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 척하면 당근이요 두말하면 주디 아프다. 아랍이 아니라 세상 어느 곳엔들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으랴 하는 생각이다.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고 그냥 걸사라거나 혹은 돌팔이 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고명하신 소설가가 쓰신 경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 잡문도 아닌 글을 빌려 말하자면, 인간 종내기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의 어느 산골이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의 어느 산속이나, 미친 년 오줌 누듯 여덞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의 어느 골짜기는 물론이고,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쪽 끝 유리라는 동네에서도 살고 있는 것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서도,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하시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길 감원하옵나이다. 무엇을? 그 경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잡문도 아닌 그 소설말입죠...)

  

 

소생의 말인즉슨 인간이란 동서남북, 천지사방, 사방팔방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북극이나 남극은 물론이고 열사의 사막, 열대의 우림, 혹한의 시베리아 벌판에서도 질기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알타미라의 동굴 속에서도 꿍꿍거리며 살았고, 아마도 머지않은 미래에는 달나라 어느 분화구 옆에도 움막을 치고 또 낑낑거리며 살아갈 것이니 아아아아!!!! 정녕 대단할진저 인간이여!! 그 신체는 비록 미약하나 그 두뇌는 비상하고 더하여 기어이 살아내고야 말겠다는 그 욕망은 실로 거대하다. 책 제목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길다. 뭐가 주절주절 되지도 않는 이야기가 많은지 서평도 뭣도 아닌 이 잡글은 이번에도 용두사미가 될 모양이다.

 

이름도 약간 요상한 이 책의 저자인 팀 매킨토시-스미스씨는 영국 출신 성공회 신자로 예맨의 수도인 사나의 구시가지에 당나귀 시장 근처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븐바투타의 모험에 관한 삼부작은 소생은 당연히 잘 모르지만 편편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이 그 삼부작 중 하나인지는 모르겠으나 기독교 신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700년전 독실한 무슬림이었던 이븐 바투타씨가 걸었던 그 여정을 진심으로 열심히 쫓고 있다. 아랍식 인명이 조금 낯설기도 하지만 재기와 위트 넘치는 저자의 글은 읽는 재미가 있다. 탕헤르, 바그다드, 모나코, 다마스쿠스 이런 도시들은 왠지 그 이름만 들어도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긴다. 책 속에서 휭휭 모래바람이 불고 로렌스 대령이 두건을 펄럭이며 낙타를 타고 뚜벅뚜벅 걸어나올 것만 같다.(정말??) 매킨토시씨의 여정이 이븐 바투타의 모든 여정을 따른 것은 아니다. 모로코에서 시작해서 콘스탄티노플에서 끝난다. 바투타가 여러번 들렀던 메카와 메디나는 생략되어서 아쉽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삼부작 모두 출간되기를 고대한다.

 

흔히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오도릭의 <동방기행>,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세계 4대 여행기라고 한다. 14세기 초 모르코의 탕헤르에서 태어난 이븐 바투타는 21세에 세계여행의 대장정에 오른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3개 대륙에 걸쳐 장장 12km30여년간 여행했다. 13세기 베네치아출신의 상인이었던 마르코 폴로는 27년간 유럽과 아시아를 여행했다. (이중 17년은 원나라에 머물렀다.) 귀국 후에 제노바와의 전쟁에 참여했다가 포로가 되었는데 감옥에서 구술한 것을 당시 감방 동료였던 루스티첼로가 글로 옮겼다. 14세기 프란체스코회의 수도사였던 오도릭은 장장 14년간 동방여행을 했다. 오도릭의 여행기도 본인이 구술한 것을 다른 수도사가 옮긴 것이다. 8세기의 신라의 승려인 혜초는 4년 동안 인도와 중앙아시아, 아랍 지역을 여행하고 여행기를 남겼다. 혜초의 여행기는 20세기에 둔황의 막고굴 장경동에서 나온 문서더미 속에서 발견되었다. 여행기간으로 봐도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가 그중 으뜸이다. 원래 제목은 ‘여러 지방의 기사(奇事)와 여러 여로의 이적(異蹟)을 목격한 자의 보록(寶錄)이라고 한다. 지금 전해지는 바투타의 여행기는 바투타가 직접 쓴 여행기 원본이 아니라 당대의 문장가인 이븐 주자이가 요약한 것이라고 한다. 

 

 

 

 

 

 

 

 

 

 

 

 

 

<아랍, 그 곳에도...> 중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을 옮겨본다. 책 전체 분량 600여쪽 중에서 이 이야기만 기억에 남아있다. 웃기지만 나름 의미있는 에피소드다. 내용인즉슨,

 

 카이로의 어느 교통순경에 관한 실없는 이야기인데, 사막에 배치된 그 경찰관은 너무나도 절실하게 도시로 돌아가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딱지를 끊어서 자신의 능력을 증해야 했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지나가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날 한 기독교 신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오토바이의 상태는 완벽했다. 심지어 신부는 헬멧도 쓰고 있었다. 경찰관은 실망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드러운 경고를 해 주는 게 다였다.

신부님, 사막을 혼자 여행하는 게 위험하다는 거 모르십니까?”

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오.” 신부가 말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함께 하고 있다오.”

아하!!! 뭔가 있을 줄 알았어.” 경찰관은 소리를 지르며 수첩을 꺼냈다.

오토바이 한 대에 네 명 탑승. 딱 걸렸어요.”

 

딱 걸렸어요 ㅋㅋㅋㅋㅋㅋ 이슬람은 기독교를 일종의 나태한 유일신교 혹은 다신교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셋이 모여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참 요상한 이야기다. 삼위일체에 대하여는 기독교쪽에서도 수세기에 걸쳐 당대의 현자, 성인, 석학들이 논쟁해왔던 문제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서유럽의 카톨릭과 동유럽의 동방정교회는 동서 교회의 통합을 위해 오랜 기간 많은 논의를 해 왔던 바, 성찬식에서 효모가 들어있지 않은 빵의 사용 여부나 연옥의 성격 등에 대한 논쟁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바로 이 삼위일체와 관련된 것이다. 동서교회 통합에 가장 큰 걸림돌은 이른바필리오케(성자로부터도 또한, filioque)’라는 라틴어 한 단어였다. 로마의 카톨릭은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현한다고 믿었고 콘스탄티노플의 동방 정교회의 입장은 성령은 성부로부터만 발현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란 말인가? 셋이란 말인가? 하나이면서 셋이란 말인가? 셋이면서 하나란 말인가? 믿음은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니 불신자들에게는 참 오묘한 이야기다.

 

 

 

 

 

 

 

 

 

 

 

 

교회의 이단 논쟁이나 삼위일체 논쟁 등을 읽고 있으면, 유사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차자로 보위에 오른 임금이 죽자 그의 계모인 대비가 임금의 상례에 3년복을 입어야 하느냐 1년복을 입어야하느냐 어쩌고저쩌고 유혈낭자하게 싸웠던 조선시대 예송 논쟁 말이다. 모든 이론 투쟁은 그 이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구질하고 찌질하고 한 편의 코메디처럼 보이지만 그 당대의 당자들에에게 있어서는 일신일족일당의 신념과 믿음, 존망이 걸린 실로 절체절명의 중차대한 문제였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달걀 전쟁과 같은 한심하고 멍청한 짓거리라고 단순하게 웃어 넘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지름신이 강림하사 바투타 여행기 두권을 그예 또 구매하고야 말았다. 1권은 새책으로 반디에서 구입했고 2권은 중고로 알라딘에서 구매했다. 서문을 보니 이븐 바투타의 본명은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 븐 압둘라 븐 무함마드 븐 이브라힘 알 라와티'(무함마드를 오기로 두번 적은 것이 아님) 라고 한다.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어쩌고저쩌고가 생각난다. ㅎㅎㅎㅎ

 

 

여행기 2권 끝에 있는 이븐 바투타 여행로 전도다. 어마어마하다. 이건 여행이 아니고 모험이고 탐험이다.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이기가 없었고 또 당시의 치안상태 등을 감안한다면 실로 놀라운 여정이다. 연이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여정이 가능했던 까닭은 당시 14세기가 서유럽으로서는 암흑기였는지 모르겠지만 북아프리카, 중동, 동유럽, 중앙아시아, 인도까지는 거의 이슬람 세력권으로 이른바 '팍스 이슬라미카'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븐 바투타와 마르코 폴로의 여행로 전도를 비교해 놓은 것이다. 대단한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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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5-17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유명한 이븐 바투타를 영접하셨네요. ^^
이란 혹은 이라크에 이븐 바투타 백화점이 있단 얘기 들었습니다. ㅎ
방금 찾아보니 두바이에 있는 백화점 이름이었습니다. ㅋ

붉은돼지 2016-05-18 18:34   좋아요 0 | URL
영접은 했습니다만....언제 저 책들을 읽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ㅜㅜ
얼마전에 로쟈님 페이퍼를 보고 문학상 중에 `이븐 바투타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씁니다.
그때 로쟈님이 소개해주신 `한 이라크 망명 작가의 지중해 문명기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한밤의 지도>라는 책도 이번에 같이 구매했습니다.
이 책은 분량이 적어서 읽어봤는데,,제 취향도 아니고 내용도 뭐 그렇게 훌륭하다고 할 수 없더군요...

transient-guest 2016-06-16 0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븐 바투타는 2012년에 김영하의 팟캐스트에서 처음으로 소개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에 일부 잠깐 인용이 되더라구요. 작년엔가 구입했는데, 아직은 제대로 만나지를 못했네요..

붉은돼지 2016-06-16 10:49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은 책만 덜렁 사놓고 아직 시작할 엄두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