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 옥루몽 1 - 대한민국 대표 고전소설
남영로 지음, 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그 어느 일요일엔가 집구석 이쪽 구석에서 저쪽 구석으로 이리저리 뒹구부르며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무슨 달인인지 영웅인지에 등극하기 위한 최종 라운드의 고난이도 주관식 문제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출제된 것이었다. 청나라 사람 조설근이 지은 장편소설로 흔히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와 더불어 중국 4대 기서로 꼽히기도 하는 이 소설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나는 외쳤다. (사실 자신이 없어서 목청껏 외치지는 못했고 그냥 옆사람에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옥루몽!!큰소리로 외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었다. 답은 홍루몽!!이었다. 그래도 두글자는 맞았다.


이건 잠시 삼천포로 빠지는 여담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언제부터인지 퀴즈프로가 유행이다. 생각해보건데,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지 반드시 정확한 답은 있게 마련이고, 자신이 제시한 답이 맞든지 틀리든지 양단 순식간에 속시원하게 결판이 나고, 또 누구라도 그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할 수 밖에 없으며 - 자기 무식을 탓해야지, 구질지리하게 누굴 탓하겠는가 - 프로를 시청하는 인사에게는 은연중에 자신의 유식을 자랑할 기회를 주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프로를 보면서 우리의 교양이 그럭저럭 자라고 있다는 위안 정도는 받을 수 있으니 퀴즈프로라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고 또 매력이 있다고 할 만한 것이다.


본인은 최근에야 홍루몽은 중국소설이고 옥루몽은 우리나라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았는데, 눈을 살포시 감고 입속으로 가만히 ‘홍루몽’이니 ‘옥루몽’이니 ‘옥련몽’이니 하는 몽몽하고 꿈같은 단어들을 중얼거려보면 이 소설들은 기어코 변태들의 변태스러운 애정행각을 그린 야리꿀꿀한 초절정사정 야설이어야만 할 것 같고, 같은데, 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성진이 팔선녀를 이처육첩으로 삼아 거느리고 희희낙락하며 살다가 문득 인생의 허망을 깨닫게 되어 불문에나 혹은 도가에나 귀의하게 된다는 그런 허황한 - 구름타고 바람잡는, 이슬먹고 실똥싸는 - 소설인 것도 같고, 같기만 한데, 혹자는 고딩 국어시간에 그 소설들의 정체에 대하여 이미 배웠다고도 하지만 본인의 어두운 이목에는 금시에 초견 초문인 것만 같으니 글하는 자로 실로 그 부끄러움이 태산을 가리고도 남음이 조금 있다 할 것이다.


우선 본인이 옥루몽을 고전 야설로 오해하게 된 까닭을 곰곰 생각해 보니 이렇다(그린비에서는 애정보다는 판타지 - 몽환소설 - 쪽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여하튼...) 고딩 국어시간에 배우기로 홍루몽이니 옥루몽이니 구운몽이니 하는 이른바 몽자소설들을 흔히 애정소설로도 분류하기도 하고 좀 어렵게 말하자면 염정소설이라고도 했던 것이니 - 무슨 염장지르는 소리같다. 사실 애정소설은 염장을 쑤시고 지르기도 한다 - 오해의 한 사유이기도 한데,


수호전을 보면 호랑이를 맨손을 때려잡은 무송의 형 무대는(고우영의 수호지에 의하면 그 행색이 쥐새끼 마냥 앞니만 커다랗고 눈은 쪽 찢어진 단추구멍으로 볼품이라고는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없는 한심한 인사로 등장하는데...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실 것이다) 외모와 행색이 왜소하고 보잘것 없지만 어쩌다 보니 그 마누라는 천하절색으로 얻었으니 바로 반금련이라 하고 결국 사단은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무대의 이웃에는 온갖 방중비술을 꿰고 외고 차고 있는 천하제일 제비 서문경이 살고 있었으니 사단이 발생할 것은 말하자면 명약관화 삼척동자도 알만하다 할 것이다. 수호전 중 반금련과 서문경의 그 음탕하고 야리꼬리한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이 부분만 따로 떨어져 나와 <금병매>를 이루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고딩시절 고우영 선생의 수호지를 보면서 그 에로 심심한 장면장면에 심히 민망스러웠던 기억이 금일 새롭다. 이 금병매가 후대 몽자소설에 영향을 주고 있으니 내 오해의 한 부분이 또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옥루몽을  연애소설이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야리꾸리 야설은 아닌 것이 우리의 주인공 양춘곡와 항주 기녀 강남홍이 서로를 사모하는 마음이 절절하여 드디어 달빛 교교한 어느 밤에 양인은 호상간에 그렇고 그렇게 짝짜꿍하며 애정행각을 펼쳐 보이게 되는데... (내 가만 생각해 보건덴, 이 부분에서 글을 읽는 이의 오금을 어느 정도 쥐어짜줘야만 흥미와 관심이 유발도발중에 증폭폭발될 것이고 그리하여 요강을 끌어안고 다음회를 고대원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고 그런데...) 시를 주고 받으며 형이상학적인 수작을 부리다가 그냥 운우지정을 나누었다는 것이다...형이상학적으로...니미...구름과 비가 어쨌다는 말인지...얼어죽을....<챠탈레 마님의 사랑>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고전 판타지 소설 어쩌고 저쩌고 해도 요즘 젊은이들이 읽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생각이다. 먼저 작가의 남녀의 역할이나 위상에 대한 생각이 요즘의 생각들과는 너무 거리가 있어  공감하기 난감하고, 빈번하게 등장하는 고사성어들, 한시들, 고대 중국의 역사적 사건들, 시인묵객들의 이름들이 생소하고 또 이런 것들에 대한 대한 역주가 독서의 흐름을 끊기도 하는 것이니 중국 고전에 대한 소양이 없다면 소설의 완전한 이해에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인즉 독서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쪽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러므로 독자는 이 소설을 통해서 고사성어들과 한시들을 가까이 접함으로써 한문학이나 중국학에 대한 이해와 교양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쪽이든 모두 읽는 이의 몫이다.


추신 : 양춘곡과 강남홍의 나이가 16세, 14세로 고딩 1학년에 중딩 1학년이니 우리의 어사또 이몽룡이나 열녀 성춘향과 비슷한 연배인 것 같다. 서른 넘어 장가간 본인 생각에 너무 이른 것도 같고 달리 생각해보면 마음이 움직이는 데로 몸이 따르니 한창 나이에 연애하고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강남홍이 관청에 메인 기생임에도 소주자사 황여옥의 접대요구를 거절하니 마땅히 직무유기에 해당하여 죄를 물어야 할 것이고, 내 보기에 소주자사 황여옥이 비록 호색하고 방탕하다고는 하나 기생에게 접대를 요구하는 방법이나 태도가 당시의 관습으로 볼 때 그리 부당한 것이 아님에도 강남홍이 절개와 지조 운운하는 것은 가소롭다는 생각이다. 춘향의 경우도 일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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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순경에 일주일간 수원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연수란 자기 연찬의 기회라기보다는 일종의 공인된 휴가로 생각되어 왔고 또 사실이 그러했다. 뭐 이틀에 한번 꼴로 쌍코피가 터지고 이런저런 잡다한 일로 일주일에 삼사일은 골이 또갈라지거나 아니며 짜갈라지거나 그도 아니면 빠개질려고 하는 그런 격무에 시달린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매일매일의 신경쓰이는 업무일랑 잊어버리고 교육중에 좀 졸기도 하고 여유를 좀 가져보라는 그런 의미에서 지엄하시지만 자애롭기도 하신 상(上)께옵서 하사하시는 일종의 은사랄 수도 있다. 말하자면 말이다.

해가 하늘 위든 옆이든 어쨌든 하늘 한쪽에 있는 동안에는(물론 하루분의 교육이 끝나고 말이다. 내 비록 모범적인 교육생은 아니지만 수업까지 땡땡이 칠 만큼의 배짱은 없다.) 청계천이니, 엑스코 몰(반디앤루니스도 처음 가봤다.)이니 수원 화성이니 하는 곳을 무슨 관광하듯이 돌아다녔고, 그넘의 해가 땅 아래로 떨어진 후에는 그야말로 음주로 고주망탱이가 되어 허덕허덕하다가 새벽녘에야 간산히 하숙집으로 돌아와 죽은 듯이 자빠졌던 것인데, 땅아래로 꺼져있던 그놈의 해가 다시 땅위로 솟아오를 때면 나도 이놈의 지친 몸을 어쩔수 없이 일으켜 세우지 아니할 수 없었으니, 위에 잠시 언급했듯이 소심한 본인으로서는 교육을 땡땡이 칠 정도로 간이 땡땡 붓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게 행인지 불행인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수원성에 처음 가봤다. 사진으로 보던 것하고 어떤 면에서는 비슷했고 또 어떤 면에서는 달랐다. 정조가 언제부터 계몽군주로 인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이 정조의 인기를 끌어올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만 같다. 본 소설을 둘러싼 정치적 또는 문학적 공방은 차치하고라도 역사소설이나 추리소설류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의 이목을 확 끌어당길만큼 이 책은 재미있었다. 이 책을 읽다가 정조의 돌연한 죽음 앞에서 통탄하고 탄식하지 아니한 독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뭐 없다고 해도 관계는 없다.


아버지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노론 신하들을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자신의 나라를 경영할 수 밖에 없었던 정조의 절치부심을 생각하면 그가 불쌍하기도 하고, 절대적 전제왕권의 확립을 꿈꾸며 오랜 세월을 견뎌왔던 그 인고를 생각하면 그 억장이 무섭게도 느껴진다. 어쨌든 소설은 정조의 친위 쿠데타가 거의 성공하는 듯 급박하게 클라이막스로 치닫다가 그만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정조의 죽음으로 허무하게 급강하를 하고 마는데, 그 헛되었든 그 진실되었든 어쨌든 한 사람의 꿈이 이른바 한낱 포말로 스러지고 말았던 것이니, 애닯은 마음이 없지 않다. 이 소설과 작가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은 차치하고 말이다. 수원화성을 둘러보는 동안 정조니 사도세자니, 심환지, 정약용이니 뭐 그 비슷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나 노론이니 남인이니 홍재유신이고 당쟁이고 전제군주고 뭐고 하는 그런 생각은 별로 안나고 다만 이 근처에 살면 저녁에 운동이나 산책하기에 정말 좋겠다!!는 그런 생각만 자꾸 들더라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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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6-02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하기 정말 좋아요. 여자 걸음으로 한 바퀴 돌면 걷기 운동 코스로 그만이고, 옆지기는 달리기를 한다죠. 마로는 연무대에서 뛰놀길 좋아하구요. ㅋㅋ

붉은돼지 2006-06-05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날 성을 한 바퀴 완전히 돌아 보지는 못했는데....설렁설렁 일없이 산책하거나 걷기 운동하기엔 정말 그만인것 같더군요....
 
워커홀릭 1 - 변호사 사만타, 가정부가 되다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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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재미있다. 그 내용에 대하여는 주절주절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하튼 일단은 재미있다. 재미있다는데 이단삼단사단은 어쩌고 저쩌구 구구단을 외울 필요는 없겠다. 머지 않아 곧 영화로도 나오지 싶다. 사만타 스위팅에는 누가 어울릴까. 좌충우돌 가정부 역할로는 르네 젤위거가 어울릴 것도 같은 데, 국제기업전문 엘리트 변호사라는 직책을 덮어 씌우기에는 어째 조금 난감한 것 같기도 하다. 나다니엘엔 누가 어울릴까? 가이역은 빤질빤질한 사람이 어울리겠지. (사실 가이는 사만타에게 얻어터질 정도로 질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가이로서는 나름으로 사만타를 위해 최선을 다 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조금 안된 마음도 들었다. 가이의 말대로 사만타의 가정부 생활은 일종의 휴가였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본업으로 돌아가라는 가이의 말을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정당했다.)

우리는 보통 소설을 읽을 때 소설을 소설로서 읽지 않고 사실로, 현실로 읽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논란은 항상 여기에서 싹트는 법이니, 선동자들이나 계몽주의자들이 영화나 소설을 이용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다빈치코드를 둘러싼 논란(뭐 그리 큰 논란은 아니지만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유독 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심하다는 신문보도를 본 적이 있다)을 보면서 왜 영화를 그냥 영화로 보지 못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나 뭐 그런 것들은 학자들에게나 맡겨두고 영화는 그냥 영화로 재미있게 보면 된다. 댄브라운은 저명한 성서학자가 아니다. 그냥 소설가이고 미스터리 작가일뿐이다. 


영국의 유명 로펌 엘리트 변호사의 생활이라는 것이 어떤지 나는 알지 못한다. 스캐줄이 6분 단위로 짜여져 숨쉬고 고르기 어렵고, 몇 년동안 휴가 한 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당근지사이고, 하얗게 뜬 얼굴로 며칠밤을 지새우는 것도 여사며 다반사고, 자신의 생일을 두 대의 전화기와 함께 해야 하는 일도 감내해야 하고, 모든 주말을 기꺼이 반납해야만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자리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소설에서는 그렇지만 사실은 그들의 생활이라는 것이 세계 유수의 휴양지에서 멋진 휴가를 보내기도 하고, 우리같은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산해진미로 만찬을 즐기며, 수시로 또는 때때로 이런저런 모모한 유명인사들과 사교하고,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엄청난 돈을 벌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망을 받는 그런 자리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우리의 상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후에는 어떻게 될까 책을 덮고 가만 생각해 본다. 길어야 수년, 짧으면 몇 개월만에 그들의 밀월관계는 끝날 것이다. 사만타같은 여성이 시골에서 정원사의 아내로 인생을 끝낼 수는 없는 것이다. 시골에서 자원봉사 변호사(영화 패밀리맨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제2의 삶을 살 때, 마누라 테아 레오니가 했던 그런 역할)같은 것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결국 사만타는 런던으로, 나다니엘을 콘웰로 각자 자신의 원래 위치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적한 시골에서 소박한 직업이지만 시간적으로 여유있는 삶을 살며, 가족을 위해 요리도 하고, 단추도 달고, 푸른 하늘도 눈에 담아보고 서늘한 바람도 얼굴로 맞아보며 멋진 남자와 사랑도 하며 사는 삶도 한 삶이겠고, 유명 로펌의 엘리트 변호사로 눈코가 어디갔다 붙었는지 모르게 바삐 돌아가며 수천만 파운드를 주무르고 억대의 연봉을 받으며 중요한 계약을 성사시키고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하고 선망을 한 몸에 받으며 사는 삶도 한 삶일 것인데, 역시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또 그것을 행할 능력이 자신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도 빼놓을 수 없겠다. 국제기업전문변호사가 어느날 문득 가정부가 될 수는 있겠지만, 가정부가 어느날 자고 일어나 불현듯 국제기업전문변호가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수준있는 하이틴 로맨스라는 생각도 들지만 여하튼 최근에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읽은 기억이 감감하다. 영화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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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6일 처가 식구들과 단양에 있는 대명콘도에 다녀왔다. 5일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고주망태기가 되어 쓰러져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콘도에서 바라보는 산과 계곡은 뿌연 안개에 쌓여 사뭇 운치있어 보였다. 두어 해 전에 왔을 때는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옛 선인들이 말하는 절경중에는 어디에서 바라보는 낙월(落月)이니, 일출(日出)이니 하는 것들이 꽤 있는데, 나는 이게 볼만한 유적지가 없으니, 팔경이니 삼경이니 하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끌어다 붙인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그런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단양팔경에 <비오는 날 대명콘도에서 바라보는 안개 피어나는 계곡>을 하나 더 보태 구경(九景)을 만들고 싶은 심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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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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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p15~16)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수다스런 마누라들과 사는 남편들은 모두 간암에 걸려  일찍 돌아가셔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적지않은 날들을 고주망태가 되어 보내야 할 것만 같다.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가 아니고 그냥 언어인 것이 다행스럽다.



짐에게 술통 제조 기술을 전수한 그의 스승은 하루에 위스키를 딱 두 잔씩 마셨다. 그보다 많이도 마시지 않고, 그보다 적게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는 아흔여덟까지 살았다고 한다.(p49)


       위스키를 이용한 장수비법. 비법을 잘못 시행하여 주화입마시에는 알콜중독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져 인생 종치는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보기에 이 비결의 요점은 ‘딱 두잔’에 있다. 문제는 절제에 있다는 말이다. 굳이 위스키일 필요도 없다. 와인이면 어떻고 소주면 또 어떻겠는가(소주는 좀 그런가?)



내가 위스키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까닭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낭만적인 직업이기 때문이지(p50)


       그 직업이 정말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정말 낭만적이라야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장례식에서도 위스키를 마시지”하고 아일레이 섬사람은 말한다. “묘지에서 매장이 끝나면, 모인 사람들에게 술잔을 돌리고 이 고장에서 빚은 위스키를 술잔 그득 따라주지. 모두들 그걸 단숨에 비우는 거야. 묘지에서 집까지 돌아오는 춥고 허전한 길, 몸을 덥히기 위해서 말야. 다 마시고 나면, 모두들 술잔을 바위에 던져서 깨 버려. 위스키 병도 함께 깨 버리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 그것이 관습이거든.”(p62)


       망자에 대한 슬픔의 표현이라고 해도 술병이나 술잔을 깨어 버리는 것은 조금 아깝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이 관습이라는 데에야, 뭐라 할 말이 없지. 관습은 우리가 어쩔수 있는 것이 아니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일레이 위스키의 맛을 설명할 수 없어. 그 매력은 해명할 수 없는 거지.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지. 무라카미씨, 가장 나중에 오는 건 사람이야. 여기 살고 있는 우리가 바로 아일레이 위스키의 맛을 만드는 거야(p77~p80)


       위스키의 맛을 만드는 일은 물론이고, 그 어떤 사소한 것이나 그 어떤 중차대한 것이든 그 일을 결국 이루어내는 것도 사람이지만 결국 그 일을 망치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나중에 올 수밖에 없는 까닭일 것이다.



아일랜드를 무대로 한 존 포드의 <아일랜드 연풍>이라는 영화중에서, 상대 배우가 베리 피츠제럴드에게 위스키를 권하면서 “물을 줄까”하고 물으면, “난 말이지, 물을 마시고 싶을땐 물만 마셔. 위스키를 마시고 싶을 땐 위스키만 마시지”하고 대답하는 제법 차밍한 장면이 나온다.(p93)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연풍의 뜻이 세가지로 풀이 되어 있다. 1. 연풍(連豊) : 여러 해를 계속해서 드는 풍년. 2. 연풍(軟風) : 가볍고 시원하게 부는 바람. 혹은 ‘산들바람’의 이전 일컬음. 3. 연풍(年豊) : 풍년이 듦. 그리고 장동건이 나오는 영화제목이 연풍연가인데 이 연풍(戀風)은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굳이 풀이하자면 ‘사모하는 바람(?)‘, 존포드의 영화에서 연풍의 뜻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산지에서 멀어질수록 그 술을 구성하고 있는 무언가가 조금씩 바래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흔히 말하듯이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 법이다.(p130)

       지당근하신 말씀이다. 좋은 친구와 좋은 술은 내가 직접 그들을 찾아 가야하는 법이다.



아일랜드의 딩글에 있는 한 바 벽에 걸려있는 세명의 아일랜드 문학가. 브랜단 베한, 제임스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p117의 사진)


       브랜단 베한이 누구지. 과문한 본인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았으나 없었다. 야후를 찾아보니 <인질>이라는 희곡을 쓴 아일랜드 작가라는 정도. 생몰년도는 1923-64



 

짧은 글이다. 위스키 산지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서부의 작은 섬 아일레이와 아일랜드 일대를 둘러보는 여행기이다. 읽는데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듬성듬성한 글씨에  140페이지 정도의 분량인데, 거기다가 또 50페이지 정도는 사진이다. 서점에 가서 서서 읽기 딱 좋은 책이다. 하지만 하루키의 기행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더구나 설상가상으로 이제 막 위스키에 관심을 가져 볼려고 하는 그런 사람으로서는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후회는 없지만 그렇다고 잘샀다는 생각도 없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살다보면 호오(好惡)를 떠나 어쩔수 없이 하게 되는 일도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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