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p45)
나는 이 도터진 듯한 전언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예전부터 내 털난 흉중에 품고 있었다. 나는 그 첫 구절을 '바람'을 생각하려 한다. 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바람'이 아니라 '강물'이었다. 뭐, 본질적인 면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자가 소리에 놀라지 않듯이 바람이나 강물은 그물에 걸리지 않느니 누가 뭐라 할 것인가.
며칠전에 또 바람인지 강물인지 구름인지 하여튼 그런 것들이 문득 생각나서 책을 찾아보니 이미 팔아치웠는지 없어, 어쩌겠나 다시 주문했다. 장바구니에 담아 주문 버튼을 클릭하자 윤회의 늪에서 헐떡이며 벌떡이는 가련한 소생의 각성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채찍처럼 내 대갈통을 후려쳤던 것이다. 확인해주세요!!!. 뭘 확인하란 말인가!!! 내가 나의 전생의 전생의 전생을 재이 재삼 확인한들 살을 도려내고 뼈를 발라내는 대오각성없이는 소생은 여전히 미물 축생일뿐.
나는 이 책을 2010.7.에 구입했다가 팔았고, 다시 2014.3.에 구입했다가 다시 팔았고, 또다시 2018.11.에 구입했다가 또다시 팔았다. 계산해 보니 공교롭게도 사고팔고 사이에는 4년의 시간을 있었다. 그리하고 재또다시 4년후에 나는 이 책을 재또다시 구입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무리 바람을, 구름을, 강물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눈물나게 생각한들 미혹과 미망에 빠진 축생에게 과연 무슨 이로움이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