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땅 연필을 추억함 ... 연필 깎기
이사를 준비하면서 시간 나는 대로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있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생각해보면 그때도 이사를 자주 다녔었다.
지금처럼 대기업이 주택사업을 주도하지 않았을 때, 아버지는 여건이나 장래성이 좋은 곳에 집을 지어 파셨다. 아버지의 예상은 늘 맞아떨어져서 주택이나 건물을 지어놓고 나면 그곳으로 새로 길이 나거나 관공서 같은 것이 들어서곤 했다.
우리 집은 따로 두고 집을 지어 파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을 새집에서 살게 해 주고 싶으셨는지 늘 집을 지으면 그 집으로 이사를 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의 집은 지을 때마다 조금씩 커져갔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새집증후군을 느꼈을 것인가.
그런데도 우리 사남매는 그런 것도 모르고 씩씩하게 잘 자랐다.
정든 곳에서 떠나는 두려움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렘을 반복하며 유년의 시절을 건넜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도 결혼해서 이사를 자주 다녔다. 물론 남편의 직장 때문이었지만.
그동안 숱하게 이사를 다녔지만 이번처럼 심난한 적은 없었다.
그전에 친정어머니께서 “이젠 일이 무섭다”고 하시더니 내가 꼭 그런 기분이다.
벌써 그만한 세월 위에 서 있는 것일까.
버릴 것을 버리고, 이웃에게 나눠줄 것을 주고 하다가 이놈을 발견했다.
마음의 갈피에서 한 웅큼의 추억이 다가온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산 것이다.
그전까진 일일이 칼로 깎아서 필통에 가지런히 넣어주곤 했었다.
두 아이가 다 장성한 지금, 아니 연필을 쓰지 않는 시대에 살다보니 별 소용에 닿지도 않는 물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수선한 방, 책장 위에 두었던 녀석을 한참 들여다본다.
조잘조잘...어린 남매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이들은 자라서 어미 품을 떠나고 연필깎이는 남아서 중년여인의 눈썹펜슬이나 립펜슬을 깎을 때나 쓰고 있다.
내가 돌리면 심이 나오는 화장펜슬을 쓰지 않는 것은 아마 이 녀석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