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미술관>
꼭 봐야 할 작품
별이 떠 있는 밤하늘처럼 보이는 공간에 붉은 하트 모양이 매력적이라 한참 보았습니다. 가까이서 하트는 심장으로 보이고 물감이 거칠게 쌓여있는 모습이 지금이라도 살아서 두근댈 것만 같아요. 무언가 묵직한 느낌이 가슴을짓눌렀습니다. 이런 무게감 넘치는 그림에 사연이 없을 리없겠죠. 김환기 화백의 부인 김향안은 <성심>을 그릴 때의김환기 화백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환기는 미칠 듯 괴로워하며 울며 성심을 그렸다."
*김환기, 성심, 1957 - P20
아마 누구라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보았을 작품, <어디서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1970년 한국미술대상전의 대상 수상작입니다. 마치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무수한 점들로 메운 작품은 당시 미술계에 큰 충격과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사연을 알고 보면 감동은 배가 되는데요, 김환기화백은 뉴욕에서의 생활 중 30년 지기인 시인 김광섭의부고를 듣습니다. 이에 김환기 화백은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한점, 한점에 담아 찍어 그림을 그리고, 그렇게 완성한 전면점화가 바로 이 작품인 것입니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 P22
몇 해 전, 김환기 화백의 <우주>가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최고가인 132억 원에 낙찰되어 신문과 뉴스를 도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곳, 환기미술관에 대한 관심도 더욱높아졌습니다. 저 또한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환기미술관에 관해 이야기했을 정도니까요. 당시 인터넷 기사의 한흥미로운 댓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이런 그림을 100억이나 주고 사다니", "그들만의 리그" 등의 비난이었죠. 물론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그 심정도 충분히 이해되긴 합니다. 저도 그림, 화가의 삶에 깊이 빠져들어 공부하기 전에는 비슷하게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김환기화백이 살아온 인생과 의지와 노력을 알게 된다면 이런 생각도 조금은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환기 화백의 이 그림을 볼 수 있는 전시회가 무료로 열리고 있다. 인터파크 예매 필수!
화중서가(畵中抒歌) 환기의 노래, 그림이 되다 https://mobileticket.interpark.com/goods/22013787?app_tapbar_state=hide - P24
한국을 떠나서야 느낀 고국의 그림, 떠나보니 더 잘 느껴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한국적인 정서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일까요. 그의 50년대 작품에는 특유의 소재가 반복적으로 사용됩니다. 백자, 청자, 전통 기물, 산과 달, 구름과나무가 그것이죠. 그의 그림 속 자연은 한국의 자연이었습니다. 동서양의 융합이었죠. <매화와 항아리>에서 풍기는매화의 향기는 한국의 매화향입니다. 알아볼 수 있는 형태와 알아볼 수 없는 형태가 함께 표현되어 있죠. 이런 그림을 ‘반추상‘이라 합니다. 당시 그의 스타일이었죠. 신비로운 푸른색을 의미하는 ‘환기 블루‘라는 말도 이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 P33
이후 김환기 화백은 마치 우주에 아로새겨진 무수한 그리움의 별을 나타낸 듯한 전면점화를 다수 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열정을 온전히 소화하기에는 이미 너무노쇠한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하루에 10시간이 넘게고개를 숙이고 작업을 한 결과 디스크가 심해지고, 또 다른 부분의 건강도 그리 좋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1974년7월 7일에 뇌출혈로 쓰러지고 맙니다. 수술을 받았지만결국 7월 25일 뉴욕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지요. 캔버스에 새겨둔 무수한 별빛을 향해 그가 떠난 때는 향년 61세였습니다. - P37
이후 홀로 남은 김향안은 30년간 김환기의 그림을 비롯한 모든 예술관을 정리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전시를열며 그의 작품을 꾸준히 알렸고, 부암동에 환기미술관도설립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해외에 가지 않아도 세계에서 인정받는 작품을 언제든 볼 수 있게 되었죠. 또 김향안은 접어두었던 화가의 꿈도 다시 펼치게 됐는데요, 그녀가 남긴 작품은 미술관에 함께 있는 수향산방에서 볼 수있습니다.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던 부부는 이제 밤하늘의무수한 별 중 한 쌍이 되었으리라 믿어봅니다.
*환기미술관과 수향산방은 날이 좋을 때 딸과 가기로 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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