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드롬 경기장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경기장의 중앙분리대를 장식하고 있던 세 개의 기둥은 아직도 남아있다. 하나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이고, 둘은 콘스탄티누스 기둥이고, 셋은 그리스 델포이에서 가져온 청동 뱀 기둥이다.
이집트산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5세기경 만들어진 것으로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에 있던 것을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가져왔고 일정기간 방치되었다가 39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히포드롬 경기장 중앙분리대에 설치했다. 높이가 25.6미터라고 한다. 원래는 80미터가 넘는 놈인데 잘라서 윗부분만 가져왔다고 한다. 오벨리스크 각 면에는 고대 애급의 아름다운 상형문자가 무슨 부조 작품처럼 새겨져 있다. 거의 3500여년 전의 물건인데도 이렇게 깨끗하게 남아있다니 참 신기하다. 기단부의 대좌에는 사면에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부조되어있는데 이게 또 미술사적으로 유명한 것이라고 한다. 오벨리스크는 이스탄불 외에도 프랑스 파리의 콩코드 광장, 로마의 바티칸 광장,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런던의 템즈 강변, 러시아 이르크추그 등에도 있다. 워싱턴의 오빌리스크는 169미터로 현존하는 오빌리스크 중에 가장 높은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인즉슨 이집트 태생의 고대 유물은 아니고 이를 본떠 만든 현대의 건축물이다. 1885년에 초대 대통령 워싱턴을 기념해 세워졌다.
콘스탄티누스 기둥은 콘스탄티누스 7세가 할아버지 바실리우스 황제를 위하여 만든 것으로 높이가 32미터에 기둥 표면은 원래는 금박 입힌 청동으로 번쩍번쩍 반짝이 옷을 해입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옷이 벗겨져 그냥 벽돌기둥의 모습으로 조금 볼품없는 행색이다. 그 빛나던 금박 청동 옷은 1204년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침략 때 약탈자들이 모두 홀랑 벗겨갔다. 아아아!!!! 입고 있는 옷까지 벗겨갔으니 약탈이 어느 정도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무슨 특별 조치가 없으면 약탈이란 다 똑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1453년 오스만에게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정복자가 백마를 타고 당당히 입성할 때 술탄은 자신의 친위부대를 미리 보내어 병사들이 아야 소피아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3일간에 걸친 무차별적인 약탈은 술탄이 병사들에게 승인한 권리였지만 아야소피아는 술탄의 몫이엇던 것이다.
배배꼬이고 끝 부분이 잘린 청동 기둥은 보기에는 볼품이 없다.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게 또 오래고 고귀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물건이다. 원래 높이는 8미터였으나 손상된 현재 높이는 5.5미터다. 이 뱀기둥은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전쟁의 승전기념물로 델피 아폴론 신전에 세웠던 것인데, 콘스탄티누스가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면서 집들이 기념품으로 차출하게 된다. 청동뱀 아래 쪽에는 페르시아 전쟁 때 병력과 예산을 지원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이름이 아직도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고 하는데 아둔한 소생은 몰라서 보지 못햇다. 원래의 모양은 세 마리 뱀이 서로 엉겨서 감겨 올라가는 모습으로, 이 뱀기둥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맨 꼭대기, 그러니까 세 개의 뱀대가리가 삼발이 형태를 이루는 곳에 거대한 황금 솥이 올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 황금 솥은 지금은 어데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솥을 받치던 세 개의 뱀대가리 중 한 대가리의 일부는 이스탄불의 고고학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역시 아둔한 소생은 고고학 박물관을 방문은 했지만 너무 피곤한 관계로 세세하게 둘러보지 못해서 그 놈의 뱀대가리 구경을 못했다. 안타깝다. 다른 한 대가리는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나머지 한 대가리의 행방은 여직 묘연하다.
캠브리지에서 비잔틴 역사를 공부했다는 제임스 굿윈의 소설 중에 ‘스네이크 스톤’이라는 소설이 있다. 배경은 19세기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 술탄의 늙은(영감은 아니고) 환관인 야심이 탐정으로 등장하는 조금 특이한 소설이다. 굿윈이 전작인 <환관탐정 야심>으로 에드가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기대에 부풀어 읽어봤는데 다 읽고 난 소감은, 그래서 뭐 어쨋다는 말인가?? 비밀리에 전해진 비잔틴의 보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소설 속에는 저 뱀 기둥의 사라진 뱀 대가리도 등장하고....제목도 스네이크 스톤인데...그 보물이 뱀 대가리라는 말인지...말대가리란 말인지....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독해력 떨어지는 아둔한 소생의 탓이겠으나 소설은 진정으로 심심하게도 심심했다. 그래도 혹 궁금하신 분은 뭐 함 읽어봐도 무방하겠지만 역시 재미를 보장하지는 못하니 참고하시길.
황금 솥의 행방은 알 수없지만 히포드롬 경기장을 장식하고 있던 네 마리 청동 말의 행적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어 추적이 가능하다. 연이나 이 청동말의 탄생은 역시 오리무중이다. 아마도 기원전 그리스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납과 주석이 조금 섞여있고 거의 구리로 만들어졌으며 몸 전체를 금으로 도금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 히포드롬 경기장에 처음으로 세워졌다. 1204년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침략시 베네치아 도제 단돌로가 이 네 마리 청동말을 다른 수많은 노획물과 함께 베네치아로 보냈다. 말들은 산마르코 성당 발코니에 세워졌다. 1797년 베니스가 나폴레옹에게 항복하자 나폴레옹은 말들을 파리로 가져가서 1807년 파리에 개선문을 세우고 그 꼭대기에 말들을 배치했다. 이 개선문은 루브르 앞에 있는 카루젤 개선문으로 지금도 개선문 위에는 복제품 말들이 서있다. 참고로 샹젤리제 거리 끝에 있는 개선문은 에투알 개선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18년 안전 문제 때문에 로마로 옮겨졌다가 1919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42년 산마르코 성당 바로 옆 두칼레궁(도제궁전) 지하로 옮겨졌다가 전쟁이 끝나자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말들이 이미 많이 노쇠한데다 편하게 좀 쉬지도 못하고 이리저리로 끌려다니며 왔다리 갔다리 하다보니 너무 피폐해져 더 이상 오염된 공기를 견디지 못할 것 같다는 전문가의 진단을 받고 1977년 산마르코 성당 2층 성물실로 옮겨졌다. 성당의 발코니에는 복제품이 서있다. 2006년도에 베니스에 갔을 때 아둔한 소생은 뭘 잘 몰라서 성당 발코니에 있는 말이 진품인 줄로만 알았다. 성당 안의 성물보관실은 별도 입장료가 있어서 돈 아까워서 안들어갔는데 그 곳에 말 진품이 있었던 것이다. 아아아 뭘 알아야 해먹지......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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