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금요일 이스탄불에 갔다가 지난 금요일 돌아왔다. 이스탄불 6박 8일 일정이었다. 돌아온 날 저녁부터 한 14시간 가량 정신없이 잤다. 쿨쿨쿨 드러렁 쿨쿨쿨. 나중에 눈은 떠졌는데 몸이 일으켜 지지가 않았다. 아~ 이렇게 끝나는 건가. 이런 웃기지도 않은 생각을 잠시 했다.... 이제야 정신이 들어 늦으나마 소생의 일로평안을 기원해 주신 여러 분들께 일일이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려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라고 하니 좀 이상하다. 알라디너 여러분의 댓글에 일일이 댓글을 주렁주렁 달았다는 그런 말씀입니다요. 같은 말 계속 쓰려고 하니 좀 이상하기도 했지만서두, 어쨌든 뭐....
땡볕에 길게 줄서서 무슨 모스크니 무슨 박물관이니 발바닥 아프게 구경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사실 휴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무슨 고행도 역시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순례 비슷한 것이고, 걸어다니면서 하는 공부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다. 만족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 감사와 만족은 새롭고 경이로운 것들을 보고 느낀 감동과 놀라움에도 있을 것이며, 사실 별로 놀라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해냈었다고 하는 그 흡족한 마음에도 있을 것이다. 다만 어린 혜림씨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애비 욕심에 너무 고생시킨 것 같다. 그래도 땀을 질질흘리면서 징징거리면서도 잘 따라와줘서 역시 감사하게 생각한다.
땡볕에도 다니는 동안은 잘 다녔는데 돌아오니 온몸의 맥이 탁 풀리는지 정신은 혼미하고 몸은 자꾸만 늘어진다. 토요일은 거의 비몽사몽간에 흘러갔다. 다. 일요일쯤 되니 반쯤 나갔던 정신이 다시 돌아온다. 그동안 찍은 사진을 pc로 옮겼다. 잘 나온 사진이 별로 없다. 에어컨 틀어놓고 냉커피 마시며 소파에 누워 책을 읽었다. 휴가란 바로 이런 것이지...암... 읽은 책은 ‘로마의 일인자’다. 여행 중에 읽을 책으로는 하루키의 의견을 쫓아서 체홉 단편집을 가져갔다. 그것도 두 권이나. 열린책들에서 나온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과 펭귄의 ‘사랑에 관하여’. 읽은 건 ‘사랑에 관하여’에 있는 ‘굴’이라는 아주 짧은 단편 하나뿐이다. 왕복 22시간이나 되는 뱅기타는 동안에는 영화를 한 여덟 편 정도 본 것 같다. 눈알이 아리아리 쓰리쓰리했다.
옛날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마리우스와 술라. 이 사람들은 냉혹한 사람들이고... 몽둥이와 창칼이 난무하고 엄청난 유혈이 있었다는 것만 생각난다. ‘로마의 일인자’는 호평 일색이어서 너무 기대를 했는지 지금 일권 중간쯤 읽고 있는 감상은 음...글세....그래도 재미는 있는 것 같은데...음.....이다. 카이사르가 딸 율리아를 시집보내는 대목이 조금 마음에 안든다. 뭐 내가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카이사르는 마리우스에게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무슨 눈 밝은 점쟁이도 아니고 무슨 통찰력으로 첫눈에 마리우스가 크게 될 인물인지 알아본다는 말인가. 비록 절치부심 고뇌의 찬 결단이 있었겠으나 결론은 딸을 팔아먹는 것일 뿐이다. 서른살 연상의 남자를 첫눈에 좋아하게 되었다는 율리아의 말도 그렇고 뭔가 약간은 비현실적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