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서재 갖기

며칠 전 서재에 관한 페이퍼를 읽었겠지요. 간단하게 세월이 가면 이루어진다는 답글을 달았습니다.
저도 아이들이 공부할 때는 제 책상은 식탁이었지요. 날마다 책상 타령, 서재 타령을 했드랬습니다.
그 무렵, 오정희 작가가 쓴 글을 읽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였지요.
오정희는 작가가 된 이후에도 한참동안 자신의 서재는 물론 책상도 없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작품을 위한 현장 답사를 갔다가 돌아와 늦은 저녁밥을 준비하며 울면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네요. “봐, 엄마는 작가인데 책상도 없지, 마음 놓고 작품을 구상하고 준비할 시간도 모자라.”
그래서 아이들이 “이사 가면 제일 큰 방을 엄마가 써.” 라고 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제대로 된 책상과 방해 받지 않는 서재는 정말 저의 꿈이었어요.
그런데 별로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 세월이 가니 그 꿈이 이루어지네요.
아이들이 자라서 집을 떠났어요. 당연히 아이들 책상 두 개가 남았어요. 그리고 남편의 책상도 그대로 있지요.
남편은 원래 집에만 오면 와식(식사 때 외엔 누워서 지냅니다) 생활을 하니 책상이 별로 필요가 없지요. 책을 소파에 누워서, 침대에 누워서 보니까요.
그건 젊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가장이고 아이들 아버지라 큰 맘 먹고 좋은 책상을 장만했드랬지요. 아마 우리 집에서 가장 비싼 가구일거에요.
남편에게 별로 소용에도 닿지 않는 큰 책상을 제가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 책상 하나를 덧붙였지요. 저는 엄청 큰 책상을 좋아하거든요.
지난 봄, 이사를 하면서 책을 많이 정리했어요. 남편과 몇날 며칠을 싸웠어요. 정리하자, 가지고 가자. 밤중에 몰래 치우고 엄청 잔소리 들었어요.
결혼하고 십 년 쯤 지났을 때 집안이 전소되는 화재를 만나 살림살이를 다 잃었는데 그리고 나서 장만한 것들로 다시 넘칩니다.
예수쟁이라 이 땅에서의 삶은 나그네 삶이라고 생각하며 사는데, 나그네는 짐이 가벼워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실재 생활을 그렇지가 못한 것 같아서 이사를 하면서 얼마나 민망했던지요.
급기야는 “내 사전에는 무얼 ‘산다’는 말은 이제 없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는데 이사 오니 새집에 책을 쌓아두고 살기가 좀 그랬어요.
벽 세면을 열세 개의 책장으로 채우고 간신히 큰 창문 쪽만 햇살을 받으려고 두었어요.
저는 있는 책을 더 줄이자고 했고 남편은 책장을 더 사자고 했어요.
저는 언성을 높였어요. “아! ‘산다’는 말 좀 그만해!”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소리쳤어요. “여보, 책장 두 개만 더 ‘구입’하자.”
결국 책장을 두 개 더 ‘구입’해서 그런대로 책을 꽂긴 했어요.
저는 새벽기도 갔다가 일곱 시쯤 집에 오면 이 서재에서 아침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들도 집에 없고 남편은 책상을 사용하지 않으니 서재는 온통 제 차지입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컴퓨터에 접속해 님들의 글도 읽습니다.
제가 서재를 갖기 위해 한 일은 오로지 ‘오래 버티기’였습니다.
세월이 가니 꿈이 이루어지네요.

그런데 이 무슨 조홧속인지 이렇게 좋은 서재를 두고 가끔은 식탁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궁상을 떨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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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1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중전님
노랑장미 열 송이를 보냅니다(마음속으로..). 하하


gimssim 2010-07-15 06:48   좋아요 0 | URL
노랑장미의 꽃말이 질투라던가요?
아무튼 전 노랑장미 좋아한답니다.
무지 감사드립니다.
잘 받았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07-1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집 서재랑 비슷한 가구 배치라서, 어쩐지 익숙함을 느꼈어요. ^^
저희는 딸아이 하나라서, 방 하나를 서재로 차지하고 있어요.
서재방에 있으면 어쩐지 푸근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해여~

gimssim 2010-07-15 06:50   좋아요 0 | URL
저런 책장의 배치가 효율적이더라구요.
전 방 가운데 책상이 있는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집의 어느 한 곳,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지요.

saint236 2010-07-14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저희 집은 서재는 있지만 그 안에 애들이 짐을 넣어 놓고 빨래를 널고. 서재로서는 유명무실합니다. 간신히 컴퓨터나 하고 있습니다.

gimssim 2010-07-15 06:52   좋아요 0 | URL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시기를 거치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자라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에요.

hnine 2010-07-14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반전이 반짝!입니다 ^^

gimssim 2010-07-15 06:54   좋아요 0 | URL
반전은 다소 느닷없기는 하지만
새로운 기대감을 주지요.
가끔 그런 것을 꿈 꿉니다.

pjy 2010-07-14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세월 기둘려서 생긴 서재인데..익숙한 식탁이 편안하시겠지요^^;

gimssim 2010-07-15 06:57   좋아요 0 | URL
선택의 폭이 넓어진 거지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아마 없을 것 같아요.

라로 2010-07-15 0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버티기를 해볼래요~~~(음,,,이상하게 중전님이 올리시는 페이퍼마다 다 따라하고 싶어진다는~~~.ㅎㅎㅎ)

gimssim 2010-07-15 06:58   좋아요 0 | URL
결국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매사에 그런 걸 느낍니다.

순오기 2010-07-15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오래버티기로 이뤄낸 서재보다 식탁을 애용한다에 공감의 추천입니다.^^
열세 개의 책장이라니~ 굉장한 서재네요.

gimssim 2010-07-15 22:45   좋아요 0 | URL
이사할 때 그 많은 책을 제가 일일이 다 묶었다는 거 아닙니까?
고물장수 아저씨가 트럭을 몰고 지나가다가 횡재한 얼굴로 왔다가 실망한 얼굴로 갔답니다.
이 책 다 집에 들여놓을 거냐면서...

순오기 2010-07-17 01:52   좋아요 0 | URL
고물장수 아저씨에 빵 터졌어요.ㅜㅜ
우리도 옥상방에 올린 책은 완전히 바래서 못 쓰겠기에 트럭 불러 버렸더랬어요. 그랬더니 가져가신 분이 피자 한 판 시켜주더군요.^^

gimssim 2010-07-17 06:53   좋아요 0 | URL
때로 책보다 피자가(! 이런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