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천2백 년 전에 중국의 진시황제는 "현재를 비판하기 위해 과거를 이용한" 사람들한테 사형 명령을 내렸다. 아스텍 사람들은 15세기에 멕시코 계곡을 정복했을 때 과거 국가의 기록을 없애버리려 했고, 1620년대에 그 지역을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은 아스텍 사람들의 모든 기록을 없애버리려 했다.
20세기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스탈린이나 히틀러의 공식 역사가들에게 도전한 사람들은 투옥과 망명과 사형을 당했다. 30년 전만 해도 스페인 역사가들이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 시 폭격 사건을 파헤치거나헝가리 역사가들이 1956년의 사건들을 조사하는 것은 금지돼 있었다. 이런일은 최근까지도 계속돼 왔다. 그리스의 내 친구들은, 제1차세계대전 전에 그리스가 어떻게 마케도니아의 대부분을 합병했는지를 정부와 다르게 설명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다.
서방 공업국에서는 노골적인 국가 탄압이 비교적 흔치 않은 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더 은밀한 방식으로 통제가 이루어진다. 이책을 쓰고 있는 지금 신노동당 정부는, 학교에서 영국의 역사와 업적을 강조해야 하며 위대한 영국인들의 이름과 연대기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여전히 기성 지배 세력의 의견에 가장 가까운 역사가들이 명예 학위를 차지하는 반면, 그 의견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대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맡지 못한다. ‘타협‘은 여전한 ‘출세 방법‘이다.
최초의 파라오 시대(5천 년 전) 이후로 지배자들은 자신과 선조들이 이룩한 ‘업적‘을 나열한 것을 역사로 내세워왔다. 그런 ‘위대한 인간들‘이 도시와 기념물을 세웠고, 번영을 가져왔고, 위대한 업적과 군사적 승리를 이룩했으며, 반대로 ‘악한 인간들‘이 세상에 온갖 나쁜 것을 퍼뜨려왔다는 식이다. 최초의 역사 문헌들은 군주와 왕조의 이름을 나열한 것들로서, ‘왕들의 목록‘이라 불린다. 40년 전까지 영국의 학교에서는 이런 족보를 배우는것이 역사 수업의 주된 부분을 차지했다. 신노동당(그리고 야당인 보수당)은 이런 교육을 부활시키려는 듯하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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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천2백 년 전에 중국의 진시황제는 "현재를 비판하기 위해 과거를 이용한" 사람들한테 사형 명령을 내렸다. 아스텍 사람들은 15세기에 멕시코 계곡을 정복했을 때 과거 국가의 기록을 없애버리려 했고, 1620년대에 그 지역을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은 아스텍 사람들의 모든 기록을 없애버리려 했다.
20세기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스탈린이나 히틀러의 공식 역사가들에게 도전한 사람들은 투옥과 망명과 사형을 당했다. 30년 전만 해도 스페인 역사가들이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 시 폭격 사건을 파헤치거나헝가리 역사가들이 1956년의 사건들을 조사하는 것은 금지돼 있었다. 이런일은 최근까지도 계속돼 왔다. 그리스의 내 친구들은, 제1차세계대전 전에 그리스가 어떻게 마케도니아의 대부분을 합병했는지를 정부와 다르게 설명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다.
서방 공업국에서는 노골적인 국가 탄압이 비교적 흔치 않은 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더 은밀한 방식으로 통제가 이루어진다. 이책을 쓰고 있는 지금 신노동당 정부는, 학교에서 영국의 역사와 업적을 강조해야 하며 위대한 영국인들의 이름과 연대기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여전히 기성 지배 세력의 의견에 가장 가까운 역사가들이 명예 학위를 차지하는 반면, 그 의견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대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맡지 못한다. ‘타협‘은 여전한 ‘출세 방법‘이다.
최초의 파라오 시대(5천 년 전) 이후로 지배자들은 자신과 선조들이 이룩한 ‘업적‘을 나열한 것을 역사로 내세워왔다. 그런 ‘위대한 인간들‘이 도시와 기념물을 세웠고, 번영을 가져왔고, 위대한 업적과 군사적 승리를 이룩했으며, 반대로 ‘악한 인간들‘이 세상에 온갖 나쁜 것을 퍼뜨려왔다는 식이다. 최초의 역사 문헌들은 군주와 왕조의 이름을 나열한 것들로서, ‘왕들의 목록‘이라 불린다. 40년 전까지 영국의 학교에서는 이런 족보를 배우는것이 역사 수업의 주된 부분을 차지했다. 신노동당(그리고 야당인 보수당)은 이런 교육을 부활시키려는 듯하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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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과 올가미》
2015년 7월 인권변호사들은 왜 중국 당국의 대탄압 대상이 되었을까. 인권변호사들은 2000년 이후 조심스럽게 싹을 틔우고 성장해온 중국 사회의 풀뿌리 시민운동, 노동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전국에 흩어진 운동들을 이어주는 그물 같은 존재였다.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 관영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는 소식을 전하려던 시민기자들, 탄압받는 소수민족들, 공산당이 금지한 지하교회 (중국공산당이 통제하는 조직에 속하지 않은 교회)와 파룬궁 신자들, 토지를빼앗긴 이들을 변호하고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세상에 알렸다. 이렇게 인권변호사들끼리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면서 중국 전역에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시민운동 조직들도 이들을 통해 연대할수 있었다. 톈안먼 시위 유혈 진압 이후 중국 당국의 시민사회에 대한 가장 강력한 탄압이었던 ‘709 대체포‘는 인권변호사들의 네트워크를 궤멸시킴으로써 인권운동과 노동운동의 암흑시대를 예고했다. - P166

후진타오 시대(2002~2012), 중국 당국은 사회의 둘레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고 ‘중국공산당에 직접 도전하지 않는다 ‘는 암묵적인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시민사회의 성장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때는 중국의 고속 성장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고, 당국은 경제적 과실 분배를 통해 사회를 관리하려 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 개혁을 하지 않으면 개혁개방의 성과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풀뿌리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성장하고, 강제철거와 환경오염에 대한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중국이 나아갈 방향을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많은 이들은 중국 사회 둘레의 선이 점점 확대되면서 좀 더 포용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로 변해갈 것으로 기대했다.
시진핑 시대 들어 그 선이 급속히 좁아지면서 당국에 복종하지 않고 비판적인 의견을 말하는 이들을 옥죄는 올가미로 변했다.
중국 경제의 초고속 성장 시대가 끝나고, 미국과의 패권 경쟁으로 외부 환경이 악화되고,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 지도부는 통제 강화로 사회불안 요소를 원천 차단하기로 결정했다.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의 영도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강조하면서 인민의 주체성과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는 철저히 통제하는 쪽으로 급속한 방향 전환이 일어났다. 광대하고 복잡한제국을 통치하는 절대 권력이 필요에 따라 지방과 백성에 대해 풀어주기(방)와 통제하기(수)를 반복해온 중국의 역사 순환에서 통제 강화의 주기가 시작되었다. 제국의 역사적 통치술에 인공지능과 생체정보를 이용한 21세기 첨단 감시가 더해지면서 중국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통제가 사회 구석구석을 뒤덮기 시작했다. - P167

‘‘709 대체포‘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변호사와 인권운동가들은 포기하지 않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법학자이자 엔지오 활동가인 쉬즈융은 시진핑 주석이 코로나19 상황에 책임을 지고 하야할 것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2020년 3월에 다시 구금되었다. 왕취안장의 변호를 맡았고 사법·정치 개혁을 공개적으로 요구해온 위원성은 2020년 6월국가 정권 전복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정권을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사법제도, 표현의 자유, 인권 보장,
역동적인 시민사회가 존재하는 중국을 희망한다. 고문이 없고, 어떤 피고인이든 법적 조력을 받을 수 있고, 당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재판을 요구한다. 중국 당국은 이들이 외세와 결탁해 서구 사상을 추종한다고 비판하지만, 민주와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중국 현대사의 오래된 미완의 과제다. 1919년 반제국주의와 함께 민주와 과학을 요구했던 5·4운동의 과제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후 특권에 반대하고 공정한 사회를 요구했다가 반우파 투쟁에서 희생된 학생들, 문화대혁명 이후 정치 현대화를 요구했던 민주의 벽 운동, 1989년의 톈안먼 시위를 거쳐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으로 이어져왔다.
- P168

《노학연대라는 불씨》
고작 50여 명의 대학생이, 노조를 결성하려다 해고된 노동자들을
‘지원한 ‘작은 사건‘에 왜 당국은 이토록 무자비한 탄압을 벌였을까?
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중국 수출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농촌 출신 노동자들이 동·남부 연해 지역의공장으로 모여들었다. 호적에 ‘농민‘으로 분류된 이들은 도시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견디고 주거, 자녀 교육, 복지, 의료 등에서차별을 받으며 ‘2등 시민‘으로 살아간다. 이들 2억 9000만 농민공들의 희생으로 중국이 벌어들인 엄청난 무역흑자는 공산당, 국유기업, 권력층과 연결된 기업가들에게 큰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농민·농민공들은 성장의 정당한 몫을 받지 못했다.
2010년대 들어 더 나은 처우와 독립노조 설립 등을 요구하는젊은 노동자들의 시위와 저항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 P175

동남아 국가 등으로 이전하면서 제조업 일자리는 줄고, 음식배달,
택배 등 플랫폼으로 통제되는 노동이나 일용직으로 일하는 건설업·서비스업 중심으로 일자리 구조가 바뀌고 있다. 윤종석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는 "80년대 한국의 대규모 노동운동은 산업 고도화와 대공장화, 중산층 확대를 기반으로 일어났고, 국제적 환경도 노동자들에게 유리했다"며 "지금 중국 노동자들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불안정 노동이 확대되고, 당·국가의 강력한 탄압 등 매우 복잡하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중국 청년들은 도시의 복지 시스템에서 소외된 ‘농민공‘이란 차별의 굴레를 벗기도 전에, 첨단기술의 통제와 국가의 강력한 감시라는 이중·삼중의 굴레에 매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 무렵까지는 중국 노동운동의 희망이 확산되었던 시기였다. 파업의 물결이 광둥성과 상하이 등 연해 지역 곳곳을 뒤덮고 노동계약법이 도입되어 임금이인상되고, 노동연령층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들의 발언권이 강해졌다. 사람을 기계처럼 부리는 관리 체제와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임금을 인상하라는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2010년 애플 아이폰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첨단 전자제품을 조립 생산하는 중국 폭스콘 공장에서 10대와 20대 초반 노동자 18명이 잇따라 고층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연쇄 자살의 비극을 통해, 이들은 일주일에 6~7일, 하루 12시간 넘게 로봇처럼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며, 모든 일상을 통제당하는 고통을 세상에 폭로했다. - P184

농민공들은 현실의 모순을 명확히 자각하고 더 나은 현실을 꿈꾸며 노동운동에서 희망을 찾았고, 《전태일 평전》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등을 읽으며 ‘취안타이이‘ (전태일의 중국 발음)가 준 희망의 불씨를 마음에 품었다.
시진핑 정부는 노동자들의 각성과 권리 의식 성장을 사회불안정 요소로 판단했다.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운동가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했고, 2016년 자선법, 2017년 해외비정부조직관리법을 시행해 시민단체들이 정부 승인 없이는 모금을 할 수 없고 홍콩이나 외국의 지원도 받을 수 없게 했다. 국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많은 노동운동가들은 국가가 원하는 형태의 사회복지 서비스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역할로 변모해야 했다. 국가가 허용하는 만큼 지원을 받아 활동하고, 노동자가 변화의 주체가 될 생각은 하지 말라는 ‘당근과 채찍‘이다.
중국의 노동운동은 암흑시대를 맞았고 많은 노동운동가들은 체포되거나 지하로 숨어들었다. 판이라는 성만 밝힌 한 노동운동가는 2020년 9월 좌파 사이트 궁차오가 마련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노동자 조직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계속되는 당국의 괴롭힘과 체포, 억압 때문에 활동이 매우 어렵다. 노동운동에 참여하려는 조직가, 운동가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로봇도 노동자들의 경쟁자로 등장했다.  - P185

노동은 한없이 불안정해지고 권리를 외칠 목소리마저 억압당하는 사회에 절망으로 저항하는 이들도 있다. 광둥성 대도시 선전의 반허 인력 시장 주변에서 살아가는 ‘싼허청년들‘은 고정된 주거지도 없이 돈이 떨어지면 배달이나 건설 일용직으로 버는 일당에 의지해 하루 벌어 3일 노는 삶을 살아간다. 이들 가운데신분증도 팔아버리고 가족과의 연락도 끊고 노숙 생활을 하면서자포자기한 채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싼허다선和大神"(싼허의 신)으로 불린다.
싼허청년들의 생활을 연구해 《어찌 돌아가고 싶지 않겠는가》(並不懷歸)란 책을 펴낸 사회학자 펑은 중국 언론 인터뷰에서
"싼허청년들은 어려서부터 도시의 생활을 봐왔기 때문에 생활에대한 기대도 높고 권리 의식도 강하고 불공평에 대해서도 더욱 민감하다. 하지만 권리를 지킬 수단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항의 방식, 즉 대도시에서 아무렇게나 끼니를 때우며 죽음을 기다리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가 싼허청년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착취당하고 떼먹히고 차별당하기 싫어서 일하지 않는다‘였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을 버린국가‘에 저항하고 있다. - P187

《중국 특색 자본주의》
미국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를 정면 공격하려 한다. 중국 경제가 발전할수록 공산당의 통제가 약화되고, 계획경제는 시장경제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했던 미국의 계산은 틀렸다. ‘시진핑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은 중국이 서구식 모델이 아닌, 공산당의 지도와 국유경제의 우위를 유지하는 중국식 모델을 고수할 것임을 명백히 선언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가 기존의 시장경제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정부는 중국 정부의 집중적인 자금과 기술 개발 지원을 받는 국유기업들이 전 세계 시장에서도 민간기업에 대한 불공정 경쟁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2020년포춘》이 집계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중국 기업이 124개로 미국의 121개를 추월했는데, 그 가운데 91개가 국유기업이다. 미국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며 기존 시장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보고, 중국의 굴기를 반드시 꺾어야 한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 P242

 중국도 국유기업을 강화하고 모든 역량을 집중해 반격에 나서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미국식 시장자본주의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의 우열을 가리는 체제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마윈은 2016년에 계획경제의 미래에 대해 의미심장한 예언을 한 적이 있다. "100년 넘게 우리는 시장경제가 최고의 시스템이라고 믿었지만, 앞으로 30여 년 안에 계획경제가 점점 커질 것이다. 빅데이터는 시장의 힘을 예측해 마침내 계획경제를 실현하게 할 것이다"라고, 중국공산당은 국유경제와 첨단기술을 결합시킨 21세기 계획경제로 미국을 뛰어넘는 위대한 중화 자본주의를꿈꾸고 있을까.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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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권위주의 2.0》

왕후닝과 함께 중국 신권위주의를 대표하는 학자인 샤오궁친 상하이사범대 교수는 덩샤오핑의 중국을 신권위주의1.0, 시진핑의 중국을 신권위주의 2.0의 시대로 구분한다. 샤오 교수는 2018년 11월 텐저연구소가 개최한 ‘개혁개방 40주년 토론회‘에서 덩샤오핑이 구축한 중국식 신권위주의 1.0은 공산당의 강권통치를 기초로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것이었지만, 공산당의 통치 지위에 도전하지만 않는다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모든 체제를 수용할 수 있다는 다원성을 내포한 유연한 신권위주의였다고 평가한다. 장쩌민·후진타오 시기까지는 이 모델에 기초해 경제 체제 전환과 성장의 성과를 거뒀지만, 심각한 부작용도 누적되었다. 권력과 자본이 결탁하면서 부패와 빈부격차, 이익집단끼리의 경쟁과 충돌이 극심해졌다. 이를 해결할 방법을 놓고 문화대혁명의 구호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극단좌파와 서구식 민주혁명을 외치는 극단우파가 거리에서 충돌할 수도 있는 정치적 위험에대한 심각한 인식이 시진핑 시대 신권위주의 2.0의 출현 배경이라는게 샤오궁친의 해석이다.
시진핑 시대 신권위주의 2.0은 강경 신권위주의라고 볼 수 있다. 공산당의 전통 조직과 이념을 강화해 지도자와 당의 중앙에권력을 고도로 집중시키고, (서구식 민주주의 이념 등) 보편가치, 삼권분립
같은 민감한 용어는 아예 거론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강화해 사회의 다원성을 억제하고 통치질서의 안정성을 강화함으로써 개혁에 대한 반발을 억누르고 개혁을 심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 P51

《양날의 칼, 애국주의》
왜 시진핑 시대 들어서 중국 외교는 이토록 공세적으로 변했을까.
중국 외교의 강경함은 국내 정치에서 나온다. 중국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은 마오쩌둥 시기에는 외세를 몰아내고 통일을 이루어서 건국한 것(站起來),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 시대에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것(起來)에서 나왔다. 하지만 시진핑 시대들어 초고속 성장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워졌고 화려한 성과 뒤에 가려진 빈부·도농·지역 간의 격차는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동시에 공산당 통치의 정통성을 흔들었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강해짐(強起来)으로 새 정통성을 만들기로 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중국의 꿈(중국)을 이루겠다고 선포했다. 그에 따라시진핑 주석은 21세기의 황제로서 천하를 호령하고, 천하가 중국을 떠받드는 강력한 중화제국의 부활을 보여주려 한다. 그러려면 실력을 과시하지 않고 조용히 힘을 기르는 덩샤오핑 시대의 외교전략인 도광양회의 틀에서 벗어나 힘을 과시하며 할 일을 하는 분발유위의 행보로 강한 중국을 과시해야 한다. 한편에선 근대에 들어와 중화민족이 서구와 일본 등 외세의 침략으로 겪은 지난한 고통을 강조하면서 중국공산당이 100년에 걸쳐 중국을 구원했다는 애국주의 서사를 더욱 요란하게 선전한다. 시진핑 시대의
"구호인 ‘네 개의 자신‘은 인민들이 중국의 노선 · 정치 체제·지도 이념•문화에 자신감을 가질 것을 요구하며, 서구의 이념과 체제를 배격한다. - P60

《 ‘국가자본주의를 겨누다‘》
반도체와 통신장비의 기술 우위는 누가 미래 산업의 주도권과 군사적 패권을 쥐게 되느냐와 직결된다. 인공지능,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미래 산업, 금융, 무기 시스템도 모두 네트워크와 반도체 기술이 결정한다. ‘중국제조 2025‘는 중국 정부가 나서 이 분야를 적극 육성하려는 것이고, 미국은 이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은중국의 성장 모델을 국가자본주의로 지목했다. 중국 정부가 국유기업들에 특혜를 주고 금융 시장을 통제하고, 중국 시장에 진출한해외 기업들에게 강제로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등의 불공정한 모델로 초고속 성장을 이루었다고 비난하면서 중국이 이런 모델 자체를 바꿔야만 한다고 요구했다.
미국의 전방위 공세로 중국 경제의 위기감이 고조되자 류허가 추진하던 개혁은 더는 진행될 수 없었다. 당과 국가가 경제 전반을 강하게 통제하면서 미국과의 전면적인 경제 기술 패권 전쟁에 대비하는 일종의 ‘전시 경제‘의 지휘관으로 류허의 역할도 수정되었다.
미중 갈등은 중국 개혁개방 이후 40년에 걸쳐 형성된 두 나라의 경제적 윈윈 관계의 구조 자체가 바뀐 결과다. 흥호펑 존스홉킨스대 정치경제학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1990년대 중국 정부가 국유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 월가의 금융기업과 대자본가들이 큰 이익을 얻었고, 중국공산당돠 월가 사이에는 협력 관계가 형성되었다. 중굳은 미국의 주요 기업들에게 중국 시장을 열어주고 생산기지 건설에 특혜를 주면서 이들을 미국 내에서 중국의 이익을 대변해 줄 우군으로 만들었다. 이는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으로 이어졌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변신해 초고속 성장을 이어갔다. - P74

시진핑 지도부는 공산당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가장 심각한 기득권 세력이 금융 분야에 있고, 개혁의 최대 난제라고 본다.
하지만 이미 9년 차에 접어든 부패와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라이샤오민의 천문학적 뇌물수수가 보여주듯 부패의 깊은 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만연한 부패의 근본 원인은 공산당과 국유기업에 너무 큰 권력과 자원이 집중된 시스템 자체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감시할 시민사회의 역할은 오히려 더욱 억압되고, 부패와의 전쟁은 반대파에 대한 숙청으로 변질되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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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쇠락하는 제국 미국을 대신해 중국이 언젠가는 대안적질서와 가치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오랫동안 중국을 취재해왔다. 시진핑 시대 중국이 점점 오만해지고 강압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곤혹스러웠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한-중 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실망감이 한국의 외교·안보 선택지를 좁히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혐중의 목소리는 넓고 깊게 퍼지고 있다. 혐중은 중국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막고, 중국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 중국인들의 고민을 들으려는 관심까지 차단하는 위험한 현상이다. 혐중을 넘어 중국과 협력은 넓히되 비판할 부분은 비판하고 연대할 부분은 연대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14억 중국인들의 각양각색 고민과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시진핑 시대, 중국과 홍콩, 대만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의 현재를 이해할 실마리를 찾아보려 한다. - P23

손인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시진핑 시대의 중국을
"두려움의 정치"로 설명한다. 시진핑 1인 권력의 강화는 그의 권력욕 같은 개인적 요소보다는 통치 엘리트들의 집단적 위협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감보다는 두려움이 공격적 본능보다는 방어적 본능이 시진핑으로의 빠른 권력 집중과 공산당의 영도 강화를 추동했다"는 해석이다. 손 교수는 중국 지도부의위협 의식은 권위주의 체제 자체가 지닌 구조적 문제로부터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지배연합으로부터 배제된 대중과의 갈등과 지배연합 내부의 권력 갈등이 엘리트들이 느끼는 위협 의식의 뿌리"라는 것이다.
개혁개방 40년 동안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지만, 부는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게 분배되었다. 기득권층에 대한대중의 분노는 커졌다. 기득권층의 이익을 제어하고 공정한 부의 재분배를 실현할 개혁이 필요했고 시진핑이 이런 개혁을 해낼 것이란 기대도 컸다. 하지만 점점 개혁보다는 대중의 불만을 통제하고 억누르는 쪽으로 기울었다. 2012년 권력 교체기에 일어난 보시라이 사건‘도 지도부의 불안감을 고조시키면서 권력 집중에 대한 필요성을 뒷받침했다.
서구 자유주의가 중국공산당의 일당통치를 위협한다는 해묵은 두려움도 커졌다. - P27

빈부격차를 원망하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마오쩌둥 시기의 평등에 대한 향수가 커지는 가운데 시진핑은 마오쩌둥의 이미지를 빌려서 듬직한 아버지의 이미지, 공산당의 이상주의적 뿌리를 회복시키고 외세에 단호히 맞서는 강력한 지도자상을 구축해왔다.
마오쩌둥 시대에 대한 향수를 이용하고 부패와의 전쟁으로 인기를 얻는 것은 시진핑의 라이벌인 보시라이가 충칭에서 실험했던 방법인데, 그를 숙청한 시진핑도 이를 고스란히 활용하고 있다.
시 주석은 ‘부패와의 전쟁‘에 이어 농촌과 농민들의 ‘빈곤 탈출‘(脫貧·탈빈)을 주요한 정치적 업적으로 내걸고 있다. 그리고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둔 2021년 2월 빈곤 퇴치 완수를 공식 선언했다. - P29

 2021년 7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의식주를 걱정하지 않는 물질적으로 안락한 사회) 달성의 업적을 과시하고, 신중국 수립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사실상 세계 최강국으로 도약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겠다는 게 그의 청사진이다. 하지만 리커창 총리가 2020년 5월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중국인 6억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약 17만 원)에 불과하다"고 밝히면서 파문이 일었던 것처럼, 빈곤 퇴치 완수는 아직 현실과는 거리가 먼정치적 구호의 성격이 강하다.
시 주석이 문화대혁명과 마오쩌둥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노동자와 농민, 학생들이 21세기 홍위병이 되어 아래로부터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문화혁명 트라우마도 깊이 도사리고 있다. 인권운동가들과 변호사들, 소수민족,
농민공(농민호구를 가진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탄압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중국 전역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안면인식 기술을 통한 감시, 인터넷 검열을 통한 디지털 빅브라더 사회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베이징의 한 학자는 익명을 전제로 현재 중국의 상황에 대해 비관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덩샤오핑 시대에는 광활한 중국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인민들에게 일정 정도 자유로운 공간을 보장해 인민과 지방의 적극성과 열정을 동원했다. 그러나 시진핑 시대에는 지도자와 당이 이미 진리를 모두 장악했으니 인민들은 당과 지도자를 신앙하며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변했다. 지방과 기층 조직들의 탐색 공간도 주어지지 않고, 언론의 자유도 주어지지 않는다. "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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