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앱으로 북플이 안되는게 이렇게 우울할 일인가 싶은데 역시 나는 컴보단 모바일이 익숙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굉장히 무지 상당히 기분 나쁘게 불편하다. 주말이라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별거 아닌 일일 수 있는 사소한 트러블이 나에겐 그렇지 않다는 것에 화가 난다.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말은 듣고 싶지도 않다. 사실 얼마 전에도 북플 앱에서 독서 통계가 한동안 뜨지 않고 먹통이었었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불안감을 안고 있었는데 어제와 오늘은 정말 그에 비하면 대형 사고다! 과연 알라딘은 월요일에 이 사태에 대해 뭐라고 할지... 은근슬쩍 그냥 북플이 아무일 없이 재부팅되는건 아니겠지???
그래도 책은 읽어야지...
어젯 밤 늦게 갑자기 너무 오랜만에 밀*의 서재에 들어가보게 되었다. 너무 오랜만이었는데 아이디, 비번이 그대로 맞네...하핫... 알라딘에서 봐도 되는데 너무 빈정이 상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곳을 기웃거리게 되더라는.
버지니아 울프를 읽으면서 궁금했던 비타 색빌웨스트의 책을 얼마 전 흄세에서 보고 꼭 읽어보리라 했었는데 밀*의 서재에서 눈에 뜨길래 바로 한 달 무료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사라진 모든 열정>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주인공인 슬레인 백작 부인은 88세의 노부인이며, 남편인 헨리 슬레인 벡작이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게 되었다. 평생을 백작부인으로서 순종적이면서 헌신적인 내조를 했던 백작 부인은 자식들이 모시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의 남은 인생은 스스로 결정할 것이며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할 것이라고 자식들에게 말한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이제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한다면 언제 하겠느냐면서!!! 그래서 그녀가 살고 싶은 곳이 어디인가 하면 바로 런던 북부의 '햄프스테드'이다. 지금은 런던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있어서 부촌으로 통하는 곳인데 그 당시에는 외진 곳이었다고 한다. 살고 싶은 집도 이미 보아두었는데 그것이 무려 30 년 전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큰딸 캐리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어머니, 어머니는 햄프스테드에 가신 적이 없잖아요."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캐리는 적어도 지난 15년 동안 어머니의 매일매일,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았기에 어머니가 자기 모르게 햄프스테드에 간 적이 있다는 말에 발끈했다. 독립성을 내보이는 그런 암시는 너무 충격적이었고, 거의 선언이었다. 슬레인 백작 부인과 큰딸은 늘 친밀한 관계를 지속했다. 그날의 일과를 늘 함께 짰다. (92/503)
용납할 수 없다, 독립성을 내보이는 그런 암시는 너무 충격적이었고, 거의 선언이었다는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나는 더 충격적이다...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서두... 거기다 88 세라는 백작 부인의 나이를 생각하면 전혀 모르는 곳에서 홀로 여생을 살겠다는 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자식이 과연 몇이나 될까마는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주인공인 백작 부인은 30년 전 보아두었던 햄프스테드의 그 셋집을 보러 기차를 타고 몇 개의 역을 거쳐 그곳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것도 홀로... 88 세이지만 우아하고 아름다운 노부인은 언뜻 보면 70세 안팎으로 설정되어 있다. 여러 작품에서 보아왔던 비타 색빌웨스트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이기도 하고, 88 세여도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에 기꺼이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도 몇 개 남겨본다.
"천천히 스러지기 위해서... 가만히 존재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였으니..."
문장이 너무 아름다운 거 아닙니까......!
그 집은 사실 수년 동안 그곳에 거주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30년 전 슬레인 백작 부인이 처음 집을 본 이후 평범한(당사자들의 눈에는 충분히 파란만장했겠지만 별다른 기록 없이 보편적인 생애의 바닷속으로 합쳐 들어갈 만큼 평범한) 인간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조용한 노부부가 딱 한 번 세를 들었을 뿐이었다.
나름의 파란만장한 삶을 뒤로한 채 떠난 조용한 노부부. 그곳에 온 이유는 천천히 스러지기 위해서, 가만히 존재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였으니 그렇게 스러졌고, 그렇게 빠져나갔다. (130/503)
<4월의 유혹>은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의 작품으로 이 책도 얼마 전에 읽었다. 이 작품에서도 햄프스테드가 처음부터 등장한다. 물론 주인공들이 햇살이 찬란하고 꽃들이 화려한 이탈리아 제노바 근처 산 살바토레의 작은 성에서 한 달의 시간 동안 어떤 아름다운 변화를 맞는지가 주된 줄거리이지만, 영국 런던의 햄프스테드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이 언뜻 기억이 난 것이다.
그 일은 2월 어느 오후 런던의 한 여성 클럽에서 시작됐다. 불편한 모임이었고 끔찍한 오후였다. 윌킨스 부인은 햄프스테드에서 쇼핑하러 왔다가 클럽에서 점심을 먹은 뒤 우연히 흡연실 테이블 위에 놓인 <타임스>를 보았고, 아무 생각없이 '고민 상담 코너'를 훑어보다 다음과 같은 내용의 광고를 보게 되었다.(7쪽)
윌킨스 부인이 사는 곳이 햄프스테드이고 이 책이 출간된 1922년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불과 4년이 지난 시점이라 지금의 햄프스테드와는 달리 외지고 런던 북부이지만 런던이라고 말하기도 힘들 정도였을 것이다. 그녀의 궁핍하고 곤궁한 삶과는 다른 시간을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탈리아의 작은 성에서 살아보기 할 수 있다는 유혹은 얼마나 짜릿하고 황홀했을까!
아무튼 이 두 작품의 배경이 되는 햄프스테드는 작품 속에서는 외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이 두 작품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은... 이 지역이 무려 런던 북부의 부자 동네라는 것과 우리의 손흥민 선수의 집이 있는 곳이라는 점인데... 손흥민 선수의 옆 집에 살아보려면 월세가 무려 6,700만 원이라니... 실화냐구욧!!!
햄프스테드 히쓰라는 공원이 둘러싸고 있는데 차라리 울창한 숲이라고 하는 표현이 더 어울리고 런던 시민들이 공원을 거닐고 연못에서 수영도 즐기고 피크닉을 오는 곳이라고 하니 사랑받는 지역임은 분명하다.
아, 그러고보니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의 영화 <노팅 힐>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내 자신이 그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하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지만 - 왜냐하면 나와의 갭이 너무 크고..., 지금 우리 동네도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이름도 만만치 않다. '양지'니까^^ - 영국 런던을 여행한다면 굳이 찾아가 볼 거 같다.
프라하와 비엔나... 다시 가보고 싶다.
나머지 네 도시는 언젠가 갈 수 있겠지만 사진과 글로도 이미 멋진 도시일 것이다.
조성관 작가의 책에서 궁금한 햄프스테드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도서관에 가서 빌려봐야겠다!
햄프스테드... 가보지도 않았는데 어느 새 익숙한 장소가 되어간다. 그래도 좋다~~~^^
어느 책엔가에서 또 만날 거 같다. 기분 좋은 기다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