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 부는 사람 - 모든 존재를 향한 높고 우아한 너그러움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답고도 놀라운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너무 아쉬워서 천천히 아껴먹듯 읽었는데도 그렇게 되었다.

마지막 장은 '겨울의 순간들'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앞 세 개의 장에서는 봄과 여름의 계절이 주는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움, 그리고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들에 대한 에세이였다. 

마지막 장은 겨울에서 끝맺음을 하고 싶었나보다.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다는 프로빈스 타운의 바다와 숲을 해가 뜨기도 전인 이른 아침 걸으며 자연을 찬양하고 교감하면서 아름다운 시를 쓰고 소박하게 살아간다고 스스로 글에서 밝히고 있다. 자연이 주는 기쁨과 경이로움을 사랑하던 시인이 살던 마을도 사람들이 몰려들고 관광객이 붐비는 곳으로 점점 변해간 듯 하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계가 없었다면 시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환경론자들의 말에 딱히 반박하지는 않지만 자신은 환경론자는 아니라고 고백한다.

 "나에게 숲으로 들어가는 문은 신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나는 나무들 아래를, 창백한 모래언덕을 걸으며 점점 더 환희에 빠져들고 이 환희를 글로 찬양한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보고 그걸 맹목적으로 사랑한다. "(144)


  "내가 만일 환경에 대해 생각한다면 환경운동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전체를, 우리의 필요와 잘못된 행동의 연결망이나 우리 삶과 다른 모든 존재의 삶의 상호관계를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나는 눈만 뜨면 산책을 나가고 흔한 식물의 뿌리나 꽃잎에 발이 걸려 넘어져 마치 투시력이라도 생긴 듯 그것을 상징적인 존재로 볼 뿐이다."(145)


'겨울의 순간들'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6시간 동안 바다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었는데,

문장 하나하나의 묘사가 너무 아름답고 어쩜 그리 딱 맞아 떨어지듯 표현을 해놓았던지 여러 번 다시 읽어보아도 결코 지루해지거나 식상하지 않아서 놀랍다. 단아하고 아름다운 글씨체를 가지고 있었다면 필사노트에 천천히 쓰면서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이른 시각에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세상의 거대하고 긴박한 어둠 속에서 출발한다.
집은 무척이나 춥다. 겨울은 향로를 흔들며 마을을 돌아다니지만, 그 향로에서는 연기나 향내는 나오지 않고 소금과 눈의 불쾌한 쇳소리 같은 솔직함만 나온다. 나는 어둠 속에서 옷을 입고 서둘러 나간다. 잠이 덜 깬 개들이 몇 발짝 따라오다가 사라진다. 물이 차갑고 단단한 모래에 활기차게 부딪친다. 나는 그것이 바다가 말하는 언어라도 되는 양 귀 기울여 듣는다. 하늘엔 별도 없고 달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밀물이 들어오는 걸 알 수 있다. 바다가 노래하듯 말하고, 가로등과 부두의 주황색 불빛 덕에 조금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가 가느다란 은빛 줄무늬가 들어간 검정 레이스를 흔들어 과시한다.(138)

여러 해 동안 나는 밀물 때면 이른 시각에나 늦은 때나 거의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다른 세계로 갔다. 내가 ‘소나무‘라고 할 때 독자들이 상상하는 건 ‘리기다소나무‘ 또는 ‘방크스소나무‘라고 불리는 우리 마을의 소나무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 소나무는 수수한 나무로, 꾸불꾸불하고 향이 좋다. 해풍을 견디며 살 수 있고, 크고 우람한 자태를 포기하는 대신 소중한 탄성을 얻었다 큰떡갈나무와 니사나무 역시 연못가 습한 곳에 뿌리를 내리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 숲을 수천 번은 걸었다. 숲속이 다른 어느 곳보다 심지어 우리 집보다 더 편안했다. 숲의 세계로, 풀과 오솔길로 발을 들이면 늘 안도감 같은 게 밀려 들었다. 나는 무언가에서 도피하는 게 아니었다. 기쁨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경계를 넘는 것이었다. 경계를 넘으면 세상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변했다.(140)

세상은 변한다. 이제 밤이면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폐쇄된다. 적어도 따뜻한 계절들에는 그렇다. 해가 뜨고 몇 시간이 지나야 입구를 막아놓은 차단기가 치워지고 그 전에는 숲에 들어갈 수가 없다. 1년 365일 개들은 통행이 금지되거나 목줄을 한 채 단 하나의 지정된 길로만 걸어가야 한다. 무기와 수갑을 지닌 산림 감시원들이 땅딸막한 차를 타고 모래언덕을 넘거나 꾸불꾸불한 소나무들 사이를 지난다.(142)

나는 자연계가 없었다면 시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계 없이도 시인이 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나에게 숲으로 들어가는 문은 신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나는 나무들 아래를, 창백한 모래 언덕을 걸으며 점점 더 환희에 빠져들고 이 환희를 글로 찬양한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보고 그걸 맹목적으로 사랑한다.(144)

환경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자신들과 같은 부류라고 말한다. 나는 그들의 말에 반박하진 않지만 곡 들어맞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작품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지구를 지키고, 치유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합리적이고 학식 있는 주장을 담지 않는다. 내 시는 주목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인간세계에서 시작하지도 끝나지도 않는다. 내가 만일 환경에 대해 생각한다면 환경운동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전체를, 우리의 필요와 잘못된 행동의 연결망이나 우리 삶과 다른 모든 존재의 삶의 상호 관계를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나는 눈만 뜨면 산책을 나가고 흔한 식물의 뿌리나 꽃잎에 발이 걸려 넘어져 마치 투시력이라도 생긴 듯 그것을 상징적인 존재로 볼 뿐이다. 이것은 결코 독보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며 신비주의적 성향을 지닌 모든 사람들이 간 길이라고 할 수 있다.(145)

3
폭풍은 밀물을 타고 온다. 그래서 여섯 시간 동안 우리를 향해 번쩍거리며 뒹굴며 밀려오면서 힘이 강해진다. 바람은 남남서에서 온다. 폭풍의 진로 내 취송거리(일정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의 힘에 의해 파도가 이는 거리)는 만 전체의 크기다. 이곳 항구의 바다에 거친 파도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거리다. 그런 취송거리와 바람이 밀물에 작용해 바다의 수면을 아름답고 경외롭게 만든다 구름이 얇고 바람에 질주하고 있어서 수면은 반짝거린다. 수면의 빛깔은 회색에서 강철색으로 변했다가 지독하게 번쩍거린다. 주름진 수면에 빛의 조각들이 득실거린다.(150)

바람이 때려댄다. 그럴 리가 없다. 때릴 대상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바다가 빛나는 뭉치들을 해안으로 굴려 보내고 그 뭉치들이 줄줄이 요란하게 해안에 부딪칠 때 파도의 조각들밖에는. 하지만 분명 바람이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울타리들이 삐걱 거리고 퍼덕거린다. 문간에서는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현관의 단단히 고정되지 않은 물건들이 쿵하고 떨어지거나 날아가거나 해변으로 굴러간다.(151)

하지만 헐거워지고 구르는 소리는 위와 아래, 즉 하늘과 바다에서 들리는 분출하고, 휘갈기고, 윙윙거리는 소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건 여러 층을 이룬 합창이다. 소프라노 파트는 날카롭게 소리치고, 알토 파트는 불협화음을 이루고, 걸걸한 테너와 바리톤 파트는 금관악기 음을 던진다. 베이스 파트는 거대한 검은 입술을 O자 모양으로 오므리고 그저 쉼 없이 숨을 내쉬기만 한다. 어둡고, 흰수염을 기르고 있으며, 해변으로 올라와 우리를 향해 다가오면서 모래를 잔뜩 머금은 파도의 대열은 결코 서두르지도 주저하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몇 시간 동안 여전히 경외롭고 여전히 아름답다.(151)

이제 만조에 가갑다. 작고 푸른 배 한 척이 나타나 방파제에 부딪친다. 애처로운 광경이다. 충돌을 피하려고 애쓰고 파도가 방파제로 거칠게 밀어젖힐 때마다 움찔거리는 듯한 그 배는 무생물이라고 믿기가 어렵다. 뱃머리가 도망이라도 치려는 듯 자꾸만 맴돈다. 배는 물에 잠겼고 희망이 없다.(152)

이윽고 절정에, 만조에 이른 바다가 방파제를 넘어 마당으로 날아든다. 넓은 주름들이 차르르 벌어지는 길고 거대한 은빛 휘장 같은 파도가 높이 솟아 밝은 주름 장식을 흔들며 방파제를 넘는다. 파고에 모래가 잔뜩 실려 있어서 마당으로 넘어온 파도가 사라질 때마다 마당은 새로운 모습이 된다. 파도가 마당에 퍼지며 모든 역사(발자국들, 개의 자취들, 쓰레기들)를 지우고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모래알들이 마당을 덮는다.(152)

그렇게 여섯 시간째에 바다가 도착해서, 장미들을 흠뻑 적시고 데크에 물보라를 뿌린 후 이렇게 말한다. "이번엔 아냐." 파도는 여전히 울부짖지만 그 무시무시한 울부짖음은 점점 약해지고 썰물이 시작된다.(152)

4
그렇게 폭풍은 지나갔다. 그 폭풍은.(153)

이제 겨울이.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겨울이 물러가기 시작한다. 그동안 무엇이 결정되고 선택되고 확실히 해결되었을까? 세월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사건들은 지나가고. 세상은 변하고, 상처는 희미해지고, 행운은 찾아왔다가 사라졌다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다.(156)

이제 초록 바다가 푸른 봄의 빛깔을 띠고 봄의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지치고 졸린 겨울은 긴긴 밤에 천천히 달을 윤나게 닦고 북쪽으로 물러난다. 겨울의 몸이 줄어간다. 녹아간다. 해묵은 수수께끼 뭉치가 또 한 해 풀리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157)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나리자 2023-01-30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는 시인의 에세이인가 봅니다. 인용하신 문장의 ‘숲으로 들어가는 문은 신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고 했을 만큼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이군요. 덕분에 한 사람의 시인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은하수님.^^ 따뜻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은하수 2023-01-30 19:43   좋아요 1 | URL
모나리자님도 얼른 메리 올리버의 시 세계로 들어가 보시길 바랍니다~~
시구 한 글자, 한 글자 너무 좋았어요 저도 이렇게 찬탄을 받는 작가 사실 한발짝 물러서서 기다렸다 보는 편인데... 아니예요
그럼 안되는 거였어요
작가자신은 환경론자 아니라는데 그게 역설적이게도 더 환경보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려요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