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하일기> 삼독 계획
요즘 무슨 숙제 비슷한 것이 있어서 열하일기를 읽고 있다. 집에도 열하일기 책이 있는데 (돌베개판 세권짜리) 동서문화사판을 주길래, 소생이야 뭐 주는 책을 절대 거절하지 못하는 습성이어서 냉큼 받아와서 지금은 이 책으로 읽고 있다. (동서문화사판이 아쉬운 점은 도판이 없다는 것이다.) 일단 동서문화사판을 다 읽은 다음,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이게 집구석 어디 있는 줄 알고 찾아봤더니 없다. 옛날에 방출된 모양이다.)을 읽고, 다시 도판이 풍부한 돌베개판 열하일기를 한번 더 읽는 것으로 독서계획을 세웠다. 뭐 계획이다.
지금은 동서문화사판 열하일기 300쪽 정도를 읽고 있다. 읽어보니 예상외로 재미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박지원을 실학자로 분류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미 옛날에 죽어 없어진 성현들의 말씀만 복창하는 그런 맹꽁이 선비가 아니라. 벽돌이니 구들장이니 수레니 뭐니 하는 인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부분에 대해서도 정말 아는 것이 많아서 소생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던 것이다. 이용후생이란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아래에 인용한 대목은 뭐 그런 부류는 아니지만, 그 애통함이 가슴에 와닿아 옮겨본다. 연전에 본 영화 남한산성과 소설 남한산성이 생각난다.
아, 슬프다. 소현세자께서 심양에 계실 무렵, 당시의 신하들이 머물고 떠날 때나 사신들이 오고갈 때에 그 심회가 어떠하였으랴? 임금이 모욕당하면 신하는 마땅히 죽어야 할 것이건만 오히려 순순히 따랐으니, 어떻게 머무르고 어떻게 떠나갔으며, 어떻게 참고 어떻게 보냈을까? 이것이 우리나라가 가장 통곡할 때였다.
아, 슬프다. 내 하잘것없는 미미한 신하이지만, 백 년이 지나간 지금 생각해 보아도 넋이 연기처럼 사그라지고 뼈가 저리다 못해 부스러질 것만 같은데 그 당시 자리에서 일어나 절하고 하직할 때는 어떠했겠는가? 또한 당시 굴욕적인 협박 아래 감시의 눈초리가 날카로운 처지에서 눈물을 참고 울음을 삼키며 얼굴에 슬픔을 감추었을 때는 어떠했겠는가? 하물며 당시 그냥 머물러 있으면서 떠나가는 이를 아득히 바라볼 때에, 요동의 들판은 망망하여 끝이 없고 심양의 짙은 숲은 까마득한데, 가는 사람은 콩알같이 아물아물해 보이고 말은 겨자씨같이 작아지다가 마침내 보이지 않고, 땅과 물이 하늘에 닿아 흔적조차 없어지면 해가 저물어서야 여관으로 돌아오는 그 이별의 슬픔이란 과연 어떠했을까? (동서문화사판 열하일기 p301)
2. <장미의 이름> 재독 계획
요즘 북플에 <장미의 이름>이 간간히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또 어디서 읽자니 누구는 이 책을 삼독했다고도 한다. 소생이 이 책을 읽은 지 10여년도 넘은 것 같다. 무슨 내용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이상하게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안그래도 다시 한번 읽어볼까 말까 어쩔까 저쩔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hnine님의 글을 보다가 문득 결심하고 말았다. 또 집구석을 구석구석 뒤져봤는데 역시 책이 없다. 옛날에 처분한 모양이다. 고미숙의 책을 주문하면서 같이 주문했다. hnine님께 땡스투했어요 호호호. 아 더불어 <장미의 이름 작가노트>도 같이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