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샤르는 해마다 <백경>과 <돈키호테> 그리고 호메로스를 다시 읽는다고 했다."(p75)
폴 써루의 <유라시아 횡단 기행>읽다가 발견한 대목이다. 폴 써루가 기차를 타고 런던에서 출발하여 파리역을 지나 리옹역에서 오리엔트 특급과 연결되어 이스탄불에 도착한 후에 야샤르 케말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나온 이야기다. 이 책에는 세상의 온갖 기차가 다 나오는데, 기차여행이란 왠지 낭만적일 거라는 생각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기차 한번 타보고 싶다. KTX같은 고속전철 말고 철커덩 철커덩 거리는 비둘기나 무궁화 같은 열차들. 요즘도 비둘기, 무궁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야샤르 케말(1923-2015)은 터키의 대표적인 작가로 쿠르드족 출신이다. 노동운동 및 쿠르드족 반체제 인사 지원 등으로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터키에서 보다는 유럽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87년에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지만, 2006년에 오르한 파묵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케말의 수상은 물건너간 것 같다. 2011년에는 프랑스에서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바람부족의 연대기>, <의적 메메드>,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등의 작품이 번역되어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읽은 책은 하나도 없다.
촐싹거리는 소생은 백경도 돈키호테도 호메로스도 뭐 하나 진득하게 읽어내지 못했다. 물론 책은 다 가지고 있다. 백경이나 돈키호테는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기약할 수 없다. 힘없고 할일없는 노년을 위해 남겨두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해마다는 안되더라도 어느 해인가에는 반드시 읽을 것이다. 그게 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읽는 인간>인가 어딘가 보니 오에 겐자부로도 참 진득하게 책 한권을 재독, 중독 거듭하는 사람이던데. 그런 진득함과 끈기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