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작가의 단편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2

















7 편의 단편 중 6편을 읽고 마지막 한 편만 남겨 놓았다.

「답신」, 「 파종」, 「 이모에게」의 세 개의 단편에서는 사랑으로 기꺼이 돌봄을 자청한 행위의 소중함을 보여주었다.

언니가 나이어린 여동생을 , 혹은 이모가 조카를, 오빠가 여동생을, 삼촌이 조카를 돌보고 이별을 하고 상실을 극복해 가는 과정들이 잔잔하지만 감동적인 드라마처럼 다가온다.

다른 두 단편도 가슴이 얼얼했지만, 그 중 가장 기억하고 싶은 작품은 「답신」이다.



「답신」은 수감 생활을 하게 되면서 만나지 못하게 된 어린 조카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나'의 편지는 어린 조카에게 전해지지 않을 것이지만 편지 속에서는 나와 너가 왜 만날 수 없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나의 언니인 너의 엄마와 나의 관계가 왜 이렇게 파탄에 이르렀는지를 회상하면서 담담한 필치로 그려진다. 

나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엄마를 기다리는 언니와 고모할머니의 손에 길러졌다. 그리고 가부장적이고 무심함으로 일관하다가 때로는 정서적, 언어적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란 사람. 가수 흉내를 내는 여덟 살 딸에게 "천박하다"고 말하고, 미스 코리아 대회 놀이를 하던 날에는 "고급 창녀"가 되고 싶은 거냐고 말하던 아버지란 사람의 존재는 차라리 재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등학교에 들어간 언니가 아르바이트를 해선 번 돈으로 나에게 용돈을 주고 파카를 사주었을 때 "나는 내가 추위를 심하게 타는 편이 아니라 단지 그 전에 충분히 따뜻한 옷을 입지 못했을 뿐이라는 걸 알았"(134쪽)고 그런 언니가 학교 선생과 관계를 맺는 것을 목격하고  임신을 한 언니가 그 선생과 결혼을 하지만 불편하고 부당한 학대와 대우를 받으면서도 점점 그 관계에 순응하며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 상황을 참지 못하고 형부에게 폭력을 행사한 죄로 재판을 받는 '나'를 앞에 두고도 언니가 '남편은 자신을 때리지 않았다'고, "동생에게는 증오가... 제 남편에 대한 이유모를 증오가 있었"다고 말하고, "폭력적인 성향이 있었"다는 거짓 증언을 하고, '나'는 그런 언니를 더는 바라볼 수가 없어 체념을 하게 되고, 이런 나에게 변호인은 그가 언니를 때렸다는 내 말을 믿고 있었으며 "여자 피고인들이 사실이 아닌 불리한 증언을 부정하지 않고 자포자기하듯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이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벌주려는 짓은 더는 하지 말라고" 말한다. 



담담하게 서술이 되었다고 말했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읽으면서 가슴에서 불이 나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한 명도 없지 않을까 싶어진다. 수감 생활을 하는 중에 어쩌면 언니가 면회를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기도 했지만 언니는 한번도 오지 않았고 그 이후로 오랫동안 언니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런 언니에게 분노를 느끼지만 결국 나는 언니가 어린 나를 돌보고 용돈을 주고 도식락을 싸 주고, 파카를 사서 주고 나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종일 서서 일했던 그 시간들이 사랑이 아니었다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일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으로 언니를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바로 '답신'이라고 지은 제목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한번도 면회를 오지 않은 언니이지만 수감 생활 중에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당연히 언니가 아니었을까. 그것이 분노의 마음이었든 사랑, 애증의 마음이었든 언니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미움, 사랑, 희망의 마음이 모두 드러나는, 그리고 폭력적인 상황에 놓여있을 언니가 그렇더라도 그 시기를 잘 이겨내고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해도 사실은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 노출이 되어 있지만 이 시간도 나의 언니인 '너'의 엄마와의 시간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나'의 언니와 너의 시간들이 결국에는 보상을, 결국 행복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세지를 담은 '답신'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한편으론 보내지 못할 편지이지만 언니가 어린 나를 돌보고 사랑을 주었던 그 시간들처럼 조카를 사랑했던 '나'의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자신에게 이해시킴으로써 그 시간들과 화해의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 너와 그런 식으로 대화하곤 했어. 내가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다고 말하면 너는 왜냐고 물어. 그럼 나는 내가 너희 아빠에게 심한 폭력을 저질러서 너희 가족에게 절연당했다고 답하지. 왜? 다시 묻는 너에게 나는 답해. 너희 아빠가 내 언니를 괴롭히는 걸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고, 그에게 경고하고도 싶었다고. 너는 내게 다시 왜냐고 물어. 나는 답하지. 사랑하는 언니를 보호하고 싶어서, 언니가 그렇게 함부로 다루어져서는 안 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그렇게라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고. 너는 왜냐고 물어. 나는 대답해. 때때로 사랑은 사람을 견디지 못하게 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게 하니가. 왜? 너는 말간 얼굴로 내게 다시 묻지. 그럼 나는 답해.

   나도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이모는 그러니까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만날 수 없게 된 거네. 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지. 그래, 맞아. 네 말이 맞아. 어느덧 나와 너는 얼굴을 마주보고서 웃고 있어. (177 ~178쪽)



   나는 영원히 널 사랑할 거야. 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결국 찢어버릴 편지를 쓰는 마음이라는 것도 세상에는 존재하는구나.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는 이 편지를 없애려 해.

   나는 너를 보며 나를, 언니를 바라봤었지. 그리고 사랑했어. 네가 내 언니의 자식이기 때문에, 내가 마음껏 좋아할 수 없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토록 사랑했던 언니의 아이이기 때문에. 나는 네가 항상 안전하기를, 너에게 맞는 행복을 누리기를 바랐어. 비록 우리가 서로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한 채로 스쳐지나갈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와 함께했던 시간을, 그리고 함께 할 수 없었던 시간조차도 마음 아프지만 고마워할 수 있었어.

   오늘은 5월의 따뜻하고 맑은 날, 너의 생일이야. 너의 스물세번째 생일을 축하해.   

   너의 이모가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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