 《에이미와 이저벨》, 딸램은 《스토너》 읽고 있는데 배도 부르고 카페는 따뜻해서 살짝 졸음이 와 각자 딴짓 하는 중이다. 2층의 통창 뷰도 가을가을하니 좋고 책을 읽거나 컴 작업하기도 좋아 월욜 오전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다. 밖은 바람이 부는지 키 큰 단풍나무의 높은 가지가 춤을 춘다.
이번 주부터는 그동안 주춤했던 독서에 매진해야 한다. 밀려있는 책이 여간 많아야 말이지...
《신곡》은 연옥편을 읽다 중단 중이고
《세계 끝의 버섯》도 재미있게 읽고 있었는데 다시 시작해야하고...
《생명의 여자들에게 : 엉망인 여성 해방론》은 문장이 어쩜 그리 시원한지 정말 읽다보면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여전히 엉망이고... 난 저 ‘생명의 여자들‘이란 말이 너무 좋다. 제목만도 위로가 된다. 50 년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감안하고 읽어도 여전히 엉망이라 안타깝다.
빌려온 책들도 구입한 책들도 넘 많아 책꽂이를 벗어나 책상 위까지 점령하고 있다.
이러다 읽어보지도 못하고 반납하거나 팔아먹게 생겼다. ㅠㅠ
한강 작가의 책도 몇 권이나 샀는데 언제 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