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 뒤라스가 펼쳐 보이는 프랑스판 ‘부부의 세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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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런 애매한 프랑스 소설 리뷰 쓰기 너무 힘들다. 읽긴 읽었지만 뭐라 써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그러면서 역시 프랑스 소설은 나와 안 맞는군 하고 절망하게 된다.

그냥 넘어가면 하나도 기억 안 날 거 같아 일단은 무언가를 좀 남겨야겠단 생각을 한다.

그런데 무얼 남겨야 할지 생각은 안 나고 그래서 오늘 하루 집안 일 하는 중간 중간 계속 생각을 해본다. 이거 때문에 머리가 좀 복잡하니까 일단 빨리 써버리자 싶어진다. 아, 정말 웃긴다. 안 써도 되는데 난 대체 왜 이럴까...?^^

그 와중에 또 위안이 되는 건 역시나 녹색광선의 책은 너무 예뻐서 책꽂이에 자꾸 꽂아 놓고 싶게 만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등장인물은 자크/사라 부부, 루디/지나 부부, 그리고 독신이면서 이들의 절친인 다이아나 이 다섯 사람이다. 자크/사라 부부에게는 아이가 하나 있고 가정부가 휴가지에 동행을 했다. 이탈리아의 폐쇄적인 바닷가 마을로 휴가 여행을 떠나 온 이 다섯 사람은 자신들이 원하던 여유로운 휴가지에서의 일상을 향유하지는 못한다. 앞은 바다이지만 마을 뒤쪽은 높은 산이 솟아있어 바람이 불어오지 않아 더욱 심각해진 더위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고, 아침이면 일어나 친구들을 만나 바다 수영을 하고 호텔이나 각자 빌린 집에서 식사를 하고 낮잠을 잔 다음 다시 친구들을 만나 바다 수영을 하고, 또 저녁을 먹고 잠든다. 휴가지에서의 이런 일상 탈출은 평소 바라던 바일 수 있지만, 여유롭게 책 한 권 읽을 수 없을 정도의 더위가 더해지면 휴가 여행은 그야말로 권태로움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자주 떠오르는 단어가 '권태로움'이었을 정도이다. 일상을 탈출해 왔지만 다시 이어지는 지루하고 권태로운 일상, 그리고 이 젊은 부부들은 사랑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다. 사랑에 있어서도 이들이 지금 권태기를 지나고 있는 것인가 싶어진다. 




자크와 사라는 대단한 부부 싸움을 한 것은 아니지만 사소한 말다툼으로 인해 관계가 약간 서먹하고, 루디와 지나 부부는 늘상 소리 높여 싸우는 듯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 느낄 정도로 둘은 정말 세상에 다시 없는 '영원한 사랑을 하는 커플'로 비칠 정도이다. 지나는 이 곳 외에 다른 곳으로 여행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면서 루디의 제안을 거부한다. 물론 루디는 지나와 함께라면 어딘들 굿굿인, 가고픈 곳이 너무 많은 남자다. 이들의 절친인 다이아나는 이들에게 촌철살인, 금과옥조와도 같은 말을 던지는데..  

"부부가 갖고 있는 서로에 대한 지식, 아마 그게 제일 형편없는 지식일걸.(52쪽)"

이 똑똑한 사람은 심지어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옆에서 두 부부를 보기만 하고도 꿰뚫어 봤다는 거다!!!




이런 권태로운 일상에 긴장감을 조성하는 두 가지의 사건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마을 뒷산에서 최근 일어났던 전쟁(제2차 세계대전) 중 매설됐던 지뢰 제거 작업을 하던 젊은 청년이 지뢰 폭발로 폭사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멀리에서 부랴부랴 달려온 청년의 늙은 부모는 산에서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지만 사망 통지서에 사인을 미룬 채 며칠 동안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버틴다. 노 부부의 슬픔은 더위로 지친 마을의 피서객들의 마음도 슬픔 속에 잠기게 만든다. 폭사한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비누상자에 담아두고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기까지의 시간은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의 생각과 대비된다. 다시 이 바닷가 마을에 멋진 보트를 모는, 햇볕에 그을린 멋진 몸을 가진 낯선 남자가 등장한다. 이 남자는 자신에 대한 말을 삼간 채 누구나 한번쯤 타보고 싶어하는 역시 멋진 보트를 몰면서 바다 위를 유유히 지나다닌다. 그의 마른 듯 그을린 몸도 멋지고 요트를 타는 모습도 멋지니 이 권태로운 일상에 파문이 일고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이 남자가 사라를 욕망하면서 자크와 묘한 삼각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또 다른 긴장감을 조성하는 요인이 된다. 여기서 정말정말 이해 안되지만 사라와 장이 어울리면서 섹스에까지 이르는데 자크는 이것을 알면서 지켜보기만 한다는 거다. 아, 정말 이 부부 대체 뭔가 싶어진다. 그러면서 잠시 그곳을 벗어난 짧은 여행을 계획하고(타키니아의 말들을 보러 가는 여행), 심지어 나중에는 그 남자 장을 마음에 들어하기까지 하면서 자신이 혼자 여행을 가면 사라와 같이 밤을 보낼 사람이니 당연히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며 사라가 낮잠을 자러 간 사이에 호텔에서 두 사람만의 대화를 하기에 이른다. 아 놔 진짜...




결론적으로 말하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권태로운 일상에 자크와 사라 부부가 말다툼을 하면서 소원해진 관계가 낯선 남자로 인하여 긴장감을 조성하게 되고 화해를 하게 되는 과정이 더해지고, 노 부부가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사망 통지서에 사인을 함으로써 마을 전체에 드리웠던 우울한 슬픔의 기운이 걷혀가는 일련의 과정들에서 뒤라스는 남녀 간의 사랑과 우정을, 모성애와 인류애 등의 사랑의 형태의 다양성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크는 사라와의 사랑의 권태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으로 루디가 제안한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보러 떠나는 여행을 제안하였는데, 자크는 사라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원하는 거 같았다. 그러므로 자크에게 있어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이 그려진 벽화를 보러 간다는 것은 그들 사랑의 이상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라는 낯선 남자 '장(Jean)'과의 관계를 더 이상 이어가지 않기로 하고,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보러 가자는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자크와의 사랑에 다시 한 번 다가가려고 했으니까 말이다. 




이 작품은 많은 부분을 대화에 의지하여 스토리가 전개가 되는데 친구들 간에 이루어지는 대화의 방식이 우리와는 사뭇 다른 것이 너무도 이질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몰론 부부간의 대화도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많이 있었고. 이건 뭐 나의 꼰대력을 시험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였으니까. 그렇지만 뒤라스가 이 대화들을 통하여 제시한 사랑의 정의 내지는 사랑의 본성이라고 할 문장들은 꽤 신선하고 의미있게 다가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라면, 강 건너의 무도회장에서 사라를 기다리는 장에게 루디를 가게하고 기다리는 사라는 오지 않을 것임을 말하라고 하는데 그 장면에서 루디가 사라에게 이런 말들을 한다.


"사랑엔 휴가가 없어.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 것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랑엔 휴가가 없어. ... 삶이 아름다움과 구질구질함과 권태를 끌어안듯, 사랑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어." (315쪽)  




아차차... 이 작품에 주구장창 참 열심히도 등장하는 '캄파리'라고 하는... 작품 속에선 식전주(아페리티프)로서 쓴 맛이 나는 칵테일로 나오던데 그것이 궁금하여 검색을 해봤다. 

"캄파리는 아페리티프로 간주되는 이탈리아의 술로, 허브와 과일(치노토, 카스카릴라)을 알콜과 물에 우려내서 얻는다. 쓴 맛이 나며 어두운 빨간색이 특징이다. 1860년 이탈리아 노바라의 가스파레 캄파리에 의해 발명되었다"(위키백과 참조)고 한다. 작품에서도 쓴 맛이 나는데 자꾸 마시다 보니 좋아하게 된다고 낯선 남자 장(Jean)이 말한다. 주인공들이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마셔 대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색깔도 붉은 색이라 잔에 따랐을 때 정말 예뻐서 누군가 그걸 마시고 있는 걸 본다면 나도 한 번쯤 마셔보고 싶은 생각이 들거 같다. 술에는 한없이 약하기만 한 나는 결코 느껴보지 못할 세계이리라..... 무지 아쉽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말했다.
"몇 해 전부터 난 밤이면 더러 다른 남자를 꿈꿔."
"알아, 나 역시 다른 여자를 꿈꿔."
"어찌해야 할까?"
"세상의 어떤 사랑도 사랑을 대신할 순 없어, 그건 어쩔 도리가 없는 거야."
"정말 어쩔 도리가 없을까,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가서 자." - P236

루디는 말을 이었다. "어쩌면 오래된 사랑이 우리를 그렇게 악의적으로 만드는 건지도 몰라. 위대한 사랑의 황금 감옥 말이야. 사랑보다 우리를 더 옥죄는 감옥은 없지. 그렇게 오랜 세월 갇혀 있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선량한 사람까지 악의적인 사람이 돼 버려."
사라는 말했다. "그런 것 같아." 그녀는 잠시 사이를 두고 덧붙였다. "그래도 넌 날 사랑해야 돼, 난 최소한 내가 악의적인 걸 알고 있으니까."
루디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아, 귀여운 사라, 난 널 영원히 사랑할 거야." - P295

그는 말했다. "사랑엔 휴가가 없어.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 것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랑엔 휴가가 없어."
그는 강물을 마주한 채 그녀를 보지 않고 말했다.
"그게 사랑이야. 삶이 아름다움과 구질구질함과 권태를 끌어안듯, 사랑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어." - P315

그는 드러누운 뒤 불을 껐다.
"당신은 뭐했어?"
"아무것도. 그저 포도주 한잔씩 했어."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래서, 그 친구는 갔어?"
"응"
그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
"바람피우고 싶지 않아?"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지."
... ...
"왜 나한테 바람피우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거야?"
"글쎄" 가끔은 당신한테 진실을 얘기하고 싶은가 보지."

...이것이 자크와 사라 부부 간의 대화라구???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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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자 2023-12-02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사람들이 얽인 연애와 사랑 이야기가 포함된 프랑스 소설... 그 뭔가 그 특유의 ..그거.... 리뷰로 쓰기 감도 안오는데 은하수님 후기 너무 좋아요!!

은하수 2023-12-02 09:14   좋아요 1 | URL
달자남, 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전 저런 프랑스식 연애, 사랑 어렵더라구요. 지난번 읽었던 사강의 <패배의신호>도 그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