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창.통 - 당신은 이 셋을 가졌는가?
이지훈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대가들의 공통점을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 놓았다. 

분명 그들만의 키워드가 있다.  

성공을 꿈 꾸는 자라면 뼈대를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성공일변도의 역설의 '역설'의 삶도 헤아려 보는 혜안을 가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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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같아라~

야자나무 잎은 사방으로 팔을 벌리고
가끔 부는 미풍에 가볍게 팔랑팔랑거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것이 남국의 정취입니다.

그러나,
이 날은 세상의 모든 바람이 제주에 놓인 듯 거세게 바람이 불었습니다.
야자나무 잎도 한쪽으로 온통 쏠렸습니다.

문득 프로스트의 <창 가의 나무>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너의 머리가 바깥 기후에 시달리듯
내 머리는 내 안의 풍파에 시달린다.

저 개인적으로는 예수님 수난 당하신 고난주간이고,
나라적으로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 생명들의 희생에 마음 한자락을 도려내는 듯 합니다.

'내 머리는 내 안의 풍파에 시달립니다.’

사노라니 이런 날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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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3-31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나라에 많이 어려움을 겪고 있네요.
좀 더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한주가 되어야 겠습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어 봅니다.

gimssim 2010-03-31 23:05   좋아요 0 | URL
십여 년 전, 남편이 해군장교인 친구네를 찾아가면서
초행이라 이러이러하게 찾아오라는 친구의 말끝에
말한대로 찾아오면 '기본이 바로 선 나라'라는 입간판이 있다네요.
거기까지 오면 마중나오겠다고.
모든 사건사고는 추측하기가 쉽지 않고 변수가 있기마련이지만
너무 안타깝습니다.
'기본이 바로 선 나라' '좀 천천히 가는 나라'의 소망을 가집니다.
 



어떤 공존 1 

가끔, 사각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터이지만, 이게 세상사는 모습이고 이치라고 한다면 별로 할 말은 없습니다만
신문이나 방송에서 연일 보도되는 것들은 나를 슬프게 합니다.
세상은, 여러 모습의 사람들이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곳이 아닌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매도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끊임없이 자기의 편을 만듭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쯤은 무시해도 된다고, 얼마간의 불의는 용서된다고 속이기도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사는 것은, 살아가는 것은, 살아가는 방식은 그렇게 정의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도 얼마 전부터 하늘을 반쯤은 가릴 만한 사람의 얼굴들이 떠 있습니다.
모두들 자기가 정직하고, 솔직하고, 강직하다고 합니다.

때로, 저는 민주주의가 부담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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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27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로등과 소나무가 나란히 서 있으면서도 고개는 서로 돌리고 있는 듯한 모습까지 절묘하게 잡아내셨네요 ㅋㅋ 제 방에 댓글을 남겨주셨기에 인사차 들렀는데 퀴퀴한 곰팡내 날 것 같은 제 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네요 ㅋㅋ 늘 건강하세요^^*

gimssim 2010-03-28 13:45   좋아요 0 | URL
가끔 놀러오세요.
이런저런 수다가 그리운 아줌마에요. ㅎㅎ

꿈꾸는섬 2010-03-28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꾹 눌러요.^^ 저는 때로 사는 게 부담스럽습니다.

gimssim 2010-03-28 13:47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
가끔 님의 서재에 들러서 좋은 글 많이 읽습니다.
누구나 때로 사는 게 부담스러울 때가 있지 않을까요.
 



몽땅 연필을 추억함 ... 연필 깎기

이사를 준비하면서 시간 나는 대로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있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생각해보면 그때도 이사를 자주 다녔었다.
지금처럼 대기업이 주택사업을 주도하지 않았을 때, 아버지는 여건이나 장래성이 좋은 곳에 집을 지어 파셨다. 아버지의 예상은 늘 맞아떨어져서 주택이나 건물을 지어놓고 나면 그곳으로 새로 길이 나거나 관공서 같은 것이 들어서곤 했다.
우리 집은 따로 두고 집을 지어 파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을 새집에서 살게 해 주고 싶으셨는지 늘 집을 지으면 그 집으로 이사를 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의 집은 지을 때마다 조금씩 커져갔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새집증후군을 느꼈을 것인가.
그런데도 우리 사남매는 그런 것도 모르고 씩씩하게 잘 자랐다.
정든 곳에서 떠나는 두려움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렘을 반복하며 유년의 시절을 건넜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도 결혼해서 이사를 자주 다녔다. 물론 남편의 직장 때문이었지만.
그동안 숱하게 이사를 다녔지만 이번처럼 심난한 적은 없었다.
그전에 친정어머니께서 “이젠 일이 무섭다”고 하시더니 내가 꼭 그런 기분이다.
벌써 그만한 세월 위에 서 있는 것일까.
버릴 것을 버리고, 이웃에게 나눠줄 것을 주고 하다가 이놈을 발견했다.
마음의 갈피에서 한 웅큼의 추억이 다가온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산 것이다.
그전까진 일일이 칼로 깎아서 필통에 가지런히 넣어주곤 했었다.
두 아이가 다 장성한 지금, 아니 연필을 쓰지 않는 시대에 살다보니 별 소용에 닿지도 않는 물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수선한 방, 책장 위에 두었던 녀석을 한참 들여다본다.
조잘조잘...어린 남매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이들은 자라서 어미 품을 떠나고 연필깎이는 남아서 중년여인의 눈썹펜슬이나 립펜슬을 깎을 때나 쓰고 있다.

내가 돌리면 심이 나오는 화장펜슬을 쓰지 않는 것은 아마 이 녀석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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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3-26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지 깔고 문구칼로 연필 좀 깎아봐야겠어요.
아주 오랜만에요.^^

gimssim 2010-03-26 20:38   좋아요 0 | URL
저는 얼마 전까지 연필로 글을 썼었어요.
잘 깎은 연필로 글 쓸때의 그 기분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지요.

꿈꾸는섬 2010-03-28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이 연필 갖고 놀 나이라 연필깎기를 열심히 쓰는 중이에요.^^

gimssim 2010-03-28 13:48   좋아요 0 | URL
지나고 보니까 연필깍기 열심히 쓸 때가 알콩달콩 내지 아웅다웅하느라
제일 재밌는 시절 같아요.
물론 지나고 나니까 하는 소리지만.^^

비로그인 2010-03-30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필깎이 쓸 때,, 하하
아이들이 자라서 돈버는 일, 사기꾼 골라내는 일 빼고는
거의 모든 방면에 나보다 낫습니다.
키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중전님. 하하


gimssim 2010-03-30 14:44   좋아요 0 | URL
전 키 뿐만 아니라 마음도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어제 아들에게 전화해서 엄마 결혼기념선물로 구두 사달라고...
대학교 4학년인데 우리 집에서 제일 부자거든요.
장학금 100만원 통장에 들어온 것 있는데, 그걸 노리는 엄마라니.
무슨 이런 엄마가 다 있나몰라요.
엄마 사표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네요.
 
반통의 물
나희덕 지음 / 창비 / 1999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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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을 사유함
- 나희덕의 「반통의 물」을 다시 읽으며 -

「반통의 물」은 사유의 책이다. 숨가쁜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 걸음을 잠시 멈추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라고 한다.

좋아하는 사진을 공부하면서 좀 천천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신간을 몇 권을 샀다. 책을 읽고 있는 중에 법정 스님이 입적을 하셨고 그때 나는 <혼⦁창⦁통>을 읽고 있었다. 잠시 이 책을 접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소유를 평생의 화두로 삼으셨던 스님이셨는데 ‘소유’에 매진하는 이런저런 기사들을 보면서 왜 이 책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내가 바로 ‘반통의 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 역시 작가의 고백처럼 ‘반쯤 모자라 출렁거리고 사는 어리석음이 나는 그다지 싫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다.

나희덕은 시인이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반통의 물」은 시적인 어휘와 상상력이 많이 드러나는 산문집이다. 순간들, 나무들, 사람들, 질문들이라는 큰 주제로 나누어 모두 32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일몰 무렵>에서 끊임없이 시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작가의 시각, 그것은 시간으로부터의 ‘도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시간에 대한 ‘수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속도의 시대에, 보여지고 확실하게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최선인 양 치부되고 있는 시대를 살면서 작가가 사람을 향해 ‘일몰 무렵’, ‘멈춘 것 같은 정적이 찾아오는 시간’에 ‘소멸을 향해 걸어가는 시간의 발소리를 듣’는다던가 ‘시간의 ‘밖’에서 시간을 바라’보라고 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저녁식사 준비를 마쳐놓고 어깨 위에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하는 저녁 어스름 무렵, 산책하기를 즐긴다. 생활에서 잠시 벗어져 나와 시간 위에 온전히 나를 내려놓곤 한다. 시간 밖에서 시간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속도의 어지럼증에서 잠시 유예되는 시간이다.

<반통의 물>은 작가가 집 근처의 자그마한 밭을 구해서 농사를 짓는 이야기이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종래엔 수확을 거둔다는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지금 내 손은 여전히 비어 있다’ 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빈 손을 ‘얻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움켜쥐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농사를 배운다는 것은 바로 그들의 적절한 ‘거리’를 익히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작가의 말에도 깊은 공감이 간다. 제자리에 있어야 ‘제 존재의 빛’이 나타나는 것은 식물 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뒷부분에 등장하는, 몸의 반쪽이 마비되어 걷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할아버지를 통해서 작가는 절뚝거리는 것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의 ‘영혼의 발소리’임을 고백한다.

서양 속담에 ‘시냇물에서 돌을 치우지 말라.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나는 그 말을 생각하였다. 작가는 일상의 생활을 영위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자기 자신을 맡기고 그냥 흘러가 버리기를 바라지 않고, 크고 작은 돌에 걸려서 끊임없이 물소리를 내면서 크고 작은 상처들을 어루만지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돌이 있으면 냇물이 흐르는데 다소 방해가 되겠지만 돌 때문에 물이 흐르지 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돌 때문에 물은 부서지고, 그렇게 해서 산소를 공급하고, 시냇물은 노래를 하게 된다. 건강한 시냇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돌이 없으면 물이야 빨리 흐르겠지만 시내는 소리를 잃고, 산소가 부족한 죽은 물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삶도 바로 이런 이치가 아닐까. 삶의 굽이굽이에서 부딪히는 ‘고통의 돌’들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곤 했었는데, 그 모든 것이 지나고 보니 내 마음의 지경을 넓혀가기 위한 테스트였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책의 전면을 통해서 작가는 크고 작은 일상사 뒤에 숨어 있는 상처들로 인해 우리의 영혼이 더욱 맑아지고 단순해지고 사려 깊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문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시선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속도에 떠밀려 앞만 보고 흘러가 버릴 것이 아니라 인생의 흐름의 굽이굽이에서 ‘느림’ 내지는 ‘머무름’의 미학을 배웠으면 한다.

좋은 책을 읽고 두고두고 그 의미를 음미하는 일은 언제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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