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아차림의 기술

20세기 학문은 근대인의 자만심을 공고히 해나가는 한편, 여러 갈래로 나뉘고 층을 이루고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세계를 형성하는 프로젝트를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음모를 꾸몄다. 학자들은 다른 삶의 방식을 억압하면서 특정한 삶의 방식을 확산시키는 행위에 도취되었기에, 그 밖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관한 질문은 무시했다. 그러나 진보에 관한 이야기가 견인력을 잃자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해졌다. - P56

배치assemblage는 유용한 개념이다. 생태학자는 때로 고정되고 제한된 함의를 갖는 생태적 ‘공동체‘를 벗어나 배치로 관심을 돌렸다. 하나의 배치 안에 존재하는 여러 생물종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서로 영향을 끼치는지는 결코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떤 것은 서로를 방해하고 (혹은 먹고) 어떤 것은 생존을 위해 협력한다. 또 어떤 것은 자신들이 같은 장소에 있음을 이제 막 우연히 알게 됐다.
배치는 열린 모임 gathering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편견 없이 공동의 영향에 대해 물을 수 있고, 형성 중인 잠재적 역사를 볼 수 있다. - P56

다운율의 배치는 근대 정치경제가 아직 손을 뻗지 않은 영역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공장 노동은 조율된 진보적 시간의 전형이다. 그러나 상품 생산 및 공급사슬에도 다운율의 배치가 스며들어 있다. - P60

넬리 추Nellite Chu가 연구한 중국의 소규모 의류 봉제 공장을 생각해보자. 많은 경쟁사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지방의 부티크 브랜드와 이름난 국제적 브랜드의 생산 주문, 그리고 나중에 브랜드 상품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상표 없는 제품 생산을 요구하는 회사의 주문까지, 여러 개의 보급로를 끊임없이 전전하면서 상품을 생산한다. 각각의 주문에는 서로 다른 기준, 재료, 노동이 요구된다. 이 공장이 하는 일은 산업적 조율을 공급사슬의 복잡한 리듬에 맞추는 것이었다.  - P60

공장을 벗어나 예측 불가능한 야생 산물 채집을 관찰해보면 리듬은 더욱 배가된다. 다운율의 배치와 산업 과정을 조율하는 활동은 수익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주변부일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 P60

2 협력으로서의 오염
나는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원했지만,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
-마이 넹 모우아Mai Neng Moua, 「메콩강으로 가는 길에

어떻게 모임은 그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사건‘
이 되는가? 한 가지 답은 오염이다. 우리는 마주침을 통해 오염된다. 우리가 다른 존재들에게 길을 열어줌에 따라 마주침이 우리 존재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오염을 통해 세계만들기 프로젝트가변화하면 상호적인 세계와 새로운 방향이 창발할 수도 있다. - P63

모든 존재는 오염의 역사를 수반한다. 순수성은 선택지에 없다. 불안정성을 유념하는 태도가 갖는 한 가지 장점은 상황에 맞게 변화하는것이 생존의 방식임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는 점이다. - P64

그러나 생존이란 무엇인가? 미국에서 유행하는 판타지를 살펴보면, 생존이란 항상 다른 존재와 싸워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을뜻한다.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외계 행성 이야기에 등장하는 ‘생존‘은 정복과 팽창의 동의어다. 나는 생존을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열린 마음으로 다른 의미를생각해보기 바란다. 어떤 생물종이든 살아 있기 위해서는 살기에적합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이 주장하는 바다. 협력이란차이를 수용하며 일한다는 의미로, 이것은 곧 오염으로 이어진다.
협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죽는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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