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 옥루몽 1 - 대한민국 대표 고전소설
남영로 지음, 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그 어느 일요일엔가 집구석 이쪽 구석에서 저쪽 구석으로 이리저리 뒹구부르며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무슨 달인인지 영웅인지에 등극하기 위한 최종 라운드의 고난이도 주관식 문제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출제된 것이었다. 청나라 사람 조설근이 지은 장편소설로 흔히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와 더불어 중국 4대 기서로 꼽히기도 하는 이 소설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나는 외쳤다. (사실 자신이 없어서 목청껏 외치지는 못했고 그냥 옆사람에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옥루몽!!큰소리로 외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었다. 답은 홍루몽!!이었다. 그래도 두글자는 맞았다.


이건 잠시 삼천포로 빠지는 여담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언제부터인지 퀴즈프로가 유행이다. 생각해보건데,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지 반드시 정확한 답은 있게 마련이고, 자신이 제시한 답이 맞든지 틀리든지 양단 순식간에 속시원하게 결판이 나고, 또 누구라도 그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할 수 밖에 없으며 - 자기 무식을 탓해야지, 구질지리하게 누굴 탓하겠는가 - 프로를 시청하는 인사에게는 은연중에 자신의 유식을 자랑할 기회를 주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프로를 보면서 우리의 교양이 그럭저럭 자라고 있다는 위안 정도는 받을 수 있으니 퀴즈프로라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고 또 매력이 있다고 할 만한 것이다.


본인은 최근에야 홍루몽은 중국소설이고 옥루몽은 우리나라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았는데, 눈을 살포시 감고 입속으로 가만히 ‘홍루몽’이니 ‘옥루몽’이니 ‘옥련몽’이니 하는 몽몽하고 꿈같은 단어들을 중얼거려보면 이 소설들은 기어코 변태들의 변태스러운 애정행각을 그린 야리꿀꿀한 초절정사정 야설이어야만 할 것 같고, 같은데, 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성진이 팔선녀를 이처육첩으로 삼아 거느리고 희희낙락하며 살다가 문득 인생의 허망을 깨닫게 되어 불문에나 혹은 도가에나 귀의하게 된다는 그런 허황한 - 구름타고 바람잡는, 이슬먹고 실똥싸는 - 소설인 것도 같고, 같기만 한데, 혹자는 고딩 국어시간에 그 소설들의 정체에 대하여 이미 배웠다고도 하지만 본인의 어두운 이목에는 금시에 초견 초문인 것만 같으니 글하는 자로 실로 그 부끄러움이 태산을 가리고도 남음이 조금 있다 할 것이다.


우선 본인이 옥루몽을 고전 야설로 오해하게 된 까닭을 곰곰 생각해 보니 이렇다(그린비에서는 애정보다는 판타지 - 몽환소설 - 쪽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여하튼...) 고딩 국어시간에 배우기로 홍루몽이니 옥루몽이니 구운몽이니 하는 이른바 몽자소설들을 흔히 애정소설로도 분류하기도 하고 좀 어렵게 말하자면 염정소설이라고도 했던 것이니 - 무슨 염장지르는 소리같다. 사실 애정소설은 염장을 쑤시고 지르기도 한다 - 오해의 한 사유이기도 한데,


수호전을 보면 호랑이를 맨손을 때려잡은 무송의 형 무대는(고우영의 수호지에 의하면 그 행색이 쥐새끼 마냥 앞니만 커다랗고 눈은 쪽 찢어진 단추구멍으로 볼품이라고는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없는 한심한 인사로 등장하는데...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실 것이다) 외모와 행색이 왜소하고 보잘것 없지만 어쩌다 보니 그 마누라는 천하절색으로 얻었으니 바로 반금련이라 하고 결국 사단은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무대의 이웃에는 온갖 방중비술을 꿰고 외고 차고 있는 천하제일 제비 서문경이 살고 있었으니 사단이 발생할 것은 말하자면 명약관화 삼척동자도 알만하다 할 것이다. 수호전 중 반금련과 서문경의 그 음탕하고 야리꼬리한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이 부분만 따로 떨어져 나와 <금병매>를 이루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고딩시절 고우영 선생의 수호지를 보면서 그 에로 심심한 장면장면에 심히 민망스러웠던 기억이 금일 새롭다. 이 금병매가 후대 몽자소설에 영향을 주고 있으니 내 오해의 한 부분이 또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옥루몽을  연애소설이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야리꾸리 야설은 아닌 것이 우리의 주인공 양춘곡와 항주 기녀 강남홍이 서로를 사모하는 마음이 절절하여 드디어 달빛 교교한 어느 밤에 양인은 호상간에 그렇고 그렇게 짝짜꿍하며 애정행각을 펼쳐 보이게 되는데... (내 가만 생각해 보건덴, 이 부분에서 글을 읽는 이의 오금을 어느 정도 쥐어짜줘야만 흥미와 관심이 유발도발중에 증폭폭발될 것이고 그리하여 요강을 끌어안고 다음회를 고대원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고 그런데...) 시를 주고 받으며 형이상학적인 수작을 부리다가 그냥 운우지정을 나누었다는 것이다...형이상학적으로...니미...구름과 비가 어쨌다는 말인지...얼어죽을....<챠탈레 마님의 사랑>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고전 판타지 소설 어쩌고 저쩌고 해도 요즘 젊은이들이 읽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생각이다. 먼저 작가의 남녀의 역할이나 위상에 대한 생각이 요즘의 생각들과는 너무 거리가 있어  공감하기 난감하고, 빈번하게 등장하는 고사성어들, 한시들, 고대 중국의 역사적 사건들, 시인묵객들의 이름들이 생소하고 또 이런 것들에 대한 대한 역주가 독서의 흐름을 끊기도 하는 것이니 중국 고전에 대한 소양이 없다면 소설의 완전한 이해에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인즉 독서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쪽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러므로 독자는 이 소설을 통해서 고사성어들과 한시들을 가까이 접함으로써 한문학이나 중국학에 대한 이해와 교양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쪽이든 모두 읽는 이의 몫이다.


추신 : 양춘곡과 강남홍의 나이가 16세, 14세로 고딩 1학년에 중딩 1학년이니 우리의 어사또 이몽룡이나 열녀 성춘향과 비슷한 연배인 것 같다. 서른 넘어 장가간 본인 생각에 너무 이른 것도 같고 달리 생각해보면 마음이 움직이는 데로 몸이 따르니 한창 나이에 연애하고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강남홍이 관청에 메인 기생임에도 소주자사 황여옥의 접대요구를 거절하니 마땅히 직무유기에 해당하여 죄를 물어야 할 것이고, 내 보기에 소주자사 황여옥이 비록 호색하고 방탕하다고는 하나 기생에게 접대를 요구하는 방법이나 태도가 당시의 관습으로 볼 때 그리 부당한 것이 아님에도 강남홍이 절개와 지조 운운하는 것은 가소롭다는 생각이다. 춘향의 경우도 일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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